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알란 그린스펀

자본주의에 대한 그린스펀의 숭고한 신념

파이낸셜타임스가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라는 기획으로 여러 유명인들의 칼럼을 싣고 있다. 사실 매스미디어는 ‘자본주의’라는 직설적인 표현을 그리 자주 쓰지 않는다. 대신 ‘시장경제’ – 또는 우리나라 같은 경우 ‘자유민주주의’ – 라는 에두른 표현을 쓰곤 한다. 하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시장의 실패’가 단순히 특정단계의 경제적 국면에 의한 실패가 아닌 체제의 근간을 삼고 있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실패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주류사회에서조차 제기되면서, 마침내 매스미디어는 ‘자본주의’란 단어 그 자체를 호명하기 시작한 것이다.

反자본주의자들의 신랄함은 “정실 자본주의”와 자유 시장을 혼동하는 이들에게서 가장 두드러진 것 같다. 정실 자본주의는 정치적 지도자가 – 대개 정치적 지지를 위해서 – 통상적으로 민간부문의 개인이나 기업에게 특혜를 부여할 때 자주 일어나곤 한다. 그건 자본주의가 아니다. 그건 부패라 불린다. 자본주의와 관련하여 종종 비난을 받는 탐욕은 사실 시장 자본주의의 특징이 아닌 인간성의 특징이고 모든 경제체제에 영향을 미친다. 점증하는 소득의 불평등에 관한 합당한 우려는 자본주의가 아닌 세계화와 혁신을 반영하고 있다.[Meddle with the market at your peril]

설명이 필요 없는 유명인사 알란 그린스펀의 글이다. 글의 전체적인 내용은 자본주의의 우월성에 관한 내용이다. 그는 체제의 우월성을, 사라진 사회주의 실험과 비교하여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고루한 체제비교가 다소 위안을 될지언정 당면문제를 푸는데 그리 도움은 되지 않는다. 어떤 종양이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하기 위해 다른 종양의 문제점을 거론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인용문은 그린스펀이 ‘자본주의’라는 종양의 부작용에 대해서 그나마 언급한 부분이지만 그마저도 자본주의가 원인은 아니라고 말하는 대목이다.

정실주의, 부패, 탐욕, 불평등이 그린스펀이 내뱉은 부정적인 단어들이다. 그에 따르면 이런 것들은 인간성 자체의 문제거나, 정부라는 존재의 문제거나, 세계화 등의 국면에서 특정하게 나타나는 부작용일 뿐이다. 그리고 자본주의 자체는 이런 것들과는 관련이 없다는 것이 그린스펀의 주장이다. 칼 맑스는 생산수단의 사적소유가 언급한 모든 것들의 원인이라 분석했고, 아담 스미스는 이기심이 자본주의를 발전시킨다며 면죄부를 부여했지만 그린스펀은 이 모두를 부정한 셈이다. 상관관계에 대한 이런 전면적인 부정은 오히려 신선해 보인다.

그린스펀 말처럼 봉건제 등 다른 체제에서도 – 심지어 舊사회주의에서도 – 언급한 부작용들은 존재해왔다. 그것이 인간성에 내재된 특징이란 설명도 일리 있다. 하지만 어떤 현상의 원인을 따질 때 이런 근본주의적 주장은 그리 실용적이지 않다. 환경오염의 원인이 ‘인간의 존재’ 자체라고 말하면 딴에는 옳은 소리지만 무책임한 소리다. 자본주의가 시장의 확장을 위해 세계화를 가속화했고, 사적소유가 탐욕을 부추겼고, 그 결과가 불평등의 심화라는 이론적으로 개연성 있는 주장을 그린스펀은 ‘인간이 원래 그래’라고 맞받아치고 있는 셈이다.

자본주의의 놀라운 생산력은 다른 체제를 압도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반체제의 이념을 체제 안으로 흡수하는 신축성으로 한때 선순환이 가능한 체제가 아닌가 하는 자부심까지 위정자들에게 불어넣어주었다. 하지만 그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 여전히 설득력 있는 이론 하나는 칼 맑스의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이다 – 과거와 같은 관성으로 체제가 발전하기 어렵다는 개연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체제 내의 부작용에 대해 주류학자까지 동의하는 와중에, 그린스펀의 숭고한 신념을 학문적이라고 받아들이기는 매우 어려워 보인다.

아인 랜드(Ayn Rand)

그린스펀은 독특한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이번엔 러시아에서 추방당한 소설가이자 사회철학가이며 사이비종교의 교주와도 같은 아이 랜드라는 사람과의 만남이 그 계기였다. 그린스펀은 1952년 첫 만남 이후, 매주 토요일 그녀의 집에서 열리는 모임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그 모임에서 랜드는 극단적인 개인주의 철학으로 추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린스펀은 훗날 자신의 사상에 랜드가 미친 영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랜드를 만났을 때, 나는 아담 스미스식의 자유기업인으로서 그녀의 이론적 구조와 효율적인 시장론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자본주의가 능률적이고 실용적일 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이유를 생각해보게 만들었습니다.”[그린스펀 효과, 데이비드 시실리아/제프리 크뢱쉔크 지음, 정순원 옮김, 21세기 북스, 2000년, p23]

두어 권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쓰기도 했던 아인 랜드(Ayn Rand)는 이른바 객관주의(Objectivism)라는 철학이론을 주장한 철학자이기도 하였다 한다. 기본적으로 그는 기본적으로 재산권을 포함한 개인의 권리, 자유방임 자본주의의 주창자였다. 소비에트 혁명 후 미국으로 피난 오면서 자연적으로 생성된 반(反)집단주의, 그리고 반(反)스탈린주의의 역반응으로 짐작되는 그의 이러한 입장은 ‘이타주의 윤리’를 거부하는 ‘이기주의 윤리’로까지 발전한다. 

