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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에 있어서 개량경제학의 유용성

때때로 정치경제학에서 정식화된 어떤 법칙을 이에 대응하는 구체적인 경제 과정의 규칙성과 실천적으로 동정하는 것이 곤란할 때가 있다. 상품가격과 판매량을 시계열 형태로 파악한 통계자료에 기초하여 가격과 수요 또는 공급 사이의 함수적 상관관계를 결정하려고 할 때, 얻어진 경험적 관련이 수요함수를 표시하고 있는지 공급함수를 표시하고 있는지, 혹은 그 어느 것도 아닌지 알 수 없는 경우가 잘 알려진 예이다. 개량경제학에서 작용하고 있는 특별한 과정은 근사적인 동정을 가능하게 한다.[정치경제학, 오스카르 랑게 지음, 문태운 옮김, 이제이북스, 2013년, p139]

오스카르 랑게는 폴란드의 외교관이자 경제학자이다. 폴란드에서 태어나 공부하고 대학 강사로 활동 중 록펠러 재단의 장학금을 받아 미국에서 유학 후, 스탠퍼드 대학과 시카고 대학 등에서 교수로 활동하다가, 폴란드로 돌아와 주미 폴란드 대사와 주유엔 안보리 대표 등을 역임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이러한 특이한 이력은 그가 신고전파 경제학이나 개량경제학을 폴란드의 사회주의 계획경제에 도입하고자 하는 소위 ‘시장 사회주의’의 초기 주창자로 나서게 하는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인용한 문장에서도 그의 고민을 살펴볼 수 있다. 그의 생각에 정치경제학은1 거시경제 작동의 원리를 파악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만, 구체적인 상품 가격을 파악하는 등의 작업에는 덜 유용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59년 폴란드 호밀의 가격은 지역, 계절, 종류 등에 따라 달라지는데 이러한 가격 동향의 파악은 개량경제학이 더 유용하다는 것이 랑게의 생각이다. 요컨대 그는 정치경제학은 ‘역사적 검증’에 개량경제학은 ‘통계적 검증’에 유용하고 이는 서로 배타적이지 않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사회적 소유”에 대한 단상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는 인간이 조직화된 사회의 의지에 따라 그에 반응하도록 경제적 자극을 정하는 것이 가능하게 한다. 이 경우에 인간 행동의 경제법칙은 인간이 의도한 대로 작용한다. 그 외에도,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는 인간 행위의 상호작용 양식을 목적에 맞도록 계획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 결과 인간 행위의 상호작용 법칙 또한 인간의 의도대로 작용한다. 마지막으로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는 생산관계의 적대적 성격을 제거하고, 경제법칙 작용의 가능성을 사회 전체의 의도대로 이용하는데 반대하는 특권계급으로 인한 장애를 제거한다. 이렇게 해서 사회주의적 생산양식은 사회 발전과 경제법칙의 작용을 조정할 수 있게 된다.[정치경제학, 오스카르 랑게 지음, 문태운 옮김, 이제이북스, 2013년, p90]

이 문단을 읽고 드는 의문은 여기서의 “인간”은 개별의 합으로서의 인간인가 사회 총체로서의 인류인가 하는 점이다. 소위 ‘집단의식’ 혹은 ‘집단행동’이라는 개념에서 생각해보자면 인간은 개별적인 이성과 감성을 가진 인간의 행동과는 다른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는 점은 이미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개념이다. 그 집단 역시 일국의 차원인가 전 세계적인 차원인가에 따라 그 행태가 또 천차만별인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한 집단의 민족주의적인 감성일 것이다. 예로 어느 국가에서 “사회적으로 소유”한 생산수단을 극단적인 민족주의적인 의도로 활용했을 경우 미치는 영향이 “적대적 성격이 제거”된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

사회적으로 소유된 생산수단을 ‘기후변화 저지’라는 인류보편적인 – 이마저도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 목적으로 사용한다는 이상적인 상황이 랑게가 그리고 있는 적대적 성격이 제거된 사회적 소유의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그간의 일국 사회주의 체제 혹은 국가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사회적 소유”를 가장한 권위주의적인 국유화와 그 정점에 있는 정치 및 경제 지도자의 – 일종의 사회적 생산수단 펀드의 펀드매니저 – 관리자로서의 이익 전용(轉用) 혹은 횡령으로 인한 폐해도 만만치 않은 지라 “사회주의적 생산양식”의 구체적 운용에 대한 갖가지 의구심은 여전히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는 상황인 것 같다.

한RSS에서 내 블로그가 정치 블로그로 분류되는 이유

민노씨께서 내가 가끔 찝찝하게 생각하던 부분을 잘 지적해주셨다. 한RSS라는 국내 최고의 RSS 구독 사이트에서 블로그들을 카테고리별로 분류해놓았는데, 민노씨가 보기에 이 분류가 합당치 않다는 것이다. 민노씨가 든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그 자신이 속해있는 ‘정치’ 카테고리다. 그 곳에는 박노자씨의 블로그를 비롯하여 이정환씨의 블로그, 그리고 내 블로그도 속해있다. 민노씨는 내 블로그를 예로 들면서 블로거가 굳이 소개에 “경제관련 Blog”라고까지 했는데 “정치에 잡아두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셨다.

사실 내가 블로그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은 해외의 파워블로거들이 상상도 못할 수입을 얻고 있다기에 물질적 보상에 눈이 어두워서였으니 그 동기로 치자면 당연히 “경제” 블로그다. 여하튼 이후 포스팅도 거의 잡식성이긴 하나 글의 비율로 치자면 경제 관련 글이 가장 많긴 하다. 그런데 왜 한RSS는 나를 “정치에 잡아두고” 있을까? 나는 이것이 비단 한RSS뿐만이 아닌 메타블로그, 나아가 사람들의 정서가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즉 내 생각에 사람들이 경제현상 제반에 대한 고찰(economy 또는 economics), 나아가 정치경제학적인 고찰(political economy)은 정치(politics)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 편견에 따르면 경제는 business다. 즉 돈이 되는, 또는 투자와 관련된 그 무엇을 말한다. 다른 예로 올블로그에서도 ‘올블로그 어워드 2008’이라며 후보 추천이 진행 중인데 여기에서도 “전문 부문”을 볼 것 같으면 분류가 ‘경제 분야’가 아닌 ‘비즈니스 분야’다.


올블로그 어워드 2008 추천분야

실제로 한RSS가 경제 카테고리에 분류해놓은 RSS중 경제신문을 제외한 일반인들의 블로그 성격을 볼 것 같으면 대부분 투자, 재테크, 주식에 관한 블로그들이다. 물론 그들 블로그 역시 거시경제에 대한 분석 글도 상당수 실리기도 하지만 투자적인 관점에서의 분석이 주가 된다. 그것들이 옳고 틀린가를 따지는 것이 아니고, 그러한 경제고찰에 있어 관점의 차이가 내 블로그와 이정환씨의 블로그와 같은 유의 관점과 대별되는 점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것이 한RSS를 비롯한 사회일반이 정치경제적 관점을 경제로 보기보다는 정치로 보는 이유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넷상에 계속하여 펌질되고 있는 것 같은 소위 ‘경제관련 사이트 모음’이라는 글에 천형처럼 붙여진 내 블로그에 대한 딱지를 짤방으로 소개.


“시스템에 대한 비판주의”! 이정환닷컴이 더 하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