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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P가 워즈니악의 제안을 거절할 때

자신이 설계하는 새로운 컴퓨터가 애플 사의 자산이 된다는 데 동의한 이후에도 워즈는 그것을 자신이 몸담은 HP에 먼저 제공해야 한다고 느꼈다. [중략] 그래서 워즈는 1976년 봄에 HP의 직장 상사와 경영진에게 자신의 고안물을 보여주었다. HP의 경영진은 큰 인상을 받았지만 HP에서 상품으로 개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컴퓨터광이 취미 생활로 만들 법한 물건에 불과하고, 또 HP가 타깃으로 삼는 고품질 시장에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워즈는 회상한다. “실망스럽긴 했지만, 그러고 나니 오히려 홀가분한 마음으로 애플에 합류할 수 있었어요.”[스티브 잡스, 윌터 아이작슨 저, 안진환 역, 민음사, 2011년, pp 116-117]

기업이 중요한 맥락에서 그릇된 의사 결정으로 기업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순간이 있는데 HP에게는 바로 이 순간이 그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다. 스티브 워즈니악이 HP에 근무하던 중 자신의 천재성으로 고안한 세계 최초의 퍼스널 컴퓨터를 일종의 도덕적 양심에 따라 – 심지어 직무발명도 아닌 것을 – 회사에 선보였는데 HP는 그것을 퇴짜 놓은 것이다. 이에 따라 제품의 권리는 스티브 잡스가 설립한 애플에게 고스란히 넘어가게 된 역사적인 순간이다. 그 이후의 그 둘이 이루어낸 작업들은 역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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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rs Vonhuben (ich selbst) – Self-photographed, Copyrighted free use, Link

기업이 스스로 악마가 되는 것을 피하지 못하면 정부가 도와줘야 한다

2012년에 애플, 아마존, 구글 등에 의한 세금회피와 관련한 스캔들로 대중이 분노하고 이로 인해 G20이 행동에 나섰을 때, OECD는 국제적인 법인세 체계의 개혁을 촉구했다. 이에 따라 3년 후에 “기반 부식과 이윤 이동(Base Erosion and Profit Shifting)” 프로젝트 또는 BEPS라 알려진 패키지가 탄생했다. [중략] 예를 들어 이로 인해 이들 기업들의 이윤과 세금 납부에 관한 국가간 과세 당국 보고서의 공유가 시작됐다. 그렇지만 불행히도 이러한 표준은 오로지 거대 초국적 기업에만 적용되었고 보고서는 대중에게는 공개되지 않아 시민사회에 필수적인 투명성을 담보해내지 못했다.[Decision Time for the Future of Corporate Taxation]

이 블로그에서도 몇 번 다뤘던 바,1 초국적 기업들, 특히 인터넷과 소프트웨어에 기반을 두고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은 생산물의 특징상 더욱더 자유롭게 그들의 이윤과 비용을 지구적 범위에서 이윤극대화의 지역으로 이전시킬 수 있기 때문에 개별국가의 과세정의를 초토화시키는 일이 빈번했다. 이런 상황에서 가끔 예외적으로 초국적 기업이 징벌적 과세를 부담해야 하는 경우가 보도되기도 했으나 근본적인 해결책의 제시는 요원한 가운데 인용문에서 언급하는 프로젝트가 OECD 등에서 시도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여전히 온갖 꼼수를 – 꼼수이기는 하지만 합법적인 – 동원하고 있는 기업의 세금회피 시도를 저지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2017년에도 구글은 네덜란드의 쉘을 통해 227억 달러를 버뮤다로 송금했다. 같은 해에 페이스북은 13억 파운드의 매출을 올린 영국에서 7백4십만 파운드의 세금을 냈다. 보다폰은 2016~2017년 기간 동안 이윤의 거의 40%를 조세회피 지역으로 이동시켰다. 생산물의 유동성, 국제적 로비, 과세당국간 협조체계의 미흡이 이런 과소과세의 원인이라 할 수 있다.

