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파생상품

그리스, 파생상품, 유로스타트, 그리고 골드만삭스

그리스의 경우에 미국의 은행가들은 가상의 환율을 통한 특수한 종류의 스왑을 고안해냈다. 이를 통해 그리스는 100억 달로 또는 엔에 해당하는 실질적인 유로의 시장가치를 훨씬 초과하는 금액을 수취할 수 있었다. [중략] 일종의 스왑을 가장한 이러한 신용은 그리스의 부채 통계에 나타나지 않았다. [중략] 때가 되면 그리스는 그들의 스왑 계약들을 상환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에는 재정적자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채권의 만기는 10년에서 15년까지이다. 골드만삭스는 이 계약들에 대해 천문학적인 커미션을 받았고 2005년 한 그리스 은행에 이 스왑 들을 팔았다.[How Goldman Sachs Helped Greece to Mask its True Debt]

일반인에게는 그리 익숙하지 않은 이러한 파생상품 거래가 오늘날 지구촌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그리스의 경제위기의 한 국면에서 주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이미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교묘한 스왑 조건이 담긴 이 거래 등을 통해 그리스는 부채를 기술적으로 감출 수 있었고, 이에 따라 그리스는 엄격한 재정요건을 요구하는 마스트리히트 조약의 조건을 충족시켜 유로존에 가입할 수 있었다. 그후 그리스의 신용도는 비정상적으로 상승하였고 종국에는 갚지 못할 엄청난 돈을 서구 은행으로부터 차입할 수 있었다.

Loudiadis의 지시를 통해 골드만은 그리스가 발행한 채권이 실제의 금액보다 적어보이도록 역사적인 환율로 책정된 달러나 옌과 스왑을 행하였다. 보도된 바에 따르면 이 스왑들을 통해 그리스는 국민 계정에서 약 2%의 부채를 사라지게 했다. [중략] Christoforos Sardelis는 블룸버그 뉴스 에이전시에게 Loudiadis가 소위 “맛보기 이자율(teaser rate)”이라 알려진 스왑 또는 3년의 거치기간을 제안했다. 그러나 그리스의 관리는 3개월 후에 이 거래가 그가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Greek debt crisis: Goldman Sachs could be sued for helping hide debts when it joined euro]

이 기사를 통해 거래의 대강을 짐작할 수 있다. 즉, 그리스는 국채를 역사적으로 매우 유리한 조건으로 달러 등과 스왑 또는 3년 동안 비용 없이 발행한다. 그렇게 되면 달러와 같은 기축통화로 계산되는 재정상황에서 부채는 과소평가된다. 그러면 거래상대방은 이 기간에 발생한 손실을 언제 보충할까? 아마 남은 기간에 할증된 거래조건으로 되받게 될 것이다. 필시 더 좋은 환율에 기간 동안 발생한 이자까지 포함해서 받았을 것이다. 어쨌든 그리스는 유로존에 가입하게 되었고, 채권자는 좋은 조건에 채권을 인수했고, 골드만삭스는 거래를 성사시켜 주면서 막대한 수수료를 받았다. 모두 다 행복한 시기였다.

룩셈부르크에 위치한 유럽 통계청 유로스타트(Eurostat)는 오프마켓스왑(off-market swaps)을 통해 부채의 표면상의 크기를 줄이려 했던 그리스 재정부의 시도를 알지 못했다고 다시 한 번 밝혔다. 그러나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그리스의 골드만과의 거래는 유로스타트의 2002 회계 기준의 청사진과 유사하다. [중략] 2002년 전에는 이러한 거래는 유럽의 회계원칙에서 회색지대에 속했다. [중략] 2002년 5월 ESA95 회계원칙의 발표는 피가의 우려에 대한 명백한 답변이었는데, 그러한 거래를 허용하는 한편 국가채무의 표면상으로 어떻게 줄여서 산정할 수 있는 지에 대한 용례를 제공하였다.[Eurostat rules described ‘Greek-type’ swap]

한편 이러한 거래의 합당성 여부를 감독해야 할 유로존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인용기사에 의하면 유로스타트는 2002년 회계원칙 발표를 통해 회색지대에 속했던 해당 거래의 모호함을 제거하는데 기여했다. 한편 앞서 인용한 인디펜던트의 보도에 따르면 유로스타트는 이러한 거래를 2008년에야 금지시킨다. 하지만 유로스타트에 주장에 따르면 그리스는 이때에도 해당 거래 사실을 유로스타트에 보고하지 않았다. 결국 적어도 2008년까지는 부채를 축소산정하기 위한 파생상품 거래는 회색지대에 머물러 있거나 정당하였고 2008년 이후 그리스의 보고의무 해태가 문제시될 수 있다는 잠정적 결론에 이르게 된다.

