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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 위기 : 한 마르크스주의자의 분석 (4)

다음은 사회주의평등당(the Socialist Equality Party) 호주지부의 국가서기인  Nick Beams가 2008년 11월과 12월에 걸쳐 호주 여러 도시에서 가졌던 강의를 요약 발췌한 내용이다. 번역이 일치하지 않은 점이 있을 수 있으니 주의를 바란다.

1971년 브레튼우즈의 몰락으로 말미암아 세계 화폐 시스템의 안정적인 닻이라 할 수 있는 달러의 역할이 끝을 맺었다. 또한 어떠한 일개 국가의 화폐도 그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1970년대 새로운 화폐운동으로부터 발생되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새로운 메커니즘이 개발되었다. 금융 파생상품이 발달하기 시작한 것이다.

파생상품은 금융계약이나 금융장치, 어떠한 임의의 것의 가치로부터 파생되는 가치로 규정된다. 파생상품은 오랜 기간 존재하여 왔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선물계약(futures contracts)이다. 금융 파생상품은 새로운 개발품이다. 물리적인 상품이 아닌 돈과 다른 금융자산에 연계된다. 1972년에 화폐 선물 시장이 시카고 선물거래소(Chicago Mercantile Exchange)에서 열리게 된다. 이 시장에서 금융기관, 수입업자, 수출업자 등이 환율변동을 헤지(hedge)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환율 선물은 다음 기간 개발될 수많은 금융 파생상품의 한 종류일 뿐이었다.

1973년 피셔 블랙(Fischer Black)과 마이런 숄즈(Myron Scholes)가 가격 옵션의 공식을 개발하면서 더욱 발전하게 된다. 어떤 선물 거래는 참여자들을 구매와 판매의 역할로 국한시키는 반면 옵션은 일종의 보험과 같은 것이다. 프리미엄을 지불하는 대가로 그것은 구매자에게 특정시기에 일정한 가격으로 자산을 사거나 팔 수 있는 권리를 준다. 만약 가격이 예측한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옵션은 가치가 없고 구매자는 프리미엄만을 손해볼 것이다. 1973년 시카고 옵션거래소(the Chicago Options Exchange)가 문을 연다.

옵션은 큰 이익을 낼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한다. 어떤 구매자가 6개월 후 50달러의 주식을 살 수 있는 옵션을 산다. 옵션의 가격은 5달러다. 100주에 대한 가격은 500달러다. 6개월 후 주가가 60달러가 되었다고 가정하자. 구매자는 옵션을 행사하고 5달러의 주당이익을 얻을 것이다. 총이익은 500달러가 될 것이다. 수익률은 100%다. 이 구매자가 그냥 주식 100주를 50달러에 사서 6개월 동안 보유했다고 치자. 이익은 1,000달러가 되지만 수익률은 20%다. 옵션의 사용은 더 많은 수익률의 기회를 준다.

반대로 주가가 60달러로 오른 것이 아니라 49달러로 떨어졌다고 가정하자. 옵션 구매자는 500달러를 잃어서 손해율은 100%다. 반면 주식 구매자는 100달러만 잃어서 손해율은 2%에 불과하다. 옵션은 더 큰 기회와 더 큰 위험의 가능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또 다른 타입의 파생상품도 등장했는데 바로 환율 스왑이다. 이어서 고정금리와 변동금리가 상호 교환되는 이자율 스왑도 등장한다. 1990년대 보유자가 채권 지불 실패 위험을 보장하는 신용부도스왑(the credit default swap)이 등장한다. 이러한 계약은 거래소 또는 더 빈번하게 이른바 장외(over the counter) 거래에서 당사자들 간에 이루어졌다.

