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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포스트 컬럼]트럼프는 북한을 위협하는 대신 이것을 시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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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Delury는 서울에 있는 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중국학을 가르치고 있는 부교수다.

시리아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미사일 공격은 좌우 양측으로부터 환호를 불러일으켰고, 몇몇 열광자로 하여금 북한에 대한 “군사적 해결”에 관한 논쟁을 촉발하게끔 했다. 한국에 대한 행정부의 대다수 레토릭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비교는 매우 위험한 오해다. 타격을 하면 북한이 반드시 더 강하게 보복할 것이다. “외과적” 공습으로 그들의 능력을 – 핵 또는 다른 것들 – “선제적으로 무력화”시킬 수 있는 군사적 수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의 무기 프로그램을 저지하려는 그 어떠한 무력의 사용도 전쟁을 촉발할 수 있고, 이 비용은 엄청날 것이다.

미국 우선의 시대이니 우리는 북한의 포나 단거리 미사일의 사정권에 놓인 서울에 사는 1천만 명에게 닥칠 죽음과 파괴를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는 이 곳의 기지들에 있는 군인과 그들의 가족을 포함하여 남한에 거주하는 약 14만 명의 미국 시민과 이웃 일본에 있는 추가적인 시민들을 신경 쓰고 있는 것인가? 또는 남한의 미국과의 1,450억 달러의 상호무역을 포함한 다른 세계와 얽힌 1조 4천억 달러의 경제는 신경 쓰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북한의 미사일이 아시아에서 가장 복잡한 공항인 인천 국제공항이나 세계 6위 규모의 컨테이너 항구인 부산에 쏟아지는 것은 신경 쓰고 있는 것인가? 중국의 관문에 대화재가 발생하거나 일본이 휩쓸려 들었을 때 세계 경제에 어떠한 일이 일어날 것인가?

분명히 미국의 대중과 정당을 초월한 의회는 이러한 비용들이 감내할 수 없고 상상할 수 없다는 데에 동의할 것이다. 행정부에 존재하는 많은 분별력 있는 전략가와 정책결정자를 고려할 때 군사적 악담은 허세라 결론내리는 것이 이성적일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그러한 것들은 현실적으로 임박한 질문, ‘직접 대화나 개입으로 나아갈 외교적 옵션을 선택하기보다 중국의 경제제재를 통한 경제적 압력에 직면해 그들이 얼마나 견딜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회피하는 것이다.

오바마 정부는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지만, 북한이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권력이동을 함에 따라 경제제재와 압력에 돈을 투자했다. 불행하게도 북한은 이란과 같은 정상적인 무역국처럼 호주머니 사정이 막바지에 몰리지 않았다. 북한 사람들은 이미 국제 경제로부터 진작 고립되었고 국제사회와 절연되어 왔기 때문에 고립이 심화되어도 그들의 셈법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김정은에게 있어 한 가지 희망적인 것은 그가 북한의 경제를 향상시킬 수 있는 야망을 품고 있다는 것이고, 그의 내부 정책들은 이미 완만한 성장세를 이끌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첫 번째 관심사항은 정권의 생존과 국가 안보이며, 그는 이를 위해 핵 억지력이 필수적이라고 간주하고 있다(슬프게도 합리적인 추론이다). 8년간의 경제제재와 압력은 – 김정일의 죽음 직전의 짧은 외교적 시기를 빼고는 – 평양이 핵무기를 필요로 하지 않게 깨닫게 하거나 북한이 그들의 능력을 향상시키고 무기고를 확장하는 것을 방지케 하는데 거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 식의 접근 방법은 끝났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정말로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고 싶다면, 그것은 대중을 중국의 지도자 시진핑이 김을 무릎 꿇리는 것을 헛되이 기다리며, 무모한 전쟁의 위협으로 시야를 흐리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대신 보다 신중한 조치는 핵분열 물질 생산 사이클의 동결, 국제핵에너지기구 감독으로의 복귀, 그리고 핵 실험과 장거리 탄도 미사일(위성 발사를 포함한)에 관한 유예에 관해 협의하는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 대신에 미국은 최소한 남한과의 연합 군사 훈련의 연기와 같은 당면한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 김은 어쩌면 그 훈련 규모의 축소와 같은 더 덜한 요구에도 응할지 모른다. 또는 그는 어쩌면 다른 종류의 거래에 – 예를 들어 1953년의 정전협상을 한국전쟁의 종식을 위한 여하한의 종류의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대화의 시작 – 응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옵션들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테이블에 다가서는 것이다. 2개월간의 대규모 훈련이 다가오고 있는 지금이 그러한 일을 벌일 좋은 타임이다.

