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경제사

올해의 책

슬슬 한해를 마무리할 시간이 왔다. 오늘 ‘올해의 뫄뫄’ 시리즈를 써볼까 하고 에버노트를 뒤적거리다보니 올해는 개인적으로 나름 참 많은 일이 있었던 해다. 또한 사회적으로도 참 많은 일이 벌어졌던 – 그리고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 해이기도 하다. 많은 사건이 비극이었지만, 그 와중에 그러한 비극을 계기로 화해와 상처 회복의 단초가 마련되기도 했다. 그러한 양면성이 인생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구도 언제나 행복할 수 없고 누구도 언제나 불행하지만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책을 읽는 순간만은 행복하거나 최소한 불행을 잠시 잊는 순간이 아니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紅樓夢

올해는 조설근의 소설 홍루몽을(내가 읽은 것은 나남에서 발간한 총 여섯 권짜리) 다 읽은 해다. 작가의 반자전적 소설이라는 설이 유력한 이 걸작은 주된 줄거리는 한 귀족 집안의 자녀인 가보옥과 임대옥과의 사랑 이야기이지만, 그 안에는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라는 진지한 질문이 담겨져 있다. 또한 작가 스스로가 겪었을 귀족의 풍습에 대한 치밀한 묘사를 통해 우리는 봉건사회의 계급구조를 들여다볼 수도 있다. 이 소설을 “페미니스트 소설”이라 이름붙이는 것은 과잉해석이겠지만, 대부분 여성이 주인공이고 그들의 주체성이 살아있다는 점에서 웬만한 현대소설보다 페미니즘 적이라는 것도 매력요소다.

The Catcher In The Rye

여태 한 대여섯 번은 읽은 것 같은데 올해는 특히 홀덴이 방황하는 주요무대인 뉴욕을 다녀와서 읽었다는 점에서 더 맛깔스러운 독서가 됐다는 점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해 보았다. 즉, 홀덴이 기차를 타고 뉴욕의 펜스테이션에 도착해서 센트랄파크 및 웨스트사이드 등으로 헤매는 동선이 내가 뉴욕에서 헤맸던 동선이기에, 영화화도 되지 않은 이 작품에 비주얼을 가미해주어 더 실감나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다. 한편 트위터에서 화제가 되었던 “원문에서의 head가 ‘머리’냐 ‘귀두’냐”란 논란도 다시 곱씹어 볼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 귀두로 해석한 번역가는 음란마귀가 씐 것 같다.

스트레스테스트 / 정면돌파 / 대마불사

2008년 금융위기를 다룬 책은 여러 권이 있겠지만, 올해에는 이 세권의 책으로 어느 정도 당시의 정황을 되짚어 볼 수 있었다. 앞의 두 권은 금융위기 속의 출연진인 – 그리고 서로 앙숙인 – 티모시 가이트너와 쉴라 베어가 쓴 회고록이다. 그렇기에 둘의 주장이 엇갈리는 장면에서 서로의 주장을 비교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대마불사는 뉴욕타임스의 컬럼니스트이기도 한 작가 앤드류 로스 소킨(Andrew Ross Sorkin)이 쓴 책이다. 작가의 시점에서 각 주요국면의 정황을 치밀하게 조명했다는 점에서 앞서의 두 권이 비어있는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좋은 참고서다. 암튼 대단한 사건이었다.

콜레스테롤 수치에 속지마라

특이하게 건강에 관한 책을 골라봤다. 조니 바우덴(Jonny Bowden)과 스테판 시나트라(Stephen Sinatra)의 공저다. 개인적으로 LDL수치와 총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서 빌려본 책인데 의외의 내공을 느끼고 숙독했던 기억이 난다. 요점은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을수록 심장질환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가설”은 현대의학의 신화이자 상술일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해박한 지식을 통해 콜레스테롤, 인슐린 등 우리 귀에 익숙하지만 정작 그 의미를 잘 모르는 것들에 대해 상세하게 알려준다. 작가의 주장은 굉장히 논란이 많은 주제이기 때문에 독자로서 이를 유의하며 다른 주장과 비교하여 읽어야 할 것이다.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읽다

빵과 자본론이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주제가 한데 만난 책이다. 질풍노도의 삶을 살던 저자는 어느 날 빵을 배워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는데 학자이신 아버지가 문득 자본론을 읽어보라고 해서 그 책을 읽으며 제빵업자로서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는 개인적 경험을 적은 것인데 엉뚱해 보이면서도 읽다보면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결국 저자는 자신의 경제주체로서의 역할을 자본론에서 이상적인 경제단위로 설정한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연합”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편 맑스가 자본론에서 엉터리로 만들어진 빵이 얼마나 나쁜지 설명하는 부분도 있으니 의외로 빵과 자본론은 어울리는 주제다.