ICRICT는 초국적기업에 대한 단일 과세를 위한 토론을 지지하는데, 이를 통해 그 기업들의 전 세계에서의 수입을 통합하여 그들의 이윤을 이동시키는 데 드는 이전비용의 지불을 좌절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국제적 이윤과 상호연결된 세금은 기업의 매출, 고용, 자원, 그리고 심지어 각국의 디지털 사용자와 같은 객관적 사실관계에 기초하여 지역에 배분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또한 초국적기업이 벌어들이는 이윤에 대해 20~25% 정도의 지구적인 기초 실효 법인세율의 도입을 지지한다.[같은 글]

ICRICT는 인용문의 저자가 의장으로 있는 국제 법인세 과세 개혁을 위한 독립적 위원회(Independent Commission for the Reform of International Corporate Taxation)를 가리킨다. 저자는 BEPS와 같은 협의체보다 더 강한 연결고리를 가진 단일 과세나 지구적 법인세율 적용과 같은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현실적으로 그 정도의 조치 없이 초국적기업의 세금 회피를 막을 방법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기업이 악마가 안 되려면 정부가 도와줘야 한다.

어쨌든 HedgeFund.net은 중요한 아이디어를 하나 제공하고 있다. ‘전 세계 단일세율’이 바로 그것이다. 현실적으로 지금 각국은 낮은 세율과 낮은 임금을 쫓아 부나방처럼 옮겨 다니는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경쟁적으로 세율을 내리고 있는 형편이다. 우리나라 역시 새 정부 들어 이런 의도를 노골화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 조세피난처와 같이 극단의 세율을 제시하지 않는 이상은 그들의 자본유치활동은 결국 자본이 거쳐 갈 하나의 정거장을 제공하는 행위일 뿐이다.[전 세계가 단일세율을 적용하면 어떨까?]

‘삼성 vs 애플 특허소송’에 대한 또 다른 관전 포인트

사실 누가 봐도 최근 몇 년 사이의 삼성의 스마트폰은 애플의 아이폰과 닮았다. “앱등이의 글일 뿐”이라고 어떤 분이 폄하하기도 했지만 이 글을 보면 그러한 의혹은 점점 더 짙어진다. 애국주의다, 보호주의다, 삼성이 자초한 일이다, 지재권의 보호 범위가 애매하다 등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는 이번 판결은 어쨌든 지적재산권에 대한 본질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하는 계기가 된 판결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현재의 특허권이나 지적재산권이 창조자의 권리를 적절하게 보호해주고 있는가, 그것을 보장해줌으로써 시장의 효율을 증대시키고 있는가 하는 회의적 시각은, 이제 지적재산권 자체를 부정하는 급진적 진영뿐만 아니라 경제에 대한 주류적 가치를 인정하는 이들에게조차 확산되고 있다. 즉, 특허나 지재권에 대한 기업의 과용 및 오용이 오히려 그것이 보호하거나 도모하고자 했던 것들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특허권의 확산은 세 가지 방식으로 대중에게 피해를 입힌다. 첫째, 이는 테크놀로지 기업들이 시장에서보다는 법정에서 경쟁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 정확하게 발생하게 될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둘째, 기존 기술을 사용하지만 또한 그것을 가지고 뭔가를 만드는 회사에 의한 후속적인 개선을 방해할 것이다. 셋째, 미국의 특허 시스템의 더 광범위한 문제들을 가속화시킨다. 예를 들면 특허 트롤(troll)들(실제로 어떠한 것도 만들 의사가 없는 특허 보유자에 의한 투기적인 소송들); 방어적인 특허출원(주로 경영비용을 증가시키는 소송 위험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특허 취득); 그리고 “혁신 정체”(너무 작은 특허들이 너무 많은 참여자들에게 퍼져있기 때문에 새로운 단일 생산물을 창조하기 위한 복합적인 기술을 조합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Apple v Samsung, iPhone, uCopy, iSue]

이코노미스트의 이 기사가 바로 이 시스템을 지지하고 있는 주류의 고민을 잘 말해주고 있다. 창조자의 권리를 정당하게 보호해주고, 이를 통해 창의를 도모하여 경제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특허 시스템이 이제 스스로 몸집이 커지고 모순에 빠져 더 큰 시스템의 발전을 훼방 놓는 심술꾸러기가 되어버렸다는 이야기다. 즉, 특허 시스템의 배타적인 권리 보호가 경제 순환에 일종의 동맥경화 증상을 초래하고 있다는 판단인 셈이다.

