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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한복판에서 서점을 운영 중인 세 자매 이야기

뉴욕 맨해튼의 한 빌딩을 통째로 쓰고 있는 서점에 관한 짧은 뉴스인데,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은 것 같아 공유한다. 이 서점은 창업자의 세 딸이 각각의 영역을 맡아 운영 중이다. 어떻게 그 자리에서 그렇게 아직도 운영 중일 수 있느냐는 질문에 딸 한 명이 “우리가 이 빌딩을 소유하고 있는 덕분이고, 그렇지 않았다면 오래전에 사업을 접었어야 했을 것”이라고 대답한다. 부동산을 팔라는 제의가 얼마나 자주 오느냐는 질문에는 “1년에 백 번”이라고 대답한다. 무엇을 지키고 싶은 것이냐는 질문에는 “어려움에 놓여 있는 책”이라고 대답한다. 책을 지키기에는 너무나 교환가치가 높은 곳에서 어렵게(?) 서점을 운영하는 세 자매의 이야기다. 어떻게든 자영업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건물주여야 한다는 시사점과 그런데도 교환가치가 비즈니스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시장경제 하에서는 여유 있는 이들조차 자신들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를 지키기가 쉽지 않다는 역설을 말해주는 웃픈 에피소드다.

노동자가 파업 때 읽어야 할 책 12선

“CEO가 휴가 때 읽어야 할 책 10선” 고르시는 기자님들. 올여름엔 “노동자가 파업 때 읽어야 할 책 10선”도 함께 골라주세요. [출처]

뻘트윗 전문 트위터러 @so_picky 가 어제 아침, 생각도 없이 이렇게 트윗했다. 그러자 초진지 명랑만화가 @capcold 옹께서 다음과 같이 답하셨다.

진짜로 한번 골라봅시다. 첫타로, ‘정치의 발견'(박상훈) 추천. [출처]

이렇게 해서 어제 하루 트위터에서는 #10Books4Workers 라는 해쉬태그를 붙여가며 10권의 책을 선정하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정종인 선생께서는 이러한 작업에 “로동자 10서”라는 애칭을 붙여주셨다.

“10 Books for Architecture”라고 이른바 “건축 10서”라는 로마시대 고전이 있다. (물론 난 표지를 열어보기만 했다) #10Books4Workers 라는 해시태그를 계속보니 “로동자 10서”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는 개드립이.. [출처]

어쨌든 책 열두 권이 선정되었다. “노동자가 파업 때 읽어야 할” 이라는 제목때문인지 주로 파업이나 투쟁, 그리고 체포시의 해결절차 등과 관련한 책들을 추천해주셨다. 어느 분은 “일주일에 이틀만 일하고 농업으로 1억 원 버는 법”을 추천하셨는데, “파업하다 잘리면 먹고살아야 하니까”라는 아주 실용적인 추천사유를 적어주시기도 했다. 괄호는 추천인.

  1. 정치의 발견(capcold)
  2. 엥겔스 평전(so_picky)
  3. 무너지는 환상(babodool)
  4. 도시생활자의 정치 백서(dalwoo)
  5. 쫄지마 형사절차(anonymous_ol)
  6. 소금꽃나무(heenews)
  7.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hotgum_jo)
  8. 의자를 뒤로 빼지마(LoneStar_DHYi)
  9. 격정시대(likeseed)
  10. 자본주의역사 바로 알기(viciousfreak)
  11.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plabinu)
  12. 일주일에 이틀만 일하고 농업으로 1억 원 버는 법(Refugees2)

p.s. 이외에도 추천할만한 좋은 책을 알고 계신 분들은 댓글로 추천을 부탁합니다. 🙂

새벽에 눈이 떠져 뜬금없이 하고 있는 일

유저스토리북이라는 사이트에 가입해서 놀고 있습니다. 내가 읽고 있거나 읽은 책들을 관리해주고 같이 공유하는 SNS인데 활용여부에 따라서는 상당한 ‘지식의 거미줄’이 형성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 괜찮은 곳이네요. 다만 정리하기 귀찮아하는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사용할까 하는 생각도 들고

독서란 [ ]다

하느니삽님, 궁시렁님한테 넘겨받았습니다.

