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양적완화

연준의 금융만능주의

9월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기간 동안 호니그는 연준이 하고 있는 작태에 대해 가장 압축적이고 통렬하게 비판하였다. 그는 미국의 심각한 경제침체가 은행 대출의 기회 박탈때문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은행은 이미 빌려줄 돈이 많았다. 각종 심각한 문제가 악화되어가는 실물 경제에서의 진정한 문제는 연준이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금융 시스템 밖에 놓여있었다. 금리를 제로 상태로 유지하고 금융 시스템에 6천억 달러를 쏟아붓는 것은 – 위험한 대출이나 금융적 투기 이외에는 갈 곳이 없는 돈 – 미국 경제의 근본적인 기능장애를 해결할 수 없었다. “난 고금리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에요. 난 그런 적도 없어요. 난 제로 금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고출력의 수십조 달러를 투입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호니그가 덧붙였다.[The Lords of Easy Money : How the Federal Reserve Broke the American Economy, Christopher Leonard, 2022년, Simon & Schuster]

벤 버냉키가 연준 의장으로 있던 글로벌 금융위기에 즈음하여 연준이 어떠한 정책을 시도하였고 이로 인한 내부의 갈등과 그 경제적 효과에 대해 서술한 책이다. 인용한 부분은 당시 캔자스시티 연준 총재이자 FOMC의 멤버였던 토마스 호니그(Thomas M. Hoenig)의 활동과 견해에 관한 에피소드다. 호니그는 당시 열린 FOMC에서 2010년 무렵부터 버냉키의 제로 금리 및 양적완화에 반대하며 버냉키에게 박힌 인물이다. 결국 그의 외로운 투쟁이 헛되게도 연준은 엄청난 돈을 경제 시스템에 쏟아부으며 위기를 돌파하려 했다.

양적완화라는 사실상의 마이너스 금리의 시대는 당시의 경제 시스템을 정상으로 돌려놓은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후과는 어쩌면 최근 몇 년간의 인플레이션과 이에 따른 연준의 고금리 정책이라는 또 다른 ‘뉴노멀’의 시대를 초래하였을 것이다. 이에 대한 고찰은 뒤로 하고 내가 저 글을 인용한 이유는 호니그의 금융만능주의에 대한 경고에 어느 정도 공감하기 때문이다. 금융만능주의란 실물경제가 금융과 긴밀하게 결합하여 작동하기 시작한 이후 실물경제의 모순을 금융적 수단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맹신을 묘사하고자 생각해낸 표현이다.

실제로 현대의 경제 시스템에서 화폐, 채권, 주식, 증권화, 유동화, 보험 등 실물경제를 원활하게 움직이게 하기 위한 각종 금융적 수단이 고안되면서 금융은 실물경제의 활력을 불어넣는데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부문이 된 것이 사실이다. 개인이 집을 한채 사더라도 대출을 통한 레버리지라는 금융수단이 아니고서는 쉽게 결정할 수 없는 경제행위가 되었다. 그렇기에 금융을 통한 유동성 공급은 대량생산/대량소비 시스템에서의 경이적인 경제성장에 큰 몫을 담당하였고, 전 세계 경제는 통합된 금융 시스템으로 묶여 돌아가는 생태계로 발전하여 왔다.

한편으로 이미 많이 알고 있다시피 금융은 한편으로 그 자체가 문제를 발생시키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로 미국 주택시장에 지나치게 많은 유동성을 공급하여 전체 경제 시스템이 망가졌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를 들 수 있다. 결국 금융 시스템이 실물 경제에 공급하는 유동성의 적정량은 실물 경제가 창출해낼 수 있는 사용가치(worth)가 감내해낼 수 있는 수준이 될 것이다. 만약 유동성 공급이 이 가치를 초과하게 된다면 일부 자산의 가격에 거품이 끼면서 사용가치와 무관한 교환가치(value)가 형성될 것이다. 이것이 허다한 금융위기의 원인이었다.1

