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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준을 보며 다시 생각해보는 주주 자본주의

고승덕 변호사는 MAF펀드가 금리성 펀드, 즉 각국의 금리차이를 이용하여 무위험 차익거래를 할 목적으로 설립된 펀드였으므로 LKe는 해당 펀드가 “무위험 안정수익”을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하고 회사의 대기성 자금을 투자했다고 주장하였다. 진위여부야 사실 일반인들은 알 수 없다. 혹은 LKe를 포함한 나머지 투자자들도 알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MAF펀드는 일종의 사모 헤지펀드인 정황이 짙고 이러한 펀드들은 통상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분야에 손을 대며 대개의 경우 금융당국, 심지어 투자자들에게까지 자금운용상황을 알릴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김경준 씨가 광은창투를 인수하여 경영권을 장악하고 옵셔널벤처스로 회사명을 바꾸는 과정은 주가조작과 공금횡령이라는 불법이 가미되었다 뿐이지 사모펀드들이 통상 수행하는 적대적 M&A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론스타 이하 많은 사모펀드들이 국내기업을 인수하고 값을 올려 되팔아 차익을 챙긴 방식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즉 조세회피지역에 펀드를 설정하고 회사를 하나 선정하여 거래하여 차익을 챙긴 뒤 세금은 한 푼도 내지 않는 바로 그런 방식은 전형적인 사모펀드의 투자방식이다.

어쨌든 이 과정에서 주목할 것은 이른바 경영권을 확보한 주주들의 행동양태다.

현대 자본주의 기업은 자산의 대부분이 주주의 자본과 대주의 차입금으로 구성되어 있다. 회사의 주인이 누구냐 하는 다분히 철학적인 질문이 제기되면 현대 자본주의는 바로 이러한 자산의 구성을 근거로 주주가 주인임을 천명한다. 생산활동의 주요 투입요소인 노동과 자본 중에서 주체는 노동이되 주인은 당연히 자본이라는 것이 현대 자본주의의 입장이다. 그리고 대주는 원리금 보장이 최우선 과제이므로 경영에는 – 불가항력의 사태가 아니면 – 참여를 하지 않는다. 결국 그렇게 되면 주주가 주인인 셈이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주주 자본주의’다.

자본주의 초기에 창업자가 주식 절대다수를 소유하던 가족형 기업에서 주식을 일반시장에서 공개하는 이른바 주식회사의 형태로 발전해나가는 시점에서 유명한 경제학자 피터드러커는 주식공개가 사회주의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엄살을 떨었다지만 현실은 오히려 경영권을 확보한 이가 상대적인 소수 지분으로 회사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었다. 다수의 소액주주는 경영에 관심이 없고 이해관계가 있는 정보에의 접근성이 어렵기 때문이다. 오늘날 삼성을 비롯한 국내 재벌 상당수가 순환출자 등을 통해 권력기반을 온존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가능한 것이다.

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현실에서의’ 회사의 주인은 다소 추상적이면서도 보이지 않는 권력 관계에서 회사의 경영권을 차지한 소수의 주주들이다. 다시 ‘주목하여야 할 주주들의 행동양태’로 돌아가면 결국 회사의 노동자들이나 이와 관련된 사회구성원의 이해관계를 아랑곳하지 않는 주주라면 그는 ‘주주 자본주의’의 극단적인 이익추구에만 봉사하게 된다. 론스타에 의해 자행된 외환은행의 대량해고 사태, 삼성의 전환사채 발행을 통한 불법세습, 그리고 김경준의 비열한 공금횡령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더군다나 삼성과 김경준의 경우는 주주의 이익조차 고려하지 않은 사익(私益)추구 행위라는 점에서 더욱 악랄하다.

어쨌든 문제는 그들이 인수한 회사를 첨단금융기법을 동원해 가치를 극대화시켰든, 법테두리를 교묘히 벗어난 천재적인 수법을 발휘했든, 대놓고 불법을 자행한 후 미국으로 튀었든지 간에 공통점은 ‘사회와의 상생(相生)’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업이 이익창출이 근본목적인데 그러한 요구를 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기업의 부(富)는 어디서 창출되는 것인가 하는 좀 더 깊고도 지루한 입장정리가 필요하므로 여기에서는 특별히 언급하지 않겠다.

