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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덕의 이미지 어떻게 전재할 것인가?

이야기의 줄거리와 이것을 전달하기 위해 이용되는 삽화들 – 키만투가 디즈니 사의 허가 없이 실은 삽화들이기도 하다 –을 보면, 디즈니가 이들 나라 사람들이 한편으로는 순진무구하고 고귀한 야만인들과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 혁명 분자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략] 따라서 이 책을 미국 내에서도 손쉽게 구입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으나, 여기에 저작권 문제가 끼어들었다. [중략] 컨즐에 의하면 두 출판사 모두 종국에는 디즈니 사의 소송 제기가 두려워 이를(출판 : 인용자 주) 단념하고 말았다. 디즈니 만화책의 삽화는 주요 주제와 전형을 다룬 두 사람의 주장에 대한 시각적 증거를 제공해준다. 디즈니 측은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결코 자사의 만화 삽화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이용되는 일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만약 누군가 삽화들을 허가 없이 출판한다면 값비싼 소송 비용을 물게 될 것이었다. [도널드 덕 어떻게 읽을 것인가, 아리엘 도르프만/아르망 마텔라르 지음, 김성오 옮김, 새물결, 2006년, pp246~249]

무인도에 낙오되었을 때 쉽게 구출되는 방법이 ‘미키마우스를 해변에 그려놓는 것’이라는 농담이 있다. 그러면 유난히 저작권에 민감한 디즈니에서 즉시 헬기라도 띄워 바로 찾아와 해변의 그림을 지울 것이라고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바로 그림을 지워야 할 것이라는 개연성에 대해서는 고개가 끄덕거려지지만 화가 나서 찾아온 디즈니 측 직원들이 과연 조난자를 다시 문명세계로 데려갈지는 미지수지만, 여하튼 디즈니의 강력한 저작권 대책에 대한 재밌는 농담이긴 하다.

인용한 부분은 칠레에 사회주의 성향의 아옌데 정부가 들어선 이후 들불처럼 일었던 사회 각 분야의 개혁적 행동 중 하나로써의 문화적 각성의 산출물인 ‘도널드 덕 어떻게 읽을 것인가’의 영어권 출판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일화를 소개한 글이다. 책의 관계자들은 디즈니의 저작권에 대한 – 보다 근본적으로는 그들에게 적대적인 책의 발간을 막고자 하는 것이겠지만 – 시비를 두려워했고, 이는 앞서의 농담이나 다른 여러 일화에서 알 수 있는바 단순한 기우는 아니었을 것이다.

인용문의 뒤를 읽어보면 결국 맑스 관련 출판물을 전문으로 내는 뉴욕 소재의 제너럴 에디션스 사가 출판을 결정했고 1975년 6월 영국에서 찍은 책이 뉴욕에 도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디즈니는 이 책과 총력전을 펼친다. 디즈니는 책이 자사의 캐릭터를 이용해서 “순진한 부모들로 하여금 디즈니 만화 가운데 하나를 산다고 믿게 하려는” 상술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 이 책의 옹호자 측은 캐릭터의 사용이 ‘공정 사용’과 미 헌법 수정 제1조항1에 근거하여 책의 발간을 옹호하였다.

총 68개의 도판은 모두 112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의 상당 부분을 구성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3달러 25센트로 가격이 책정되었으며 압도적일 정도로 장황한 본문으로 이루어진 문제의 책이 디즈니 만화책과 혼동될 수 있으리라고는 믿지 않는다. …. 내용 대부분이 구체적이거나 일반적인 맥락에서 이 저서의 정치학적/경제학적인 메시지와 관련되어 있다. 우리는 이 경우에 아래의 인용문이 매우 합당하다고 믿는 바이다. [다음은 인용문] 헌법 수정 제1조항의 정신은 저작권법에도 적용된다. 그런데 어떤 자가 전혀 다른 성격의 이해를 보호할 의도로 제정된 저작권법을 이용하고자 할 때, 법원은 적어도 일반 대중이 공익과 관련된 모든 사안을 알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어떤 시도도 용인해서는 안 된다. 로즈먼트 엔터프라이즈 사 대 랜덤 하우스 사 소송 사건.[도널드 덕 어떻게 읽을 것인가, 아리엘 도르프만/아르망 마텔라르 지음, 김성오 옮김, 새물결, 2006년, p259]

