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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에 있어서의 ‘평균’과 ‘정의’

회사를 인수할 때는 변호사들이 마지막 서류를 고급호텔에서 작성하는 동안 파티를 하면서 한 병에 백만 원짜리 샴페인을 마신다. 하지만 그 서류에는 생계를 잃는 수천 명의 직원들 이름이 들어 있었다. 그때는 그냥 얼굴도 없는 ‘이름’뿐이었다. [중략] 한번은 GE캐피탈이 어느 회사를 인수한 후 계열사인 다른 생명보험사로 자산만 옮긴 다음, 단 1명의 직원도 남기지 않고 모두 해고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슴이 너무 아프다. 너무 잔인했다. 내가 결정한 일은 아니지만 같이 했으니…..[김경준 저, BBK의 배신, (주)비비케이북스, 2012년, p251]

BBK사건으로 유명한 김경준 씨가 시카고 대학교 경제학 석사를 마치고 들어간 GE캐피탈에서 했던 일에 관한 묘사다. 당시 그는 GE만이 할 수 있는 가치분석 기법을 동원해 저평가된 생명보험사를 인수하는 일을 담당했다고 한다. 2년 동안 20여개의 생명보험사를 인수하였고, 이를 통해 GE는 단숨에 미국 최대의 생명보험사가 되었다고 한다. 당시 GE의 CEO는 중성자탄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잭 웰치 Jack Welch 였다. 건물은 그대로 남겨둔 채 사람만 없애는 중성자탄의 실력이 보험사의 인수에도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사람들이 정확하게 미리 인식해야 할 사실은, 경제학은 ‘평균’을 강조하기에 ‘Justice’, 즉 정의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예를 들어보자.

Scenario #1 : 2사람 중 사람A는 100억 원이 있고 사람B는 0원이 있다.

Scenario #2 : 2사람이 각자 50억 원씩 있는 상황.

위 두 가지 상황을 비교할 때, Scenario #1에서 사람A에게 101억 원이 있으면 평균적으로 Scenario #1이 높으니 Scenario #2보다 더 좋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Scenario #1은 정의 또는 정당하게 볼 수가 없다.[같은 책, pp245~246]

앞서의 인용문을 읽고 생각난 그 앞의 글이다. 평균을 강조하는 경제학의 입장이1 생명보험사의 M&A 과정에서의 참여자들의 행태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해준다는 면에서 흥미롭다. 즉 호텔에서 서류를 작성하던 변호사들에게 그들의 작업으로 인해 직장을 잃을 이들이 눈에 밟히지 않은 이유는 그들의 눈앞에 “백만 원짜리 샴페인”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변호사 개인으로서야 당연히 한계수익이 한계비용보다 훨씬 컸을 것이고, 중성자탄 잭 웰치나 또는 평균을 강조하는 경제학자에게 실직은 문제가 될 것이 없었을 것이다.

세계 최대의 사모펀드 중 하나인 블랙스톤에 관한 책을 읽어보면 저자는 M&A 과정에서 반드시 위와 같은 살인적인 해고 등을 통한 단기이익 실현에 주력한 것만은 아니라고 항변한다. 실제로 기존 주주들과 마찬가지로 장기적인 경영전략을 통해 기업 가치를 재고하려는 노력도 적잖다. 문제는 M&A 또는 일상적인 기업 경영에서 기업 가치를 단기적으로 극대화시키는 가장 좋은 전략은 여전히 사람자르기라는 점이다. 그리고 주류 경제학이 정의에 대한 고려 없는 평균에 의한 최적화만 신경 쓴다면 이런 행태는 줄어들지 않을 것 같다.

김경준을 보며 다시 생각해보는 주주 자본주의

고승덕 변호사는 MAF펀드가 금리성 펀드, 즉 각국의 금리차이를 이용하여 무위험 차익거래를 할 목적으로 설립된 펀드였으므로 LKe는 해당 펀드가 “무위험 안정수익”을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하고 회사의 대기성 자금을 투자했다고 주장하였다. 진위여부야 사실 일반인들은 알 수 없다. 혹은 LKe를 포함한 나머지 투자자들도 알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MAF펀드는 일종의 사모 헤지펀드인 정황이 짙고 이러한 펀드들은 통상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분야에 손을 대며 대개의 경우 금융당국, 심지어 투자자들에게까지 자금운용상황을 알릴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김경준 씨가 광은창투를 인수하여 경영권을 장악하고 옵셔널벤처스로 회사명을 바꾸는 과정은 주가조작과 공금횡령이라는 불법이 가미되었다 뿐이지 사모펀드들이 통상 수행하는 적대적 M&A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론스타 이하 많은 사모펀드들이 국내기업을 인수하고 값을 올려 되팔아 차익을 챙긴 방식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즉 조세회피지역에 펀드를 설정하고 회사를 하나 선정하여 거래하여 차익을 챙긴 뒤 세금은 한 푼도 내지 않는 바로 그런 방식은 전형적인 사모펀드의 투자방식이다.

어쨌든 이 과정에서 주목할 것은 이른바 경영권을 확보한 주주들의 행동양태다.