“난 원래 자본주의의 지지자가 아니라 이기주의의 지지자다. 그리고 원래 이기주의의 지지자가 아니라 이성의 지지자다. 만약 누군가 이성의 우월함을 인지하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적용한다면, 모든 나머지 것들이 따라올 것이다.”
“I am not primarily an advocate of capitalism, but of egoism; and I am not primarily an advocate of egoism, but of reason. If one recognizes the supremacy of reason and applies it consistently, all the rest follows.”

여기에서 말하는 “이성(reason)”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는 그의 사고를 좀 더 들여다봐야 알 것이나, 통상적인 그러한 계통의 철학자들이 일반적으로 주장하는 바에 비추어 판단하자면, 뭔가 초월적이고 우생학적인 무엇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철학에 젬병인 나는) 무슨 초인적 의지 .. 뭐 이런 거 말이다.

여하튼 그의 이러한 사고체계가 한때 “경제 대통령”이라고까지 불린 알란 그린스펀에 꽤 오랫동안 영향을 미쳤고, 그린스펀의 자유방임적인 경제운용이 현재의 경제위기를 불러온 한 원인이라는 지적도 꽤 설득력을 얻고 있는 형편이니, 어쩌면 그는 – 그리고 그가 혐오하던 공산주의는 – 오늘날 자본주의 위기의 ‘맹아’가 아니었을까 하는 잡념이 들기도 한다.

아인랜드 인터뷰

The prediction business

Economics learns a thing or two from evolutionary biology
by Massimo Pigliucci

“내 생각에 세상이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규정한 주요 작동구조라고 인지한 모델이 흠이 하나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는 불명예스럽게도 전직 연방준비제도 의장이었던 알란 그린스펀의 말이다. 그는 경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그의 견해가 크게 잘못되었다고 인정하였다. 그리고 여전히 지난 시절의 그의 “흠 있는” 모델에 근거한 연방준비제도 차원의 개입에 (또는 그러함으로써의 불개입) 대해서는 사과하지 않았다. 전 세계 수 억 명의 사람들이 잘못된 가정에 근거한 정책적 결정을 내리는 누군가의 결과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할까? 경제학은 복잡한 수학적 모델 (그리고 우리 모두는 수학이 매우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에 기초한 굳건한 규율로 간주되어 왔다. 그들은 심지어 큰 소리를 내는 경제학자들에게 노벨상까지 쥐어준다! 그리고 여전히 경제학은 언제나 사회학, 심리학,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생태학이나 진화 생물학과 같은 생명과학 일부까지도 아우르는 “연성의(soft)” 과학이라는 동류의 대접에서 벗어나기 위해 싸워야만 했다. 참으로 그러한 다른 연구 분야의 종사자들처럼 몇몇 경제학자들 역시 “물리학을 부러워하는(physics envy)”, 즉 물리과학을 그들 분야가 그래야 하는 것 인양의 모델로써 사용한다는 혐의를 인정한다. 심지어 그린스펀의 영리한 화술을 이용하자면 좋은 과학은 물리학에 의거 모델화되어야 한다는 그 가정마저 “흠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첼시 월드 Chelsea Wald 는 사이언스지에서의 최근 논문에서 (2008년 12월) 어떻게 금융부문에서의 그렇게 수많은 똑똑한 사람들이 분명히 문제가 있고 결국에는 자본주의 그 자체의 기저를 흔들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쑤셔대는 전 세계의 경제위기를 이끌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명백한 데이터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에 걸쳐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렸는가를 물음으로써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 대답으로 일부는 “시장”은 사람들이 그들 스스로의 자기이해에 따라 행동하고, 그들이 투자를 고려하고 있는 비즈니스에 대한 적정한 정보에 완벽하고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합리적인 이들이기 때문에 기능한다는 경제학의 고집스러운 아이디어에서 찾아볼 수 있다. 경제학자들은 멍청하지 않다. 그리고 그들은 완벽한 합리성, 완벽한 정보, 그리고 즉각적인 접근이라는 것들이 시장이 기능하는 실재와는 1광년 동떨어져있다는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사실 최근 모델들에서는 이러한 가정들이 일정정도 느슨해지고 있다. 그러나 사물을 그런 식으로 모델링한다는 것은 너무나 큰 유혹이다! 결국 물리학자들도 역시 그렇게 한다. “둥그런 소를 가정하면..(consider a spherical cow)”(주1)으로 시작하는 물리학 개론의 문제를 상기하라.

그러나 이제 새로운 녀석이 나타났다. : “인지행위적 재무론(behavioral finance)”은 사람들이 어떤 때는 다소 합리적으로 행동하지만 또 어떤 때에는 노골적인 공포감에 빠져들 수도 있다는 아이디어를 진지하게 고려한다. 이 새로운 접근은 심리학이나 사회과학과 같은 인간행동의 특징에 관해 가장 많이 우리에게 말하는 바가 큰 “연성의” 과학을 포함하는 여러 분야의 학제적 환경에서 도출되었다. 아마도 그리 놀랍지 않게도 이제 때때로 경제학자들을 자극시키는 또 다른 과학이 있다. : 진화생물학. 고전적인 모델을 채택하는 종래의 “효율적 시장가설”은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과 더 직접적으로 유사성을 가지는 “적응적 시장가설”로 대체되고 있다.

진화생물학자들은 자연선택이 최적화 과정이 아니며 만족화의 과정이고 그것은 어떠한 결과물이든 간에 특정한 역사적 순간에 달성 가능한 것을 생산하고 그 문제를 “매우 충분하게” 다루는 것을 의미한다. 나아가 이것은 다소는 많은 자원을 “낭비”하고 때로 막다른 길로 치닫기도 한다.(현존하는 종의 99%가 멸종되었다는 것만을 상기하라) 떠오르는 그림은 합리주의자 패러다임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다. 그러나 또한 확실하게 훨씬 더 혼란스럽다.