위 인용문은 ‘공정 사용’과 헌법 수정 제1조항이라는 논거를 받아들인 美재무성의 진술이다. 디즈니는 결국 이 문제에 대해서 더 이상 항의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이로 인해 이 사건은 거대 기업 소유의 상당량의 이미지가 정치적 논증을 위해 전재되었고 이런 행위가 공적인 의사 결정 기관에 의해 옹호된 희귀한 사례가 되었다. 더불어 이 사건은 오리지널 저작물을 사용하는 데 있어 그 양(量)이나 구성, 그리고 사용의 의도 등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다양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번역]이것이 공화당원이 얼마나 자유시장에 대해 진지하게 여기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처음에는 부분 발췌해서 별도의 글을 쓰려고 했는데 하다 보니 전문을 번역하게 됐다. 美공화당 내 정책을 연구하는 모임에서 저작권 제도가 시장의 혁신을 저해한다는 내용을 생산했는데, 이해관계자들의 로비로 이런 시도가 저지되었다는 블룸버그 기사다. 현재의 저작권 제도가 기업 친화적인 것이지 시장 친화적인 것은 아니라는 주장은 지속적으로, 심지어 진보주의자들뿐만 아니라 시장주의자들에 의해서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번 삼성과 애플의 싸움은 저작권 제도가 처한 상황을 잘 보여주는 실례였다. 과연 이 제도는 언제까지 기득권 보호에 충실할 것인가? 어느 시점에서 자체 모순에 의해 내파될 것인가?

금요일 의회의 공화당원들을 위한 정책 산실 중 하나인 공화당학습위원회(the Republican Study Committee)는 어떻게 저작권법을 고칠 것인지에 대한 메모를 발행했다. 토요일 오후 그 그룹의 이사가 그 메모를 보류했는데, 이는 명백하게 그 주제에 관해 “모든 사실과 관점을 손 안에 놓고” 접근하는데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이해관계자 그룹이 머리끝까지 화가 나있다는 사실을 진술하는 워싱턴의 방식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다. Ars Technica의 보도에 따르면 “콘텐츠 산업” – 헐리우드와 레코드회사 – 의 로비스트들이 그 그룹이 메모를 철회하도록 압박을 가했다.

사실 저작권이 없기 때문에, 당신은 여전히 그 메모를 온라인에서 볼 수 있다. 메모는 저작권 개혁주창자들이 지난 몇 년간 해오던 이야기를 나열하고 있다. 저작권 보호는 이제 작가의 사후 70년까지로 연장되었다. 특정 기업에게 있어서는 발간 후 95년이다. 이는 저작권 침해에 대한 징벌적 법률들과 함께, 창의성과 혁신을 저해한다. 이러한 사실들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새로운 점이 있다면 그 톤이다. 그 메모의 작성자 데렉 칸나(Derek Khanna)는 부끄럽지 않은 자유 시장주의자처럼 썼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더 큰 관점에 집중했다. : 기업을 돕는 법은 간혹 시장에 해를 입힌다. 그 메모에서 나온 말이다.

