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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yle Council – Walls Come Tumbling Down

새벽에 온 비로 말끔하게 하늘도 개이고 멋진 하루를 보낼 신선한 공기가 폐로 밀려오는군요. 그 신선한 공기만큼이나 시원한 폴웰러의 멋진 목소리를 감상하려고 예전에 올렸던 글을 끌어올립니다. 자신의 사회주의 신념을 댄스음악에 실어 선동했던 재밌는 형님이죠.

The Style Council.jpg
The Style Council” by http://www.chic-a-boom.com/pics/stylecouncil.jpg, Copyright : Polydor, Ltd. (UK), 1988. Licensed under Wikipedia.

영국은 세계 최초로 산업혁명을 일으켰던 나라답게 자본주의의 발전과 계급투쟁의 역사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나라라고 할 수 있는 나라다. 또한 영미권을 중심으로 한 소위 파플러음악의 본산지 역할을 하기도 한 나라다. 70년대 말과 80년대 초 영국에서는 이른바 Punk Rock이라는 신진음악 조류가 등장하는데 Sex Pistols라는 노골적으로 반사회적인 성향을 드러낸 이름을 가진 밴드 등이 유행시킨 이 장르는 영국의 계급갈등을 문화적으로 해소하는데 일조를 한 장르였다.

초기 아나키스트적인 형태를 취하던 펑크락은 이후 The Clash, Gang of Four 등의 의식있는 좌파 성향의 밴드가 등장하면서 체계적으로 체제저항적인 모습을 취하기 시작했고 이후 오늘날까지 일종의 체제저항의 한 문화현상으로 자리잡아오고 있다. 여기에서 소개하는 The Style Council은 Paul Weller(그는 1987년 영국 대선에서 노동당의 승리를 위해 여러 뮤지션들이 조직한 Red Wedge라는 운동을 이끌기도 했다)라는 맑시스트 성향을 지닌 급진적인 한 젊은이가 이끌던 밴드로 그가 이전에 몸담았던 The Jam 이 Punk Rock 이나 Power Pop의 형태를 취한 것과 달리 Dance Pop 스타일의 멜로디에 급진적이고 계급투쟁적인 가사를 담아내어 의식 있는 영국 청취자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었던 밴드다.

소개하는 곡은 탄광노동자의 대량실직으로 상징되는 쌔처 시대에 발표되었고 많은 인기를 끌었던 노래다. 그래서 당시의 영국 탄광촌의 상황이 잘 묘사된 작품 빌리엘리어트의 OST에 포함되어있다.

The Style Council – Walls Come Tumbling Down

뮤직비디오 보기

You don’t have to take this crap
You don’t have to sit back and relax
You can actually try to change it
I know we’ve always been taught to rely
Upon those in authority
But you never know until you try
How things just might be
If we come together so strongly

당신은 허튼 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 없어요.
당신은 뒤로 물러나서 여유 잡아서는 안 돼요.
당신은 정말로 뭔가를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권위에 의존해야 된다고 배웠죠.
그러나 당신은 우리가 정말 힘차게 함께 할 때에 세상이
어떻게 될지 노력해보지 않고는 결코 몰라요.

Are you gonna make this work
Or spend your days down in the dirt
You see things can change
YES an’ walls can come tumbling down!

당신은 이 일에 함께 할 건가요?
아니면 당신의 나날들을 쓰레기 속에서 보낼 건가요?
봐요 세상은 바뀔 수 있어요.
예! 벽은 무너뜨릴 수 있어요!

Government’s crack and systems fall
‘Cause unity is powerful
Lights go out- walls come tumbling down!

정부는 금이 가고 있고 시스템은 붕괴되고 있어요.
연대가 강하기 때문이죠.
불빛이 꺼져요. 벽이 무너지고 있어요!

Yes they do yes they do
Yes they do yes they do

예, 맞아요. 예, 맞아요.

