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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탈적인” 반세기가 끝난 세계, 그리고 한국

지난 50년간 전 세계의 경제성장은 예외적으로 빨랐다. 세계 경제는 여섯 배 확대되었다. 일인당 평균 임금은 세 배로 늘었다. 수억 명의 사람들이 가난에서 벗어났다. [중략] 문제는 느린 인구성장과 더 긴 수명이 근로연령 인구의 성장을 제한한다는 점이다. [중략] 1964년에서 2014년까지 고용과 생산성은 각각 연평균 1.7%와 1.8% 씩 성장했고, 이 결과 고용인당 평균 생산액은 2.4배 증가했다. [중략] 최종적인 결론에 따르면 다음 50년 동안 고용은 불과 연 0.3% 증가할 것이다. [중략] 따라서 생산성 증가율이 지난 반세기의 빠른 속도를 따라잡는다 하여도 전 세계 GDP 성장률은 여전히 연 2.1% 가량에 해당하는 40% 까지 하락할 것이다.[Can long-term global growth be saved?]


출처 : 맥킨지 웹사이트

맥킨지는 지난 50년간의 경이적인 경제성장을 “역사의 일탈(an aberration of history)”이라고 표현했다. 실로 전 세계적으로 GDP가 매년 3.8% 증가하는 상황은 확실히 “일탈,탈선,기행”이라 할만 하다. 특히 한국과 같은 일부 혜택 받은 “개발도상국”은 한때 10%대의 성장률을 보이기도 했으니 가히 광란의 질주라 할 만하다. 맥킨지는 이런 일탈적인 성장이 가능했던 한 주요요인으로 인구성장을 꼽았고, 인용한 보고서는 이 경향을 분석한 것이다. 그리고 보고서는 현재 “인구 순풍(demographic tailwind)”이 “역풍(headwind)”으로 바뀌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보고서는 심지어 노동가능인구가 이미 줄어들고 있는 나라도 있으며, 한국은 2024년부터 줄어들기 시작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보고서는 이런 나라들은 여성, 청년, 고령층의 고용을 독려하여야 한다는 조언을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이를 위한한 조치로 현재 눈에 띄는 것은 주요기업들의 정년 연장 정도다. “경력단절” 여성들의 고용활성화 조치는 남녀 간 임금격차가 세계 최악 수준인 이 나라의 상황에서는 생색내기 정책에 불과했고, 청년 고용에 힘이 될 최저임금을 – 만만치않게 열악한 수준인 – 일부나마 올리려는 조치는 재계의 강한 반발을 야기하고 있다.


출처 : vox.com

기업들은 이런 고용상황 개선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로 흔히 어려워지고 있는 경영 상황을 들고 있다. 이익이 나지 않아 신규 고용이나 노동조건 개선이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 상장기업의 최근 실적을 보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금융위기 등 대내외적인 여건은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출은 2009년 이후 꾸준히 성장했다. 영업이익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기는 했지만 소폭의 하락이었고 이마저도 국내 상장기업 영업이익의 25%를 차지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효과를 제외하면 4.4%(2012) → 4.1%(2013) → 4.5%(2014)로 꾸준한 영업이익률을 시현하고 있다.

앞서의 글에서도 보았듯이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수준은 지극히 위험한 수준이다. 10년도 안 되어 노동가능 인구는 줄어들기 시작할 것이다. 성장을 떠받들 생산 및 소비계급의 상황이 양적으로도 줄어들고 질적으로도 악화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경기활성화는 부채주도형이 아닌 소득주도형이 되어야 함은 물으나 마나다. 그렇기에 금리인하는 단기적인 미봉책일 뿐이다. 정부와 재계가 이전 반세기의 경제성장, 그리고 그에 맞물린 인플레이션은 달성불가능하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경기선순환적인 복지와 노동여건 개선이 대책임을 공감하여야 한다.

노동생산성과 임금의 상관관계, 그리고 경제에의 영향에 대한 단상

시계열적으로 생산성 대비 임금이 연동되어야 한다는 아이디어에는 크게 이견이 없으나, 개인적으로 이러한 사고의 저변에는 최초에 책정된 노동임금이 생산에 대한 올바른 몫을 제공하면서 시작되었다는 뉘앙스를 담고 있는 것 같아 그리 탐탁지는 않다. 그러함에도 생산성 대비 임금 변화 추이를 관찰하는 것은 경제의 큰 그림을 그리는데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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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 홈페이지에서 재인용