(장수의 악몽) 노후파산

NHK 스페셜 제작팀이 실제로 노후파산의 위기에 있거나 이미 파산한 노인들을 심층 취재하여 만든 책이다. 올해 일본에 갔을 때 유난히 노인층이 많이 눈에 띄어서 일본사회의 노령화를 실감하였던 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러한 노인층이 세계 최고의 선진국인 일본에서조차 어떻게 삶의 파행을 겪게 되는 지를 실감하게 됐다는 점에서 충격적이었다. 이러한 비극적인 삶은 단순히 문학 속의 소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 시스템이 해결해야 할 절체절명의 과제다. 올해는 특히 전 세계적으로 기본소득 등 그러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졌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한편 이 책을 읽고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보면 충격이 배가 된다.

문 앞의 야만인

책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뭔지 아리송하게 만드는 제목의 이 책은 M&A에 관한 고전이다. RJR내비스코라는 미국의 거대기업의 합병과 LBO를 둘러싸고 월스트리트의 쟁쟁한 플레이어들이 어떻게 합종연횡을 하며 사투를 벌이는 지가 번역본 900페이지가 넘는 회고록을 통해 소상히 담겨져 있다. 그래서 해당 분야의 종사자들에게나 문외한에게나 좋은 참고서가 될 수 있다. 아직 3분 2 정도 밖에 진도를 나가지 못했지만, 굳이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이유가 이것이다. 특히 투자은행 업계에 종사하고 있다면 어떻게 딜소싱이 이루어지는지, 주선은행이란 어떤 의미인지, 협상이란 무엇인지 등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자기기만의 世界에 대한 단상

내부 메모에서 공매도를 공격한 것이 클라이언트의 역린 逆鱗 을 건드린 것이었다면, 그들을 한층 더 분노하게 할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날 뉴욕 주 법무장관 쿠오모가 공매도에 대한 조사를 시작할 예정이었고, 그에 관한 성명서의 초안을 맥이 검토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성명서가 그의 클라이언트를 분노하게 하고 일부를 떠나보낼 것이라는 것을 맥은 잘 알았지만, 그로서는 검찰을 이용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대마불사, 앤드루 로스 소킨 지음, 노 다니엘 옮김, 한울, 2010년, p664]

2008년 9월의 맨해튼, 인용문이 묘사하는 시점은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고 AIG는 정부의 소유가 된 상태에서 다음으로 몰락할 기업이 어디인지를 시장이 주시하고 있던 시점이다. 인용문에서의 맥은 바로 금융위기 당시 모건스탠리의 CEO였던 John J. Mack 이고 쿠오모는 뉴욕주 법무장관 Andrew Cuomo다. 맥은 리먼의 딕 펄드처럼 공매도가 회사의 몰락을 초래할 악의 세력이라고 간주했다. 그래서 그는 전 직원에게 보낸 이메일에 “우리 주가나 CDS가격이 비이성적인 근거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고 주장하며, 그 배후로 공매도 세력을 지목했다.

주가하락의 배경으로 공매도 세력으로 지목하는 사고의 정서에는 ‘자사(自社) vs 공매도자’의 전선(戰線)을 형성함으로써 내외부를 단속하고 기업가치 하락을 방지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 이때 자신의 회사를 표현하는 키워드는 펀더멘털, 이성, 피해자 등이고 공매도와 이에 부화뇌동하는 시장을 표현하는 키워드는 두려움, 비이성, 가해자 등이다. 이러한 정서가 진실이든 아니든 몰락하는 기업은 – 특히 경영진은 – 대개 이 정서를 자기최면에 가깝게 가지고 있어 실제로 몰락할만한 오류를 범했음에도 이를 부정하는 인지부조화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1

어쨌든 이 에피소드에서 가장 재미있는 관전 포인트는 맥이 악의 세력으로 지목한 공매도자, 즉 헤지펀드가 바로 그들의 고객이라는 점이다. 다른 투자은행처럼 모건스탠리도 프라임브로커리지가 주된 수입원 중 하나인데, 이 서비스는 높은 레버리지를 쓰는 헤지펀드에게 각종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결제 수수료와 이자 등의 수익을 창출하는 서비스다. 헤지펀드의 뒷돈을 대줄 만큼 강고한 시장자유주의자들인 모건스탠리의 경영진이 이제 자신을 공격하는 헤지펀드를 비난하며, 심지어 뉴욕주 법무장관의 힘까지 빌리는 그 자기부정이 관전 포인트다.

이 한 에피소드뿐 아니라 당시의 허다한 에피소드가 그러한 자기부정과 자기기만의 역사였다. 골드만삭스 출신의 행크 폴슨 재무부 장관은 순진한 시장자유주의자인 의원들로부터 “사회주의자”라는 욕을 먹어가며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은행 구제에 투입했고, 영악한 시장자유주의자들인 투자은행 경영진은 자신들의 목숨이 위태롭게 되자 바로 모건스탠리처럼 기꺼이 정부의 도움을 요청한다. 다행히 정부와 시장 모두 서로 친한 시장자유주의자들로 채워져 있어서 도움은 신속했고, 금융위기를 막을 수 있었다. 시장자유주의자들이 구현한 사회주의인 셈이다.

