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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청년에게 각자도생 이외의 대안을 내놓지 않으면서 “아프니까 청춘”이란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특히 젊은 층일수록 부동층의 비중이 높아서 정치권이 표심을 잡기 위해 열중하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기사는 새삼스러울 것이 없으나 나의 눈길을 잡아끈 것은 그 기사의 ‘베스트 댓글’이었다. (아래 참조) 이글을 쓴 사람들은 그 정치적 성향을 굳이 나누자면 “진보”측으로 여겨진다. 흔히 진보진영에서는 보수적인 투표성향의 노인층에 대항하여 청년층이 투표를 해야 한다는 – 즉 청년층은 야권을 지지할 것이라는 – 기대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젊은 부동층은 벚꽃구경가느라 투표안한다. 지들 앞길을 지들이 망친다.”
“10대 20대에서 43%. 그러나 투표를 하는 사람은 4.3% 정도??”

실제로도 청년층의 대통령 지지도를 보면 反여권 성향이 강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관계를 제외하고는 위 베스트 댓글이 비아냥대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여태의 투표에서도 청년층의 투표율은 결코 낮지 않았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그렇게 투표해서 뽑은 정치권이 실제로 청년층을 위해 한 일은 그리 많지 않다.1 이는 주요하게 이미 청년층의 비중이 갈수록 작아지는 과소대표성 경향을 보이고 있고, 정치권이 이를 간파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2014년 ILO 보고서는 각국 청년의 교육 및 고용현황을 비교하였는데, 이를 보면 우리 청년의 열악한 처지가 잘 드러난다. 보고서에는 1996년 및 2006년 각국의 교육수준을 지수로 표현해놓았는데, 우리나라는 각각 5.96과 7.34를 기록하였다2. 이 수치는 각 년도 2위, 1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반면 성인소득 대비 청년소득과 고용률은 1996년 꼴찌에서 두 번째, 2006년에는 꼴찌를 기록했다. 요컨대, 남한은 최고 수준의 고등교육을 받은 청년이 가장 열악한 고용수준에 시달리는 나라다.

각국 노동시장에서의 청년층의 교육수준

출처 : At work but earning less : minimum wages and young people, Damian Grimshaw, ILO, 2014, p13 에서 재구성

성인소득 대비 청년소득

출처 : 같은 보고서 p16 에서 재구성

청년고용률

출처 : 같은 보고서 p16 에서 재구성

다시 정치권으로 돌아가 보자.. 청년의 상황이 이러한데 앞서도 언급하였다시피 정치권이 청년층을 위해 한 일은 별로 없다. 많은 청년층 노동자들이 해당사항일 최저임금을 올리는데 인색하던 여권이 부랴부랴 총선공약으로 최저임금 인상을 내놓았지만, 이런 그들이 또 지자체에서 실시하던 청년수당에 대해서는 예의 “포퓰리즘”이라고 맹비난한 바 있다. 보수층은 “흙수저”3, “헬조선”이란 유행어에 ‘배부른 소리 하지 말라’며 비난하고, 진보층은 투표를 안 해서 그런 것이라 비아냥댄다.

이 나라는 여태의 노동자와 자본가의 역학구도도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상황이다. 그 와중에 노년층은 정치4, 경제5, 문화6 등에서 권력을 잡고 기득권을 놓지 않고 있어 노자(勞資)간의 대립에 중층적으로 고통 받는 新노동계급이 형성되고 있다. 더군다나 젠더의 문제로 가면 한층 복잡해진다. 남녀간 임금차이는 세계최고 수준이고 문화적으로도 “여혐”문화가 일상화되고 있다. 고통 받는 청년, 여성, 노동의 이슈가 맞물려 피해의식을 특정계층에 쏟아 붓는 양상으로 추측되는 상황이다.

