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스왑

그리스, 파생상품, 유로스타트, 그리고 골드만삭스

그리스의 경우에 미국의 은행가들은 가상의 환율을 통한 특수한 종류의 스왑을 고안해냈다. 이를 통해 그리스는 100억 달로 또는 엔에 해당하는 실질적인 유로의 시장가치를 훨씬 초과하는 금액을 수취할 수 있었다. [중략] 일종의 스왑을 가장한 이러한 신용은 그리스의 부채 통계에 나타나지 않았다. [중략] 때가 되면 그리스는 그들의 스왑 계약들을 상환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에는 재정적자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채권의 만기는 10년에서 15년까지이다. 골드만삭스는 이 계약들에 대해 천문학적인 커미션을 받았고 2005년 한 그리스 은행에 이 스왑 들을 팔았다.[How Goldman Sachs Helped Greece to Mask its True Debt]

일반인에게는 그리 익숙하지 않은 이러한 파생상품 거래가 오늘날 지구촌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그리스의 경제위기의 한 국면에서 주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이미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교묘한 스왑 조건이 담긴 이 거래 등을 통해 그리스는 부채를 기술적으로 감출 수 있었고, 이에 따라 그리스는 엄격한 재정요건을 요구하는 마스트리히트 조약의 조건을 충족시켜 유로존에 가입할 수 있었다. 그후 그리스의 신용도는 비정상적으로 상승하였고 종국에는 갚지 못할 엄청난 돈을 서구 은행으로부터 차입할 수 있었다.

Loudiadis의 지시를 통해 골드만은 그리스가 발행한 채권이 실제의 금액보다 적어보이도록 역사적인 환율로 책정된 달러나 옌과 스왑을 행하였다. 보도된 바에 따르면 이 스왑들을 통해 그리스는 국민 계정에서 약 2%의 부채를 사라지게 했다. [중략] Christoforos Sardelis는 블룸버그 뉴스 에이전시에게 Loudiadis가 소위 “맛보기 이자율(teaser rate)”이라 알려진 스왑 또는 3년의 거치기간을 제안했다. 그러나 그리스의 관리는 3개월 후에 이 거래가 그가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Greek debt crisis: Goldman Sachs could be sued for helping hide debts when it joined euro]

이 기사를 통해 거래의 대강을 짐작할 수 있다. 즉, 그리스는 국채를 역사적으로 매우 유리한 조건으로 달러 등과 스왑 또는 3년 동안 비용 없이 발행한다. 그렇게 되면 달러와 같은 기축통화로 계산되는 재정상황에서 부채는 과소평가된다. 그러면 거래상대방은 이 기간에 발생한 손실을 언제 보충할까? 아마 남은 기간에 할증된 거래조건으로 되받게 될 것이다. 필시 더 좋은 환율에 기간 동안 발생한 이자까지 포함해서 받았을 것이다. 어쨌든 그리스는 유로존에 가입하게 되었고, 채권자는 좋은 조건에 채권을 인수했고, 골드만삭스는 거래를 성사시켜 주면서 막대한 수수료를 받았다. 모두 다 행복한 시기였다.

룩셈부르크에 위치한 유럽 통계청 유로스타트(Eurostat)는 오프마켓스왑(off-market swaps)을 통해 부채의 표면상의 크기를 줄이려 했던 그리스 재정부의 시도를 알지 못했다고 다시 한 번 밝혔다. 그러나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그리스의 골드만과의 거래는 유로스타트의 2002 회계 기준의 청사진과 유사하다. [중략] 2002년 전에는 이러한 거래는 유럽의 회계원칙에서 회색지대에 속했다. [중략] 2002년 5월 ESA95 회계원칙의 발표는 피가의 우려에 대한 명백한 답변이었는데, 그러한 거래를 허용하는 한편 국가채무의 표면상으로 어떻게 줄여서 산정할 수 있는 지에 대한 용례를 제공하였다.[Eurostat rules described ‘Greek-type’ swap]

한편 이러한 거래의 합당성 여부를 감독해야 할 유로존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인용기사에 의하면 유로스타트는 2002년 회계원칙 발표를 통해 회색지대에 속했던 해당 거래의 모호함을 제거하는데 기여했다. 한편 앞서 인용한 인디펜던트의 보도에 따르면 유로스타트는 이러한 거래를 2008년에야 금지시킨다. 하지만 유로스타트에 주장에 따르면 그리스는 이때에도 해당 거래 사실을 유로스타트에 보고하지 않았다. 결국 적어도 2008년까지는 부채를 축소산정하기 위한 파생상품 거래는 회색지대에 머물러 있거나 정당하였고 2008년 이후 그리스의 보고의무 해태가 문제시될 수 있다는 잠정적 결론에 이르게 된다.