당시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가 망했다면 자본주의는 궤멸상태에 이르렀을 것이다.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을 분리하였다고는 해도 그 둘은 미묘한 신경망으로 연결되어 있는 상태고, 그 상황에서 투자은행뿐 아니라 기업과 서민들도 신용붕괴로 인해 경제활동을 중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듯 자기기만이 전문인 세력이 지구경제의 신경망을 구성하는 현 상황에 염증을 느낀 미국 유권자들은 선악(善惡)을 자신의 입맛대로 구분하는 포퓰리스트에 표를 던졌다. 물론 그는 위의 문제점을 해결할 신경외과 의사가 아닐 확률이 매우 높다.

산업은행과 리먼과의 협상자리에서의 딕 펄드의 행동

민유성은 리먼 주식의 과반수를 살 의향이 있었다. 단, 조건은 리먼의 상업용 및 주거용 부동산 자산을 따로 떼어 배드뱅크를 만듦으로써 리먼 본체, 즉 굿뱅크에 행하는 한국산업은행의 투자가 침해받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중략] 이때 펄드가 나서서 말머리를 잘랐다. “내가 볼 때 그쪽이 큰 실수를 하는 거예요.” 펄드가 민유성에게 말했다. “커다란 기회를 놓치는 거라고. 리먼의 부동산 자산에는 큰 가치가 있습니다.” [대마불사, 앤드루 로스 지음, 노 다니엘 옮김, 한울, 2010년, p363~364]

어쨌든 불발한 거래고 민유성이라는 개인 자체에 그리 신뢰가 가지 않지만, 인용한 이 부분을 보고 있자니 그래도 민유성을 포함한 산업은행 측이 나름 성의 있는 협상을 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자의식 과잉의 딕 펄드는 이전 협약당사자였던 워런 버핏, 모건스탠리, 뱅크오브아메리카 등에 그랬듯이 주제 넘는 고압적인 자세로 리먼의 자산에 대해 착각에 가까운 자부심을 가지고 산업은행에게 무리한 조건을 요구했다. 이러한 태도는 시장의 관점과도 거리가 멀었을 뿐 아니라 다른 경영진 등 내부자의 관점과도 다른 것이었다.

가격협상이라는 것이 매도희망가와 매수희망가의 간극을 좁혀나가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관점이 다른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또한 당시 리먼을 포함하여 많은 투자은행들이 가지고 있던 부동산 자산이라는 것이 여러 희한한 프로세스를 거친 증권화 상품이었다는 점에서 정확한 시장가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점도 충분히 감안할 수 있는 정황이다. 하지만 산업은행과 협상을 할 즈음은 이미 그 복잡한 증권화 상품의 민낯이 드러난 시기였다. 그럼에도 펄드는 저런 허풍을 떨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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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rld Resources Institute Staff – http://flickr.com/photos/wricontest/369118382/, CC BY 2.0, Link

매서운 외모만큼이나 투박한 성격으로 유명한 딕 펄드는 자신이 쌓아올린 제국인 리먼브라더스가 무너져 내릴 즈음에는 거의 인지부조화에 가까울 정도의 심적 상태를 보이고 있었다. 인용한 책에 보면 그가 이사회에게 당시 금융시장의 심각성을 설명하기 위해 초청한 라사드의 한 전문가가 부정적인 이야기를 이어가자 이 발언을 제지하고 나중에 “넌 해고야!”라고 했다고 한다. 산업은행과의 이 협상자리도 애초 리먼 측이 배드뱅크 설립을 전제로 협상하던 자리에 갑자기 나타나 저런 발언을 했다고 한다. 황당한 노릇이다.

사이코패스는 다른 이들보다 보상의 규칙은 재빨리 알아채고 이를 활용하는 반면, 처벌의 규칙에는 둔감하거나 그리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다. 또 다른 연구기관은 이런 상황이 실제 뇌활동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연구하였는데, 사이코패스 성향이 강한 집단은 쾌락과 행복감에 관련된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을 사이코패스 성향이 약한 집단에 비해 4배 이상 배출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연구팀은 “사이코패스는 타인이나 자기 자신이 생명을 위협하는 결과가 오더라도 끝까지 보상을 추구하도록 뇌의 회로가 프로그램돼있다”고 분석했다.[당신 회사의 CEO는 사이코패스일까?]

해당 전문가가 아닌지라 사이코패스가 명확하게 병적 징후로 규정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유난히 그러한 성향이 강한 이들을 집단화할 수 있다면 딕 풀드는 당연히 사이코패스 성향의 집단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처벌의 규칙에 신경 쓰지 않고 끝까지 보상을 추구했다가 망한 인물이 바로 그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뿐만 아니라 당시 많은 투자은행의 임직원들은 이런 사이코패스적 인지부조화에 전염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유명한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란 문구가 회자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금융자본주의 혹은 신자유주의적 가치관에는 어느 정도 이런 사이코패스적인 매몰참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다른 직종에 비해 보수가 많지 않았던 금융시장이 세계화/증권화되기 시작하면서 엄청난 보수를 받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자 금융업자들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보상에 따른 쾌락을 더 중요시하기 시작했고, 그 대표적인 사례로는 LTCM 사태랄지 엔론 사태1, 그리고 결정적으로 지난 금융위기가 있다. 한 사회의 뇌 회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국에 전화해달라는 펄드의 부탁을 거절한 폴슨

