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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퀀트가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시위에 참가한 사연

1990년대 초반 캘리포니아-버클리 대학에 다니는 동안, 오닐은 자신이 정치적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하버드에서 수(數)이론에 대해 공부하고 MIT의 포스트닥터로 수학(數學)을 마친 후인 2007년 그는 D.E. Shaw에 합류했는데, 거기에서 그의 일은 시장에서의 운동을 예측하기 위해 수학적 추론과 통계적 모델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그 일을 하는 3개월 사이 주식시장이 침체에 빠졌다. 헤지펀드 하나가 나가떨어졌다. 그리고 그가 다니던 회사가 엄청난 돈을 잃었다. 그는 그의 일의 기초가 되던 가정들 중 많은 것들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1년 후에, 시장이 요동치면서, 오닐은 다섯 명의 동료 퀀트와 점심을 먹으면서 지금 유럽을 혼란에 빠트린 종류의 국가채무 위기의 가능성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하였다. 그 점심에서 그와 다른 친구는 그런 일이 일어날 희박한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소수의 의견(결국 나머지는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다고 본 쪽인 : 역자 주)에 있었다. “그때 퀀트들은 시스템이 마치 특정 종교처럼 견고하다고 느꼈었어요.” 그는 기술적 시장 트레이딩에 대한 그들의 신앙심에 대해 이야기했다. 오닐의 상사는 그들의 작업을 – 투자자의 돈이 가능한 한 최상의 곳에 투자되는 것을 확신시키는 방식으로써의 – 공공 서비스에 비유하길 좋아했다. 그러나 그는 그 일을 보다 앞선 “멍청한 사람들” 안에서의 냉소적인 활동 – 군집의 앞에 서 있다가 다시 그들에게 팔아버리는 – 쯤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난 결코 어떤 사람이 ‘난 이것이 좋은 아이디어라 생각되기 때문에 이것에 투자하겠어요’라고 말하는 것을 듣지 못했어요.” 그는 회상한다. 그는 어떤 면에서는 그가 사냥하기로 되어 있었던 그 무리의 일부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Meet the Financial Wizards Working With Occupy Wall Street]

월스트리트에서 퀀트로 일하다가 신용위기와 이에 따른 월스트리트 시위 등을 목격한 후, OWS 운동에 참여하게 된 캐시 오닐(Cathy O’Neil)에 관한 이야기다. 그가 학교에서 어떤 학문을 배웠고, 월스트리트가 그런 그에게서 어떤 것을 요구했으며, 그것들에 대한 그의 심경변화 등이 짧은 문장 안에 잘 표현되어 있어 인용해보았다.

글을 읽어보면 무엇보다 시장의 붕괴가 오닐의 심경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겠지만, 일상 속에서의 계속되는 자신의 업무에 대한 회의감도 한 몫 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든다. 즉, 그는 어느 순간 상사가 “공공서비스”로까지 격상시켰던 일을 하는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사냥감 속에 있는 또 하나의 사냥감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더 멍청한 바보 이론”

이러한 자괴감을 좀 더 긍정적인 톤으로 이론적으로 설명한 것이 바로 “더 멍청한 바보 이론(the greater fool theory)”이다. 이는 어떤 이가 애매모호한 곳에 투자를 하는 이유에는 나중에 “더 멍청한 어떤 바보”에게 팔 수 있으리라는 믿음에 관한 설명이다. 다른 말로 투자할 가치가 있어서 사는 게 아니라 팔린다는 믿음 때문에 사는 것이다.

이런 믿음이 잘 작동하는 곳이 주식시장일 것이다. 주식시장에서 특정회사 주가가 갑자기 이유도 없이 급등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갑자기 모든 이가 그 주식을 사지 못해서 안달한다. 그런데 모든 매수희망자들이 그 회사의 재무제표를 들여다보고 매수결정을 내렸을까? 단지 더 비싸게 팔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었을 뿐인 경우가 대다수다.

케인즈는 시장의 이러한 모습을 ‘미인 콘테스트’에 비유한바 있다. 즉, 심사위원은 가장 아름다운 참가자에게 투표할 수도 있지만, 다른 심사위원이 아름답다고 생각해서 투표할 것이라 생각되는 참가자에게 투표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시장참가자 역시 절대미각을 갖추지 않은 한에는 자신의 입맛이 아닌 다른 이의 입맛을 고려하게 되는 것이다.

