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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읽은 중 인상적이었던 책들

올해가 아직 한 달 조금 넘게 남았지만 글 올리는 것도 뜸하고 해서 올해 읽은 책들 중에서 인상 깊었던 책 몇 권을 소개할까 한다.

대한민국 만들기, 1945~1987 : 경제 성장과 민주화, 그리고 미국

냉전 시기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에 대한 전문가인 그렉 브라진스키의 저서다. 저자 스스로도 좌우 어느 쪽으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할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독특한 시각을 가지고 쓰인 책이다. 저자는 미국이 자국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이식하려 시도한 허다한 사례 중에 거의 유일한 성공사례로 남한을 꼽았으며 이 과정에서 미국의 위정자와 시민사회, 남한의 위정자와 시민사회가 어떠한 역할을 하였는지에 대해 상술하고 있다. 이승만을 개차반 취급하는 것이 이색적임.

백은비사 : 은이 지배한 동서양 화폐전쟁의 역사

우리는 경제사조차 서구의 시각을 대부분 수용하는 편이다. 그러하기에 과거 역사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경제대국이었던 중국의 경제사에 대해서는 무지한 편이다. 이 책은 그 빈틈을 어느 정도 채워준다. 왜 중국이 다른 나라와 같은 형태의 제국주의 정책을 취하지 않았는지, 왜 스페인이 남미에 진출했는지, 왜 중국은 은을 사랑했는지에 대한 이치를 어느 정도 깨달을 수 있다. 화폐전쟁 유의 음모론 책보다는 조금 더 차원 높은 매력을 지닌 중국인에 의한 중국과 그 주변의 경제사.

위건 부두로 가는 길 : 조지 오웰 르포르타주

조지 오웰의 대표작인 ‘1984년’의 최초의 외국어 번역이 한국어였다고 한다. 당연히 대표적인 반공(反共)서적으로 유용하게 쓰였었는데 아는 사람은 알다시피 조지 오웰 스스로는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하였다. 이런 그의 포지션을 잘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 이 르포르타주다. 노동자의 삶에 직접 스며들어가서 느낀 불편함, 건강함, 역동성 등을 솔직한 필치로 적고 있다. 그런 한편으로 기성 운동권들의 나태함, 위선, 한계 등도 적고 있다. 1984년은 아마 그러한 고민의 연장선의 작품이었으리라.

점과 선 / 모래그릇

올 한해 의미 있는 발견은 일본 최고의 추리작가로 칭송받는 마쓰모토 세이초다. 배우 김혜수 씨가 읽기 시작했다는 기사를 읽고 무심코 빌려본 작품인데 패전 후 일본사회의 사회상이 생생하게 묘사된 이 작품들을 읽고 있노라면, 시대를 뛰어넘는 그 암울함과 긴장감이 가슴에 느껴진다. ‘점과 선’은 실종된 남편을 찾는 아내의 일화를, 모래그릇은 실력을 인정받은 작곡가의 비밀을 그린 작품이다. 작품이 맘에 들어 DVD까지 직접 구해서 봤는데 영화의 작품성도 뛰어나다. 특히 ‘모래그릇’(1974년)은 걸작.

골목 사장 분투기 : 자영업으로 본 대한민국 경제 생태계

이정우 교수에 따르면 1963~1979년 동안 국내총생산은 131조 원 발생했는데, 지가는 326조 원 상승했다고 한다. 결국 박정희는 경제성장을 위해 불로소득을 용인 내지는 독려한 것인데, 이제 그 모순이 지금의 자영업자에게 치명적인 독이 되고 있다. 아무리 벌어도 높은 임대료 때문에 버틸 수가 없는 구조적 모순 속에 뛰어든 저자가 생각하는 자영업 생태계를 담담한 필치로 풀어나간다. 그 와중에 프랜차이즈 방식 또한 자영업자를 옭아매는데 그 올가미에서 빠져 나온 한 자영업자의 인터뷰가 인상적이다.

천재의 두 얼굴, 사이코패스

사이코패스는 한니발 렉터처럼 식인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연쇄살인마에게서만 발견할 수 있는 잔인한 캐릭터일까? 저자는 사회의 곳곳에 사이코패스가 존재하는데 경영인, 외과의사, 특수부대 요원과 같은 이들에게서 이런 특성을 관찰할 수 있다고 한다. 과연 인간을 사이코패스와 “정상인”으로 구분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별개로 하고라도 매우 흥미 있는 주장이다. 무엇이 그들을 사이코패스로 태어나게 또는 자라나게 했는가에 대한 이런저런 사례와 임상실험 내용등이 소개된다.

기나긴 이별 / 깊은 잠

올해의 또 하나의 의미 있는 발견은 레이먼드 챈들러. 한때 흠뻑 반했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그 매력적인 유머코드와 문체는 레이먼드 챈들러의 작품에서 고스란히 발견할 수 있다. 보통 아무리 매력적인 스릴러라 하더라도 스토리의 파악을 위해 대충대충 읽어나가는 못된 습관을 가지고 있는데, 이 작품들만큼 한 문장 한 문장 아껴가며 읽었다. 그리고 그럴 가치가 있었다. 두 작품 역시 모두 영화화되었는데 ‘깊은 잠’의 경우 걸작의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둘 다 소설이 더 재밌다.

