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경제사

인용

그 결과 우리가 지니는 사법은 후기 그리스, 로마 경제의 막연한 기초 위에 서 있는 것이 되어 있다. 서양의 경제 생활이 문명화되었을 때 자본주의의 이름과 사회주의의 이름을 서로 대립시키는 깊은 적의가 유래하는 것은, 대부분 학자적 법 사상이, 그리고 그 영향을 받은 유식자 계급의 사상 일반이 사람, 사물 및 소유와 같은 아주 중요한 개념을 그리스, 로마 생활의 상태 및 배치와 결부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서구의 몰락 2, 오스발트 슈펭글러 지음, 박광순 옮김, 범우사, 1995년, p331]

박근호 교수의 『박정희 경제신화 해부』를 읽고

남한의 “진보”세력에게 박정희의 경제신화는 일종의 계륵이다. 남한은 전 세계 개발도상국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 또는 대만과 함께 – 20세기 전간기의 참화를 딛고 기적처럼 경제성장에 성공한 나라라는 것이 정설이다. 그리고 그 고도성장은 박정희의 집권 기간부터 시작된 것이 객관적 사실이다. 즉, 박정희는 경제개발계획 수립, 수출지향형 공업화, 재벌체제 확립 등 경제전반에 대한 강력한 국가통제를 통해 경제성장을 주도하여 온 것으로 알려졌고, 이것을 근거로 보수 세력은 그를 소위 “근대화의 아버지”로 자리매김했고 진보 세력도 그 정도의 사실은 딱히 반박하지 못하고 마지못해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그래도 민주주의는 진보 세력에 의해 이루어졌다’ 정도로 항변하곤 했었다.

개인적으로는 『박정희 경제신화 해부』를 쓴 박근호 교수를 “진보” 또는 “보수” 중 어느 것으로 칭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다만 책을 읽고 나서의 느낌은 치밀하고 집요하게 객관적인 경제학자라는 느낌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어느 블로거가 쓴 묵시론 적인 경제전망을 담은 책과 어느 경제지 기자가 쓴 저축은행의 흥망에 관한 책을 읽었는데, 이들 책 내용의 불성실함으로 인해 박 교수의 성실함이 더욱 돋보였다. 이미 1993년에 『한국의 경제발전과 베트남전쟁』이란 책을 출판하면서 한국군의 베트남전 참전이 남한 경제에 미친 영향에 주목한 필자는 2007년 비밀문서에서 해체된 대통령기록물, 美국무성의 한국관련 문서 등을 연구하여 논리를 보강하는 등 치밀한 검증을 거친 결과물이 이 책이다.

1960년대 내내 한국은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미국의 안전보장전략 아래 놓여 있었다. 다만 한국이 ‘미국의 불안정한 의붓자식’이었던 관계는 1965년 한국군의 베트남전 참전을 통해 ‘기브앤테이크’ 관계로 이행했다. 따라서 한미관계의 분기점은 한국의 베트남전 참전이었고, 이를 경계로 미국의 한국정책은 명백히 전환되었다. 미국에게 한국의 전략적 중요성이 커지면서 한국을 공산권진영에 대한 경제적 우위의 증거로 삼으려는 ‘한국모델’ 전략이 행해졌다. 이를 위해 미국이 만든 경제시스템 속에서 개발모델이 된 한국은 우대조치를 받았고, 최대의 수혜자가 되었다. 요컨대 미국이 ‘한국모델’ 정책을 공들여 추진한 결과, 1965년부터 한국의 고도성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박정희 경제신화 해부, 박근호 지음, 김성칠 옮김, 회화나무, 2017년, p364]

해당 인용문이 책의 전반적인 요지를 담은 문구라 생각되어 인용했다. 박 교수는 박정희가 그 어떤 나라의 위정자보다 더 적극적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하려 했던 이유를 “한국의 경제성장, 한미관계의 강화, 한국군의 전투력 향상, 그리고 플러스알파”를 노렸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박의 철저한 계산에 따라 진행된 베트남파병은 이후 박정희의 1965년의 방미로 이어지고 존슨 정부는 남한을 일본과는 다른 공산권에 대한 “자립형 완충지대”이자 “민주주의의 쇼윈도”로 키울 마음을 먹는다. 이를 위한 미국의 지원은 다양한 물질적 지원 이외에도 한국산 제품의 수입확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설립을 위한 학술적 지원, 미국기업의 한국 직접투자를 위한 노력 등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진다.