2009년 Ethos는 포르투갈의 국유 철도/지하철 기업인 Metro do Porto와 협업하기 위한 계약을 따낸다. 계약들과 관련한 의회 조사국에서 발간한 문서에 따르면 Jabbour 씨의 임무는 1억2천6백만 유로에 대한 이자율 리스크를 관리하려는 목적이었지만 그 대신 다른 포인트에서 당초의 대출 자체보다도 훨씬 더 큰 손해를 초래한, 골드만삭스 및 노무라와 맺은 한 쌍의 상쇄 파생상품 계약을 해소하기 위함이다. 당시 골드만과 노무라는 Metro do Porto에게 계약의 동일한 요소를 취소하려면 2천6백만 유로가 소요된다고 말했다. Jobbour 씨는 이들을 재구조화하여 골드만과 노무라에 그 돈을 지불하는 대신 거래의 상쇄 부문을 최소하는 대가로 Metro do Porto가 거의 2천만 유로를 벌어들이게 하는데 도움을 줬다. [Banker in Middle of Fight Between Goldman Sachs and Libya]

Jaber George Jabbour는 Ethos 캐피털 자문사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2008년에 골드만삭스에서 잘렸다.(또는 자발적으로 사퇴했던지) 이후 그는 “은행들이 스왑 같은 복잡하고 구조화된 거래에서 공공기관을 우롱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공공기관에 도움을 주는 자문사를 차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 결과 인용기사처럼 포르투갈의 국유기업이 투자은행에 돈을 무는 대신 오히려 돈을 벌며 계약을 해소하게끔 해주었다. 그런데 인디펜던트의 기사에 따르면 바로 이 사람이 그리스의 구원투수를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모두가 행복했지만 파국을 몰고 왔던 이 거래에서 과연 골드만은 어떤 비용을 치를지 자못 궁금하다.


골드만삭스가 유럽 금융계를 어떻게 지배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그림(출처)

이번에 과연 신용평가사를 단죄할 수 있을 것인가?

최근 호주법원에서 인상적인 판결이 하나 있었다. 이 판결은 호주의 지방자치단체들이 구입한 증권의 투자손실에 대해 스탠다드앤푸어스(Standard & Poor’s)가 책임이 있다는 판결이다. 이번 판결은 지난 2012년 호주 법원이 S&P에 부과한 3천만 달러에 달하는 벌금판결에 불복해 제기한 항소에 대한 판결이었다. 이 판결에서 Peter Jacobson 판사는 S&P의 증권에 대한 신용평가가 “비이성적이고, 부도덕하고, 판단을 그르치게 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ABN암로 호주 지사는 2000년대 중반 투자등급 회사들의 CDS와 연계된 소위 “렘브란트 채권”을 만들었다. 이들은 2006년 S&P로부터 해당 상품에 대해 최고 투자등급을 얻어내 호주 뉴사우쓰웨일즈州의 13개 지방의회에 판매했다. 대부분은 농촌지역으로 손해액이 그들의 예산집행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칠만한 조그만 동네들이다. 이러한 풍경은 금융의 세계화로 말미암아 신용평가사 등 금융주체의 행동이 미치는 영향이 전 세계적임을 알려주는 모습이다.

S&P와 이 회사의 모회사 맥그루힐은 이 판결로 중대한 위기를 맞게 됐다. 미국 법무부 역시 지난해 2월 4일 S&P의 파생상품에 대한 평가행위에 대하여 투자자 사기 혐의로 고소하여 50억 달러에 이르는 벌금 부과를 추진 중이기 때문이다. S&P는 “호주법상 신용평가사의 투자자에 대한 주의의무 관련조항이 다른 지역의 잘 다듬어진 조항과는 차이가 있다”며 애써 의미를 축소하려 하고 있지만, 이 판결은 서구에서의 다른 소송에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지난 신용위기에서뿐만 아니라 이전의 다른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신용평가사의 신용평가에 대한 비난과 책임 규명 시도는 여러 번 있어왔다. 하지만 신용평가사는 그때마다 법의 처벌을 교묘하게 피해왔다. 부실한 신용평가가 투자손실을 초래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있었던 가장 강한 신평사의 논리는 ‘그들이 언론사이며 신용평가행위는 일종의 언론의 자유에 해당한다’는 논리였다. S&P가 언론재벌 맥그루힐의 계열사라는 사실과 이들의 주장이 묘하게 겹친다.

이런 논리 안에서 그들은 “비록 소가 만든 상품이라도 평가를 해야한다”는 막말을 하고 실제로 리스크가 결코 작다할 수 없는 파생상품들에 대하여 최고 등급을 부여하여 시장의 흥청망청한 투자성향에 한 몫 하였다. 2008년 이후 이들의 평가행위로 말미암아 입은 손실은 약2조 달러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용평가사들은 신용위기 이후 금융기관들이 정신없이 통폐합되는 과정 속에서도 손해도 보지 않았고 시장에 대한 그들의 영향력도 줄지 않았다.

S&P가 이번 판결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불만이 또 하나 있다면 “등급 의견을 사용하는 투자자들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S&P와 같은 당사자에게 법적 책임을 부과하는 나쁜 정책이고, 스스로 자산실사(due diligence)를 해야 하는 투자자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비추어본다면 과연 신용평가사는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자산실사는 투자자 책임이라면 대체 왜 신용평가사가 그렇게 막강한 권한을 누리는 걸까?

이 질문에 대답해줄 이는 많지 않다. S&P를 비롯한 3대 신용평가사가 누리는 권력은 대공황 이후부터 그 실효성을 인정받아 미국정부로부터 권력을 보호받아왔고 어느새 권력은 개별정부 단위를 벗어난 것 같다. 대안적 경향으로 미국 내에서의 독립적인 신용평가사가 독점구조를 깨려하거나 중국과 러시아가 주축이 된 별도의 신용평가 체계를 수립하려 하고, 장하준 교수와 같은 학자는 국제 공공기구의 설립을 주장하지만 갈 길은 멀어 보인다.

