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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실을 볼 수 있다는 공포”가 대안일까?

도덕이나 숭고한 가치로는 탐욕을 통제할 수 없다. 탐욕은 오로지 손실을 볼 수 있다는 공포로 통제돼야 한다. 그리고 이 공포란 무모한 금융기관이나 대리인이 절대 국민 세금으로 구제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나온다. 최근 위기 동안 이뤄진 구제조치는 도덕적 해이 문제를 심화시켰다. 대형 금융회사는 망하지 않고 구제받을 것이라는 생각을 강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인수를 통해 금융 회사들이 몸집을 불림으로써 시장의 왜곡 현상은 더 커졌다. 만약 기업이 너무 커서 망하지 않는다면, 지나치게 큰 기업은 쪼개야 한다.[“탐욕은 선하다”던 게코가 돌아왔다]

누리엘 루비니가 조선비즈에 기고한 칼럼 내용 중 일부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늘 반복되는 주제인 이른바 “대마불사(大馬不死)” 신화를 종식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러한 주장이 그동안 얼마나 실제로 관철되었는지도 의문일뿐더러, 이러한 주장이 옳은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적어도 미국 자본주의 역사에서 보면 중앙은행이라는 최종대부자가 생긴 이래 멕시코 모라토리엄 사태, S&L사태, LTCM사태 등 주요국면에서 채권자들은 언제나 구제금융을 통해 보호를 받았다. 구제금융의 논리는 시스템 붕괴 방지였다. 부실채권이 여타 우량 채권을 오염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문제는 루비니가 걱정하는바 투자자들이 이 과정에서 모럴해저드에 빠져 자신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초과하는 위험을 부담하게 되어 위기가 반복된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는 근본적으로 자본의 소유가 사유화되어 있는 반면, 그 자본의 부실화에 대한 비용이 사회화되어 있다는 모순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만약 소유와 비용부담이 일원화되면 모순이 상당수 제거될 수 있을 것이다. 소유와 비용부담을 다 사유화시키거나 다 사회화시키면 될 것이다. 루비니의 주장은 해당 인용문으로만 보면 이 중 전자의 대안을 연상시킨다. 즉, 최종대부자로서의 중앙은행이나 정부의 존재를 부정하는 시장 자유주의자의 뉘앙스가 느껴진다.

사실 어느 정도는 이미 “손실을 볼 수 있다는 공포”가 전파되어 있다. 미국에서 올해만 해도 118개의 은행들이 문을 닫았다. 리만브라더스나 베어스턴스 등과 같은 대형은행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므로 문제는 “대대마(大大馬)” 골드만삭스나 패니메/프레디맥같은 핵심(!)기관만 차별적으로 구제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이 들 기관의 붕괴가 금융시스템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공포 – 사회 “전체가 손실을 볼 수 있다는 공포” – 때문이며, 또 하나 – 더 근본적인 원인일 수도 있는데 – 사적자본과 공적통제기관의 인맥들이 긴밀하게 얽혀있는 미국의 금권정치의 병폐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공포를 느끼기에는 심판과 너무 친하다.

공포의 보수(Le Salaire De La Peur, 1953)

옛날 영화를 볼 적마다 항상 엉뚱한 생각을 하곤 한다. ‘저 사람들은 이제 모두 죽었는데 저렇게들 아등바등 사는구나’라는 생각이다. 극으로의 몰입을 방해하는 잡념이지만 옛날 영화, 특히 흑백영화를 감상하다보면 어느 샌가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런데 바로 그 늘 뇌리에서 떠나지 않던 ‘죽음’을 이야기한 흑백영화를 얼마 전에 봤다.

누가 당신의 손가락을 자르는 대가로 돈을 주겠다고 하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일단 손가락을 자를 용의가 있는지? 그렇다면 얼마를 받을 요량인지? 정말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여기 그 질문에 대답한 이들이 있다. 손가락이 아닌 목숨을 대가로 돈을 벌겠다는 네 사나이가 있다.

베네수엘라의 어느 가상의 도시에는 할 일도 없이 하루를 때우는 무직자들이 널려있다. 도시에서의 탈출을 꿈꾸지만 그곳은 마치 바다 한 가운데의 무인도처럼 탈출할 길이 요원하다. 그곳을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은 그들의 손으로 벌 수 없을 정도의 많은 돈을 버는 것 정도뿐이다.

그 창살 없는 감옥에는 석유회사가 하나 있었다. 바로 ‘남부석유회사(Southern Oil Company)’, 이른바 SOC. 얼핏 실존하는 석유메이저 SoCal을 연상시키는 이름을 가진 이 회사의 유정에 엄청난 화재가 발생했다. 불을 끌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더 큰 불을 일으키는 것, 즉 폭발을 통해 산소를 흡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지에는 폭탄이 없었고 바로 SOC 본사에 충격에 극도로 민감한 폭약인 니트로글리세린만이 있었다. 회사는 그것들을 운반하기로 하고 도시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폭약을 운반할 운전사를 모집한다. 그들은 죽음의 공포를 대가로 2천 달러라는 거액을 제시한다. 몰려든 사람들 중에서 마리오(이브몽땅)를 포함한 네 명이 선발된다.