현대 자본주의 기업은 자산의 대부분이 주주의 자본과 대주의 차입금으로 구성되어 있다. 회사의 주인이 누구냐 하는 다분히 철학적인 질문이 제기되면 현대 자본주의는 바로 이러한 자산의 구성을 근거로 주주가 주인임을 천명한다. 생산활동의 주요 투입요소인 노동과 자본 중에서 주체는 노동이되 주인은 당연히 자본이라는 것이 현대 자본주의의 입장이다. 그리고 대주는 원리금 보장이 최우선 과제이므로 경영에는 – 불가항력의 사태가 아니면 – 참여를 하지 않는다. 결국 그렇게 되면 주주가 주인인 셈이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주주 자본주의’다.

자본주의 초기에 창업자가 주식 절대다수를 소유하던 가족형 기업에서 주식을 일반시장에서 공개하는 이른바 주식회사의 형태로 발전해나가는 시점에서 유명한 경제학자 피터드러커는 주식공개가 사회주의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엄살을 떨었다지만 현실은 오히려 경영권을 확보한 이가 상대적인 소수 지분으로 회사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었다. 다수의 소액주주는 경영에 관심이 없고 이해관계가 있는 정보에의 접근성이 어렵기 때문이다. 오늘날 삼성을 비롯한 국내 재벌 상당수가 순환출자 등을 통해 권력기반을 온존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가능한 것이다.

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현실에서의’ 회사의 주인은 다소 추상적이면서도 보이지 않는 권력 관계에서 회사의 경영권을 차지한 소수의 주주들이다. 다시 ‘주목하여야 할 주주들의 행동양태’로 돌아가면 결국 회사의 노동자들이나 이와 관련된 사회구성원의 이해관계를 아랑곳하지 않는 주주라면 그는 ‘주주 자본주의’의 극단적인 이익추구에만 봉사하게 된다. 론스타에 의해 자행된 외환은행의 대량해고 사태, 삼성의 전환사채 발행을 통한 불법세습, 그리고 김경준의 비열한 공금횡령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더군다나 삼성과 김경준의 경우는 주주의 이익조차 고려하지 않은 사익(私益)추구 행위라는 점에서 더욱 악랄하다.

어쨌든 문제는 그들이 인수한 회사를 첨단금융기법을 동원해 가치를 극대화시켰든, 법테두리를 교묘히 벗어난 천재적인 수법을 발휘했든, 대놓고 불법을 자행한 후 미국으로 튀었든지 간에 공통점은 ‘사회와의 상생(相生)’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업이 이익창출이 근본목적인데 그러한 요구를 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기업의 부(富)는 어디서 창출되는 것인가 하는 좀 더 깊고도 지루한 입장정리가 필요하므로 여기에서는 특별히 언급하지 않겠다.

결국 주주들의 전횡이 일반적인 것이냐 아니면 특수한 상황이냐 하는 물음은 여전히 남는다. 자본주의 기업이론의 옹호자들은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정부패일 뿐이며 발전한 자본주의일수록 부정부패는 사라진다는 주장을 한다. 하지만 극단적인 범법행위와 더불어 오늘날 더욱 더 규모를 키워가는 펀드들의 메뚜기와도 같은 포식성과 이들이 절대가치로 두고 있는 이익극대화는 어떤 경우는 일국의 법 체제마저 뛰어넘는 영향을 미치는 것도 사실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조세회피지역일 것이며 보다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사례가 바로 FTA다.

미국이 멕시코와의 FTA이래 가장 걸작(?)이라고 칭찬한다는 한미FTA의 경우 투자자의 절대 보호가 근본목표다. 한미FTA에 따르면 투자자들이 공익성이라는 이름으로 피해를 입었을 경우 그들은 바로 국제중재원으로 직행한다. 한국의 법원은 낄 자리도 없다. 거기에다 헌법이나 국내법도 적용되지 않는다. 초국적인 자본의 이해가 관철된 제3의 규칙으로 투자자들의 피해여부를 다룰 것이다.

그때쯤이면 옵셔널벤처스 소액주주들의 피눈물을 흘리게 한 김경준 정도는 피라미였음을 국민대다수가 느끼게 될 것이다.

고승덕 변호사의 BBK해명을 읽고 드는 생각

국내 변호사 중 가장 대중적으로 인기 높은 변호사가 아닐까 생각되는 고승덕 변호사께서 한나라당의 흑기사로 나서셨다. 평소의 깔끔한 이미지와 명석한 두뇌로 한나라당과 이명박 후보를 살려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고 변호사는 한나라당 홈페이지에 “고승덕 변호사가 말하는 BBK의 실체”라는 글을 통해 BBK 사건은 김경준의 단독범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변호사에다 주식전문가로도 소문나 있으니 그의 발언에 상당한 무게감이 실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그의 설명 중에 의아한 부분도 있다.

“LKe는 자기 사업(인터넷 기반 자산관리)을 한 사실 없다. 원래 LKe는 BBK의 펀드투자자이었다. 김경준이 무위험 안정수익을 보장한다고 하여 대기성 자본금을 펀드에 투자한 것이다.”