그러한 박정희의 미국을 향한 집요한 구애가 성공했다는 점에서 “근대화의 아버지”라 부른다면 달리 반박할 말은 없다. 다만 박 교수가 분석한바, 박 정권이 미국의 요구에 따라 수립한 경제개발계획이 실제 집행에서는 많은 오류가 있었고, 미국의 바텔기념연구소가 전자산업 육성으로 방향을 제시한 후1, 미국기업의 제조업기지화를 위한 투자가 있은 다음에야 경제가 궤도에 올랐다는 사실은 박정희 체제가 미국이라는 외생적 변수 없이는 성공할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는 점에서 그를 “OOO의 아버지”라 부르는 것은 몰염치한 짓일 것이다. 그리고 이때 기득권층은 미국의 위력을 실감하고 그의 뜻을 거스르는 것은 불경스러운 행동임을 깨달았고2 이런 행태가 오늘날에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따라서 박정희 체제는 대미굴종, 많은 노동자의 희생, 정경유착 및 재벌체제 공고화, 수출지향형 경제성장, 한미일 군사/경제 동맹 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한 가지씩 곱씹어보면 아직도 이러한 모순들이 그대로 온존하고 있음을 최근의 많은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새로 들어선 정부가 이러한 모순을 조금이라도 개선하려고 들면 개떼처럼 달려들어 짖어대는 기득권 세력의 저항을 보면 그 썩은 뿌리가 이 나라에 얼마나 깊숙이 박혀 있는 지를 서늘하게 느낄 수 있다. 어쨌든 박근호 교수의 책은 이런 썩은 뿌리의 토대인 “박정희 경제신화”의 허구성을 깨닫게 하는 입문서로서의 자격이 충분한 책이다. 이 연구가 초석이 되어 이 나라의 대안 경제를 꿈꾸고 실천할 그 날이 어서 오길 바란다.

애덤 스미스가 나무랐던 지주의 뻔뻔함

토지지대는 지주가 토지개량에 투자한 자본에 대한 합리적인 이윤(또는 이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분명히 이것은 부분적으로 타당하지만 그 이상 타당할 수는 없다. 지주는 개량되지 않은 토지에 대해서까지 지대를 요구하며 개량비용에 대한 이자 또는 이윤은 일반적으로 이 원래의 지대에 대한 추가분이다. 더욱이 이러한 개량은 반드시 지주의 자본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가끔 차지인의 자본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차지계약이 갱신될 때 지주는 (마치 자기 자신이 개량한 것처럼) 지대의 증액을 요구한다.[國富論 상권, 애덤 스미스 지음, 김수행 옮김, 두산동아, 1998년, pp149~150]

토지의 독점성에 따른 이러한 부당한 추가지대를 요구하는 한 사례가 요즘 많은 이들에게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도심재생화 현상의 한 부정적인 모습일 것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의 본래적인 의미는 도시 중심가의 쇠퇴했던 주변에 상류층의 주거지가 다시 조성됨에 따라 재생의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경리단이나 서촌과 같이 번화가의 주변 상권에 트렌디한 상권이 조성되면서 지대가 오르는, 주거보다는 상권에 긍정적이기 보다는 부정적인 모습에 초점을 맞추는 표현이 되어버렸다.

어쨌든 소비패턴의 변화에 따라 서울 등 대도시에서는 최근 몇 년간 경리단, 서촌, 가로수길 등 소위 트렌디한 상권이 여러 군데 등장하였다. 이전의 중심상권과의 차이라면 한번 도시 기능이 발전했다가 어느 정도 쇠퇴과정을 거치고 다시 활발해졌다는 점에 있고, 그렇기에 젠트리피케이션의 정의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 양상을 띠게 된 것이다. 문제는 이런 과정에서 바로 애덤 스미스가 지적하는 추가지대가 형성됐다는 점이다. 즉, 상권의 활성화에 기여한 독립 자영업자가 치른 개량비용도 지주의 추가지대 요구의 근거가 되어버리는 상황 말이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되고 있는 곳에서 만의 일도 아니다. 그러한 곳에서 추가지대의 요구 현상이 가장 뚜렷하게 관찰이 가능할 뿐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부동산의 소유가 소수에게 극도로 집중되고12 자영업자의 비중이 예외적으로 높은 나라에서 지주는 자영업자, 즉 차지인의 자본에 의해 이루어진 개량도 자신의 지대로 전유할 개연성이 매우 높으며 실제로 이런 일들은 종종 사회적 이슈가 되어 많은 이들을 분노케 하기도 한다. 결국 토지의 사적소유의 모순은 이미 애덤 스미스에서부터 관찰되던 보편적 모순이었던 셈이다.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경제사범에 대한 인식

