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성과에 따른 보수 체계”가 금융위기의 해법일까?

규제를 통해 금융계의 보상 체계를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 은행들은 경쟁업체에 우수한 인력을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스스로는 보상 체계에 손대려 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규제를 통해 리스크가 큰 투자의 경우 단기 성과에 따라 지급됐던 보너스를 보다 장기 성과에 따라 지급되도록 바뀌어야 한다.[“탐욕은 선하다”던 게코가 돌아왔다]

누리엘 루비니가 조선비즈에 기고한 글의 일부다. 보수체계의 개혁에 관한 내용이다. 이번 금융위기에서 보통사람들이 가장 분노했던 상황이 바로 위에 언급한 월스트리트 투자은행들의 보수 문제였다. 위기의 진원지였기에 구제금융까지 받아 실질적으로 망한 기업이면서도, 예년과 다름없는 엄청난 보너스를 지급했던 그 배포에 많은 이들이 어이없어 했다. 이 글에서는 다만 그들이 받는 보수가 과연 합당한지 아닌지를 떠나서 “단기 성과에 따라 지급됐던 보너스”가 “장기 성과”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의 타당성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금융회사, 특히 투자은행은 성과에 연동되어 보수가 지급되는 냉혹한 보수체계를 특징으로 한다. 즉, 거칠게 보아 그들의 급여는 개개인 또는 한 팀이 낸 성과에서 내포된 리스크를 차감한 위험조정이익의 일정비율을 받는 조건으로 결정된다. 이때 그 성과를 내는 상품은 투자은행의 어느 분야에서 일하느냐에 따라 제각각 다를 것이다. 이번 위기의 핵으로 여겨지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트였다면 그들이 대출은행으로부터 사들인 채권을 유동화시켜 투자자들에게 넘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수료를 기반으로 급여를 받았을 것이다.

이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이 비디오를 참고하시라.

이제 투자은행의 직원들이 어떻게 단기 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자. 금융위기로 인해 많은 이들에게 친숙한 용어가 된 증권화와 유동화가 그 비법이다. 모기지처럼 초장기의 대출을 은행의 재무제표에 놔두지 않고 다른 투자자들에게 넘겨버리는 행위가 바로 유동화고 그 유동화하는 방식이 MBS라는 증권형식을 취했다는 점에서 그것은 또한 증권화다. 이 과정의 기초 원리는 최초대출자가 유동화를 통해 투자자에게 더 싼 값에 채권을 팔면 최초대출자는 부채비율을 높이지 않은 채 차익을 챙길 수 있고 이것을 반복하는 원리다.

그게 말처럼 쉽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사실 그리 쉬운 과정은 아니기에 그렇게 엄청난 급여를 받는 핑계거리도 된다. 방법은 각양각색일 것이다. 장기대출을 단기 채권으로 전환하여 장단기 금리차를 취할 수도 있고, CDO처럼 MBS를 합성한 후 신용등급을 높여서 비싸게 팔아먹을 수도 있고, 아예 자신들의 재무제표도 거치지 않는 자금을 단순하게 신용공여만 해서 그 수수료를 취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들이 이런 돈벌이를 할 수 있는 배경은 자금수요자와 공급자간의 자금흐름을 가속화시킬 수 있는 유동화가 가능한 금융환경이다.

그 금융환경은 그간 금융부문 내외부에서 차근차근 마련되어 왔다. 일단 기초자산을 구성한 큰 시장 중 하나는 미국의 모기지 시장이었다. 소유권 사회라는 기치 하에 미국은 최근 몇 십 년 사이 빠르게 주택보급률을 확대시켰는데 금융권은 바로 그 주택자금을 공급하였다. 공급한 돈은 미국금융권에서만 나오는 것도 아닌 ‘세계화된 금융’에 의해 쉽게 이전될 수 있는 전 세계의 투자자금에서 충당되었다. 특히 2000년대 들어 그 시장은 급속도로 커졌고 자연히 그 과정의 참여자들에게 매우 높은 단기 성과에 따른 급여가 지급된 것이다.

그것이 지속가능한 금융이었는가 하는 질문은 그때는 몰랐어도 – 또는 외면했어도 – 이제는 모두가 답을 알고 있다. 그 시기 최소한의 다운페이먼트만으로도 대출을 해줬고 그 나머지 돈마저 에쿼티론이란 상품으로 대출을 해주는 등 대출자격심사라는 것이 유명무실화되었다. 빌려준 돈은 빠른 속도로 MBS, CDO 등으로 재포장되어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는데 이때 엉터리 신용평가가 품질을 보증해주었다. 결국 내용물은 쓰레기라는 게 밝혀진 이후에야 비판자들이 단기 성과가 덧없다는 사실을 성토했지만 이미 챙길 돈은 챙긴 후였다.

결국 광적으로 진행되었던 무작위 대출, 금융의 세계화, 유동화와 증권화 현상이 일체가 되어 황금알을 낳는 오리의 배를 가르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보여주는 해프닝을 연출한 셈이다. 이들 하나하나가 절대악이라 할 수는 없다(무작위 대출은 빼고). 그보다는 그것들이 합쳐서 상승효과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근본모순에 주목하여야 할 것이다(이 글에서는 논외). 그리고 단기 성과에 따른 급여는 그 해프닝이 가속화되는데 일조를 한 셈이다. 그런 면에서 단기 성과를 장기 성과로 변환시키는 것은 어느 정도 합리적인 고려사항이다.

