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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이 없는 우리나라의 ‘일자리 나누기’

일본경제신문은 일본 기업 단체(일본 경제단체 연합회, 이하 경단련)와 노조단체(일본 노동조합 총연합회, 이하 연합)의 양자간에 근로자의 노동시간을 단축하여 고용을 유지하는 잡셰어링의 도입을 위한 논의를 재개하고 있다고 보도(1/8)[최근 일본의 Job Sharing 도입 논의와 전망, 한국은행 해외조사실, 2009. 2.21, p2]

이 부분을 보면 우리나라나의 일자리 나누기와 일본의 그것의 근본적인 차이를 알 수 있다. 1) 우리나라는 임금을 깎아서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발상이고 일본은 노동시간을 단축하여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발상이다. 2) 우리나라는 정부가 하향식으로 공공기관의 임금을 강압적으로 깎는 방식이고 일본은 노사간의 논의를 통한 방식이다. 네덜란드, 프랑스 등 여타 국가도 일본과 진행양상이나 추진방식은 매한가지다.

물론 일본에서의 일자리 나누기 추진현황이 반드시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무조건적으로 따라할 수 없는 특수상황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예나 다른 나라의 예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공통의 보편적인 원칙은 바로 이해당사자 간의 소통이다. 일자리 나누기는 첨예한 이해관계가 대립될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다. 그러나 그 현장에 여태 그래왔던 것처럼 소통은 찾아볼 수 없다.

“잡셰어링”은 임금기금설의 변주곡

임금을 낮추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정부의 발상은 아주 오래 전에 폐기된 임금기금설을 연상시킨다.

일정 시기의 일정사회에서 임금지급에 충당되는 자본(임금기금)은 일정하며, 따라서 개별노동자의 임금은 임금기금을 노동자수로 나눈 몫이라는 이론이다. 밀 Mill, J. S. 은 임금은 자본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원료, 설비에 투하되는 자본과 같이 선대한 자본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데 착안하여 임금기금설을 수립하였다. 즉, 임금기금의 증가나 노동자수의 감소에 의하지 않고는 임금은 상승하지 않고, 또 기금감소나 노동자수의 증가에 의하지 않고는 임금은 하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임금인상은 다른 노동자의 희생으로 이루어지게 되기 때문에 노동조합에 의한 임금인상운동은 헛된 노력에 그치게 된다.[경제학사전, 조용범/박현채 감수, 풀빛편집부 편, 풀빛, 1988년]

이 임금기금설을 턴테이블에 걸고 거꾸로 돌리면 이 정부의 ‘잡셰어링’이 등장한다. 즉 이 사회가 임금지급에 충당되는 자본은 정해져 있으므로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으면 자본가들은 남는 자본을 소비할 목적으로 신규인력을 고용하게 된다는 원리다. 이건 단순히 웃어넘기기 어려운 블랙코미디다.

첫째, 경제가 심각하게 위축되고 있는 상황에서 각 기업들은 생산을 늘릴 수 있는 여지가 없고, 확장적인 계획보다는 수축적인 계획을 짜게 마련이다. 임금은 반절로 줄임에도 같은 생산력을 얻을 수 있는 기업이 굳이 설정된 노동비용을 지출하기 위해 생산력을 2배로 늘일 이유가 현재로서는 없는 것이다. 한 예로 해운업체들은 현재 기수주한 계약이 취소되고 있는 상황이다.

둘째, 임금이 줄어들면 노동자들의 가처분소득이 줄어 가뜩이나 위축된 소비가 더욱 줄어들게 된다. 수출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긴 해도 내수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경기진작 수단인데, 임금삭감은 이 시장을 포기하겠다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그나마 노동자들의 소비를 유지시켜주던 가계대출마저 어려운 상황이다.

셋째, 정부가 급기야 공공부문의 신규고용에 대해 임금을 삭감하라는 지시(!)를 내렸는데 계급 간의 갈등뿐 아니라 세대 간의 갈등까지 본격화시키자는 이야기나 진배없다. 벌써부터 이 소식을 전하는 인터넷사이트 게시판에 깎으려면 다 깎아야지 무슨 말이냐며 험한 소리가 오가고 있다. 물론 그 분노는 저 발상을 한 이들에게 향해야 함에도 그 공동의 피해자들이 이전투구하고 있는 모양새라 그것도 블랙코미디다.

이정환씨가 적절하게 지적하고 있듯이 대안은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감축이다. 또는 정 기업내부의 차원에서 임금삭감 – 꼭 그것이 궁극의 해법도 아님은 두말할 나위 없다 – 을 통해서라도 위기를 돌파하여야 한다는 노사간 합의가 있다면 그것은 기업 스스로의 경영상의 판단에 맡길 일이다. 이것을 정부 차원에서 밀어붙이겠다는 것은 박정희 식의 흘러간 ‘자본주의 계획경제’를 떠올리게 할 뿐이다.

밀의 저 이론은 1820년부터 1870년에 걸쳐 영국경제를 지배하는 이론이 되었으나 영국의 자본축적이 크게 증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의 임금이 상승하지 않자 말 자신이 그 이론을 포기하였다. 즉 떡줄 놈은 생각도 안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