하지만 이번 판결이 미국과 유럽에서 진행 중인 또 다른 소송에 영향을 미쳐 어떤 식으로든 신용평가사의 책임을 묻게 된다면 공고한 독점체제에 균열을 일으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미국 법무부의 벌금부과 계획만 하더라도 신용평가사의 행위에 대한 연방정부 차원의 첫 법적조치다. 이는 어쨌든 미국정부조차도 신용평가사의 전횡을 가만두지 않겠다는 심산인 것이다. 물론 그것이 자국 신용평가사의 이니셔티브를 뺏겠다는 의미는 아니겠지만 말이다.

정의감이 넘치는 관료는 어떻게 좌절하는가?

하지만 브룩슬리 본 의장이 받은 것은 피드백이기 보다 역풍에 가까웠다. 그린버거가 회상한다. “어느 날 본 의장의 사무실에 갔더니, 본 의장이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수화기를 내려놓더군요. 본 의장은 ‘래리 서머스 재무부 차관에게서 온 전화야’라고 말했습니다. 서머스 차관이 본 의장을 강하게 질책한 거였지요.” 은행 임원들이 서머스 차관을 찾아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가 규제를 시작하면 파생상품 부서를 런던으로 옮길 것이라고 협박한 것이었다. 그린버거가 회상한다. “서머스 차관은 우리에게 규제방안을 철회하라고 했습니다.” 본이 덧붙였다. “규제 방안을 철회하라는 압박이 매우 심했습니다. 파생상품을 취급하는 은행들은 파생상품 시장 규제를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파생상품 부서가 전체수익에 기여하는 비율이 40퍼센트에 이르는 은행들도 있었으니까요.”[모든 악마가 여기에 있다, 베서니 맥린/조 노세라 지음, 윤태경/이종호 옮김, 자음과모음, 2011년, pp168~169]

브룩슬리 본은 클린턴 정부 시절 상품선물거래위원회의 의장을 지낸 변호사다. 그는 이전 의장이었던 웬디 그램이 파생상품을 선물이 아니라고 선언하며 규제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취임했지만, 당시 이어지는 파생상품 관련 사건으로 시장이 출렁거리자 파생상품을 규제할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그는 자신의 보좌관인 마이클 그린버거를 시켜 정책보고서를 작성하게 하고 이 초안을 관계자들에게 돌려 피드백을 받고자 했다. 그리고 위 인용문은 이 보고서에 대한 한 에피소드를 묘사하는 장면이다.

보고서 초안이 작성된 1998년은 막 파생상품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가 나오던 시점이었다. 프록터&갬블, 오렌지카운티 등이 무모하게 파생상품에 손을 댔다가 대규모의 손실을 내고 시장에 큰 충격을 주었던 즈음이다. 그럼에도 파생상품은 정부의 규제로부터 자유로웠는데, 이는 경제 관료들의 시장자유주의에 대한 믿음과 위에서 보는 것처럼 은행의 협박 내지는 회유 때문이었다. 책의 저자는 특히 래리 서머스에 대해서는 “똑똑한 사람인척 하고 싶은 욕심” 때문에 파생상품 규제를 반대했다고 한다.

폴 크루그먼, 제프리 삭스 등과 함께 “경제학의 3대 천재”라고 불리는 그인지라 – 그 천재들은 왜 현재의 경제위기에 대한 통일된 해법을 못 내놓는 걸까? – 지적자만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셌고, 그의 프레임에는 파생상품이 자유 시장에서 위험을 분산시키는 가장 좋은 해법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당시 장관이었던 로버트 루빈은 파생상품의 위험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한다. 그는 서머스와 달리 골드만삭스에서 실제로 파생상품 부서를 이끌었고 시장선도자로 나선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루빈 역시 파생상품 방임주의의 편에 설 수밖에 없는데, 가장 막강한 경제관료 앨런 그린스펀 역시 자유방임 근본주의의 광신도였으며, 회전문 인사로 장관 자리에 오른 자신이 굳이 규제의 칼날을 먼저 갈 이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규제의 필요성을 제기한 관료는 기껏해야 600명의 직원을 두고 있는, 별 권한도 없는 상품선물거래위원회의 의장 정도였고, 그마저도 은행으로부터 협박받고 있는 천재소년 래리 서머스의 호통에 얼굴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나약한 존재였던 것이다.

어쨌든 이제는 모두 공감하고 있다시피 – 아직도 아니라고 우기는 이들이 있긴 하지만 – 이러한 규제의 사각지대에서 활개 쳤던 파생상품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 등과 결합하면서 한 기업뿐 아니라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을 정도의 위력을 지닌 핵폭탄으로 변신하여 2000년대 후반을 강타했다. 하지만 거의 모든 화이트칼라의 범죄가 그렇듯, 신용위기 이후에도 협박을 일삼은 은행은 구제금융으로 목숨을 연장했고 경제 관료들은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고 여전히 경제계의 거물로 남아 있다.

