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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교화 서비스의 위기

셜리 슈미트는 위험한 범죄자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아이오와의 농장에서 말을 기르고 딸을 키우며 조용히 살고 있었다. 2006년 남편이 죽자, 우울해지고 만성적인 통증으로 고통 받으면서 그는 메스암페타민(속칭 “히로뽕”)에 의지하기 시작했다.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그와 친구들은 약을 개인적인 복용 목적으로 제조하기 시작했다. 그는 2012년 체포되어 마약치료 과정을 이수했고 그 이후 정상이 됐다. 그는 돈벌이를 위해 마약을 판 적이 없으나 연방의 의무적인 최소형량 법칙(federal mandatory minimum rules)에 따라 – 이전의 마약소유에 따른 판결들이 무시된 채 – 판사는 10년형을 선고해야만 했다. 그를 복역시키는 데에는 납세자의 돈이 연간 3만 불 정도 드는데, 이는 아이오와에 있는 학비로 곤란한 학생 세 명의 학비를 내주기에 충분한 돈이다. 그가 출소하면 연금을 받을 만한 나이가 될 것이다.[America’s prisons are failing. Here’s how to make them work]

엄벌주의로 인해 감옥이 중죄인으로 가득 들어차 있는 미국의 교정 서비스 현황, 그리고 미국을 포함한 서구사회의 획일적인 교정 서비스 문화를 비판한 이코노미스트 기사의 일부다. 사례로 든 사안은 타인에게 가한 유해한 범죄가 아닌 본인의 중독을 통제하지 못한 의지박약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마약을 직접 제조할 정도로 – 마치 브레이킹배드를 연상시킨다 – 희귀한 범행을 저지른 자조(自助) 행위에 가깝지만, 어쨌든 판매를 하지 않았다면 적어도 자유주의적 관점에서는 범죄로 볼 것이냐 하는, 적어도 10년 형을 받을 정도로의 중죄로 볼 것이냐 하는 것에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조차 미국은 “아웃라이어(outlier)”라고 규정할 만큼 미국의 교정시설에는 수감자들로 차고 넘친다. 미국의 교정시설 수감자는 1970년에서 2008년 사이의 기간 동안 다섯 배 증가했다. 인구 대비 수감자수로 봤을 때 미국의 수감자 수는 프랑스의 수감자 수의 7배, 네덜란드 수감자 수의 11배, 일본의 수감자 수의 15배에 달한다고 한다. 이러한 과도한 수감 상태의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데에는 양극화 현상의 심화로 인한 범죄증가, 교정시설의 민영화 추세, 보수정권의 엄벌주의1 등을 들 수 있을 텐데, 적어도 인용한 사례는 우선 표면적으로는 엄벌주의로 인한 부작용으로 보인다.

이코노미스트는 수감 위주의 교정 서비스가 전반적으로 실패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전자발찌 등 다양한 교화 프로그램으로도 교정이 가능하다면 세금을 절약하면서 교화라는 본래의 목적도 달성할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살인, 강간 등 격리가 불가피한 범죄 이외의 기결수에게 사용해볼만한 할 것이다.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장기적으로 사례와 같이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는 행위에 대한 비(非)범죄화도 병행돼야 한다는 점이다.. 대마초 소지에 대한 각국의 비범죄화가 대표적인 사례다.. 단죄가 사회에 의한 복수가 아닌 교화가 목적이라면 이러한 방향이 바람직할 것이다.