사회가 청년에게 各自圖生 이외의 대안을 내놓지 않으면서 “아프니까 청춘”이란다

“일탈적인” 반세기가 끝난 세계, 그리고 한국

지난 50년간 전 세계의 경제성장은 예외적으로 빨랐다. 세계 경제는 여섯 배 확대되었다. 일인당 평균 임금은 세 배로 늘었다. 수억 명의 사람들이 가난에서 벗어났다. [중략] 문제는 느린 인구성장과 더 긴 수명이 근로연령 인구의 성장을 제한한다는 점이다. [중략] 1964년에서 2014년까지 고용과 생산성은 각각 연평균 1.7%와 1.8% 씩 성장했고, 이 결과 고용인당 평균 생산액은 2.4배 증가했다. [중략] 최종적인 결론에 따르면 다음 50년 동안 고용은 불과 연 0.3% 증가할 것이다. [중략] 따라서 생산성 증가율이 지난 반세기의 빠른 속도를 따라잡는다 하여도 전 세계 GDP 성장률은 여전히 연 2.1% 가량에 해당하는 40% 까지 하락할 것이다.[Can long-term global growth be saved?]


출처 : 맥킨지 웹사이트

맥킨지는 지난 50년간의 경이적인 경제성장을 “역사의 일탈(an aberration of history)”이라고 표현했다. 실로 전 세계적으로 GDP가 매년 3.8% 증가하는 상황은 확실히 “일탈,탈선,기행”이라 할만 하다. 특히 한국과 같은 일부 혜택 받은 “개발도상국”은 한때 10%대의 성장률을 보이기도 했으니 가히 광란의 질주라 할 만하다. 맥킨지는 이런 일탈적인 성장이 가능했던 한 주요요인으로 인구성장을 꼽았고, 인용한 보고서는 이 경향을 분석한 것이다. 그리고 보고서는 현재 “인구 순풍(demographic tailwind)”이 “역풍(headwind)”으로 바뀌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보고서는 심지어 노동가능인구가 이미 줄어들고 있는 나라도 있으며, 한국은 2024년부터 줄어들기 시작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보고서는 이런 나라들은 여성, 청년, 고령층의 고용을 독려하여야 한다는 조언을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이를 위한한 조치로 현재 눈에 띄는 것은 주요기업들의 정년 연장 정도다. “경력단절” 여성들의 고용활성화 조치는 남녀 간 임금격차가 세계 최악 수준인 이 나라의 상황에서는 생색내기 정책에 불과했고, 청년 고용에 힘이 될 최저임금을 – 만만치않게 열악한 수준인 – 일부나마 올리려는 조치는 재계의 강한 반발을 야기하고 있다.


출처 : vox.com

기업들은 이런 고용상황 개선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로 흔히 어려워지고 있는 경영 상황을 들고 있다. 이익이 나지 않아 신규 고용이나 노동조건 개선이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 상장기업의 최근 실적을 보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금융위기 등 대내외적인 여건은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출은 2009년 이후 꾸준히 성장했다. 영업이익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기는 했지만 소폭의 하락이었고 이마저도 국내 상장기업 영업이익의 25%를 차지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효과를 제외하면 4.4%(2012) → 4.1%(2013) → 4.5%(2014)로 꾸준한 영업이익률을 시현하고 있다.

앞서의 글에서도 보았듯이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수준은 지극히 위험한 수준이다. 10년도 안 되어 노동가능 인구는 줄어들기 시작할 것이다. 성장을 떠받들 생산 및 소비계급의 상황이 양적으로도 줄어들고 질적으로도 악화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경기활성화는 부채주도형이 아닌 소득주도형이 되어야 함은 물으나 마나다. 그렇기에 금리인하는 단기적인 미봉책일 뿐이다. 정부와 재계가 이전 반세기의 경제성장, 그리고 그에 맞물린 인플레이션은 달성불가능하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경기선순환적인 복지와 노동여건 개선이 대책임을 공감하여야 한다.

