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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베스는 혁명가인가 마약거래상인가

차베스는 이상적인 사회주의자인가 아니면 파렴치한 마약상인가. 최근 가디언紙는 “Revealed: Chavez role in cocaine trail to Europe”라는 기사를 통해 차베스가 집권하고 있는 베네주엘라의 정부군이 인접국인 콜롬비아의 좌익 게릴라 무장혁명군(FARC)와 끈끈한 연계를 통해 콜롬비아에서 생산되고 있는 코카인의 주요 기착지 역할을 하고 있다고 고발하고 있다.

차베스는 최근 FARC를 테러리스트 명단에서 제외시켜 줄 것을 국제사회에 제안하는 한편으로 그들이 인질로 잡고 있는 이들의 석방교섭에 적극적인 중재자로 나서는 등 FARC의 대변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사실 마르크스-레닌주의 교리를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FARC는 지난 수십 년 동안의 내전 기간 동안의 폭력행위들로 말미암아 이웃나라의 좌익세력 들에게마저 일종의 뜨거운 감자인 상황에서 차베스의 적극적인 변호는 상당한 모험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와중에 가디언은 그의 이러한 표면적인 변호이외에도 거대한 마약커넥션에도 손을 담그고 있다는 기사를 내보낸 것이다.

좌익 게릴라, 마약, 코카인, 차베스, 남미… 이러한 단어들은 복잡한 상황맥락을 지니고 있다. 이들 단어에는 다른 대륙들에 비해서도 결코 만만하지 않았던 격변의 20세기를 보내야 했던 라틴아메리카의 아픈 역사적 추억들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시몬 트리니다드
2006년 11월 2일 에콰도르에서 FARC의 지도자 시몬 트리니다드(당시 53세, 본명 리카르도 팔레라 피네다)가 붙잡혔다. 트리니다드는 FARC 핵심인 서기국 지도자 7명 가운데 한 명으로 알바로 우리베 콜롬비아 대통령이 그의 체포 소식에 ‘반군 패퇴의 징조’라고 말했을 정도로 비중있는 인물이었다. 트리니다드는 반군세력에 가담하기 전만 해도 성공한 은행가이자 컨트리클럽 회원이었으며, 사랑스런 가족과 함께 주말이면 느긋한 휴일을 즐길 수 있는 한적한 목장까지 소유하고 있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30대 중반의 나이에 부인과 두 자녀를 버리고 홀연히 정글로 떠나 좌파 게릴라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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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ontrinidadmug” by Original uploader was Zero Gravity at en.wikipedia – Transferred from en.wikipedia; transfer was stated to be made by User:Chien..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999년 정부와 휴전협상에 나설 당시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콜롬비아 전국토의 90%를 독점하고 있는 10%의 지주들에 맞서 싸우는 진보적인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었다”며 “(세월이 흐르면서) 나 역시 그들 10%의 적이 됐다”고 ‘변신’의 이유를 밝혔다. 이것이 남부러울 것이 없는 한 자산가를 산으로 가게 만든 남미의 아픈 현실이었고 그 아픔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가 합류한 FARC는 1964년 콜롬비아 공산당의 군사조직으로 설립되었다. 1980년대 FARC는 자금확보를 위해 코카 재배에 손을 대게 되었고 불법적인 활동이었기에 이를 계기로 콜롬비아 공산당과의 관계를 청산하게 된다. 현재의 조직원은 약 16,000명 정도로 추산된다. 그리고 가디언은 이러한 FARC가 좌익 사상을 공유하고 있는 베네주엘라 정부군과 코카인 밀매에 한배를 타게 되었다고 고발하고 나섰다.

코카 억제에 나선 미국, 반항하는 남미
코카는 주요 마약중 하나인 코카인의 원료가 되는 식물로 미국은 코카인의 불법유통을 막기 위해 코카 재배 자체를 최소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당근과 채찍의 두 전술을 사용하고 있는데 1988년대부터 중남미 나라들에게 코카 규제법 시행을 요구하는 대신 매년 1억 달러씩을 지원했다. 볼리비아를 비롯한 가난한 나라들은 이 거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한정된 재배만 허용하고 불법재배와 밀매 행위는 강력히 규제했다. 미국이 원조한 돈은 일부 특권층이 독식했다. 하루아침에 생계수단을 잃은 재배 농민들은 마약 사범으로 전락했다. 볼리비아에서는 한때 수도 라파스 산 베드로 교도소의 전체 수감자중 74%나 될 정도다.