The competition is a colour TV
We’re on still pause on the video machine
They keep you slaves to the H.P.(H.P는 Houses of Parliament의 약자로 영국 의사당=의회(주의)를 의미함.)

경쟁은 일종의 컬러TV 죠.
우린 여전히 비디오에 정지 상태로 머물러있죠.
그들은 당신을 의사당의 노예로 머무르게 하고 있죠.

Until the unity is threatened by
Those who have and who have not
Those who are with and those who are without
And dangle jobs like the donkey’s carrot
Until you don’t know where you are

연대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에 의해,
그리고 함께 한 자와 함께 하지 않은 자에 의해
위협을 받을 때까지
그리고 당나귀의 당근과 같은 하찮은 일거리에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조차 모를 때까지

Are you gonna get to realise
The class war’s real and not mythologised
And like Jericho- Yes walls can come tumbling down!

계급전쟁이 실제하고
결코 신화가 아님을 이해할 수 있나요?
그리고 Jericho의 성(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장군의 인도로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들어온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땅에 있는 성중에 최초로 공격하였다는 성이 Jericho의 성이다.)처럼 당신은 벽을 무너뜨릴 수 있어요.

Government’s crack and systems fall
‘Cause unity is powerful
Lights go out- walls come tumbling

정부는 금이 가고 있고 시스템은 붕괴되고 있어요.
연대가 강하기 때문이죠.
불빛이 꺼져요. 벽이 무너지고 있어요!

Down we’re be to weak to fight it
Down not if we’re united
Down when you’re united

연대하지 않으면 싸우기에 너무 약해요.
연대하면 무너지죠.

Are you gonna be threatened by
The public enemy No. 10
Those who play the power game
They take the profits -you take the blame
When they tell you there’s no rise in pay

파워게임을 하고 있는 공공의 적인 10번지(다우닝가 10번지인 영국 수상관저, 즉 쌔처를 의미함)에
의해 위협받게 될까요?
그들은 잉여를 취하고 당신의 임금인상은
없다는 소리를 들을 때 당신은 괜한 책망을 받네요.

Are you gonna try an’ make this work
Or spend your days down in the dirt
You see things CAN change
Walls can come tumbling down!

Government’s crack and systems fall
‘Cause unity is powerful
Lights go out- walls come tumbling down!

그래 우리도 대안 없는 진보는 버리자

얼마 전에 유럽의회 선거가 있었다. 대다수 언론들은 이번 선거결과의 특징을 한마디로 ‘좌파의 몰락’으로 요약하고 있다. 사실 분명히 ‘사회’라는 단어가 당명에 들어간 당들은 국가에 상관없이 지지율과 이에 따른 의석을 잃었고 이 빈자리는 우익정당, 심지어 극우정당인 영국국민당(BNP)등이 차지했다는 점에서 그 분석은 유효하다.

당연히 국내 보수언론들은 이러한 선거결과를 반겼다. ‘유럽도 대안없는 좌파를 버렸다’ – 제목이 참 중의적인데 도대체 “도”를 왜 썼을지 곰곰히 생각하게 만드는 제목이다 – 고 제목을 뽑은 한국경제 기사가 그 한 예다. 이 기사가 분석한 유럽 좌파의 실패 원인은 다음과 같다.

이 같은 선거 결과는 올초부터 전 세계 각지에서 이어진 ‘실용 중시’ 선거 결과와 궤를 같이한다. [중략] 토머스 클라우 유럽개혁센터(CER) 연구원은 “좌파가 경제위기에 대처하는 납득할 만한 대안을 제시하는 데 실패해 몰락했다”고 평가했다. ‘경제 안정’이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결과라는 해석이다.[유럽도 대안없는 좌파를 버렸다]