지상의 위험한 천국 : 미국을 좀먹는 기독교 파시즘의 실체

저자는 미국의 진보적 성향의 개신교도다. 일종의 인사이더인 셈인데 그런 그가 미국의 개신교 중 일부세력이 어떻게 파시즘적인 성향을 강화시켜가면서 세력을 확대하고 있는지를 고발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집단 자살극이나 벌이는 “소수의 광신도”면 “사회의 다양성” 차원에서 내버려 둘 수 있을지 몰라도 현재 미국 사회 전반을 극단주의로 심각하게 오염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티파티 등의 극단주의 세력이 미국 정치를 뒤흔드는 꼴을 보면 이는 단순한 기우가 아니다.

정치를 비즈니스로 만든 우파의 탄생 : 왜 보수가 남는 장사인가?

위에 소개한 책과 함께 읽으면 미국 사회의 극우 세력의 실체가 좀 더 명확히 다듬어진다. 원제는 The Wrecking Crew로 ‘자신이 탄 배를 스스로 파괴시키는 선원들’을 일컫는 표현인데, 저자가 고발하고 있는 우파들의 행태를 보면 이 표현이 그렇게 와 닿을 수가 없다. 즉, 정치권에 진입한 우파들이 스스로를 반정부 세력으로 자처하며 정부의 긍정적 기능을 약화시키고 파괴시키는데 주력한 결과, 현재의 미국사회는 비효율적이고 사익을 위해 봉사하는 정부조직으로 변질됐다는 것이 작가의 생각이다.

박정희의 맨얼굴 : 8인의 학자 박정희 경제 신화 화장을 지우다

“독재는 했어도 경제는 살렸다”는 주장이 당연시되는, 또는 더 노골적인 주장도 서슴지 않는 시대가 되어버린 요즘 이러한 시도는 분명 유의미하다. 민주당 의원을 지낸 경제학자 유종일 씨가 주축이 되어 이정우 씨 등 진보적인 연구진이 박정희 경제신화의 허상을 고발하고 있다. 충분히 좋은 내용이 담겨 있으나 다만 기획의 제약조건 때문인지 좀 더 입체적인 모습을 조명하지 못하는 미흡함이 아쉽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러한 시도들을 아예 기획 시리즈로 해서 내면 어떨까 싶다. 레이디 가카가 분노하시겠지만.

6인의 용의자

비카스 스와루프는 ‘엄친아(저씨)’다. 인도의 법률가의 집안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역사, 심리학, 철학을 공부하고 외무부의 외교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여기까지만 해도 양호한 약력인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자 영화로도 큰 인기를 얻은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작가이기도 하다. 외교관으로 근무하는 틈틈이 두 달 만에 썼다고 알려져 더 사람 기를 죽이는 아저씨다.

‘6인의 용의자’는 비카스 스와루프의 신작이다. 미스터리적 기법을 차용했던 전작에서 나아가 이 작품은 본격적인 미스터리 스릴러다. 소설은 인도 우타르프라데시 주(州)의 내무장관이자 라이 그룹의 소유주인 자간나트 라이의 개망나니 아들 비키 라이가 파티를 연 날 살해당하고, 그 파티에서 총을 가지고 있었던 여섯 명의 용의자에 관한 범행동기와 그 추리과정을 내용을 담고 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인도 작가가 인도를 배경으로 쓴 스릴러라는 점이다. 팝송처럼 스릴러도 영미권이 큰 축을 이루고 프랑스나 일본, 기타 서구권이 나머지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면 인도는 분명히 이 업계에서 ‘듣보잡’일 뿐이다.(maybe 한국 too?) 비카스는 그런데 이 한계를 서구적인 스토리텔링과 인도라는 배경이 지닌 오리엔탈적 판타지가 버무려진 전작 ‘슬럼독’을 통해서 어느 정도 뛰어넘었다.

그리고 ‘6인의 용의자’는 그 특권을 이용하여 전작의 미장센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인도산 스릴러를 시도하여 제1세계에 도전하였다. 자의적인 개념정의로 영국이 ‘응접실 스릴러’, 미국이 ‘테크노 스릴러’, 일본이 ‘한(恨)을 소재로 하는 스릴러’ 정도의 이미지를 구축하였다면, 인도의 비카스는 이 작품을 통해 ‘인도의 정치사회적 복합성을 소재로 하는 스릴러’ 정도의 틀을 구축하려 하지 않는가 하는 짐작을 해본다.

그 다음 이 작품의 특징이라면 소설의 복합적인 시점(視點)이다. 서술에 있어 이제 복합적인 시점은 그리 신선할 것도 없지만 추리소설에 있어서만은 상당히 공을 들여 써야하는 장치다. 자칫하면 드러내지 않아야 할 사건해결의 실마리가 (독자에게) 새어나갈 수 있고, 또는 (독자에게) 어느 정도는 인지를 시켜줘야 할 실마리를 감추어버리는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소설은 여섯 명의 용의자에 관한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과정에서 각각의 에피소드를 따로 떼어 내어 1인칭과 3인칭의 관점으로 서술하고 있다.(비슷한 방식으로는 보리스 아쿠닌의 ‘리바이어던 살인’이 떠오른다) 관건은 이 방식이 독자의 몰입에 도움이 되었는지의 여부일 텐데 일단 개인적으로는 그리 나쁘지 않은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일종의 입체파 미술작품적인 쾌감을 제공하기도 하므로…….