2010년 버냉키의 시도는 실물가치가 형성되고 있지 않은, 즉 기초체력이 없는 경제 시스템에 양적완화라는 근육 촉진제를 억지로 주입하였던 시도라고 생각한다. 이로 인해 단기간 경제는 어느 정도 기력을 회복하였다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촉진제의 비용은 지금 연준의 재무제표, 과도하게 공급된 부동산, 미국채를 잔뜩 사들여놓은 주요국의 외환보유고 등에 임시로 쌓여있다. 이러한 거품은 팬데믹 시기를 거치면서 실물 경제의 기능마비로 인해 더욱 커졌고 이로 인해 파월의 연준은 그간의 제로 금리를 끝내고 고금리 정책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해 한국의 아파트 가격이 크게 떨어지면서 많은 시장참여자는 연준의 정책이 자신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 가를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실물과 금융이 글로벌 단위에서 연계가 되면서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의 시장참여자도 금융정책 기관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미연준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시대가 되었다. 문제는 다시 원래의 문제의식으로 돌아가 관심도의 증가가 연준이 할 수 있는 능력의 증가는 아니라는 점이다. 교환가치의 증감이 사용가치의 증감으로 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은 금융 GURU들의 오만함일 것이다.

위기의 이연을 위한 양적완화가 초래한 결과

경제학자들은 통화당국이 상업은행에 단기 준비금을 제공하고 장기 국채를 매입함으로써 중앙은행의 채권매입 프로그램이 사실상의 재정정책의 하나였다는 것에 동의한다. 최근까지 이건 괜찮은 비즈니스처럼 보였다. 채권은 기술적으로 수익이 거의 없는 반면 조달비용이 무척 저렴했기 때문에(예를 들어 유로존에서는 -0.5%) 중앙은행은 어쨌든 이익이 났다. 그러나 많은 나라에서 물가가 두자릿수에 이를만큼 치솟음에 따라 중앙은행은 정책금리를 급하게 올릴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단기 금리가 장기 채권수익률을 뛰어넘으면서 조달비용이 증가하였다. 결과적으로 중앙은행은 자산의 손실에 직면하여 채권매입 프로그램의 재정 리스크가 현실화되고 있다.[The Fiscal Cost of Quantitative Easing]


금융역사에서 전세계에 큰 파급효과를 초래한 양적완화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의 양적완화, 그 다음이 이번 팬더믹 이후의 양적완화라고 할 수 있다. 두번의 양적완화에서 공급된 유동성이 팬더믹 이후 복합적인 요인과 맞물려 전세계적인 인플레이션에 악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어림짐작할 수 있는 바이지만, 이를 공식적인 발언으로 인정한 중앙은행 관계자는 소수에 불과하다. 어쨌든 그 결과 상당기간 지속되었던 제로금리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사상 초유의 속도로 금리가 상승하고 있다.

지난 3월 연방준비제도의 의장 제롬 파월은 한 TV인터뷰에 출연했다. 질문자는 파월 의장에게 “Fed가 경제에 투입할 수 있는 화폐량에 제한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했고, 파월 의장은 “우리는 계속 빚을 창출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주안점은 가계와 기업에게 경제에서의 신용의 흐름을 지원하기 위해서다”라고 발언하여 사실상 그런 제한은 없음을 인정하였다. 그리고 3월 23일 긴급성명을 통해 사실상의 무제한적 양적완화를 선언한 이후 최근까지 파월 의장은 자신의 인터뷰 발언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Fed의 자산을 거침없이 늘려 마침내 최근 7조 달러(!)까지 자산이 늘어났다. [Fed의 무제한 양적완화 도박은 성공할 것인가?]