전경련 기관지 한국경제가 유럽 좌파의 대안 제시 실패에 따른 몰락을 어느 분이 주술적으로 되풀이하는 ‘실용 중시’와 교묘히 연결 짓는 반면에, 트로츠키주의 웹사이트 World Socialist Web Site는 그 몰락의 원인을 다르게 분석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원인은 사회민주정당들의 정치와 특성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이들은 오랜 기간 또 다른 부르주아 정당인 것처럼 행세해왔다. 지난 이십여 년 간 그들은 노조와의 긴밀한 연대 하에 보수정부가 시도했을 때는 광범위한 저항을 촉발했던 사회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는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The cause for this shift is to be found in the politics and character of the social democratic parties, which have for many years functioned like any other bourgeois party. In the past two decades, they have used their influence, in close alliance with the trade unions, to carry out the sort of social attacks that had provoked massive resistance when attempted by conservative governments.[The decline of social democracy]

결국 이름은 ‘사회당’, ‘사회민주당’, ‘좌파그룹’ 등 다양한 당명을 지니고 있었지만 결국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오히려 “사회에 대한 공격(social attacks)”, 즉 공공성의 저해에서 우익정권과 차별성을 보이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거기에 전통적인 연대의 대상인 기성 노조의 저항을 받지 않아 더 그 과정이 수월할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 과정에서 결국 유권자들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기만적인 사회민주주의 세력의 행위에 배신감을 느낀 것이 현재의 표심이라는 분석이다.

한경의 분석이나 WSWS의 분석 모두 그들의 세계관에 따른 주관적 분석이 눈에 띈다. 한경 말대로 ‘실용의 중시’라면 영국 노동당의 ‘실용’을 능가할 정당이 많지 않을 것임에도 그들은 패배했다. ‘사회에 대한 공격’의 징벌적 성격이라면 우익정당, 특히 극우정당의 약진이 명쾌하게 해석되지 않는다. 결국 투표는 어떤 면에서는 집단지성의 수렴이라기보다는 ‘특정시기 집단정서’의 단순합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유럽은 그렇다 치고 한편 우리정치의 지형은 유럽과 비교하자면 그 틀에서 전체 정치권을 쑥 들어서 오른 쪽에 내동댕이친 상황이다. 가장 강력한 야당은 유럽의 우익정당에도 미치지 못하는 보수적이고 패배주의적인 경제정책을 가진 정당이다. 집권여당은 정치적 관용을 허락하지 않는 정당이다. 이런 상황이니 노사모가 ‘범좌파’로 분류되고 있다.

그나마 유럽에서는 좌우의 구분이 형식상으로나마 경제정책으로 갈리고 유권자들도 이를 통해 정치적 의사를 결정하는 반면, – 그런 면에서 훨씬 정치적 실험경험과 스펙트럼이 넓은 유럽에 대고 한경의 ‘대안 없는’ 운운은 건방진 소리다 – 우리는 정치적 의사결정이 정치적 변수에 지나치게 매몰되다보니 주요양당의 경제적 스펙트럼은 극도로 좁은 실정이다.

즉 정치권 내에서 한미FTA와 같은 이전 정권의 보수편향적인 경제정책은 새 정권에서 거의 손상 없이 계승된 반면, 언론, 남북관계, 교육, 정치권 비리 등 경제정책 핵심과 직접 연관되지 않은 부분에 있어서는 치열한 갈등과 대치를 반복하고 있는 상황이다. 직접민주주의의 퇴조가 정치적인 ‘종의 다양성’을 해치고 있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전 정부의 경제정의 회복 없는 직접민주주의의 일시적 해방이 – 그마저도 노동계급에게는 매우 제한적이었지만 – 정치적 퇴행의 직접책임은 아닐지라도 그 토대를 제공하였다고 생각한다. 참여정부의 엉터리 비정규직 보호법이 그들의 주장과 달리 비정규직 처우개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이제 와서 한나라당의 법적용의 유예라는 초헌법적인 발상의 밑동을 제공한 것이 한 예다.

