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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은행의 부동산PF 시장에서의 참여성향에 관해

이정환닷컴의 저축은행 관련 글 중 일부다.

17일 부산저축은행과 대전저축은행이 영업정지를 당한데 이어 18일 보해저축은행 등 4개 저축은행이 추가로 영업정지를 당하면서 금융시장이 패닉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자산규모 업계 1위인 부산저축은행은 이미 지난해 말부터 자본잠식상태인데다 유동성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였다. 특히 삼화저축은행 영업정지 이후 최근 하루 1천억원 이상 예금이 인출되면서 ‘뱅크런’ 위기에 내몰린 것으로 알려졌다.[저축은행 부실, 폭탄이 터지기 시작했다.]

일독을 권하며 그 글을 보충하는 의미에서 몇 자 적는다.

먼저 드는 의문은 왜 다른 금융기관보다 저축은행의 부동산 여신이 더욱 문제가 되는가 하는 점이다. 이는 우리나라 부동산 개발 사업의 독특한 사업구도에 기인한 측면이 강하다. 일단 전형적인 부동산 산업의 참여자들은 부동산 디벨로퍼, 건설사, 금융기관 등으로 구성된다. 일반적으로 디벨로퍼가 사업을 발굴하여 토지매입비 등 초기자본을 대며 위험을 가장 크게 부담하고, 건설사는 시설물 설치에 대한 일정위험을 분담하며, 이에 대해 금융권이 가장 낮은 위험으로 돈을 대주는 방식이 전형적이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서구에 비해 디벨로퍼의 역량이 많이 딸린다. 진정한 서구식의 자체 자금력과 기획력을 가진 디벨로퍼는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러다보니 토지매입 및 인허가의 위험이 존재하는 동안의 초기 사업자금을 누군가는 먼저 대야 하는데, 제1금융권은 이를 기피하고 결국 저축은행이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를 취하며 이 단계에 참여한다. 이를 전문용어(?)로 브릿지론(bridge loan)이라고 표현하는데, 금리가 높은 만큼 사업의 부실화 여부에 따라 원금손실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자금이다.

그렇다면 왜 저축은행은 더 높은 위험을 감수하고서 브릿지론에 참여하는가? 이는 저축은행의 본질적인 여수신 성향에 따른 것이다. 저축은행이라 함은 대부업보다는 신용도가 높은 서민 대상 금융기관으로, 일반적으로 제1금융권보다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제2금융권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높은 예금금리를 줄 수 있는 고수익 여신행위를 해야 하는데, 사실 일반서민을 상대로 일일이 그러한 대출을 한다는 것은 번거로운 일일 것이다. 그 와중에 때마침 나타난 아이템이 바로 부동산PF였던 셈이다.

2000년대 중반이후 후분양 제도와 부동산 경기 과열양상이 키운 대표적인 시장이 바로 부동산PF 시장이다. 프로젝트파이낸스라고 이름은 붙였으나 실질적으로 토지 등 부동산 자산 담보 대출 또는 시행사/시공사 신용대출 성격에 가까운 자금이었다. 브릿지론이라 하더라도 담보력이나 신용이 충분하다면 대세상승기에는 큰 위험이 없으므로 저축은행의 부동산PF 대출은 급격히 늘게 되었다. 하지만 상승세가 꺾이면서 장부가와 담보가 괴리가 생기면서 대출은 빠르게 부실화되었다.

부산저축은행이나 여타 저축은행들이 브릿지론만 손댔는지 아니면 본 사업의 선순위까지도 공격적으로 들어갔는지는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대충 저축은행과 부동산PF의 일반적인 상관관계에 대해서 서술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자면 여전히 저축은행의 부동산PF 대출은 부동산 시장의 등락에 제1금융권의 여신보다 더 많은 영향을 받는 여신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저축은행의 부동산 대출 정상화가 향후 금융권과 부동산 시장 정상화의 시금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 2000년대 이후 대규모의 부동산 개발붐 △ 후분양 제도 도입 등으로 인한 자금조달 규모 급증 △ 자금력 있는 디벨로퍼 부재라는 후진적 사업여건 △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의 대출을 취급하여야 하는 저축은행의 특성 등이 맞물리면서 저축은행의 대출 중에 부동산 관련 대출, 그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위험이 높은 대출의 비중이 늘어난 것이다. 한동안은 저축은행에 대한 시장의 불신, M&A 등 합종연횡, 부실 저축은행 정리 등으로 금융권이 혼란스러울 것으로 예상된다.