2년 전에 이 블로그에 올린 글의 일부다. 각국 중앙은행의 이 무제한 양적완화의 결과 2년 동안 의 세계경제를 되돌아보면 각국의 국경의 봉쇄와 락다운이라는 초유의 사태에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경제는 유지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주요국에서 주가도 뛰고 집값도 뛰고 ‘유행병의 영향이 있는가’ 싶을 정도로 자산가에게는 행복한 2년이었다. 그리고 이연된 위기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즈음에 본격화된 것 같다. 러시아가 유럽으로의 가스 공급을 사실상 중단하면서 저인플레의 민낯이 드러나기도 했다.

휴 필 BOE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이날 영국 상원에 출석해 “최근 물가 오름세의 주원인은 천연가스 가격 상승”이라면서도 “또 다른 원인으로 통화정책에 대한 BOE의 결정도 포함된다고 하는 것이 정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후적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지금이라면 그런 (완화적 통화정책을 지속하는)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략]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경우 인플레이션 원인으로 통화정책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연준 올 3월 이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성명서에서 △팬데믹 △에너지 가격 상승 △러시아의 전쟁 △중국 도시 폐쇄를 인플레이션의 원인으로 꼽고 있다.[BOE 수석 이코노미스트 “펜데믹 양적완화는 실수였다”···중앙銀 ‘인플레 유발’ 첫 인정]

팬더믹에서의 양적완화는 이전의 양적완화에서도 그랬지만, 그 수혜자는 주식과 주택을 소유한 자산가였다. 그리고 이연된 인플레이션이 경제를 침체에 빠트리려할 즈음에 파월은 노선을 180도 선회하여 정책금리를 올렸다. 다시 처음 인용문으로 돌아가 이 경우 중앙은행은 그들의 포트폴리오에서 손실을 입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중앙은행의 이익이나 손실은 해당국의 재무부처로 귀속되므로 결국 손실부담의 주체는 납세자다. 인플레와 납세로 두번 고통을 받는 셈이다.

Fed의 무제한 양적완화 도박은 성공한 것인가?

Fed의 무제한 양적완화 도박은 성공할 것인가?

지난 3월 연방준비제도의 의장 제롬 파월은 한 TV인터뷰에 출연했다. 질문자는 파월 의장에게 “Fed가 경제에 투입할 수 있는 화폐량에 제한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했고, 파월 의장은 “우리는 계속 빚을 창출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주안점은 가계와 기업에게 경제에서의 신용의 흐름을 지원하기 위해서다”라고 발언하여 사실상 그런 제한은 없음을 인정하였다. 그리고 3월 23일 긴급성명을 통해 사실상의 무제한적 양적완화를 선언한 이후 최근까지 파월 의장은 자신의 인터뷰 발언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Fed의 자산을 거침없이 늘려 마침내 최근 7조 달러(!)까지 자산이 늘어났다.

이는 전년도 자산 대비 약 70% 증가한 것으로 아직까지는 금융위기가 닥친 2008년의 151.4%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현재 반기가 채 지나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연 증가세는 2008년의 추세를 따라잡을지도 모를 일이다. 혹자는 자산이 10조 달러까지 늘어날 수도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한편, 단순히 Fed 자체의 자산변동에서만 이례적인 것이 아니다. 주요 중앙은행의 행보와 비교 해봐도 Fed의 행보는 압도적이다. 팬데믹은 전 세계적인 재앙으로 각국에서 경쟁적으로 양적완화를 추진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다른 중앙은행의 자산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으나 감히 Fed의 행보와 비할 바는 아니다.1

개인적으로는 제롬 파월의 그동안의 행보를 볼 때 이번 행보는 매우 이례적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사태 전까지만 해도 파월은 그를 뽑아준 트럼프의 금리인하 요구 등 월권행위와 온갖 인신공격에도 꿋꿋이 저항해왔다. 이런 희한한 정황 덕택에 나름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지키고 있다며 초당적으로 칭찬을 들어온 터였다. 그런데, 물론 트럼프 좋으라고 한 일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파월은 팬데믹 사태가 닥치자 트럼프가 상찬을 늘어놓을 만큼 깜짝 놀랄 조치를 단행하였다. 나름 보수적 견지를 유지해온 그이기에 이번 양적완화가 유난히 획기적인 조치임은 틀림없다.