2009년 Ethos는 포르투갈의 국유 철도/지하철 기업인 Metro do Porto와 협업하기 위한 계약을 따낸다. 계약들과 관련한 의회 조사국에서 발간한 문서에 따르면 Jabbour 씨의 임무는 1억2천6백만 유로에 대한 이자율 리스크를 관리하려는 목적이었지만 그 대신 다른 포인트에서 당초의 대출 자체보다도 훨씬 더 큰 손해를 초래한, 골드만삭스 및 노무라와 맺은 한 쌍의 상쇄 파생상품 계약을 해소하기 위함이다. 당시 골드만과 노무라는 Metro do Porto에게 계약의 동일한 요소를 취소하려면 2천6백만 유로가 소요된다고 말했다. Jobbour 씨는 이들을 재구조화하여 골드만과 노무라에 그 돈을 지불하는 대신 거래의 상쇄 부문을 최소하는 대가로 Metro do Porto가 거의 2천만 유로를 벌어들이게 하는데 도움을 줬다. [Banker in Middle of Fight Between Goldman Sachs and Libya]

Jaber George Jabbour는 Ethos 캐피털 자문사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2008년에 골드만삭스에서 잘렸다.(또는 자발적으로 사퇴했던지) 이후 그는 “은행들이 스왑 같은 복잡하고 구조화된 거래에서 공공기관을 우롱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공공기관에 도움을 주는 자문사를 차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 결과 인용기사처럼 포르투갈의 국유기업이 투자은행에 돈을 무는 대신 오히려 돈을 벌며 계약을 해소하게끔 해주었다. 그런데 인디펜던트의 기사에 따르면 바로 이 사람이 그리스의 구원투수를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모두가 행복했지만 파국을 몰고 왔던 이 거래에서 과연 골드만은 어떤 비용을 치를지 자못 궁금하다.


골드만삭스가 유럽 금융계를 어떻게 지배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그림(출처)

세계 경제 위기 : 한 마르크스주의자의 분석 (4)

다음은 사회주의평등당(the Socialist Equality Party) 호주지부의 국가서기인  Nick Beams가 2008년 11월과 12월에 걸쳐 호주 여러 도시에서 가졌던 강의를 요약 발췌한 내용이다. 번역이 일치하지 않은 점이 있을 수 있으니 주의를 바란다.

1971년 브레튼우즈의 몰락으로 말미암아 세계 화폐 시스템의 안정적인 닻이라 할 수 있는 달러의 역할이 끝을 맺었다. 또한 어떠한 일개 국가의 화폐도 그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1970년대 새로운 화폐운동으로부터 발생되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새로운 메커니즘이 개발되었다. 금융 파생상품이 발달하기 시작한 것이다.

파생상품은 금융계약이나 금융장치, 어떠한 임의의 것의 가치로부터 파생되는 가치로 규정된다. 파생상품은 오랜 기간 존재하여 왔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선물계약(futures contracts)이다. 금융 파생상품은 새로운 개발품이다. 물리적인 상품이 아닌 돈과 다른 금융자산에 연계된다. 1972년에 화폐 선물 시장이 시카고 선물거래소(Chicago Mercantile Exchange)에서 열리게 된다. 이 시장에서 금융기관, 수입업자, 수출업자 등이 환율변동을 헤지(hedge)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환율 선물은 다음 기간 개발될 수많은 금융 파생상품의 한 종류일 뿐이었다.

1973년 피셔 블랙(Fischer Black)과 마이런 숄즈(Myron Scholes)가 가격 옵션의 공식을 개발하면서 더욱 발전하게 된다. 어떤 선물 거래는 참여자들을 구매와 판매의 역할로 국한시키는 반면 옵션은 일종의 보험과 같은 것이다. 프리미엄을 지불하는 대가로 그것은 구매자에게 특정시기에 일정한 가격으로 자산을 사거나 팔 수 있는 권리를 준다. 만약 가격이 예측한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옵션은 가치가 없고 구매자는 프리미엄만을 손해볼 것이다. 1973년 시카고 옵션거래소(the Chicago Options Exchange)가 문을 연다.

옵션은 큰 이익을 낼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한다. 어떤 구매자가 6개월 후 50달러의 주식을 살 수 있는 옵션을 산다. 옵션의 가격은 5달러다. 100주에 대한 가격은 500달러다. 6개월 후 주가가 60달러가 되었다고 가정하자. 구매자는 옵션을 행사하고 5달러의 주당이익을 얻을 것이다. 총이익은 500달러가 될 것이다. 수익률은 100%다. 이 구매자가 그냥 주식 100주를 50달러에 사서 6개월 동안 보유했다고 치자. 이익은 1,000달러가 되지만 수익률은 20%다. 옵션의 사용은 더 많은 수익률의 기회를 준다.