헤지펀드의 퀀트였던 오닐은 아마도 주식시장의 “멍청이들”보다는 자신이 더 똑똑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다루는 종목도 많이 틀렸을 테고, 무엇보다 그는 수학 이론으로 무장하고 시장에 대한 확신이 투철한 “공공서비스” 종사자가 아닌가 말이다. 물론 그의 그러한 믿음과 자부심은 시장의 총체적인 붕괴로 말미암아 산산이 부서지게 되었다.

경제학은 과학인가?

시장을 수학적 엄밀성으로 해석이 가능하고자 하는 주요한 시도 중 하나인 ‘금융공학’적 사고는 1988년 바이풀 밴설(Vipul Bansal)과 존 마셜(John F. Marshall)이이란 책을 내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도 경제시스템을 이렇게 해석가능하다고 여기는 이는 적지 않았다.

19세기 ‘사회과학(social science)’이라는 용어가 일반화된 것도 경제 시스템을 포함한 사회일반을 ‘자연과학’의 그것처럼 과학적으로 해석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근저에 두고 있는 것이었다. 경제이론에 물리학 이론이 도입된 사례가 드물지 않고, 과거의 사회주의 체제 역시 하나의 과학으로써 사회를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에 기반을 둔 체제였다.

이러한 시도 중 한 사례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독립이후 인도의 지도자 네루가 추진했던 계획경제다. 영국의 자본주의로부터 수탈을 당한 네루는 자연스럽게 소비에트식 사회주의를 추구하였고 이를 위해 천재 통계학자 마할라노비스를 끌어들인다. 그는 인도 경제 전체를 하나의 수학공식으로 설명하려 했다. 그들에게 경제는 과학이었다.

사회주의 진영이든 자본주의 진영이든 공통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현상은, 경제 시스템의 운용에 대해 “과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믿음을 증명하려 했던 시도가 드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사회주의자가 시스템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을 증명하려 했다면 자본주의자는 시장이 시스템을 정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려 했다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어쨌든 천재 마할라노비스의 시도도 당시에는 유효했을지 몰라도 이제는 시효는 다한 것 같다. 노벨상에 빛나는 블랙-숄즈 공식도, 이 공식의 창조자 참여한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도 예외적인 경제현상을 해석하는 데는 실패했다. 경제는 우리의 미천한 과학유산으로는 해석 불가능한 것일 수도 있고 경제 그 자체가 과학의 대상이 아닐 수도 있다.

캐시 오닐은 학창시절 스스로 정치적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제 그가 어떤 정치적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OWS운동내 대안금융그룹이라는 서브그룹에 참여하고 있는 그는 경제 체제를 개선하기 위한 정치활동을 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결국 스스로 경제적 행위가 일종의 정치적 행위임을 증명한 셈이다.

이를테면 미인 콘테스트에서의 심사위원을 잘 구워삶는 것도 정치다~.

리스크, 파생금융상품, 그리고 머니게임

현대 자본주의의 플레이어들에게 사업을 영위함에 있어 가장 유념하여야할 것을 5개만 나열하라면 어떤 것들이 리스트에 오를까? 모르긴 몰라도 상당수 사람들이 리스크(risk)를 뽑지 않을까 싶다. 사람 사는 세상이 모두 그렇지만 특히 비즈니스에 있어서 리스크는 모든 이들이 가장 꺼려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리스크를 우리말로 무어라 해야 할까? 리스크를 ‘위험’이라고 번역하면 그건 좀 ‘위험’하다. 리스크(risk)는 위험(danger)의 요소도 포함하고 있지만, 그보다는 개인적으로 불확실성(uncertainty)이라는 요소가 더 많이 내포되어 있지 않은가 생각하고 있다. 즉 누군가 리스크를 헤지(hedge)한다고 말했을 때 그것은 ‘위험을 분산’하였다는 표현도 타당하지만 ‘불확실성을 제거’하였다고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한 해석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가 흔히 쓰는 high risk, high return 이라는 표현은 어떤 의미에서는 동어반복이다. 리스크는 비용(cost)인 동시에 기회(opportunity)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업을 영위하는 중에 많은 이들은 곳곳에 산재한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즉 우발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비용을 보호하기 위해 기꺼이 기회도 포기하려는 속성이 강하다.