처음 파생상품은 리스크를 방어하고자 만들어졌으나 곧 투기의 수단이 된다. 그리고 그 성장은 눈부시다. 전 세계 외환거래 계약은 1973년 일 150억 달러, 1980년 일 800억 달러, 1995년 1조2천6백억 달러로 증가한다. 1973년에 이들 계약은 총 상품 및 서비스 거래의 15%를 구성했다. 1995년에는 불과 2%다. 외환거래의 폭발은 무역이 아니라 금융계약의 결과가 되어버렸다. 2008년 6월 OTC 거래에서의 파생상품이 기초하고 있는 자산은 683조7천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전 세계 산출의 10배에 해당한다. 1973년 금융 파생상품은 사실 존재하지도 않았다.

미국 경제의 금융화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로부터 시작된 파생상품의 융성의 계기 이외에 또 하나의 계기가 있는데 무엇보다 미국에서 지난 30여 년간의 축적 양식의 변화로부터 시작된다. 닉슨이 1971년 미 달러의 금태환을 포기한 것은 미국 자본주의의 금융 지배를 유지하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 말 오히려 달러의 가치는 급격히 떨어졌고 이윤은 축소되고 주식시장은 침체에 빠졌고 미국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에 접어들었다. 1979년 10월 폴 볼커가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의장으로 취임한다. 볼커는 인플레이션을 치유하고자 고금리 프로그램을 내놓는다.

“볼커 충격”으로 잘 알려진 이 프로그램으로 금리는 사상 최고로 치닫고 경제는 1930년대 이래로 가장 깊은 침체로 빠져든다. 노동계급은 강하게 저항하였다. 수백만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결과적으로 미국 자본주의의 구조가 변했다. 1865년 남북전쟁 이후 미국경제는 제조업이 이끌었다. 미국식의 생산방식은 가장 효율적이고 이윤이 많은 것으로 증명되어 왔다. 그런데 그것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았다. 볼커의 조치의 핵심은 축적의 새로운 레짐은 금융자본의 확대에 기초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런 새로운 축적양식으로의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1981~1982년의 경기침체 뒤에 느리게 경기가 회복되었다. 주식시장은 1982년이 되어서야 오르기 시작했다. 이 10년은 저축대부조합이 촉발한 위기로 막을 내린다. 소비에트의 붕괴와 중국의 자본주의 세계로의 편입은 세계 자본의 순환에서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이를 통해 금융자본에 근거한 축적양식이 가능해진다.

미국과 다른 주요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력의 1/3에 해당하는 중국의 개방은 노동계급으로부터의 잉여가치 착취의 엄청난 확대를 의미한다. 아이팟을 생산하는 중국 제조공장이 미국에서 290달러에 파는 기계를 만들어주고 받는 돈은 4달러다. 값싼 제조상품은 인플레이션을 방지한다. Fed는 인플레이션 걱정 없이 계속 금리를 낮게 유지할 수 있었다. 값싼 신용이 다양한 자산 거품을 촉발했다. 실질임금의 인상 없이도 소비는 증대했다.(주1)

1982년 금융회사의 이윤은 세후 총기업이윤의 5%를 차지했다. 2007년 그들의 지분은 41%로 증가한다. 지난 시절 부채는 제조업에서 발생했다. 그러나 금융부문의 발전에 따라 부채는 더 많은 금융활동을 위한 금융업에서 발생했다. 자산에 기초한 증권의 매매가 부의 축적의 새로운 방식이 되었다. 경제의 금융화는 생산과정에 대한 적출(extraction)이라기보다는 잉여가치의 전유(專有 ; appropriation)에 가까웠다.(주2)

[원문보기]

 

(주1) 현대 자본주의에 있어 중국의 개방은 대항해 시대의 지리상의 발견에 맞먹는 파급효과를 가져온 셈이다

(주2) 이 문구는 많은 의미를 함유하고 있는데 적출, 즉 착취와 전유 사이의 뉘앙스의 차이를 확실하게 이해하여야 하는 부분이다. 간단히 말해 착취는 노동을 통한 잉여가치를 빼앗는 행위이고 전유는 남이 착취한 잉여가치를 자기의 것으로 재차 착취하는 것에 가깝다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이코노미스트에서의 재미있는 논쟁, 그리고 마이런 숄즈

