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觀光弗

먼저 다울링 대사가 환율의 현실화를 미국식의 접근방식으로 설명했고, 이어서 데커 장군이 한국에 와 있는 수많은 미국 장병들이 500대 1의 고정환율에 따라 봉급을 환화로 바꾸어 한국시장에서 물건을 사려고 하면, 실제로는 그 가치의 절반도 안되기 때문에 사령관의 입장으로서도 고충이 많다고 거듭 설명드렸다. 그 자리에서 李대통령은 해방 후 1달러당 15환부터 시작된 환율이 500환까지 치솟게 된 아픈 역사를 되새기고 “우리 돈의 가치가 이토록 떨어진 것은 아마도 당신네들이 정책을 잘못 세운 것 때문이 분명하다.” [중략] 라고 결론지었다. 이러한 한미양측의 입장을 조정하기 위해 「觀光弗」이라는 이름을 붙여 1달러 대 900~1,000환 정도의 범위 안에서 여행자나 미국병사들의 봉급의 일부를 환화로 바꾸어주는 제도가 제시되기도 했다. 李대통령은 이같은 안에 대해 그 취지는 충분히 납득하면서도 “우리 입장이 한번 무너지면 그 다음의 평가절하가 가져오는 악순환을 어떻게 막으려고 하느냐”며 이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부흥과 성장, 송인상 저, 21세기북스, 1994년, pp276~277]

이승만 집권 시절 경제관료를 지냈던 송인상 씨의 회고록 중 일부다. 이승만 씨가 외환관리에 유난히 신경을 많이 썼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진바 있고, 이러한 상황에 갑의 위치에 있던 미국 정부조차도 곤혹스러워했던 일화다. 모든 후진국이 그렇듯 한국 역시 공식 환율이 있었고 실제 이와는 괴리가 큰 시장가로 움직이는 별도의 환시장이 있었다. 이에 따라 미국 병사 혹은 종교단체 등은 한국의 고평가된 환율로 불이익을 받고 있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 정부 측에서 “관광불(觀光弗)”이라는 별도의 환율 제도를 만들자고 했다는 장면이다. 비록 이 일화에서는 미국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1955년 11월 협정을 통해 한미 양국은 서울도매물가지수가 6개월 동안 125%를 넘거나 떨어지면 환율을 개정하도록 합의하게 된다. 그 뒤로 완강하게 환율 방어에 매진하던 이승만 정부는 대통령 선거 직전인 1960년 2월 650대 1로 환율을 변경하게 된다.

독일과 스위스의 대조적인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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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2-euro” by This photo (C) Lars Aronsson – Own work. Licensed under CC SA 1.0 via Wikimedia Commons.

가상의 독일마르크에 비해 유로가 상대적으로 싸다는 사실은 독일에게 이로운 점이다. 독일의 재정적 질서 이외에도 통화 연합에는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그리스 등 모두 최근의 독일만큼 성공적이지는 않은 나라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유로의 힘에 영향을 주었고, 독일의 수출업자에게는 이로운 것이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수출은 독일 경제의 주요 축이다. 강한 통화는 국제시장에서 생산품 가격을 높임으로써 독일 수출업자를 어렵게 할 것임이 거의 확실하다. ING의 이코노미스트 Carsten Brzeski는 유럽중앙은행(ECB)의 통화 정책이 더 약한 나라를 도와주는 경향이 있으며 이 정책 경향이 독일과 같은 수출국에도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통화는 당신 자신의 통화를 가지고 있는 것보다 언제나 절하되어 있는 상태일 것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지난 한 해 동안의 ECB의 순응적인 통화정책 덕택에 더 싸지는 단일통화로 인해 독일 경제에 250억 유로가 더해졌을 것이라고 예측했다.[How Does Euro Membership Help Germany?]