미국의 고용상황과 그 해법에 관한 짧은 다큐멘터리

지난번에 소개한 Econ4 라는 사이트에서 첫 작품을 내놓았다. 미국의 고용상황을 중심으로 경제전반을 훑으면서 고용창출에 있어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정부가 그렇게 하기 위해서 세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현 상황은 어떠한지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12분 정도의 짧은 길이고 그래프 등 관련 데이터도 풍부하게 들어가 있기 때문에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해도 내용을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으므로 영어공포증이 있으시더라도 한번 보시길.

박근혜 씨와 문재인 씨의 일자리 공약에 대한 비교

민주통합당이 최근 문재인 씨를 당의 대선후보로 확정했다. 새누리당은 진작 박근혜 씨를 후보로 정했기에, 이로써 오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양대 정당의 공식후보가 확정된 것이다. 이전의 선거판에서 벌어졌던 경선불복에 따른 독자출마와 같은 소리를 듣지 못했으니, 범야권 후보로 분류되는 안철수 씨가 대선출마를 공식발표하면 주요한 후보들의 선거판은 대충 짜일 것으로 보인다.

이번 선거의 키워드는 ‘경제’다. 정치적 대립이 치열했던 예전 선거에서는 “민주 對 반민주”의 대결이 주요이슈였고, 지난 선거에서는 경제 이슈가 주요이슈이긴 했지만 우파의 “좌파정치 종식”이란 정치적 프로파간다 역시 한 축이었다. 이번엔 박근혜 씨가 독재자의 딸로서 퇴행적인 역사인식이 문제가 되고 있기는 하지만, “경제민주화”란 이슈를 선점하면서 경제로 쟁점이 수렴될 전망이다.

경제 중에서도 현재까지는 “경제민주화”란 키워드가 논의되고 있다. 사실 이 표현은 그 뜻에 대해 새누리당 내에서조차 김종인 씨와 이한구 씨가 날을 세우고 있을 정도로 두루뭉술한 표현이다. 김상조 교수는 칼럼에서 “경제민주화가 뭔지에 대해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하나의 정답이 제시되어 있지는 않다”고 하였고 나 역시 동의한다. 선거판은 결국 각론의 경제 이슈로 쪼개질 것이다.

각론을 먼저 치고 나온 것은 문재인 씨다. 공식후보로 선출된 직후 그의 첫 행보는 현충원 방문이었고, 그 다음이 ‘일자리창출을 위한 각계 대표 간담회’ 참석이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일자리 대통령”을 자임하며, 일자리 문제를 대선 이슈로 제시했다. 우리나라는 현재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몇몇 국가 수준은 아니지만 실업문제가 심각한 사회이슈가 되어 오고 있는 데에 대한 반응일 것이다.

이 이슈에 대한 두 후보의 공약 중 흥미로운 점은 둘 다 “노동”이란 단어를 피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신 박근혜 씨는 “고용복지”, 문재인 씨는 “일자리”란 표현을 쓰고 있다. 두 후보 모두 노동이라는 큰 틀 내에서의 한 형태인 고용에만 시선을 돌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고용이 창출되었다 하더라도 그 속에서 발생하는 허다한 모순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물론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양 후보 간 차이는 분명히 있다.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문재인 씨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실현, ‘일자리 인권’ 보장, 대기업의 불법파견과 위장도급 근절 등 이미 창출된 고용 내에서의 문제를 전향적으로 접근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특히 “성, 고용형태, 연령, 장애, 종교 및 사회적 신분에 따른 일체의 차별을 금지”하는 ‘전 국민 고용평등법’ 제정공약은 매우 신선하다.

우려되는 부분은 이런 공약에도 불구하고 간담회에서 문 씨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근무시간 단축 등이 기업에 부담을 줄 수 있으니 정부지원을 검토하겠다고 언급한 대목이다. 비용증가에 대한 기업의 적개심을 누그러뜨리려는 발언이겠지만, 이는 그가 이미 제시한 일자리 공약을 무시 내지는 희석시키는 발언이다.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겠다는 강행조치가 어느새 정부지원으로 변한 것이다.