어쨌든 인용한 글에서 확연하게 알 수 있는 사실은, 은행들이 자유롭게 그들을 규제하는 기관의 관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비즈니스를 다른 데로 옮기겠다는 협박을 할 수 있다는 사실 등이다. 이는 이미 정치가 “기업정치(corporatocracy)”라 불리는 구조로 고착화되어 있다는 것이고, 그러한 와중에도 기업이 입지의 자유에 따른 초국성을 띠며 행정력이 일국 단위에 머무는 – 세계패권을 쥐고 있는 미국조차도 – 행정부를 을러댈 수 있다는 – 금융거래세 논쟁에서도 보듯이 – 것을 의미한다.

p.s. 본 의장은 관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정책보고서를 발간하지만, 의회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상품선물거래위원회가 6개월 동안(마침 본 의장의 임기는 6개월 남짓 남아 있었다) 파생상품을 규제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을 법안에 집어넣었다. 그로부터 석 달 뒤 그 유명한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 사태가 터졌다.

讀後感 : 파생상품, 드라마틱한 수익률의 세계

천성적으로 귀차니즘에 아무 짓도 하기 싫은 이 블로그 주인장 sticky와 달리 ‘파생상품, 드라마틱한 수익률의 세계’를 번역하신 김현(인터넷 아이디 @lawfully)님은 블로그도 하시고 번역도 하시고 직접 영어와 경제에 관한 책도 쓰시는 변호사 일도 하시는, 내가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공력을 가지고 계신 분이다. 직접 사서 보아도 손색없을 책을 손수 보내주셨는데,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사트야지트 다스(Satyajit Das)라는 필드에서 직접 뛰었고 이론적으로도 잘 무장된 작가가 쓴 이 책의 원제는 “Traders, Guns and Money: Knowns and unknowns in the dazzling world of derivatives”다. 우리말로 해석하자면 “트레이더, 총과 돈 : 파생상품의 휘황찬란한 세계에 대한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들”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번역본 제목은 이런 재밌는 뉘앙스를 못 살린 것 같아 조금 아쉽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세상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모르는 것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조차도 모르는 것들도 분명 존재합니다.” – 도널드 럼스펠드(미국 국방장관, 2002년 2월 12일 국방성 뉴스 브리핑에서)

좋아하는 이만큼이나 싫어하는 이도 많은 도널드 럼스펠드의 이 발언이 ‘엉뚱하게도’ 책의 첫 머리에 등장하는데, 책을 다 읽어보면 저자가 왜 이 발언을 인용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즉,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우리가 모르는 것조차 모르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 럼스펠드는 이것을 악의적인 의미로 썼지만 – 오만하게도 현실세계의 형식학적 아름다움에 취해 그러한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

월스트리트가 위인전 외판원처럼 채권을 팔러 다니던 외판원 신세에서 벗어나 금융공학이라는, 로켓공학의 하찮은 변형이론을 차용하여 현실세계를 수학적으로 우아하게 해석해낼 수 있다고 자신하는 ‘우월한’ 존재로 탈바꿈한 이후로, “세상이 더 안전해졌는가? 파생상품은 그러한 추세에 기여하였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이 책의 요지다. 결론은? 익히 짐작하다시피 모르는 것도 모르는 것들이 문제라는 결론이다.

“난 파생상품 시장이 원래 의도한 바처럼 리스크를 경감시키는 쪽으로 발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리스크, 그 자체가 되었다.”
“I realised that the way the derivatives market had developed meant it did not mitigate risk, it was a risk in itself,”[출처]

이제는 현장을 떠나 자유로운 인생을 만끽하고 있다는 저자가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저자는 책에서 “리스크 보존의 법칙에 따르면, 리스크의 총량은 상수”이고 “그냥 이리저리 옮겨 다닐 뿐(p394)”이라고 말한다. 파생상품이 리스크를 이리저리 옮기는 것이며, 최근 발언에 의하면 이제 리스크 그 자체가 된 것이다. 책은 리스크를 옮기는 공식을 사례별로 재밌게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을 더 재밌게 즐기는 법

파생상품에 대한 기초지식이 어느 정도 있으면 좋다 : 굳이 깊은 지식은 필요 없을 것 같다. 직접 이런 일을 하고 있거나 또는 관계된 일을 하고 있으면 더욱 재밌을 것이다. 저자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겪은 일들을 생생하게 묘사하는데, 그런 상황에 공감할 부분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지식이 있으면 파생상품이 어떻게 폭탄으로 변해 가는지를 더 생생히 느낄 수 있다.

저자가 언급하는 대중문화에 익숙하면 좋다 :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캐치 22’, ‘몬티파이슨’, ‘그루초 막스’ 등 블랙코미디에 가까운 대중문화를 알고 있으면, 글들이 더욱 더 쫄깃할 것이다. 심지어 이 책을 경제에 관한 책이 아니라 경제라는 형식을 빌린 블랙코미디 에세이라고 읽을 수도 있다. 금융분석가를 ‘히치하이커’에 등장하는 로봇 ‘마빈’에 비유하는 서술(p317)에선 빵 터진다.

