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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주의, 임금, 그리고 사회적 가치

많은 비(非)산업부문 일자리들에 부과된 낮은 일자리들에 부과된 낮은 지위는 대체로 부당하다고 할 수 있다. 그 원인 중 일부는, 사회적으로는 유익하지만 임금은 형편없는 일자리들에 대해 우리가 키워온 혐오에서 비롯된다. 이는 실력주의(meritocracy)라는 신흥 종교의 부산물로, 한 사람의 사회적 지위는 의당 그의 ‘실력’(merit)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문제는 ‘실력’이라는 것을 어떻게 정의하느냐다. 신경제학재단(NEF) 싱크탱크는 2009년 여러 직업들의 사회적 가치를 비교하는 보고서를 펴냈다. 병원 청소부들은 일반적으로 최소임금을 받는다. 그러나 NEF가 계산한 바에 따르면, 청결과 위생을 유지하고, 넓은 의미의 건강을 생산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들은 1파운드를 받을 때마다 10파운드 이상의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셈이다. [중략] 이 싱크탱크가 똑같은 모델을 런던 금융가의 은행가에게 적용해보았더니, 그곳의 금융활동이 초래한 손실을 고려할 경우, 그들은 임금으로 1파운드를 받을 때마다 7파운드에 달하는 사회적 가치를 파괴하는 것으로 평가되었다.[오언 존스, 차브 영국식 잉여 유발사건, 북인더갭, 2014년, pp234~235]

경제자유주의자에게 ‘과연 우리가 “사회적 가치”에 부합하는 임금을 받고 있는가? 혹은 그에 부합하는 사회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그는 그 질문의 우매함을 비웃을 것이다. 일단 그는 “사회적 가치”의 존재 여부에 회의적일 것이고, 만약 그것이 존재한다면 그 가치는 시장에서 가격이 결정해줄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NEF(the New Economics Foundation)는 이런 통념에 반기를 들고 가격과 가치가 일치하지 않다고 말한다. 아마 조직의 이름도 그러한 의미에서 “새로운 경제학”이라 지었을 것이다.

사회적 투자수익률(SROI : Social Return on Investment)는 사회적, 환경적, 그리고 경제적 결과물을 이해하고 측정하고 보고하는 과정이다. SROI 비율은 금융적 조건에서 창출된 사회적이고 환경적인 영향의 가치를 보여준다. 이 과정은 투자비용에 대한 사회적 가치(social benefit)를 가늠하게 해준다.[Investing For Social Value : Measuring Social Return on Investment for the Adventure Capital Fund, NEF, 2008년, p6]

NEF가 2008년 내놓은 보고서의 이 문장을 통해 NEF가 말하는 “사회적 가치”가 어떠한 특징을 가지는 지를 어렴풋하게나마 살펴볼 수 있다. 그들이 말하는 사회적 가치는 특정 노동이나 서비스, 또는 투자에 대한 ‘사회적(동어 반복적이지만), 환경적, 경제적 영향 혹은 결과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NEF는 이러한 기준에 따라 병원 청소부와 은행가가 창출하는 각각의 사회적, 환경적, 경제적 영향을 평가한 후 – 각각의 인자도 결국 가격으로 측정되었을 것이다 – 이를 그들이 받는 임금으로 나누는 방식으로 임금 단위당 사회적 가치를 평가했을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의 노동이 다른 이들을 이롭게 하지만 – 일단 환자에게 청결이란 필수요소니까 – 대규모 경제적 손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희박한 청소부의 사회적 가치는 높게, 그리고 그들의 노동이 사회적, 환경적으로 이로운지에 대한 판단이 애매한 – 일례로 산림을 파괴하지만 화석연료 사용을 줄여주는 풍력발전 투자는 환경적으로 이로운가? 해로운가? – 경제위기 당시 대규모 경제손실을 초래한 은행가의 사회적 가치는 낮게 측정되었을 것이다. 결국 환원적으로 ‘사회적/환경적 인자의 정확한 가치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남는다.

