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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I를 올리면 경기가 살아날까?

최경환 의원이 경제부총리에 내정된 이후 경제정책에 관해서는 온통 LTV와 DTI 완화와 같은 부동산 이야기다. 그동안 존재감도 없던 현오석 현 부총리와 달리 최경환 의원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서는 바로 중앙은행이나 금융당국이 화답하는 일사불란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언론도 이에 동조하는 모양새인데 오늘자 조선일보 종이신문은 “政爭에 발 묶인 ‘부동산 살리기’”라는 헤드라인을 뽑으며 이런 추세에 동승했다.

그렇다면 과연 민심도 정부의 이러한 부동산을 통한 경기부양책에 동의하고 있을까? 민심의 단초는 현대경제연구원이 2014년 6월 전국의 성인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통해 알아볼 수 있다. 이 설문조사는 조사대상자의 “경제적 행복지수”를 측정함을 목적으로 하였고, 이를 위해 구체적인 세부항목으로 경기회복 체감 여부, 소비위축 요인, 제2기 경제팀의 과제 등 경제현안에 대해서도 조사하였다.

조사결과 조사대상자의 87.1%가 경기회복을 체감하지 못한다고 응답하였다. 대부분 경기가 나쁘다고 여기는 상황이다. 한편 경기회복을 체감하지 못하는 원인은 뭘까? ‘일자리 불안’(35.3%)과 ‘가계빚 증가’(28.8%)가 1,2위다. 제2기 경제팀이 올인하고 있는 부동산 관련은 몇 위일까? ‘부동산 시장 침체’(14.5%)는 ‘소득감소’(18.6%)에 이어 4위다. 일자리와 소득 등 가처분소득 관련이 경기침체를 체감하는 압도적 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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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를 위축시키는 요인은 무엇일까? 1위는 응답자의 25.1%가 선택한 ‘자녀 교육비 부담’이다. 한국만의 특수한 현상이랄 수 있는 이 자녀교육 올인은 가처분소득의 감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아무리 소득이 줄어도 교육비는 줄이지 않는 개인도 어리석지만 그런 상황을 방치하고 있는 – 심지어는 학교서열화로 부추기고 있는 – 정부도 어리석다. 한편 전월세 상승은 설문항목 중 꼴찌로 불과 6.3%다.

가장 중요한 설문항목 중 하나가 ‘새 경제팀이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할 과제’일 것이다. 이 설문의 1위는 ‘내수 활성화’(33.1)고 2위가 ‘소득분배’(29.3%)다. 개인적으로 이 설문항목이 좀 잘못 설계되었다고 여겨진다. 내수활성화는 말하자면 수출주도형 경제와 대치되는 매크로 목표다. 같은 설문항목인 소득재분배, 공기업 개혁, 규제개혁, 환율안정 등 구체적 실천방안이 종합적으로 이행될 때 달성될 수 있는 전략적 목표인 것이다.

이런 한계에도 감안하고 살펴보자면 ‘내수 활성화’는 어쨌든 주로 부동산 경기 등 내수산업의 활성화와 관련 있을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 항목은 자영업자, 60세 이상 고령자, 고소득/고자산 그룹이 많이 응답하였다 한다. 그리고 소득분배는 직장인, 공무원, 저소득/저자산 그룹이 많이 응답하였다. 현 정부의 경제 로드맵에 올라와 있지 않은 소득분배에 대한 요구가 매우 높다는 사실이 가지는 시사점이 크다.

이상에서 볼 수 있듯이 국민 대다수는 경기침체로 고통 받고 있으며 그 주된 원인은 일자리 불안, 가계부채, 과도한 자녀 교육비 등으로 인한 가처분소득 여력 부족이다. 그리고 설문조사에 근거하여 판단할 때 부동산 경기 침체로 인해 추가적으로 힘든 이는 주택소유자 등 자산가 그룹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새 경제팀의 과제는 무엇일까? 사교육비 부담 경감, 고용안정, 가계부채 상환 등을 통한 가처분소득 증가 독려다.

DTI를 올리면 이 모든 일이 가능할까?

노동생산성과 임금의 상관관계, 그리고 경제에의 영향에 대한 단상

시계열적으로 생산성 대비 임금이 연동되어야 한다는 아이디어에는 크게 이견이 없으나, 개인적으로 이러한 사고의 저변에는 최초에 책정된 노동임금이 생산에 대한 올바른 몫을 제공하면서 시작되었다는 뉘앙스를 담고 있는 것 같아 그리 탐탁지는 않다. 그러함에도 생산성 대비 임금 변화 추이를 관찰하는 것은 경제의 큰 그림을 그리는데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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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 홈페이지에서 재인용