국내 증권사의 한 애널리스트는 파월의 전향적인 조치의 배경으로 주택저당증권(MBS) 시장의 불확실성 증가에 대한 Fed의 우려를 지적했다. 그는 “코로나19로 인해 부동산 시장이 급격하게 냉각되며 MBS 펀드에서 환매 요청이 급증해 MBS 매도가 이어졌다”고 지적하였다. 예전 글에서도 지적한 바 있는데 MBS의 직접매입은 금융위기를 계기로 Fed의 주업무가 된 분야다. 당시의 부동산금융시장의 붕괴로 사실상 미국의 부동산증권 시장이 국유화된 상황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팬데믹으로 말미암아 다시 그 시장이 요동치고 있기에 Fed는 신속하게 개입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패니메와 프레디맥은 2008년 당시 미국 내의 12조 달러의 모기지 시장에서 반절에 육박하는 금액을 보유하거나 보증하고 있었다. 2008년 9월 7일 연방주택금융청은 이들 회사의 실질적인 국유화를 선언했다. Fed의 MBS구입 프로그램은 이러한 배경 하에 시작되었다. 망할 회사에 정부가 주식을 취득하여 국유화시키고 그 회사의 대표적인 상품을 Fed가 구입해주는, 사상 초유의 업태가 시작된 것이다.[우리가 “자본주의”라 부르고 있는 어떤 경제 체제]

미국 채권시장 내 MBS 잔액은 약 9조7000억달러로 지난 2018년 기준 미 채권시장의 22%를 차지하며 전 세계 채권 시장에서 미국채 다음으로 중요한 채권이다. 이 채권을 Fed가 매입함으로써 미국의 집값은 안정을 찾게 되었다. 현재 Fed가 들고 있는 MBS 잔액은 전체 잔액의 1/3 정도로 알려져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채권을 중앙은행이 그렇게나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대단히 비정상적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그간 서서히 비중을 줄여오던 Fed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다시 대규모의 채권매입에 나서게 된 것이다. 늪에서 서서히 발을 빼왔던 Fed가 다시 발을 푹 집어넣은 셈이다.

2020년 5월 27일 현재 Fed의 MBS 매입현황은 1조8천5백만 달러로 연초의 1조4천만 달러 대비 무려 32% 증가한 상황이다. 즉, 전임자들이 언젠가는 청산하겠다고 했던 MBS 포지션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었고, 팬데믹이 도래하자 그 자산은 일시에 급격하게 증가하게 된 것이다. 이번 위기의 심각성은 어쩌면 이전 금융위기에서 입은 깊은 상처가 치유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더욱 깊은 상처를 입게 된 상황이라 할 것이다. 미국에서 모기지를 갚아나가야 할 노동자들이 또 다시 대규모 실업으로 내몰리면 Fed가 사들인 증권은 다시 부실채권이 되는 악순환으로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한 트위터 계정에서 이번 양적완화와 지난 금융위기의 양적완화에 관한 차이점을 분석한 흥미로운 트윗을 올렸는데, 이 분석에 따르면 이번에는 지난번과 달리 미재무부 채권 포지션이 엄청나게 늘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재무부가 이 채권을 여러 프로그램에 사용하게 되면 시중에 통화량이 증가하여 경기부양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다만, 지난 3월에는 이런 부양책이 당파적인 입장차이로 미의회에서 부결된 바 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엄청난 돈이 “재난자본주의”를 이용하려는 자본가를 위한 잔칫상에만 쓰인다면, Fed의 유례없는 자산과 자본주의의 모순은 청산할 길이 없을 것이다.2