진화생물학에서 배울 점이 또 하나 있는데 이를 통해 경제학자들 또는 일반대중이 특별히 행복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복잡계(complex systems)가 시간을 두고 진화하면 그들이 취하는 경로들은 (양자 역학 테두리 바깥 결정론적인 거시 물리학 법칙과 반대로)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 우발적(contingent)이다. 사회학자, 심리학자, 생태학자, 그리고 진화생물학자들은 언제라도 그들의 경제학의 친구들에게 충분히 복잡한 임의의 역사적 모델을 통해 (공룡의 멸종, 닷컴 버블과 같은) 과거의 사건들을 설명하는 것이 분명히 가능하다고 말해줄 수 있다. 그러나 능력 밖에 있는 것은 정확히 경제학자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다. : 미래의 예측, “좋은” 과학의 인증표.

나는 여기서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 특정한 실행 가능한 예측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예를 들어 기상학은 그것이 12월과 2월의 기간 동안 뉴욕의 낮은 온도일 것이 매우 확률이 높다는 것을 당신에게 말해준다는 의미에서 예언적이다. 그러나 그것이 내일 당신이 두꺼운 코트나 또는 우산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해줄 능력은 별로 없다.(주2) 유사하게 생태학자는 예를 들어 가용영역의 크기 또는 (초계체 역학에 영향을 미치는) 인접한 유사영역과의 연계 등 특정 환경인자들이 변할 때, 멸종의 가능성이 증가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개별 종이 언제 어디서 멸종할 지에 대해 예언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유사하게 새로운 경제적 모델들은 그들이 예를 들어 가치측정이 어려운 주식들이 “낙관적인” 시기에는 잘 나갈 것이라는, 반면 가치측정이 쉬운 주식은 “비관적인” 시기에 좀 더 잘 나갈 것이라는 것은 이야기할 수 있는 의미에서만 “작동”할 것이다. 그들은 심지어 주식들이 얼마나 잘 나가는지에 대한 분산이 두 번째 것보다는 첫 번째 타입에서 보다 높다는 것도 이야기해줄 수 있다. 그러나 어느 것도 당신이 당신 브로커에게 오늘 이따가 이야기할 것에 대해서나 지금 이 시점에서 무엇을 사고팔아야 할지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에 대한 용도로는 쓸 수 없을 것이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위의 모든 것들이 경제학, 사회학, 심리학, 생태학, 진화생물학의 실패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과학들이 물리학의 (모든 것은 아닐지라도) 많은 것들과는 다르게 복잡하고, 역사적인 시스템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에서 예견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제거할 필요가 있는 진정한 가정은 물리학이 모든 다른 과학들이 비교되어지는 금표준(golden standard)이라는 매우 집요하고 해로운 가정이다. 이제 우리가 연방 자금조달 관료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납득시킬 수만 있다면…

매우 재밌는 글이어서 어설프게나마 번역해보았다. 요즘 유행하는 복잡계 경제학의 단초를 엿볼 수 있기도 하거니와 경제학이 끊임없이 접점을 찾아가고 있는 여타 자연과학들과의 상호관련성도 함축성 있게 설명하고 있다. 또한 이글이 알려주는 바는 어떠한 학문이건 간에 ‘예측’ 더 나아가 ‘예언’(사실 위 번역문의 원문으로 보자면 위 글에서 예언이라고 한 것들은 예측이 더 정확할 것이나 그것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 예언이라고 하였다.)에 대한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주위의 사람들에게 ‘넌 왜 비싼 학비 내가면서 그 공부 했느냐’는 또는 ‘경제학 공부한 놈이 주식은 왜 까먹냐’는 핀잔에 시달릴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의 글의 취지에서 다른 것을 떠나 분명하게 동의하는 것은 특히나 경제학에서 ‘예언’ 심지어 ‘예측’은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요즘 그렇게 예언에 성공(?)해서 명성을 얻은 이들이 월스트리트나 아고라에 여럿 있다. 그렇지만 그 사실이 경제학은 예측이 가능한 학문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Adam Smith’s Lost Legacy’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Gavin Kennedy 라는 경제학자는 내가 번역한 위 글을 부분 인용하면서 현재 경제학계 또는 경제계에서 만연해 있는 그런 풍토를 “예언 비즈니스(the prediction business)”라고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상당 부분 공감하는 바이다. 과거의 경험과 학문의 틀 내에서 현재의 위기에 대한 새로운 대안과 해법을 모색하는 것은 유용할 것이다. 그러나 마치 자신의 입장이 전지적인 것 인양 행세하며 자신의 프레임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으려는 아집은 logger 님의 표현에 따르면 불쏘시개로 써도 시원치 않을 쓰레기일 것이다.

(주1) 모든 실재하는 현상을 가급적 둥글게, 즉 모나지 않게 가정하고 시작하려는 과학적 모델링의 행태를 꼬집는 농담(참고하기) : 역자 주

(주2) 기상청 직원 소풍가는 날 비 온다는 농담의 맥락에서 : 역자 주

글래스-스티걸 법의 몰락

아이켄그린과 sonnet님의 글에서 불편함을 느꼈던 것이 또 하나 있는데 그 두분이 바로 글래스-스티걸 법의 입법취지나 그 역사적 맥락, 그리고 그 폐지를 둘러싼 진실들을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무시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글래스-스티걸 법은 사실 독점을 허용하지 않는 동시에 은행의 공공적 성격을 미국적 맥락에서 유지시키겠다는 수정주의적 타협의 산물이다.(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러하기에 “근원적 모순론자”에 대한 공격의 도구로는 부적절하다)

이 법이 폐지된 것은 경쟁을 촉진하거나 투자은행의 사업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금융복합기업의 거대화를 촉진하겠다는 발상에 가깝다. 즉 미국 자본주의의 유구한 전통인 반독점 정신에 그리 부합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러한 일련의 글래스-스티걸 법의 역사를 알아보고자 미국의 공익방송인 PBS가 그들의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The Long Demise of Glass-Steagall의 번역문을 올려둔다.

참고로 해당 글은 그들이 제작한 “Wall Street Fix”라는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한 인터뷰,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워싱턴포스트, 타임, 포츈, 비즈니스위크 등 여타 언론매체의 해당 기사를 정리한 것이라 한다.