유로존에서 탈퇴해야 할 나라는 그리스가 아니라 독일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는데, 바로 경제력이 질적으로 차이 나는 국가들이 단일통화를 쓸 경우 위와 같은 상황이 발생하는 것에 대한 우려 때문일 것이다. 수출을 많이 하는 나라의 경우 통화가 비싸지고 이로 인해 수출경쟁력이 떨어지는 상황이 자연스러운 것인데 독일의 경우 단일통화권에서 그런 상황에서 자유롭다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혁신적으로 재분배가 되지 않은 한, 독일의 경제선순환과 경제력이 약한 나라들의 경제악순환이 구조적으로 고착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금요일에 스위스의 중앙은행인 스위스국립은행(SNB)은 2분기 200억 스위스프랑(200억 달러)의 손실을 발표했다. 금년의 좋지 않았던 첫 석 달에 연속하여 SNB의 2015년의 현재까지의 손실은 501억 스위스프랑이라는 터무니없는 금액에 달하는데, 이는 스위스 GDP의 7.5%에 해당한다. SNB의 손실은 매우 크지만 예상 못한 것은 아니다. 몇 년간, 은행은 스위스프랑이 1유로에 1.2 프랑으로 2011년 9월 세팅된 환율캡 위로 올라가지 않도록 외환시장에 개입해왔다. 1월에 ECB가 1조1천억 유로에 달하는 양적완화 프로그램을 가동하자 SNB는 돌연 통화 페그 정책을 포기했다. 이로 인해 즉각적으로 프랑의 가치는 유로에 비해 20% 이상 상승하였다.[Switzerland’s central bank makes a massive loss]

또 하나의 수출 강국 스위스가 단일통화권에 합류하지 않아서 얼마만큼의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기사다. 통화정책의 자주성은 견지하고 있지만 양적완화와 같은 비정상적인 조치에는 버텨낼 재간이 없었던 스위스는 결국 올 1월 통화 페그를 포기했고 그 대가는 매우 비쌌다. 수출업자는 경쟁력 악화로 인해 피해를 입었고 – WSJ글에 따르면 업체의 1/3 정도가 영업 손실이 예상된다고 – SNB는 5,500억 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고에 엄청난 환차손을 감내해야 했다. 다시 돌아가서 독일은 이런 혼란을 겪지 않고 싼 유로의 단물을 빨아먹고 있다.

유로존이 어떤 식으로든 수술이 있어야 하는 상황이다.

수출주도 경제에서 희생당해왔던 이들을 위한 잡담

환율의 경우를 말씀드리면, 수출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우리 경제의 특성상 수출이 경제성장을 이끌고 있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다만 환율이 일정 수준 이상 유지될 경우 수출기업은 수입기업 등 다른 사람들의 경제적 희생하에서 이득을 취하고 있다고 볼 수 있죠. 다른 말로 하면 일종의 보조금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죠.[돈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임경 지음, 생각비행, 2014년, p127]

한국은행의 금융시장 담당부서 등에서 오랜 기간 근무했던 임경 씨가 내놓은 책의 일부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원화와 외화의 연결고리”를 설명하고 그 안에서 중앙은행, 특히 본인이 재직 중인 한국은행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위 내용은 그가 한 강의에서 한 청강자의 질문에 대답한 내용으로 우리나라 경제에서 환율이 가지는 위상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즉 환율은 국가가 수출기업에게 주는 “보조금”이란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그의 책 다른 곳에서도 말하고 있듯이 정부는 “환율목표를 명시적으로 공표하지 않”(p125)는다. 환율목표제가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날 경우 “불공정한 무역거래를 하고 있다는 대외적인 비판이 제기”(p125)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도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으면서도 우리를 포함한 거의 대부분의 정부와 중앙은행은 환율에 강력히 개입한다. 우리의 경우 한국은행이 그러한 환율조정(혹은 조작?)의 주요 플레이어임은 한번 글로 쓴 적이 있다.

당국의 “실탄”은 어디서 마련될까?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통화안정증권을 통해 조달된다. 아래 기사를 보면 통화안정증권을 “잠재적 국가부채”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한국은행의 부채는 국가부채로 계상되지 않기 때문이다. [중략] 한국은행의 경우 자체 적립금으로 적자를 메우고 있지만 이 적립금이 고갈될 경우 한국은행법과 국가재정법에 따라 정부재정으로 메우게 되어 있다.[환율방어를 위한 당국의 “실탄”은 누구를 위한 실탄일까?]

