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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다가온 경제공황,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나

올해 1월 23일 발행했던 글을 다시 갱신하여 발행한다. 내용은 고치지 않았다. 1년도 안 된 글인데 미숙한 논리가 곳곳에 보여서 부끄럽지만 전후 자본주의가 현재의 상황으로까지 치닫게 된 약사가 어느 정도 서술되어 있어 독자 분들께 참고하시라고 – 그러나 다 믿지는 마시라는 – 다시 올려놓는다. 어쨌든 주초부터 경제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앞으로의 세상은 이전까지와는 다른 세상이 펼쳐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사실 과거 많은 진보적 학자들이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등 제3세계는 경제, 정치적으로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제1세계로부터 착취를 당한다는 종속론적 입장을 취해왔었다. 실제로도 정치적으로 제3세계의 대다수 독재자들은 제1세계로부터의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받아 자신들의 독재를 정당화하였고, 국내 산업을 제1세계에 대한 하급 생산기지로 수직계열화함으로써 자국의 노동자와 농민들을 수탈하였다.

그런 한편으로 놀랍게도 그 착취당하던 제3세계 국가들 중에서 꽤 여러 국가들이 절대적인 빈곤에서 벗어나는가 하면 같은 제1세계이긴 하지만 패전국이었던 독일과 일본 등은 제1세계의 지도국가인 미국과 어깨를 견줄 정도로 경제가 성장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과정은 미국이 소련을 위시한 제2세계와의 체제경쟁에서의 체제강화 과정에서 의도된 것도 상당수 작용한 것도 사실이거니와 몇몇 성공 사례에 있어서는 개별 국가 특유의 노력과 다양한 역동성에 의해 빚어진 것들도 있다. 우리나라 역시 전후 비할 데 없는 절대빈곤에서 세계 11위 무역규모를 가진 나라로 성장하여 놀라운 경제적 성장을 보인 국가의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어쨌든 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 물질문명은 실질적으로는 미국이라는 새로운 로마를 정점으로 하고 이로부터 모든 생산력의 리비도가 뿜어져 나오는 일극체제였다 할 수 있다. 현실 사회주의 블록이 멸망하기 전까지 많은 이들이(주1) 세계가 양극체제라고 말하여 왔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실 소련은 대외적으로 미국과의 체제경쟁을 부르짖었을 뿐 애당초 사회주의 블록의 방어에도 힘겨운 경제적 능력을 지니고 있었을 뿐이다. 그들은 그저 스포츠 경쟁, 우주선 만들기 경쟁 등에서나 힘겹게 양극체제를 유지하였을 뿐이었다.

따라서 현대적인 의미의 자본주의는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하는 금환본위제, 석유를 대표로 하는 화석연료, 미국의 왕성한 상품소비력과 군사적 헤게모니 등을 특징으로 하는 경제체제이다. 다른 여러 가지 특징이 있겠으나 이들 특징 들은 어느 하나가 결여되면 치명적이라는 점에서 여러 변수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변수들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 들이 구현한 사회는 현란한 마천루, 쭉 뻗은 고속도로, 자가용 중심의 교통체제, 신용카드나 모기지 등 활발한 신용공급 등이다.(주2)

문제는 (제1세계에서 문명의 혜택을 누리던) 사람들이 이러한 물질문명이 영속적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화석연료가 언젠가 바닥날 게 빤한데도 자가용은 배기량이 커지고, 빚내서 집을 사고, 에어컨을 틀어댔다. 특히 미국의 소비력은 거의 공룡을 연상시킬 정도로 왕성했다. 전 세계 인구의 3~4%에 불과한 나라가 잡아먹는 석유가 전체 소비량의 1/4을 넘는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사실 이러한 미국인들의 폭식이 자본주의를 먹여 살렸다. 제3세계 인민들은 미국인이 돈을 써대야 떡고물이라도 얻어먹는 형편이라는 것이다.

여태 미국인들은 어떻게 그렇게 펑펑 써 제켰을까.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미국의 전 세계 상품의 1/4을 생산하는 생산대국이었다. 그러니 자연히 돈이 넘쳐흘렀다. 그러니 썼다. 점차 생산기지가 유럽과 아시아로 넘어가고 군사비 지출이 늘어나자 미국은 이제 돈장사에 나섰다. 팽창하는 세계경제에 유동성을 제공하기 위해 달러를 찍어낸 것이다. 그런데 달러 찍는 데는 돈이 거의 안 든다. 그리고는 그 돈으로 상품을 수입할 수 있었다. 그래서 썼다. 그러다 달러가 너무 많이 발행되어 이제는 더 이상 금과 바꿔줄 수 없을 것 같으니 금환본위제를 폐지했다.