* 몇몇 표현이 지극히 부자연스러운데 무림고수들의 훈수 좀 부탁합니다. 🙂

1933 글래스-스티걸 법이 금융에 새로운 풍경을 창조하다
 
1929년의 대격변에 이어 미국의 주요 5개 은행들이 모두 문을 닫는다. 많은 이들은, 특히 정치인들은, 1920년대의 은행들이 개입된 시장투기를 붕괴의 원인으로 간주한다.

1933년 상원의원 카터 글래스(버지니아)와 하원의원 헨리 스티걸(앨라배마)은 상업은행들이 주식이나 채권을 인수하는 것으로 허용함으로써 생길 수 있는 이해관계의 갈등을 제한하기 위해 그들의 이름이 포함된 역사적인 법률을 제안한다. 세기의 초반에 개인투자자들은 그들의 압도적인 이해관계가 개인투자자들보다 은행에 이익을 주는 주식들의 가격을 높이고자 했던 은행들로 인해 심대한 타격을 입는다. 새로운 법은 상업은행이 증권을 인수하는 것을 금지하고 은행들이 단순대출자나 인수자 (중개) 중 어느 하나를 고르도록 강제한다. 이 법은 또한 은행예금을 보장하는  연방저당보험공사(Federal Deposit Insurance Corporation : FDIC)를 설립하고 신용에 대한 연방준비제도의 통제를 강화한다.

글래스-스티걸 법은 정치적 야망이 큰 전직 뉴욕 검사 페르디난드 페코아가 주식시장 붕괴에 대한 그들의 역할에 대답하기 위해 상원 금융통화 위원회에 소환당한 은행 관리들에 대한 더 강한 규제를 원하는 대중적 지지를 북돋으면서 통과되었다.

1956년 금융지주회사법이 통과되는데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은행을 소유한 금융지주회사가 비금융업에 종사할 수 없고 다른 주의 은행을 사들일 수 없게 함으로써 은행에 대한 제한을 강화한다.
 
1960년대-70년대 글래스-스티걸 법을 느슨하게 하려는 최초의 노력
 
1960년의 초입 은행들은 의회에 그들이 지방정부 채권 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로비한다. 그리고 글래스-스티걸 법을 둘러싼 이단문화가 싹트게끔 로비한다. 몇몇 로비스트들은 그 법이 그들의 자식들이 대학까지 갈 것이라고 떠벌이기까지 했다.

1970년대 몇몇 중개회사들은 이자를 지불하고 수표발급이 가능하고 신용카드나 현금카드를 제공하는 머니마켓계정을 팔면서 은행의 영역을 침범하기 시작한다.
 
1986-87 Fed 가 글래스-스티걸 법을 재해석하기 시작하다 : 그린스펀이 Fed 의장이 되다

1986년 겨울 금융에 관해 규제권한을 가진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상업은행이 증권업에 “주되게 관여하는(engaged principally)” 것을 금지한  글래스-스티걸 법의 20조를 재해석하였다. 즉 은행들이 투자은행업으로부터의 총수입의 5%까지 올릴 수 있도록 결정한다. 연방이사회는 그리고 상업은행의 하나인 뱅커스트러스트가 특정한 기업어음(무보증 단기 신용) 계약에 관여할 수 있게 허용한다. 뱅커스트러스트에 대한 결정으로 이사회는 “주되게 관여하는”이라는 20조의 문구가 그것이 매출에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는 한 은행들이 소규모의 채권인수를 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으로 결론 내린다. 이것이 Fed가 전에 금지되었던 몇몇 업역에 대해 20조가 허용하는 것이라고 해석내린 첫 조치였다.

1987년 봄 의장 폴 볼커가 반대한 것을 깔아뭉개고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글래스-스티걸 법 하에서 규제를 완화하는 것에 대해 3-2로 가결시킨다. 이 투표는 은행들이 기업어음, 지방정부 매출채권, 모기지담보부채권 등 몇몇 인수업이 가능하도록 글래스-스티걸 법의 제한을 완화하는 것을 옹호하는 시티콥, 제이피모건, 뱅커스트러스트의 청문제안이 있은 후 진행되었다. 시티콥의 부회장인 토마스 테오볼드는 1933년 이후 기업의 나쁜 행동에 대한 세 개의 “외부 점검(outside checks)”이 등장했다고 주장했다. : “매우 효율적인” SEC ; 똑똑한 투자자, 그리고 “매우 세련된” 평가기관들. 볼커는 확신하지 못한다. 그리고 대출자들이 돈이 되는 증권업무의 추구를 위해 대출기준을 무모하게 낮출 것이고 대중에게 나쁜 대출을 팔 것이라고 그의 두려움을 피력했다. 많은 비판자들에게 이는 두 가지 다른 문화의 이슈로 귀결된다. – 증권업이었던 리스크의 문화와 은행문화였던 예금 보호의 문화.

1987년 3월 Fed는 1986년 뱅커스트러스트의 결정과 같은 논리를 적용하여 체이스맨허튼이 기업어음 인수업의 개시에 대한 요청을 승인한다. 그리고 4월 그것의 이론적 타당성을 설명하는 훈령을 발표한다. 이사회가 여전히 상업은행과 인수업을 섞는 것에 대해 우려를 갖고 있는 동안 “주되게 관여하는”에 대해 원래 의회의 의도는 몇몇 증권업을 허용하는 것이었다는 그들의 믿음을 표명한다. Fed는 또한 장래의 어느 시점에 총매출의 5%에서 10%까지 제한을 풀 것이라는 암시도 한다. 이사회는 20조의 새로운 독해가 경쟁을 증가시키고 보다 큰 편의로 이어지고 효율을 증대할 것이라고 믿었다.

1987년 전직 제이피모건의 이사였고 금융 탈규제의 지지자인 알란 그린스펀이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의장이 된다. 그린스펀이 보다 강한 탈규제를 좋아하는 이유 하나는 미국은행들이 외국 대형기관과 경쟁하는 것을 도울 수 있다는 점이다.
 