요컨대 인도의 다양한 계급, 정치적 부패, 종교적 갈등 등의 혼란상은 스릴러의 소재로 써먹기에 양호한 토양을 제공(?!)하고 있고, 비카스는 외교관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복합시점은 그 다양한 인도의 얼굴을 표현하는 효과적인 스타일로 자리 잡고 있다. 하고 싶은 말이 많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수렴하고 싶을 때 쓸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결정적으로 역시 미스터리의 미덕은 ‘재미있냐’인데 재미는 있다. 학점을 주자면 B+정도다. 하찮은 내가 건방지게 A를 주지 않는 이유는 ‘슬럼독’을 수작으로 평가하지 않는 이유와 유사하다. 그는 재미있는 이야기꾼일지 몰라도 미묘한 예술적 쾌감에 한방을 먹이는 훅은 없다.(한 예로 아가사 크리스티의 ‘쥐덫’은 여러 허술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그 훅이 있다) 이 작품 역시 다 읽고 나서 둔중한 여운을 느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여하튼 조만간 영화화될 가능성이 큰 작품이다. 🙂

가족이야기

예전에 올린 포스팅 재탕입니다. 오리지널은 1998년, 그러니까 11년 전에 썼던 글이로군요. 장르는 ‘어설픈 리얼리즘 하드코어’ 쯤 될까요. 제목은 ‘가족이야기’입니다. 심심할 때 읽으세요. 🙂 

<최성호>

교도소문을 빠져나왔다. 당장 공기가 달라지는 것만 같다. 옅게 깔린 구름은 교도소 안에서와는 또다른 감흥을 안겨주고 있었다. 고개를 빼꼼이 내밀고 있는 사람들 사이로 두분이 보였다. 나를 발견한 어머니는 금새 눈이 붉어지면서 아버지를 채근해 내 쪽으로 다가오셨다. 그리고는 말없이 등을 쓰다듬어 주셨다. 아버지는 코트에 두 손을 넣은 채 말없이 서계셨다.

돌아오는 차안에서도 아버지는 말없이 운전만 하셨고 어머니는 연신 ‘교도소 생활이 힘들지는 않았느냐’, ‘이제 네가 집에 왔으니 모든 일이 잘 될 거야’ 등의 위로를 해대셨다. 차안에서도 내내 멍하던 나의 의식은 동네 골목에 접어들어서야 비로소 현실감이 느껴졌다.

3년간의 짧지 않은 감옥생활, 그 세월동안 나의 의식은 정지해 있었다. 물론 감옥 안에서 나름대로 책도 읽고 주요시기마다 정치투쟁도 벌여 동료들간의 연대의식도 고취하는 등의 활동을 계속하였지만 그건 어찌 보면 나의 대외적 모습이었다. 나의 육신은 갇혀 있는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었고 그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한 최선의 방책은 의식의 정지였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참을 수 없는 폐쇄공포로 말미암아 나는 정신병자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대문을 열어준 것은 성길이었다. 인터폰으로도 열 수 있었을 텐데 궂이 마당까지 나와 문을 열고는 나의 눈을 어색한 미소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애써 반갑게 웃으며 악수를 청했고 성길이는 쭈뼛거리며 손을 잡았다. 어머니가 추운데 어서 방으로 들어가자며 나의 등을 밀었다.

실로 오랜만에 3평짜리 안방에 네 가족이 모두 모여 앉았다. 어머니는 깍아온 과일을 이쑤시개로 찍어 나에게 권하셨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과일을 받아들고 있었다. 아버지는 팔을 꼰채로 말없이 앉아 계셨고 성길이는 애써 외면하며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색한 침묵을 깬 것은 아버지셨다.

“이제 가족이 모두 같이 모이게 됐으니 참 좋구나. 음… 그리고… 성호없는 동안에… 너에겐 애써 말할 필요가 없다 싶어서 미뤄둔 것이지만… 애비가 이번에 직장을 그만두었단다.”

‘아… 소위 말하는 구조조정의 여파가 우리 집에도…’

“에… 나는 명예롭지 않게 회사에 남는 것보다도 명예롭게 그만 두는 편이 낫다 싶어서 니 애미와 상의해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다.”

옆에 있던 어머니는 작게 한숨을 쉬셨다. 어머니와 그런 문제를 상의할 아버지가 아니시다.

“그리고 난 아직 한창 일할 나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얼마간 있는 돈으로 조만간 이런 저런 일을 해볼 계획이다. 내가 너희 둘에게 말하고 싶은 건 모쪼록 이런 집안 사정을 알고 국가도 좋고 민족도 좋지만 이제 집안에 대해서도 나름대로의 생각을 해주길 바라는 것뿐이다.”

며칠을 멍하니 집에만 있었다. 배달되는 조간신문을 며칠째 광고까지 빼놓지 않고 꼼꼼히 읽었다. 곳곳에서 걸려오는 축하전화에 반갑게 웃기도 했지만 밖으로 나오라는 말에는 애써 사양했다. 나 자신이 아직 갈팡질팡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무미건조한 무채색이던 세상이 점차 유채색으로 바뀌어 갔다. 마당에 나가 청소도 하고 어머니가 외출하셨을 때는 혼자서 라면도 끓여 먹었다. 그러면서 점점 내 마음을 차지해가는 한가지 생각은 가족을 내가 챙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4학년 1학기쯤 영어생활을 시작한 나의 인생, 졸업은 하지 않았지만 1학기만 더 다니면 졸업을 할 것이고 어떡하든 직장을 잡아서 집안을 꾸려 나가야 하는 것이다.