물론 “환율방어”가 꼭 수출기업만을 위한 방어라 보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안정적인 환율은 국가전체적인 경제운용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기적인 경향으로 특정 방향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환율을 특정한 환율목표 하에 결국은 국가재정으로 메워질 “실탄”을 계속 쓰는 것, 그것은 바로 특정분야에 대한 “보조금”이라는 것을 한국은행 직원의 증언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다른 이들의 “희생 하”에 말이다.

한국 제조업 전체의 수출 고도화 지수는 2000년 이후 상대적으로 빠르게 상승해 주요 선진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남. 한국 제조업의 수출 고도화 지수는 2000년 94.3p로 독일(104.8p), 일존 (103.4p), 미국(100.8p)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었음. 그러나 2013년 한국의 수출 고도화 지수는 106.9p로 상승해 111.7p로 나타난 일본보다는 낮지만 103.0p인 미국을 제치고 독일(108.5p)에 근접한 수준으로 상승.[한국 제조업의 수출 고도화 현황과 시사점, 현대경제연구원, 2015.03.09., p4]

한국의 수출 고도화의 정도는 이제 독일 수준으로 접근했다. 한국기업들의 고도화를 위한 부단한 노력의 결과 덕분일 것이다. 이러한 상황 덕분인지 이제는 원화가 절상하여도 수출기업의 손익에 그리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이러한 전반적인 수출경쟁력의 재고에는 다른 이의 “희생 하”에 지급된 “보조금”의 영향을 인지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이제 그 희생을 그만 치를 때가 되지 않았는지 고민해야 한다.

스위스 프랑을 둘러싼 일련의 사태에 대한 斷想

최근 스위스 프랑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몇몇 사태는 제3자의 시각으로 관전하기에는 – 몇몇 실패자에게는 무척 고통스러운 상황이었겠지만 – 매우 흥미로운 광경이었다. 자국 통화를 유로에 고정시켜놓거나 기준금리를 마이너스 수준까지 내려 실질적인 통화 보관료를 받는 등 환율 방어에 힘썼던 스위스가 “기습적으로” 페그 정책을 포기한 후 스위스 프랑의 가치가 급격히 올라갔고, 이로 인해 몇몇 주요투자자들이 천문학적인 손실을 기록하여 펀드를 접는 등의 일련의 혼란스러운 사태가 요 며칠 파노라마처럼 펼쳐졌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는 유럽중앙은행의 양적완화 실시 계획을 눈앞에 두고 스위스 중앙은행이 내린 결정이 원인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투자자들의 안전자산 선호, 스위스의 정치적 특수성, 스위스의 무역구조 특성, 유럽의 경제상황 등이 다층적으로 맞물린 상황이 이번 혼란의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아직까지 당사자나 언론이 투자자들의 손익계산서를 계산중인 모양이지만 일단 가장 극적인 실패를 맛본 이는 스위스 프랑의 약세에 돈을 걸었다가 주요 펀드 하나를 통째로 잃어버린 에베레스트 캐피탈이라는 회사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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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unt Everest as seen from Drukair2 PLW edit” by Mount_Everest_as_seen_from_Drukair2.jpg: shrimpo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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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극적인 패배는 러시아의 경제상황에 올인했다가 역사적인 패배의 사례가 되었던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제로섬 게임에 가까운 환율변동에 돈을 걸었다가 몇몇 투자자들이 참패를 맛본 이번 사태로 말미암아 또 다시 펀드 자본주의의 투기적 성격이 도마에 오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실패의 배경이었을 단기적 성과주의, 높은 레버리지, 투기적 투자성향 등이 펀드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이들의 전형적인 레퍼토리다. 하지만 정작 헤지펀드들이 그러한 비판을 감수하면서 거둔 성적은 무척 초라하다.