애초에 고용의 질을 향상시킴에 따른 기업부담을 지원하겠다는 공약을 낸 것도 아니고, 노동자의 능력 이외의 차이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겠다는 인권적 차원에서의 선진적인 입법을 공약으로 내걸었으면서도, 바로 그 이슈에 대해 후보로 선출되자마나 정부지원을 언급하는 것은 그리 탐탁스럽지 않다. 그렇다면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을 지원하는 셈이니 종교에 따른 차별도 정부에서 지원할 것인가?

물론 정규직 전환이나 근무시간 단축이 기업의 부담을 증가시킬 개연성은 크다. 그러한 현실을 감안하더라도 기업은 그간 비정규직 노동의 남용과 OECD 최장의 근무시간의 열매를 향유하여온 것 또한 사실이다. 파견직 활용과 같은 불법행위도 이미 법정으로부터 그 불법성을 판결 받은 상태지만 기업은 개선할 생각을 안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은 정부/기업간 협의의 단계가 아닌 ‘평등법’과 같은 강행법규의 제정이 답이다.

한편, 이 이슈에 대한 박근혜 캠프의 생각은 어떠할까? 박 씨의 사이트에서 그가 주최하여 열린 ‘고용복지 정책세미나’ 자료를 보았다. 이 자료는 전반적으로 고용과 복지 문제가 혼합된 정부의 공적 부조에 관한 이슈에 집중되어 있다. 정규직 전환 이슈는 ‘청년인턴’의 정규직 전환시 기업에 보조금을 제공한다는 내용이 유일하다. “비정규직”이란 단어는 그들이 고용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였다는 언급에 딱 한번 등장한다.

즉, 박 씨가 내놓은 자료는 최근 노동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러저러한 갈등에 대한 언급은 없이 빈곤층에 대한 통합급여 체제의 부작용, 근로장려세제 확대개편, 정부의 고용서비스 품질 개선 등 빈곤층 등에 대한 복지 이슈에 집중하고 있다. 고용 이슈는 이러한 복지 이슈에 끼워 넣은 듯한 인상이 역력하다. 그의 자료에는 장시간의 근로시간, 나쁜 일자리의 급증과 같은 모순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박 캠프와 문 캠프의 노동공약을 비교해보면 확실히 문 캠프의 현실인식과 그 대안이 시의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전 국민 고용평등법’은 법제화가 될 경우 큰 보탬이 될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 씨 스스로가 “나쁜 일자리”가 크게 증가한 데에 한 몫을 했던 이로서의 한계도 극복하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의 부담”을 운운한 그의 기회주의적 발언은 무척 아쉬운 대목이다.

노무현이 꿈꾸었던 산업고도화 전략은 유효했을까?

먼저 인용문에 링크되어 있는 그래프들을 살펴보기 바란다.

제조업관련 종사자는 1972년 23.7%를 차지하였으나 지금은 불과 9%정도로 줄어들게 되었다. 미국은 지금도 여러가지를 제조해내고 있으나 기술의 발전에 따라 고용이 차지하는 비율은 크게 줄어든 것이다.[美고용상황의 변화]

미국의 40년 동안의 업종별 고용상황의 변화를 표현한 그래프다. 인용문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한때 제조업의 최강국이었던 미국은 이 분야의 고용인력이 전체고용의 2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았으나 오늘날엔 9%에 불과할 정도로 쇠락하고 말았다. 그럼 이들 고용은 어디로 간 것일까?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듯이 대부분 새로운 “제조업 강국”인 중국이나 NAFTA 등 미국의 자유무역협정을 맺고 있는 곳의 전진기지로 옮겨갔을 것이다.