부시럭거리는 소리에 선잠을 깻다. 언뜻 창밖을 보니 아직 어스름한 새벽이었다. 어둠에 익숙해질 즈음 방안을 둘러보니 성길이가 옷을 챙겨 입고 있었다.

“어디 나가니?”

성길이는 내가 아직 자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당황하는 눈치였다.

“응? 응. 미안해 깨워서. 운동 좀 하러나갈려고…”

“응… 같이 갈까?”

“아냐. 형 피곤한데. 피곤한데 더 자.”

성길이가 만류했지만 성길이의 그런 모습을 보니 최근 며칠간 내가 나태해졌다는 생각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아니야. 같이 가자. 뒷산에 갈려고 그러는거지?”

“아… 응. 갈거면 어서 옷입어.”

성길은 할 수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성길이가 아직 서먹한 모양이다. 나는 서랍에서 체육복을 꺼내 입었다. 시계를 보니 6시 20분이었다. 아직 해가 짧은 탓에 이른 아침에도 밖이 어두운 것이었다. 부엌에선 어머니가 아침준비를 하고 계셨다. 운동을 하고 오겠다는 나의 말에 어머니는 말없이 웃으셨다. 밖으로 나오니 아직도 차가운 겨울바람이 목덜미를 서늘하게 감싸고 돌았다.

산에 오르는 동안 우리 둘은 말없이 담배만 피워댔다. 사실 형제라고는 하지만 그리 공통점이 많은 형제는 아니다. 어렸을 적부터 모범생 소리를 들어가며 무난한 학창생활을 보내다 대학에서 학생운동권이 되어버린 나, 중학교 때부터 불량배들과 어울려 다니다 소년원을 갔다 오고 급기야 고교졸업후 강도 짓으로 교도소까지 갔다온 동생….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마지막 종착지는 같았다. 숨막힐 듯한 교도소 생활. 동생은 나보다 한달 먼저 들어가서 한달 먼저 출소했다. 나는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어 피식 웃었다.

뒷산 공원은 널찍하게 터를 닦아 놓고 이런 저런 체육시설을 갖추어놓고 있었다. 배드민턴장에서는 아주머니들이 배드민턴을 치고 있었고 평행봉에서는 중년의 아저씨가 섣부른 힘자랑을 하고 있었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나는 딱히 무슨 운동을 하려고 여기 왔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별달리 할게 없었던 것이다. 동생과 둘이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에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성길이가 어디로 가고 없었다. ‘어디 갔지? 화장실 갔나?’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할 수 없이 나는 벤취에 앉아 담배를 한 대 물어 피웠다. 운동을 하러 나온다는 핑계로 담배만 더 피우게 된 꼴이었다.

담배를 두 대 피우고는 어슬렁거리며 산책로로 천천히 푸드웤을 해보았다. 한 300여 미터를 뛰고는 금방 숨이 차서 멈춰 서서는 심호흡을 쉬었다. 그리고 산아래 펼쳐진 동네경치를 바라보았다. 올망졸망하게 모여 사는 삶들, 고단하고 힘든 삶임에도 무엇 때문에 그리도 삶에 연연하는지….

그때 저기서 누군가가 급히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상당히 곡선이 진 산책로라 발소리만 들릴뿐 주인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발소리의 주인공이 모습을 드러냈다. 성길이었다. 무엇에 쫓기는 듯 급히 뛰어오던 성길이가 나를 보자 놀라서 순간적으로 멈춰 섰다. 잠시 무언가 망설이던 성길이는 나에게 다가오더니 “형 미안하지만 이것 좀 맡아 줘. 그리고 나 모른 척 해.”하고는 작은 상자를 내 체육복 앞에 달린 제법 커다란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들어가기는 했지만 제법 볼록하게 모양이 드러났다. 성길이는 그런 모습을 잠시 바라보더니 다시 저쪽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의 상황인지라 나는 성길이에게 아무런 말도 못한 채 멍하니 뛰어가는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10초뒤에 점퍼차림의 – 새벽 산에 오를 차림으로 어울리지 않는 – 한 사나이가 급히 뛰어오더니 나를 스쳐 산책로 아래 성길이가 도망 – 이 사람을 피해 도망가는 것이었나? – 갔던 쪽으로 급히 뛰어내려갔다.

이른 아침부터 머리가 혼란해졌다. 성길이의 그동안의 행동으로 보아 무언가 잘못된 일을 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나에게 맡긴 이 물건도 좋은 물건을 아닐 것이다. 무엇인지 확인하고 싶었으나 왠지 이런 곳에서 꺼내보기가 두려워졌다. 서둘러 산 아래로 내려왔다.

집으로 가는 길에는 상가밀집지역이 있었다. 이른 아침이라 문을 연 곳은 해장국집 정도였다. 심란한 마음으로 길을 걷다가 문득 똥이 마려웠다. 아침부터 연신 담배를 피운 탓인지 갑작스럽게 배가 살살 아파왔다. 열려있는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 급히 찾아 헤맸다. 큰 길에서 악간 안쪽으로 들어간 해강빌딩이라는 곳에 보니 1층에 화장실 표시가 있었다. 다행히 문이 잠겨 있지 않았다. 화장지도 있었다. 나는 문을 걸어 잠그고 아랫도리를 벗고는 양변기에 앉았다. 똥이 한 무더기 쏟아져 나왔다.