오늘날 저작권법의 법적인 제도는 많은 이들의 눈에 혁신을 저해하고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기업의 안녕을 위한 한 형태로 보인다. 그것은 승자와 패자를 가리는 시스템이고, 패자들은 새로운 부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도 있는 새로운 산업들이다. 우리는 솔직히 그것이 실제로 어떻게 혁신을 저해하는지에 대해 많은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닌데, 이는 우리가 현재의 시스템의 결과로 어떤 것들이 생산되지 못 하게 되었는지 알수 없기 때문이다.(강조는 원글)

근본적인 사실. 워싱턴에서 아직 존재하지 않는 산업을 위해 로비하는 이는 아직 없다. 그리고 칸나와 공화당학습위원회는 그 틈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그들은 한걸음 물러섰다. 더 많은 사실과 관점들을 모으기 위해. 이런 사실이 있다. : 비즈니스 친화적인 것과 시장 친화적인 것은 같은 것이 아니다. 어떤 기업에게 가장 편안한 장소는 자유시장의 한 가운데서 닳고 닳은 곳이 아니라 피둥피둥 살찐 독점체제의 꼭대기에 혼자 앉아 있는 곳이다. 당신의 지역 케이블 공급업자에게 물어보라. 비즈니스가 더 커지면 더 나은, 더 싼 것들이 뒤 이을 기업들과 산업들로부터 더 많은 것을 보호해야 한다. 그리고 당신이 가진 것을 보호하는 최선의 방법은 법에 적어 넣는 것이다.

진짜 경쟁이 있는 진짜 시장은 신입들에게 가장 이롭다. 소기업들과 신산업들은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다. 일단 창초하면 그들 역시 그걸 보호하기 위해 워싱턴으로 몰려간다. 구글과 페이스북의 로비 행동이 워싱턴에서 성장하는 모습을 바라보라. 칸나는 연장된 저작권 보호를 그의 표현으로 지대추구행위로 간주하였다. “전체 경제에서의 경제적 생산성과 잠재력을 빨아들이는 비생산적 행동이다.” 헐리우드와 레코드 산업에게 진실인 것은 여하한의 기존 산업에게도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시카고 부스 경영대학원의 교수이자 블룸버그뷰의 정기적인 기고가인 루이지 진게일스(Luigi Zingales)는 더 큰 회사들은 세금항목의 특별한 면제를 위해 로비를 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는 세금항목을 복잡하게 만들어 세법 변호사들에게 돈을 지불할 수도 없고 워싱턴에 빽도 없는 더 작은 회사들을 힘들게 한다. 진게일스는 단순한 제도와 단순한 세금을 선호하는데, 이를 통해 로비스트들이 장난질치기가 어려워지고 민주주의가 이해하기 더 쉽게 때문이다. 그는 이것이 초당적인 문제라고 보았다. 좌파는 더 많은 규제를 하는 경향이 있고, 우파는 시장 친화적이라기보다는 기업 친화적이다.

칸나가 나아가려했던 방향은 – 기존 기업들의 비용 하에 개방되고 경쟁적인 시장의 방어 – 어떠한 당도 주장하지 않는 여전히 넓게 개방된 공간이다. 이번 여름, 이그재미너(the Examiner)의 티모시 카니(Timothy Carney)나 내셔널리뷰의 유발 레빈(Yuval Levin) 같은 보수주의자들은 롬니가 기업이 아닌 시장을 보호할 것을 주문했다. 그러나 그는 비록 그의 시대에 그만의 기존 시장을 훼방 놓았을지라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몇몇 기업활동을 하는 공화당원 역시 그렇게 할 수 있다. 2016년에는 데렉 칸나를! 그는 젊다. 아마도 부통령 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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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고 다시 한 번 곱씹어 보는 내가 만들어낸 문구. “자본가는 자본주의자가 아니다.