위 표에서도 보듯이 1947년 이후 미국경제에서의 비농업 분야의 임금은 생산성 향상 추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근사하게 접점을 찾아가던 생산성 증가와 임금 증가 추이는 1980년 언저리를 기점으로 만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신용위기 이후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것으로 관찰된다. 경제위기를 틈타 기업이 노동조건을 악화시킨 결과일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어째서 임금-생산성 갭이 확대되고 노동을 통한 소득이 감소하는지에 대한 세 가지 장기적인 요소들을 규명하였다. 첫째는 노동시장 정책의 변화와 보다 조직화된 부문의 감소로 인한 노동의 협상력 감소를 들 수 있다. 다른 요소로는 증가하는 세계화와 무역개방인데, 이로 인해 상대적으로 노동집약적인 부문들이 발달된 경제에서 신흥 경제 쪽으로 이전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발달된 경제에 남겨지는 부문은 상대적으로 덜 노동집약적이고 노동의 평균 비중은 줄어들게 된다. 세 번째 요소는 정보 및 통신기술의 개선과 관련한 기술변화인데, 이로 인해 여가분의 생산성이 증가하고 노동에 대한 보상에 비해 자본에 대한 보상이 늘어나는 것이다.[Behind the Decline in Labor’s Share of Income]

왜 이러한 결과가 초래되었는지에 대한 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의 리서치 분석가의 분석이다. 언뜻 어느 진보적인 논문에서나 들을 수 있을 법한 분명한 톤이다. 노동의 협상력 감소, 세계화, 기술변화 등 세 가지 요인이 임금조건 악화의 주요원인으로 지목될 수 있다는 것인데, 앞서 두 가지는 진보진영에서 꾸준히 자본주의의 모순으로 지적하고 있는 문제다.

한편, 우리나라의 경우 동일한 경향을 파악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 유의미한 자료조사는 1999년경부터 축적되고 있어서 아직 시계열적 분석에는 무리가 따른다고 여겨진다. 조사범위나 분류도 다소 혼란스러워 분석의 적확성 여부를 판단하기에도 좀 망설여지지만, 여하튼 1999년 이후 광공업의 부가가치 노동생산성과 임금추이는 얼추 조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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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1~2010.4 광공업 평균 상용임금 변화 추이(출처 : 한국은행경제통계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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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1~2010.4 광공업 부가가치 노동생산성 지수 변화 추이(출처 : 한국은행경제통계시스템)

하지만 현상을 좀 더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살펴볼 통계는 예컨대 지난번 이 블로그에 올린 ‘그래프 몇 개와 암울한 현실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살펴본 몇몇 가계소득의 질적 측면일 것이다. 생산성 증가추이 대비 노동소득을 광공업 분야 노동자가 가져온다 하더라도 기업과 가계의 가처분 소득 증가율, 고용의 질, 물가 대비 임금상승(또는 복지수준) 등도 살펴야 한다.


‘최근 소비부진 원인 진단 및 시사점’(삼성경제연구소)에서 재인용

이렇듯 최근 가계소득의 질적/양적 상황은 좋지 않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내수는 부진해지고 장래에 수출 감소 등으로 줄어들 GDP를 내수가 받쳐주지 못하여 생산도 부진해지는 악순환이 초래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함에도 사측은 근로시간이 줄면 소득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임금조건의 변화는 결국 “노동의 협상력”임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유지수 국민대 총장은 [중략] “자동차산업의 경우 근로시간 단축으로 자동차 생산 1대당 노동비용이 상승해 기업 경쟁력 하락이 우려된다”며 “독일 폭스바겐의 기세가 강해지고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권토중래를 꾀하는 상황에서 국내 자동차업계의 기업경쟁력 하락은 한창 상승세를 타고 있는 자동차업체가 황금의 기회를 상실하는 것” [중략] 이동응 경총 전무는 “폭스바겐은 임금보전 없는 근로시간 단축에 합의해 일자리 나누기에 성공했으나 우리 노동계는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감소를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근로시간 줄면 임금 낮춰야” vs “소득 감소는 안돼”]

혹자는 노동시간과 임금에 관해서 대기업과 대기업 정규직 노조 간에 암묵적인 합의가 존재한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즉, 기업은 근로시간 연장을 통해 생산량을 증대하고 싶은 욕심이 있고, 노조는 어차피 야근이 불가피하다면 이에 대한 수당을 확실히 챙겨 실질임금을 더 높인다는 분석이다. 그러므로 근로시간 단축은 노동자에게도 좋지 않다는 것이다.

개연성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그것은 일부 대기업 노조의, 어쩌면 더 수혜 받고 있는 노동자들의 이해관계일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 중 상층부가 기업과 이런 이해관계에 얽혀 있다면 조직화되지 않은 대다수 노동자는 이런 수혜에서 배제되고 있다. 따라서 임금하락 없는 근로시간 단축이 노동자의 이해관계와 내수활성화, 나아가 총자본의 이익에 부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