그러나 최근 남미의 좌익 세력이 잇따라 집권하면서 미국의 맹방인 콜롬비아를 제외한 대부분의 남미의 주요 코카 생산국들은 중남미의 전통식물인 코카 재배 경작지를 늘리는 등 합법화 정책을 취하고 있다. 그 자신이 코카 재배 농민이었으며 바로 위에 언급하였던 미국의 코카 재배 억제에 대한 항의운동을 주도하며 정계에 뛰어들었고, 집권에 성공한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은 합법적인 코카 재배지를 늘리고 있는 한편으로 코카와 코카인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오히려 미국과 유럽 금융기관의 비밀계좌가 코카인 밀매행위를 억제하기 위한 노력을 방해하고 있다며 서방을 비난하였다.

한편 코카를 둘러싼 갈등은 국가간 분쟁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세계 최대의 코카 재배국인 콜롬비아 정부가 코카 박멸을 위해 2000년 12월 제초제를 공중살포하기 시작했다. 미국 정부는 빌 클린턴 시절부터 ‘콜롬비아 플랜’이란 이름으로 콜롬비아 정부에게 자금과 군사력을 지원하고 있다. 제초제 역시 미국이 지원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에콰도르 농민이 엉뚱한 피해를 보며 양국간 분쟁으로 번지고 있다. 피해상황은 매우 심각한 지경으로 전문가는 고엽제 피해를 입은 베트남과 같은 비극이 벌어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코카와 코카인, 그 두 얼굴
사실 코카는 중남미인 들에게는 하나의 생활상비품으로 쓰이는 식물이다. 잉카 시대 때부터 이미 코카는 식용이나 의약품으로 쓰였다고 한다.(주1) 코카는 각종 차, 음료수, 케이크, 화장품, 여드름 치료제의 원료로 이용되고 있고, 특히 고산지대에 사는 이들에게는 코카는 필수품이다. 코카 잎을 씹으면 – 환각작용이 아니라 – 혈류량을 증가시켜 배도 부르고 힘이 나게 되어 고산병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코카가 마약으로 분류되는 코카인의 원재료로 쓰이면서 하나의 정치적인 분쟁의 씨앗이 되고 만다.

마약으로 분류되는 코카인은 남아메리카의 코카 잎과 여러 가지 알칼로이드성 약물을 정제하여 만든 것이다. 미국이 남북전쟁을 벌이던 무렵 미국 남부의 상류층 여성들은 두통 치료용으로 코카인을 섭취하였는데 이것이 코카콜라의 시작이었다고 한다.(주2) 당시 마약산업은 많은 이익이 나는 합법적인 사업이었고 신문과 잡지에는 매일 같이 아편, 코카인, 모르핀, 헤로인 등의 광고가 실렸다.(주3) 코카인의 사용이 금지된 것은 1903년 이었다.

남미의 슬픈 눈물, 코카와 계급전쟁
다시 차베스를 마약거래의 보스로 묘사하고 있는 가디언으로 돌아가 보자. 기자는 FARC 탈영병 등 여러 관계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FARC와 베네주엘라 정부기구와의 커넥션을 밝혀냈다고 주장하고 있다. 가디언은 또한 콜롬비아에서 밀반출되는 코카인 600톤 중 약 30%가 베네주엘라를 통해 유통되고 있고 이 중 대부분이 유럽으로 향한다고 전하고 있다. 다만 그들의 입을 통해서도 들을 수 없었던 것은 – 서구 첩보기관의 입을 통해서조차 – 차베스의 직접개입에 관한 부분이다. 차베스가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긴 하지만 말이다.