1989-1990 글래스-스티걸 법에 대한 보다 많은 규제완화

1989년 1월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지방정부 채권과 기업어음과는 별도로 부채와 에쿼티채권을 다루는 것을 포함시키기 위해 글래스-스티걸 법의 루프홀을 확대하기 위한 제이피모건, 체이스맨허튼, 뱅커스트러스트, 시티콥의 요청을 승인한다. 인수업 매출의 한계가 여전히 5%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이는 20조 안에서 허용될 수 있다고 여겨지는 행위들의 커다란 확대를 의미한다. 1989년 후반 이사회는 1987년의 훈령과 관련하여 매출의 10%까지 제한을 늘리는 훈령을 발표한다.

1990년 제이피모건은 인수업이 10%를 초과하지 않는 한 증권을 인수하는 것이 연방준비제도로부터 허락된 최초의 은행이 된다.
 
1980년대-90년대 의회는 지속적으로 노력하지만 글래스-스티걸 법을 폐지하는데 실패한다

1984년과 1988년 상원은 글래스-스티걸 법의 주요 제한조치를 들어내는 법안을 통과시킨다. 그러나 각각의 경우 하원이 이를 막아낸다. 1991년 부시 행정부는 하원과 상원의 금융위원회 지지를 얻어 폐지안을 제출한다. 그러나 하원은 또 다시 총투표에서 이를 물리친다. 그리고 1995년 하원과 상원 금융위원회는 글래스-스티걸 법을 제거하는 법안의 새로운 버전을 승인한다. 그러나 절충을 위한 협의절차에 실패한다.

글래스-스티걸 법을 폐지하려는 시도는 전형적으로 보험회사, 증권회사, 그리고 크고 작은 은행들을 서로 싸움붙이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들 산업의 분파들이 의회에서의 그들의 이해와 연방준비제도나 재무성과 통화의 감사관이 주요금융규제자가 될것인지에 대한 영역싸움에 개입하였기 때문이다.
 
1996-1997 Fed가 효율적으로 글래스-스티걸 법을 무용지물로 만들다
 
1996년 12월 알란 그린스펀 의장의 지지를 얻어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금융지주회사가 증권인수에 있어 (10%에서) 그들의 비즈니스의 25%까지 영위하는 투자은행을 소유하는 것을 허용하는, 관례를 분쇄하는 결정을 내린다. 

1987년 글래스-스티걸 법의 20조의 재해석에 의해 창출된 루프홀의 확대는 글래스-스티걸 법을 효율적으로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실질적으로 증권업에 종사하고자 원하는 어떠한 금융지주회사라도 총매출의 25%한에서 머물 수 있었다. 그러나 법은 은행에 보험인수회사를 소유하는 것을 금하는 것과 같은 다른 제한을 부과하는 금융지주회사법과 함께 법전에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1997년 8월 Fed는 1987년과 1989년 훈령에 의거 “20조 부칙”에 부과되어 있던 많은 제한조치들을 제거한다. 이사회는 인수의 리스크가 “통제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은행들이 증권회사를 직접 인수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1997년 뱅커스트러스트(이제 도이치뱅크가 소유한)는 투자은행 알렉스브라운앤코를 인수하여 증권회사를 인수한 최초의 미국은행이 되었다.
 
1997 샌디 웨일이 트래블러스와 제이피모건을 인수하려 노력하다.; 살로먼브러더스를 인수하다.
 
1997년 여름 그 당시 트래블러스 보험회사의 수장이었던 샌디 웨일은 제이피모건과의 합병에 거의 성공한다. (제이피모건이 케미칼뱅크와 합병하기 전이다) 그러나 최후의 순간 딜은 깨진다. 그 해 가을 트래블러스는 살로먼브러더스 투자은행을 90억 달러에 인수한다. (살로먼은 그리고 트래블러스가 소유한 스미스바니브로커리지와 합쳐 살로먼스미스바니가 된다)
 
1998년 4월 웨일과 존리드는 트래블러스-시티콥의 합병을 선언한다.
 
1998년 2월 워싱턴에서의 한 만찬에서 트래블러스의 샌디 웨일은 시티콥의 존 리드를 하이야트파크에 있는 그의 호텔방에 초대하여 합병을 추진한다. 3월 웨일과 리드는 다시 만났고 이틀간의 협상 끝에 리드는 웨일에게 “합시다 파트너!”라고 외친다.

1998년 4월 웨일과 리드는 (투자기관 살로먼스미스바니를 소유한) 트래블러스와 (시티뱅크의 모회사인) 시티콥의 700억 달러의 주식스왑을 발표하였고 시티그룹을 탄생시킨다. 세계에서 가장 큰 금융서비스 회사이자 역사 상 가장 큰 기업합병이었다.

그 계약은 해당 산업을 관장하는 글래스-스티걸 법과 금융지주회사법의 규제하에서 진행되어야 했고 이 법들은 정확하게 그러한 타입의 회사 – 보험인수, 증권인수, 상업금융의 결합 – 를 불허하는 것이었다. 그 합병은 자연히 규제기관과 법률가들에게 세 가지 선택권을 주었다. : 이 규제들을 종식시키는 것, 이 딜을 모르는 체 하는 것, 또는 합병회사로 하여금 법에 부합하지 않는 여하한의 비즈니스를 제거함으로써 그들의 소비자 제공을 축소하도록 강제하는 것.

웨일은 합병을 공표하기 전에 알란 그린스펀과 다른 연방준비제도 관리들을 만났다. 그리고 후에 워싱턴포스트에게 그런스펀이 “긍정적 반응”을 시사했다고 말했다. 그들의 제안에서 웨일과 리드는 글래스-스티걸 법과 금융지주회사법에 대한 Fed의 해석에 의해 사전조율이 될 것을 확신할 수 있게끔 합병구조를 짜는데 주의를 기울였다.