반대로 주가가 60달러로 오른 것이 아니라 49달러로 떨어졌다고 가정하자. 옵션 구매자는 500달러를 잃어서 손해율은 100%다. 반면 주식 구매자는 100달러만 잃어서 손해율은 2%에 불과하다. 옵션은 더 큰 기회와 더 큰 위험의 가능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또 다른 타입의 파생상품도 등장했는데 바로 환율 스왑이다. 이어서 고정금리와 변동금리가 상호 교환되는 이자율 스왑도 등장한다. 1990년대 보유자가 채권 지불 실패 위험을 보장하는 신용부도스왑(the credit default swap)이 등장한다. 이러한 계약은 거래소 또는 더 빈번하게 이른바 장외(over the counter) 거래에서 당사자들 간에 이루어졌다.

처음 파생상품은 리스크를 방어하고자 만들어졌으나 곧 투기의 수단이 된다. 그리고 그 성장은 눈부시다. 전 세계 외환거래 계약은 1973년 일 150억 달러, 1980년 일 800억 달러, 1995년 1조2천6백억 달러로 증가한다. 1973년에 이들 계약은 총 상품 및 서비스 거래의 15%를 구성했다. 1995년에는 불과 2%다. 외환거래의 폭발은 무역이 아니라 금융계약의 결과가 되어버렸다. 2008년 6월 OTC 거래에서의 파생상품이 기초하고 있는 자산은 683조7천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전 세계 산출의 10배에 해당한다. 1973년 금융 파생상품은 사실 존재하지도 않았다.

미국 경제의 금융화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로부터 시작된 파생상품의 융성의 계기 이외에 또 하나의 계기가 있는데 무엇보다 미국에서 지난 30여 년간의 축적 양식의 변화로부터 시작된다. 닉슨이 1971년 미 달러의 금태환을 포기한 것은 미국 자본주의의 금융 지배를 유지하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 말 오히려 달러의 가치는 급격히 떨어졌고 이윤은 축소되고 주식시장은 침체에 빠졌고 미국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에 접어들었다. 1979년 10월 폴 볼커가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의장으로 취임한다. 볼커는 인플레이션을 치유하고자 고금리 프로그램을 내놓는다.

“볼커 충격”으로 잘 알려진 이 프로그램으로 금리는 사상 최고로 치닫고 경제는 1930년대 이래로 가장 깊은 침체로 빠져든다. 노동계급은 강하게 저항하였다. 수백만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결과적으로 미국 자본주의의 구조가 변했다. 1865년 남북전쟁 이후 미국경제는 제조업이 이끌었다. 미국식의 생산방식은 가장 효율적이고 이윤이 많은 것으로 증명되어 왔다. 그런데 그것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았다. 볼커의 조치의 핵심은 축적의 새로운 레짐은 금융자본의 확대에 기초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런 새로운 축적양식으로의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1981~1982년의 경기침체 뒤에 느리게 경기가 회복되었다. 주식시장은 1982년이 되어서야 오르기 시작했다. 이 10년은 저축대부조합이 촉발한 위기로 막을 내린다. 소비에트의 붕괴와 중국의 자본주의 세계로의 편입은 세계 자본의 순환에서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이를 통해 금융자본에 근거한 축적양식이 가능해진다.

미국과 다른 주요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력의 1/3에 해당하는 중국의 개방은 노동계급으로부터의 잉여가치 착취의 엄청난 확대를 의미한다. 아이팟을 생산하는 중국 제조공장이 미국에서 290달러에 파는 기계를 만들어주고 받는 돈은 4달러다. 값싼 제조상품은 인플레이션을 방지한다. Fed는 인플레이션 걱정 없이 계속 금리를 낮게 유지할 수 있었다. 값싼 신용이 다양한 자산 거품을 촉발했다. 실질임금의 인상 없이도 소비는 증대했다.(주1)

1982년 금융회사의 이윤은 세후 총기업이윤의 5%를 차지했다. 2007년 그들의 지분은 41%로 증가한다. 지난 시절 부채는 제조업에서 발생했다. 그러나 금융부문의 발전에 따라 부채는 더 많은 금융활동을 위한 금융업에서 발생했다. 자산에 기초한 증권의 매매가 부의 축적의 새로운 방식이 되었다. 경제의 금융화는 생산과정에 대한 적출(extraction)이라기보다는 잉여가치의 전유(專有 ; appropriation)에 가까웠다.(주2)

[원문보기]

 

(주1) 현대 자본주의에 있어 중국의 개방은 대항해 시대의 지리상의 발견에 맞먹는 파급효과를 가져온 셈이다

(주2) 이 문구는 많은 의미를 함유하고 있는데 적출, 즉 착취와 전유 사이의 뉘앙스의 차이를 확실하게 이해하여야 하는 부분이다. 간단히 말해 착취는 노동을 통한 잉여가치를 빼앗는 행위이고 전유는 남이 착취한 잉여가치를 자기의 것으로 재차 착취하는 것에 가깝다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