급한 불을 끄고 나니 또다시 체육복 상의 안에 들어있는 상자 생각이 났다. 여기라면 괜찮겠지 하는 생각에 상자를 꺼내들었다. 제법 묵직한 무언가가 들어있었다. 상자를 여니 신문지로 채워져 있는 안쪽에 무언가가 있었다. 신문지를 조심스럽게 끄집어 내고 안쪽을 살펴보았다. 권총이었다! 갑자기 다리가 떨리고 가슴이 뛰었다. ‘성길이 이 녀석이 도대체!’ 도대체 권총으로 무얼 하려고 그랬단 말인가? 권총을 거머쥔 손에는 어느새 땀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가까스로 다시 모인 가족이 이 권총 한 자루 때문에 또다시 산산조각이 날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때였다.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또각 또각 구두소리를 내면서 내가 앉아 있는 화장실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마에선 식은 땀이 흘렀고 나는 급히 권총을 신문지에 다시 싸서 상자속에 집어넣었다. 타일 바닥을 울리는 구두소리는 문 앞에 멈추더니 천천히 문을 똑똑 두드렸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문을 똑똑 두드렸다. 핏줄이 끊어질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

‘아까 성길이를 쫓아가던 그 사나이…’

나의 응답에도 불구하고 문밖에 있는 구두소리는 그 자리에 서있는 듯 했다. 조그마한 화장실 안에 상자를 숨길 곳이 없나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화장실 안에는 휴지통밖에 없었다. 어차피 그 곳에 숨겨봤자 1분이면 찾아낼 것이다. 나의 긴장감과는 상관없이 또다시 똥 한무더기가 창자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 소리마저 나의 가슴을 울렸다. 구두소리는 여전히 밖에 서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또다시 구두소리가 문을 두드렸다. ‘똑 똑 똑’ 세 번. 이제는 세 번을 두드렸다. 나는 잠시 시차를 두고 다시 문을 세 번 두드렸다. ‘똑 똑 똑’ 그 녀석에게 들키지 않도록 상자를 체육복 안쪽에 꼭 품어 안고 있었다. 또다시 의식이 정지되는 교도소 안에는 들어가고 싶지 않다. 세월이 멈춰버리는 그 곳으로… 놀고먹어도 바깥 세상의 공기를 마시며 놀고 싶다. 또다시 똥 한 무더기…

구두소리는 무언가 시간을 가지려는 듯 바깥으로 예의 명징한 구두소리를 내며 나갔다. 나는 서둘러 화장지를 밑을 닦아냈다. ‘이틈에 도망가자.’ 밑을 다 닦아내고 생각해보니 그것도 헛일이었다. 그 녀석은 건물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아니면 화장실 앞에서라도… 이곳에 권총을 숨겨놓고 나가봤자 결국 그녀석이 나를 끌고 들어와서는 권총을 찾아낼 것이다. 변기를 부숴서라도 권총을 그 속에 쳐넣고 싶었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니 하얀 타일이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최영창>

성호가 출소하는 날이다. 퇴직 이후 나태해진 나는 여전히 잠자리를 뭉개고 있었다. 아내가 안방에 들어오더니 어서 나가자고 한다. 혼자 다녀오라고 했다. 그녀는 어떻게 아들이 출소하는데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냐고 항변했다. 그러나 성길이가 나올 때는 그렇지 않았다. 성길이는 한달 전에 출소했지만 나나 내 아내나 아무도 마중을 나가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도 성길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할 수 없이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집밖으로 나섰다. 성길이가 방에서 나와 아내에게 ‘나도 같이 갈까요?’라고 물었다. 아내는 ‘거길 뭐하러 또 가?’하며 거절했다. 성길이는 실망감인지 안도감인지 모를 묘한 표정을 지으면서 우리를 배웅했다.

차를 몰고 가면서 이런 저런 잡생각이 들었다. 퇴출당한 가장에 감옥 갔다온 두 아들…. 평범한 중산층 가정인 것 같던 나의 가정이 이토록 부끄러운 꼬리표를 달 줄이야… 두 아들을 생각해보았다. 모범생과 문제아라는 양극단의 길을 걷던 두 녀석의 종착역은 감옥….

사실 나는 모범생이었던 성호보다는 문제아였던 성길이 녀석이 더 눈에 밟힌다. 성호는 차가운 머리를 가지고 있는 녀석이고 성길이는 뜨거운 가슴을 지니고 있는 녀석이다. 둘은 서로가 가진 장점을 가지진 못했다. 여하튼 성길이는 그러한 점에서 나를 닮았다. 나역시 머리는 그렇게 뛰어나지 못하지만 다혈질적인 성격과 뚝심으로 건설회사의 중역자리까지 꿰차고 앉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그놈의 뚝심이 약삭빠른 잔머리를 당해내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성길이 녀석에게 살갑게 대하지를 못한다. 그 녀석 역시 나와 같은 꼴이 될까 두려워서….