미국의 對마약 전쟁의 일환으로서의 남미에서의 활동이나 가디언의 기사와 같은 고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코카 -> 코카인 -> 좌익 게릴라 -> 차베스의 베네주엘라” 로 이어지는 연결고리의 각각의 단계에는 쉽게 판단내릴 수 없는 여러 의문점이 남는다. 여기에는 심지어 코카인이나 마리화나가 과연 담배보다 더 해로운 마약이어야 하는가라는 문화사적인 회의에서부터 실은 CIA가 세상에서 가장 큰 마약거래조직이라는 음모론적 주장까지 다양한 이견이 개입될 수도 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가치판단을 유보하도록 하겠다.

어쨌든 코카인은 분명 현재 문명세계에서 마약으로 분류되어 있는 향정신성 의약품이다. 따라서 이를 유통시킴으로써 이득을 취하는 행위는 여하한의 변명으로도 별로 설득력이 없는 범법행위라 할 수 있다.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어서 자의든 타의든 고립될 수밖에 없는 정치적 조직은 스스로 자멸하여 갔던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차베스는 정황으로 볼 때 코카인의 힘이었든 강고한 정치적 의지였든 여태까지 살아남은 FARC를 하나의 정치적 동지로 여기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가 FARC를, 더 나아가 남미 전체와 세계의 대안체제를 위해 진정으로 무언가를 기여하고자 한다면 바로 코카인에 대한 분명한 입장정리가 하나의 시금석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주1) 옛날 잉카인들이 두개골을 쪼개고 뇌수술을 했는데 그때 코카 잎이 마취제로 쓰였다 한다.

(주2) 1890년대 코카콜라 社(사)는 콜라가 “신경과 뇌의 신비한 강장제이며 뛰어난 치료약”이라고 광고했다.

(주3) 셜록 홈즈는 지독한 코카인 중독자였다.

자유무역에 저항하는 알바

ALBA가 무슨 뜻일까? 아르바이트의 한국식 표현? 그렇기도 하지만 ALBA는 스페인어로 “새벽”을 뜻한다. 동시에 ALBA는 “아메리카 대륙을 위한 볼리바리안의 대안(the Bolivarian Alternative for the Americas)”의 첫 글자를 딴 남아메리카의 대안적인 무역 동맹이다. ALBA는 지난 2004년 미국 주도의 자유무역에 대항한 공정한 무역의 대안으로 우고 차베스 Hugo Chavez 와 피델 카스트로 Fidel Castro 에 의해 설립되었다. 그리고 볼리비아에서 에보 모랄레스 Evo Morales, 니카라구아에서 다니엘 오르테가 Daniel Ortega가 당선되자 이들도 합류하였다. 자금조달은 베네주엘라의 오일머니덕분에 가능했다.

여하튼 ALBA는 지난 25일과 26일 양일에 걸쳐 카르카스에서 여섯 번째 회담을 가졌다. 이번 회담에서 도미니카도 합류하였다. 그리고 에콰도르, 온두라스, 우루과이, 아이티 등에서 각각 대표사절을 파견하였다. 이 자리에서 차베스는 인민의 필요를 대변하는 무역체제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는 또한 “독재적인 세계자본주의”를 맹비난하는 한편으로 미국의 경제공황을 경고하면서 각 나라가 보유자산을 미국의 금융기관에서 인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한편 다니엘 오르테가는 환경위기의 관점에서 자본주의 체제를 비판하였다. 그는 “개발을 위한 자본주의 모델은 명백히 지속가능하지 않다. 만약 당신 나라의 경제가 오직 이윤만을 추구하는 투기적 자본에 의해 통제된다면 그 나라는 인간성에 악영향을 미치는 거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일단 우리가 자유무역 모델을 포기하면 우리는 실업, 가난, 지구온난화의 문제를 해결할 수 출발점에 설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현재 천연가스와 석유를 국유화하는 과정에서 격렬한 반대에 직면하고 있는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는 토지, 물, 에너지와 같은 핵심적인 공공자원은 사적이윤이 아닌 공공선을 위해 쓰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라틴아메리카는 언제나 헤게모니를 증대시키기 위한 음모가 감추어져 있는 미국의 지원을 바라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ALBA 정상회의가 열리고 있는 바로 그 시각 콘돌리자 라이스 Condoleezza Rice 는 베네주엘라의 이웃나라인 콜롬비아를 방문하고 있었다. 라이스는 미국과 콜롬비아간 자유무역협정의 조속한 추진을 촉구하기 위해 콜롬비아의 대통령 알바로 우리베 베레즈 Alvaro Uribe Velez 를 만나고 있었는데 차베스는 그를 “제국의 날품팔이”라고 비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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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blem of the Bolivarian Alliance for the Americas” by EnigmaticlandOwn work.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ALBA의 로고