이러한 속성을 파고든 대표적인 상품이 바로 보험일 것이다. 만약의 사고라는 비용에 대비해서 보험가입자는 보험료라는 오늘의 기회를 포기한다. 그래서 보험은 자본주의의 시작과 함께 일찍부터 해상무역이 활달했던 영국에서 발전해온 리스크 헤지 방법으로 오늘날까지도 다양한 변종으로 번식하며 득세하고 있다.

현대 자본주의에 접어들며, 특히 1970년대 닉슨의 달러 금태환 정지 선언 등에 따라 변동환율제 체제로 접어들며 파생금융상품이 리스크 헤지 방안으로 등장했다. 플레이어들은 스왑, 옵션, 선물 등으로 불리는 파생금융상품을 통해 환 리스크, 금리 리스크, 가격변동 리스크 등을 관리하기 시작한다.

닉슨 행정부를 통해 본격적으로 금융억압이 막을 내린 서구 자본주의의 금융시장에서 위와 같은 기초적인 개념을 바탕으로 한 수많은 파생금융상품이 등장한다. 실질적인 통화나 실물이 오가는 것이 아닌 단순한 리스크 헤지 거래의 차액만이 결제되는 시장이 점점 더 그 규모를 키워왔다. 그리고 그러한 비대화되어가는 파생금융상품 시장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CDO와 CDS라 할 수 있을 것이다.

CDO는 다양한 신용도의 기초자산을 – 대표적으로 모기지 채권 – 여러 개 섞어서 구조화시킨 후 리스크의 크기에 따라 다양한 입맛을 지닌 소비자(즉 CDO를 구매하는 투자자)에게 판다는 것이 기초개념이라 할 수 있다. 이 개념이 실패한 이유 중 하나는 이것이 기초자산 시장이 통째로 불황에 빠지는 매크로 리스크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는 사실을 플레이어들이 인지하지 못하였거나 고의로 무시하였던 것으로 보인다.(실제로는 기망에 가깝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CDS는 또 그러한 CDO나 여타 허다한 기초자산, 기업, 급기야 모든 것들의 채무불이행 리스크(default risk)에 대해 일정액의 수수료로 손실을 보장하는 상품으로 보험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신종상품이니 규제도 받지 않고 신나게 팔린 모양이다. 누적판매액이 60조 달러쯤 된다니 뭐 상상이 안 간다. 그런데 이 상품마저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들이 흔들릴 정도로 예기치 못했던 강진이 발생하자 속절없이 위기로 내몰리게 된다. 디폴트 리스크의 판매자가 디폴트의 위기에 몰린 것이다.

거칠게 살펴보았지만 요는 결국 현재의 시장상황은 리스크 보장을 팔아 막대한 수익을 창출한 그 현황 자체가 리스크인 모순된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리스크를 헤지 해주겠다고 나선 이들이 정작 내부 시스템에서는 자신들에게 거대한 리스크가 다가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한 것이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파생금융상품의 수많은 변종에 대한 플레이어들의 이해부족, 정보공유부족, 기망, 심지어 사기에 기인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투자론, 금융공학, 경영학, 산업공학 등이 발전하면서 가장 세분화된 부분이 바로 이 리스크 매니지먼트와 리스크 헤지 부분일 것이다. 수학의 천재들이 그리스 문자가 뒤섞인 온갖 수식을 개발하고 첨단 컴퓨터에서 돌아가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여 실무에 적용해왔다. 그런데 결국 그 화려한 최첨단의 금융공학과 이 이론으로 포장된 파생금융상품이 역설적이게도 가장 기초적이고 고전적인 신용 리스크, 그리고 그것이 폭발할 때까지 펼쳐진 광기어린 머니게임의 – 그것이 없었더라면 좀 더 빨리 리스크를 알아차릴 수 있었던 – 차단막이 되어오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