미국의 교도소에 사람들이 넘쳐흐르고 있다

이번 주, 버락 오바마 정부의 법무부 장관인 에릭 홀더는 미국에 “쓸데없이 많은 사람이 교도소에 있다”고 선언하였다. 이는 상황을 부드럽게 설명한 것이다. 이 자유의 땅에는 전 세계 인구의 5%가 살고 있는데, 수감자는 25%다. 모두 합쳐 220만 명의 미국인들이 쇠창살 뒤에서 썩고 있다. : 성인 107명 당 1명 꼴. 경범은 엄하게 다뤄지고 있고, 중범은 가혹하게 다뤄지고 있다. 비용은 증가하고 있는데 1년에 800억 달러, 수감자 당 3만5천불 꼴이다. [중략] 몇 십 년간 미국의 정치인들은 더 강화된 판결 법령을 통한 대량투옥이 유권자들의 호감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1990년대 이후의 극적인 범죄율 감소가 이러한 가정이 옳은 것이라고 말하는 듯 했다. [중략] 감옥을 통한 효용은 줄어들고 있다. 미국은 오래전부터 더 많은 사람들을 가둬놓는 것이 이치에 닿던 지점을 지났다. 홀더 씨가 말하듯이 이 시스템은 “비효율적이고 지속가능하지 않다”.[One nation, behind bars]

감옥은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대표적인 공공서비스 중 하나다. 감옥의 일차적인 목적은 범죄자들을 교정시키는 것이라고 간주되고 있다. 그래서 감옥은 교정시설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차적인 목적은 범죄자들을 격리시킴으로써 사회를 보다 안전하게 만드는 것이다. 죄를 지은 이의 교화와 사회를 안전하게 하는 것, 이보다 더 공공의 목적에 부합하는 서비스도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문제는 지금 너무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전 세계 수감자의 25%에 해당할 만큼 많은 이들이 감옥에서 그야말로 “썩고” 있다는 것은, 그들을 썩히는데 드는 비용, 그리고 그들이 밖에서 사회활동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부가가치를 한꺼번에 잃는 셈인데, 이를 사회적 비용으로 환산한다면 정말 비효율적인 상황인 것이다. 물론 개인으로서도 매우 불행한 상황이고 말이다.

기사는 미국의 형법 시스템이 너무 가혹하다는 것, 그리고 대부분의 수감자가 마약 등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는 점을 그 비효율성의 원인으로 들고 있다. 그래서 차라리 마약의 합법화가 – 물론 약한 종류의 마약을 말하는 것이겠지만 – 상황의 개선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까지 조언하고 있다. 최근 우루과이가 약한 중독성의 마약과 강한 중독성의 마약 관리를 분리하기 위해 대마초를 합법화하였듯이 말이다.

한편, 기사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미국의 수감자가 이렇게 많아진 것의 또 다른 배경에는 감옥의 민영화도 한 몫하고 있을 것이다. 미국은 이미 1980년대부터 감옥의 건설과 운영을 민간의 손에 넘겼으며 미국교정회사와 웨클허트 교정회사가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이들이 수용하고 있는 수감자는 미국 전체 수감자의 10% 정도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이들 회사에게 있어 수감자는 인간이 아니라 상품이다.

마이클 무어의 “자본주의, 러브스토리”에 보면 교정회사와 결탁한 사법부가 어떻게 하찮은 사건들에 대해 엄격한 금고형을 내리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이들 교정회사들은 다른 거대산업들이 그렇듯이 사법제도의 강화를 위해 정치인들에게 로비를 했을 것이고, 때마침 정치권의 보수화 현상과 맞물려 이러한 추세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결국 더 많은 이들이 더 가혹한 기준 하에 감옥에 머물러야 했다.

요컨대, 홀더 장관의 선언은 단순히 미국정부의 과잉(?)공급되고 있는 특정 공공서비스에 대한 반성을 넘어 문명 그 자체의 한 축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는 선언으로 간주되었으면 한다. 격리를 통해 사회 안정을 도모하는 체제에서 과연 어떤 행동을 범죄라 규정할 수 있으며 또 얼마만큼의 벌을 내려야 옳은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볼 수 있는 발언이기 때문이다. 현재까지의 기준은 효율성과 지속가능성이다.