‘삼성 vs 애플 특허소송’에 대한 또 다른 관전 포인트

사실 누가 봐도 최근 몇 년 사이의 삼성의 스마트폰은 애플의 아이폰과 닮았다. “앱등이의 글일 뿐”이라고 어떤 분이 폄하하기도 했지만 이 글을 보면 그러한 의혹은 점점 더 짙어진다. 애국주의다, 보호주의다, 삼성이 자초한 일이다, 지재권의 보호 범위가 애매하다 등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는 이번 판결은 어쨌든 지적재산권에 대한 본질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하는 계기가 된 판결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현재의 특허권이나 지적재산권이 창조자의 권리를 적절하게 보호해주고 있는가, 그것을 보장해줌으로써 시장의 효율을 증대시키고 있는가 하는 회의적 시각은, 이제 지적재산권 자체를 부정하는 급진적 진영뿐만 아니라 경제에 대한 주류적 가치를 인정하는 이들에게조차 확산되고 있다. 즉, 특허나 지재권에 대한 기업의 과용 및 오용이 오히려 그것이 보호하거나 도모하고자 했던 것들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특허권의 확산은 세 가지 방식으로 대중에게 피해를 입힌다. 첫째, 이는 테크놀로지 기업들이 시장에서보다는 법정에서 경쟁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 정확하게 발생하게 될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둘째, 기존 기술을 사용하지만 또한 그것을 가지고 뭔가를 만드는 회사에 의한 후속적인 개선을 방해할 것이다. 셋째, 미국의 특허 시스템의 더 광범위한 문제들을 가속화시킨다. 예를 들면 특허 트롤(troll)들(실제로 어떠한 것도 만들 의사가 없는 특허 보유자에 의한 투기적인 소송들); 방어적인 특허출원(주로 경영비용을 증가시키는 소송 위험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특허 취득); 그리고 “혁신 정체”(너무 작은 특허들이 너무 많은 참여자들에게 퍼져있기 때문에 새로운 단일 생산물을 창조하기 위한 복합적인 기술을 조합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Apple v Samsung, iPhone, uCopy, iSue]

이코노미스트의 이 기사가 바로 이 시스템을 지지하고 있는 주류의 고민을 잘 말해주고 있다. 창조자의 권리를 정당하게 보호해주고, 이를 통해 창의를 도모하여 경제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특허 시스템이 이제 스스로 몸집이 커지고 모순에 빠져 더 큰 시스템의 발전을 훼방 놓는 심술꾸러기가 되어버렸다는 이야기다. 즉, 특허 시스템의 배타적인 권리 보호가 경제 순환에 일종의 동맥경화 증상을 초래하고 있다는 판단인 셈이다.

오늘날 통상적인 지혜로는 베끼는 것은 창조성에 나쁜 것이란 생각이다. 그 생각은 만약 우리가 사람들이 새로운 발명품을 베끼도록 허용한다면, 아무도 처음에 창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카피캣은 새 아이디어들을 개선하는데 아무 것도 하지 않지만 이익의 대부분을 뺏어간다는 것이다. 그것이 특허와 저작권이 기반을 둔 이유다. : 베끼는 것은 혁신을 위한 동기를 파괴한다.[In Praise of Copycats]

월스트리트저널의 “모조품 경제 : 어떻게 모방이 혁신을 일으키나”라는 책 소개 글이다. 책은 후발주자의 모방에도 불구하고 번창하는 산업들의 예를 통해 특허와 저작권이 가지고 있는 근본철학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재밌는 것은 이번 소송의 승자 애플의 창시자 스스로가 모방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는 위대한 아이디어를 훔친 것에 대해 언제든 부끄러움이 없었습니다.

애플은 혁신을 전혀 멈추지 않았다. 그 대신 그들은 iMac을 내놓았고, OS X(“레드몬드, 복사기를 가동시켜.”)를 내놓았고, 그리고 iPod를 내놓았다. [중략] 만약 베끼는 것이 혁신을 멈추게 한다면, 왜 애플은 그들이 카피를 당했을 때 혁신을 멈추지 않았는가? 모방 당하는 것은 어떡하든 혁신하고자 하는 그들의 능력을 멈추게 하거나 지연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가속화시켰을지도 모른다. 애플은 월계관에 안주할 수 없었던 것이다.[Who Cares If Samsung Copied Apple?]