한편 파월은 Fed의 양적완화 조치가 불평등을 심화할 것이라는 주장에 반박하며 회사채 매입 프로그램이 대량실업을 방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실상 그다지 설득력있는 사례도 아니고 결국 Fed가 직접 모기지 채무자의 부실채권을 매입하는 프로그램이라도 만들지 않는 한에는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 조치는 행정부와 의회의 몫일 것이다. 현재 미네소타 살인사건으로 말미암은 인종폭동까지 겹체 최악의 상황으로 몰린 상황인지라 기득권층이 혁명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에는 난국타개가 쉽지 않아 보이는데, 불행히도 트럼프는 그 와중에 발포 운운 트윗, 골프 라운딩, 중국 때리기에나 골몰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량의 중앙은행 언와인드(great central bank unwind)”

Fed가 다음달 4조5천억 달러에 달하는 그들의 재무상태표를 줄이기 시작하기로 하면서 도이치뱅크는 이번 주 그들이 “대량의 중앙은행 언와인드(great central bank unwind)”1라고 부르는 이 조치가 다음 금융위기를 초래할 몇몇의 후보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략] 언와인드에 관해 Fed는 예상한 것처럼 10월에 그들의 재무상태표를 서서히 줄여가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재무상태표는 장기 이자율을 내리고, 위험자산에 투자자들을 유인하고, 투자를 촉진하고, 위기로 인해 고통 받는 경제를 떠받치기 위한 목적의 공격적인 자산 매입 프로그램의 결과로 엄청난 속도로 증가하였다. [중략] 도이치뱅크의 분석가들은 투자자들이 중앙은행의 재무상태표 규모와 소위 양적완화 프로그램에 수반되었던 효과적인 화폐 발행의 범위에 대해 시큰둥해하기만 할지 의문스러워했다.[How the ‘great central bank unwind’ could ignite the next financial crisis]

금융위기 당시 정부가 했던 조치 중 가장 황당한 조치를 꼽으라면 중앙은행의 채권 직매입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역할을 시장의 조성자로 국한하여야 할 중앙은행이 끝내는 직접 시장 그 자체가 됐다는 점에서 그렇다. 특히 MBS의 매입은 더욱 놀라웠는데, 패니메와 같은 정부보증기관이 보증 또는 발행한 채권을 정부나 다름없는 Fed가 다시 사주는 자금흐름을 보면 ‘과연 이게 자본주의 경제가 맞나’하는 의문을 갖게 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가장 큰 시장의 상품 공급자가 모두 사실상의 정부라면 시장경제라 부르기에 민망하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이후 MBS는 장기국채와 함께 Fed의 재무상태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자산이 됐다. 그 덕에 Fed는 가장 돈 많이 버는 은행이 되기도 했었다. 시장금리도 낮게 유지가 됐다. 그래서 Fed는 이제 경제가 정상화되어가고 있고, 이에 따라 자신의 비정상 자산을 정상화시킬 때가 도래했다고 여기는 것 같다. 실제로 투자자들의 위험 감수 열기도 고조되고 있는 듯 하다.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에 따르면 저신용 기업이나 사모펀드가 고금리로 빌려 쓰는 레버리지드론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2 하이일드 채권 거래도 폭증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인용문에서의 분석가의 우려대로 상황이 녹록치 않다. 레버리지론과 하이일드 채권 거래의 폭증은 Fed의 채권매입을 통한 금리 안정화라는 전제 하에 가능한 투자행위였다. Fed가 이제 시장이 정상화됐으니 자신의 자산도 정상화시키겠다고 결정한 것은 자신의 시장에서의 존재감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판단이 든다. Fed의 현재 자산은 미국 GDP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이런 규모의 자산이 시중에 풀린다면 채권금리의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다. 정상화된 시장이 사상누각임을 확인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Fed도 이런 우려를 알고 있는 듯 채권을 한꺼번에 매각하는 방식 대신 만기도래 채권을 재매입하지 않고 상환 받는 방식을 취하겠다는 방침이다. 시장의 반응은 아직까지는 미온적인 편인데 유럽과 일본 중앙은행의 양적완화 방침은 아직도 여전하기 때문인 것도 한 몫 한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동안의 매입 프로그램이 유례가 없었듯이 이번 조치 역시 유례가 없기 때문에 그 여파를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번 조치가 경제의 어떤 티핑포인트를 건드린다면 도이치뱅크의 우려가 현실화될 수도 있다는 점이 비관적인 시나리오다.