얼마 전까지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던 노회찬 씨가 노무현 전대통령 서거 정국을 맞이하여 유탄을 맞고 있다는 신문기사를 접했다. 유시민 씨가 서거 정국의 수혜주로 떠오르면서 표심이 노회찬 씨를 급격히 이탈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자체장 선거에서조차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계급투표’라는 명분이 사치스러운 구호인 셈이다. 계급구도가 불분명해서라기보다는 때로 지나치게 ‘이타적인’ 정치적 의사결정 탓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보곤 한다.

이제 우리도 유럽처럼 메아리 없는 ‘진보’는 좀 솎아낼 때도 되지 않았을까?

유시민표 진보정당의 정체가 의심스럽다

앞서 “좌우를 구분하는 백한 번째 방법”이란 글에서 ‘경제적 자유주의’와 ‘정치적 자유주의’를 혼동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유시민 의원을 뽑았는데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시지 않는다.

유시민 의원이 16일, 그러니까 오늘 대통합민주신당을 탈당했다고 한다. 탈당사유는 “지금 신당에는 제가 꿈꿨던 ‘진보적 가치’가 숨 쉴 공간이 너무나 좁아 보인다”라는 것이고 진보적 정책노선을 가진 ‘좋은 정당’을 5년을 내다보고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한다.

좋은 이야기다. 유력한(?) 정치인이 진보정당을 만들겠다는 소신을 밝혔으니 말이다. 특히나 우리나라와 같이 진보에 대한 가치정립이 제대로 되지 않고 그에 대한 유권자들의 믿음이 희박한 나라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문제는 그 진보가 어떠한 진보인가 하는 문제다. 진보를 굳이 좌우로 나누자면 아직까지 이 사회에서는 ‘좌’쪽에 가까운 가치일 것이다. 앞서 글에서의 좌익이냐 좌파이냐 하는 구분법으로 살펴볼 것 같으면 좌익, 즉 몇몇 핵심적인 정치적인 가치와 경제적인 가치를 포함하여야 하는 가치라고 생각한다. 굳이 표현한다면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 ‘다원주의’, ‘자유주의’적인 가치를 포괄하는 것, 그리고 경제적으로는 ‘사회공공성’, ‘약자에 대한 경제적, 사회적 보호’, ‘강자에 대한 민주적이고 사회적인 통제’와 같은 가치를 포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유시민 의원의 다음 말을 들어보자.

“한미FTA를 통한 전면 개방으로 다양한 기회 속에 발전을 추구할 수 있는 사회국가적 인프라를 제공하는 한편, 전통적 진보 가치인 사회투자를 확대하는 것이 21세기형 유연한 진보”

이것이 그가 생각하는 ‘유연한 진보이자 진보정당’이다. 그의 기준에 따르면 한미FTA를 반대하는 민주노동당은 ‘유연하지 않은 꽉 막힌 진보(?)정당’인 셈이다. 더 생각할 것도 없이 그가 생각하는 ‘유연’의 판단기준은 ‘한미FTA의 찬반 여부’일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유시민 의원으로 대표되는 사이비 진보의 비극이다. 그들은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 그리고 ‘자유무역협정’에서 쓰이는 ‘자유’라는 단어가 모두 같은 뜻이라고 여긴다. 그들은 박정희 독재세력에 대한 반대테제로 상정한 자유는 박정희의 정치적 독재에 대한 자유, 박정희의 국가주도 경제에 대한 자유라 생각한다. 그러니 관치는 나쁜 것이고 시장은 좋은 것이다. 시장의 자유를 저해하는 것은 나쁜 것이다. 시장의 자유는 자유무역을 통해 만개한다. 뭐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궁금한 것이 한미FTA를 통해 전면 개방될 이 사회에서 어떻게 유시민 의원이 만들 진보정당 또는 다른 정치세력이 “전통적 진보 가치인 사회투자를 확대”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더불어 좌익의 핵심적인 가치인 약자에 대한 보호, 강자에 대한 적절한 통제가 가능하겠는가 하는 점이다.