이는 펀드 투자 자체가 제로섬 게임은 아니지만 그 업계도 지나친 경쟁으로 말미암아 진작 뜯어먹을 시체도 별로 없는 레드오션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보다 더 우월한 위치를 점하고 있을 투자자들의 인내심의 주기는 점점 더 짧아진다. 펀드 매니저로서도 못해먹을 노릇일 것이다. 이러한 추세를 반영하듯 일부 탑클래스의 매니저들은 영구자본의 비중을 늘리거나 투자자에게 환매가 아닌 다른 투자자로의 주식 매도 등으로 펀드를 빠져나가게 하는 등의 방법으로 펀드 투자의 안정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사실 지속적으로 뛰어난 성적을 거두고 있는 극히 일부의 매니저에게나 가능한 시도일 것이다. 그래도 어쨌든 펀드 투자가 이렇게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투자수익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펀드 자본주의는 투기 자본주의’라는 선입견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자본주의 체제 건전화의 한 대안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볼 수도 있을 것이다. 펀드가 레버리지보다는 안정적인 영구자본을 투자재원으로 삼는다면 적어도 이번처럼 하루아침에 에베레스트에서 수직 낙하하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환율방어를 위한 당국의 “실탄”은 누구의 실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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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currency exchange AIGA euro money” by CopyleftOwn work.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30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3.6원 내린 1018.0원으로 거래를 시작했다. 원·달러 환율이 장중 1020원 아래로 떨어진 것은 2008년 8월 8일(1017.5원) 이후 5년9개월 만에 처음이다. 이날 원·달러 환율의 하락은 월말을 맞아 수출업체들이 미 달러화 매도 물량을 대규모로 내놓은 데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미 달러 약세 현상이 나타난데 영향을 받았다. 원·달러 환율은 1020원선이 무너진 뒤 당국의 ‘실탄 개입’ 물량이 나오면서 오전 10시 30분 현재 전날보다 0.3원 하락한 1020.6원을 기록했다.[환율 1020원선 붕괴]

당국의 “실탄”은 어디서 마련될까?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통화안정증권을 통해 조달된다. 아래 기사를 보면 통화안정증권을 “잠재적 국가부채”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한국은행의 부채는 국가부채로 계상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전 글에서도 썼듯이 중앙은행의 부채가 정부와 관련 없는 “독립적인” 부채라 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더구나 한국은행의 경우 자체 적립금으로 적자를 메우지만 이 적립금이 고갈될 경우 한국은행법국가재정법에 따라 정부재정으로 메우게 되어 있다.

‘잠재적 국가부채’로 불리는 한국은행 발행 통화안정증권(이하 통안증권)이 급증, 연간 이자 부담만 6조원에 달하면서 국가재정을 위협하는 악성(惡性)부채가 돼가고 있다. 한은이 통화조절용으로 발행하는 통안증권은 외환위기 이후 외환보유고를 쌓는 과정에서 풀려난 통화 환수와 환율 방어에 동원되면서 발행 잔액이 급증했다. 지난 97년 23조원 수준에서 지난 9월 현재 160조원으로 8년 사이 7배 늘어났다.[‘통화안정증권 160兆’ 韓銀 사상최대 적자]

“통화안정증권”이라 이름 붙여졌지만 당국이 개입하는 것은 통화약세를 위해 개입하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수출기업의 가격경쟁력을 위해서 말이다. 다른 나라는 국채조달을 통해 정부가 개입한다면1 우리는 통안증권을 통해 개입하는 것이 차이점이다. 첫 인용기사를 보자. 월말 변수라고는 하지만 수출업체들이 달러를 매도했을 때는 1020원 언저리에서 매도했을 것이다. 원화 가격이 하락하자, 즉 원화강세가 되자 당국이 “실탄”으로 다시 1020원을 만들어줬다. 수출업체가 달러 대량매도로 인해 지불하는 기회비용은 없다.

