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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돈을 내야 한다.”

린든 존슨 정부에서 언론 담당 비서로 일하기도 했던 미국의 저널리스트 Bill Moyers 가 자본주의를 위기에 빠트리고 있는 자본가들의 탐욕을 비판한 내용의 비디오를 소개한다. 보험회사의 설립자이자 자선가로도 유명했던 자신의 친구 Bernard Rapoport의 예를 소개하며 좀 더 나은 사회를 위해 희생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역설하고 있다. 물론 이런 주장보다 더 급진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분도 계시겠지만, 세금을 올리려는 오바마를 히틀러에 비유하는 자본가가 판치는 미국에서 이 정도의 주장도 용기 있는 주장이란 생각도 든다. 또한, 미국의 핵심적인 의료보호 정책인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를 도입하는 등, 이른바 “위대한 사회”라는 미국식 복지의 틀을 다진 린든 존슨 정부의 각료답다는 생각도 든다. 영어로 된 비디오지만 그래픽이 좋고 내용도 쉬우므로 한번 시간 내서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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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안개

케네디 정부에서부터 린든 존슨 정부에 이르기까지 7년여를(1961년~1968년) 美행정부의 국방장관을 역임했던 로버트 S. 맥나마라의 미들네임은 Strange다. 결혼을 앞둔 시절, 그의 미래의 아내가 될 약혼녀가 청첩장을 쓰기 위해 그에게 미들네임을 물어보자 그는 “Strange”라고 대답했다 한다. 그러자 약혼녀 왈 “이상해도(strange) 좋으니까 말해줘요.”

실제로 핵전쟁의 위협이 전 세계를 뒤덮고 있던 시절의 ‘美제국주의 전쟁장관’이라 할 수 있는 사악한(!) 이에게 별로 어울리지 않는 코믹스러운 상황인데, 이 이름이 또 역시 핵을 소재로 하여 당시(1964년) 큰 인기를 끌었던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캐릭터 ‘스트레인지러브 박사(Dr. Strangelove)’와 묘하게 겹치면서 당시의 부조리한 상황이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에롤 모리스의 다큐멘터리 <전쟁의 안개>(주1) 에 따르면 처음에 케네디는 그에게 재무장관 직을 제안했다가 거절당하자 국방장관 직을 제안했다고 한다. 밀고 당기는 과정에서 결국 세계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던 거대기업 포드자동차의 CEO였던 맥나마라는 가족들이 탐탁해하지도 않는 연봉 2만5천 달러의 초라한(!) 국방장관이라는 직책을 수락한다.

어떻게 하버드MBA 출신의 포드자동차 CEO였던 이 경제인이 국방장관이라는 ‘이상한’ 직책을 맡게 되었을까? 그의 미들네임처럼 상황이 약간 이상하긴 하다. 물론 미국권력의 음모론에 관한 책 <제1권력>의 저자 히로세 다카시 에게는 쉬운 답이다. 포드는 미국의 실질적 권력자인 모건-록펠러 연합에 속한 기업이기 때문에 발탁된 것이다.

각설하고, 맥나마라는 한 개인으로서, 그리고 미국이라는 나라의 국방장관으로서 2차 세계대전, 소련과의 핵전쟁 위기, 그리고 베트남 전쟁 등 현대사의 중요한 위기국면을 모두 거쳐 온 흔치 않은 인물이다. 그러면서 수만 명의 살상을 지켜보았고, 수천만 명의 목숨이 달린 의사결정을 했고, 그 자신이 수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명령을 하달했다.

시종 일관 그가 직접 증언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전쟁의 안개>에서 그는 애써 자기 자신을 변명하려 하지 않지만 자신의 죄과를 참회하는 것도 아니다. ‘11개의 교훈’이라는 소제목으로 정리되는 그의 입장은 국가적 결정을 하는 이에게는 종종 합리성이나 도덕성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다는 논리로 정리될 수 있다. 마키아벨리식 군주론의 냄새도 난다.

다만 기업의 CEO답게 그는 – 적어도 그의 증언에 따르면 – 강경론도 유화론도 아닌 상황논리에 따른 그만의 합리성을 추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일단 케네디 정부에선 핵전쟁 직전의 상황을 무마시키는데 성공하였다. 국내 어떤 신문의 주필은 이 상황을 해상봉쇄의 강경론의 승리인 것처럼 암시하고 있으나 굳이 말하자면 그것은 중도적 타협이랄 수 있다.

이후 베트남 사태에서도 주전론자가 아니었던 그는 미국이 발을 뺄 것을 케네디에게 건의하여 성공하는 듯 하였으나 케네디의 갑작스런 암살로 그의 시도는 실패하였다고 한다. 이후 주전론자 린든 존슨의 대통령직 승계와 미국의 자작극 ‘통킹만 사건’으로 미국은 베트남전이라는 늪에 빠져든다. ‘히로세 다카시’적 음모론의 냄새가 나는 구석이다.

어쨌든 <전쟁의 안개>는 핵심 당사자인 맥나마라로부터 이 두 중요한 현대사에 대해 직접 증언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쿠바 위기 때는 극한의 상황으로 몰렸음에도 미쏘 양 당사자들이 모두 이성적이었고 서로 잘 알았기 때문에 참사를 피할 수 있었던 반면, 베트남 사태는 서로에 대한 이해부족이 전쟁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우리는 그만큼 핵전쟁의 종말에 다가가고 있었습니다. 이성적인 개인들이 말입니다. 케네디는 이성적이었습니다. 흐루시초프도 이성적이었습니다. 카스트로도 이성적이었습니다. 이성적인 개인들이 우리 사회의 총체적 절멸에 그렇게 가까이 간 것입니다.”
“쿠바 미사일 위기 막판에는 소련인 들의 의중을 정확히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베트남의 경우는 그들을 충분히 알지 못했고 그 결과 오판이 야기됐죠.”
로버트 S. 맥나마라(전쟁의 안개 中에서)

다시 한 번 앞서 언급한 어느 신문의 칼럼과 이 전쟁의 신(神)의 증언을 비교하여 생각해보자. 개개인이 이성적이고 서로의 의중을 정확히 헤아릴 수 있었기에 최악의 상황에서도 강경론은 꼬리를 내렸다. 베트남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몰이해와 오판으로 전쟁의 늪에 빠져들었다. 그 신문의 칼럼은 이 둘 중 지금 어느 길을 가자고 부추기는 것일까?

어쨌든 자연인 맥나마라는 포드자동차의 CEO로서 세계 최강대국의 국방장관으로서 명예를 누리다 작년 유명을 달리했다. 어찌 보면 복 받은 인생이다. 하지만 달리 보면 그는 매우 불행한 인간이다. 자기 눈으로 자기 손으로 수천수만의 생명을 앗아가는 맥락결정의 정점에 서있었던 업(業)이 많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때로 보통사람이 가장 되기 힘든 법이다.

(주1) 이 말은 전쟁은 인간의 이해력과 판단력을 뛰어 넘을 정도로 복잡해서 그릇된 판단을 내리게끔 한다는 의미에서 쓰인 말이다. 어쩌면 현재의 천암함 사태의 상황과도 맥락이 통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