결국 주주들의 전횡이 일반적인 것이냐 아니면 특수한 상황이냐 하는 물음은 여전히 남는다. 자본주의 기업이론의 옹호자들은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정부패일 뿐이며 발전한 자본주의일수록 부정부패는 사라진다는 주장을 한다. 하지만 극단적인 범법행위와 더불어 오늘날 더욱 더 규모를 키워가는 펀드들의 메뚜기와도 같은 포식성과 이들이 절대가치로 두고 있는 이익극대화는 어떤 경우는 일국의 법 체제마저 뛰어넘는 영향을 미치는 것도 사실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조세회피지역일 것이며 보다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사례가 바로 FTA다.

미국이 멕시코와의 FTA이래 가장 걸작(?)이라고 칭찬한다는 한미FTA의 경우 투자자의 절대 보호가 근본목표다. 한미FTA에 따르면 투자자들이 공익성이라는 이름으로 피해를 입었을 경우 그들은 바로 국제중재원으로 직행한다. 한국의 법원은 낄 자리도 없다. 거기에다 헌법이나 국내법도 적용되지 않는다. 초국적인 자본의 이해가 관철된 제3의 규칙으로 투자자들의 피해여부를 다룰 것이다.

그때쯤이면 옵셔널벤처스 소액주주들의 피눈물을 흘리게 한 김경준 정도는 피라미였음을 국민대다수가 느끼게 될 것이다.

대선 쟁점이 된 금산분리에 대한 소고

이번 대선은 금산분리 원칙의 대결?

이명박 후보가 세계 지식포럼에서 금산분리 원칙의 완화를 공식적으로 주장하였다.  중앙일보의 기사에 따르면 이 후보 측은 “론스타는 외환은행과 극동건설을 소유한 적이 있다”면서 금산분리 정책의 완화를 주장했다고 한다. 이 주장은 자신의 주장이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외국자본의 국내 금융자본 소유에 대한 우대정책(?) 내지는 묵인정책의 연장선상, 또는 국내자본에 대한 역차별의 시정의 성격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막말로 “니들이 외국자본한테 해준 대로 국내자본한테 해주려는 것인데 뭐 잘못된 것 있느냐”는 투다.

한편 정동영 후보는 같은 자리에서 이 후보의 이런 주장에 대해 금산분리 원칙을 재확인하였다. 정말 그가 이 원칙의 고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어쨌든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웠음은 사실이다. 이에 대해 매일경제는 사설을 통해 “두 후보가 이번 포럼에서 경제정책을 놓고 충돌한 것은 유권자들로서는 반가운 일”이며 “선택은 결국 유권자 개개인의 몫”이라고 짐짓 중립적이고 너그러운 척을 하고 있다.

론스타가 몇 천억 벌고 세금 한푼 안낸 사연

그렇다면 이제 시간을 거슬러 이 후보측이 언급한 론스타가 시장을 휘젓고 다니기 시작할 즈음으로 돌아가 보자. 외환 위기 이후 외국 자본은 초토화된 한국 시장을 마음껏 유린했다. 론스타 뿐만 아니라 뉴브리지캐피탈, 푸르덴셜, 알리안츠 등이 금융기관을 손에 넣었고 GM, 르노 등도 국내 굴지의 자동차 회사를 헐값에 사들였다. 파이낸스센터, 스타타워 등의 부동산도 외국자본에 의해 사들여지고 거래되었다.

이러한 무혈입성의 뒤에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요구하는 국제통화기금(IMF)이 있었다. 이들은 “외국 자본을 끌어들이는 것이 곧 낙후한 금융과 산업을 선진화하는 것이고 그것이 글로벌 스탠더드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에 부화뇌동하거나 심지어 결탁의 의혹까지 일고 있는 경제관료들이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하여 해외자본의 무혈입성 시에 마름 노릇을 자처하였다. 비록 진정으로 부실한 기업들도 있어 정리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으나 외환은행 등 아직까지도 부실여부에 대해 논란이 있는 기관들까지 이 기간에 도매금으로 넘어간, 그럼으로써 수많은 실직자를 양산한 우리 경제에서 참으로 우울한 시기였다.