오히려 다른 이의 모방이 애플을 혁신하게 추동했다는 이 가정은 조금은 극단적으로 들리기는 한다. 하지만 결국 애플이 오늘날 IT업계의 최강자로 나서게 된 근본적 이유는 어쩌면 자신들의 그들의 특허를 보호하려는 수동적 자세보다는 모방을 통한 창조와 혁신을 멈추지 않은 적극적 자세 덕분일 것이다. 애플이 처음에 제록스의 GUI를 흉내 냈을 때 제록스가 특허권 보호를 들어 법정이 그것을 막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erte님이 아래와 같이 제보해주셨는데

글 재미나게 잘봤습니다. 다만 끝에 나온 제록스 관련 이야기는 적절한 예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있어서요. 애플이 제록스에게 주식을 싸게 양도하고 저 권리를 얻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록스가 애플에게 소송을 걸었는데 졌다네요…

사실 확인을 해보니 erte님 말대로 제록스는 애플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이 판결을 통해 소송에서 졌다고 한다. 말씀의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러한 일련의 과정에도 불구하고, 당초 내가 쓴 원문의 취지가 본질을 크게 왜곡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되어 원문을 살려두고 이 각주를 글 밑에 붙여두기로 한다. 제보해주신 erte님께는 foog.com 평생 무료구독권을 드리고, foog.com 본사 경비실에서 찾아가세요.

물론 애플과는 규모가 다른, 이제 막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벤처기업의 혁신적 아이디어를 대기업이 모방하여 시장을 빼앗아가는 상황이라면 이야기는 조금 다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업 또는 노동자에 대한 특허 시스템은 기존의 시장 지배력에 대한 역학관계와 함께 다뤄져야 할 것이다. 이미 특허는 자본가에게 있어 일종의 “생산수단”이기 때문이다. 생산수단의 독점과 과보호는 독점자본주의를 강화시킨 것이 여태의 역사다.

1981년 출시된 Xerox 8010 Star의 그래픽유저환경(출처)

해적당 출현

영국에서 해적당이 출범하였다. 이른바 Pirate Party UK!

해적질은 분명히 불법화된 문명사회에서 이 무슨 황당한 당명일까 하는 생각도 들 것이다. 물론 그들은 진짜 해적은 아니다. 당명은 현재의 저작권 시스템의 부당성을 주장하는 창당세력이 스스로를 pirate의 또 하나의 의미 ‘표절자, 저작권 침해자’라고 자처하며 역설적인 뉘앙스로 지은 것이다.


그들의 생각의 편린은 WIKI에 올린 그들의 선언문에서 엿볼 수 있다.

문화적 표현과 지식이 평등한 조건으로 모두에게 자유로운 사회는 사회 전체에게 이익이 된다. 우리는 광범위한 저작권이 문화적 표현의 생산과 접근 둘 다를 제한하면서 이러한 지향을 적극적으로 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중략]
저작권이 처음 생겼을 때는 그것은 단지 창조자가 창조자라 인정되는 권리를 조정할 뿐이었다. 이후 그것은 작업들의 상업적 베끼기를 포괄하고 일반 시민과 비상업적 조직의 권리를 제한하는 쪽으로 확장되어왔다. 이러한 균형의 이동은 사회전체가 받아들일 수 없는 쪽으로의 발전을 촉진했다. 경제적이고 기술적인 발전들은 소비자, 창조자, 그리고 대중사회의 희생을 요구하면서 극소수의 거대 시장참여자들에게 부당한 이익을 안겨주고 있다.
A society where cultural expressions and knowledge is free for all on equal terms benefits the whole of the society. We claim that widespread copyright is actively counter-productive to these aims by limiting both the creation of, and access to, cultural expressions. [중략]
When copyrights were originally created, they only regulated the right of a creator to be recognised as the creator. It has since been expanded to cover commercial copying of works and has limited the rights of private citizens and non-profit organisations. This shift of balance has prompted an unacceptable development for all of society. Economic and technological developments have given unjust advantages for a few large market players at the expense of consumers, creators and society at large.[출처]

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착취 시스템은 자본가에 의한 생산수단의 독점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자본가는 불변자본인 생산수단을 집적시켜 사회 전체의 생산성을 증대한 긍정적인 측면이 있는 반면, 그것을 사유화하고 생산자인 노동계급으로부터 분리시킴으로써 노동력을 가변자본화, 즉 착취의 근본으로 삼았다는 논리다.

