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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의 역사

얼마 전에 헌책방에서 구입한 책 한권을 최근 다 읽었다. ‘회화의 역사(원제 : The Story of Painting from Cave Painting to Modern Times)’이라는 책인데 미국인 잰슨(Janson) 부부가 쓴 책을 유홍준 씨가 번역한 책이었다. 1983년 초판이 발행되었고 내가 구입한 책은 1998년 발행된 13쇄였다. 그 정도까지 계속 발간한 것을 보니 꽤나 스테디셀러였던 모양이다. 책 내용이 서양미술사를 알기 쉽게 서술한 책이라 대학교 교양교재로 쓰이기 딱 좋았을 듯싶고 아마 그래서 그렇게 오랜 기간 팔리지 않았나 생각된다.

책을 읽은 후 감각없는 나조차도 미술을 보는 눈이 눈곱만큼 향상되었다. 서양화의 사조나 각 작가들의 특색을 구분하는데 그리 뛰어난 재주가 없었는데도 우연히 본 한 작품에서 나도 모르게 ‘음 루벤스 풍이로군’ 하고 읊조렸는데 놀랍게도 정말 루벤스의 작품이었던 것이다!(주1) 그래서 책을 쓴 잰슨 부부와 번역해준 유홍준 씨와 책을 낸 열화당 관계자 분들께 감사하는 맘을 가지게 되었다.

다만 아쉬움은 있다. 저자가 설명용으로 예시하고 있는 그림들이 앞머리의 몇 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흑백이었던 것이다. 해외 사이트에서 찾아본 원래 책이 하드커버에 칼라표지인 것으로 보아 아마도 – 아니 당연히 – 그림들이 칼라였을 것인데 번역본은 흑백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는 아마도 – 아니 필시 – 좋은 책을 소개하고 싶은 출판사의 열의와 칼라로 팔면 채산성이 맞지 않을 – 대학생들이 총천연색의 이 책을 사느니 술을 마셔버릴 테니 – 현실적 제약과의 타협점이었으리라.

이해는 가면서도 아쉬움은 여전하다. 물론 정 원색으로 보고 싶으면 일일이 해당 작품을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되겠지만 아무래도 책을 읽어나가면서 그 속에 인쇄된 그림을 보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결국 난 이 책을 반절만 즐긴 셈이 되니까 말이다. 비단 이 책만의 문제도 아니다. 서경식 씨가 직접 쓴 ‘나의 서양미술 순례’도 흑백이다. 더한 비극은 이탈리아 그래픽노블 작가 휴고 프라트의 걸작 ‘코르트 말테제’ 시리즈도 올 칼라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 흑백 인쇄본으로 소개되었다는 점이다. 옛날도 아닌 2002년에 출간되었음에도 말이다. 마치 고학하는 젊은이의 복사본 같은 느낌이다.

출판업자들의 고충도 이해할만 하지만 적어도 미술관련 책에서만큼은 소개하고 싶은 작품의 최대한 많은 부분을 소개하려는 고집이 있었으면 좋겠다.

(주1) 힌트를 주자면 그의 작품의 등장인물은 약간 과장되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포즈가 뒤틀려있다. 역동적이라 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