김경준 씨가 LKe, 즉 이 후보에게 “무위험 안정수익을 보장”하겠다고 말했다 한다. 그래서 이 후보의 LKe와 다스는 MAF펀드(Millenium Arbitrage Fund)에 투자한 것이라 한다. 그런데 MAF펀드는 (해장국 집 이름이 아니고) 역외펀드(off-shore)펀드다. 역외펀드에 대한 네이버의 정의를 살펴보자.

“기업 또는 금융회사의 유가증권 매매차익에 대해 과세를 하지 않거나, 엄격한 규제가 없는 지역에 설립하는 펀드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국내의 일부 기업들이 유가증권 매매에 따른 세금이나 각종 규제를 피할 목적으로 조세회피지역 등 제3국에 설립하는 경우가 많다.
(중략)
더욱이 투자자금의 10배까지 무보증 차입이 가능해 증식효과가 크다는 점에서 해외자금 유치에 편리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코스닥 등록기업을 비롯한 일부 기업들이 조세회피지역에 역외펀드를 세워 이를 주가조작과 허위 외자유치 등 불공정 거래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있어 사회·경제 문제로까지 불거지기도 했다.(하략)”

MAF펀드는 조세회피를 목적으로 버진아일랜드와 말레이시아 등에 설립된 헤지펀드다. 외환은행을 부정한 방법으로 매입하여 분탕질을 했던 론스타와 같은 성격이다. 그렇다면 펀드 이름에도 들어있는 ‘아비트리지’는 또 뭘까? 네이버의 설명이다.

“동일한 채권이 지역에 따라 수익률이나 가격이 다를 경우, 이들 채권을 매매하여 수익을 얻는 것을 말한다. 19세기 투기적인 주식매매에서 사용된 방법으로 낮은 가격에 사서 높은 가격으로 매각하므로 높은 수익을 올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현상을 이용한 거래를 차익거래(arbitrage trading)라고 하는데, 선물시장에서 선물가격과 현물가격과의 차이를 이용한 무위험 수익거래 기법을 의미한다.(하략)”

“19세기 투기적인 주식매매”에서 시작된 고위험 투자기법이다. “무위험 수익거래 기법”이라는 표현에 현혹될 필요 없다. 위험하지 않다는 것은 이론적일 뿐이다. 예를 들어 진정한 무위험이라면 특정통화의 환매도에 계약을 체결하였으면 반대로 그 통화의 환매수에도 계약을 체결했을 경우 위험이 없는 것이다.(의미없는 거래지만) 그러나 차익거래는 서로 다른 시장에서의 통화의 가치나 서로 다른 국가의 금리가 장기적으로 수렴한다는 전제 하에 양 쪽에 투자하는 등의 전략을 구사하기 때문에 양 쪽이 예상과 달리 발산해버리면 고스란히 손실을 입는 구조다.

이렇게 차익거래를 통해 투자금을 말아먹은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Long Term Capital Management 이다. 당시 월스트리트의 천재 소리를 듣던 LTCM의 펀드매니저들은 환투기, 금리투기 등 종목을 가리지 않고 펀드를 운용해 기적같은 수익률을 올렸다. 이 수익률의 비결은 높은 차입비율, 즉 리버리지 효과였다. 그리고는 세계경제가 흔들리자 엄청난 금액의 손실을 입고 파산하였다.(헤지펀드의 차익거래 행태에 관한 다른 글)

결국 MAF펀드는 사실상 정당하게 내야 할 세금도 내지 않으려고 조세회피지역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여 수익창출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초절정 위험 수익거래”를 위한 헤지펀드의 성격이 강한 역외펀드인 정황이 짙다. 주식투자의 고수이신 고승덕 변호사가 이런 사실을 모르실리 없으실텐데 김경준 씨가 “무위험 안정수익”을 보장한다는 말을 믿었다는 LKe의 주장을 왜 믿으시는지 잘 모르겠다. LKe는 정말 김경준 씨가 회사의 대기성 자금을 안전자산에만 투입하리라 생각하였던 것일까?

결국 현재 요점은 LKe가 고수익을 노리고 고위험 상품에 투자를 했건 아니면 정말 무위험 상품인줄 알고 투자를 했건 간에 그 MAF펀드로 주가조작과 공금횡령을 한 김경준 씨와 BBK의 배후에 이 후보가 있느냐 하는 문제일 것이다. 내일 쯤 에리카김 여사께서 이면계약서를 공개한다하니 내용과 진위여부가 자못 궁금하다.

다만 여전히 찜찜한 것은 왜 LKe는 자기 사업은 할 생각도 안하고 막대한 대기성 자금을 역외펀드에 집어넣었고 다스는 왜 동생도 모르게 훨씬 더 막대한 돈을 집어넣었는가 하는 궁금증이다. 최근 이 후보가 관훈토론회에서

“그러나 외국자본이 들어와서 선진금융기법을 전수하는 게 아니라 펀드화돼서 투기를 한다.”

라고까지 말씀하셨는데 그때의 마음은 지금과 사뭇 달랐단 말인가? 아니면 남이 하면 스캔들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