동결은 근원적인 역학을 바꾸고 각 당사자가 문제의 근본이라 여기는 것들을 설명할 수 있는 장기적 전략으로 가기 위해 필요한 첫 걸음일 뿐이다. 우리는 김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는 우리가 대화를 시작할 때까지 그것을 얻기를 포기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권력을 잡은 이후 그의 야망이 핵 억지력 이상으로 나아가 진정 경제개발로 가고자 한다는 강한 신호가 존재한다. 전쟁 위협이나 경제제재의 심화보다는 동아시아의 대부분의 나라들이 취하고 있는 경로로 – 권력에서 번영으로 – 김을 살짝 찔러 넣어주는 것이 보다 생산적인 방법일 것이다. 만약 김이 북한의 개발 독재자가 되고 싶다면 미국의 최선의 장기 전략은 그가 그렇게 되게 해주는 것이다. 우리는 그가 그러한 과정의 첫 단계에서 핵 억지력을 포기할 것이라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게 궁극적으로 그가 그렇게 하도록 만드는 현실적이고 유일한 방법이다.

이제는 채널을 다시 열고 긴장을 완화하고 북한의 능력이 현재 있는 곳에 머무르게 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으로 뛰어오르기 위한 시점이다. 그래서 미국은 서울의 새 정부 및 다른 이들과 긴밀하게 협조하면서 북한을 지역적 안정과 번영에 녹아들게 만들 장기 전략을 지원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김은 핵 프로그램에 대한 예산을 절대 줄이지 않을 것이고, 경제제재는 북한 대중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고, 압박은 그곳에서의 인권침해를 개선하는데 실패할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 대중의 고통을 경감시키는 최선의 방법은 그들이 경제적으로 성공하게 하여 나라를 차츰 차츰 개방하게 돕는 것이다.

단순히 경제적 고통을 가중시키고 군사적 공격을 위협하고 긴장을 높이게 되면, 미국은 북한 체제의 최악의 추세로 가도록 도울 뿐인 것이다. 김의 핵에 대한 야망은 더욱 강해질 것이고 북한의 능력은 높아질 뿐이다. 코스를 반대로 바꿀 때다.

“녹슨 지대(Rust Belt)”에서의 외침

출구조사에 따르면 미국 전역에서 트럼프는 힐러리 클린턴에 비해 58:37의 추세로 유권자의 70%를 차지하는 백인 유권자의 지지를 획득했다. 백인 유권자 중 대졸자가 아닌 이들의 유권자의 비율은 67:28이었다. 그러나 학위를 가진 백인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49:45의 비율이었다.[‘Forgotten’ white vote powers Trump to victory]

이러한 눈에 두드러진 결과 때문에 결국 트럼프는 인종주의적 편견을 가진 저학력의 백인 유권자의 몰표 덕분에 선거에서 승리했다는 해석이 가능하게 되었다. 비록 어떤 트위터 사용자는 “모든 트럼프 지지자가 인종주의자인 것은 아니다”라고 항변했지만, 이 트윗에 다른 사용자가 “트럼프를 지지한 모든 이는 인종주의자에게 투표한 것이다”라고 응수함으로써 그의 볼멘소리에 돌직구를 던졌다.

성난 백인 유권자의 목요일의 외침은 오하이오와 인디아나와 같은 러스트벨트에서 가장 시끄러웠고 이전의 민주당 강세지역이었던 미시간이나 펜실베이니아와 같은 곳에서도 – 두 곳 모두 1988년 이래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승리한 적이 없다 – 작동하였다.[‘Forgotten’ white vote powers Trump to victory]

백인 투표자의 몰표가 더욱 극적으로 두드러졌던 지역은 전통적으로 민주당의 텃밭으로 여겨졌던 소위 “러스트벨트(rust belt)”였다. 트럼프는 위스콘신, 미시간,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등 오대호 주변 미국의 전통적인 공업지대인 러스트벨트에 위치한 5개주에서 승리함으로써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클린턴은 당초 이 중 적어도 위스콘신, 미시간, 펜실베이니아에서 우세할 것으로 예측됐었다.

트럼프는 선거기간 내내 인종주의적 언행을 지속했고 이로 인해 많은 양심적 유권자들과 유색인종을 마음 아프게 하였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트럼프의 이런 공격은 주로 경제적 박탈감을 가지고 있는 백인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트럼프는 전략적으로 미국 정부가 정당에 불문하고 지속적으로 추진한 “자유무역협정” 때문에 일자리를 잃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 응답자의 93%가 미국에서 “너무 많은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 응답자의 74%가 “중국산 제조품”에 대해 비호감이었는데, “보수적” 응답자는 77%가 그랬다.
– 응답자의 96%가 “미국산 제조품”에 호감을 보였고, “공화당의 보수적 당원”중에서는 98%였다.
– 응답자의 92%가 “너무 많은 일자리가 외국으로 나가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86%는 “미국에서는 더 이상 어떠한 것도 만들지 않을 것 같다”고 걱정했다.
[“Free Trade”: The Elites Are Selling It But The Public Is No Longer Buying]