그리고 이제는 금융업을 기반으로 전 세계를 대상으로 돈놀이에 나섰다. 각국의 진입장벽이 있어 돈놀이가 여의치 않자 금융세계화(주3)를 외쳐 진입장벽을 없애고 환투기, 주식투기로 돈을 거둬들였다. 그래서 또 썼다. 뭐 언제든 이런 저런 대책이 나와서 미국인들은 부지런히 돈을 쓸 수 있었다.

그런 한편으로 미국의 금융자본은 점차 경제적으로 양극화되어가는 자국에서의 소비력이 절대적으로 감소되는 추세를 막기 위해 자국민에게 신용을 공급하기 시작한다. 프라임 론, 서브프라임 론, 신용카드 론, 오토론, 스튜던트론, 기타 등등 론… 현재 가처분소득이 없는 노동자는 미래 예상수입을 담보로 돈을 끌어다 쓰는, 자멸적인 소비패턴에 접어들었다. 문제는 이러한 소비패턴이 지속적인 부의 증가에 기반 한 소비가 아닌 화폐증발, 신용공급에 의한 소비라는 점이다. 쉽게 말해 미국이라는 집구석에 돈 나올 구석이 없는데 자기들끼리 종이돈 만들어 서로 빌려주고 쓰고 있었다는 소리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미국 발 불황은 일시적인 경기후퇴(recession)라기보다는 경제공황(crisis)의 성격이 짙다. 어느 한 구석 탈출할 구멍이 보이지 않는다. 현대 자본주의의 전제조건을 다시 상기해보라. 달러는 거의 휴지조각이 되었고, 석유는 천정부지로 올라 떨어질 전망이 없고, 미군은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보이지 않는 적과 지극히 경제비효율적인 전쟁을 치르느라 천문학적인 예산을 쓰고 있으며, 미국인들의 소비력은 바닥이 드러났다.

이 상황에서 중국과 인도 등의 신흥공업국가들에 기대를 거는 이들이 외쳐대는 소리가 “비동조화(decoupling)”라는 단어다. 단기적으로 이들은 신흥공업국들의 증시가 미국 증시의 폭락 장세와 따로 노는 듯이 보이는 현상을 금융교란의 대안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장기적으로 이들 국가가 발달하면 미국의 소비력을 그들이 대체해줄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이 있다. 요 며칠 새 중국과 인도의 살인적인 주식폭락으로 첫 번째 희망은 사라졌다. 더불어 이들 국가의 주요 교역국이 결국 미국이고 또 하나의 주요 교역국인 유럽이 미국 못지않게 서브프라임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비동조화”는 비과학적인 희망사항일 뿐이다.

그나마 우리나라는 지난 몇 년간 수출선을 미국과 일본 위주에서 중국과 제3세계로 다변화시킨 덕에 2007년 수출은 호조를 이루었고 2008년에도 그럭저럭 수출신장세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문제는 역시 우리에게도 비동조화의 신화는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증시는 예상보다 더 민감하게 세계증시와의 동조화 현상을 보이고 있고 국내 부동산 시장은 한국판 서브프라임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니 새 정부는 지금 무엇을 고민하고 있어야 할 때일까.

한반도 대운하를 통한 인위적인 경기부양? 영어몰입교육을 통한 국제적 경제인의 양성? 금산분리 철폐를 통한 산업자본의 금융지배? 공공서비스의 민영화? 국가의 농업연구기능 포기? 일부 수긍이 가는 구석도 없지 않으나 대부분의 내용들은 현대 자본주의의 근본적 오류를 답습하고 있는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인위적인 경기부양에 인위적인 소비부양은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여야 한다.

즉 한반도 남쪽이라는 경제권은 이제 수출을 통한 부의 창출로서만 유지되는 경제 시스템이 아닌 실질적인 소비력을 지닌 소비자에 의해 지탱되는 내수경제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소비자가 빚을 내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번 돈으로 풍족하게 소비를 할 수 있을까. 지난번에 사르코지가 대안을 하나 제시해줬다. 기업과 주주와 노동자가 각각 기업이윤의 1/3씩 나눠가지면 된다. 쉽지 않은가. 성장과 분배는 따로 노는 것이 아니다.