사회적 가치로 임금이나 사회적 지위의 높고 낮음을 판단하는 방식이 불충분한 것은 사실이지만 현존하는 여러 방식도 저마다의 결함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례로 임금협상을 할 때에 흔히 사측이나 노측이나 노동생산성 증감률을 임금협상의 기준으로 삼으려 한다. 하지만 노동생산성은 엄밀한 의미에서 노동이 한 사회의 생산에 기여한 정도라기보다는 한 사회의 GDP를 개별 노동으로 나눈 산술적인 수치로 봄이 타당하다. 최근 인당 노동생산성보다 노동시간당 노동생산성이 더 타당하다는 연구도 있지만 여전히 노동생산성의 한계는 존재한다.

결국 임금은 오언 존스도 지적했듯이 실력주의라는 “신흥 종교”의 – 사실 오래된 종교다 – 편견이 빚은 결과물이라 여겨진다. – 이 종교에 칼 맑스마저 다소간 경도되어 있는데 숙련노동과 비숙련노동의 가치 차이가 있다는 뉘앙스가 그것이다 – 에르메스 핸드백의 눈 튀어나오는 가격을 소비자가 수용하는 것처럼 이 사회는 아직도 골드만삭스의 투자은행가가 병원 청소부보다 더 실력이 있고, 결과적으로 사회에 더 이로워 돈을 더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NEF의 시도는 그런 종교적 신념에 저항하는 새로운 종교 – 혹은 과학? – 일 것이다.

정부의 사내유보금 과세를 통한 경기활성화 대책에 대하여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13일 “적정 수준을 넘어서는 사내 유보금에 법인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마련해 하반기 발표할 경제정책 방향에 반영할 예정”이라[중략]고 밝혔다. 이는 특히 최경환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후보자[중략]는 지난 8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가계 부채와 내수 부진 문제의 해결은 궁극적으로 가계의 가처분 소득을 늘리지 않고는 어렵다”며 “기업이 투자와 배당, 임금 등을 늘려서 가계 쪽으로 자금이 흐를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기업이 쌓아둔 현금에 과세 추진, 한국경제, 2014년 7월 14일]

일단 최경환 경제부총리 후보자의 문제인식은 바람직해 보인다. 현재의 내수침체형 경제 상황은 가계의 가처분 소득을 늘이지 않고서는 뚜렷한 탈출구를 찾을 수가 없는 상황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한편 그의 해법은 기업이 가지고 있는 자금이 가계 쪽으로 흐르게 하겠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경제부총리 후보자의 이러한 문제인식을 바탕으로 “적정 수준을 넘어서는 사내 유보금에 법인세를 부과”하는 것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보금에 과세하면 투자, 배당, 임금 등으로 지출을 할 것이라는 심산이다.

이에 대해 “자유경제”를 신봉하는 의견그룹에서는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난 16일 자유경제원이 주최한 사내유보금 과세에 관한 토론회에서 김영용 전남대 교수는 “사내유보금 과세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택한 대한민국 정체성에 정면 배치된다”고 주장하였다고 매일경제가 보도했다. 이 토론회의 초대장에는 사내유보금 과세가 “기업의 재무구조 악화, 기업경쟁력 약화, 국부유출”의 부작용을 가져올 것이라고 쓰여 있다. 한국경제의 김정호 수석논설위원은 칼럼을 통해 “한심한 발상”이라고 비난했다.

일단 “자유민주주의에 정면 배치”되는 이 세제를 택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 일본, 대만이다. 이들 나라에서 이 정책을 도입한 계기는 현재 우리의 상황과는 약간 다르다. 미국은 ‘조세 회피의 목적’으로 여겨지는 적정 이상의 유보금에 대해 과세하고 있다. 일본은 1950년 미일강화조약 체결 준비를 위한 ‘일본세제보고서’의 권고에 따라 신설된 세금이다. 따라서 미국의 과세의도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대만은 미배당이익으로 증자나 생산설비에 투자할 경우 과세를 하지 않으므로 투자유도의 성격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역시 1968년부터 2001년까지 지상배당소득세 과세, 유보이익잉여금 증가분에 대한 의제배당소득세 과세, 적정유보최고소득에 대한 법인세 과세 등 유사한 세금들이 계속 유지하였다. 특히 1990년부터 2001년까지 유지된 세금이 가장 직접적인 과다한 사내유보금에 대한 세금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자유경제원의 입장에서 “자유민주주의에 정면 배치”되는 이 시기가 끝나고 난 후 기업의 사내유보금은 극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이런 경향은 과세의 폐지 및 경기의 장기침체로 인한 보수적 기업운영이 원인일 것이다.