– 릴레이 규칙 –
1. 독서란 []다. 의 빈 칸을 채우고 보충 자료를 제공한다.
2. 앞선 릴레이 주자의 족보를 건다.
3. 족보를 이어갈 주자 두 명을 지정한다.
4. 6월 20일이 지나면 이 릴레이는 무효.
나머지 규칙은 이누이트님의릴레이의 오상참조.
규칙의 원래 모습 역시 이누이트님의릴레이 시조참조.

1. 독서란 [삶]이다.

이거 뭐 “내 인생은 책과 함께 한 인생이었어요.” 또는 “책읽는 게 제일 쉬웠어요.”라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고 저 질문을 바라보고 있자니 독서와 삶이 따로 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에 다른 대답을 생각할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읽기가 삶인 것은 쓰기가 삶이고 먹기가 삶이고 싸기가 삶인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닌가 싶다. 삶의 앞도 아니고 뒤도 아니고 겉도 아니고 속도 아니고 그냥 두서없이 여기저기 뭉쳐놓은 진흙덩이와 같은 뭐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때로는 그 읽기가 지겹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고 따분하기도 하고 흥분되기도 하는데 그 희로애락은 삶에서 느끼는 그것과 대체로 일치한다. 오감(五感)을 느끼는 행위 중에서도 읽는다는 것이 문자를 매개체로 하기에 좀더 고상한 그 무엇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생각해보면 그저 나의 날것의 삶처럼 거칠고 목적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뿐이다.

2. 앞선 릴레이 주자의 족보

1) 하느니삽 계열

Inuit님(독서란 자가교육이다) –buckshot님(독서는 월아이다) –고무풍선기린님(독서란 소통이다) –mahabanya님(독서란 변화다) –어찌할가님(독서란 습관이다) –김젼님(독서란 심심풀이 호두다) –엘군님(독서란 삶의 기반이다) –무님(독서란 지식이다) –okgosu님(독서란 지식섭식이다. ) 여기도 #개드립 –hyomini님(독서란 현실 도피다. ) –Raylene님(독서란 머리/마음용 화장품이다.) –하느니삽형님(독서란 운동이다)

2) 궁시렁 계열

이누이트님 –자가교육 맑은독백님 –거울 벅샷님 –월아 고무풍선기린님 –소통 마하반야님 –변화 어찌할가님 –습관 김젼님 –심심풀이 호두 엘군님 –삶의 기반 누님 –도서관 애용은 필수 궁시렁님 – 본능

3. 족보를 이어갈 주자

아직 지정이 안 되시는 것이 신기한 토양이님펄님에게 …

땡땡의 모험

이승환 동무가 요즘 직장을 구해서 마음의 여유가 생겼는지 야한 글은 안 올리고 뜬금없이 ‘좌빨 블로거가 추천하는 도서’라는 블로그의 격에 어울리지 않는 글을 올려놓으면서, 나를 좌빨 블로거라고 딱지를 붙인 후 책을 추천하라고 을러댄다. 이전에도 이미 한번 소위 양서(良書)를 추천한바 있는데 사실 별로 내키지는 않는다. 나 같은 것이 책을 읽어봐야 세상 책의 1조분의 1도 안 읽었을 텐데 불특정다수에게 “니네 이 책 알아?”라고 하는 것 같아 영 내키지 않는다. 하지만 뭐 이승환 동무가 오랜 방황 끝에 취직도 한 것 같고 이제 자본주의의 마름으로 충실히 살아간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그에 대한 작은 선물로 그의 부탁 – 강권 -을 들어주기로 했다.

Frame from Breaking Free.jpg
Frame from Breaking Free” by Scanned from a copy of the book.. Licensed under Wikipedia.

내가 추천하는 도서는 꿈과 모험이 가득한 만화 ‘땡땡의 모험(영어 제목 : The Adventures of Tintin, 불어 제목 : Les Aventures de Tintin)’이다. 실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만화를 꼽으라면 이 만화 이외에 다른 만화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나의 독서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만화다. 정확히 언제부터 이 만화를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뚜렷치 않다. 아마도 초등학교 시절 유행하던 이른바 소년잡지에 단편적으로 소개되던 에피소드에서부터 땡땡을 처음 만난 것으로 기억한다. 그 뒤 국내에 출간된 하드커버도 구입하고 외국 사이트에서 영어판도 구입하면서 조금씩 컬렉션을 늘려갔고 총 24개에 달하는 에피소드 중 거의 전부를 구비하게 되었다.