카센티노의 푸른 언덕에서 아르노 강으로 서늘하고 잔잔하게 흘러내리는 실개천들이 언제나 눈앞에 속절없이 아른거립니다. 그것을 머리에 떠올리는 일이 얼굴 살을 뜯어내는 병보다 나를 더 애타게 목을 태우고 있소. 나를 괴롭히는 엄격하기 그지없는 정의가 하필 내가 죄를 지은 곳을 떠올리게 하며 더 깊은 한숨을 내쉬게 만드는구려. 거기는 로메나, 내가 세례자의 얼굴로 주화를 찍어 위조화폐를 만들던 곳이오. 나는 그 때문에 저 위에 불에 탄 육신을 남겼소.[신곡, 단테 엘리기에리 지음, 박상진 옮김, 민음사, 2008년, pp306~307]

지옥에 떨어진 이 죄인은 스스로를 “장인(匠人)”이라 부르는 아다모1다. 그는 당시 로메나 성2의 군주였던 귀도와 알레산드로의 꾐에 빠져 쇠로 피오리노(fiorino)3라는 – 중세유럽의 부국이었던 피렌체에서 1252년부터 주조하여 통용시키던 – 금화의 위조화폐를 만들었고, 그 탓에 지옥에 오게 됐다는 것이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한 일화다. 이 장에서 단테가 묘사하는 것을 보면 당시 화폐 위조를 중한 범죄로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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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인용문의 뒤쪽을 보면 같이 지옥에 떨어진 시논이라는 다른 죄인4은 아다모에게 “내가 거짓말을 했으면, 넌 돈을 위조했어! 난 한마디 말 때문에 여기 있지만, 넌 다른 어떤 마귀보다도 나쁜 놈이야!”라고 거칠게 힐난한다. 당시 피렌체는 백년 전쟁 동안에 잉글랜드 왕에게 자본을 대기도 하는 등 유럽 각국에 자본을 대주는 금융도시였다. 자연히 위조화폐를 주조하는 죄는 중죄로 다루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들의 고통은 눈에서 눈물이 되어 터져 나왔다. 그들은 비처럼 떨어지는 불꽃과 뜨겁게 달구어진 모래를 손으로 내저으며 이리저리 피해 다녔다. 마치 여름날에 벼룩, 파리, 빈대에 물어뜯기는 개가 주둥이와 발목으로 버둥대는 것 같았다. 고통스러운 불길이 떨어지는 가운데 몇 사람을 눈여겨보았지만, 아무도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모두가 목에 주머니를 걸고 있음을 깨달았다. 색깔과 문장(紋章)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 와중에도 그들의 눈은 주머니를 흡족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같은 책, pp167~168]

한편 이들은 고리대금업자다. 그들이 차고 있는 주머니가 바로 고리대금업자임을 상징하고 있다.5 교회는 1179년 제3차 라테란 공의회를 통해 고리대금업자는 영성체를 비롯한 교회의 구원을 받을 수 없도록 정하였다. 따라서 단테가 신곡을 쓴 14세기 초 고리대금업자가 사후에 갈 곳은 지옥밖에 없었다. 금융업으로 성장한 도시에 살면서 위폐범을 단죄하면서도 고리대금업자를 지옥에 보내는 혼돈된 세계관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여하튼 고리대금업에 면죄부를 준 것은 먼 훗날이 지나서였고 위폐범은 아직도 극악한 중죄다.

Giotto, scrovegni, enrico scrovegni dona agli angeli una riproduzione della cappella degli scrovegni (130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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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고리대금업자라도 교회에 재산을 바치면 성화에도 등장하고 천국도 갈 수 있다

이렇듯 종교적 관념은 언뜻 우리의 경제활동과는 별로 관계가 없어보일지 몰라도 실은 다른 여타 분야에서 그렇듯 우리의 경제관념에도 끈끈하게 얽혀 있다. 이자를 받는 것을 금지한 것은 기독교나 이슬람 모두의 교리였고 앞서 보는 것처럼 기독교 교리는 그런 고리대금업자를 지옥으로 보냈으며 이슬람은 여전히 이자수취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6. 금융 등 3차 산업을 “노동”으로 여기지 않는 관념도 아담 스미스7, 막스 베버8, 심지어 칼 맑스9에 이르기까지 서양 경제학자들의 경제관에 일관되게 반영되어 있다.