의회가 만약 법을 바꾸거나 제한을 완화하지 않는다면 시티그룹은 트래블러스 보험업(Fed에 의해 3개년 연장허가를 받을 가능성이 있는) 자체를 2년으로 묶어두던가 규제에 부합하지 않은 다른 분야의 비즈니스를 제거하던가 해야 했을 것이다. 시티그룹은 그들이 그 자체나 또 다른 것을 제거하여야만 하기 전에 의회가 마침내 법을 바꿀 것이라는  — 20년간 이루려 했던 그 어떤 것 — 가정에 대해 확신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시티콥과 트래블러스는 조용히 금융규제기관과 정부관리가 그들을 지지하도록 로비했다. 3월말과 4월 초 웨일은 워싱턴으로 세 통의 주도면밀한 통화를 한다. : Fed의 의장 그린스펀, 재무부 장관 로버트 루빈, 그리고 클린턴 대통령. 4월 5일 발표 하루 전날 웨일과 리드는 다가올 발표에 대해 간략보고하기 위해 클린턴에게 의례적이고 공식적인 통화를 한다.

Fed는 9월 23일 시티콥-트래블러스 합병을 승인한다. Fed의 보도는 다음과 같다. “이사회는 트래블러스와 합병되는 회사인 시티그룹이 트래블러스와 그 계열사의 행동과 투자가 이사회에서 허용될만한 방식 – 예컨대 제안이 종료되는 2년 안에 필요한 기업분할 등 – 으로 금융지주회사법의 요구사항에 부합하는 것을 확신하는데 필요한 모든 행동을 취한다는 조건 하에 승인한다. 이사회의 승인은 또한 트래블러스와 시티그룹이 글래스-스티걸 법의 요구조건에 회사의 행동을 확인한다는 조건 하에 이루어진 것이다.”
 
1998-1999 글래스-스티걸 법을 폐지하기 위한 새롭고 강력한 로비
 
1998년 4월 6일의 합병발표에 뒤이어 웨일은 즉시 공적관계에 몰입하여 글래스-스티걸 법을 폐지하고 새로운 금융서비스법(1999년의 금융서비스현대화법이 되는)으로의 통로를 만들기 위해 로비하기 시작한다. 시티뱅크-트래블러스 딜이 발표되기 한 주전에 의회는 글래스-스티걸 법을 폐지하기 위한 최근의 노력을 유보한다. 웨일은 법안을 살리기위해 새로운 시도에 착수한다.

웨일과 리드는 경제적인 동시에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재빠르게 행동한다. 필수적인 제도변경이 뒤따르지 않을 경우 두 회사의 주가가 떨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원에서 공화당이 주도하고 있기에 현 의회 임기내에 그 법안을 발표하는 것이 희망적이었다. 클린턴 행정부가 일반적으로 글래스-스티걸의 “현대화”를 지지하는 반면에 가을 중간선거에 관한 관심들로 인해 민주당원들이 법률개정에 보다 덜 동정적일수도 있었다.

1998년 5월 하원은 은행, 증권회사, 그리고 보험회사가 거대금융복합기업으로 합병하는 것을 허용하는 법을 214표대 213표의 결과로 통과시켰다. 그리고 9월 상원금융위원회는 16대2의 차이로 중재금융조사법을 승인한다. 새로운 기회임에도 의회는 그 회기 내에 최종법안을 통과시킬 수 없었다.

새로운 법안이 무르익기 시작하면서 로비스트들은 금융현대화의 증대하는 이슈가 진정으로 정치적 펀드조달의 새 신선한 라운드를 출발시키는 신호라고 빈정댔다. 참으로 1997-98년의 선거 사이클에서 금융, 보험, 그리고 부동산 산업(FIRE 섹터라고 알려진) 로비에 2억 달러 이상을 썼고 정치기부에 1억5천만 달러를 모았다. 선거유세 기부는 의회의 금융위원회와 금융서비스법안의 직접적인 관할을 가지고 있는 다른 위원회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1999년 10월~11월 의회가 금융서비스현대화법을 통과시키다
 
25년간 12번의 시도 끝에 의회는 마침내 글래스-스티걸 법을 폐지했다. 금융기업들에게 20년 이상 3억 달러에 달하는 로비를 한 보람에 상응한 보답을 하면서 말이다. 지지자들은 변화를 대공황 시대의 유산의 기나긴 세월 끝의 몰락이라면서 환호하였다.

10월 21일 상하원 협력위원회는 마라톤과 같은 협상 끝에 교착상태에 놓이게 되었는데 주요논점은 가난한 공동체에 대한 대출에 관한 기준을 정하는 공동체 재투자법의 법률적 효과를 둘러싼 분파들의 말다툼이었다. 샌디 웨일은 금융위원회 의장인 필 그램 상원의원이 시티그룹 로비스트인 로저 레비에게 웨일이 백악관을 움직여 그 법안을 지지하게끔 하여야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그는 상하원 모임을 중지하겠다고 경고한 뒤에 클린턴 대통령에게 그날 오후 전화를 걸었다. 심각한 논의가 있었고 10월 22일 새벽 2시 45분 새로운 거래가 발표되었다. 웨일이 거래를 촉진시키는데 어떠한 차이점을 만들었는지는 불분명하다.

10월 22일 웨일과 존 리드는 19명의 행정부 관리와 율사들의 이름을 나열하면서 의회와 클린턴 대통령에게 축하의 말을 남겼다. 상하원은 11월 4일 최종적인 법안을 승인하였고 클린턴은 그 달 후반 법안에 서명하였다.

행정부가(재무부를 포함하여) 폐지에 찬성한 날 바로 다음날 월스트리트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의 전직 공동대표였던 로버트 루빈 재무부 장관은 웨일의 주요부관으로서 시티그룹의 최고위직을 수락하면서 눈썹을 한껏 치켜올렸다. 그 전해에 웨일은 로빈 장관에게 전화 걸어 그에게 다가올 합병발표에 대해 사전에 고지하였다. 웨일은 루빈에게 그가 어떤 중요한 뉴스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보도된 바에 따르면 장관은 다음과 같이 빈정거렸다. “정부를 사실 생각이세요?”