국내 전체기업의 사내유보율1 현황(1990~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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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 한국은행 [기업경영분석]

과세로 인해 기업이 사내유보금을 줄일 경우 용처는 크게 배당확대, 임금상승, 투자확대 등 세군데다. 그런데 국회예산정책처의 실증분석 결과2 사내유보금 과세에 대한 투자확대 효과는 거의 없는 것으로 분석됐다.3 그렇다면 배당과 임금인데 어느 쪽의 비중이 높아지느냐에 따른 소득불평등 문제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주주 자본주의 성향이 강하고 노조조직률이 낮은 우리나라에서 배당증가로 이어질 개연성이 클 것으로 짐작된다.4 그렇다면 과세보다는 세액공제와 같은 정책유도가 더 바람직할 수도 있다.

요컨대 기업의 사내유보금 과세의 출발점은 투자 활성화라기보다는 조세 회피적 행위 방지다. 실용적으로 과세 목적을 정할 수는 있을 것이나 악화되고 있는 노동시장이나 복지 빈곤에 직접 메스를 대기 보다는 기업의 추렴으로만 경기를 부양시키려는 시도는 그 효과가 의심스럽다. 더불어 재무상태표 상 자본계정에 해당하는 이익잉여금에 과세하는 것이 말이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한편 그 과세가 정말 “자유민주주의나 시장경제에 배치”되는 것인지도 의심스럽다. 그렇다면 기업의 조세회피는 시장경제에 부합하는 행위일까?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상승이 우리 청년의 탓”이라는 KBS 보도에 대하여

내국인 근로자가 힘든 일이라며 취업을 기피하다 보니 고임금을 주고라도 외국인 근로자를 쓸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2백만 원 이하를 받는 외국인 근로자 수는 줄고 2백만 원 이상 받는 근로자 수는 크게 늘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임금은 빠르게 상승하고 있지만 3D 업종의 중소기업들의 경우, 사람 구하기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정부는 청년 일자리를 위해 외국인 산업연수생 수를 2만 4천 명 줄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청년들은 양질의 일자리만을 고집해 결국 외국인 근로자의 임금만 올라가고 있습니다.[값싼 외국인 노동자 ‘옛말’… 월 400만 원!, KBS 뉴스, 2014.4.16.]

“우리 청년들의 3D업종 기피 현상” 운운은 꽤 오래된 레퍼토리다. 그런데 이 보도는 그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우리 청년들이 “양질의 일자리만을 고집”해서 외국인 근로자의 임금만 올라가고 있다는 상관관계까지 도출하였다. 좀 더 이 논리를 확대해보자면 결국 ‘우리 청년들이 양질의 일자리만 고집하지 말고 3D업종에 취업하였으면 3D기업의 일자리 부족현상이 일어나지 않고 외국인 근로자에게 쓸데없는(!) 고임금을 지불할 필요가 없었다’는 논리일 것이다. KBS는 이 논리를 뒷받침하기 위해 그럴듯한 통계자료까지 제시했다.


출처 : KBS 트위터

통계자료의 진위여부는 국가통계포털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KBS가 제시한 자료는 해당 포털에서 올라온 ‘월평균 임금수준/성별 임금근로자’ 현황을 가공한 자료였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2012년과 2013년 사이에 월평균 200만원 미만을 버는 외국인 노동자는 4만6천명 감소한 반면, 200만원 이상을 버는 외국인 노동자는 2만2천 명 늘었다. 감소한 절대숫자는 정부가 줄인 산업연생 수와 일치한다. 과연 KBS의 보도대로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이 상승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문제는 임금상승의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월평균 임금수준별 취업자수(단위 : 천명)