오후 12시 35분, 뱅크오브아메리카와의 협상이 실패했다는 것을 폴슨에게 전화로 알리며 펄드는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남은 대안이라고는 한국인들뿐이었다. 펄드는 폴슨에게 리먼을 위해 한국에 전화를 좀 해달라고 했다. 펄드를 위해 워런 버핏에 이어 뱅크오브아메리카에도 전화했던 폴슨은 이번에는 그 부탁을 거절했다.[대마불사, 앤드루 로스 지음, 노 다니엘 옮김, 한울, 2010년, p352]

리만브라더스가 쓰레기가 된 자산을 끌어안고 살아남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경주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리만의 오만한 독재자 딕 펄드는 침몰하는 함선 안에서도 여전히 자신의 배는 튼튼하다는 착각을 하며 구매의향자들에게 배 값을 비싸게 불렀다. 2008년 7월 21일 구매협상을 했던 뱅크오브아메리카에게 리먼이 제안한 주당 가격은 최소 25달러였는데 그날 종가는 18.32달러였다고 한다.

이런 핵노답 상황에서 펄드가 미국의 재무부 장관이었던 행크 폴슨에게 산업은행에 전화를 해달라고 요청했다는 사실이 언급되어 있어 인용해보았다. 만약 당시 폴슨이 이 부탁을 수락하고 산업은행에 – 또는 청와대에? – 전화를 했더라면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 시장상황으로 봐서는 도저히 성사가 어려운 딜이었지만, MB치하의 부조리한 상황을 감안하면 결과는 모를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라 전체가 우리가 신정(神政)국가였음을 확인하고는 멘붕 상태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공통분모로 수렴된 현대국가의 합리성이라는 요소가 송두리째 부정당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단 이러한 극단적으로 “혼이 비정상”인 상태가 아니더라도 현대국가 역시 언제든 합리성이란 이름으로 부조리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 사례가, 개인적으로는 지난 금융위기라고 생각한다.

인용한 책의 등장인물들은 가장 뛰어난 금융전문가와 정치가들이 맨해튼 등의 미국 동부에 모여 세계 최고의 자본주의 국가를 이끌어가고 있었다. 그야말로 현대를 배경으로 한 영웅전이라 할만하다. 하지만 이야기는 이미 수많은 영웅들이 합작으로 자본주의를 망쳐놓은 시점부터 시작한다. 그러니 때로는 과연 대의민주제나 市場이 神政보다 무엇이 어떻게 우월한가 하는 망상마저 생기는 것이다.

어떤 주인의식 없는 주주에 관한 이야기

미국 재무부는 지난 달 씨티그룹에 250억 달러를 투입한 데 이어 이번에 200억 달러를 추가 지원하고 그 규모만큼 우선주를 매입하기로 결정했다. [중략] 지난 주말 씨티그룹의 종가는 3.77달러였고 [중략] 시가총액은 205억달러수준이다. [중략] 결국 개인이 주식시장에 200억달러를 투자했다면 씨티그룹의 지분을 99% 가까이 다 사들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선택은 결국 AIG처럼 국유화하지 않고 기존 경영진을 존중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美는 왜 씨티 살리기 도박 택했을까?, 아시아경제, 2008년 11월 24일]

금융위기 당시 미국 정부가 금융위기 당시 금융회사들에 자본을 투입한 이유는 금융회사들이 과도한 레버리지로 자산을 늘려놓는 바람에 자본이 심각하게 부족했고, 부실한 자본비율은 곧 파산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때에도 美정부는 (반대급부가 거의 없는) 재정지원 혹은 (반대급부가 배당인) 우선주의 형식으로 금융회사의 자본을 보충하였다.1 주식 중에서도 우선주의 형식으로 출자한 이유는 의사결정권이 없는 주식에 출자함으로써, 자본주의의 성지인 미국 경제에서의 금칙어인 “국유화”라는 이념적 공세를 피해가려 했기 때문이다.2

물론 재무부의 씨티그룹의 우선주 매입이 “국유화”에 대한 미국정치의 알러지 반응을 피하고자 함이라는 사실은 납득이 간다. 하지만 인용문에서 언급하듯 사실 재무부는 이미 AIG를 국유화한 바 있다. 그리고 주택 모기지 채권이라는 거대한 자산을 담당하고 있는 프레디맥과 패니메도 “후견체제(conservatorship)”라는 요상한 명칭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본질적으로 그 회사들을 국유화한 것이다. 그럼에도 재무부는 유독 금융위기의 진원지로서 허약하기 이를 데 없는 허울 좋은 이름만 남아 있는 씨티그룹은 기를 쓰고 국유화의 길을 피해갔다.