아쉬운 점과 미덕

다양한 파생상품에 관해 이야기하려다보니 – 또는 여러 매체에서의 글을 모아서 그런 건지 – 챕터들 사이에 연관성이 좀 떨어지고 산만하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상품들의 특성상 그럴 수밖에 없는 측면도 있고, 여하간 ‘히치하이커’보다야 훨씬 덜 산만하다. 미덕이라면 단연 쉬운 표현으로 – 그리고 김현 님의 솜씨 있는 번역으로 – 이해에 큰 어려움이 없게끔 복잡한 구조화 상품을 설명하는 솜씨가 돋보인 다는 점. 금융인들이 얼마나 말을 어렵게 하려 하는 지는 다음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과거 국내 IB는 단순 ‘브로커’ 성격이 강했죠. 진정한 IB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투자 비히클(vehicle)에 위험포지션을 적절히 인수한 후 구조화·증권화함으로써 자본시장의 조절 기능을 확대해야합니다”[“글로벌 IB 우투, 증자는 주가에도 플러스”]

‘중개만 하고 먹고 떨어지려니, 놔두질 않아 내 돈 좀 태웠더니 시장에 돈 좀 늘어났다’는 의미다.

Health Care

요즘 ‘매사귀차니즘’ 시즌에 접어들어 시사를 따라잡고 있지는 않지만 대강 살펴보기에도 큰 집 미국에서의 가장 뜨거운 이슈는 헬스케어의 개혁이다. 시사만화는 헬스케어 개혁의 부진함을 질타하고 있고 오바마는 트위터에서 헬스케어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트위터 이용자들이 의회를 압박해줄 것을 주문하고 있다.

주된 논점은 헬스케어를 여태 그래왔듯이 시장(市場)에서 공급하게끔 하여야 하는지 아니면 공공에서 공급하게끔 하여야 하는지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 같다. 다만 그 폭에 있어서는 좌우 양쪽에서 치열한 공방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폴 크루그먼은 블로그에서 왜 헬스케어가 비시장적인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헬스케어는 두 가지 두드러진 특징이 있다. 하나는 당신이 언제 치료를 필요로 할지 치료가 필요한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그런 상태라면 그 치료는 매우 비쌀 수 있다. [중략] 소비자선택은 헬스케어에 있어서만큼은 난센스다. 그리고 당신은 당신의 보험회사를 믿을 수도 없다. 그들은 자신들의 건강, 또는 당신의 건강을 위해 비즈니스를 영위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중략] 헬스케어에 관해 두 번째 특징은 그것이 복잡해서 당신의 경험이나 또는 비교 구매에 의존할 수 없다는 점이다.[중략] 그러나 자유시장의 법칙에 근거해서 성공한 헬스케어의 사례는 없다. 단 한 가지 단순한 이유인데 헬스케어에서 자유시장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There are two strongly distinctive aspects of health care. One is that you don’t know when or whether you’ll need care – but if you do, the care can be extremely expensive. [중략] Consumer choice is nonsense when it comes to health care. And you can’t just trust insurance companies either. they’re not in business for their health, or yours. [중략] The second thing about health care is that it’s complicated, and you can’t rely on experience or comparison shopping. [중략]  There are, however, no examples of successful health care based on the principles of the free market, for one simple reason: in health care, the free market just doesn’t work. [출처]

그는 요컨대 헬스케어라는 서비스는 (1) 소비자 스스로가 소비의 시기와 소비 여부를 선택할 수 없다는 특수성과 (2) 서비스의 형태가 복잡해서 – 즉 어떤 의미에서는 표준화가 어려워서 – 과거의 경험치나 비교견적이 어렵다는 점을 들고 있다. 우리가 이른바 공공재의 특성이라 이해하고 있는 비경합성이나 비배재성과는 다른 뉘앙스의 특성분석이다. 논리는 수긍이 가지만 일부 이견도 있다.

그런데 내 짧은 지식으로는 여전히 대부분 시장을 통해 공급되고 있는 허다한 보험은 어느 정도는 위와 같은 특성을 지니고 있다. 건강의 이상과 같은 불확실성 또는 잠재위험은 개인의 여타 삶이나 – 예를 들어 화재로 인한 재산 파괴 – 비즈니스의 분야에서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기에 그것들을 제거(hedge)하기위해 이해당사자들은 보험에 든다. 또한 유사한 성격으로 외환이나 금리위험을 제거하기 위해 각종 파생상품이 오늘날에도 시장에서 공급되고 있다.

폴 크루그먼의 입장을 확대해석하면 이러한 것들의 서비스는 시장에서 공급되어서는 위험하다는 논리로 확장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현재 금융위기는 수요이든 공급이든 간에 통제되지 않은 그러한 각종 보험 성격의 상품들이 기초자산을 – 헬스케어로 치면 보험수혜자? -훨씬 초과하는 시장규모를 가지게 된 바람에 악화된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럼 이제 크루그먼은 그것들도 사회화(또는 비시장화)시켜야 한다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전에 어느 블로그에서 미국 금융권의 악성자산을 정부에서 인수해주는 것이 욕먹을 일이 아니라는 논리를 간단한 셈법으로 풀어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즉 기업의 이자비용이 정부의 이자비용보다 비싸서 할인율이 높으므로 악성자산을 정부에 이전시키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이었다. 그 논리에 찬성하면서 그렇다면 왜 악성자산은 정부에 넘기는 것이 타당하지만 비즈니스는 여전히 사기업 혹은 시장의 영역이라 하는지 의아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부가 유지비용은 싸지만 기대수익은 시장보다 적다는 논리를 전개할 수도 있다. 즉 정부는 공적영역의 특징으로 간주되고 있는 – 이 또한 편견일 수도 있지만 – 경직성으로 말미암아 수익성의 극대화가 가능한 유연성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유연성 발휘가 핵심 포인트가 아닌 헬스케어는 정부가 떠안아도 되지만 그밖에 유연성이 요구되는 보험시장이나 파생상품시장은 여전히 시장의 영역으로 남겨놓아야 한다는 논리도 가능하다.