한국은행은 작년 말 현재 부채가 448조3천993억원으로, 1년 전보다 13조4천865억원(3.1%)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고 20일 밝혔다. 이는 5년 전인 2008년 말(307조4천445억원)에 견줘서는 무려 45.8%(140조9천548억원)나 증가한 것이다. 같은 기간 대표적인 가계빚 통계인 가계신용은 2008년 723조5천215억원에서 작년 1천21억3천383억원으로 41.2% 늘었다. 결국 한은 부채가 가계 빚보다 가파르게 증가한 셈이다.[한국은행 부채 448조원… 5년전比 46%늘어]

이로 인해 한국은행의 부채는 신용위기 이후 급격히 증가했다. 한은부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163조원(36.4%)이 넘는 통안증권이다. 지난 5년간 유동성 공급을 위한 화폐의 증가율이 가장 높았지만 통안증권 역시 36조원 이상이 증가했다. 내수와 수출 진작을 위한 정책이 병행된 셈이다. 어쨌든 이런 수출기업에게 가장 큰 혜택이 갈 한은의 역할이 계속됨에도 지난 2월 기획재정부가 새로 편재한 공공부문 부채 산정에 통안증권이 빠짐에 따라 한국 특유의 부외금융(off-balance sheet financing)은 계속되고 있다.

국가 대표기업인 삼성전자와 현대기아자동차의 환율흐름과 영업이익률을 비교한 결과 상관관계가 갈수록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략] 현대기아차는 환율이 10원 떨어지면 2000억원 정도 이익이 줄어드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략] 다만 해외 공장에서 생산해 현지에 판매하는 물량이 늘어나면서 환변동에 따른 여파가 과거에 비해서는 줄어드는 추세다.[삼성전자·현대차, ‘원高 영향’ 덜 받는다]

대표 수출업체인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이야기다. 정부가 통안증권이라는, 다른 나라에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수단을 강구해서 이들을 도와주고 있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자구책을 찾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해외 제조기지 건설은 환위험 헤지 등을 위한 당연한 경영전략이랄 수 있다. 하지만 이들 업체가 그런 전략을 구사하기에 앞서 영업을 시작한 이후2 그들을 세계적인 업체로 키우기 위해 정부와 한국은행, 나아가 국민이 들인 노력과 지불하고 앞으로 지불할 비용에 대해서는 얼마나 보상했는지 모르겠다.

박정희의 “인플레를 활용하는 방식의 경제개발”에 관한 보론

특히 한국은 수출 증가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는데, 이 목표를 추진하기 위해서 국내적으로 많은 반대가 예상되는 조치들을 취해야 했다. 미국은 우선 원화의 가치절하를 주장했다. 원화의 가치가 절하될 경우 한국 상품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조언을 받아들여 원화의 가치를 1달러당 130원에서 256원으로 절하하는 환율 조정을 단행하자, 곧바로 격렬한 저항과 반대가 일어났다. [중략] 한 신문은 원화의 가치절하가 “가격 악순환의 소용돌이”를 초래할 것이라고 예상하였으며, 일부 국회의원은 정부의 결정을 “완벽한 실수”라고 비난하면서 이 조치로 인해 국민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중략] 주한 미국 대사관은 “실제로 원화의 가치절하가 단행되면 전반적으로 국내 물가가 상승할 것이다. (…) 단기적으로 볼 때, 한국 정부는 미국이 추가로 지급할 식량 지원이 원화의 가치 절하가 실행되는 시점에 맞춰 진행될 것이라고 발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하였다. [중략] 한국 정부의 환율 인상 조치가 중요한 계기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원화의 가치절하만으로 저절로 수출이 증가하는 것은 아니었다. [중략] 당시 한국 정부는 일제 총독부가 실시하였던 정책과 미국의 경제 전문가가 권유하는 정책을 혼합하여 독특한 수출 정책을 채택하고 있었다. 일제 총독부가 추진하던 것과 유사하게 수출을 장려하기 위해서 일부 특정 기업에게 세금 감면, 철도 수송 비용 감면, 은행 대출이자율 특혜 등의 혜택을 부여했던 것인데, 이 중에서도 은행 대출 이자율 감면 혜택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자율 감면 혜택을 받았던 기업 중에는 오늘날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성장한 삼성과 현대도 포함되어 있다. 이 기업들은 정부로부터 특혜를 받는 대가로 공화당에 거액의 정치자금을 제공하였다.[대한민국 만들기 1945~1987, 그렉 브라진스키 지음, 나종남 옮김, 책과함께, 2012년, pp245~247]