리 삭스가 지하실 체육관에서 나를 발견하였다. 나는 운동을 멈추고 씨티의 완충 자본인 보통주 500억 달러를 추가하는 서명을 하였다. 우리가 국유화를 원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만큼이나, 쓰러지게 좌시하지 않는다는 모습도 중요했다. 우리는 “리먼 상황은 없다”는 의도를 진지하게 입증해야 했다. 그렇지 못할 경우, 민간투자자는 금융시스템의 자본 확충이라는 위험 투자를 하지 않을 것이었고, 우리는 TARP 자금만으로 충분할지 알지 못했다.[스트레스테스트, 티모시 가이트너 지음, 김규진/김지욱/홍영만 옮김, 인빅투스, 2015년, p366]

한편 구제금융과 우선주 매입이라는 긴급수혈에도 불구하고 씨티그룹의 정상화 기미는 요원했다. 그래서 마침내 재무부는 자신들의 우선주와 민간투자자의 우선주 500억 달러를 보통주로 전환했다. 재무부가 이런 조치에 나선 것은 금융회사의 건전성을 가늠하는 기준인 단순자기자본비율(tangible common equity)에서는 보통주가 보다 신뢰도 높은 주식이기 때문이다. 가이트너는 그야말로 국유화와 파산이라는 양쪽 낭떠러지에서 외줄을 타고 있는 씨티그룹을 – 아니 주주와 경영진의 이익을 – 지켜주는 수호천사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당시 재무부는 보통주 전환을 통해 36%의 지분을 확보함으로써 씨티그룹의 대주주가 됐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기업의 대주주인 재무부는 이제 당연히 주주의 권리와 의무에 따라 회사를 정상화하고, 나아가 국가경제를 정상화시키기 위한 조치에 착수했어야 했다. 애초에 구제금융의 명분이 금융시장 정상화였고, 금융회사에 대한 자금투입이 대출로 이어져 시중에 다시 돈이 도는 것이 바로 그 정상화의 첩경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대주주이자 규제당국인 재무부는 그럴 생각이 별로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재무부는 250억 달러 규모의 정부 보유 우선주뿐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민간 주주의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하는 데 동의했다. [중략] 놀랍게도 재무부는 씨티에 자구책을 모색하라는 요구를 거의 하지 않았다. 보통주 전환을 통해 정부가 확보한 씨티 지분은 전체 주식의 3분의 1이 넘었다. 그뿐 아니라 연방예금보험공사에는 씨티그룹의 자회사이며 부보은행인 씨티은행의 영업을 정지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있었다.[정면돌파, 실라 베어 지음, 서정아/예금보험공사 옮김, 곽범국 감수, 알에이치코리아, 2016년, p302]

실라 베어는 “시장경제에서는 누구나 파산할 자유를 누려야 한다”(p341)고 주장하는 시장주의자였다. 그런 실라베어가 보기에 티모시가이트너는 항구적인 구제금융이 가능하게끔 논리를 펴는 재무부 백서를 내는 등 이른바 “구제금융주의자”였다. 그런데 실라베어가 보기에 가이트너의 더 큰 문제는 그렇게 씨티그룹의 대주주가 되었음에도 주주로서의 마땅한 권리와 의무를 행사하려 하지 않는 것이었다. 재무부는 구제금융만으로도 국유화할 수도 있었던 회사를 열등한 조건의 우선주로 수혈하고 급기야 대주주가 됐음에도 아무 짓도 하지 않은 것이다.3

이념적 지형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자면 실라베어는 명백하게 “자본주의자”다. 그는 저서에서 “자본주의자인 나는 정부가 우선주 투자라도 은행을 소유하는 데 반대하는 입장이었다.”(정면돌파, pp361~362)라고 주장했다. 그가 보기에 우선주 투입은 기업의 파산할 자유를 박탈한 것이다. 그러면 이 반대편에 서있는 가이트너는 어떤 주의자일까? “구제금융주의자”는 뭔가 균형이 맞지 않기 때문에 결국 그는 “사회주의자”다. 소비에트식의 사회주의자는 아니고 “빈자를 위한 자본주의, 부자를 위한 사회주의”라는 당시의 이념적 공세의 맥락에서의 “사회주의자”다.

씨티는 완전히 다른 경우로 오랫동안 통화감독청과 뉴욕연준은행의 ‘최고’ 인가 은행 자리를 유지했다. 국제적인 인지도도 높았다. 따라서 씨티가 부실화된다면 두 규제기관 모두 국내에서만 비난받는 정도로 그치지 않고 국제적인 망신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가이트너의 멘토이자 영웅인 로버트 루빈이 씨티의 회장으로 있었다는 사실도 웃음거리가 될 터였다. [중략] 씨티가 위기에 처하지 않았다면 정부가 그토록 대대적인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시행했을까 하는 의문이 아직까지 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정면돌파, p232]