새벽의 여명을 뚫고 각자 두 명 씩 두 대의 트럭에 나눠 출발하는 이들. 들쑥날쑥 패인 시골도로를 덜컹거리며 달리니 긴장감이 이만저만 아니다. 급회전 길에서 낭떠러지 옆에 세워진 낡은 나무발판을 길 삼아 차를 돌리는 장면은 보는 이들마저 가슴을 졸이게 한다. 가는 길에 떨어진 큰 바위의 폭파장면 역시 볼거리.

이 영화를 진정 명작으로 만드는 요소는 그러한 극한상황에서 사람들이 제각각 보이는 희생정신, 비겁함, 광기(狂氣), 나약함, 용기 등이 어떻게 상호반응하며 어떠한 결과를 낳는가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각 때문이다. 영화는 마치 이 네 사람을 실험실 유리관에 넣어놓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관찰하는 듯한 영상을 제공하고 있다.

결국 주인공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죽음을 맞이한다. 내가 강박관념처럼 갖고 있던 흑백영화 배우들의 현실이 그 영화에서는 그대로 실현되는 영화인 셈이다. 덕분에(?) 난 이 영화를 보면서는 적어도 배우들의 실제 죽음을 생각하지는 않았다. 단 한명 이브몽땅의 예전 죽음 소식이 잠깐 뇌리에 스쳤을 뿐이다.

공산당 당원으로 활동하는 등 정치적으로 급진적이었던 이브몽땅이었고 석유메이저 SOC가 주요 모티브로 등장하지만 이 영화는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영화는 아니다. 그보다는 ‘인간이 공포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라는 어쩌면 보다 근본적인, 인간성에 관한 질문을 성찰해보는 영화다. 그러한 대처방식은 때로 정치적인 분쟁의 극한상황에서 그 정치적 대의와 상관없이 개인별로 다양하다는 점에서, 오히려 세계관을 앞서는 그 무엇일지도 모르겠다.

이번 충무로 국제영화제 상영작으로 8월 31일 저녁 8시 프로로 중앙시네마에서 봤다.

공황에 대한 공포감?

panic 은 사람의 감정상으로 느끼는 공포심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면서 경제용어로는 ‘공황’을 의미하기도 한다. 자본주의 역사에 있어서 주류들마저 공황이라고 불렀던 시기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사실 공황은 자본주의의 무정부적인 생산방식에서는 피할 수 없는 불가피한 것이기도 하다. 그것을 불황(recession)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건 어떻건 간에 말이다.

panic이 뜻하는 두 가지 의미를 언급한 이유는 뉴스 한 꼭지를 보니 바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바로 공황(panic)에 대한 진정한 공포심(panic)을 느끼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FRB는 화요일인 22일(현지시간) 아침 뉴욕증시 개장에 앞서 임시회의를 열고 전격적으로 연방기금금리를 기존 4.25%에서 3.5%로 낮췄다. 이에 따라 8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불거진 후 FRB는 5개월 만에 무려 1.75%포인트나 금리를 내렸다.

이런 무지막지한 금리인하폭도 놀라운 일이지만 이번 금리인하가 월요일 FRB 이사진들 간의 긴급 전화 회의를 통해 결정되었다는 사실도 놀랍다. 왠지 바짝 긴장한 채 공포심에 젖은 떨린 음성으로 전화 통화를 했을 버냉키가 떠오른다. 학자로 고고하게 살 것을 왜 그린스펀이 저질러놓고 내팽개쳐 놓은 파티 음식을 자기가 치워야 하나 하는 생각을 했을까?

여하튼 전격적인 금리인하로 유럽 증시는 반등에 성공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 조치 역시 지난번의 모기지 금리 동결이나 세금환급처럼 순간의 약발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웬만한 시장참여자들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불황이 아니라 공황일지도 모른다. 그러한 상황을 ‘단순한 경기침체’, ‘잠깐의 불황’이라는 표현 등으로 감추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공황이 소비가 몇 프로 감소하고 실업률이 몇 프로 상승하면 공황이라고 규정되어 있는 것은 없으니 말이다. 그것은 어쩌면 말 그대로 공포감이다.

지불인출쇄도(bank run)는 은행에 여전히 돈이 있음에도 은행을 믿을 수 없어 한꺼번에 예금자들이 몰려들어 신용이 마비되는 것이고 fund run 은 마찬가지 맥락에서 주식시장을 믿을 수 없어 한꺼번에 환매가 몰려 주식시장이 마비되는 것이다. 때로는 경제마비에 대한 집단적인 공포감 자체가 경제를 마비시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경제학은 심리학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FRB의 오늘 금리 인하조치는 그 숫자상으로만 보면 시장에 대한 급처방의 기능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FRB 자체의 그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시장참여자들에게는 또 하나의 불안감으로, 향후 더 큰 시장악화 상황으로 몰아갈 개연성도 있다. 의사가 옳은 시술법을 선택해놓고도 시술행위를 제대로 못하고 진땀을 흘린다면 환자는 그 의사를 믿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