구분 2012년 2013년 증감 증감률
100만원 미만 52 42 -10 -19.2%
100만원~200만원 미만 519 483 -36 -6.9%
200만원~300만원 미만 143 159 16 11.2%
300만원 이상 45 51 6 13.3%

출처 : 국가통계포털

KBS는 ‘우리 청년이 양질의 일자리를 고집하는 것’이 원인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즉, 3D 노동시장에 우리 청년이 참여하지 않아 노동수요가 늘고 임금이 오른다는 논리다. 하지만 KBS는 이 둘의 상관관계에 대한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임금상승의 주범으로 ‘우리 청년’을 겨냥했으면 마땅히 그 근거자료도 제시해야 하는데도 말이다. 한편, 통계적으로 그 원인을 찾고자 하였으나 만만한 작업은 아니었다. KBS의 제시자료가 2012~2013년 자료인데 여타 노동관련 자료는 최신 데이터가 2012년까지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외국인 노동자의 노동현황에 대한 각종 자료는 2013년까지 정리되어 있어서 다양한 원인 중에 우선 외국인 노동자의 노동시장 내부를 훑어볼 수는 있었다. 우선 살펴볼 것이 ‘직업별 취업자 현황’이다. 비임금근로자까지 포함한 자료이긴 하지만 유의미한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데 통념과 달리 전문가, 사무종사자 등의 소위 화이트칼라 외국인 노동자수가 늘고 있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 반면 기능원ㆍ기계조작 및 조립종사자는 동기간 4만6천명이나 감소했다. 흥미롭게도 줄어든 200만원 미만의 월급 노동자 숫자와 일치한다.

직업별 취업자수(단위 : 천명)

구분 2012년 2013년 증감 증감률
관리자, 전문가 및 관련종사자 91 93 2 2.2%
사무종사자 20 24 4 20.0%
서비스ㆍ판매종사자 87 87 0 0.0%
농림ㆍ어업숙련종사자 24 23 -1 -4.2%
기능원ㆍ기계조작 및 조립종사자 330 284 -46 -13.9%
단순노무종사자 239 250 11 4.6%

출처 : 국가통계포털

또 하나의 변수를 살펴보자면 ‘근속기간별 취업자 현황’과 ‘한국에서의 동일직업 근무기간별 취업자 현황’이다. 두 통계 공히 2년 이상의 장기취업자 수가 많이 늘어났다. 이는 외국인 노동자의 취업현황이 단순한 산업연수생의 미숙련노동에서 취업기간이 긴 노동자의 숙련노동 위주로 변하고 있음을 의미할 것이다. 그렇다면 해당 노동자의 임금이 상승하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동기간 우리나라 전체의 제조업과 건설업의 상용월급여액은 각각 3.7%, 6.5% 상승했다. 임금의 자연적 상승요인도 있다는 의미다.

근속기간별 취업자수(단위 : 천명)

구분 2012년 2013년 증감 증감률
6개월 미만 192 159 -33 -17.2%
6개월~1년 미만 163 130 -33 -20.2%
1~2년 미만 228 208 -20 -8.8%
2~3년 미만 101 112 11 10.9%
3년 이상 107 150 43 40.2%

출처 : 국가통계포털

한국에서의 동일직업 근무기간별 취업자수(단위 : 천명)

구분 2012년 2013년 증감 증감률
6개월 미만 88 72 -16 -18.2%
6개월~1년 미만 111 100 -11 -9.9%
1~2년 미만 206 176 -30 -14.6%
2~3년 미만 114 130 16 14.0%
3년 이상 271 282 11 4.1%

출처 : 국가통계포털

요컨대, 외국인 노동시장은 3D업종의 저임금 노동자 일색일 것이라는 통념과 달리 점차 사무직, 전문직 종사자의 수도 늘고 있는 상황이며, 산업연수생 제도 등에 의해 노동력이 공급되는 기능원 등의 미숙련노동은 일시적으로 크게 감소하였다. 그와 함께 근속기간은 유의미한 증가율을 보이고 있어 이것이 임금의 자연적인 상승분과 함께 임금상승의 주요원인일 수 있음을 짐작케 한다. 그렇다면 과연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상승은 KBS의 주장처럼 우리 청년의 3D기피 때문일까? 외국인 근속연수가 우리 청년 때문에 느는 것인가?