하지만 어떠한 형식으로든 “국유화”라는 타이틀을 피하려 했던 가이트너 역시 그의 회고록과 실라베어의 회고록을 동시에 읽은 내 관점에서 보자면 분명한 자본주의자다. 다만 가이트너는 “정실(crony) 자본주의자”다. 시장 전체의 이익이나 소비자의 이익이 아닌 일부 자본의 이익을 위해서 정부의 돈을 쓰는 관료라면 그를 세금을 낭비했다고 해서 “사회주의자”라 부를 이유가 없다. 그런 정의라면 개발도상국의 정치권은 온통 사회주의자다. 우리는 이미 그러한 공직자가 주도하는 경제를 일컫는 표현으로 “정실 자본주의”란 표현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금융위기 당시 공화당을 위시한 보수층은 이런 적절한 표현을 피하고 구제금융 자체를 “사회주의적” 조치라 맹비난하였고, 이런 이념적 혼란을 틈타 보수층 내에서는 티파티라는, 진보층에서는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세력이 성장하였다. 즉, 부시 정권의 헨리폴슨이 시작한 정실 자본주의가 오바마 정권의 티모시가이트너에서 만개함으로써 보수층이든 진보층이든 초당적으로 이루어진 구제금융에 대한 – 그렇지만 그들은 거의 혜택을 받지 못한 – 분노가 정치지형을 더욱 더 양극화시켰던 것이다. 그 현재진행형이 도널드트럼프다.

사회과학이 자연과학과 다른 점, 혹은 인간이 균류와 다른 점

생태학자 토비 커스와 그의 동료들이 <사이언스>에 발표한 연구가 이를 증명했다. 이 연구진은 실험실에서 균류를 각각의 용기에서 인의 양을 달리해 배양한 후 클로버 풀과 인연을 맺어주었다. 그랬더니 식물 파트너에게 인을 덜 나눠준 균류는 넉넉히 나눠준 균류에 비해 식물로부터 당분을 10분의 1밖에 받지 못했다. 그런데 무슨 조화 속인지, 식물은 이 기록을 기억하고 있다가 심지어 여러 가지 균류를 섞어서 뿌리에 넣어주어도 사기꾼 균류와는 거래를 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균류에게 당분 보상을 적게 준 식물도 인을 조금밖에 얻지 못했다.[원자 인간을 완성하다, 커트 스테이저 지음, 김학영 옮김, 반니, 2014년, pp241~242]

인(燐)은 질소족 원소의 하나로 동물의 뼈, DNA 등 생체에 중요한 화합물의 구성 성분이다. 따라서 식물이든 효모, 버섯, 곰팡이 등의 균류(菌類)든 생물이라면 이 원소가 꼭 필요하다. 하지만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많은 식물들은 선입견과 달리 인을 스스로 채취하지 않고 인용한 글에서처럼 균류와 거래를 통해 인용한 글에서 언급된 인과 함께 칼슘과 물 등을 얻는다. 균류는 지표면 아래에 있는 인회석 등으로부터 칼슘과 인 등의 필수 무기물을 섭취한 후 남는 무기물을 식물과 거래하는데 그 반대급부로 당분 등을 공급받는다.

재밌는 것은 특정 당사자는 거래당사자가 그 과정에서 상대방이 적정한 거래상대가 아니라고 판단될 경우 인용한 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불공정거래에 대해 적절하게 응징한다는 점이다. 그러한 면에서 식물과 균류의 거래는 시장경제를 매우 유사하다. 서로의 사용가치가 아닌 교환가치의 측면에서 거래가 성사될 만 하면 거래를 하고 이 거래가 공정하지 못하다고 판단될 경우 거래상대방에게 벌칙을 준다는 아름다운 거래의 원칙이 적용되고 있다. 이러한 거래가 서로의 능력 차이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점에서도 시장의 법칙을 따르고 있다.

저자는 이렇듯 식물이 인간세상의 시장경제와 비슷한 법칙을 따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지하세계의 채굴과 무역 시스템이 없다면, 더딘 풍화작용으로 낙숫물 떨어지듯 감질나게 똑똑 떨어지는 무기물 원자에만 의지해서는 대부분의 식물이 생존할 수 없을 것”(p242)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식물과 균류의 거래는 어쩌면 데이빗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을 닮았다. 일례로 포르투갈이 포도주와 옷감을 모두 잉글랜드보다 적은 비용으로 생산할 수 있다면 잉글랜드가 포도주 생산을 포기하는 것이 합당하고 식물이 바로 그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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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lf Lotys (Sicherlich) – 자작, CC BY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377219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식물과 균류의 거래관계에서 보듯 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이 과연 – 인간의 과도한 개입만 제외한다면 – 조화로운 균형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다. 지질학자 필립 앨런이 2008년 <네이처>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대륙이 놀라운 속도로 마모되고 있는데, 이로 인해 지각의 이동이 유발될 수도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식물의 뿌리와 균류의 섬유들이 대륙을 부수고 있고 이로 인해 맨틀이 더 격렬하게 교반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면에서 자연의 균형은 인간의 편견일 수도 있다.