저작권도 어찌 보면 생산수단과 비슷한 운명을 걷고 있는지 모른다. 처음 그것은 창조자의 권리를 확인해주기 위한 제도였다. 확실히 저작권을 통해 창조자의 권리를 보장해줌으로써 다른 이들은 창조에 대한 보상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권리가 점차 창조자가 아닌 그를 소유한 거대기업에 의해 독점되고 저작권의 범위가 과대 해석되어 사용자의 권리를 제한하기 시작하면서, 어느새 그것은 일종의 ‘지적(知的)인 생산수단’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세계 어느 나라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강력한 지적재산권 보호 제도를 갖추어 놓았다. 얼마 전에는 블로그에서 손담비 노래를 부른 꼬마의 동영상이 블로그 서비스 제공업체로부터 공개제한을 당하는 사태까지 있었다.(주1) 저작권 제도를 강화한 장본인 국회의원이 자기 홈페이지에서 스스로 저작권을 어기는 일도 있었다. 어이없는 제도로 말미암아 나조차도 무슨 죄를 저지르고 있는지 모르는 세상이 되고 만 것이다.

과연 현 상황이 창조자의 권리를 정당하게 보호하고 있는 상황인지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어린 아이가 손담비 노래를 부르는 동영상이 국회의원이 올린 그림 이미지가 그 창조자의 권리를 얼마나 침해했을까는 미지수다. 오히려 인지도 상승이라는 측면에서는 플러스 요인이 있다. 이와 반대되는 사례로 영국의 코미디 집단 몬티파이든은 오히려 유투브에서 자신들의 코미디 동영상을 고화질로 공개하여 DVD의 판매를 극적으로 끌어올렸다. 과연 누가 현명한 이들인가?

개인적으로 생산수단의 집중화 현상은 경제성 차원에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것이 누구의 손에 놓여지느냐 하는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 정치경제학의 핵심 중 하나다. 저작권의 개선과 창조자의 보호 역시 경제성 차원에서 좋은 일이다. 문제는 그 저작권이 생산수단이 그랬듯이 오히려 생산계급을 소외시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영국 해적당의 명랑한 해적질이 성공하길 기원한다.

(주1) 물론 이 사태가 사법당국의 조치가 아닌 서비스 제공업체의 자발적인(?) 통제였다는 것이 후일담이지만, 하나의 제도와 그것이 조성하는 사회 분위기가 어떻게 개별인자에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특허 및 저작권 법 폐지를 주장하는 경제학자들

Economists Say Copyright and Patent Laws Are Killing Innovation; Hurting Economy

Newswise — 특허와 저작권 법률의 폐지는 급진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워싱턴 대학의 두 경제학자는 이제 말할 시기가 온 아이디어라고 말하고 있다. 미쉘 볼드린 Michele Boldrin 과 데이빗 케이 레빈 David K. Levine 은 혁신을 경제회생의 키로 보고 있다. 그들은 현재의 특허/저작권 시스템이 시장에 발명품이 진입하지 못하게 막고 있다고 믿고 있다. 두 교수는 캠브리지 대학 출판사를 통해 새로운 책 ‘지적 독점에 대항하여(Against Intellectual Monopoly)’을 통해 그들의 견해를 내비쳤다.

“공공정책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원칙적으로 특허법과 저작권법을 함께 폐지하고 싶습니다.” 존 에이치 빅스 John H. Biggs1의 뛰어난 경제학과 교수 레빈의 말이다. “발명가에게 수많은 보호 장치가 있고 창조적인 이들을 위한 수많은 보호 장치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것을 사람들이 돈도 못 벌면서 발명하려 하거나 무언가를 창조하려하는 것을 일종의 자선행위로 간주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특허나 저작권이 없이도 돈을 벌 수 있다는 많은 방법이 있다는 것에 대해 매우 강한 증거가 있습니다.”