KBS의 보도가 안타까운 이유는 밑에 깔고 있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종주의적인 뉘앙스 때문이다. 잔업까지 포함해서 3백9십만 원을 받고 있는 고소득(?!) 외국인 노동자의 사례를 가지고 우리 청년들의 게으름을 비난하면서 동시에 외국인에게 주지 않아도 될 고임금을 준다는 그 주장이 담고 있는 시각이 인종주의적 시각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 있는가? 외국인이 되었든 내국인이 되었든 받아야 할 정당한 임금을 받고 있다면 환영할 일이다. KBS는 우리 청년이 3D시장에 어서 편입되어 임금이 하향평준화 되는 세상을 바라는 것일까?

노동생산성과 임금의 상관관계, 그리고 경제에의 영향에 대한 단상

시계열적으로 생산성 대비 임금이 연동되어야 한다는 아이디어에는 크게 이견이 없으나, 개인적으로 이러한 사고의 저변에는 최초에 책정된 노동임금이 생산에 대한 올바른 몫을 제공하면서 시작되었다는 뉘앙스를 담고 있는 것 같아 그리 탐탁지는 않다. 그러함에도 생산성 대비 임금 변화 추이를 관찰하는 것은 경제의 큰 그림을 그리는데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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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 홈페이지에서 재인용

위 표에서도 보듯이 1947년 이후 미국경제에서의 비농업 분야의 임금은 생산성 향상 추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근사하게 접점을 찾아가던 생산성 증가와 임금 증가 추이는 1980년 언저리를 기점으로 만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신용위기 이후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것으로 관찰된다. 경제위기를 틈타 기업이 노동조건을 악화시킨 결과일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어째서 임금-생산성 갭이 확대되고 노동을 통한 소득이 감소하는지에 대한 세 가지 장기적인 요소들을 규명하였다. 첫째는 노동시장 정책의 변화와 보다 조직화된 부문의 감소로 인한 노동의 협상력 감소를 들 수 있다. 다른 요소로는 증가하는 세계화와 무역개방인데, 이로 인해 상대적으로 노동집약적인 부문들이 발달된 경제에서 신흥 경제 쪽으로 이전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발달된 경제에 남겨지는 부문은 상대적으로 덜 노동집약적이고 노동의 평균 비중은 줄어들게 된다. 세 번째 요소는 정보 및 통신기술의 개선과 관련한 기술변화인데, 이로 인해 여가분의 생산성이 증가하고 노동에 대한 보상에 비해 자본에 대한 보상이 늘어나는 것이다.[Behind the Decline in Labor’s Share of Income]

왜 이러한 결과가 초래되었는지에 대한 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의 리서치 분석가의 분석이다. 언뜻 어느 진보적인 논문에서나 들을 수 있을 법한 분명한 톤이다. 노동의 협상력 감소, 세계화, 기술변화 등 세 가지 요인이 임금조건 악화의 주요원인으로 지목될 수 있다는 것인데, 앞서 두 가지는 진보진영에서 꾸준히 자본주의의 모순으로 지적하고 있는 문제다.

한편, 우리나라의 경우 동일한 경향을 파악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 유의미한 자료조사는 1999년경부터 축적되고 있어서 아직 시계열적 분석에는 무리가 따른다고 여겨진다. 조사범위나 분류도 다소 혼란스러워 분석의 적확성 여부를 판단하기에도 좀 망설여지지만, 여하튼 1999년 이후 광공업의 부가가치 노동생산성과 임금추이는 얼추 조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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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1~2010.4 광공업 평균 상용임금 변화 추이(출처 : 한국은행경제통계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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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1~2010.4 광공업 부가가치 노동생산성 지수 변화 추이(출처 : 한국은행경제통계시스템)

하지만 현상을 좀 더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살펴볼 통계는 예컨대 지난번 이 블로그에 올린 ‘그래프 몇 개와 암울한 현실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살펴본 몇몇 가계소득의 질적 측면일 것이다. 생산성 증가추이 대비 노동소득을 광공업 분야 노동자가 가져온다 하더라도 기업과 가계의 가처분 소득 증가율, 고용의 질, 물가 대비 임금상승(또는 복지수준) 등도 살펴야 한다.