이후 론스타를 비롯하여 외국자본에 대한 반대기류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외환위기로부터 어느 정도 정신을 차려 여유를 갖게 되자 그들이 거두어들이는 상상을 초과하는 매매차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한 예로 론스타코리아는 서울 강남 스타타워를 매각해 2800억원의 차익을 올렸으나 이중과세방지협약에 의해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다. 론스타코리아 지분 100%를 갖고 있는 벨기에 국적의 스타홀딩스가 조세회피용 회사로 이중과세방지협약에 따라 세금을 내지 않았던 것이다. 이때부터 세금당국과 해외자본과의 세금전쟁이 시작되었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관련기사)

그런데 이 과정에서 국세청에 대한 외압이 있었다는 증언이 이어지고 있어 투기자본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다시 한 번 확인되었다. 국세청은 공식적으로 “외압은 없었다”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조사를 하다 보니까 생각하지도 못했던 곳에 굉장히 방대한 규모의 로비스트들이 뛰고 있더라. 방해세력이 많아 놀랐다”고 전하기도 했다. 현대판 마름이자 매국노들이다.

금산법은 국내자본에 대한 역차별?

한편 이 즈음부터 일부 자본진영에서는 해외 투기자본으로 인해 국내자본이 역차별을 받는다면서 국민경제단위의 보다 강도 높은 조절장치를 만들어줄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대한 근거로 많은 나라가 특정 산업의 국적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WTO 체제 역시 자국 금융시스템의 통합성과 안정성을 확보하는 조치를 용인하고 있다는 논리를 펼쳤다(재밌는 사실이 이렇게 읍소하는 기업들이 망해가는 국내농업에 대해서는 이러한 논리를 적용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몇 년 전 대안연대나 투기자본감시센터에서 하던 주장을 자본가가 같이 외치고 있는 꼴이다. 얻어맞으니까 철드나보다.

어쨌든 철드니까 좋긴 좋은데 이에 대한 해결책이 결국 국내자본의 규제완화로 귀결되고 있어 결국 아직도 속을 못 차렸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기업들이 주장하고 있는 대표적인 해결책이 바로 지금 이명박 후보가 칼집에서 꺼내든 금산(金産)분리 원칙의 철폐다. 그동안 실질적으로 은행법에 의한 금산분리의 원칙이 있으되 그 처벌 방법이 없었던 차에 몇 년 전 개정된 금산법에 대해서도 강력히 반발한 바 있는 국내 기업의 실질적인 목적은 금융지배다.

한국금융연구원은 5일 ‘기로에 선 한국금융’ 보고서를 통해 “경쟁 촉진 및 경제의 이중구조 해소, 금융시스템 안전을 위해 산업과 금융을 분리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대기업이 은행을 소유하게 되면 같은 계열 금융회사를 통해 부당지원 및 빼돌림으로 시장의 효율성과 공정성, 안정성이 훼손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아직까지도 전체 그룹 주식의 극소수만 소유하고 있는 재벌의 총수가 신으로 군림하며 전체 그룹을 쥐고 흔드는 국내 재벌체제 하에서 연구원의 경고는 괜한 우려가 아니다.

금융시스템은 기업들도 주장하듯이 국적성, 통합성, 안정성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금융시스템이 자본의 이익에 휘둘리지 않고 공공성에 입각하여 금융정책을 비롯한 산업정책의 중추가 되어야 하는 공기(公器)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미 카드사, 제2금융권을 자회사로 거느리며 주계열사의 돈줄로 금융계열사를 부실화시켰던 화려한 전적을 자랑하는 재벌들이 해외 투기자본에 대항(?)하여 제1금융권까지 주무르겠다고 나서고 있는 것이다.

외국 도둑 대신 한국 도둑?

이상에서 보듯이 현대의 금융시스템은 세계화, 개방화의 추세에 따라 단순히 일국의 금융시스템이나 금융정책으로 통제 가능한 변수가 점점 적어지고 있는 추세다. 외환위기 당시 혼쭐이 난 정책당국이 천문학적인 외환을 쌓아놓고 있지만 메뚜기 떼와 같은 해외 투기자본의 폭식성에는 근본적인 대비책이 될 수 없다. 해외투기자본은 막강한 자금력과 로비력을 바탕으로 한 나라의 금융시스템 전반을 혼란에 몰아넣고 막대한 이익을 챙겨 달아난다. 딜레마는 현재와 같이 금융시스템이 해외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상태에서 이에 대처할 수 있는 뾰족한 대안이 없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국내산업자본에 대한 금산분리 원칙의 완화 내지는 철폐는 답이 될 수 없다.