오늘날 통상적인 지혜로는 베끼는 것은 창조성에 나쁜 것이란 생각이다. 그 생각은 만약 우리가 사람들이 새로운 발명품을 베끼도록 허용한다면, 아무도 처음에 창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카피캣은 새 아이디어들을 개선하는데 아무 것도 하지 않지만 이익의 대부분을 뺏어간다는 것이다. 그것이 특허와 저작권이 기반을 둔 이유다. : 베끼는 것은 혁신을 위한 동기를 파괴한다.[In Praise of Copycats]

월스트리트저널의 “모조품 경제 : 어떻게 모방이 혁신을 일으키나”라는 책 소개 글이다. 책은 후발주자의 모방에도 불구하고 번창하는 산업들의 예를 통해 특허와 저작권이 가지고 있는 근본철학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재밌는 것은 이번 소송의 승자 애플의 창시자 스스로가 모방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는 위대한 아이디어를 훔친 것에 대해 언제든 부끄러움이 없었습니다.

애플은 혁신을 전혀 멈추지 않았다. 그 대신 그들은 iMac을 내놓았고, OS X(“레드몬드, 복사기를 가동시켜.”)를 내놓았고, 그리고 iPod를 내놓았다. [중략] 만약 베끼는 것이 혁신을 멈추게 한다면, 왜 애플은 그들이 카피를 당했을 때 혁신을 멈추지 않았는가? 모방 당하는 것은 어떡하든 혁신하고자 하는 그들의 능력을 멈추게 하거나 지연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가속화시켰을지도 모른다. 애플은 월계관에 안주할 수 없었던 것이다.[Who Cares If Samsung Copied Apple?]

오히려 다른 이의 모방이 애플을 혁신하게 추동했다는 이 가정은 조금은 극단적으로 들리기는 한다. 하지만 결국 애플이 오늘날 IT업계의 최강자로 나서게 된 근본적 이유는 어쩌면 자신들의 그들의 특허를 보호하려는 수동적 자세보다는 모방을 통한 창조와 혁신을 멈추지 않은 적극적 자세 덕분일 것이다. 애플이 처음에 제록스의 GUI를 흉내 냈을 때 제록스가 특허권 보호를 들어 법정이 그것을 막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erte님이 아래와 같이 제보해주셨는데

글 재미나게 잘봤습니다. 다만 끝에 나온 제록스 관련 이야기는 적절한 예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있어서요. 애플이 제록스에게 주식을 싸게 양도하고 저 권리를 얻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록스가 애플에게 소송을 걸었는데 졌다네요…

사실 확인을 해보니 erte님 말대로 제록스는 애플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이 판결을 통해 소송에서 졌다고 한다. 말씀의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러한 일련의 과정에도 불구하고, 당초 내가 쓴 원문의 취지가 본질을 크게 왜곡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되어 원문을 살려두고 이 각주를 글 밑에 붙여두기로 한다. 제보해주신 erte님께는 foog.com 평생 무료구독권을 드리고, foog.com 본사 경비실에서 찾아가세요.

물론 애플과는 규모가 다른, 이제 막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벤처기업의 혁신적 아이디어를 대기업이 모방하여 시장을 빼앗아가는 상황이라면 이야기는 조금 다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업 또는 노동자에 대한 특허 시스템은 기존의 시장 지배력에 대한 역학관계와 함께 다뤄져야 할 것이다. 이미 특허는 자본가에게 있어 일종의 “생산수단”이기 때문이다. 생산수단의 독점과 과보호는 독점자본주의를 강화시킨 것이 여태의 역사다.

1981년 출시된 Xerox 8010 Star의 그래픽유저환경(출처)

iPhone과 자유무역

애플(Apple)사의 최고 히트작 중 하나인 아이폰(iPhone)이 국내에 들어오느냐 아니냐를 가지고 인터넷에서 말이 많다. 얼리어답터(early adopter)의 성격이 강한 한국인들을 – 적어도 아이폰에 있어서만큼은 – 레이트어답터(late adopter)로 만들어버린 아이폰의 출시지연에 대해 많은 이들은 좌절하고, 분노하고, 초조해하고 있다.

왜 많은 이들이 스마트폰 중 한 기종에 불과한 아이폰의 국내출시에 애달파하는지에 대한 상세한 기술적 분석은 이미 많은 테크블로거들이 해주셨으므로 이 글에서는 생략하도록 하겠다.(주1) 다만 이 글에서는 아이폰이 가지는 경제적 의미, 그 중에서도 이른바 자유무역이라는 관점에서의 아이폰의 위치를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말해두자면 나는 ‘자유무역’ 반대론자가 아니다. 이 블로그에서의 나의 주장은 다만 현실세계에서 통용되고 있는 ‘자유스럽지 못한 자유무역’에 대해 반대한다는 것이다. 즉, 주류 측에서 경제적 효용이 계급무차별적으로 적용되는 것처럼 선전하고 있는  현실 세계의 자유무역이 실제로는 특정 계급, 특정 국가에게만 이로울 개연성이 높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일 뿐이다.

