안드로이드는 기본소득을 꿈꾸는가?

안드로이드(Android)는 구글이 내놓은 모빌 기기들을 위한 운영체제다. 그렇지만 원래 이 호칭은 인간의 형태를 지닌 기계, 즉 봇과 같은 기계장치를 일컫는 말이다. 이 단어는 이미 1863년에 인간의 모습을 지닌 장난감에 관한 미국 특허장에 언급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호칭이 유명해지게 된 것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SF소설에 안드로이드가 등장하면서부터라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영화 ‘Blade Runner’의 원작인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가 있다.

소설에서 안드로이드의 역할은 인간의 노예다. 전쟁으로 황폐화되어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지구 대신 우주의 식민지로 이주해가는 인간들을 위해 제공되는 것이 바로 안드로이드였다. 안드로이드는 노예이기 때문에 당연히 자유가 허락되지 않았고 자유를 찾아 지구로 탈출해온 안드로이드는 주인공 릭 데카드와 같은 사냥꾼에 의해 “은퇴”당해야 했다. 인간 수준의 지능을 지닌 안드로이드로서는 억울한 일이었지만 어쨌든 안드로이드는 철저히 인간의 이익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 존재였다.

한편 현실의 안드로이드는 어떠할까? 인간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것일까? 현실의 안드로이드는 제조업, 농업, 광업과 같은 분야에서의 자동화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증기기관, 트랙터, 드릴기계 등이 바로 현실에서의 안드로이드다. 이들 안드로이드는 물질문명의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증가시켜 인류를 미증유의 풍요의 시대 속에서 살게 해주었다. 안드로이드는 분명 인간의 이익을 위해 봉사한 셈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개별 산업 그 자체에서는 반드시 좋은 반응을 얻은 것은 아니었다.

기계사용을 통한 대량생산은 전통적인 수공업자들을 몰락시켰다. 더 발전된 기계가 등장하면서는 대공장의 숙련노동자들의 일자리까지 빼앗았다. 이를 통해 산업사회는 거대한 실업자 집단을 낳았고 이것이 러다이트 운동과 같은 사회갈등을 증폭시켰다. 칼 맑스는 이러한 상황이 “자본의 유기적 구성 고도화”로 인한 이윤율 저하 경향과 맞물려 혁명적 상황으로 내몰릴 것이라고 예언했다. 대단한 통찰력을 지닌 관찰이었지만 현실은 어쨌든 아직 지구적 혁명적 상황에 몰리진 않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전히 기계화, 자동화로 인한 사회적 영향은 현재진행형이다. 스마트폰의 등장은 수많은 사람들의 생산성을 극적으로 향상시켰지만 그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전통적인 산업분야 종사자도 많았을 것이다. 전기자동차 업체인 테슬라는 GM과 비교해 시가총액이 절반 수준에 달하지만 직원은 30분의 1 수준이라고 한다. 공장자동화의 영향이다. 게다가 딜러를 통한 판매가 아닌 온라인 판매 방식이라 딜러도 필요 없다. 딜러 연합은 강하게 반발하며 현대의 러다이트가 되었다.

분명 생산성의 향상은 사회적으로 긍정적일 텐데 왜 일부는 저항하는가? 기득권을 뺏기기 때문이다. 비록 궁극적으로 쇠퇴할 기득권일지라도 당사자에게는 심각한 일임은 분명하다. 사회적으로 노동시간 단축으로 이어지겠지만 특정인에게는 노동시간의 몰수이자 소득의 몰수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의 안드로이드는 이주자 전체의 노예가 아니라 기업주와 같은 소수의 노예다. 기업주가 안드로이드로부터 이득을 또 다른 노예와 공유할 생각이 없는 한 인간노예는 기계노예에게 분노감을 갖게 된다.

지난 주말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열린 IT행사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 인터랙티브에서는 로봇이 노동시장을 차지할 것인가가 중요한 토론주제였다고 한다. 논의 내용 중 상당수는 로봇이 멀지 않은 미래에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할 것이라 내다봤다고 한다. 칼 배스 오토데스크 CEO는 30년이 지나면 똑똑한 기계와 로봇들의 수가 인간의 수를 넘어설 것이라는 다소 성급한 예언도 내놓았다. 그의 예언이 실현된다면 정말 인간의 모습을 지닌 안드로이드 노동자가 등장하지 말란 법도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그 기계화로 인해 노동자들이 피해를 입는다면 러다이즘은 더 오랜 생명력을 지니게 될 것이다. 그런데 칼 배스가 이런 갈등을 해소할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소득이 아닌 경제 생산에 세금을 부과하거나 소득 수준을 보장하기 위해 시민들에게 수당을 지급하는 ‘역소득세’를 실시하는 방안이 그것이다. 전자는 미루어 짐작하건데 개인에 대한 소득세는 없애고 기업에 대한 법인세를 강화하는 방안이다. 후자의 방법은 어느 정도 익숙한 기본소득이다. 소득세 폐지, 법인세 강화, 기본소득.

물론 이것은 스스로 자동화를 통해 돈을 벌어야 하는 업체의 대표의 말이다. 이런 정책이 현실화된다면 그의 비즈니스는 더욱 탄력을 얻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 유의미하다. 사회전체의 자동화 이로 인한 노동시간 단축이 특정분야 특정인의 도태로 이어진다면 사회의 유지를 위해 보조를 한다는 개념은 수긍할만하다. 그리고 그것이 선별적인 보조가 아닌 사회유지를 위한 패러다임의 전환적 조치로서 기본소득과 같은 아이디어로 이어진다는 아이디어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안드로이드는 기본소득을 꿈꾸는가?

영화 Blade Runner의 시간적 배경은 2019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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