‘땡땡의 모험’은 Herge(에르제)로 알려진 벨기에 작가 Georges Remi(1907-1983)가 창조한 작품이다. 그는 보이스카웃 신문이나 카톨릭 신문 등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다가, 1929년 처음 카톨릭 신문  Le Petit Vingtieme 에 땡땡의 캐릭터로 만화를 연재하기 시작하였다. 이 당시 에피소드는 ‘땡땡과 소비에트’로 그 후 첫 단행본으로 출시된다. 이후 사실상의 마지막 작품이랄 수 있는 – 1986년의 ‘땡땡과 알파아트’는 미완성 – 1976년의 ‘땡땡과 피카로스’까지 총 23편의 에피소드를 창작하여 땡땡을 유럽 최고의 인기 캐릭터로 성장시켰다.

1. Tintin in the Land of the Soviets (1929-1930)
2. Tintin in the Congo (1930-1931)
3. Tintin in America (1931-1932)
4. Cigars of the Pharaoh (1932-1934)
5. The Blue Lotus (1934-1935)
6. The Broken Ear (1935-1937)
7. The Black Island (1937-1938)
8. King Ottokar’s Sceptre (1938-1939)
9. The Crab with the Golden Claws (1940-1941)
10. The Shooting Star (1941-1942)
11. The Secret of the Unicorn (1942-1943)
12. Red Rackham’s Treasure (1943-1944)
13. The Seven Crystal Balls (1943-1948)
14. Prisoners of the Sun (1946-1949)
15. Land of Black Gold (1948-1950)
16. Destination Moon (1950-1953)
17. Explorers on the Moon (1950-1954)
18. The Calculus Affair (1954-1956)
19. The Red Sea Sharks (1958)
20. Tintin in Tibet (1960)
21. The Castafiore Emerald (1963)
22. Flight 714 (1968)
23. Tintin and the Picaros (1976)
24. Tintin and Alph-Art (1986, 2004)

나는 무엇 때문에 땡땡에 매료되었나? 우선 땡땡 시리즈는 의례적으로 하는 말이 아닌 진짜배기로 독자들에게 ‘꿈과 희망의 모험’을 선사한다는 점이다. 20세기를 제대로 관통하고 있는 이 만화는 소년기자 땡땡과 그의 애견 밀루 Milou(영어 이름으로는 스노위 Snowy)를 등장시켜, 이미 동시대에 존재하고 있지만 아직은 자유로운 여행이 여의치 않은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다른 세계에서의 모험을 선사하였다. 이러한 모험만화의 패턴은 하나의 전범이 되어 이 후 수많은 작품에 영향을 미쳤다.1

이것이 땡땡이 지닌 매력의 모든 것이라면 굳이 땡땡을 ‘가장’ 좋아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 작품 말고도 ‘꿈과 희망’을 준 작품은 꽤 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또 하나의 엄청난 매력은 반세기 동안 불과 이십여 개의 에피소드만을 만들었던 에르제의 지독하리만치 집요한 장인정신이다. 처음에는 흑백으로 그려졌던 작품은 서서히 칼라로 바뀌었고 이전 흑백 작품들 역시 칼라로 재작업 하여 출간되었는데2 각 에피소드에서 그러한 작가의 그림체나 스타일이 발전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너무 매력적이다. 잘 그려진 우키요예를 연상시키는 색감과 선(線)의 풍요로운 조화, 풍경의 세밀함3은 장면 하나 하나를 감상할 수 있는4 재미를 안겨준다.5

여기까지는 사실 굳이 땡땡이 아니더라도 웬만한 아동만화의 걸작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는 – 예를 들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또 하나의 작품 ‘아스테릭스의 모험’ 같은 – 매력일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 선을 뛰어넘는 또 하나의 요소가 있다. 바로 작가 에르제의 사상적 발전이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로서 카톨릭 신문에서 일했던 유럽의 작가는 사실 사상적으로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없었다. 극우라고까지는 할 수 없더라고 그는 백인우월주의에 유럽우월주의적인 보수우익이었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조금씩 변해갔고 이것이 각각의 작품에 알게 모르게 반영되어 간다는 점이 이 에피소드의 엄청난 매력이다.6