전 세계적인 규모에서 한동안 심각한 경기후퇴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신용공황, 경제공황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어제까지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던 것들이 앞으로 귀중한 것으로 대접받게 될지도 모른다. 수출로 경제를 꾸려나가던 우리나라의 경제구조는 이런 면에서 매우 어려운 처지다. 그렇다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자유무역도 좋고 수출도 좋지만 결국 나라 안에서 경제의 주요기능이 발휘될 수 있는 자급자족 기능이 강화된 내수경제 체제를 – 궁극적으로는 한반도 전체를 아우르는 – 구상하고 실천하여야 한다.

(주1) 공산주의로부터의 위협을 부르짖는 우익과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부르짖는 좌익 모두

(주2) 물론 여전히 제3세계 대부분은 오염된 하천과 열악한 주거, 그리고 쥐꼬리만한 소득이 주어졌을 뿐이다.

(주3) 그런 점에서 금융세계화는 실은 금융의 미국화라는 것이다. 헐리웃 영화가 전 세계 시장을 장악한다고 우리는 그것을 영화시장의 세계화라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공황에 대한 공포감?

panic 은 사람의 감정상으로 느끼는 공포심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면서 경제용어로는 ‘공황’을 의미하기도 한다. 자본주의 역사에 있어서 주류들마저 공황이라고 불렀던 시기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사실 공황은 자본주의의 무정부적인 생산방식에서는 피할 수 없는 불가피한 것이기도 하다. 그것을 불황(recession)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건 어떻건 간에 말이다.

panic이 뜻하는 두 가지 의미를 언급한 이유는 뉴스 한 꼭지를 보니 바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바로 공황(panic)에 대한 진정한 공포심(panic)을 느끼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FRB는 화요일인 22일(현지시간) 아침 뉴욕증시 개장에 앞서 임시회의를 열고 전격적으로 연방기금금리를 기존 4.25%에서 3.5%로 낮췄다. 이에 따라 8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불거진 후 FRB는 5개월 만에 무려 1.75%포인트나 금리를 내렸다.

이런 무지막지한 금리인하폭도 놀라운 일이지만 이번 금리인하가 월요일 FRB 이사진들 간의 긴급 전화 회의를 통해 결정되었다는 사실도 놀랍다. 왠지 바짝 긴장한 채 공포심에 젖은 떨린 음성으로 전화 통화를 했을 버냉키가 떠오른다. 학자로 고고하게 살 것을 왜 그린스펀이 저질러놓고 내팽개쳐 놓은 파티 음식을 자기가 치워야 하나 하는 생각을 했을까?

여하튼 전격적인 금리인하로 유럽 증시는 반등에 성공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 조치 역시 지난번의 모기지 금리 동결이나 세금환급처럼 순간의 약발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웬만한 시장참여자들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불황이 아니라 공황일지도 모른다. 그러한 상황을 ‘단순한 경기침체’, ‘잠깐의 불황’이라는 표현 등으로 감추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공황이 소비가 몇 프로 감소하고 실업률이 몇 프로 상승하면 공황이라고 규정되어 있는 것은 없으니 말이다. 그것은 어쩌면 말 그대로 공포감이다.

지불인출쇄도(bank run)는 은행에 여전히 돈이 있음에도 은행을 믿을 수 없어 한꺼번에 예금자들이 몰려들어 신용이 마비되는 것이고 fund run 은 마찬가지 맥락에서 주식시장을 믿을 수 없어 한꺼번에 환매가 몰려 주식시장이 마비되는 것이다. 때로는 경제마비에 대한 집단적인 공포감 자체가 경제를 마비시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경제학은 심리학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FRB의 오늘 금리 인하조치는 그 숫자상으로만 보면 시장에 대한 급처방의 기능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FRB 자체의 그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시장참여자들에게는 또 하나의 불안감으로, 향후 더 큰 시장악화 상황으로 몰아갈 개연성도 있다. 의사가 옳은 시술법을 선택해놓고도 시술행위를 제대로 못하고 진땀을 흘린다면 환자는 그 의사를 믿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