왠지 혼자 북치고 장고치는 느낌이지만 요는 이렇다. 건강은 인간의 생로병사의 핵심적인 부분으로 대체소비나 소비감소 등의 시장변동성이 거의 없는 상품이다. 소비자는 그 서비스로부터 역으로 선택당하는 입장이고 그 형태도 매우 복잡하여 시장으로부터 그것을 공급받았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고 유지비용이 싼 정부가 공급한다(또는 최소한 비시장화시킨다). 다른 불확실성이나 잠재위험도 그에 상응하긴 하나 그 정도가 덜하고 시장변동성도 있는지라 시장에서 공급하여도 무방하다(또는 더 효율적이다). 이 정도가 나름대로 구성해본 헬스케어 사회화 논리의 보론이랄 수 있다.(주1)

헬스케어는 전체 인류역사에 비추어 볼 때 공적 부조가 국가의 예산 범위 내에서 공급가능하다는 것이 실증된 이후부터 발달한 극히 최근에 시작된 서비스다. 그 기간 동안 대부분 국가는 그 서비스를 일차적으로 시장 바깥의 부문에서 공급하였지만 미국은 그것을 철저히 시장화 시켰고 그로 인해 그 짧은 기간 동안 서민들이 많은 고통을 겪어 왔다. 갈 길은 그리 만만해 보이지 않는다. 헬스케어 시장을 둘러싼 엄청난 이권과 사회화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알러지 반응이 그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부디 이번에 올바르게 헬스케어를 개혁하여 손가락이 두 개 잘린 사람이 보장범위가 한정적이어서 어느 한 손가락만을 봉합할지 선택하여야 하는 나라가 안 되길 기원해본다.

(주1) 파생상품 등을 그럼 마냥 시장에 내버려두자는 이야기냐 하면 그것은 아니라는 것쯤은 이 블로그에 몇 번 오신 분들이라면 익히 아실 것이므로 여기에서는 생략

세계 경제 위기 : 한 마르크스주의자의 분석 (5)

다음은 사회주의평등당(the Socialist Equality Party) 호주지부의 국가서기인  Nick Beams가 2008년 11월과 12월에 걸쳐 호주 여러 도시에서 가졌던 강의를 요약 발췌한 내용이다. 번역이 일치하지 않은 점이 있을 수 있으니 주의를 바란다.

시드니 대학의 Dick Bryan과 Michael Rafferty는 그들의 유용한 연구 ‘자본주의와 파생상품(Capitalism and Derivatives)’에서 파생상품의 필수적인 기능 두 가지를 지적했다. 첫째, 그들이 “묶는(binding)” 기능이라 칭하는 것인데 현재의 자산을 미래의 자산과 연결하는 것을 말한다. 고정 환율 시대의 몰락에 의해 초래된 점증하는 불확실성과 리스크로 인해 이 파생상품이 발전하였다.

파생상품은 또한 “섞는(blending)” 기능을 지니고 있다. 즉 서로 다른 형태의 금융자산을 균등하게 만드는 기능이다. 예를 들어 회사채와 주식을 서로 맞바꾸는(swapping) 계약이 있을 수 있다. 이 계약은 채권시장의 금리추이나 주식에 대한 배당의 추이의 상대적인 경향에 따라 실행될 수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 둘은 모두 회사의 미래소득에 대한 청구권이지만 그들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수도 있다. 파생상품의 활용은 이러한 리스크를 감소시킨다.

파생상품의 활용은 하나의 자산의 특징을 다른 자산의 특징으로 바꾸는 효과가 있다. 즉 금융자본은 어느 특정한 형태로 묶이기보다는 보다 보편적인 형태로 발전해나갈 수 있다. 이는 – 자본의 축적의 기본인 – 이윤의 전유가 금융시장 작동에 점점 더 의존해가는 조건 속에서는 굉장히 중요해졌다.

물론 다른 금융자산과 마찬가지로 파생상품은 투기의 주요한 수단이 되었다. 그러나 이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그들이 이전의 규제 시스템의 붕괴에 의해 초래된 자본주의 경제의 객관적인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발달하였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있다. 그러나 처음 리스크를 방어하기 위해 시작된 파생상품은 역사적인 금융재앙이라는 리스크를 초래하면서 끝을 맺었다.

자본주의 발전의 곡선에 있어서의 터닝포인트

금융화를 바라봄에 있어 하나 더 고려하여야 할 과정이 있다. 증권화 현상이 그것인데 모기지 위기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국가의 규제시대에 미국은행들은 소위 “3-6-3 모델”로 운용되었다. 돈을 3%에 빌려다가 6%에 빌려주고 은행 임원은 3시에 골프장에 간다. 이 모델은 1980년대 급격한 금리인상과 이어진 경제의 금융화 현상에 따라 무너진다. 은행들은 이제 펀드들을 위한 다른 금융기관과 경쟁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것은 대출을 빌려주고(originated) 은행이 보유하고(hold) 이자를 수취하는 예전의 모델을 기초로 해서는 불가능했다. 여신후 보유(originate-and-hold) 모델은 상당량의 자본이 장기로 묶여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은행과 다른 금융기관은 좀 더 빠른 속도로 그들의 자본을 순환시킬 수 있는 한에서만이 이윤을 증대시키고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들이 보유하는 금융자산을 증권으로 바꿔서 팔아버리는 방식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는데 IBM이나 GM같은 회사가 발행한 채권과는 달리 모기지의 경우 정해진 틀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은행은 어떻게 다양한 모기지를 채권처럼 거래될 수 있는 증권으로 바꿀 수 있고, 그럼으로써 투자자들이 인수자산의 안정성을 살필 것 없이 오직 이자율과 상환기간만 신경 쓰면 되게끔 만들 수 있는가?