‘최근 소비부진 원인 진단 및 시사점’(삼성경제연구소)에서 재인용

이렇듯 최근 가계소득의 질적/양적 상황은 좋지 않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내수는 부진해지고 장래에 수출 감소 등으로 줄어들 GDP를 내수가 받쳐주지 못하여 생산도 부진해지는 악순환이 초래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함에도 사측은 근로시간이 줄면 소득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임금조건의 변화는 결국 “노동의 협상력”임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유지수 국민대 총장은 [중략] “자동차산업의 경우 근로시간 단축으로 자동차 생산 1대당 노동비용이 상승해 기업 경쟁력 하락이 우려된다”며 “독일 폭스바겐의 기세가 강해지고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권토중래를 꾀하는 상황에서 국내 자동차업계의 기업경쟁력 하락은 한창 상승세를 타고 있는 자동차업체가 황금의 기회를 상실하는 것” [중략] 이동응 경총 전무는 “폭스바겐은 임금보전 없는 근로시간 단축에 합의해 일자리 나누기에 성공했으나 우리 노동계는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감소를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근로시간 줄면 임금 낮춰야” vs “소득 감소는 안돼”]

혹자는 노동시간과 임금에 관해서 대기업과 대기업 정규직 노조 간에 암묵적인 합의가 존재한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즉, 기업은 근로시간 연장을 통해 생산량을 증대하고 싶은 욕심이 있고, 노조는 어차피 야근이 불가피하다면 이에 대한 수당을 확실히 챙겨 실질임금을 더 높인다는 분석이다. 그러므로 근로시간 단축은 노동자에게도 좋지 않다는 것이다.

개연성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그것은 일부 대기업 노조의, 어쩌면 더 수혜 받고 있는 노동자들의 이해관계일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 중 상층부가 기업과 이런 이해관계에 얽혀 있다면 조직화되지 않은 대다수 노동자는 이런 수혜에서 배제되고 있다. 따라서 임금하락 없는 근로시간 단축이 노동자의 이해관계와 내수활성화, 나아가 총자본의 이익에 부합할 것이다.

그래프 몇 개와 암울한 현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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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의 장기 내수부진 현상의 원인과 시사점’(산업연구원)에서 재인용

우리나라의 가계소득과 기업소득의 변화추이에 관한 그래프다. 외환위기를 전후하여 기업과 가계 간에 불평등이 심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용한 보고서는 이러한 불평등 심화로 말미암아 내수가 부진하다고 진단하고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한 개선책으로 보고서는 ▲ 비정규직 확대 억제 ▲ 소상공인 지원정책 강화 ▲ 조세체계 검토 등을 제안하고 있다. 그러면 현실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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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통계청 자료를 재구성(단위 : 전년대비, 만개)

취업도 용이하지 않거니와 그나마도 그래프에서 보는 것처럼 고용의 질이 좋지 않다. 새로이 창출되는 고용이 1주당 36시간 미만의 일자리에 집중되어 있고 연령상으로는 고령자의 고용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고용이 저임금, 비정규직, 비전문적 분야에 집중되고 있을 개연성을 말해주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결국 임금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최근 소비부진 원인 진단 및 시사점’(삼성경제연구소)에서 재인용

인용한 SERI의 보고서는 이에 대한 대책으로 금리 등 거시정책 수단보다는 “미시적 차원에서 필수적 소비지출 품목의 물가를 안정시켜 서민가계의 부담 완화를 유도”해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미시적 차원의 이러한 접근은 소위 “MB물가지수”의 관리실패에서도 보듯이 미봉책으로는 성공하기가 어려운 정책이다. 게다가 일단 고용정책, 금리정책 등의 근본적 처방이 우선해야 할 것이다.