내용을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인용한 이 책의 독특한 지형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 책의 일관된 기조는 대한민국이, 미국이 다른 나라에서 공산세력의 위협을 막고 자신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이식하려 했던 많은 시도들 중 가장 성공적인 나라였다는 주장이고, 이를 위해 이승만 이후부터 1987년까지의 미국 사회와 한국 사회의 상호역학관계를 다루고 있다.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에 대한 전문가인 저자는 스스로도 자신이 이 책에서 제시하는 주장과 해석에 대해 “우파와 좌파 모두 불만을 표시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우파는 독재정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좌파는 미국의 역할에 대한 긍정적 시각을 싫어할 것이라는 짐작이었다.

책 내용은 그의 염려가 기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톤을 유지하고 있다. 전반부에서 이승만에 대한 평가는 거의 좌파적 시각의 글이라 여겨질 정도로 평가가 혹독하다. 미국의 원조를 경제개발에 힘쓰기 보다는 자신의 권력 강화에 몽땅 쏟아 부은 냉혹한 독재자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대체재가 없다는 이유로 그의 독재를 용인하지만 지식인, 군인들에게 미국식 자유주의의 우월성을 전파하여 독재종식에 기여했다는 서술은 좌파의 구미에 맞지 않는 묘사다. 박정희로 가서는 그의 독재자로서의 모습과 열정적인 경제 지도자로서의 모습이 중첩적으로 서술된다. 그리고 인용문에도 그러한 이중적인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다.

인용문에 나온 원화의 가치절하 조치는 1964년의 조치다. 1961년의 쿠데타를 통해 출범한 신생정부는 잘 알다시피 미국의 정권에 대한 승인과 원조가 없이는 유지될 수 없는 정부였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경제적 원조뿐만 아니라 정치적, 정책적 지원에도 크게 기대고 있었다. 이러한 사유로 박정희는 집권 즉시 미국이 원하던 일본과의 재수교, 월남파병, 환율조정 등을 차근차근 실천해 나간다. 이 중 원화의 가치절하는 상기의 사유로 박 정권이 전면적으로 단행한 조치다. 지금 와서 보면 가치절하 이외에 다른 대안이 많지 않았기에 그의 결정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묘사된 정황만 보더라도 그 진행은 일방적이고 민중 수탈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번 글에서 박승 前 한국은행 총재가 박정희의 경제개발을 “인플레를 유발할 뿐 아니라 인플레를 활용하는 방식의 경제개발”이라고 묘사했던 바, 위와 같은 조치는 그러한 경제개발의 일환이다. 즉, 박정희는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임으로써 인플레이션을 방기하는 차원을 넘어 조장한 것이다. 이승만이 원화 가치를 낮추라는 미국의 조언을 무시했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는 수입품 가격을 앙등시키고 수출업자와 채무자에게는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다. 더 나아가 수출기업에게는 금리를 깎아주는 등의 특혜를 주었으니 삼성과 현대와 같은 기업으로서는 이중, 삼중의 특혜를 누린 셈이다.1 그리고 우리경제는 수출주도 경제 또는 “박정희 체제”를 공고화하게 된다.

일본 엔화 하락으로 돈 번 사람들, 그리고 그 원인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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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Y Banknotes” by TokyoshipOwn work.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조지 소로스 하면 1992년 파운드를 방어하려는 영국중앙은행과 맞장을 뜬 “환투기꾼”이자,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의 위기를 사유하는 “철학자”라는 독특한 삶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인물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이 억만장자 철학자가 일본 엔의 하락세에 베팅하여 파운드 전쟁에서의 노획물에 버금가는 10억 달러의 이익을 거둔 사실을 – 물론 물가가치를 고려하면 그때의 혁혁한 전과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 보도했다.