해외 투기 자본의 투기행위에 대한 엄격한 통제와 적절한 이익환수 시스템, 소수 지분으로 산업자본을 휘두르는 재벌형 경제의 타파, 금융 시스템의 통합성과 안정성 유지를 위한 통제수단, 종국적으로 모든 산업과 금융을 선순환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경제 시스템 구축만이 본질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해외자본의 투기성에 대항하여(?) 국내 자본이 은행을 소유하게끔 하자는 주장은 ‘외국 도둑이 곳간을 털지 못하도록 국내 도둑에게 맡기자’라는 이야기다.

참고글 http://www.leejeonghwan.com/media/archives/000885.html

낼 세금이 있으면 내겠다

“낼 세금이 있으면 내겠다”

외환은행 매각으로 4조5천억 원의 대박을 터트린 론스타의 고위간부의 말이다. 낼 세금이 있으면 내겠지만 낼 세금이 없다는 뉘앙스가 진하게 느껴진다. 무릇 나라 안에서의 모든 거래행위의 시세차익에 대해 세금을 매기는 한 나라의 세무당국을 하찮게 여기는 오만함이 묻어난다. 실제로 론스타는 이미 지난해 세무조사에 따른 국세청의 추징금 납부를 거부, 불복절차인 `심판청구’를 국세심판원에 냈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오늘날 모든 기업이나 투자자들은 ‘국민국가 소멸론자’ 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날 ‘Made in USA’, ‘Made in Japan’ 등의 제조국 표시는 큰 의미가 없다. 국경을 초월한 생산기지의 다국화(多國化) 현상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표시 방법은 어쩌면 ‘Made by Samsung’, ‘Made by Microsoft’ 가 유효하기 때문이다. 이미 초국적 기업은 국민국가보다 더 큰 경제단위가 되어있다. 그러니 초국적 금융투기의 귀재인 론스타가 동북아시아의 한 나라의 세무당국에 그런 말을 한다고 해도 그리 불손한 행위는 아니다.

그렇다면 정말 초국적 자본에게 국민국가 따위는 사라지는 편이 속편한 것일까? 오히려 그들이야말로 국민국가의 존재를 가장 필요로 하는 집단이라는 것이 희극적인 요소이다. ‘우리 모두는 케인즈 주의자다’라고 일갈한 닉슨이 1970년대 케인즈 주의적 국가정책을 무력화시켜 신자유주의를 가속화시키는데 일조하였듯이 ‘국가 따위는 필요 없다’라고 주장하는 초국적 자본은 여전히 국민국가 없이는 그들만의 초과 잉여가치를 누릴 수가 없는 것이다. 

론스타의 시세차익에 대해 국세청이 “론스타코리아가 외환은행 인수협상을 주도했다는 사실이 드러날 경우 세법에 규정된 ‘간주 고정사업장’으로 볼 수 있어 과세가 가능하다”고 판단하는 입장이라는 점에서 국민국가 존재 자체가 초국적 자본에 적대적이라는 가정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론스타가 그에 대항하는 무기인 벨기에의 조세회피지역 역시 국민국가의 보호 아래 놓여있다는 점에서 각각의 국민국가는 초국적 자본의 농간질에 놀아나고 있을 뿐이다.

결국 ‘영리하고’ 이동성이 빠른 초국적 자본은 자신들이 배후에서 조종하여 체결한 국가 간 협약이나 국가 간의  각종 경제사회적인 환경의 차이를 활용하여 초과 잉여가치를 향유하고 있다. 국민국가는 초국적 자본의 광속도의 이동경로에 자신들을 포함시키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또는 웃는 낯으로 투항하거나 결탁하기 때문이다.