“잡셰어링”은 임금기금설의 변주곡

임금을 낮추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정부의 발상은 아주 오래 전에 폐기된 임금기금설을 연상시킨다.

일정 시기의 일정사회에서 임금지급에 충당되는 자본(임금기금)은 일정하며, 따라서 개별노동자의 임금은 임금기금을 노동자수로 나눈 몫이라는 이론이다. 밀 Mill, J. S. 은 임금은 자본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원료, 설비에 투하되는 자본과 같이 선대한 자본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데 착안하여 임금기금설을 수립하였다. 즉, 임금기금의 증가나 노동자수의 감소에 의하지 않고는 임금은 상승하지 않고, 또 기금감소나 노동자수의 증가에 의하지 않고는 임금은 하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임금인상은 다른 노동자의 희생으로 이루어지게 되기 때문에 노동조합에 의한 임금인상운동은 헛된 노력에 그치게 된다.[경제학사전, 조용범/박현채 감수, 풀빛편집부 편, 풀빛, 1988년]

이 임금기금설을 턴테이블에 걸고 거꾸로 돌리면 이 정부의 ‘잡셰어링’이 등장한다. 즉 이 사회가 임금지급에 충당되는 자본은 정해져 있으므로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으면 자본가들은 남는 자본을 소비할 목적으로 신규인력을 고용하게 된다는 원리다. 이건 단순히 웃어넘기기 어려운 블랙코미디다.

첫째, 경제가 심각하게 위축되고 있는 상황에서 각 기업들은 생산을 늘릴 수 있는 여지가 없고, 확장적인 계획보다는 수축적인 계획을 짜게 마련이다. 임금은 반절로 줄임에도 같은 생산력을 얻을 수 있는 기업이 굳이 설정된 노동비용을 지출하기 위해 생산력을 2배로 늘일 이유가 현재로서는 없는 것이다. 한 예로 해운업체들은 현재 기수주한 계약이 취소되고 있는 상황이다.

둘째, 임금이 줄어들면 노동자들의 가처분소득이 줄어 가뜩이나 위축된 소비가 더욱 줄어들게 된다. 수출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긴 해도 내수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경기진작 수단인데, 임금삭감은 이 시장을 포기하겠다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그나마 노동자들의 소비를 유지시켜주던 가계대출마저 어려운 상황이다.

셋째, 정부가 급기야 공공부문의 신규고용에 대해 임금을 삭감하라는 지시(!)를 내렸는데 계급 간의 갈등뿐 아니라 세대 간의 갈등까지 본격화시키자는 이야기나 진배없다. 벌써부터 이 소식을 전하는 인터넷사이트 게시판에 깎으려면 다 깎아야지 무슨 말이냐며 험한 소리가 오가고 있다. 물론 그 분노는 저 발상을 한 이들에게 향해야 함에도 그 공동의 피해자들이 이전투구하고 있는 모양새라 그것도 블랙코미디다.

이정환씨가 적절하게 지적하고 있듯이 대안은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감축이다. 또는 정 기업내부의 차원에서 임금삭감 – 꼭 그것이 궁극의 해법도 아님은 두말할 나위 없다 – 을 통해서라도 위기를 돌파하여야 한다는 노사간 합의가 있다면 그것은 기업 스스로의 경영상의 판단에 맡길 일이다. 이것을 정부 차원에서 밀어붙이겠다는 것은 박정희 식의 흘러간 ‘자본주의 계획경제’를 떠올리게 할 뿐이다.