엔화의 하락에 베팅하는 것은 소심한 이가 할 짓이 못된다. 일본은 몇 년간 자신의 화폐를 절하하여 경제와 주식시장을 재점화하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해 왔다. 그 기간 동안 엔화와 일본 국채에 대해 숏포지션을 취한 많은 이들이, 화폐와 채권이 오히려 상승함에 따라 두들겨 맞았다. 일본은 월스트리트에서는 “과부 제조기”로 알려지게 됐다.[중략]

소로스의 예전의 영국 파운드 하락에 대한 매도와 달리, 소로스와 다른 헤지펀드들의 최근의 움직임들은 일본이나 엔화를 불안정하게 만든 것 같지는 않은데, 이는 부분적으로 일본 엔화의 거래가 투자자들이 좌지우지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광범위한 시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일본의 부채는 국내 투자자들이 가지고 있고, 비관적인 투자자들의 그 나라에 대한 숏포지션이 그리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 또 다른 이유다.

동시에, 소로스의 파운드에 대한 술수는 영국중앙은행의 정책들에 반하는 것이었던 반면, 지금의 헤지펀드들은 디플레이션을 극복하려는 일본중앙은행의 정책이 성공하길 기원하면서 거래를 했다.[U.S. Funds Score Big by Betting Against Yen]

그러니까 소로스를 비롯하여 이번에 큰돈을 번 투자자들은, 1992년의 전투에서와 같이 정부의 의지에 반하는 묘수를 부릴 필요도 없고, 그렇기 때문에 일본정부로부터 욕을 먹을 일도 없었다. 그들은 떨어지는 엔화의 급류에 몸을 맡기고 돈을 벌어들이는 재미를 만끽하기만 하면 됐다. 문제는 WSJ기사에서도 말하듯 내리막이 생기는 시점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엉뚱한 때에 몸을 던졌다가는 과부만 제조되기 때문이다.

엔화 약세의 원인은 무엇일까? 그 원인을 아베 정권 등장과 “무제한적 양적완화레토릭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하지만 WSJ도 지적하듯 이전 정권도 그런 시도를 했지만 지금처럼 성공적이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일본 시티은행의 다카시마 수석 애널리스트는 IMF의 새로운 환평가 모델에 근거해 적정 환율이 1달러당 95엔이고 지금 그 시점으로 복귀하는 것이라 분석하고 있다. 아베는 한 계기일 뿐이란 것이다.

다카시마는 그 예로 2001년에서 2006년에도 일본은행이 양적완화를 실시했지만 외환 시장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 사례를 들고 있다. 당시 일본의 양적완화를 무력화시킨 것은 Fed의 금리인하와 이에 수반된 달러 약세였다. 흥미롭게도 지금의 Fed 수장인 벤 버냉키는 당시 일본이 과감한 통화정책을 통해 불황에서 탈출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논문을 썼다는 점이다. 따라서 미국은 현재 호의적인 침묵을 지키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환율에 관해서 할 말이 많을 폴 크루그먼은 한발 더 앞서가 “환율전쟁”이라는 표현은 “순전히 오해(it’s all a misconception)”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또 다른 저명한 경제학자 베리 아이켄그린의 주장을 빌어 1930년대의 상황조차 최악의 경우에라도 경쟁적인 환율 약세를 통해 “최초의 지점(where they started)”으로 회귀한 것이며, 이번의 “환율전쟁”이라 불리는 것도 결국에는 “순이익(a net plus)”으로 남을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벤 버냉키나 폴 크루그먼이나 “환율전쟁은 근린궁핍화 정책이다”라는 전통적인 주장에서 동떨어져 있는데, 과연 그들의 예언이 어느 정도나 현실에서 실현될지는 아직은 미지수다. 폴 크루그먼은 1930년대 당시 상황 악화의 원인을 금본위제 탈피에서 들고 있지만 어쨌든 당시의 상황을 “전쟁”으로 표현하는데 무리는 없고, 플라자합의도 넓게 봐서는 “환율전쟁”의 파편이 심각한 외상을 입힌 사례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p.s. 현재의 “환율전쟁”이 서로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코노미스트의 긴 글이 있으니 흥미있으신 분은 읽어보시도록…(난 안 읽었다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