한편 이 기간의 다른 업종의 변화를 보면, 고급 서비스 업종이라 할 수 있는 ‘프로페셔널/비즈니스 서비스’의 비중이 두 배 이상 많아져서 산업구성이 고도화되어왔음을 알 수 있다. 특이하게도 금융서비스는 동 기간 5.3%에서 5.8%로 거의 변화가 없다. 2008년 월스트리트의 위기를 경험한 이들이 미국의 금융업에 대해 느끼는 의미가 1972년의 그것보다 훨씬 더 클 것임에도 실은 고용비중으로 보면 거의 변화가 없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20130620-1011181998~2012년간 미국의 업종별 고용비율 변화 추이

그렇다면 이렇게 고용의 구성이 달라지는 와중에 업종별 생산의 비중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미상공회의소의 경제분석국 자료를 바탕으로 재구성해본 바에 따르면, 1948년에서 2010년까지의 기간 동안 제조업과 금융업의 GDP 대비 비중은 거의 X자를 그릴 정도로 그 위치가 바뀌었다. 제조업은 동기간 꾸준히 고용이 감소한 반면, 금융업은 고용이 증가하지 않는 상태에서 비중을 늘여갔다. 이는 금융업의 인당 부가가치가 제조업보다 높았음을 의미한다.

20130620-1020481947~2012년 미국의 업종별 생산의 GDP대비 비중 변화 추이

바로 이러한 특성 때문에 개발도상국들은 간혹 금융업 육성을 통한 경제의 고도화라는 유혹을 느끼곤 한다. 경제발전이 일정수준 이상으로 올라가면 임금이 높아져 제조업 경쟁력이 떨어지므로 부가가치 창출이 더 용이한 금융업으로 산업을 고도화하여 경제를 재편하자는 아이디어 말이다. 노무현 정부 역시 “동북아 금융허브”라는 구상을 가지고 있었고, 혹자는 한미FTA도 이러한 산업고도화 전략의 연장선상에서 추진한 것으로 짐작하기도 한다.

정부는 단기적으로는 자산운용업 위주의 특화 금융허브를 구축하고, 장기적으로는 글로벌금융허브를 어느 정도 지향하는 금융허브 구축을 계획하고 있음. 단기적으로는 싱가포르를 모델로 하나, 장기적으로는 런던을 모델로 하면서 아시아 3대 금융허브로의 발전을 구상.[정부의 동북아 금융허브 구상‎, 현대경제연구원(2005년 5월)]

오이겐 뢰플러 하나알리안츠투신 사장도 “한국의 금융규제가 여전히 많다”며 “금융중심지가 되기 위해서는 자본의 원활한 유입과 유출이 확실하게 보장돼야 하며 규제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밖에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세금부담 경감 △외국어 실력 배양 △통관시스템 개선 △자유무역협정(FTA) 확대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인수위에 건의했다.[외인CEO”동북아중심,규제완화부터”]

이러한 산업고도화 전략이 유효할까? 신용위기의 거품이 꺼지고 난 후 적지 않은 이들이 이러한 전략의 위험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우선 미국은 기축통화국이자 세계금융의 중심지라는 독특한 지위 속에서 금융의 유동화/증권화 전략을 통해 신용을 창출하여 부가가치를 높였다. 그 결과는 과잉신용으로 인한 붕괴였다. 지속가능성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된 셈이다. 아이슬란드같이 이 모델을 어설프게 흉내 낸 나라의 은행가들은 지금은 어부가 되었다.

금융의 고도화가 신기루에 불과한 엉터리 발전모델은 아니지만 제조업의 고도성장과 같은 접근방식으로 밀어붙여서 될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는 한미FTA 등의 문화충격을 통해 이를 단기간에 밀어붙이려 했던 정황이 있다. 이전 정부들의 압축성장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더불어 과연 그러한 양적성장 중심 모델이 지속가능한 것인가 하는 문제도 있다. 아래 표는 미국의 고용소득과 배당소득 추이를 보여준다.