문제는 이미 현대 금융환경이 단기 성과가 초단위로 측정될만큼 미시화된 상황인데 – 하이프리퀀시 트레이딩이라고 들어보셨는지? 1000분의 1초 단위로 거래를 하는 방식이라 한다 – 그 성과를 어떻게 장기적으로 분배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예로 어떤 직원이 올해 유동화를 통해 90억 원을 벌었으면 당연히 올해 다 성과를 받기 원할 것이다. 그것을 회사가 30억 원씩 3년에 걸쳐 성과를 인식하겠다고 한다면 그건 어떤 면에선 부당한 것이다. 성과의 단기성도 문제지만 성과 기간과 보상 기간의 불일치도 일면 비합리적이다.

그런 면에서 어쩌면 단기 성과에 따른 보너스에 대한 “탐욕”은 금융위기의 원인이기도 하지만 그 결과인 측면도 강하다. 유동화가 마련해준 회전속도가 빠른 금융환경이 그 낙전을 직원들에게 떨어뜨려준 것이다. 그러니 어쩌면 유동화 속도가 느려지고 자금수요나 공급이 모두 둔화되면 금융회사는 자연히 수익에 연동하여 직원급여를 조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경쟁업체에 우수한 인력을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는 시장이란 게 존재할 때나 하는 배부른 소리니까 말이다. 요컨대 급여체계는 독립변수로 고려할 사항은 아니다.

8 thoughts on ““장기 성과에 따른 보수 체계”가 금융위기의 해법일까?

  1. contender

    글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 시간날 때마다 자주 방문해서 글 읽고 댓글 남길게요. 싫지 않으시다면..ㅎㅎ 여기서 영어공부만 하다보니 조금씩 제가 공부했던 것들을 잊어버리는 것 같아서 좀 이리저리 생각해보려고요.

    글을 읽고 난 뒤 제일 먼저 든 생각은 킨들버거의 금융위기의 역사에서 내렸던 거품에 대한 정의입니다. 킨들버거는 거품을 계속 피어오르는 다년생화라고 말합니다. 처음에는 다년생화라는 말이 무엇인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었는데 요즈음에는 이해가 되겠더라고요. 자본주의 하에서 완전한 합리성을 가지지 못한 인간들에게 자유를 준 상태에서, 그들은 결국 비합리적인 거품을 만들 것입니다. 하나의 거품이 붕괴시 시간이 지나면 그들은 그때의 충격과 공포를 잊어버리고 다시 하나의 거품이 생겨나겠죠. 이러한 이유 때문에 킨들버거가 거품을 사라져도 사라져도 다시 탄생하는 그런 존재로 봤던 것입니다.

    이런 거품의 탄생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대안이 존재하는가. 전 자본주의 혹은 자유주의 체제 아래에서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본주의에서 필수적인 항목인 자유라는 것을 강력하게 통제를 해야 거품을 막을 수 있기때문이죠. 쉬운 말이 생각이 안나지만 어떠한 국가가 소련과 같이 혹은 다른 방식으로 강력한 권위를 바탕으로 거품을 억제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국가는 이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소련이 무너졌던 것처럼 결국 무너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루비니에게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요구하는 것은 어쩌면 넌센스가 아닐까요.

    결국에는 거품을 막을 수 있는 본질적인 해결 방안이 없기 때문에(적어도 찾지 못했기에) 결국엔 부수적인 방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푸그님은 장기적인 방식이 가능한가라고 물으셨지만 저는 과연 현재 장기적인 방식이 지금 없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싶네요. 무슨말이냐 하면 예를 들어 스톡옵션의 같은 경우 그 회사가 잘될수록 그만큼 그 주식의 가격도 상승하죠. 물론 단기적인 수많은 변수들이 그것을 억제할 때도 있지만. 혹은 한국의 재벌들 같은 경우는 경영자이자 소유자기 때문에 그들은 단기적인 수익과 장기적인 수익 모두를 고려하지만 이것이 금융위기를 해결할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도 있죠. 이처럼 현실 상 장기적인 급여 체제가 전혀 없던 것도 아닌데 이것이 거품 자체를 막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죠.

    그렇다면 다른 무언가의 옵션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모르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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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자본주의 체제라 하더라도 “충격과 공포”를 쉽게 잊는 인간의 뇌에 대한 대안으로 제도와 규칙을 마련할 수는 있겠죠. 대표적인 것이 ‘글래스-스티걸 법’이랄 수 있는데 그것을 파괴한 동인은 사실 건망증이라기보다는 사적자본의 이윤동기에서 비롯되었기에 자본주의의 근본적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꼭 구소련과 같은 전체주의적 사회주의로 가지 않으면 자유는 통제될 수 없다는 비관론에 빠질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좀더 자유주의적이면서도 사회의 합의에 의한 통제가 가능하다고 보는데 다만 그 합의는 결과를 원인으로 오해하는 해법이나 근본적 모순을 외면하거나 더 증폭시킬 수 있는 해법이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이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스톡옵션이 장기적인 급여체제의 모습을 어느 정도 띠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마저도 의도와는 거리가 멀게 현실에서 나타났고 이 부분은 http://foog.com/2683 를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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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contender

      스톡옵션에 대해 정확히 잘 모르고 있었는데 감사합니다. 얼마 전에 ‘군중심리’라는 책을 읽었는데 그 책에서 이상주의자들은 제도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제도 역시도 인간의 욕망 혹은 의식을 통해 표출된 것이기 때문에 그 제도가 인간의 욕망을 억제하거나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라는 말이 있었는데 그게 좀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론 우리가 규제와 제도를 고민하고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저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루비니가 지적했듯이 금융가들은 그 제도를 피해갈 여러가지의 방법을 만드는데, 과거 금융혁신이라고 불리우는 것들처럼, 이런 금융 시스템의 변화 혹은 진화에 맞춰서 제도 역시도 계속해서 진화하고 발전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금융감독을 어떻게 하는 것이 효과적인지를 생각해봐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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