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게바라와 지적재산권

■ 들어가는 말

“지적 소유권에 관한 문제를 담당하는 국제연합의 전문기구인 세계지적소유권기구(WIPO)는 이를 구체적으로 ‘문학 ·예술 및 과학작품, 연출, 예술가의 공연 ·음반 및 방송, 발명, 과학적 발견, 공업의장 ·등록상표 ·상호 등에 대한 보호권리와 공업 ·과학 ·문학 또는 예술분야의 지적 활동에서 발생하는 기타 모든 권리를 포함한다’고 정의(定義)하고 있다.”

지적소유권은 선도자(先導者)인 생산자의 사적소유권이 다른 생산자나 소비자들로부터 침해받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자본주의 생산기제의 주요한 법적 권리 중 하나이다. 그러나 오늘 날 사회가 발달하면서 생산자를 보호한다는 본래의 의미에서 지적소유권은 그 본래의 색깔을 잃어가고 있다. 생산자 자신의 지적소유권에 대한 침해, 지적소유권 개념의 무리한 확장, 지적소유권을 빌미로 한 소비자 권리의 침해 등이 그러하다.

■ 지적소유권의 역설(paradox)

1) 노동자의 지적소유권에 대한 침탈

고도의 자본주의 체제로 들어선 오늘 날 과연 지적소유권이 ‘진정한’ 생산자에게 정당하게 부여되고 있는 가 하는 문제에 대해선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몇 해전 삼성에서는 휴대폰의 한글자판 방식인 ‘천지인’을 둘러 싼 잡음이 있었다. 이 회사 직원이었던 최모씨는 자신의 작업은 업무와 무관한 ‘자유발명’이라며 삼성전자의 특허권은 무효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법원은 최씨의 작업이 직무와 관련된 ‘직무발명’이라며 삼성전자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는 기본적으로 노동자인 ‘지식’ 생산자의 ‘지식’은 자본가의 자산이라는 인식에 바탕을 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노동자에게는 과연 해당 발명으로 인한 천문학적인 수익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았다고 볼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오히려 소송에서 패소해 몸만 버렸다.

결국 오늘 날 자본은 노동자의 지식 생산을 독점적으로 향유하면서 발전해왔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코카콜라의 병 디자인이 그렇고 소니 워크맨이 그렇다. ‘만리장성은 진시황이 아닌 인부들이 만들었다’라는 농담에서와 같이 오늘 날 자본이 소유하고 있는 수많은 지적소유권은 사실 노동자들의 손과 머리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잉여가치 착취와는 다른 차원에서의 노동착취라 할 수 있다.

물론 뛰어난 지식이라 할지라도 판매망이나 기타 개발비용에 투자를 한 자본가의 역할도 있다는 점에서 지식 생산자가 자신의 지식을 배타적으로 누릴 권한을 줄 수만은 없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러함에도 그러한 사실이 그 지식으로 인한 이익에 대한 분배구조의 불평등성과 지적소유권의 배타성을 정당화할 수는 없는 것이다.

2) 경쟁 생산자의 지적소유권에 대한 침탈

지적소유권이 오늘 날 그 권한과 범위를 확대해나면서 생산자의 소유권 보호라는 본래 취지에 걸맞지 않게 갈수록 거대 자본의 이익에 봉사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이에 대한 사례는 인터넷 웹주소인 도메인네임에 관한 한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미국의 캐주얼 브랜드 J.Crew는 한 네티즌이 소유하고 있던 crew.com 에 대해 소위 도메인스쿼팅을 했다며 도메인네임 반환소송을 제기했고 WIPO는 J.Crew 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 사례는 지적소유권이 얼마나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지 보여주는 사건이다. 즉 회사의 브랜드 등 고유명사도 아닌 ‘승무원’이라는 뜻의 일반명사로 이루어진 이 도메인네임을 해당 도메인네임과 정확히 일치하지도 않는 회사가 빼앗아 간 것이다.