즉, 인용문의 저자는 그런 관점에서 자연은 인간이 개입하지 않으면 생태학적 균형을 유지할 것이라 여겨질 수 있지만, 때로 “불균형도 지구상의 생명의 정상적인 신호가 될 수도 있다”(p247)고 말하고 있다. 지구를 가이아 –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대지의 여신 – 로 보는 이들의 눈으로 보자면 만물은 조화로운 상태를 유지할 것으로 예정되어 있을지 몰라도, 그것조차 인간의 편견일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고 나도 동의하는 편이다. 지구도 전 우주의 역사에서 보자면 스쳐가는 한시적 균형상태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저자는 자연에서의 인간의 개입이 어쩌면 그 자체로도 불균형한 자연에 편향이 조금 더 가감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는 의견을 피력한다. 예를 들면 저자는 “비료를 생산하기 위해 상업적으로 인산염 광물을 채굴하는 것이 허버드브룩에서 균류가 인회석을 채굴하는 것과 얼마나 다를까?”(p247)라는 질문을 던진다. 물론 자본주의의 가공할만한 생산성으로 말미암아 때가 되면 채굴량이 비료생산을 균류의 인회석의 채굴량을 훨씬 초과하겠지만, 어쨌든 요는 본래 자연조차도 불균형의 상태가 자연스러운 것일 수 있다는 가정이다.

그렇다면 자연이 불균형상태일수도 있다는 사실이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사회과학”이라고 부르는 학문분야의 대전제가 사상누각일수도 있다는 판단과 상관있다는 점이라 생각한다. 사회과학이란 용어는 19~20세기 자연과학의 놀라운 발달과 그 발달로 밝혀진 자연의 “합목적적 법칙”이 경제학 등 사회과학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시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관점은 좌우의 입장을 가리지 않고 적용되었다고 여겨지는데, 일례로 시장의 합목적적 합리성은 시장근본주의자들이 즐겨 차용하는 개념이 되었다.

시장근본주의자들은 시장의 법칙 하에 경제주체들의 행동과 가격을 시장에 맡겨두기만 하면 조화롭게도 적자생존의 법칙 등에 따라 우월한 경제주체가 돈을 버는 와중에 잉여인력을 퇴출당하고, 가격은 자연가격으로 수렴될 것이라 전제한다. 이런 아름다운 시장의 작동원리는 인간의 삶에서의 시장이 자연과학에서의 생태적 균형과 비슷하다는 사회과학적 시각을 차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저자가 말했듯 자연조차도 그러한 합목적적 조화 상태와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란 점이다. 이점이 사회과학자를 당혹하게 하는 점일 것이다.

그럼 어쩌란 말인가? 자연과학의 관찰 결과 여태 우리가 선입견으로 알고 있던 것처럼 자연이 조화로운 균형 상태가 아니라면 사회과학에서도 그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불균형 상태가 “자연스러운” 것임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일까? 경제가 언젠가 파국으로 치닫는 것이란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저자는 이에 대해 지혜로운 대안을 제시한다. 저자는 인간은 식물과 달리 “인간이 하는 일을 이해”(p247)하고 있기에 “우리의 행동에 윤리적 차원을 추가”(p247)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이 점이 인간세계를 자연과 구분 짓는 한 특징이다.

인간은 역사 속에서 지속적으로 행동의 윤리적 차원을 추가해왔다. 적자생존의 법칙만이 존재하던 시기에 종교와 法윤리를 추가해서 무자비한 살육을 중단했다. 노예제에 따른 윤리적 폐해가 파국으로 치닫는 시점에서는 노예해방을 통해 그 모순을 해결하였다. 자본주의의 노동착취가 혁명적인 위기를 초래할 시점에는 노동3권 보장을 통해 위기를 돌파했다. 따라서 이런 윤리적인 보정은 경제발전의 자연적 법칙만을 믿는 이들의 편견보다 더 우월하게 인간세상을 치유해 왔다. 인간이 균류보다 우월한 게 있다면 그러한 반추의 능력일 것이다.

티모시 가이트너가 설명하는 ‘금융위기의 역설’에 대한 단상

그렇다고 해서, 나는 “정부가 금융업계에 대해 관대했다.”는 일반인들의 인식이 근거 없다고 반박하지는 않는다. [중략] 부실금융회사의 경영진들이 저택이나 멋진 자가용 비행기를 사도록 구제금융으로 지원한 것이 아니라 금융의 재앙이 경제 전반을 망치지 못하게 막을 다른 방법이 없어서 한 것이다. 금융시스템이 정지되면 신용은 얼어붙고, 저축은 사라지며, 상품과 용역에 대한 수요가 사라지게 되어 대량실업과 가난 그리고 고통을 초래하게 된다. [중략] 이것이 ‘금융위기의 역설’로, 우리가 적절하고 공정하다고 느끼는 것이 때로는 적절하고 공정한 결과를 낳기 위해서 요구되는 것과 정반대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정책결정자들이 위기를 더욱 확대시키는 이유이며, 위기관리의 정치학이 항상 지지를 받지를 못하는 이유이다.[스트레스테스트, 티모시 가이트너 지음, 김규진/김지욱/홍영만 옮김, 인빅투스, 2015년, p591]

경제시스템의 버블이 터짐으로써 위기가 발생한다면 상식적인 대안은 내핍을 통하여 다시 재무제표를 건전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일개 가계의 이야기이고 국가 차원에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것은 여태 형성되어온 버블을 통해 국가의 각 부문이 그에 맞게 성장을 해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국가적인 내핍을 강요하게 되면 버블로 먹고 살던 부문은 영양실조에 걸려 쓰러지거나 사망에 이르게 된다. 결국 버블의 어느 선까지가 “건전한” 버블이고 어느 선까지가 “불건전한” 버블인지 알 때까지 정책결정자는 가이트너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인기 없는 ‘금융위기의 역설’에 근거한 정책을 시행하여야 한다.