교도소문이 열리며 성호가 초췌한 모습으로 걸어나왔다. 졸업을 한 학기 앞에 두고 저지른 하찮은 시위 때문에 3년의 시간을 저당 잡힌 불쌍한 인생이다. 아내는 급히 아들 녀석에게 쫓아가 등을 어루만져 준다. 정말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저런 애정을 성길이에게 한번이라도 내비쳤더라면… 어찌 보면 그건 비단 아내만의 잘못도 아닐 것이다. 누굴 탓할 일도 아니다.

집에 돌아온 아들 녀석들을 모아놓고 퇴직 소식을 알리는 나의 마음은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그 동안 나름대로 지켜오던 가장으로서의 권위가 한꺼번에 무너져버리는 순간이었다. 내 나이 아직 쉰셋 이제 한창 일할 맛을 익혀 가는 시기인데 갑자기 불어닥친 경제한파가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이다. 나갈 녀석이 없으면 차라리 내가 나가겠다고 호기롭게 외치던 그 순간…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난 슬며시 화장실로 피해버리고 싶다.

성호가 집에 돌아온 며칠간 나는 여전히 싸돌아다니는 성길이와는 달리 집에만 있는 성호와 눈을 마주치기 싫어서 부지런히 밖으로 돌아다녔다. 핑계는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알아보러 다닌다는 것이었지만 막상 나와보면 막막했다. 어찌 보면 직장이라는 온상속에서만 자라왔던 나… 세상에 내팽겨지고 보니 난 그야말로 걸음마를 시작하려는 아기에 불과했다.

어느 날 새벽 선잠이 깨어서 뒤척이고 있는데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성호와 성길이가 아침운동을 하러 나간다는 것이었다. 눈을 감은 채 가만히 미소지었다. 언제나 물과 기름처럼 부유하는 두 녀석이 같이 운동을 나간다니 슬며시 흐뭇해졌다. 몸을 일으켜 담배를 한 대 물어 피웠다. 긴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결국 가장으로서의 할 도리를 할 때 가족의 평화가 지켜진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성길이에게도 좀 더 살갑게 대해주리라.’ 약간은 낯간지러운 다짐을 해보며 일어나 옷을 챙겨 입었다. 부지런한 새가 벌레를 잡는다고 새벽공기라도 마시며 돌아다니다 사업하는 친구들을 만나볼 요량이었다.

신작로로 접어들 무렵 갑자기 배가 살살 아파 왔다. ‘아차 집에서 변을 보고 나왔어야 했는데..’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어디 열려 있는 화장실이라도 있는지 하는 생각에 어색한 걸음으로 부지런히 빌딩사이를 헤맸다. 마침 해강빌딩이라는 곳 1층에 화장실 표시가 보였다. 다행히도 문이 열려 있었다. 그러나 들어가 안쪽 문을 두드려보니 벌써 누군가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었다.

아픈 배를 달래보려고 화장실 안을 걸어다녔다. 1분여가 지났지만 아직 안쪽에 있는 사람이 나올 기색을 하지 않았다. 다시 한번 문을 두드려 보았다. 또다시 아직 해결이 안됐다는 응답이 들려왔다. ‘할 수 없지.’ 서둘러 문을 나서 다른 화장실을 찾아 헤맸다.

<최성길>

오늘은 형이 출소하는 날이다. 방에 누워 팔베개를 베고 있자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엄마도 엥간히 속썩겠네. 자식 둘이 모두 별을 차다니….’

밖에서 인기척이 난다. 형을 마중 나가는 모양이다. 내가 출소할 때에는 아무도 마중 나오지 않았다. 난 아무렇지도 않은 듯 터벅터벅 집으로 걸어왔다. 집으로 들어서서도 두분 중 누구 하나 따뜻한 말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을 살얼음처럼 지냈다. ‘살얼음 가족’.

그게 싫어서 바깥으로 부지런히 싸돌아 다녔다. 그렇지만 전에 어울리던 녀석들은 만나고 싶지 않았다. 하루종일 만화방에 가서 정말 신물나도록 만화책만 보았다. 나중엔 술이 사람을 먹는다고 만화책이 날 보는 것만 같았다. 밖으로 나와도 만화속 인물들이 내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는 듯 했다.

그러기를 이십일 여… 아버지에게서 수상한 점을 발견했다. 회사에서 잘렸다는 것이다. 왠지 집안이 서먹한 분위기 더니 그것 때문이었나 보다. 돈버는 재주가 없었는지 회사중역까지 했다는 양반이 24평짜리 단독주택이 재산의 전부다. 아직 살아갈 날이 창창한 네 사람이 뭘 먹고산단 말인가? 왜 빌어먹을 IMF가 터져서 이렇게 못사는 사람만 고통받아야 하나? 하는 알량한 생각 때문에 만화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밖에서 초인종이 울려 나는 마당까지 나가 문을 따줬다. 형이 문 앞에 서있었다. 어색한 웃음을 짓더니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손을 들어 악수를 했다. 철들고는 제대로 대화도 나누지 않은 형… 그렇지만 나는 형을 좋아한다. 그리고 자랑스러워한다. 담배 피며 애들 푼돈을 뺏던 중학교 시절 나는 전교1등을 하는 형의 존재를 친구들에게 부각시키며 나도 맘만 먹으면 1등은 일도 아니라는 허풍을 떨었다.

형이 명문대에 합격하던 그날 나는 친구들을 불러내어 실컷 술을 먹였다. 마치 내가 합격이라도 한 듯이… 그러나 형이 감빵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어머니로부터 들은 그날 난 감빵으로 돌아와 소리 없이 울었다.