한미FTA는 분명 ‘자유’무역협정이다. 그런데 적어도 현재 체결된 한미FTA에서의 자유는 시민사회의 자유, 경제적 약자의 자유가 아니라 기업의 자유, 시장의 자유다. 모든 시장은 개방되고 공공과 민간이 똑같은 기준으로 경쟁하며 모든 사회적 가치는 화폐로 환산된다. 기업은 국가가 공공성을 이유로 기업 활동을 제한할 경우 기업의 자유를 제한하였다는 명목으로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걸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유시민 의원이 예를 들어 사회투자를 확대하겠다며 특정 공공서비스의 독점적 시장을 인정하는 조치를 취했을 때 투자자들이 그러한 조치가 한미FTA 조약을 위반하였다고 소송을 걸 때 어떻게 그가 생각하는 “전통적인 진보 가치”를 수호할 것이고 그의 지지자들에게 무슨 변명을 늘어놓을 것인가 하는 점이 궁금하다.

한미FTA는 필요악이라고 할 것인가?

나는 유시민 의원이 어찌 되었든 진보정당을 만들겠다니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남한 사회와 같이 정치적 스펙트럼이 지극히 편협적인 곳에서 ‘진보’라는 이름을 단 정치집단이 하나라도 많아져서 나쁠 일은 없다고 본다.

그런데 그 진보정당이 한미FTA를 찬성하는 진보정당이라면 나는 그것은 모순이라고 본다. 그의 판단기준으로 보자면 한미FTA 반대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힐러리와 오바마는 ‘유연하지 못한’ 정치인이고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진보정당은 미국의 민주당보다 훨씬 유연한(?!) 정당일 테니 적어도 나는 그 정당을 “진보정당”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명박 후보는 노무현 정부가 키운 후보다

요즘 이명박 후보를 후려치지 않으면 블로그스피어에서 왕따 당할 정도로 그의 엉뚱함과 어눌함은 상식적인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 같다. 어제 100분 토론은 보지 못하였으나 평소 그의 행동과 발언으로 비추어보건대 분명히 100분 코미디였을 것이라고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이 무한도전의 새로운 패널이 되어도 시원찮을 후보가 지지율 50%를 넘고 있다. 범여권이니 뭐니 잔챙이 후보들은 그야말로 감히 바라보지도 못할 빛나는 지지율이다. 한나라당과 이 후보의 후원세력들은 요즘 표정 관리하느라 여념이 없을 것이다. 서울역에서 좌파정부 물러가라고 태극기 흔들면서 고래고래 소리치셨던 분들은 아주 살맛이 날 것이다. 반대로 대통령 이명박을 상상하기 싫은 이들에게는 요즘만큼 약 오른 때도 없을 것이다. 필리핀이고 인도네시아고 비행기 편을 알아보고 계신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50% 지지율을 넘는 상상초월 대통령 후보가 하루아침에 태어난 것은 아니다. 차근차근 오랜 기간 대권의 꿈을 향해 달려온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고난과 역경의 가시밭길에서 모난 돌 골라주며 이명박 후보를 보살펴 주고 키워준 이는 사실 애석하게도 한나라당의 수뇌부나 박근혜씨가 아닌 노무현 정부다.

언젠가 회사의 회식자리에서도 동석한 부장이 ‘좌파 정부의 종식’을 위해 건배하자고 하여 나 혼자 실실 웃었지만 정말 노무현 정부가 좌파 정부였으면 이명박 후보는 대권에 접근도 못했을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말로는 ‘좌파’라고 청와대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눈물 흘리던 이 정부가 실은 이 나라를 신자유주의의 놀이터로 만든 주범이었으며 그러한 토양 위에서 자연스럽게 신자유주의의 무한경쟁 이데올로기를 완성시킬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 적임자로 대두된 것이라는 이야기다.