차베스는 혁명가인가 마약거래상인가

차베스는 이상적인 사회주의자인가 아니면 파렴치한 마약상인가. 최근 가디언紙는 “Revealed: Chavez role in cocaine trail to Europe”라는 기사를 통해 차베스가 집권하고 있는 베네주엘라의 정부군이 인접국인 콜롬비아의 좌익 게릴라 무장혁명군(FARC)와 끈끈한 연계를 통해 콜롬비아에서 생산되고 있는 코카인의 주요 기착지 역할을 하고 있다고 고발하고 있다.

차베스는 최근 FARC를 테러리스트 명단에서 제외시켜 줄 것을 국제사회에 제안하는 한편으로 그들이 인질로 잡고 있는 이들의 석방교섭에 적극적인 중재자로 나서는 등 FARC의 대변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사실 마르크스-레닌주의 교리를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FARC는 지난 수십 년 동안의 내전 기간 동안의 폭력행위들로 말미암아 이웃나라의 좌익세력 들에게마저 일종의 뜨거운 감자인 상황에서 차베스의 적극적인 변호는 상당한 모험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와중에 가디언은 그의 이러한 표면적인 변호이외에도 거대한 마약커넥션에도 손을 담그고 있다는 기사를 내보낸 것이다.

좌익 게릴라, 마약, 코카인, 차베스, 남미… 이러한 단어들은 복잡한 상황맥락을 지니고 있다. 이들 단어에는 다른 대륙들에 비해서도 결코 만만하지 않았던 격변의 20세기를 보내야 했던 라틴아메리카의 아픈 역사적 추억들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시몬 트리니다드
2006년 11월 2일 에콰도르에서 FARC의 지도자 시몬 트리니다드(당시 53세, 본명 리카르도 팔레라 피네다)가 붙잡혔다. 트리니다드는 FARC 핵심인 서기국 지도자 7명 가운데 한 명으로 알바로 우리베 콜롬비아 대통령이 그의 체포 소식에 ‘반군 패퇴의 징조’라고 말했을 정도로 비중있는 인물이었다. 트리니다드는 반군세력에 가담하기 전만 해도 성공한 은행가이자 컨트리클럽 회원이었으며, 사랑스런 가족과 함께 주말이면 느긋한 휴일을 즐길 수 있는 한적한 목장까지 소유하고 있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30대 중반의 나이에 부인과 두 자녀를 버리고 홀연히 정글로 떠나 좌파 게릴라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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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정부와 휴전협상에 나설 당시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콜롬비아 전국토의 90%를 독점하고 있는 10%의 지주들에 맞서 싸우는 진보적인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었다”며 “(세월이 흐르면서) 나 역시 그들 10%의 적이 됐다”고 ‘변신’의 이유를 밝혔다. 이것이 남부러울 것이 없는 한 자산가를 산으로 가게 만든 남미의 아픈 현실이었고 그 아픔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가 합류한 FARC는 1964년 콜롬비아 공산당의 군사조직으로 설립되었다. 1980년대 FARC는 자금확보를 위해 코카 재배에 손을 대게 되었고 불법적인 활동이었기에 이를 계기로 콜롬비아 공산당과의 관계를 청산하게 된다. 현재의 조직원은 약 16,000명 정도로 추산된다. 그리고 가디언은 이러한 FARC가 좌익 사상을 공유하고 있는 베네주엘라 정부군과 코카인 밀매에 한배를 타게 되었다고 고발하고 나섰다.

코카 억제에 나선 미국, 반항하는 남미
코카는 주요 마약중 하나인 코카인의 원료가 되는 식물로 미국은 코카인의 불법유통을 막기 위해 코카 재배 자체를 최소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당근과 채찍의 두 전술을 사용하고 있는데 1988년대부터 중남미 나라들에게 코카 규제법 시행을 요구하는 대신 매년 1억 달러씩을 지원했다. 볼리비아를 비롯한 가난한 나라들은 이 거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한정된 재배만 허용하고 불법재배와 밀매 행위는 강력히 규제했다. 미국이 원조한 돈은 일부 특권층이 독식했다. 하루아침에 생계수단을 잃은 재배 농민들은 마약 사범으로 전락했다. 볼리비아에서는 한때 수도 라파스 산 베드로 교도소의 전체 수감자중 74%나 될 정도다.