(출처 : cfr.org)

제조업의 고용이 줄어들고 금융업의 부가가치 창출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와중에 절묘하게도 미국의 소득비중에서도 노동소득은 감소하고 배당소득은 증가했다. 배당소득의 상당부분이 주식을 소유할 능력이 되는 상류층에 돌아갈 것이라는 개연성을 감안할 때, 이런 소득원별 비중의 변화는 소득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지표일 것이다. 그리고 금융업의 고도화 – 특히 LBO와 같은 M&A 시장의 발달 – 는 이런 경향을 부추겼을 것이다.

이미 우리나라는 삼성경제연구소와 같은 연구소에서조차 그 심각성을 지적할 만큼 소득저하 및 가처분소득의 감소로 인한 내수부진이 심각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제조업의 저임금 국가로의 이전이나 파견직 확대 등을 용인하면서 금융업 발전을 대안으로 설정하게 되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제조업 고용의 양과 질은 줄어들고 금융업의 고용은 그에 상응하게 창출되지 않고 내수는 감소하게 될 것이다. 미국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하나의 교훈이다.

세라 페일린, 기업소득세 폐지를 주장하다

페일린은 세금 낭비, 기업에 대한 특혜, 그리고 구제금융의 중단과 함께 연방기업소득세의 폐지를 요구했다. “이것이 우리가 정실 자본주의를 끝내는 방식인데, 이것들이 바로 거부들을 위한 사회주의 일뿐인 기업 특혜를 조장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이어 말하길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습니다.”[Sarah Palin, in Iowa, attacks Obama and ‘crony capitalism’]

지난번 글에서도 이야기했듯이 기업에 대한 구제금융 폐지와 세금감면을 – 페일린은 더 나아가서 세금 폐지 – 함께 엮는 것은 미국식 보수의 한 주요세력이라 할 수 있는 리버타리안에게는 매우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구호다. 이들은 무능한 정부가 문제가 아니라 도널드 레이건이 주장한 것처럼 “정부가 우리 문제의 해답이 아니라, 정부 그 자체가 문제(government is not the solution to our problem; government is the problem.)”라고 주장한다. 그러다보니 선동자들은 구제금융이라는 눈에 보이는 정부의 뻘짓을 앞에 내세워 정부의 존재의의 중 하나인 과세권 자체를 박탈하려는 시도를 손쉽게 할 수 있다.

페일린이 아이오와에서 했다는 연설 일부분을 소개한 인용문을 보면, 이런 전형적인 그들의 수법을 알 수 있다. 페일린은 서민들 앞에서 정부가 “부자들을 위한 사회주의”를 조장하고 있으니 이를 끝내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언뜻 민주당 내지는 좌파의 주장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포퓰리즘적인 주장이다. 하지만 결국 구제금융과 함께 기업소득세를 폐지하자는 주장으로 가면서 전형적인 리버타리안의 주장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야말로 정부는 ‘뭘 해도 하지 말라’는 소리인 셈이다. 정부가 세금보조를 통해 기업경제의 시너지 효과를 높이는 인프라에 투자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물으면 그들이 어떻게 대답할지 궁금하다.

한편, ‘티파티의 지지를 받고 있는 여성정치인’이라는 특징을 공유하고 있는 미쉘 바크먼은 이러한 페일린의 공세에 어떠한 반응을 보였을까? CBS의 이러한 물음에, 그는 페일린보다는 더 지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기에 “세금 코드의 근본적인 재구성(a fundamental restructuring of the tax code)”을 통해 가능하리라 여겨진다고 대답했다. 세금 폐지가 얼마나 극단적이고 반지성적인 표현인가를 알고 있기에, 그렇다고 막연히 대립각을 세울 수 없기에 페일린이 알아들을 수 없는 표현으로 교묘히 상황을 비켜간 것이다. 하지만 그역시 기업의 해외수입에 대한 과세를 없앨 것을 주장하는 극단주의자이기도 하다.

