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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증명(人間の証明)

‘인간의 증명(人間の証明)’을 다시 읽었다. 내가 어릴 적 좋아했던 일본의 추리작가 모리무라세이치(森村誠一)가 1975년 ‘야성시대(野性時代)’에 연재한 것을 1976년 단행본으로 발간한 작품으로 500만부가 팔려 가히 그의 대표작이라 할 만한 작품이다. 한번 읽은 적이 있는데도 줄거리가 전혀 생각나지 않아 마치 새로 읽는 것과 같은 느낌으로 읽어버렸다. 이럴 때는 건망증 증세가 심한 것이 도움이 된다.

여하튼 …

그의 작품은 사실 서구권 작가들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드라마틱한 반전(反轉)은 별로 없다. 그의 작품이 맘에 드는 점은 그러한 반전보다도 등장인물들을 마치 실험 상자에 넣고 요리조리 흔들어 그들의 반응을 즐기는 듯한 그의 상황설정과 사건전개가 맘에 들기 때문이다. 다분히 새디스틱한 감정이다. -_-; 이러한 인간에 대한 실험정신은 무릇 다른 추리작가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해볼 때 무리무라세이치가 더욱 맛깔스럽게 해낸다.

이 작품은 전쟁 통에 엄마와 헤어져 뉴욕의 할렘가에 내팽개쳐진 동양인과 흑인의 혼혈인 조니 헤이우드가 일본에 남은 어머니를 찾아 나섰다가 한 빌딩 엘리베이터에서 살해당하면서 시작한다. 인간에 대한 증오가 가득한 형사 무네스에가 이 사건을 맡아 결국은 사건을 해결해낸다는 것이 큰 줄거리다.

앞서 말했듯이 이 작품에서 큰 반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한 중반 정도 읽다보면 이미 유력한 용의자도 밝혀진다. 그 밝혀지는 과정도 약간은 억지스럽다 싶을 정도다. 그럼에도 끝까지 소설을 읽어 내려가게끔 만드는 매력은 앞서 말했듯이 무리무라세이치의 집요한 인간성 탐구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잘못된 일인 줄 알면서도 자신의 아집과 이기심 때문에 극한으로 몰고 가는 인간 군상들의 몸부림이 매우 선명하게 느껴진다.

다시 이 소설을 읽으면서 검색해보니 우리나라에선 이 소설을 1991년도에 출간된 문고판으로밖에 구할 길이 없다고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도 그 책이다. 한편 이 소설은 일본에서 1977년부터 몇 차례 극화되었었다고 하고 2004년에도 미니시리즈로 극화되었다. 2004년 판은 이미 구했고 – 어둠의 경로를 통해 ^^; – 느긋하게 감상할 생각을 하니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