여기까지가 글래스-스티걸 법의 몰락의 역사다. 이제 궁금한 점은 아이켄그린이 “근본적으로는 사리에 맞는 선택”이었다고 논평한 글래스-스티걸 법의 폐지가 sonnet님이 “시장을 움직이는 핵심 요소”라고 말한 “경쟁과 분권화” 중 어느 것에 해당하는가 하는 것이다.(sonnet님의 해당 글 보기) 

“결국 시장은 복구되어야 한다”

시장은 분명히 현재 시점에서 필수불가결한 존재다. sonnet님이 재인용한 스티글리츠가 말하기를 “비시장 메커니즘은 이 오랜 시간 동안 작동하게 되는데, 그것이 사용하는 정보는 시장이 작동하고 있는 동안 제공된 정보이다.” 라고 하였는데 나 역시 이에 동의하는 바다. 이것이 후진적인 구사회주의 계획경제의 딜레마였다. 그들은 정보를 얻기에 너무도 능력이 안 되었고 그나마 시장도 암시장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정보란 다양한 것들이 있겠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정보는 역시 공급과 수요를 일치시켜주는 정보일 것이다. 또한 새로운 공급이나 새로운 수요의 창출에 대한 동기도 부여해준다. 또한 시장이 없었다면 facebook이나 아이폰, 그리고 구글과 같은 유연성 있는 혁신이 가능했을까? 어느 정도는 회의적이다.(주1) 어쨌든 경제에 관한 정보의 제공이라는 측면에 있어서는 아직까지 우리는 이보다 나은 수단을 찾아내지 못하였다.

한편 sonnet님의 글에서 지적하고 있다시피 “경험적으로 보면, 시장은 위기에 취약”하다. 즉 시장이 위기에 빠지게 되면 전통적으로 고르게 분산되어 있다고 가정되던 공급과 수요가 순식간에 어느 한쪽으로 쏠리게 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변동가능한) 고정환율제이던 브레턴우즈 체제 시절, 자유변동환율제를 지지하던 밀튼 프리드먼은 환율이 비정상적으로 오르거나 떨어질 경우 이를 공격하는 반대투기가 일어나 투기꾼들은 환율 안정화 세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논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런 환율 안정화 투기는 거의 없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런 식으로 대세를 거스를 수 있는 배짱투자가는 시장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것입니다.”[sonnet, 시장원리주의에 대한 단상]

이 블로그에서도 윗글에서 언급한 투기와 반대투기의 개념을 간략하게 설명한 적이 있어 재인용하겠다.

파생상품시장의 참여자는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다. 즉 ‘위험을 분산하고자 하는 자(hedger)’, ‘그 hedger에게 위험을 넘겨받는 대신 수익을 취하려는 투기자(speculator)’,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시적인 시장의 교란으로부터 무위험차익을 실현하려는 자(arbitrageur)’가 그들이다. 이 체제의 신봉자들은 위험은 분산되어야 하며 두 번째 주체 즉 speculator가 없으면 hedger는 위험을 분산하지 못하여 시장의 안정성이 저해된다는 논지다.[foog, 부시 행정부의 새 금융규제 수단은 솜방망이?]

즉 파생상품시장도 그렇지만 많은 여타 시장은 hedger와 speculator(또는 risk taker)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주2) 이 둘이 없으면 거래가 없고 시장은 돌아가지 않게 된다. 아파트 시장에서 아파트를 팔아 현금을 확보하면 hedger에 가깝고 그 아파트를 사서 자산가치 상승을 노리면 risk taker에 가깝고 뭐 이런 식이다. 노동시장에서 노동자는 hedger에 가깝고 자본가는 speculator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시장이 위기에 도래하면 갑자기 모두가 hedger가 된다. 지금 시장의 자산가치들이 폭락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이 와중에 speculator는 흔적 없이 사라지고 만다. 은행은 자산을 청산하며 디레버리징에 몰두하고 아파트를 사려는 사람들은 중도금내기 싫다고 시청 앞에서 데모를 한다. 현 시점에서 당장 생각나는 speculator는 두명 정도인데 하나는 워렌 버핏이고, 또 하나는 박현주다.

좀 지루하게 썼는데 사실 여기까지의 요지는 내 잡문보다 sonnet님의 유려한 글을 읽는 편이 훨씬 심미적으로 유익하다. 그런 의미에서 사과드린다. 하지만 내가 이후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나가기에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기에 독자 분들의 양해 바란다. 즉 이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개인적으로 sonnet님이 스티글리츠의 입을 빌어 하고 싶은 글의 또 다른 요지는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결국 시장은 복구되어야 한다.”

sonnet님은 “공산주의자들이 자본주의나 시장경제에 대해 본능적인 혐오와 거부를 보이는 것처럼” 이라고 표현하셨는데 그것이 반드시 “본능적”인지는 모르겠으나, 또 모든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whatever가 그렇게 생각한다고는 여겨지지 않거니와, 더불어 더 나은 시장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시장의 한계 또한 다시 한번 짚어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즉 시장을 거부하는 이들을 또 싸잡아 “시장반대원리주의자”로 몰아붙여서는 곤란하다.

그린스펀이 이번에 자신이 Fed 의장에 있을 때 취했던 행동이 “부분적으로(partially)” 잘못 되었음을 인정하였는데 그 당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의회위원회의 민주당 의장 헨리 왁스만이 그를 압박했다. “당신의 세상에 대한 관점, 당신의 이데올로기가 옳지 않다고 알아챘고 그것이 작동 안 하지 않았느냐?” 그린스펀이 인정했다. “그게 정확히 내가 40년여 동안 일해 왔기에 그것이 예외적으로 잘 작동하였다는 상당한 증거에 놀란 이유다.”
The congressional committee’s Democratic chairman, Henry Waxman, pressed him: “You found that your view of the world, your ideology, was not right, it was not working?” Greenspan agreed: “That’s precisely the reason I was shocked because I’d been going for 40 years or so with considerable evidence that it was working exceptionally well.”[guardian, Greenspan – I was wrong about the economy. Sort of]