레빈과 볼드린은 인터넷에서 음악을 ‘도적질’했다고 고소당한 학생들과 특허소지자가 생산한 값비싼 의약품을 구입할 수 없어서 죽어가는 아프리카의 AIDS 환자들을 현 시스템의 실패사례로 지적하고 있다. 조셉 깁슨 호이트 Joseph Gibson Hoyt 의2 예술 및 과학 분야의 뛰어난 교수이고 경제학부의 학과장인 블드린은 “지적 재산은 실은 우리 문 앞에 부와 혁신을 전달해주는 경쟁적인 자유시장 왕국을 도와주기보다는 훼방을 놓는 지적 독점이다”라고 말했다.

저자들은 라이센스피, 규제, 특허가 이제는 너무 오용되어 창조의 비용을 상승시키고 새로운 아이디어의 확산 속도를 늦추고 있다고 주장한다. 레빈은 “대부분의 특허는 시장의 다른 이들보다 단기적인 우위를 점하기 위해 그들의 혁신을 경쟁자로부터 보호하려 희망하는 혁신자들이 얻는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특허는 다른 이들이 자신들을 특허침해로 고소하지 못하도록 방지하려는 방어 목적의 특허 포트폴리오를 구축한 대기업들이 취득하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볼드린과 레빈은 그들의 책에서 특허 시스템의 대담한 개혁을 독려하고 있다. 그들은 법률이 미국 헌법의 내용과 부합되게 회복되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그것은 의회는 “존경할만한 저작과 발견에 대하여 그 저자나 발명가에게 배타적인 권리를 한정된 기간 동안 보호하여 과학과 유용한 예술의 진보를 독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의회가 다음과 같은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이들에게만 특허를 부여함으로써 특허청원자들에게 증명의 부담을 역으로 지워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 그들의 발명이 사회적 가치를 가진다.
– 어떤 특허도 보다 가치 있는 혁신을 가로막지 않는다.
– 혁신은 특허 없이는 비용절감이 안될 수도 있다.

저자들은 그러한 급진적인 개혁이 가능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고 특허, 규제, 면허의 범위를 점차적으로 축소하는 점진적 접근을 개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시스템의 변화가 시급하다고 말한다. 이 경제학자들은 지적 독점 (특허)를 경제적으로 해로운 것으로 증명된 무역 독점에 비교했다. 그들은 “몇 세기 동안 경제적 진보의 원인은 자유무역의 그것과 동일시되었다. 다가올 몇 십 년 동안 경제적 진보를 유지하는 것은 가면 갈수록 혁신적으로 지적 독점을 줄이고 궁극적으로 제거시키는 능력에 달려있습니다.”라고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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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나도 직관적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지적재산권을 비판하는 많은 이들이 주장하는 특허 및 저작권 취지의 변질에 관한 글이다. 이 주장이 반(反)자본주의 진영에서의 주장보다 더 반갑다. 글에도 나와 있다시피 저자들은 자유무역 옹호론자들이고 그러한 관점에서 특허 및 저작권을 비판하기에 더욱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즉 그것은 자본주의 자체의 생명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도 간략하게 언급되어 있지만 특허는 궁극적으로 독점이다. 이를 부인할 수는 없다. 그것이 ‘사회적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창조’한  ‘직접적인 생산자’의 지위를 ‘단기간’ 보장해주는 한에선 바람직하지만 현재처럼 ‘사회적 가치를 증명하기 쉽지 않은’ 무언가를 ‘관할’하고 있는 ‘선진국 거대기업’의 지위 유지에 활용된다면, 그것은 오히려 자본주의에 반체제적이다. 독점을 가장 싫어하는 것은 자본주의와 자유무역이 아니던가?