중국 사회주의의 증표(證票) 소비

계획경제 체제에서 소비는 ‘증표를 지참한 물건 구매’를 통해 이루어진다. 소비자는 화폐가 아니라 직장에서 분배받은 증표를 주고 해당 물건을 구입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증표 소비’다. 당시에 사용되었던 각종 증표는 120여 종에 달했다. 당시 쓰촨성에서 소비가 실제로 이루어지는 방식을 보여주는 유행어가 있었다. 이를 보면, 국가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국민이 ‘먹고 마시고 싸고 하는 것’ 전부를 관리한다. “계획은 천하를 통일했고, 이 정도 수준은 중국 역사상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일이다.”[덩샤오핑 시대의 중국 1, 조영남 씀, 민음사, 2016년, p211]

중국에서의 계획경제는 마오쩌둥 시대에 체계가 잡혔다. 계획경제에 대해서는 楊江의 ‘건국이래신대경제열점(建國以來十代經濟熱點, 1995)’에서는 “공유제 경제를 기초로 강제성 계획과 행정명령을 주요 수단으로, 위에서 아래로 고도로 집중된 계획 관리를 실행한 경제체제”로 규정하고 있다. 조영남 씨의 책에 따르면 1976년 전체 공업 생산량 중에서 국가 소유(전민소유제)가 80%, 집체 소유가 20%를 차지했으며, 유통 부문에서는 국영 상점이 90.3%, 집체 상점이 9.5%를 차지했다. 이렇듯 견고한 공유제와 계획경제가 결합하면 소비 역시 어느 정도 계획화되지 않을 수 없었을 테고 그 결과가 바로 ‘증표 소비’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화폐의 기능을 대체한 증표는 “필요한 욕망의 이중적인 동시 발생(double coincidence of wants)1의 필요를 줄일 효율적 수단”이라는 화폐의 기능을 공유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특정 소비에 특정 증표를 사용하게 함으로써 호환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중국의 계획경제가 이러한 증표 발행을 통해 소비를 가능케 한 것은 여러 원인이 있을 것이다. 우선 자본으로도 쓰일 수 있는 화폐의 발행이나 유통 없이 소비를 가능케 함으로써 자본축적을 용이하게 하기 위함이나 인플레이션 가능성을 줄일 수 있는 측면이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증표를 사용하면 생산량이 열악할 지라도 증표 발행량으로 소비를 생산량에 맞게 조절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증표는 사회주의 중국 건설 초기에 소비재 생산 대신 중공업으로의 자원 투입을 집중시키기 위해 고안된 유사 화폐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계획경제의 보조 수단이기는 하지만, 조악한 계획경제의 조악한 보조 수단이었다. 이러한 증표 소비는 – 그러할 생산물의 잉여가 많지도 않았겠지만 – “한계효용의 법칙”과는 무관하게 필수품 수요에 대한 단순한 양적 매칭이었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얼핏 자원배분이라는 시장의 기능 없이도 생산과 소비가 유기적으로 매칭될 것 같지만, 다시 증표는 어떻게 분배될 것인가 하는 자원배분의 딜레마가 발생한다. 그리고 그 딜레마는 관료와의 유착으로 해결했을 것이다.

물론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도 이러한 증표 소비의 영역은 존재한다. 정부가 특정 소비재의 소비를 장려하기 위해 발행하는 바우처(voucher), 기업이 자사의 소비를 장려하기 위해 발행하는 상품권, 특정 지자체에서 지역사회의 경제를 독려하기 위해 발행하는 지역 화폐 등 다양한 증표가 존재한다. 소비 행태가 고도화되는 사회일지라도 특정한 목적에 따라 이렇게 증표를 사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증표의 기능을 하는 소비에 대한 자격증 발급은 특히 주택과 같은 생애소비재적 성격을 가진 소비재에서는 특히 적용 가능한2, 또는 사안에 따라서 정책적으로 적극 고려해야 할 보조수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바나나 공화국 이야기

1983년에 국무원은 「도시 비농업 개체 공상업(工商業)의 몇 가지 규정」을 발표했다. 이 「규정」에 따르면, 도시의 개체 공상업은 7명 이상의 직원을 고용할 수 없다. 이는 카를 마르크스(Karl Marx)의 저술에 근거한 규정이다. 『자본론』에서 마르크스는 잉여가치론을 설명하기 위해 8명의 노동자를 고용한 가상의 공장을 예로 들었는데, 중국 당국은 이를 ‘노동착취’의 기준으로 삼았다. 즉 중국 정부가 보기에 자영업이 7명 이상의 사람을 고용하면 사영기업이 되고, 사영기업은 노동자를 착취하기 때문에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개혁과 개방 : 덩샤오핑 시대의 중국 I, 조영남 지음, 민음사, 2016년, p228]

현실 사회주의 블록의 이념적 경직성 내지는 이념적 조악함을 설명하는데 좋은 사례인 것 같아 인용해보았다. 언뜻 보아도 이는 자본론을 마치 종교경전 마냥 기계적으로 해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경직적이고 자의적인 해석이 큐란에 그렇게 나온다는 이유로 여성의 몸을 위아래로 감싸고 순종을 강조하는 무슬림의 해석이나, 성경에 그렇게 나온다는 이유로 극악하게 동성애를 반대하는 개신교도의 해석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경전을 지킴으로써 현실을 개선하는 데에는 기여한 바는 없으나 그 교리를 강요한 이의 권력이나 도덕적 순결성은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그러하다.