국민국가의 보다 적극적인 역할부여는 바로 일극체제의 중심 미국에게서 찾을 수 있다. 행정부 자체를 자본가들로 채워버린 부시 행정부는 노골적으로 초국적 자본과 군수산업의 편에 서서 세금을 감면하여 기업의 부담을 줄여주고 이라크를 침공하여 시장을 확대해주었다. 만약 한 개별기업이 시장의 확대를 위해 다른 나라를 침공했다면 현재의 저항보다 더 큰 저항에 직면했을 것이라는 개연성이 충분하다는 점에서 여전히 ‘국가’라는 브랜드는 일반정서상 초국적 자본에게 유리한 것임을 이를 통해 알 수 있다.

자본가는 국적을 거부하지만 국가를 활용한다. 자신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부분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거부하고 시장의 자유를 부르짖지만 그렇다고 ‘멍청한’ 동업자인 국민국가를 폐기할 생각은 아직까지 하고 있지 않다. 고세율의 대표주자 스웨덴마저 획기적인 감세를 통해 자본에 투항하는 판에 굳이 확인사살을 할 필요가 없다. 아직까지는 동업자의 활용가치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나라는 개방을 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경제구조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지만 그것은 ‘개방’과 ‘자본의 특별시민권 부여’를 혼동한 무식의 소치이다. 국가 스스로가 론스타에게는 장내에서 싸우다 언제든지 장외로 나가버릴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하고 국세청은 두 손 묶고 링 안에서만 싸우라는 규칙을 정해준 것을 ‘개방’이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그런 ‘개방’은 빨리 폐기시켜버리는 것이 옳다.

도둑놈의 국적이 중요한가?

질문 : 이익을 2,800억원을 내고도 세금을 한 푼도 안낼 수 있는 방법은?
답변 : 론스타를 벤치마킹하라

론스타코리아는 서울 강남 스타타워를 매각해 2800억원의 차익을 올렸으나 이중과세 방지협약에 의해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다. 론스타코리아 지분 100%를 갖고 있는 벨기에 국적의 스타홀딩스가 조세회피용 회사로 이중과세 방지협약에 따라 세금을 내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9월 29일 국세청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스타홀딩스는 들러리만 섰을 뿐 미국 론스타 본사가 건물 대금을 송금하는 등 실질적으로 건물의 취득·관리·양도 업무를 수행했다는 점에 근거해서 한-미 조세협약과 국내법상 실질과세 원칙을 적용해 세금을 추징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와 더불어 론스타, 칼라일, 웨스트브룩, 골드만삭스, 에이아이지(AIG) 등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해외 펀드에 대하여 2,148억원의 탈루세금을 추징하기로 결정하였다.

뒤늦게나마 투기자본의 꼼수에 철퇴를 가한 국세청의 조치는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또 한번 국세청에 대한 외압이 있었다는 증언이 이어지고 있어 투기자본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 국세청은 공식적으로 “외압은 없었다”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조사를 하다 보니까 생각하지도 못했던 곳에 굉장히 방대한 규모의 로비스트들이 뛰고 있더라. 방해세력이 많아 놀랐다”고 전하기도 했다. 현대판 매국노들이다.

또 하나 남는 문제점은 세금추징에도 불구하고 해외 투기자본이 국내에서 벌어들인 금액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앞으로도 이와 같은 국부유출이 횡행할 것임에 – 정상적인 세금추징이 이루어진다 할지라도 – 어떻게 그들을 통제할 것인가 하는 숙제가 남아있다. 정확한 집계는 어렵지만 외국자본들은 지난 7년간 기업(은행 포함)과 부동산 분야에서 알려진 것만 대략 5조원 이상의 매매차익을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결국 순전히 돈 놓고 돈 먹는 투전판에서만 이런 엄청난 금액이 국외로 빠져나갔다는 소리다.

여기서 잠깐 소위 ‘펀드(fund)’에 대해 알아보자. 펀드하면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속된 말로 ’투전(投錢)‘이다. 즉 도박의 판돈과 다를 바가 없다. 국제적 투기 펀드는 주인이 정확히 누구인지 알 수 없다(음모론자들은 로스차일드가 판돈을 댄다고도 한다). 돈을 대는 대상은 제한이 없다. 부동산, 주식, 채권, 심지어 전쟁에도 돈을 댄다. 지역은 주로 ’신자유주의적‘인 선진화(?)를 통해 자신들의 투기행위가 인정되고 적당히 썩은 집권층이 존재하는 제3세계 중 신흥개발국이 유리하다. 주로 쓰는 법률적 수단은 이중과세방지협약과 조세피난처 등이다.