그러나 최근 남미의 좌익 세력이 잇따라 집권하면서 미국의 맹방인 콜롬비아를 제외한 대부분의 남미의 주요 코카 생산국들은 중남미의 전통식물인 코카 재배 경작지를 늘리는 등 합법화 정책을 취하고 있다. 그 자신이 코카 재배 농민이었으며 바로 위에 언급하였던 미국의 코카 재배 억제에 대한 항의운동을 주도하며 정계에 뛰어들었고, 집권에 성공한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은 합법적인 코카 재배지를 늘리고 있는 한편으로 코카와 코카인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오히려 미국과 유럽 금융기관의 비밀계좌가 코카인 밀매행위를 억제하기 위한 노력을 방해하고 있다며 서방을 비난하였다.

한편 코카를 둘러싼 갈등은 국가간 분쟁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세계 최대의 코카 재배국인 콜롬비아 정부가 코카 박멸을 위해 2000년 12월 제초제를 공중살포하기 시작했다. 미국 정부는 빌 클린턴 시절부터 ‘콜롬비아 플랜’이란 이름으로 콜롬비아 정부에게 자금과 군사력을 지원하고 있다. 제초제 역시 미국이 지원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에콰도르 농민이 엉뚱한 피해를 보며 양국간 분쟁으로 번지고 있다. 피해상황은 매우 심각한 지경으로 전문가는 고엽제 피해를 입은 베트남과 같은 비극이 벌어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코카와 코카인, 그 두 얼굴
사실 코카는 중남미인 들에게는 하나의 생활상비품으로 쓰이는 식물이다. 잉카 시대 때부터 이미 코카는 식용이나 의약품으로 쓰였다고 한다.(주1) 코카는 각종 차, 음료수, 케이크, 화장품, 여드름 치료제의 원료로 이용되고 있고, 특히 고산지대에 사는 이들에게는 코카는 필수품이다. 코카 잎을 씹으면 – 환각작용이 아니라 – 혈류량을 증가시켜 배도 부르고 힘이 나게 되어 고산병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코카가 마약으로 분류되는 코카인의 원재료로 쓰이면서 하나의 정치적인 분쟁의 씨앗이 되고 만다.

마약으로 분류되는 코카인은 남아메리카의 코카 잎과 여러 가지 알칼로이드성 약물을 정제하여 만든 것이다. 미국이 남북전쟁을 벌이던 무렵 미국 남부의 상류층 여성들은 두통 치료용으로 코카인을 섭취하였는데 이것이 코카콜라의 시작이었다고 한다.(주2) 당시 마약산업은 많은 이익이 나는 합법적인 사업이었고 신문과 잡지에는 매일 같이 아편, 코카인, 모르핀, 헤로인 등의 광고가 실렸다.(주3) 코카인의 사용이 금지된 것은 1903년 이었다.

남미의 슬픈 눈물, 코카와 계급전쟁
다시 차베스를 마약거래의 보스로 묘사하고 있는 가디언으로 돌아가 보자. 기자는 FARC 탈영병 등 여러 관계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FARC와 베네주엘라 정부기구와의 커넥션을 밝혀냈다고 주장하고 있다. 가디언은 또한 콜롬비아에서 밀반출되는 코카인 600톤 중 약 30%가 베네주엘라를 통해 유통되고 있고 이 중 대부분이 유럽으로 향한다고 전하고 있다. 다만 그들의 입을 통해서도 들을 수 없었던 것은 – 서구 첩보기관의 입을 통해서조차 – 차베스의 직접개입에 관한 부분이다. 차베스가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긴 하지만 말이다.