그 해답은 모기지의 풀을 만들어서 모기지 상환으로부터의 돈으로 이자를 지불하는 일련의 채권을 발행하는 것이다. 그 풀은 다양한 리스크에 다양한 지불조건을 구분하는 여러 개의 트랜치로 나눠진다. 신용평가기관이 리스크 평가를 제공한다. 이 기관들은 다양한 리스크 모델을 개발하여 평가하였다. 많은 경우 채권들은 최고의 등급을 부여받았다. 증권화 과정은 “여신후 보유(originate-and-hold)” 모델을 “여신후 분산(originate-and-distribute)” 모델로 대체하였다.(주1)

미국에서는 1930년대 이후 집값이 전국적으로 하락한 적이 없었기에 집값이 계속 뛸 것이라는 일반적인 가정 하에 모기지는 지불능력에 상관없이 이루어졌다. 모기지는 언제든지 갱신되었고 주택은 이윤을 남기고 거래되었다.

우리는 이제 이 위기의 다양한 구성요소와 그 역사적 함의를 살펴볼 수 있다. 첫째, 그것은 단순히 대규모의 손실의 창출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또 다른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축적(accumulation) 시대의 총체적인 붕괴를 바라보고 있다. 이 시대는 1970년대의 위기에 대한 반응에서 싹텄다.

은행과 금융기관은 더 이상 “여신후 분산(originate-and-distribute)” 모델을 이어갈 수 없다. 또한 과거의 모델로도 돌아가지 못한다. 우리는 레온 트로츠키가 “자본주의 발전의 곡선”이라 부른 변곡점에 도달하였다. 1970년대의 위기와 1980년대의 하강에 이어 새로운 상승국면이 1990년대에 자본의 국제순환에서의 초저임금의 노동력의 합병에 기초하여 시작되었다. 이는 축적의 새로운 양식을 가능케 했지만 파괴적인 종말을 맞이하고 있다.

[원문보기]

(주1) 개인적으로는 여신후 분산 모델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금융기능이 존재하는 한에는 여신은 있어야 하고 그 후 그 여신의 처리방법은 보유나 분산, 그 둘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보유와 분산이 가지는 계급적 함의는 별도로 하고 말이다.

세계 경제 위기 : 한 마르크스주의자의 분석 (4)

다음은 사회주의평등당(the Socialist Equality Party) 호주지부의 국가서기인  Nick Beams가 2008년 11월과 12월에 걸쳐 호주 여러 도시에서 가졌던 강의를 요약 발췌한 내용이다. 번역이 일치하지 않은 점이 있을 수 있으니 주의를 바란다.

1971년 브레튼우즈의 몰락으로 말미암아 세계 화폐 시스템의 안정적인 닻이라 할 수 있는 달러의 역할이 끝을 맺었다. 또한 어떠한 일개 국가의 화폐도 그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1970년대 새로운 화폐운동으로부터 발생되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새로운 메커니즘이 개발되었다. 금융 파생상품이 발달하기 시작한 것이다.

파생상품은 금융계약이나 금융장치, 어떠한 임의의 것의 가치로부터 파생되는 가치로 규정된다. 파생상품은 오랜 기간 존재하여 왔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선물계약(futures contracts)이다. 금융 파생상품은 새로운 개발품이다. 물리적인 상품이 아닌 돈과 다른 금융자산에 연계된다. 1972년에 화폐 선물 시장이 시카고 선물거래소(Chicago Mercantile Exchange)에서 열리게 된다. 이 시장에서 금융기관, 수입업자, 수출업자 등이 환율변동을 헤지(hedge)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환율 선물은 다음 기간 개발될 수많은 금융 파생상품의 한 종류일 뿐이었다.

1973년 피셔 블랙(Fischer Black)과 마이런 숄즈(Myron Scholes)가 가격 옵션의 공식을 개발하면서 더욱 발전하게 된다. 어떤 선물 거래는 참여자들을 구매와 판매의 역할로 국한시키는 반면 옵션은 일종의 보험과 같은 것이다. 프리미엄을 지불하는 대가로 그것은 구매자에게 특정시기에 일정한 가격으로 자산을 사거나 팔 수 있는 권리를 준다. 만약 가격이 예측한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옵션은 가치가 없고 구매자는 프리미엄만을 손해볼 것이다. 1973년 시카고 옵션거래소(the Chicago Options Exchange)가 문을 연다.

