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셰어링”은 임금기금설의 변주곡

임금을 낮추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정부의 발상은 아주 오래 전에 폐기된 임금기금설을 연상시킨다.

일정 시기의 일정사회에서 임금지급에 충당되는 자본(임금기금)은 일정하며, 따라서 개별노동자의 임금은 임금기금을 노동자수로 나눈 몫이라는 이론이다. 밀 Mill, J. S. 은 임금은 자본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원료, 설비에 투하되는 자본과 같이 선대한 자본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데 착안하여 임금기금설을 수립하였다. 즉, 임금기금의 증가나 노동자수의 감소에 의하지 않고는 임금은 상승하지 않고, 또 기금감소나 노동자수의 증가에 의하지 않고는 임금은 하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임금인상은 다른 노동자의 희생으로 이루어지게 되기 때문에 노동조합에 의한 임금인상운동은 헛된 노력에 그치게 된다.[경제학사전, 조용범/박현채 감수, 풀빛편집부 편, 풀빛, 1988년]

이 임금기금설을 턴테이블에 걸고 거꾸로 돌리면 이 정부의 ‘잡셰어링’이 등장한다. 즉 이 사회가 임금지급에 충당되는 자본은 정해져 있으므로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으면 자본가들은 남는 자본을 소비할 목적으로 신규인력을 고용하게 된다는 원리다. 이건 단순히 웃어넘기기 어려운 블랙코미디다.

첫째, 경제가 심각하게 위축되고 있는 상황에서 각 기업들은 생산을 늘릴 수 있는 여지가 없고, 확장적인 계획보다는 수축적인 계획을 짜게 마련이다. 임금은 반절로 줄임에도 같은 생산력을 얻을 수 있는 기업이 굳이 설정된 노동비용을 지출하기 위해 생산력을 2배로 늘일 이유가 현재로서는 없는 것이다. 한 예로 해운업체들은 현재 기수주한 계약이 취소되고 있는 상황이다.

둘째, 임금이 줄어들면 노동자들의 가처분소득이 줄어 가뜩이나 위축된 소비가 더욱 줄어들게 된다. 수출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긴 해도 내수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경기진작 수단인데, 임금삭감은 이 시장을 포기하겠다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그나마 노동자들의 소비를 유지시켜주던 가계대출마저 어려운 상황이다.

셋째, 정부가 급기야 공공부문의 신규고용에 대해 임금을 삭감하라는 지시(!)를 내렸는데 계급 간의 갈등뿐 아니라 세대 간의 갈등까지 본격화시키자는 이야기나 진배없다. 벌써부터 이 소식을 전하는 인터넷사이트 게시판에 깎으려면 다 깎아야지 무슨 말이냐며 험한 소리가 오가고 있다. 물론 그 분노는 저 발상을 한 이들에게 향해야 함에도 그 공동의 피해자들이 이전투구하고 있는 모양새라 그것도 블랙코미디다.

이정환씨가 적절하게 지적하고 있듯이 대안은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감축이다. 또는 정 기업내부의 차원에서 임금삭감 – 꼭 그것이 궁극의 해법도 아님은 두말할 나위 없다 – 을 통해서라도 위기를 돌파하여야 한다는 노사간 합의가 있다면 그것은 기업 스스로의 경영상의 판단에 맡길 일이다. 이것을 정부 차원에서 밀어붙이겠다는 것은 박정희 식의 흘러간 ‘자본주의 계획경제’를 떠올리게 할 뿐이다.