미국의 對마약 전쟁의 일환으로서의 남미에서의 활동이나 가디언의 기사와 같은 고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코카 -> 코카인 -> 좌익 게릴라 -> 차베스의 베네주엘라” 로 이어지는 연결고리의 각각의 단계에는 쉽게 판단내릴 수 없는 여러 의문점이 남는다. 여기에는 심지어 코카인이나 마리화나가 과연 담배보다 더 해로운 마약이어야 하는가라는 문화사적인 회의에서부터 실은 CIA가 세상에서 가장 큰 마약거래조직이라는 음모론적 주장까지 다양한 이견이 개입될 수도 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가치판단을 유보하도록 하겠다.

어쨌든 코카인은 분명 현재 문명세계에서 마약으로 분류되어 있는 향정신성 의약품이다. 따라서 이를 유통시킴으로써 이득을 취하는 행위는 여하한의 변명으로도 별로 설득력이 없는 범법행위라 할 수 있다.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어서 자의든 타의든 고립될 수밖에 없는 정치적 조직은 스스로 자멸하여 갔던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차베스는 정황으로 볼 때 코카인의 힘이었든 강고한 정치적 의지였든 여태까지 살아남은 FARC를 하나의 정치적 동지로 여기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가 FARC를, 더 나아가 남미 전체와 세계의 대안체제를 위해 진정으로 무언가를 기여하고자 한다면 바로 코카인에 대한 분명한 입장정리가 하나의 시금석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주1) 옛날 잉카인들이 두개골을 쪼개고 뇌수술을 했는데 그때 코카 잎이 마취제로 쓰였다 한다.

(주2) 1890년대 코카콜라 社(사)는 콜라가 “신경과 뇌의 신비한 강장제이며 뛰어난 치료약”이라고 광고했다.

(주3) 셜록 홈즈는 지독한 코카인 중독자였다.

Salaam Bombay!

혹자는 아기의 귀여운 몸동작이 어른들로 하여금 보호본능을 자극시켜 자신이 생존하기 위한 일종의 생존전략이라고들 말한다. 지나치게 냉소적인 말이지만 나름대로는 일리가 있는 말이다. 도대체 그 귀여움이라도 없었더라면 성가시고 귀찮기 만한 양육을 뭐 하러 자기 돈 들여가면서 떠안을 것인가? 그리고 사회는 이러한 양육을 부모로서의 신성한 의무로 이데올로기화시킨다. 안 그러면 이 사회의 존속은 불가능 할 테니까.

사회 절대다수의 가정이 이렇듯 자신의 피붙이에 대한 기본적인 부양의무를 어떻게 해서든 이행하려 노력하지만 때로는 자의든 타의든 양육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가정으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들은 집단 수용시설에 들어가거나 거리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Mira Nair 의 1988년작 Salaam Bombay! 는 바로 이러한 거리의 아이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 영화이다.

어머니로부터 버림받고 몸을 의지하던 서커스단으로부터도 버림받은 크리슈나는 자연스럽게 인도의 대도시 봄베이의 거리를 거처로 삼는다. 창녀촌 주변의 노점상에서 차를 배달하는 한편으로 이런 저런 육체노동으로 푼돈을 꼬박 꼬박 모으는 크리슈나의 꿈은 돈을 모아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의 어머니가 500루피를 모으기 전에는 집에 돌아올 생각을 하지 말라는 말을 하며 그를 떠났고 크리슈나는 이 말을 500루피를 모으면 어머니가 다시 그를 받아줄 것이라는 약속으로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한 가지 희망 때문에 온갖 악의 유혹이 넘쳐나는 거리에서 꿋꿋이 살아가지만 그런 연약한 소년을 경찰은 부랑아라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집단 수용시설에 가둬버린다. 천신만고 끝에 수용시설을 탈출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현실은 수용시설 안보다 더 잔혹하다.

볼리우드라 불릴 만큼 현실과 동떨어진 당의정과 같은 환각적인 영화를 양산해내는 인도의 영화계에서 보기 드물게 리얼리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영화이면서 감정의 과잉으로 흐르지 않는 절제의 미덕을 보여주고 있다. 루이스 브뉘엘의 1950년 작 Los Olvidados 과 여러 면에서 비교될만한 수작이다. 인도의 영국의 합작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