그의 첫 작품 ‘땡땡과 소비에트’는 철저한 반공(反共)만화다. 땡땡의 눈에 – 에르제의 눈에 – 소련은 도적들이 지배하는 나라다. 그리고 땡땡은 이 도적들을 농락한다는 것이 작품의 줄거리다. 에르제는 후에 이러한 그의 맹목적인 반공주의를 반성한다. 그래서 앞서 언급하였듯이 이 작품을 흑백 버전으로 남겨두었다. 다음 작품 ‘콩고에서의 땡땡’도 사실 만만치 않았다. 콩고는 그 당시 벨기에의 식민지였다. 땡땡은 이 작품에서 제국주의적 사고를 하면서 동물들을 학살하는 등의 비상식적 – 그 당시로서는 당연한 – 행위를 저지르면서도 원주민들로부터 영웅대접을 받는다. 요컨대 땡땡은 전형적인 유럽 백인 소년들을 위한 모험만화였다. 이렇게 계속 갔으면 땡땡은 걸작 반열에 오를 수가 없었다.

세 번째 에피소드 ‘미국에 간 땡땡’에서는 다소 발전이 있었다. 유럽인이 보기에 미국의 ‘자본주의자’들은 소련의 ‘공산주의자’만큼은 아니지만 여하튼 역겨운 돈벌레였다. 에르제는 이 작품에서 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다룬다. 약간은 공평해졌다. 그러나 본격적인 사상전환은 ‘블루로터스’였다. 당초 이 작품은 일본인이 선한 세력, 중국인이 무지몽매한 미개인으로 다뤄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 즈음 친구가 된 한 중국인 유학생 창총젠을 만나면서 작품의 내용이, 그리고 에르제의 사고가 획기적으로 변하게 된다.

뛰어난 예술가이자 민족주의자였던 창총젠은 아시아의 현실을 에르제에게 알려주었고 에르제는 여태까지의 유럽중심주의 편견이 통째로 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는 ‘블루로터스’의 기획을 통째로 바꾸었고, 작품은 의로운 중국소년 ‘창’과 땡땡이 친구가 되어 함께 모험하게 되는 줄거리를 갖게 된다. 일본은 제국주의적 야욕을 지닌 나라였고 땡땡은 그 야욕을 분쇄한다. 이전의 ‘콩고에 간 땡땡’과 비교하면 상전벽해라 할만하다.7 이후 ‘오토카 왕의 봉’ 등에서는 파시즘을 경계하는 소재를 다루기도 하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모험만화도 계속 이어진다.

그의 사상적 변화의 최고봉은 1976년 발표된 ‘땡땡과 피카로스’다. 이 작품은 분명히 피델 카스트로와 체게바라가 성공시킨 쿠바 혁명으로부터 소재를 빌려왔다. 땡땡은 이 작품에서 우익독재에 고통 받고 있는 한 가상의 남미국가에서 혁명군을 도와 혁명을 승리로 이끈다. 이 과정에서 땡땡은 끊임없이 비폭력주의를 주장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소비에트에 가서 그들을 농락했던 1929년의 땡땡과는 근본이 다른 땡땡이었다. 이 작품은 에르제가 사상적으로 사회주의자라고 우길만한 – 그렇게 우길 친구도 없겠지만 – 증거는 아니지만, 적어도 틀린 것은 틀렸다고 옳은 것은 옳다고 인정할 줄 아는 용감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분명하게 증명하고 있다.

땡땡을 접하게 된 경로가 다양하고 접했던 에피소드가 앞뒤로 들쭉날쭉 인지라 그의 작품세계를 통시적으로 접하기 어려웠던 시절 그에 대한 거부감도 없잖아 있었으나 그의 작품 대부분을 감상하고 관련 영상이나 연구서를 훑어본 후 어느 샌가 그가 가지는, 또한 그가 살았던 20세기 유럽이 가졌던 무게감이 상당히 묵직하게 다가오게 되었다. 너무나 완벽주의적인 작가정신 때문에 고뇌했고, 사상적으로 혼란을 겪어야 했고, 파시즘 치하의 유럽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에르제는 – 그리고 땡땡은 – 만화 나부랭이라고 폄하할 수 없는 – 물론 다른 만화도 마찬가지다 – 문화유산이라 불릴만하다.