물론 반대의 경우로 악의적인 도메인네임 선점 행위도 있고 또 위 사례와 달리 도메인네임 선점자의 손을 들어주는 경우도 있으나 오늘 날 도메인네임에 대한 점유권은 급격하게 자본 쪽으로 쏠리고 있다.

또 한가지 사례로는 비즈니스모델(BM)을 들 수 있다. 온라인 상의 특이한 기술사용이나 판매방식 등이 새로운 비즈니스모델로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부각된 이 권리는 특히 온라인 업체들간의 특허권에 대한 많은 법적 소송을 불러왔다. 대표적으로 아마존이 반스앤노블즈에 제기한 ‘원클릭’ 방식에 대한 소송 등이 있는데 비즈니스모델의 인정범위와 기준이 모호하여 어떠한 기술을 어떻게 보장해주어야 하는지 해석이 분분하다. 이에 미국 특허상표사무국(PTO) 책임자는 “상당수의 BM 특허들이 잘못 부여됐다”고 실토하기도 했다.

결국 생산자의 의욕을 고취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지적소유권이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다른 생산자의 의욕을 저하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3) 소비자의 지식공유권에 대한 침탈

“음반산업협회(RIAA)는 30일(현지시간)부터 카자(Kazaa)나 그록스터(Grokster) 등 파일교환사이트를 통해 음악파일을 공유하는 수십만 네티즌들에게 경고성 메시지를 발송하기 시작했다. 불법 파일공유자들이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의 경고문은 두 파일교환사이트의 인스턴트 메시지 기능을 통해 음악을 주고받는 네티즌들에게 직접 전달됐다.[디지털타임스, 2003년 05월 02일 ]”

드디어 소비자에게까지 협박을 시작하였다. RIAA의 이러한 행위는 몇 달전 스티븐 윌슨 미 연방법원 판사가 파일공유 프로그램인 그록스터와 모르페우스(Morpheus)에 대해 저작권 침해에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린 데 따른 분풀이의 성격이 강하다. 사건 자체로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해 법원이 손을 들어준 긍정적인 모습을 띄고 있으나 이에 대해 RIAA가 이런 식으로 소비자들에게 분풀이를 하는 것은 지적소유권의 폭력이 새로운 양상을 띄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앞으로 소비자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대해서도 돈을 지불하여야 할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다.

4) 기술발전에 대한 침탈

사실 소프트웨어나 각종 컴퓨터 파일은 사적재산권의 대상이긴 하지만 무한복제가능성이라는 특징 때문에 거의 완벽한 공공재(公共財)이다. 즉 여러 사람이 사용함으로써 한 개인의 사용이 불편해지지 않는 비경합성과 타인의 사용을 배제하지 못하는 비배제성이 완벽히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자본은 이러한 특성을 지닌 소프트웨어와 mp3 등 새로운 상품에 대한 권리를 지키기 위해 Lock, Watermarking 등 제재장치를 마련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무한복제가능성의 단점(?)을 보완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에 P2P, 와레즈 사이트 등 인터넷의 새로운 시장교란자(가치중립적인 의미에서)의 등장은 자본에게는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가 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현상은 지적소유권이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에 보수적임을 말해주는 경우라 할 수 있다. 즉 대표적으로 P2P라는 새로운 소통방식이 가지는 혁명적인 패러다임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추세가 되고 있는 마당에도 지적소유권과 전통적인 시장의 소통방식에 의존하고 있는 구(舊) 패러다임은 지적소유권 해체와 새로운 시장의 소통방식에 의존하려는 신(新) 패러다임을 거스르려는 수구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기술발전을 목적으로 했던 지적소유권이 기술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역설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5) 소결

요약하자면 현대 자본주의 시대에는 지적소유권이 자본에 의해 독점화 혹은 과점화되고 있고, 자본은 자신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끊임없이 지적소유권의 개념과 범위를 무리하게 확장하고 있다. 이러한 지적소유권의 끝없는 욕망은 P2P, mp3 등 새로운 상품형태의 등장에 대해 노골적인 적대감을 보이기 시작함으로써 기술발전 독려라는 본래의 취지마저 곡해시키는 양상을 띄고 있다. 또한 그 권한을 이용하여 이제는 소비자의 소비행위를 침해하는 사태까지 이른 것이다.