이러한 신흥 금융투기자본에 대한 지역적 대응책은 현재까지는 미흡하다. 주로 대안으로 내놓고 있는 것이 이번의 경우와 같은 과세를 통한 폭리취득방지책이 있다. 그 다음으로 이른바 ‘토종 펀드’ 육성을 통한 대항이다. 몇 년 전 이헌재가 주장한 사모펀드가 이에 해당한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들은 투기자본의 실체와 그들의 합법성을 인정한 채 같이 한번 링에서 싸워보자는 대응책이다. 엄청난 법률적, 정치적 지원과 뒷돈을 무기로 하는 그들과 한판 붙어보겠다는 소리는 보통 체격의 사람이 바디빌딩으로 몸 좀 다듬어놓고 최홍만과 한판 붙자고 호기부리는 것과 비슷한 경우다.

한편 기본적으로 싸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일부 자본진영에서는 해외 투기자본으로 인해 국내자본이 역차별을 받는다면서 국민경제단위의 보다 강도 높은 조절장치를 만들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한 근거로 많은 나라가 특정 산업의 국적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WTO 체제 역시 자국 금융시스템의 통합성과 안정성을 확보하는 조치를 용인하고 있다는 논리다(재밌는 사실이 자본가들이 망해가는 국내농업에 대해서는 이러한 논리를 적용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몇 년 전 대안연대나 투기자본감시센터에서 하던 주장을 자본가가 같이 외치고 있는 꼴이다. 얻어맞으니까 철드나보다.

어쨌든 철드니까 좋긴 좋은데 이에 대한 해결책이 결국 국내자본의 규제완화로 귀결되고 있어 결국 아직도 속을 못 차렸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자본가들이 주장하고 있는 대표적인 해결책이 바로 산금(産金)분리 원칙의 철폐다. 그동안 실질적으로 산금분리의 원칙이 있으되 그 처벌 방법이 없었던 차에 얼마 전 마련된 금산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강력히 반발한 바 있는 국내 자본가의 실질적인 목적은 금융지배다. 한마디로 ‘은행을 외국 도둑놈이 먹는 것보다 한국 도둑놈이 먹는 것이 낫지 않냐’라는 논리다.

금융시스템은 자본가들도 주장하듯이 국적성, 통합성, 안정성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금융시스템이 자본의 이익에 휘둘리지 않고 공공성에 입각하여 금융정책을 비롯한 산업정책의 중추가 되어야 하는 공기(公器)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미 카드사, 제2금융권을 자회사로 거느리며 주계열사의 돈줄로 금융계열사를 부실화시켰던 화려한 전적을 자랑하는 자본가들이 해외 투기자본에 대항(?)하여 제1금융권까지 주무르겠다고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상에서 보듯이 현대의 금융시스템은 세계화, 개방화의 추세에 따라 단순히 일국의 금융시스템이나 금융정책으로 통제 가능한 변수가 점점 적어지고 있는 추세다. IMF에 혼쭐이 난 정책당국이 천문학적인 외환을 쌓아놓고 있지만 메뚜기 떼와 같은 해외 투기자본의 폭식성에는 근본적인 대비책이 될 수 없다. 해외투기자본은 막강한 자금력과 로비력을 바탕으로 한 나라의 금융시스템 전반을 혼란에 몰아넣고 막대한 이익을 챙겨 달아난다. 딜레마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전제조건하에 이에 대처할 수 있는 뾰족한 대안이 없다는 점이다.

해외 투기 자본의 투기행위에 대한 엄격한 통제와 적절한 이익환수 시스템, 소수 지분으로 산업자본을 휘두르는 재벌형 경제의 타파, 금융 시스템의 통합성과 안정성 유지를 위한 통제수단, 종국적으로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통한 실질적으로 근로대중을 위한 경제 시스템 구축만이 본질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이 사회를 더 이상의 무정부적인 착취의 세계로 전락하지 않게끔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옳은 조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