지루하게 잡설을 늘어놨는데 긴 말 필요 없다. 재미있으니 사보시라.

참고할만한 곳들
위키피디어 ‘땡땡의 모험’ 설명
위키피디어 ‘에르제’ 설명
tintinologist.org

p.s. 아 이승환 동무가 좌빨 블로거 세 명에게 이 짐을 넘기라고 지령을 내렸는데 사실 이런 토스는 행운의 편지같아 내키지가 않는다. 하지만 나만 행운의 편지를 쓰기는 억울하니 류동협, , 재준씨한테 숙제를 넘긴다. 순순히 응할 것 같지는 않다.

회화의 역사

얼마 전에 헌책방에서 구입한 책 한권을 최근 다 읽었다. ‘회화의 역사(원제 : The Story of Painting from Cave Painting to Modern Times)’이라는 책인데 미국인 잰슨(Janson) 부부가 쓴 책을 유홍준 씨가 번역한 책이었다. 1983년 초판이 발행되었고 내가 구입한 책은 1998년 발행된 13쇄였다. 그 정도까지 계속 발간한 것을 보니 꽤나 스테디셀러였던 모양이다. 책 내용이 서양미술사를 알기 쉽게 서술한 책이라 대학교 교양교재로 쓰이기 딱 좋았을 듯싶고 아마 그래서 그렇게 오랜 기간 팔리지 않았나 생각된다.

책을 읽은 후 감각없는 나조차도 미술을 보는 눈이 눈곱만큼 향상되었다. 서양화의 사조나 각 작가들의 특색을 구분하는데 그리 뛰어난 재주가 없었는데도 우연히 본 한 작품에서 나도 모르게 ‘음 루벤스 풍이로군’ 하고 읊조렸는데 놀랍게도 정말 루벤스의 작품이었던 것이다!(주1) 그래서 책을 쓴 잰슨 부부와 번역해준 유홍준 씨와 책을 낸 열화당 관계자 분들께 감사하는 맘을 가지게 되었다.

다만 아쉬움은 있다. 저자가 설명용으로 예시하고 있는 그림들이 앞머리의 몇 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흑백이었던 것이다. 해외 사이트에서 찾아본 원래 책이 하드커버에 칼라표지인 것으로 보아 아마도 – 아니 당연히 – 그림들이 칼라였을 것인데 번역본은 흑백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는 아마도 – 아니 필시 – 좋은 책을 소개하고 싶은 출판사의 열의와 칼라로 팔면 채산성이 맞지 않을 – 대학생들이 총천연색의 이 책을 사느니 술을 마셔버릴 테니 – 현실적 제약과의 타협점이었으리라.

이해는 가면서도 아쉬움은 여전하다. 물론 정 원색으로 보고 싶으면 일일이 해당 작품을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되겠지만 아무래도 책을 읽어나가면서 그 속에 인쇄된 그림을 보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결국 난 이 책을 반절만 즐긴 셈이 되니까 말이다. 비단 이 책만의 문제도 아니다. 서경식 씨가 직접 쓴 ‘나의 서양미술 순례’도 흑백이다. 더한 비극은 이탈리아 그래픽노블 작가 휴고 프라트의 걸작 ‘코르트 말테제’ 시리즈도 올 칼라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 흑백 인쇄본으로 소개되었다는 점이다. 옛날도 아닌 2002년에 출간되었음에도 말이다. 마치 고학하는 젊은이의 복사본 같은 느낌이다.

출판업자들의 고충도 이해할만 하지만 적어도 미술관련 책에서만큼은 소개하고 싶은 작품의 최대한 많은 부분을 소개하려는 고집이 있었으면 좋겠다.

(주1) 힌트를 주자면 그의 작품의 등장인물은 약간 과장되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포즈가 뒤틀려있다. 역동적이라 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