기업과 가계 간 불평등 심화, 고용의 질 하락, 물가상승, 내수부진 등이 우리 앞에 놓인 벽이다.

청산(liquidation)의 계급차별성

이번 위기 해법의 어려움은 사실 서로 모순된 해법들이 결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섣부른 청산은(바하문트님의 다음 글 참조) 대공황처럼 견디기 어려운 침체를 지속시킬 것이므로 지양하여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는 거품이 끼어있는 자산을 청산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자산의 거품을 걷어내지 않으면 투자에 따른 자산가치 증가를 기대하기 어렵기에, 앞서 글에서의 risk taker는 찾아보기 힘들게 된다. 시장에서 hedger만 있고 risk taker가 없으면? 시장은 존재할 수 없다.

“급격한 청산을 지양하되, 결국에는 청산되어야 한다.”

이 교묘한 줄타기가 관건이다. 그 줄타기 중 하나가 미 행정부의 금융기관 및 자동차 기업들에 대한 조치이다. 사유화되어 있는 기업들의 흥망성쇠는 시장에 맡겨야 하는 것이 여태까지의 게임의 법칙이었지만 – 사실 고지식하게 잘 지켜졌는지는 의문 – 그 기업들의 사회적 중요성을 감안할 때에는 생존시켜야 하는 딜레마, 시장의 거품을 정부의 거품으로 막을 경우 정부 부실화 우려에 대한 딜레마가 공존하고 있다. 결국 터트릴 것을 터트려야 하는데 망하게 할 것이냐, 정부지원 또는 국가가 인수할 것이냐가 그나마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다.

개인적으로는 주요국가가 금융기관을 포함한 주요기업들을 국유화하여 빅딜의 형태로 부채들을 상쇄시키는 등 청산해버리는 것이 해법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국가간 계급간 이해관계가 다른 부르주아 자본주의 시스템의 특성상 그러한 대타협이 쉽사리 이루어지겠는가 하는 것도 의문이고 그것을 기존 주주들, 노동계급들이 저항 없이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것도 의문이다.

한편 우리나라는 어떠한 형태로 가치청산 vs 가치온존의 딜레마가 진행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그것은 다른 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게 계급 차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모양새는 더욱 조악해서 눈에 거슬리기도 한다. 일단 주로 자산계층에 피해가 편향될 부동산 자산가치 하락에 대해서는 정부에서 안쓰러울 정도로 방패막이를 해주고 있다. 반면 노동계급에게 피해가 갈 임금삭감 또는 동결 – 실질적으로 임금가치에 대한 부분적인 청산 – 은 폭력적으로 관철되고 있다. 요컨대 자본의 이익률은 매출의 상승이 아닌 비용의 하락을 통해 보전해주는 꼴이다.

소통이 없는 우리나라의 ‘일자리 나누기’

일본경제신문은 일본 기업 단체(일본 경제단체 연합회, 이하 경단련)와 노조단체(일본 노동조합 총연합회, 이하 연합)의 양자간에 근로자의 노동시간을 단축하여 고용을 유지하는 잡셰어링의 도입을 위한 논의를 재개하고 있다고 보도(1/8)[최근 일본의 Job Sharing 도입 논의와 전망, 한국은행 해외조사실, 2009. 2.21, p2]

이 부분을 보면 우리나라나의 일자리 나누기와 일본의 그것의 근본적인 차이를 알 수 있다. 1) 우리나라는 임금을 깎아서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발상이고 일본은 노동시간을 단축하여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발상이다. 2) 우리나라는 정부가 하향식으로 공공기관의 임금을 강압적으로 깎는 방식이고 일본은 노사간의 논의를 통한 방식이다. 네덜란드, 프랑스 등 여타 국가도 일본과 진행양상이나 추진방식은 매한가지다.

물론 일본에서의 일자리 나누기 추진현황이 반드시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무조건적으로 따라할 수 없는 특수상황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예나 다른 나라의 예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공통의 보편적인 원칙은 바로 이해당사자 간의 소통이다. 일자리 나누기는 첨예한 이해관계가 대립될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다. 그러나 그 현장에 여태 그래왔던 것처럼 소통은 찾아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