지나가다님이 당초 제가 단 각주에 대해 설명을 잘해주셔서 본문으로 올립니다. 지나가다님 감사합니다.(모든 지나가다님은 위대해~)

(주1) (주2)에 설명을 보고 의아해 할 사람들을 위해 남깁니다.
(주1) John H. Biggs Distinguished Professor of Economics 를 풀어서 설명하면.
경제학과에 John H. Biggs를 기리며 만들어진 석좌교수 자리가 있는데. Levine이 현재 그 석좌교수 타이틀을 가지고 있단 말이고.
(주2)
Joseph Gibson Hoyt Distinguished Professor in Arts & Sciences and Chair of the economics department
마찬가지로 문리대에 Joseph Gibson Hoyt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석좌교수 자리가 있는데 현재 Boldrin이 그 석좌교수이자 경제학과장이라는 말입니다.
이해가 되셨죠?

몬티파이든(Monty Python)의 역발상

몬티파이든(Monty Python)은 1970년대 초반까지 큰 인기를 끌었던 영국의 코미디 Monty Python’s Flying Circus에 단골로 출연했고 그 외 다수의 극장용 영화를 만들었던, 일종의 코미디 창작집단이라 할 수 있다. 몬티파이든이라는 이름을 걸고 만든 영화 외에도 바로 이 집단의 일원이었던 테리 길리엄이 만든 ‘브라질’ 등 여러 편의 컬트걸작들, 그리고 존 클리스가 주연한 걸작 ‘완다라는 이름의 물고기’도 이들의 코미디 코드를 차용했다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한때 이들의 작품에 열광하기도 했다.(물론 지금도 좋아한다)

이들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기 1
이들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기 2

이들은 현재 유투브(YouTube)에 자신들만의 채널을 열어놓고 그들의 작품들을 무료로 볼 수 있도록 제공하고 있다. 이들이 그들의 채널에 써놓은 글을 살펴보자.

“3년여 동안 유트브 이용자들은 우리의 작품을 몰래 떠서 수십만 개의 비디오를 유투브에 올렸다. 이제 테이블이 돌려졌다. 이 문제를 우리 스스로의 손으로 다룰 때가 왔다. 우리는 당신들이 누구인지 어디 사는지 알고 있고 당신들을 말하기조차 두려운 방법으로 추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무지하게 좋은 녀석들인 관계로 우리만의 더 좋은 방법을 찾아냈다. 우리는 우리들의 몬티파이든 채널을 유투브에 런치했다. 더 이상 당신들이 올리던 저화질의 쓰레기는 안 된다. 우리는 우리 저장고에서 바로 배달된 HQ화질의 진짜배기를 선사하고 있다.”

역시 몬티파이든 다운 멘트다. 하지만 물론 이게 끝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대가로 바라는 것이 있다. 당신들의 철없는 소리나 생각 없는 코멘트는 아니고 그 대신에 링크를 눌러 우리 영화와 TV쇼를 사셔서 요 몇 년간의 (네티즌들의) 해적질로 인한 우리의 고통과 혐오감을 경감시켜주길 바란다.”

이들이 말하는 링크란 유투브가 채용한 Click-to-Buy, 즉 유투브에서 본 동영상의 DVD등을 바로 매입할 수 있는 시스템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이에 따른 몬티파이든의 매출신장은 어떻게 되었을까? 지난 11월 런칭된 이후 이들의 비디오는 유투브에서 가장 많이 감상되고 있는 리스트에 올랐고, 그들의 DVD는 아마존의 Movies & TV bestsellers list에서 2위에 올라 판매는 230배 증가했다고 한다.(참고 페이지)

요게 바로 클릭투바이

기술의 발달에 따라 합법의 경계를 넘어서 유통되고 있는 자신들의 저작물을 강제로 금지시키는 대신에 역설적으로 고화질의 콘텐츠를 제공하면서 상업적 성공을 동시에 획득한 몬티파이든의 역발상은 웃길 것 같지 않는 어이없는 소재로 웃음을 선사하던(예를 들면 ‘나는 양’이나 ‘웃기게 걷는 걸음을 위한 정부부처’에 관한 에피소드.. 말이 되냐..) 그들의 유머감각과 묘하게 겹친다.

그 유명한 스팸, 스팸, 스팸, 스팸 에피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