구체적인 협상내용으로 들어가서 살펴보자. 협상 내용은 상호이윤추구라기보다는 원조적인 성격이 강하다. 예를 들면 니카라구아는 베네수엘라가 우유, 옥수수, 콩, 소고기 등을 공급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다. 한편 이와는 별도로 베네주엘라는 니카라구아에 우대조건으로 석유를 판매하기로 했다. 쿠바는 베네주엘라에게 석유를 할인받는 조건으로 의사들을 파견하기로 했다. 베네수엘라의 경제력이 나머지 국가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소시키는 데 사용되고 있는 인상이 강하다.

가장 중요한 조치는 각국 정상들이 동맹을 강화하고 세계은행과 같은 미국 주도의 금융기관으로부터의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지역개발은행을 설립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른바 ALBA 은행은 10억 달러내지 15억 달러의 자본으로 출범하기로 했다. 역시 베네주엘라가 주요 자금조달원이 될 것이다. 이 펀드는 예를 들면 도미니카의 풍부한 강물과 니카라구아의 기술이 결합된 수력발전 에네지 벤처 프로젝트에 투입될 것이다. 차베스와 여섯 나라의 지도자들은 이미 지난달 70억불을 자본으로 계획하고 있는 남미은행(the Bank of the South)을 설립하였고 이 은행은 세계은행이나 IMF보다 더 완화된 조건으로 대출을 제공할 것이다.

ALBA의 미래는 얼마나 더 많은 나라들이 참가할 것이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에콰도르나 아이티의 경우는 참가를 원하고 있으나 심각한 내부반대에 직면해 있다. 다른 나라 역시 보수언론의 강한 반발로 인해 상황이 여의치 않다. 이들은 경쟁이 아닌 상호원조에 입각한 무역이라는 점을 자국에 설명하려 해도 일단 차베스, 카스트로, 오르테가가 거론되면 알르레기 반응을 보이는 우익들 때문에 상황이 어렵다고 호소하고 있다.

쿠바의 Martin Luther King 센터의 조엘 수아레즈 Joel Suarez 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ALBA의 사회운동 위원회 활성화를 들고 있다. 이 위원회는 농민, 여성, 환경주의자, 노조 등의 대표자로 구성되어 있다. 정부적 차원의 참여가 곤란한 나라는 사회운동단체가 우선 참여함으로써 점차 외연을 확대하자는 취지다. 이러한 제안에는 심지어 미국의 사회운동단체도 포함하고 있다.

또 하나 ALBA의 미래를 흐리게 하는 것은 베네수엘라의 경제력에 대한 지나친 의존성이 아닌가 싶다. 만약에 오일머니가 아니었다면, 그리고 우고 차베스라는 존재가 아니었다면 이 모든 것들이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러한 상황은 앞으로 참가하고 있는 각국의 지도자들과 사회운동단체 들이 풀어나가야 할 숙제일 것이다.

어찌 되었든 현재 라틴아메리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실험은 현재 자본에 의해 주창되는 “자유무역”이 의미하는 바는 ‘자본의 자유’, ‘이윤추구의 자유’이고, 이에 비해 남미 좌파세력이 주창하는 “공정무역”에는 ‘인민을 위한’, ‘서로 돕는’, ‘환경을 위한’이라는 개념을 바탕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할 것이다. 그 실험의 성공이 향후 이 지구의 물질문명의 앞날에 중대한 이정표를 제시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