그 뒤로 아버지가 들어오셨다. 한때는 공포의 대상이었던 아버지… 나의 철없는 행동에 매를 드셨지만 난 절대 그분이 감정을 가지고 매질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분은 과묵한 성격 때문에 내게 따뜻하게 대해주지 못할 따름인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 ‘왜 마중을 나오지 않았느냐’는 나의 볼멘 소리에 말없이 눈가에 물기를 닦아내며 밥을 차려주셨던 어머니…

이 가족을 내가 살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또다시 뿔뿔이 흩어지고 말 것이다. 형이 돌아온 며칠동안 이런 저런 궁리를 해보았다. 결국 배워먹은 짓이 그 짓이라고 일확천금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이 빌어먹을 세상에 무슨 수로 돈을 모은단 말인가? 똥같은 돈이 가득 들어있는 은행을 털 수밖에 없었다.

전에 안면이 있던 녀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총을 구해달라고 부탁했다. 녀석에게 이틀 후에 연락이 왔다. 동네 뒷산으로 새벽에 나오라는 것이었다. 다음날 새벽 형을 깨우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옷을 챙겨 입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형이 나에게 말을 건넸다.

“어디 나가니?”

‘빌어먹을…’

“응? 응. 미안해 깨워서. 운동 좀 하러나갈려고…”

“응… 같이 갈까?”

“아냐. 형 피곤한데. 피곤한데 더 자.”

나는 만류했지만 형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야. 같이 가자. 뒷산에 갈려고 그러는거지?”

“아… 응. 갈거면 어서 옷입어.”

산으로 올라오는 도중 우린 아무 말 없이 담배만 피워댔다. 철없이 따라 온 형이 야속했다. 뒷산 공터에 다다르니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형 나 화장실 좀”하고 말하려는데 형은 내 말을 못들은 눈치였다. 그래서 몰래 약속장소로 향했다. 공터 위 비탈진 곳에 서있는 비석 옆이 약속장소였다.

그 녀석은 나를 보더니 피식 웃으면서 상자를 건넸다. 우린 아무 말 없이 서있었다. 상자안을 열어 신문뭉치를 헤쳐보니 검은 총대가리가 보였다. 다음 순간 수상한 기척이 느껴져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무 뒤로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이 자식이 짭새들한테 뒤나 밟히고 다녀?”

낮게 그 녀석에게 소리치자 그 녀석 역시 적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반대방향으로 튀었다. 얼른 공터로 뛰어내려왔다. 점퍼 차림의 짭새 한 마리가 내 뒤를 쫓고 있었다. 산책로 쪽으로 급히 뛰었다. 저쪽에 사람이 한명 서있었다. 가만 보니 형이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았다.

‘형까지 이일에 끼어들게 해서는 안되는데.’

‘그렇지만 내가 계속 이걸 가지고 있으면?’

나는 형에게로 급히 다가갔다.

“형 미안하지만 이것 좀 맡아 줘. 그리고 나 모른 척 해.”

형은 어안이 벙벙한지 아무 말도 않은 채 엉거주춤 서있었다. 형의 손에 상자를 쥐어주려다 형의 체육복 상의 주머니가 제법 커보여 그곳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는 형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고 다시 산 아래로 뛰어갔다.

****

1998년 12월 14일 오전 7시 15분 최성호는 아직 해강빌딩의 화장실에서 벌벌 떨고 있었고 최영창은 바지 안에 똥을 지리고 말았고 최성길은 뒤쫓아오던 형사의 배를 가지고 있던 재크나이프로 그었다

Who wants flowers when you’re dead?

‘호밀밭의 파수꾼’은 살아오면서 한 대여섯 번 읽은 것 같다. 내 장점이자 단점이 하나 있는데 상상을 초월하는 건망증이다. 대여섯 번을 읽었음에도 이번에 다시 읽으니 – 거의 몇 년 만이긴 하지만 – 에피소드들이 처음 읽은 것처럼 신선하다. 빌어먹을. 앞서 말했듯이 하나의 “장점”인 것이 책값이 덜 든다는 점일 것이다. 읽은 것 또 읽으면 되니까.

또 기억나지 않는 것이 이 소설을 읽었던 그 어린 시절의 느낌이다. 공감을 했었는지 반감을 가졌었는지… 당최 기억이… 어쨌든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여태 읽고 있는 것이겠지. 가장 좋아했던 대목은 Holden이 그의 여동생 Phoebe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었던 것만은 기억한다.

각설하고 이번의 느낌은 공감이니 뭐니 떠나 골때리게 웃긴다는 것이다. 정말이지 Holden은 – 정확하게는 Salinger겠지만 – 냉소유머의 달인이다.(J준씨는 밀렸음) 오늘 출근길에 읽은 재밌는 냉소 유머 한 구절 소개한다.  

정말이지 내가 죽었을 때 누군가가 센스가 있어서 나를 강이나 다른 곳에 내다버렸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일요일 몰려와 내 배 위에 꽃 한 다발과 온갖 잡동사니를 놓는 그런 빌어먹을 공동묘지에 처박아두는 대신에 말이다. 누가 죽었을 때 꽃을 바라겠는가? 노바디.
I hope to hell when I do die somebody has sense enough to just dump me in the river or something. Anything except sticking me in a goddam cemetery. People coming and putting a bunch of flowers on your stomach on Sunday, and all that crap. Who wants flowers when you’re dead? Nobody.