올 초 한 단체가 오하이오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의 결과다. 러스트벨트의 유권자들이 무역에 대해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결과다. 이 결과 당시 민주당 예비선거에서는 역시 “자유무역”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가지고 있던 버니 샌더스가 돌풍을 일으키며 미시간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압도하였다. 당시 기사에 따르면 민주당 유권자의 58%는 무역이 “미국에서 일자리를 없앤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미국에서의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다. 제3세계로의 공장의 이전을 유혹하는 자유무역협정, 자동화 기술의 발전, 혁신을 거부한 미국 제조업의 경쟁력 상실 등등 원인은 다양할 것이다. 이 중 어느 원인이 더 주되게 지역의 쇠퇴를 초래하였는지는 계속 논의할 주제이지만, 당연히 정치적으로는 자유무역협정이 가장 공격하기 쉬운 대상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적 공격에서 외통수로 몰린 것은 단연 힐러리 클린턴이다. 그가 퍼스트레이디이던 지난 1994년, 남편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은 당초의 정치적 입장을 뒤집고 그 뒤 악명이 높아질 NAFTA에 서명한다. 힐러리 클린턴은 훗날 입장을 바꾸지만, 당시 이 협정에 찬성했다. 이번 선거에서도 그는 자유무역협정, 특히 TPP지지하였다. 러스트벨트의 유권자에게는 무척 인기 없을 공약이었다.

외교관계협의회의 Edward Alden은 “NAFTA는 상징적일 뿐이다. 다만 그 협정은 미국이 자신보다 훨씬 임금이 싼 나라와 맺은 최초의 대규모 협정이었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즉, 이전부터 이미 러스트벨트를 포함한 미국의 제조업은 쇠퇴하던 중이었고, NAFTA는 그러한 경향을 상징하는 하나의 변곡점이 된 것이다. 따라서 힐러리 클린턴은 적어도 이 지역에서 가장 인기 없는 민주당 후보가 될 운명이었다.

어쨌든 이 지역의 실제 경제사정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1999/2000년의 피크를 지난 후 이 지역의 소득은 – 아이오와를 제외하고 – 퇴보했다. 최근 다시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오지만, 노동자들은 트럼프가 재건하겠다는 “위대한 미국(Great America)” 시절의 노동자의 고임금 정규적 일자리가 아닌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에 만족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제 이런 상황을 트럼프가 되돌릴 수 있을까?


트럼프는 집권 이후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제소하고 자유무역협정의 재협상에 나서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그의 자유무역에 대한 무모하리만큼 단순한 접근은 많은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다. 사실 미국은 러스트벨트가 쇠퇴하는 와중에 중국의 저가 제조품 덕에 고성장에도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았던 골디락스 시절을 누렸었다. 트럼프의 현재 공약은 이 경제순환 고리를 대책 없이 끊는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노동계급들은 골디락스라는 환상 속에서 자신들이 일하던 일터를 멕시코나 아시아의 노동계급에게 빼앗겨버리고 줄어든 소득을 보충하기 위해 은행으로부터 빚을 얻고, 월마트에서 중국산 싸구려 상품을 구입하는 자기 파괴적인 소비패턴으로 버텨왔던 것이다. 물론 아시아 노동계급이라고 나을 것은 없었다. 약간의 실질소득 증가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잉여는 다시 자국 내 기업의 주주들에게 배당으로 돌아가거나 국가의 외환보유고에 쌓여 선진국에 재투자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던 것이다.[골디락스의 환상과 그 결과]

나는 자유무역협정의 위험성이 단지 트럼프의 지나친 허풍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많은 자유무역협정이 그렇듯이 TPP역시 지적재산권에 대한 지나친 보호, 투자자국가소송제도 등 다국적 자본에게 지나치게 유리한 독소조항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면에서 트럼프를 찍은 백인 노동계급도 일말의 진정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꿈꾸는 위대한 미국이 “위대한 백인의 미국”일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 면에서 미국의 리버럴은 – 브렉시트를 수세적으로 방어할 수밖에 없었던 영국의 리버럴도 마찬가지지만 – 전통적인 제조업 지역의 노동계급(또는 그 노동계급의 향수를 가지고 있는 노인들)의 외침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노동계급 표에 의존하던 서구의 리버럴이 이제 그들을 무시하고 사회문화적인 진보에 주력하는 동안, 이 (쇠퇴하는?) 계급은 트럼프와 같은 극우의 유혹에 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백인 노동계급 남성은 현재의 시스템이 자신들을 위해서 움직이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일하는 미국(Working America)’의 멤버인 ‘전미철강노동자(United Steelworkers)’의 부의장 Fred Redmond의 말이다. “펜실베이니아의 전역에 걸쳐 트럼프를 그들이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이 시스템의 대안으로 여기는 이들이 있습니다.” 고철회사의 매니저인 Matt Sell이 이중 하나다. “우리는 한번 흔들어 엎어줘야 합니다. [중략] 트럼프를 찍는 것은 진정 워싱턴에 있는 복도 양쪽에 있는 정치 내부자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입니다.”[Labor Makes Clinton’s Case to Rust Belt Whites Curious About Trump]

하필 그 메시지의 전달자가 트럼프라니. OT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