이 과정에서 당사자는 억울하겠지만 대중의 분노가 폭발한다. 분명히 월스트리트는 경제위기의 방화범임이 확실한데, “월스트리트 출신”의 가이트너가1 방화범을 구제해줘서 저택과 자가용 비행기를 안겨주었다는 것이 분노의 주된 내용이다. 실제로 그의 회고록에 보면 이렇게 보일 수 있는 정황이 많다. AIG에 구제금융을 안겨주었는데, 그 와중에 직원은 이미 약속되어 있는 막대한 보너스를 받을 예정이었다. 재무부 장관으로서 그 계획을 막아보려 했지만, 법적으로 이는 불가능하였기에 수많은 비난을 들으면서도 내버려둘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가이트너의 회고다. 정확히 정책결정자가 방화범에게 보너스를 주는 그림이 그려진다.

한편 이 시점에서 왜 금융시스템에서 대중의 분노를 촉발하는 ‘금융위기의 역설’이 생기는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금융시스템은 – 또는 서구의 선진 금융시스템 – 시장의 완전경쟁과는 거리가 먼 독점체제이다. 골드만 삭스를 비롯한 많은 투자은행이 포진해있기는 했지만, 이들은 어떻게 보면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월스트리트라는 기업명의 단일 투자회사다. 세계화와 탈규제의 와중에 이들은 엄청난 금융버블을 지구단위로 키웠다. 그런 와중에도 금융시스템의 감독체계는 뿔뿔이 흩어져 있었고 후진적이었다. 가이트는 이런 상황을 “조지 워싱턴 장군의 군대로 세계 제3차 대전을 치르는 것”(602p)과 같았다고 회고한다.

결국 가이트너가 각종 경제지표를 보여주며 회고하듯이 분명 인상적으로 짧은 기간 동안에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경제위기는 어느 정도 잦아들었다. 그리고 조지 워싱턴 장군의 군대는 도드-프랭크 법 등을 통해서 어느 정도 선진화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시장참여자 모두가 어느 선까지가 “건전한” 버블이고 어느 선까지가 “불건전한” 버블인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고, 자신들은 처벌받을 아무런 이유가 없고2 단지 잠시 운이 나빴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금융의 귀재”들이 월스트리트에 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신용이 얼어붙지 않게 하는 대신에 우리는 방화범인 금융독점자본주의를 보호해줄 수밖에 없었다.

가이트너는 회고록에서 월스트리트를 처단하라는 요구를 지속적으로 “구약성서적인 정의”를 요구하는 근본주의자로 몰아세운다. 이러한 그의 사고방식은 ‘금융위기의 역설’에 따른 정치학이라는 케인스주의적 사고도 자리 잡고 있는 한편으로 납세자나 – 심지어 의회에게 – 금융과 같이 어려운 분야를 난도질하게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엘리트주의적 사고도 자리 잡고 있다. 사람들이 그를 부당하게 월스트리트 출신이라고 몰아세웠지만, 그의 지사(志士)적 업무처리에는 월스트리트 편향으로 흐를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금융시스템 고유의 – 특히 미국 Fed의 – 엘리트주의도 한몫하고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현상온존 위주의 엘리트주의적 관점을 제쳐두고 본다면 가이트너의 처방은 결과적으로 옳았다. 불길이 온 산을 뒤덮고 있는데 채권자에게 헤어컷을 요구하면 그 채권자는 불씨를 다른 산으로 가지고 갈 것이었다. 그래서 구약성서적 정의를 실천하기 보다는 헤어컷을 하지 않음으로써 불씨를 옮기지 말라는 신호를 주었다. 그런데 이런 처방은 여태 IMF외환위기 때 한국 등 제3세계에 취한 조치 등을 생각하면 극히 이례적인 처방이다. 명분은 그때의 위기는 국지적이고 2008년의 위기는 세계적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옳은 말이고 그게 또한 월스트리트 단일기업의 금융시스템이 가지는 본질을 말해주고 있다.

바로 온 세계의 금융시스템, 또는 미국 정부조차 월스트리트의 인질이라는 사실.

우리는 또한 이 문제에 글로벌한 해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위기가 전 세계적이었고, 미국은 국내의 실패만이 아니라 해외의 취약한 감독기준으로 인해서도 손상을 받았다.. 만일 우리가 강화된 기준을 글로벌하게 권유하지 않고 단독으로 부과했다면, 미국은 시스템 강화의 성과는 못 얻으면서 미국업계의 전 세계 시장점유율만 감소시켰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런던 G20회담에서부터 시작하여, 바젤III라고 알려지는 체계와 파생상품 감독, 글로벌 은행의 청산 처리방식을 포함하는 국제금융 대책을 추진하였다.[같은 책, p4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