‘기업의 과세부담을 줄여주면 고용을 늘일 것이다’라는 반복되는 주장은 과연 맞는 말인가? 이 주장과 반대 주장은 기업과세가 일반화된 이래, 복잡한 생태계를 가지고 있는 경제시스템에서 특정변수가 다른 변수들보다 더 설명력을 가진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서로 제시할 수 없기에, 오랜 기간 양 측 모두에게 하나의 실천적 구호로 머물고 있다. 하지만 1990년대부터 일상화된 자본의 세계화와 ‘고용 없는 성장’의 악순환은 감세 반대 측에 더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기업이익이 증가되고 있는 와중에도 경제위기를 핑계삼아 해고를 일삼은 행위 – 내가 이름붙이길 ‘우천시 무단방류’ – 역시 한 논거가 될 수 있다.

요컨대, 세라 페일린이 정부의 모든 정실 자본주의적인 기능을 제거하고 싶으면 정부가 일삼고 있는 모든 직간접 행위 일체의 폐지를 주장하면 될 것이다. 우선 그가 주장한 기업에 대한 특혜, 구제금융, 기업소득세의 폐지가 우선이고, 그 다음에 정부비용으로 지불되고 기업이 싼 값에 이용하는 각종 인프라에 대한 보조중지 및 이용가격 현실화, 정부가 제도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기업지원제도, 나아가 기업의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정부의 각종 감독청들의 폐지, 기업의 사유재산 보호를 위해 겹겹이 만들어 놓은 사법 시스템의 종식 등등. 실질적인 야만의 시대로 접어드는 것이 페일린의 소원이라면.

한편 매일경제는 세라 페일린을 무려 “세계지식포럼”에 초대해 얼굴마담으로 쓸 예정이다.

현재의 고등교육은 질 높은 고용으로 이어질 것인가?

The item in the news commentaries that really jumped out at me, though, was the level of Spain’s unemployment. This country, a large European economy, has an unemployment rate of 21.3% and, more disturbingly, a youth unemployment rate above 40%. [중략] And that brings me to the dollar. There have been mutterings that the dollar’s days as the world’s reserve currency are numbered. Perhaps, but what are the alternatives if the Euro falls apart? [중략] The dollar became the world’s reserve currency because the U.S. economy was really big, really vibrant (still is, even with the crash from which it’s recovering much better than most), and really mature.
뉴스 보도에서 날 정말 놀라 뛰어오르게 했던 아이템은 스페인의 실업률 수준이었다. 이 나라는, 유럽 경제에서도 큰 편인데, 실업률이 21.3%였고, 더 불안하게도, 청년 실업률이 40%를 넘어서고 있었다. [중략] 그리고 이런 점 때문에 난 달러를 주목한다. 세계 기축통화로써의 탈러의 시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불평이 많다. 아마도, 그러나 유로가 떨어진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중략] 달러는 미국경제가 진정으로 크고, 진정으로 활기차고 (여전히 그러한데, 위기에도 불구하고 어느 때보다도 더욱 양호하게 회복하고 있다), 진정으로 성숙되어 있기 때문이다. [Spain, Scary Statistics, and Why the U.S. Dollar Remains the World’s Reserve Currency]