하지만 어쨌든 중국은 공산당 일당체제를 유지한 채 시장경제를 성공리에 – 많은 시행착오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 도입하여, 오늘날 미국을 위협할 다음 국가로 평가받는 등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단순히 인용문에서처럼 「규정」이 교조적으로 끝까지 관철됐더라면 달성하지 못했을 위치라 할만하다. 중국이 경제에 있어 교조주의를 극복하고 유연성을 가질 수 있도록 추동했던 개념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바로 정치체제는 유지하면서도 경제체제는 바꿀 수 있다는 – 1992년 10월 공산당 14차 당대회에서 채택된 – “사회주의 시장경제론”이라 할 수 있다.1

중국 공산당이 “사회주의 = 계획경제”라는 도식을 포기한 것은 여러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계획경제/자원동원경제는 사실 戰後 경제개발을 가속화하여야 하는 대다수 국가들에서 체제와 관계없이 시도했던 개발전략이랄 수 있다. 혁명 후의 소비에트가 그랬고, 대공황을 겪은 미국이 그랬고, 10억 인구의 중국이 그랬고, 도시국가로서 살아남아야 할 싱가포르가 그랬고, 북괴와 체제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할 남한이 그랬다. 국가 스스로가 하나의 거대기업으로 기능하는 것은 일종의 戰時경제체제랄 수 있고 체제경쟁에 직면한 많은 나라들은 어느 기간까지는 계획경제 요소를 띠었다고 할 수 있다.2


“제국주의 전쟁의 음모를 분쇄하고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위하여 용감하게 나아가자!”(출처)

하지만 경제가 전간기와 질적으로 다른 고도화 단계에 들어서면서 상명하달식의 행정기능만으로 경제 시스템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이제 어려운 일이 됐다. 빅데이터 혹은 인공지능이 진정 시스템 전체의 원인과 결과를 예측하여 투입-산출을 조정할 수 있는 세상이 오면 모를까 현재로서는 시장에서의 개별 경제단위가 경쟁하며 우열을 평가받고 진화-퇴보를 거듭하는 것 이외에는 딱히 더 좋은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국가는 경제발전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역할에서 “정의로운 심판”의 역할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시대적 흐름과 합당하다는 것이 어느 정도 공유된 개념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최근 트럼프의 행보는 역사의 퇴보를 초래할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겠다느니, 그 재원을 멕시코로부터의 수입관세로 마련하겠다느니 하는 경제원론에도 안 맞는 소리를 해대는 것은 가장 천박한 수준의 “가부장적 아버지” 역할이다. 더욱 불행하게도 트럼프는 일당독재를 통해서가 아닌 대의적 민주제를 통해 선출된 지도자라는 점이다. 즉, 그는 선거를 통해 일당독재 지도자보다 더 많은 정치적 자본을 얻게 됐지만, 적어도 중국 공산당이 그랬던 것처럼 집단적 논의를 통해 시행착오를 수정할 정치적 의지는 가지지도 가지려 하지도 않은 상태기 때문이다.

금융위기를 통해서 교훈을 얻었어야 한다면 대량생산-대량소비의 현대사회에서 국가는 기간산업과 핵심 산업(예를 들면 금융업)은 공공적 기능이 관철되도록 “사령탑”적인3 통제를 강화하되 전 세계적 시장경제는 정의롭게 유지되도록 심판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술이 잘못된 시장경제는 경제격차와 이념적 편견의 격차만 벌려놓아 보호주의, 인종주의, 독자주의 노선만을 강화시켰고, 그 가장 흉악한 결과가 트럼프의 당선이다. 그는 개별기업에 입지를 지정하고, 도드-프랭크법 규정을 무력화시키고, 이민을 통제한다. 7인 이하의 사영기업 허용이 희극이라면 이번 버전은 비극인가?

80년대 중국이 일당독재 바나나 공화국이었다면 현재의 미국은 민주적 바나나 공화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