서민의 이미지에 서민의 애환을 보듬어 줄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출범한 이 정부가 지난 5년간 저지른 과오는 열거하기도 벅차다. 비정규직 양산의 토대가 된 노동악법을 만들어냈고, 그 억울함을 호소하는 노동자들을 무차별  검거하고 폭행하였으며, 남한 땅을 미국의 거대자본의 손아귀에 넘겨줄 한미FTA를 초치기로 완성하였고, 어눌한 부동산 정책으로 온 나라를 투기의 현장으로 만들어버린 정도가 대표적인 업적(?)이다. 그러면서도 엉뚱한 곳에서는 하나마나한 평등주의를 외쳐 보수 세력의 인심은 인심대로 잃고 말았다. 즉 행동은 ‘우익’이면서 레토릭만 ‘좌익’이 되어버린 ‘주댕이 좌파’가 바로 이 정부의 자화상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좌파 정부’ 종식시키겠다는 보수우익 아저씨는 울분에 찬 마음으로, ‘주댕이 좌파’에 질려버린 꿈을 잃은 젊은이는 자포자기적 심정으로 함께 두 손 모아 이명박을 지지하게 된 것이다. 새로운 코미디 양산지가 되어버린 대통합민주신당의 후보들의 공약을 보라. 이 후보의 공약이 막가파여서 그렇지 같이 함께 묶어 이면지로 써도 어색하지 않을 초록동색의 신자유주의 공약들이다. 다만 일부 범여권 후보들의 공약에 형식적으로나마 어설픈 복지공약이 들어 있을 뿐이다.

요컨대 범여권과 한나라당은 대척점이 없다. 얼마나 대척점이 없으면 한나라당 후보가 어느날 개혁후보랍시고 범여권 경선에 떡 하니 등장하겠는가. 지난 5년간 내내 그랬다. 하나는 ‘가면을 쓴 보수’였고 하나는 ‘수구적인 보수’여서 국회에서 싸우고 2차로 술집 가서 형님 동생하며 어울렸으니 이에 질려버린 국민들이 ‘가면 안 쓴 솔직한 보수’를 밀어주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그러니 사실은 이명박 후보가 바로 ‘범여권’ 후보인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차별화된 문국현 후보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5만 당원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노쇠한 이미지의 권영길 후보가 당지지율마저 갉아먹고 있는 마당에 현대판 로버트오웬 문국현 씨가 지난 대선 노무현 대통령이 써먹었던 ‘진보’의 이미지로 포장되어 나섰다. 아마도 현 시점에서는 ‘보수’ 이명박에 대한 유일한 대항마인 것 같다. 범여권의 지렁이 후보들은 ‘진보’ 이미지를 써먹을 수 없을 만큼 유탄을 많이 맞았기 때문이다.

연말에는 아마도 매우 확률 높게 정권이 바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암울해 할 것 같다.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위안거리가(?) 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범여권의 후보들이 대통령이 되어도 ‘신자유주의 무한경쟁의 폭주기관차’는 정상적으로 운행될 것이었으므로 누가 대통령이 되었는가는 중요하지 않았다고 냉소를 지을 수 있을 정도일 것이다. 물론 이 후보가 되면 대운하 공약 폐기하고 발뺌하느라 한바탕 쇼를 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10월 19일 덧붙임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블로그에 손석춘 원장께서 올리신 글 중에 위 허접한(!) 제 글을 축약해서 표현해주는 문구를 발견하고 퍼옵니다. 글의 나머지는 이명박 후보를 까는 내용이니 현 정부의 지지자는 제 글보다는 읽기에 편하실 겁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 http://bloggernews.media.daum.net/news/392491

그래서다. 이명박의 정책과 날카롭게 각을 세운 정치세력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 노골적 신자유주의자임을 아예 과시하듯 드러내는 후보 앞에서 ‘진보적 신자유주의’ 따위의 어설픈 사고나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의지 박약을 보일 때가 아니다.


다시 한번 왜 이명박 후보가 노무현 정부가 키운 후보인지 말씀드리자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