Harvard Business Review에 실린 글을 해석해 보았는데, 별로 비즈니스리뷰에 어울리지 않은 글이 아닌가 생각된다. 왜 아직도 달러가 기축통화로 남아있는가 하는 데에 대한 큰 틀에서의 시각은 그리 잘못 되지 않았지만, 미국경제에 대한 필자의 생각은 분석적이라기보다는 감상적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Employment rates for new college graduates have fallen sharply in the last two years, as have starting salaries for those who can find work. What’s more, only half of the jobs landed by these new graduates even require a college degree, reviving debates about whether higher education is “worth it” after all. [중략] Among the members of the class of 2010, just 56 percent had held at least one job by this spring, when the survey was conducted. That compares with 90 percent of graduates from the classes of 2006 and 2007.
새로이 대학을 졸업하는 학생들의 취업률은 지난 2년 동안 일자리를 찾을 수 있었던 이들의 초봉이 그러한 것처럼 급격히 떨어졌다. 더욱이 이들 졸업생들이 차지한 일자리 중 오직 절반만이 학위를 요구했다고 하는데, 이는 과연 고등교육이 결국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냐에 대한 논쟁을 가속화하고 있다. [중략] 2010년 클래스의 학생들 중에서, 단지 56%만이 조사가 이루어진 이번 봄까지 최소한 한 개의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이는 2006년과 2007년의 클래스에서 졸업생의 90%가 (일자리를 얻은 것과) 비교되는 것이다.[Many With New College Degree Find the Job Market Humbling]

물론 스페인의 40%라는 경이적인 실업률까지는 아니겠지만 윗글에서 지적하고 있다시피 미국의 대학졸업자들조차 취업률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고, 고용조건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이러한 활력을 잃은 고용시장은 물론 경제위기의 탓이겠지만 고용조건에서 보듯이 고용시장의 질적인 변화에 기인하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

학자금관련 빚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 2011년중 대학졸업자들의 평균 학자금관련 부채는 2만2,290달러나 된다고 하는데 이는 작년에 비하여 8%나 늘어난 것으로 10년전에 비해서는 무려 47%이상이 증가한 것이다. 대학등록금은 매년 약 5%씩 늘어나고 있는데 부모들이 이를 모두 감당할 형편이 못되고 있는 만큼 대학생들의 부채는 그만큼 늘어나게 되는데 올해 대학졸업자들이 직접 갚아야 할 빚은 1만8천달러나 된다.[날로 늘어나는 학자금관련 부채]

한편, 취업률이 떨어지고 있고 고용조건은 악화되고 있는 와중에 오히려 학자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앞서 인용기사에도 언급하고 있듯이 이럴 바에야 학위가 무슨 필요가 있나 싶지만 개인의 학벌선택이 자유시장 논리에 의해 결정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학위에 대한 포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다.

23일 한국은행, 통계청 등에 따르면 지난 2005∼2010년 우리나라 가계의 교육비 상승률은 22.8%로, 이 중 사립과 국공립대학교 및 대학원, 전문대학 납입금은 모두 30% 내외의 높은 증가세를 보였다. 같은 기간 물가상승률이 16.1%인 점을 감안하면 지난 5년간 대학교 및 대학원 납입금 상승률은 물가상승률의 두 배에 달했다.[대학 등록금 인상,물가상승률의 2배]

눈을 돌려 우리의 상황을 보면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역시 고용시장의 절대규모와 질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높은 등록금이 가계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고, 급기야 침체해 있던 학생운동이 등록금 투쟁을 계기로 고양될 기세다. 심지어 여당이 ‘반값 등록금’을 검토하겠다고 한다.

고용시장, 특히 청년 고용시장은 미래의 경제의 선행지표이다. 하지만 유럽, 미국, 한국의 예에서 보듯이 전 세계 공히 이 시장의 산출이 투입비용(즉, 교육비)에 미치지 못할 정도로 채산성(!)이 악화되고 있다. 이는 현재의 재정위기나 부동산 침체를 반등시킬 미래의 성장 동력이 벌써 고갈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결국 큰 틀에서 질 높은 고용을 위한 교육선택과 한 노동자의 생애주기에서 적어도 밑지지는 않는(!) 고용기회가 주어져야 하지만,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일시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교육비용은 경쟁과 시장화의 영향으로 더욱 높아지고 있는 반면, 성장은 예전과 같은 고성장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교육과 고용을 시장에서만 해소하려는 노력이 점점 한계에 부닥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