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평가사’라는 도끼

지난번 글에서 살펴보았던 KT ENS “대출사기“건에 대한 더벨의 분석기사다. 전체적인 그림보다는 대출과정에서의 신용평가사의 부실한 자산실사에 대해 지적한 기사다.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은 KT ENS 사태의 핵심 원인으로 자산 유동화의 기초자산에 대한 실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꼽았다. 또 기초자산이 지나치게 과다 계상됐는데도 자산유동화 과정에서 가치의 적정성에 대해 아무도 의심을 품지 않은 점을 의아하게 여겼다. 자산유동화를 위한 합리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은데다 기초자산의 가치도 적절치 않지만 신용평가 과정에서 걸러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중략] 증권사 구조화금융 담당자는 “규제의 유무와 상관없이 유동화를 하면서 실사와 가치 평가를 빼먹는 일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절차가 법이나 규제로 강제되는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꼭 필요한 절차를 생략할 가능성도 항상 열려 있다”고 평가했다.[구조화 신용평가, ‘위험고지·여과’ 기능 부실, 2014년 2월 17일, 머니투데이 더벨]

자산실사는 여러 의미로 쓰이지만 주로 “다양한 산업분야에서 회사 혹은 취득, 합병, 기타 유사한 금융 계약 이전에 잠재적 인수자가 그 목적회사나 자산의 가치와 위험을 평가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정의할 수 있다. 따라서 KT ENS 매출채권 유동화 건에 있어서의 자산실사 시에는 유동화의 기초자산인 KT ENS와 협력사의 재무상황 및 회계의견이랄지 계약서에 대한 법률의견, 나아가 기초자산의 과다계상 여부 등이 면밀히 검토되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인용기사를 보면 해당 신용평가사가 꼭 그렇게 하지만은 않은 것 같은 뉘앙스다.

자산실사를 영어로는 Due Diligence라고 한다. 왠지 “자산실사”란 우리말과 딱 들어맞지 않아 어색한데, 이러한 과정은 영미권의 금융시장에서 처음 시작하며 그들이 쓰기 시작한 것인 만큼 그들의 표현이 오리지널이고, 이 과정을 들여온 우리가 그 본래의미에 맞게 고쳐 쓰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용어는 1933년에 제정된 미국의 증권법 제11조의 조항 제목으로 처음 등장하였는데, 브로커 또는 딜러가 그들이 파는 주식을 소유하는 회사를 조사/분석하도록 강제한 조항이다. 이러한 어원을 살펴보면 대충 그 의미가 와 닿을 것이다.

다시 해당 사건으로 돌아가 살펴보면, 기사는 과연 신용평가사가 그러한 “상당한 주의(due diligence)”를 기울였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기관은 여신승인의 절차로 제3의 전문기관의 의견을 그들의 승인근거로 삼으려 신용평가사에 기대고, 신용평가사는 제한적 정보로만 자산을 판단하였다는 것을 핑계로 – 심지어는 스스로 언론기관이라는 핑계로 – 책임지지 않는 평가 등급을 매기고, 금융기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그 책임 없는 평가 등급을 근거로 여신을 승인한다. “신용”이란 표현이 굉장한 불신용의 관계 속에 엮인 셈이다.

중요한 혁신사항은 수단과 목적의 지위 차이를 제거하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해서 도끼잡이 axemen 에 대한 승리로 귀결되는 도끼 axes 의 독립 전쟁이다. 이제 목적을 고르는 것은, 다시 말해 어느 머리를 잘라야 할지 정하는 것은 도끼라는 말이다. 도끼잡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전설의 마술사의 도제와 같은 방식으로 도끼를 멈추는 것이다. 도끼에는 없는 생각을 바꾸도록 하거나 혹은 감정에 호소하지 않는다.[이것은 일기가 아니다,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이택광/박성훈 옮김, 자음과 모음, 2013년, pp244~245]

괴테의 ‘마술사의 도제’라는 이야기를 바우만이 인용하며 현대사회에서 “수단과 목적의 지위 차이가 제거”된 상황의 설명에 사용했다. 현대 사회에서 도끼는 도끼 잡이의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 움직인다. 도끼는 감정에 호소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 때로는 자체의 생존의지로 – 작동한다. 현대 전쟁의 학살자는 칼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사무실의 컴퓨터 조작자처럼 ‘실행 버튼’을 누를 뿐이다. 현대 자본주의에서의 신용평가사도 어쩌면 도끼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지도 모른다.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된 존재. 그렇다면 그 도끼의 도끼 잡이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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