다시 본 주제로 돌아가 그렇다면 아이폰이 자유무역 경로를 통한 국내시장 접근을 통해 소비자의 이익을 증대시킬 것인가 아니면 그 반대일까?(주2) 기술 문외한이지만 그동안 주워들은 정보를 근거로 바라보건데 아이폰은 국내 이동통신 기기 시장에 전자의 효과를 가져다줄 개연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즉, 아이폰의 도입은 무선인터넷 등 데이터이용 등에 있어 독점을 행사하려는 국내 이동통신사의 기득권을 파괴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알려진바 그동안 국내 이통사는 사실상 과점의 상태에서 기기 공급사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며 국내 소비자들에게 전 세계적인 통신의 대세와는 역행하는 시장 환경을 강요하여 왔다는 심증도 있다. 즉 통신망이라는 소프트 성격의 서비스를 공급하는 이통사는 하드웨어 공급자들인 기기 제조업체보다 우월적 지위에 서서 그 스펙을 조정해오고 있다는 의심이 짙다는 이야기다.

국내 출시 모델은 무선인터넷 `와이파이(WiFi)`가 빠지고 멀티태스킹을 지원하는 중앙처리장치(CPU) 성능도 제트에 비해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략] 특히 와이파이가 빠진 것을 두고 이통사들이 무선 인터넷 사용이 줄어들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에 대해 이통사 관계자는 “고성능 CPU에 3.5인치 대화면, 와이파이 기능 등을 추가하면 가격이 급격히 올라간다”며 “이통사가 원해서가 아니라 소비자가 살 수 있는 폰을 내놓기 위해 제조업체 스스로 기능을 조정한 것”이라고 해명했다.[삼성 `제트` 한국선 못사…인터넷ㆍCPU 기능 조정]

이통사 관계자는 “와이파이 기능을 추가하면 가격이 급격히 올라가서 소비자가 살 수 없는 폰이 된다는” 논리인데 그럼 서구에서는 왜 그런 몹쓸 폰을 내놓고 있는지, 그리고 소니 에릭슨은 왜 국내출시된 엑스페리아에 와이파이 기능을 추가했는지 궁금하기도 하거니와, 실상은 “와이파이 칩셋을 집어넣으려면 몇백원 수준이면 가능하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설명”(관련글 보기)이라는 데 왜 가격이 급격히 올라가는 지도 궁금하다. 결국 무선인터넷이 잡히는 곳이라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와이파이 기능과 이통사가 가격을 부과하고 있는 데이터통신과의 마찰이 더 설득력 있는 와이파이 기능 삭제의 논리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현재로서는 전 세계 같은 스펙으로 통일하여 출시된다는 아이폰이 – 다만 오늘 중국에서는 아이폰도 와이파이를 빼기로 했다는 슬픈 소식이 – 그 협상력을 기반으로 국내 이통사들의 (삼성전자도 못 깨는) 통신독점을 깨버린다면 피동적이기는 하나 국내 소비자들의 선택범위가 더 넓어지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일단 그 과정에서 애플에 의한 새로운 독점이 아이폰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효과는 제켜두고 말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19세기 초중반 영국경제의 핫이슈였던 ‘곡물법’ 논쟁을 연상시킨다. ‘곡물법(穀物法 , Corn Law)’은 곡물의 수출입을 규제하기 위한 법률로 19세기 초반의 영국 법률이 대표적이다. 이 법은 소맥의 가격이 일정 정도가 되기 전까지는 수입을 금지함으로써 표면상의 목적은 곡물 가격의 등락에 대해 자국의 농업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었으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영국 지주계급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대표적인 보호무역주의 악법이었다.

신흥 부르주아들은 자신들의 고용인인 노동자들이 비싼 식료품비로 인해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것에 대항하여 자유무역의 선봉장 리카도 David Ricardo 등 명망가를 동원하여 이 법의 철폐를 강력히 요구한다. 결국 이 법은 1846년 폐지된다. 어쨌든 자본가들은 그들이 원했던 산업경쟁력 회복이라는 목표를 달성했고, 소비자들인 노동자 계급 역시 소비부담을 덜게 되어 지주를 제외한 모두에게 이득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당시 이러한 시도는 수구계급인 지주에 대항한 혁신 주도계급 부르주아에 의한 진보였다.