밀의 저 이론은 1820년부터 1870년에 걸쳐 영국경제를 지배하는 이론이 되었으나 영국의 자본축적이 크게 증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의 임금이 상승하지 않자 말 자신이 그 이론을 포기하였다. 즉 떡줄 놈은 생각도 안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한RSS에서 내 블로그가 정치 블로그로 분류되는 이유

민노씨께서 내가 가끔 찝찝하게 생각하던 부분을 잘 지적해주셨다. 한RSS라는 국내 최고의 RSS 구독 사이트에서 블로그들을 카테고리별로 분류해놓았는데, 민노씨가 보기에 이 분류가 합당치 않다는 것이다. 민노씨가 든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그 자신이 속해있는 ‘정치’ 카테고리다. 그 곳에는 박노자씨의 블로그를 비롯하여 이정환씨의 블로그, 그리고 내 블로그도 속해있다. 민노씨는 내 블로그를 예로 들면서 블로거가 굳이 소개에 “경제관련 Blog”라고까지 했는데 “정치에 잡아두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셨다.

사실 내가 블로그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은 해외의 파워블로거들이 상상도 못할 수입을 얻고 있다기에 물질적 보상에 눈이 어두워서였으니 그 동기로 치자면 당연히 “경제” 블로그다. 여하튼 이후 포스팅도 거의 잡식성이긴 하나 글의 비율로 치자면 경제 관련 글이 가장 많긴 하다. 그런데 왜 한RSS는 나를 “정치에 잡아두고” 있을까? 나는 이것이 비단 한RSS뿐만이 아닌 메타블로그, 나아가 사람들의 정서가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즉 내 생각에 사람들이 경제현상 제반에 대한 고찰(economy 또는 economics), 나아가 정치경제학적인 고찰(political economy)은 정치(politics)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 편견에 따르면 경제는 business다. 즉 돈이 되는, 또는 투자와 관련된 그 무엇을 말한다. 다른 예로 올블로그에서도 ‘올블로그 어워드 2008’이라며 후보 추천이 진행 중인데 여기에서도 “전문 부문”을 볼 것 같으면 분류가 ‘경제 분야’가 아닌 ‘비즈니스 분야’다.


올블로그 어워드 2008 추천분야

실제로 한RSS가 경제 카테고리에 분류해놓은 RSS중 경제신문을 제외한 일반인들의 블로그 성격을 볼 것 같으면 대부분 투자, 재테크, 주식에 관한 블로그들이다. 물론 그들 블로그 역시 거시경제에 대한 분석 글도 상당수 실리기도 하지만 투자적인 관점에서의 분석이 주가 된다. 그것들이 옳고 틀린가를 따지는 것이 아니고, 그러한 경제고찰에 있어 관점의 차이가 내 블로그와 이정환씨의 블로그와 같은 유의 관점과 대별되는 점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것이 한RSS를 비롯한 사회일반이 정치경제적 관점을 경제로 보기보다는 정치로 보는 이유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넷상에 계속하여 펌질되고 있는 것 같은 소위 ‘경제관련 사이트 모음’이라는 글에 천형처럼 붙여진 내 블로그에 대한 딱지를 짤방으로 소개.


“시스템에 대한 비판주의”! 이정환닷컴이 더 하다오~

造反有理

조반유리(造反有理). 솔직히 사자성어로써는 그 근원이나 역사가 너무 짧다. 더군다나 그 근원도 구리다. 질풍노도의 시기에 만들어진 단어라 아직도 이 단어를 들으면 몸서리쳐질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정환님으로부터 숙제를 넘겨받은 순간부터 이 단어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한때 이 단어에 집착한 시절이 있었다. 세상은 정반합(正反合)의 변증법적 유물론(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 사관으로 움직이고 ‘반(反)’은 그것의 방아쇠라고 생각했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잘 모르겠다.(워낙에 생각없이 사는 놈이라) 이제는 노쇠한 몸과 마음으로 그 패기어린 시절에 이 단어에 대해 느끼던 심정의 절반도 채 와 닿지 않는 것 같지만 그래도 ‘반(反)’은 여전히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다. 반이 없었으면 세상은 – 지금보다 더 진한 – 똥냄새로 진동했을 것이다.

다음 이 숙제를 할 이로 펄님과 포카라님을 지명한다.(두 분 다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지도.. OT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