■ 결론을 대신하여 : Alberto Korda

지적소유권은 자본주의의 사적소유권의 근간을 이루는 한 축이다. 따라서 자본주의가 아닌 또 다른 세상에서는 상당부분 수정되거나 폐기될 수밖에 없는 권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현존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적소유권은 선도자로서의 생산자의 개발의욕을 고취시키는 동시에 선도자의 헌신에 무임승차하려는 얌체족으로 인한 시장교란을 막는 순기능은 가지고 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지적소유권이 당초 취지와 달리 독점자본의 이해를 위해 봉사하고 있다는 것이 점차 명확해지는 시점에서는 보다 비판적인 관점에서 지적소유권을 바라볼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다음에서 자신의 권리를 잘 알고 있는 한 사진사가 그것의 방어를 위해 어떻게 대처했는지에 대한 한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글을 마칠까 한다.

Alberto Korda는 그 유명한 Che Guevara의 사진을 찍은 쿠바의 사진작가이다. 2001년 5월 26일 운명을 달리한 이 사진사의 작품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진이자 20세기의 심볼 중 하나이다. Korda는 이 사진을 1960년 3월 반혁명군의 공격으로 인해 사망한 136명의 쿠바인들의 장례식에 참석한 이 혁명지도자의 모습을 찍은 것이다. 이 사진은 작가가 한 이탈리아 저널리스트에게 사진을 건네 준 7년 후에나 일반에 공개되었다. Che가 죽자마자 이 사진은 이태리에서 포스터로 제작되었다. 그 후부터 이 모습은 전 세계에 빠르게 퍼져나가 깃발, 버튼, 그리고 앨범커버에 쓰여졌다. 이렇듯 이 사진이 수많은 용도로 쓰였음에도 불구하고 Korda는 한푼의 로얄티도 받지 못했다.

그러나 2000년 Smirnoff Vodka 회사에서 Korda의 작품을 광고에 사용하려 하자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불법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혐의로 그들을 고소했다. Korda는 “Che Guevara의 죽음을 바쳤던 이상의 지지자로서 나는 그에 대한 추억과 전 세계의 사회정의에 대한 동기를 전파하려는 이들에 의한 작품의 이용을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Che의 이미지를 술과 같은 상품의 선전, 또는 Che의 명성을 모욕하는 어떠한 목적에 악용하려는 행위에는 반대한다.”라고 말했다. Korda는 회사와 법정 밖에서 분쟁해결을 위한 중재에 들어갔고 5만 불의 위자료를 받았다. 그는 이 돈을 쿠바의 의료기관에 기부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만약 Che가 여전히 살아있다면 그 역시 똑같은 행동을 했을 것이다.” Alberto Korda는 그의 사진작품 전시회를 위해 파리에 머무는 동안 치명적인 심장발작으로 사망하였다.

KordaFilmRollChe.jpg
KordaFilmRollChe” by Alberto Korda – Museo Che Guevara (Centro de Estudios Che Guevara en La Habana, Cuba).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0 thoughts on “체게바라와 지적재산권

  1. foog

    2003년에 작성한 글로 어느 블로그에서 체게바라의 사진의 지적재산권에 대한 글을 읽고 새삼 떠올라 다시 퍼왔습니다. 🙂

    Reply
  2. 와 코르다에 대해 제가 몰랐던 부분까지 알려주셨네요. 코르다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 부분 제 포스트에 살짝 삽입해도 되겠죠? 🙂

    Reply
    1. foog

      물론입니다. 이런 글 써놓고 퍼가면 안된다느니 하면 되겠습니까? ^^;
      피드주소는 http://foog.com/rss 입니다. 얼마전에 스킨을 바꾸면서 그 부분은 아직 업데이트를 안했네요.

      Reply
    1. foog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 “멋진” 블로그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Reply
  3. Pingback: Martin The Greek?

  4. Pingback: 알베르토 코르다 | foog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