이제 이런 역사적 경험을 현재의 아이폰 해프닝에 빗대어보자. 굳이 비교해보자면 이통사를 지주계급, 애플을 외국 곡물업자, 이통사의 서비스를 영국산 곡물, 아이폰을 외국산 곡물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차이점은 국내 소비자들의 통신비 등 생계비용으로 인해 임금상승 압박을 받는 국내 고용주들(빗대자면 영국의 부르주아들)과 국내 이통사들의 독점적 지위를 보장해주는 곡물법이 없다는 점이다.(주3) 또한 이통사의 서비스와 아이폰이 곡물들처럼 상호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주4)

이렇게 비교를 해보니 결국 곡물법의 폐지가 영국의 지주층을 제외한 나머지 참여자들에게 이익이 되었던 것처럼 아이폰의 도입이 국내 이통사를 제외한 나머지 참여자들에게 이익이 되는 구조가 될 개연성이 높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적어도 이통사가 배타적으로 누리던 주파수 독점에 작은 균열을 일으킬 정도는 되지 않을까? 서로 챙길 것 챙겨가면서 말이다. 물론 그 전제는 과연 애플사가 스스로 또 하나의 독점공급업자가 되어 데이터이용료 등에서 전횡을 부리지 않는 구도를 만든다는 전제가 남아있긴 하지만 말이다.

이처럼 자유무역은 분명 잘만 작동하면 혁신을 전 세계에 저렴한 비용으로 전파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이 사례에서는 또한 단순히 하드웨어적인 우수성 뿐 아니라, 그것에 덧붙여 앱스토어라는 멋진 플랫폼을 통해 개발자들이 함께 뛰어들어 새로운 사업기회를 가지게 되고, 이를 소비자들이 합리적인 유통경로를 통해 향유할 수 있는 시장의 혁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교훈도 안겨주고 있다. 어쩌면 이는 MP3의 출현을 물리적으로 막으려 한 기업보다 그것에 능동적으로 대처한 기업이 오래 살아남았던 사례의 재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러한 소비자의 선택범위 확대, 저렴한 비용 등의 동일한 논리가 얼마 전에 다른 상품에 적용된 사례가 있음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바로 미국산 쇠고기 문제였다. 이 사태에서는 분명 소비자 상당수가 저렴한 비용의 쇠고기보다는 불특정다수에게 발생할지도 모르는 적은 확률의 광우병이라는 사유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 사례다. 앞서 글 “공공의 정신(public-spiritedness)”에서처럼 불특정다수의 안전에 대한 요구가 다수의 경제적 효용을 압도할 뻔했던 – 그리고 정부에 의해 진압 당했던 – 사례다.

따라서 자유무역을 통해 혁신전파 또는 경제적 혜택이 가지는 효용을 지나치게 신격화하는 것도 무리가 있음을 감안하여야 할 것이다. 자유무역이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상품이나 용역 그 자체뿐만 아니라 그것을 향유하는 소비자층의 선택권과 접근경로가 진정으로 자유로울 때만이 올바로 구현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자유무역을 주장하면서도 해당 업체, 전문가, 그리고 당사자 국가에서 그러한 소비자 선택의 기반이 되는 정보제공을 게을리 하거나, 심지어 왜곡할 때는 그 자유는 일방적인 자유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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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솔직히 잘 알지도 못하거니와 내가 아이폰을 기다리는 이유는 기존에 써오던 육중한 아이팟과 휴대전화를 한 기기에 쓸 수 있다는 작음 바람 때문일 따름이다

(주2) 계급무차별적일까 계급차별적일까 하는 의문은 우선 접어두도록 하겠다. 기술에 대한 습득의 계급차별적 효과를 논하는 이들도 있으나 적어도 휴대전화에 있어서 그 차별성은 이용가격에 의한 차별보다는 주로 능동적 선택군과 수동적 선택군의 차이에 의해 나뉘어 진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주3) 전자는 진입장벽을 낮추는 효과가 있을 것이고 – 어떤 면에서는 이 역할을 KT가 하고 있고 – 후자는 진입장벽을 높이는 기능을 하는데 이 규제가 없다는 점이 아이폰에게는 호재라 할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곡물법에 상응하는 또는 더 높은 진입장벽이 있을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통사의 사업권에 의한 주파수 독점일 것이다.

(주4) 이 또한 곡물법 상황보다 좋은 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