경제 블로그 Big Picture 가 한 흥미로운 논쟁을 소개하고 있다. 세계적인 경제학자인 마이런 숄즈와 조셉 스티글리츠가 “현재의 위기 이후 금융시스템을 강하게 규제하는 것은 실수다”라는 의견에 대해 각각 찬성과 반대의 의견으로 논쟁을 벌이고 이를 이코노미스트가 중재하는 형식이다. 둘 다 당대의 경제학적 주장을 대표하는 이들이라 각각의 주장이 매우 선명하다.

스티글리츠
보다 일반적으로 문제는 너무 적은, 또는 너무 많은 규제가 아니다. 그 대신 올바른 규제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규제들이 힘을 얻을 수 있는 규제 시스템이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리스크는 이 위기 이후의 너무 많은 규제를 하게되는 것이 아니고 너무 적은 규제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위기가 끝난 후, 최근 몇 년간 그들 스스로 아주 일을 잘 해온 자본가들은 그들 돈의 일부를 정치적 프로세스를 왜곡하는 데 쓸 것이다. – 과거의 선거기부금이 높은 수익 투자라는 것을 입증하였다.
The question, more generally, is not so much too little or too much regulation, but the right regulation and a regulatory system that enforces the regulations we have. The risk we face is not that we will have too much regulation in the aftermath of the crisis but too little. After the crisis is over, the financiers who have done very well by themselves in recent years will use some of that money to distort the political process – campaign contributions have proven in the past to be high return investments.

숄즈
경제이론에 따르면 금융혁신은 실패로 귀결되게 마련이다. 그리고 특별히 성공적인 혁신은 예측하기 힘들다. 혁신을 지원하기 위해 필요한 인프라스트럭처는 혁신 그 자체를 낙후시킨다. 이는 통제가 그 당시의 관리 메커니즘에서의 몰락을 방지하는 데에는 부족할 가능성을 높인다. 그러나 실패가 미래의 실패를 제거하는데 재규제가 성공할 것이라는 결론으로 이끄는 것은 아니다. 또한 사회가 더 적은 자유를 통해 더 나아질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Economic theory suggests that financial innovation must lead to failures. And, in particular, since successful innovations are hard to predict, the infrastructure necessary to support innovation needs to lag the innovations themselves, which increases the probability that controls will be insufficient at times to prevent breakdowns in governance mechanisms. Failures, however, do not lead to the conclusion that re-regulation will succeed in stemming future failures. Or that society will be better off with fewer freedoms.

숄즈라는 인물에 대해 설명하자면, 그는 70년대 초반 피셔 블랙(Fischer Black)과 함께 주식옵션의 가격을 결정하는 문제에 돌파구를 여는 논문을 발표하여 투자이론의 새 장을 연 이로 평가받고 있다. 그들의 논문은 옵션의 가격결정 방법과 옵션의 헤지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옵션연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숄즈는 역시 같은 분야에서 학문적인 업적을 달성한 로버트 머턴 Robert Merton 가 함께 1997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다. 이들의 다소 ‘실용적’인 이론이 학문적 업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더 나아가 이 현실참여적인 두 학자는 그들의 이론을 현실에 접목시키기로 마음먹는다. 바로 90년대 가장 큰 금융사고의 진원지였던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의 얼굴마담이 된 것이다.

나는 솔직히 이러한 점에서 숄즈의 ‘자유’ 주창은 다소 뻔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런 생각을 하는 이는 나 혼자만은 아닌 것 같다.