옵션은 큰 이익을 낼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한다. 어떤 구매자가 6개월 후 50달러의 주식을 살 수 있는 옵션을 산다. 옵션의 가격은 5달러다. 100주에 대한 가격은 500달러다. 6개월 후 주가가 60달러가 되었다고 가정하자. 구매자는 옵션을 행사하고 5달러의 주당이익을 얻을 것이다. 총이익은 500달러가 될 것이다. 수익률은 100%다. 이 구매자가 그냥 주식 100주를 50달러에 사서 6개월 동안 보유했다고 치자. 이익은 1,000달러가 되지만 수익률은 20%다. 옵션의 사용은 더 많은 수익률의 기회를 준다.

반대로 주가가 60달러로 오른 것이 아니라 49달러로 떨어졌다고 가정하자. 옵션 구매자는 500달러를 잃어서 손해율은 100%다. 반면 주식 구매자는 100달러만 잃어서 손해율은 2%에 불과하다. 옵션은 더 큰 기회와 더 큰 위험의 가능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또 다른 타입의 파생상품도 등장했는데 바로 환율 스왑이다. 이어서 고정금리와 변동금리가 상호 교환되는 이자율 스왑도 등장한다. 1990년대 보유자가 채권 지불 실패 위험을 보장하는 신용부도스왑(the credit default swap)이 등장한다. 이러한 계약은 거래소 또는 더 빈번하게 이른바 장외(over the counter) 거래에서 당사자들 간에 이루어졌다.

처음 파생상품은 리스크를 방어하고자 만들어졌으나 곧 투기의 수단이 된다. 그리고 그 성장은 눈부시다. 전 세계 외환거래 계약은 1973년 일 150억 달러, 1980년 일 800억 달러, 1995년 1조2천6백억 달러로 증가한다. 1973년에 이들 계약은 총 상품 및 서비스 거래의 15%를 구성했다. 1995년에는 불과 2%다. 외환거래의 폭발은 무역이 아니라 금융계약의 결과가 되어버렸다. 2008년 6월 OTC 거래에서의 파생상품이 기초하고 있는 자산은 683조7천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전 세계 산출의 10배에 해당한다. 1973년 금융 파생상품은 사실 존재하지도 않았다.

미국 경제의 금융화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로부터 시작된 파생상품의 융성의 계기 이외에 또 하나의 계기가 있는데 무엇보다 미국에서 지난 30여 년간의 축적 양식의 변화로부터 시작된다. 닉슨이 1971년 미 달러의 금태환을 포기한 것은 미국 자본주의의 금융 지배를 유지하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 말 오히려 달러의 가치는 급격히 떨어졌고 이윤은 축소되고 주식시장은 침체에 빠졌고 미국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에 접어들었다. 1979년 10월 폴 볼커가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의장으로 취임한다. 볼커는 인플레이션을 치유하고자 고금리 프로그램을 내놓는다.

“볼커 충격”으로 잘 알려진 이 프로그램으로 금리는 사상 최고로 치닫고 경제는 1930년대 이래로 가장 깊은 침체로 빠져든다. 노동계급은 강하게 저항하였다. 수백만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결과적으로 미국 자본주의의 구조가 변했다. 1865년 남북전쟁 이후 미국경제는 제조업이 이끌었다. 미국식의 생산방식은 가장 효율적이고 이윤이 많은 것으로 증명되어 왔다. 그런데 그것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았다. 볼커의 조치의 핵심은 축적의 새로운 레짐은 금융자본의 확대에 기초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런 새로운 축적양식으로의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1981~1982년의 경기침체 뒤에 느리게 경기가 회복되었다. 주식시장은 1982년이 되어서야 오르기 시작했다. 이 10년은 저축대부조합이 촉발한 위기로 막을 내린다. 소비에트의 붕괴와 중국의 자본주의 세계로의 편입은 세계 자본의 순환에서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이를 통해 금융자본에 근거한 축적양식이 가능해진다.

미국과 다른 주요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력의 1/3에 해당하는 중국의 개방은 노동계급으로부터의 잉여가치 착취의 엄청난 확대를 의미한다. 아이팟을 생산하는 중국 제조공장이 미국에서 290달러에 파는 기계를 만들어주고 받는 돈은 4달러다. 값싼 제조상품은 인플레이션을 방지한다. Fed는 인플레이션 걱정 없이 계속 금리를 낮게 유지할 수 있었다. 값싼 신용이 다양한 자산 거품을 촉발했다. 실질임금의 인상 없이도 소비는 증대했다.(주1)

1982년 금융회사의 이윤은 세후 총기업이윤의 5%를 차지했다. 2007년 그들의 지분은 41%로 증가한다. 지난 시절 부채는 제조업에서 발생했다. 그러나 금융부문의 발전에 따라 부채는 더 많은 금융활동을 위한 금융업에서 발생했다. 자산에 기초한 증권의 매매가 부의 축적의 새로운 방식이 되었다. 경제의 금융화는 생산과정에 대한 적출(extraction)이라기보다는 잉여가치의 전유(專有 ; appropriation)에 가까웠다.(주2)

[원문보기]

 

(주1) 현대 자본주의에 있어 중국의 개방은 대항해 시대의 지리상의 발견에 맞먹는 파급효과를 가져온 셈이다

(주2) 이 문구는 많은 의미를 함유하고 있는데 적출, 즉 착취와 전유 사이의 뉘앙스의 차이를 확실하게 이해하여야 하는 부분이다. 간단히 말해 착취는 노동을 통한 잉여가치를 빼앗는 행위이고 전유는 남이 착취한 잉여가치를 자기의 것으로 재차 착취하는 것에 가깝다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