밀의 저 이론은 1820년부터 1870년에 걸쳐 영국경제를 지배하는 이론이 되었으나 영국의 자본축적이 크게 증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의 임금이 상승하지 않자 말 자신이 그 이론을 포기하였다. 즉 떡줄 놈은 생각도 안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22 thoughts on ““잡셰어링”은 임금기금설의 변주곡

  1. egoing

    국가와 기업의 담합입니다. 말씀하신 부분 중 세대간의 분열로까지 치닫을꺼라는 부분에서 특히 공감했습니다. 어찌보면 부동산문제도 그런 것 같구요. 저희 부모님은 집이 있지만, 저는 집이 없으니까요. 우리는 싸워야 할까요? ;;;

    Reply
    1. foog

      지금은 일단 대기업들이 임금동결이라는 형태로 실질임금을 삭감하고 있지만 조만간 더 무서운 카드를 들고 나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습니다. .. 암튼 부모님과 싸우지 마시고 원만하게 협의하셔서 집을 물려받으시기를… ^^;

      Reply
  2. Pingback: ego + ing

  3. darius

    노동시간을 줄이기는 커녕
    재계의 지원으로 추진하는 서머타임제조차 노동시간 늘리기로 악용할텐데
    갑갑하네요.

    Reply
  4. 유바바

    우리의 가카 역시 짱입니다요.

    그냥 허울 뿐인 교회 장로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시장 ‘계획’ 경제의 전도사네요. 자신이 떠들고 다녔던 ‘컴도저’란 별명과 정확히 들어맞는 것 같습니다. (국밥 드시 듯) 경제를 말아 드시겠다는 저 도도한 행보에 넋을 잃고 갑니다.

    Reply
    1. foog

      요즘과 같은 민주화(!) 시대에 “가카”같은 권위주의적인 용어는 삼가해주시기 바랍니다. –;

      Reply
  5. oleg

    헨리조지의 책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거기서 임금기금설이랑 맬서스의 인구론을 와장창 깨버리는 논증을 합니다. 참 인상깊었는데 현 정부가 말하는 잡셰어링이 임금기금설에서 비롯된 것이군요 음

    Reply
  6. 우무리

    정말 단기적이 아니고 장기적도 아니고,, 초장기적으로 볼때… 건실한 중산계층이 많아야 국가가 유지될텐데.. 솔직히.. 현재와 같은 정부의 경제마인드를 가진 정권이 계속 된다면 30-50년 후에 우리나라가 어떻게 될까.. 경제적 문제로 아이들도 낳지 않고.. 정말 두렵군요.. 미국이나 일본보다도 인구증가 속도도 낮으면서 임금은 적고.. 임금 적은건 좋은데.. 상대 물가는 비슷하고.. 정말.. 한국에는 빨리 가고 싶은데.. 경제적 문제로 돌아가기 정말 두렵습니다..

    Reply
    1. foog

      지금 외국에 계신가보군요. 돌아오시기 전에 좋은 나라가 되어 있어야 할텐데 … 걱정이네요. –;

      Reply
  7. 생존자

    이대통령은 월급쟁이 CEO 출신이라 OWNER CEO들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것 같습니다. OWNER 사장들이 왜 불필요한 인력을 충원하겠습니까? 임금을 깍는다고 불필요한 인력을 채용할리는 절대로 없고요, 근로시간을 줄이면 필요한 노동력을 충원하겠지요..

    Reply
    1. foog

      그럴듯한 해석이시네요. 월급 시이오 출신이라 오너의 절박한(?!) 심정을 이해못하는 것인가요? 🙂 여하튼 필명이 왠지 와닿습니다.

      Reply
  8. Ha-1

    잡셰어링의 대안은 노동시간 분배가 아니라 ‘Asset Sharing’입니다. 자산의 대부분이 물려있다는 고정자산을 분배하면 될일이죠 ( ‘ ‘)

    Reply
    1. foog

      더 근본적인 대안경제를 이야기하자면 당연하 자산재분배가 답이죠. 적어도 일자리 나누기 차원에서만 논의하자면 대안은 노동시간 감축이랄 수 있지 않을까요? 🙂

      Reply
  9. Pingback: 정책공감 - 소통하는 정부대표 블로그

  10. NoVista

    지금도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은 (노동자 포함) 하루 12시간은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죠…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경쟁력을 가지려면.. 그 거 밖에 없다는.. 19세기 없어진 임금기금설의 망령이 압축성장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에선 너무도 당연하게 자리 잡은거 같아.. 씁슬합니다. 가카 깨서는 그걸 다시금 일깨워주셨죠…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Reply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