전직 헤지펀드 엠피리카의 소유자였고 현재 리스크엔지니어링 교수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나심 니콜라스 테이럽은 국립 공공 라디오의 아침 방송에서 현재의 시장 혼란은 1997년 로버트 머턴과 마이런 숄즈에게 노벨상을 안겨주었던 주식-옵션 가격결정 모형이 작동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이므로 수상은 취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머턴과 숄즈는 1998년 몰락하여 그 당시로서는 가장 큰 규모의 헤지펀드 실패인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의 두뇌들이었다. 테이럽에 따르면 그들의 예전 회사를 침몰시킨 리스크 관리 실패가 금번 월스트리트를 침몰시키는데 공을 세웠는데, 바로 그것이 투자회사들로 하여금 자신들은 리스크로부터 절연되어 있다고 (그릇되게) 믿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Nassim Nicholas Taleb, the former owner of hedge fund Empirica and current risk engineering professor and best-selling author, told National Public Radio’s Morning Edition that the current market turmoil proves that the stock-option valuation process that Robert Merton and Myron Scholes won a Nobel for in 1997 doesn’t work. And he wants that prize revoked.
Merton and Scholes, of course, were the brains behind Long-Term Capital Management, whose collapse in 1998 was the largest-ever hedge fund failure at the time. According to Taleb, the risk management failures that torpedoed their old firm have now helped to torpedo Wall Street by leading investment companies to believe (wrongly) that they were insulated from risk.[출처]

나는 이 의견에 상당히 공감하는 편이다. 그에 대한 과도한  그런 면에서 보자면 숄즈에게 필요한 것은 규제 반대 주장이 아니라 뼈를 깎는 자기반성이 아닐까 싶은데…

단순히 숄즈가 헤지펀드를 하나 말아먹었다는 이유만으로 규제반대를 부르짖는 그의 주장을 반대하는 것은 가혹한 면이 있을 것이기에 탈규제의 폐해 사례를 하나 알아보도록 하겠다.

NCR(주1)제도는 비록 정치하고 세련되지 못한 매우 단순한 방식을 따르고 있지만, 적어도 2004년까지는 증권회사의 재무건전성을 유지하도록 하는 규제로서 훌륭히 그 기능을 수행했다고 평가받는다.
SEC(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는 2004년 6월 8일, 투자은행지주회사에 대해서 법적인 감독권한은 없지만 이를 통합적으로 감독하는 자발적 통합감독 프로그램(consolidated supervised entities:CSE)을 마련했다.

대형 투자은행들은 집요하게 앞에서 살펴본 표준 NCR 제도가 투자은행의 위험관리 능력을 무시하고 레버리지를 과도하게 규제하는 제도라고 주장하며 이의 완화를 요구하였다. 이러한 규제완화를 적극적으로 주도한 사람은 당시 골드만삭스의 CEO였으며 현재 미국 재무장관인 Paulson이었다.
이러한 규정이 마련되자마자 곧 Goldman Sachs, Morgan Stanley, Merril Lynch, Lehman Brothers, 그리고 Bear Stearns 의 5개 대형 투자은행은 SEC로부터 CSE 자격을 승인받았다. 이 5개 투자은행이 CSE 자격을 획득한 유일한 투자은행들인데, 공교롭게도 이번 월가의 금융위기에서 모두 부실화된 투자은행들이기도 한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월가의 금융위기와 자기자본규제, 연구위원 한상범, 자본시장 Weekly 2008-40호 II, 한국증권연구원, pp2~3]

이러한 5대 투자은행들의 “자발적 감독”의 결과는 어떠했을까? 그 이전까지 그나마 12배를 유지했던 이들의 레버리지는 2004년의 예외인정 이후 40배까지 상승한다. 수익률은 놀랄 만큼 향상되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제 다들 아시다시피 기업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어쨌든 이코미스트에서 진행하고 있는 독자 찬반투표에서 현재까지의 결과에 따르면 규제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61%로 규제를 하지말자는 의견 39%가 훨씬 우세하다.

현재의 위기 이후 금융시스템을 강하게 규제하는 것은 실수다
( surveys)

(주1) 표준 순자본규칙(Uniform Net Capital Rule)의 약자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등록된 증권회사에 대한 자기자본규제 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