즉 그는 지난 40년간 시장은 정상적으로 잘 작동했기에 그가 부분적으로 잘못 되었다고 인정하는 것은 극히 최근, 길게 잡아도 그가 물러나기 몇 년 전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여전히 고집하고 있다. 그는 “백년에 한번 일어날만한 신용 쓰나미(once-in-a-century credit tsunami)”라는 표현을 씀으로써 이번 신용위기가 금융자본주의, 신자유주의 등을 특징으로 하는 현대 시장경제에 내재된 모순이 발현된 것이라기보다는 극히 예외적으로 순식간의 불가항력적인 교란에 의해 발생된 것이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스티글리츠와 같은 상대적인 진보주의자 역시 시장경제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고 있다. 요컨대 sonnet님의 글에서 비판받고 있는 시장원리주의자, 또는 시장근본주의자는 – 그린스펀은 시장근본주의자 중 체제내 세력? – 시장주의자의 스펙트럼에서 가장 오른 쪽에 위치하고 있고 스티글리츠나 sonnet님은 – 또는 크루그먼까지? – 그 왼쪽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둘의 공통점이 신용위기가 시장의 근본모순이 아닌 예외적인 경우라고 생각하는 관점, 즉 시장본질에 대한 믿음이 아닐까 싶다.

요컨대 내가 궁금한 점은 그것이다. 현재의 시장위기를 해결한 후 그것을 다시 원위치로 돌려놓을 만큼 시장은 절대적으로 보존할 가치 있는 것인가? 또는 적절한 통제장치만 마련되면 시장은 다시 순수한 시장예찬론자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상태의 시장으로 순화될 수 있는 것인가? 그렇게만 되면 시장은 공산주의자들이 필연적이라고 주장하는 경기변동 및 공황의 두려움으로 해방될 수 있는 것인가?

개인적으로 위 질문 중 어떤 것에는 잘 모르겠지만 어떤 것에는 회의적이다. 전후 자본주의는 그 기간 동안 정상적으로 잘 작동하였다기보다는 주로 임시변통적인 변수에 의해 “예외적으로” 작동하여왔다고 할 수 있다. 과도할 정도의 저유가(低油價), 이를 위한 침략전쟁, 이를 지원하는 군사력과 방위산업, 노동운동 해체/비정규직 확산 등을 통한 소득양극화, 이에 따른 소비침체를 이연시키는 모기지와 같은 대부(貸付)경제, 기축통화인 달러의 발권력을 이용한 과소비, 중국 등 신흥국으로부터의 저가상품 유입 등 몇몇 특수한 변수가 운 좋게도 그때그때 시장의 위기를 지연시켜왔다. 그리고 그 모순은 지금 폭발한 것이다. 이건 쓰나미가 아니라 화산폭발이다. 오랜 동안 마그마가 내부에서 응축되어 왔던 산에서 터진.

만약 다시 시장으로 돌아갈 생각이라면 우리는 이전의 시장에서 상상할 수 있었던 몇 가지 핵심적인 구성요소를 버릴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위에서 예로 들었던 예외적인 변수들 말이다. 저것은 전후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예외적인 변수였지 모든 시장에 항상 따라다니는 행운의 과자들이 아니다.

(주1) 또 역으로 어느 정도는 부정적이기도 한데 한 예로 월드와이드웹의 창시자로 알려진 Tim Berners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지적재산권으로 묶어 배타적인 사업이윤을 취득하려 들었다면 과연 오늘날 우리가 이만큼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결국 조화의 문제이기는 하다.

(주2) arbitrageur는 좀 특수한 존재니까 생략

헨리 폴슨의 모순된 삶

폴슨은 1999년부터 부시 대통령이 재무부를 맡아달라고 그를 지명한 2006년 5월 30일까지 투자은행의 타이탄 골드만삭스의 회장과 CEO를 역임하면서 월스트리트가 최고의 이익을 창출하던 순간의 주역이었다.
Paulson presided over one of the most profitable runs on Wall Street as chairman and chief executive officer of investment banking titan Goldman Sachs & Co. from 1999 until President Bush nominated him on May 30, 2006 to take over the Treasury Department.

그러나 폴슨이 이제 미국 금융 역사상 가장 큰 구제를 주관할 사실상 통제받지 않는 권위를 추구하면서 많은 이들은 폴슨이 또한 거대하고 잠재적인 이해관계의 갈등들에 초연할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해 의심하고 있다.
But with Paulson now seeking virtually unfettered authority to administer the largest bailout of the financial industry in U.S. history, many are wondering whether Paulson also doesn’t come with enormous potential conflicts of interest.


Can You Trust A Wall Street Veteran with A Wall Street Bailout?
중에서 발췌

실제로 그린스펀보다 더 뻔뻔한 친구를 꼽으라면 헨리 폴슨일 것이다. 위에 언급된 바와 같이 폴슨 또한 이번 대형화재의 방화범이다. 방화범 그린스펀이 화재의 심각성에 대해 떠들고 있다면 방화범 폴슨은 소방복을 입고 불을 끄겠다고 설레발을 치고 있다. 그 대신 자신에게 무한정 물을 대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바로 이를 두고 미국에서는 현재 좌우가 한 목소리로 폴슨의 계획을 비판하고 있다. 우익은 현재의 사태를 ‘금융 사회주의’라면서 납세자의 돈으로 모럴해저드에 빠진 투자은행을 구해주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다. 좌익은 비슷한 취지이긴 하나 결국 일시적인 구제 이후 예정되어 있는 광범위한 재민영화는 결국 금융자본의 배만 불릴 것이며 근본모순을 지연시키는 조치일 뿐이라는 것이다.

여하튼 헨리 폴슨은 아마도 미국 금융 역사상 가장 혼란스러운 격동의 시대를 짊어진, 모순으로 점철된 재무장관으로 기록될 것 같다. 방화범 출신의 소방서장이랄까?

폐허 속에서도 웃음을

그린스펀은 “현재의 금융위기는 100년만에 한번 올 수 있는 사건이다. 위기가 해결되기 전까지 더 많은 대형 은행들이 문을 닫을 수 있다”고 말했다.

“불지른 방화범이 화재의 심각성에 대해 논평중”

가끔 알파헌터님의 촌철살인과도 같은 멘트에 웃음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