사족 : 많은 소설이나 영화가 “제2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꿈꾸었을 텐데 과문해서 어떤 작품이 “제2”로 인정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인 감상목록의 범위 안에서 생각해보면 Will Smith가 호연을 펼쳤던 Six Degrees of Separation가 아닐까 싶다.

인간의 증명(人間の証明)

‘인간의 증명(人間の証明)’을 다시 읽었다. 내가 어릴 적 좋아했던 일본의 추리작가 모리무라세이치(森村誠一)가 1975년 ‘야성시대(野性時代)’에 연재한 것을 1976년 단행본으로 발간한 작품으로 500만부가 팔려 가히 그의 대표작이라 할 만한 작품이다. 한번 읽은 적이 있는데도 줄거리가 전혀 생각나지 않아 마치 새로 읽는 것과 같은 느낌으로 읽어버렸다. 이럴 때는 건망증 증세가 심한 것이 도움이 된다.

여하튼 …

그의 작품은 사실 서구권 작가들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드라마틱한 반전(反轉)은 별로 없다. 그의 작품이 맘에 드는 점은 그러한 반전보다도 등장인물들을 마치 실험 상자에 넣고 요리조리 흔들어 그들의 반응을 즐기는 듯한 그의 상황설정과 사건전개가 맘에 들기 때문이다. 다분히 새디스틱한 감정이다. -_-; 이러한 인간에 대한 실험정신은 무릇 다른 추리작가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해볼 때 무리무라세이치가 더욱 맛깔스럽게 해낸다.

이 작품은 전쟁 통에 엄마와 헤어져 뉴욕의 할렘가에 내팽개쳐진 동양인과 흑인의 혼혈인 조니 헤이우드가 일본에 남은 어머니를 찾아 나섰다가 한 빌딩 엘리베이터에서 살해당하면서 시작한다. 인간에 대한 증오가 가득한 형사 무네스에가 이 사건을 맡아 결국은 사건을 해결해낸다는 것이 큰 줄거리다.

앞서 말했듯이 이 작품에서 큰 반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한 중반 정도 읽다보면 이미 유력한 용의자도 밝혀진다. 그 밝혀지는 과정도 약간은 억지스럽다 싶을 정도다. 그럼에도 끝까지 소설을 읽어 내려가게끔 만드는 매력은 앞서 말했듯이 무리무라세이치의 집요한 인간성 탐구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잘못된 일인 줄 알면서도 자신의 아집과 이기심 때문에 극한으로 몰고 가는 인간 군상들의 몸부림이 매우 선명하게 느껴진다.

다시 이 소설을 읽으면서 검색해보니 우리나라에선 이 소설을 1991년도에 출간된 문고판으로밖에 구할 길이 없다고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도 그 책이다. 한편 이 소설은 일본에서 1977년부터 몇 차례 극화되었었다고 하고 2004년에도 미니시리즈로 극화되었다. 2004년 판은 이미 구했고 – 어둠의 경로를 통해 ^^; – 느긋하게 감상할 생각을 하니 뿌듯하다.

대운하에 무너져 버린 내 허접한 창작욕

사실은 예전부터 SF소설을 하나 써볼까 하고 구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강 정한 스토리는 개인적으로 생각해 볼 때는 지극히 非SF스러운 스토리였다.

어떤 내용이냐 하면 때는 바야흐로 인류가 우주의 곳곳을 식민지로 점령하여 영토를 넓혀가는 우주개척시대다. 과학의 발전으로 우주선은 이전에 닿지 못하던 곳까지 도달할 수 있게 된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즉 우주선이 우주의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는 순간이동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문제는 이 순간이동이 잘못 하게 되면, 즉 옮겨지는 지점이 기체나 액체가 아닌 고체로 구성되어 있을 경우 우주선과 엉켜버려 대형 사고를 초래한다는 점. 이점을 극복하기 위해 우주 통합정부는 우주선의 출발과 도착을 유도할 수 있는 정거장을 설치하기로 한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는 워낙 돈이 많이 드는지라 실질적으로 돈줄을 장악하고 있는 초우주적 기업에게 위탁을 한다. 한편 각 행성들은 우주정거장의 유치가 행성경제의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기에 기업에 노골적으로 로비를 한다. 기업은 그러한 행성의 약점을 이용해서 투자금은 물론이거니와 노골적인 뒷돈까지 챙긴다. 이 와중에 뜻있는 사람들은 우주정거장이 생각만큼 성능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주정부의 담당과 기업이 이를 속이고 일을 무모하게 진행시키고 있음을 알게 된다.

뭐 대충 이렇게까지만 한 2년여를 머릿속에서 궁리하고 천성이 게을러서 꿍쳐놓고 있는 형편이다. 최근에야 조금씩 끼적거리고 있는데…. 생각해보니 이거 어디서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이거 이모 대통령 당선者가 추진한다는 대운하 삘이네…. –;;

해서 갑자기 김이 새버렸다. 어차피 이걸로 돈 벌어 먹겠다는 생각은 애당초 하지도 않았지만 까딱 잘못하다가는 ‘어설픈 현실비판 SF로군’이라는 싸늘한 조소만 가슴에 꽃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쓰나미로 밀려온다. 허무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