위 표에서도 보듯이 1947년 이후 미국경제에서의 비농업 분야의 임금은 생산성 향상 추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근사하게 접점을 찾아가던 생산성 증가와 임금 증가 추이는 1980년 언저리를 기점으로 만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신용위기 이후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것으로 관찰된다. 경제위기를 틈타 기업이 노동조건을 악화시킨 결과일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어째서 임금-생산성 갭이 확대되고 노동을 통한 소득이 감소하는지에 대한 세 가지 장기적인 요소들을 규명하였다. 첫째는 노동시장 정책의 변화와 보다 조직화된 부문의 감소로 인한 노동의 협상력 감소를 들 수 있다. 다른 요소로는 증가하는 세계화와 무역개방인데, 이로 인해 상대적으로 노동집약적인 부문들이 발달된 경제에서 신흥 경제 쪽으로 이전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발달된 경제에 남겨지는 부문은 상대적으로 덜 노동집약적이고 노동의 평균 비중은 줄어들게 된다. 세 번째 요소는 정보 및 통신기술의 개선과 관련한 기술변화인데, 이로 인해 여가분의 생산성이 증가하고 노동에 대한 보상에 비해 자본에 대한 보상이 늘어나는 것이다.[Behind the Decline in Labor’s Share of Income]

왜 이러한 결과가 초래되었는지에 대한 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의 리서치 분석가의 분석이다. 언뜻 어느 진보적인 논문에서나 들을 수 있을 법한 분명한 톤이다. 노동의 협상력 감소, 세계화, 기술변화 등 세 가지 요인이 임금조건 악화의 주요원인으로 지목될 수 있다는 것인데, 앞서 두 가지는 진보진영에서 꾸준히 자본주의의 모순으로 지적하고 있는 문제다.

한편, 우리나라의 경우 동일한 경향을 파악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 유의미한 자료조사는 1999년경부터 축적되고 있어서 아직 시계열적 분석에는 무리가 따른다고 여겨진다. 조사범위나 분류도 다소 혼란스러워 분석의 적확성 여부를 판단하기에도 좀 망설여지지만, 여하튼 1999년 이후 광공업의 부가가치 노동생산성과 임금추이는 얼추 조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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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1~2010.4 광공업 평균 상용임금 변화 추이(출처 : 한국은행경제통계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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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1~2010.4 광공업 부가가치 노동생산성 지수 변화 추이(출처 : 한국은행경제통계시스템)

하지만 현상을 좀 더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살펴볼 통계는 예컨대 지난번 이 블로그에 올린 ‘그래프 몇 개와 암울한 현실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살펴본 몇몇 가계소득의 질적 측면일 것이다. 생산성 증가추이 대비 노동소득을 광공업 분야 노동자가 가져온다 하더라도 기업과 가계의 가처분 소득 증가율, 고용의 질, 물가 대비 임금상승(또는 복지수준) 등도 살펴야 한다.


‘최근 소비부진 원인 진단 및 시사점’(삼성경제연구소)에서 재인용

이렇듯 최근 가계소득의 질적/양적 상황은 좋지 않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내수는 부진해지고 장래에 수출 감소 등으로 줄어들 GDP를 내수가 받쳐주지 못하여 생산도 부진해지는 악순환이 초래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함에도 사측은 근로시간이 줄면 소득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임금조건의 변화는 결국 “노동의 협상력”임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유지수 국민대 총장은 [중략] “자동차산업의 경우 근로시간 단축으로 자동차 생산 1대당 노동비용이 상승해 기업 경쟁력 하락이 우려된다”며 “독일 폭스바겐의 기세가 강해지고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권토중래를 꾀하는 상황에서 국내 자동차업계의 기업경쟁력 하락은 한창 상승세를 타고 있는 자동차업체가 황금의 기회를 상실하는 것” [중략] 이동응 경총 전무는 “폭스바겐은 임금보전 없는 근로시간 단축에 합의해 일자리 나누기에 성공했으나 우리 노동계는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감소를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근로시간 줄면 임금 낮춰야” vs “소득 감소는 안돼”]

혹자는 노동시간과 임금에 관해서 대기업과 대기업 정규직 노조 간에 암묵적인 합의가 존재한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즉, 기업은 근로시간 연장을 통해 생산량을 증대하고 싶은 욕심이 있고, 노조는 어차피 야근이 불가피하다면 이에 대한 수당을 확실히 챙겨 실질임금을 더 높인다는 분석이다. 그러므로 근로시간 단축은 노동자에게도 좋지 않다는 것이다.

개연성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그것은 일부 대기업 노조의, 어쩌면 더 수혜 받고 있는 노동자들의 이해관계일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 중 상층부가 기업과 이런 이해관계에 얽혀 있다면 조직화되지 않은 대다수 노동자는 이런 수혜에서 배제되고 있다. 따라서 임금하락 없는 근로시간 단축이 노동자의 이해관계와 내수활성화, 나아가 총자본의 이익에 부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