한편 Fed 자산 축소가 하필 지금 시점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관점으로 보자면 Fed의 결정은 다소 정치적 판단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 정부는 오바마의 QE정책과 이를 통해 낮은 금리를 향유하며 정부부채를 끌어다 썼던 오바마 정부를 좋아하지 않는 공화당 정부다.3 게다가 얼마 전에 美정부의 또 다른 권력자 이방카가 옐렌을 만났다.4 물론 탁 까놓고 말하자면 늘 경제는 정치적이었다. Fed의 사상 최대의 채권 매입 프로그램은 면밀한 경제성 분석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정치적 임시방편이었고 그 자산의 언와인드도 또 다른 정치적 고려로 여겨진다.

중앙은행이라는 존재를 다시 생각해본다

나는 2006년의 공개시장조작위원회에서 “우리의 인식에 어떤 거대하고 부정적인 충격이 없는 한, 주택 가격에 예상되는 냉각의 효과는 완만할 것이라고 믿습니다.”라고 발언했다. 버냉키 의장은 농담 분위기를 빌어서 뉴욕의 조합(co-op) 아파트의 미친 듯한 가격에 대한 보고서를 요구했고, 위원들은 웃었다. [중략] 그러나 2007년 3월은 서브프라임에 대한 경고를 하기에는 게임에 너무 늦은 시점이었다. 그리고 내 견해로는, 위험을 줄이는 유일하고 효과적인 방식은 감독자들이 주요 금융사들이 위기에서 생존하는 데 충분한 자본과 유동성을 확보하도록 만드는 것뿐이었다.[스트레스테스트, 티모시 가이트너 지음, 김규진/김지욱/홍영만 옮김, 인빅투스, 2015년, pp133~135]

공개시장조작위원회에서 집값하락에 대해 Fed의장이 농담을 할 정도로 그렇게 낙관적이었던 분위기가 가이트너가 뒤늦게 고백하는 “경고하기에 너무 늦은 시점”으로 바뀌는데 불과 1년이 걸렸을 뿐이다. 그 1년 사이에 미국 부동산 시장에 무슨 천지개벽이 일어난 것도 아닐 텐데 어떻게 그렇게 분위기가 돌변하였을까? 왜 경제위기는 이렇게 우리 앞에 갑자기 등장하는 것일까, 그 과정에서 중앙은행은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일까에 대한 의문이 최근 우리나라의 조선/해운업의 위기 상황에서의 정부와 한국은행의 갈등 과정에서 생겨난 새로운 의문이다.

우선 롱포지션과 숏포지션의 시간상의 차이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롱포지션은 각종 채권이 가격을 오름으로써 이익을 보는 위치다. 가격은 일반적으로 서서히 오른다는 전제 하에 이 위치를 롱포지션이라고 한다는 설도 있다(whatever). 그리고 숏포지션, 즉 가격이 떨어짐으로써 이익을 보는 위치다. 가격하락은 서서히 과열되었던 거품이 터지며 투매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기에 짧은 시간 안에 급락하는 경향이 있다. 인용문에서의 기간이 바로 이렇게 급격한 투매의 시기였고, 많은 참여자들은 시장의 신호에도 불구하고 버냉키처럼 농담으로 그 경고를 무시했다.

두 번째, 중앙은행의 정책수단의 한계다. 회의 시간에 농담을 한다고 해서 정책집행자들이 마냥 시장을 방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Fed는 2004년 6월부터 금리를 0.25%씩 인상하면서 긴축정책에 돌입하였다. 문제는 이런 단기금리 인상이 장기금리 인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이고 이에 대한 여러 해석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오늘날의 경제가 전통적인 Fed의 정책수단으로 통제하기에는 너무 커지고 복잡해졌다는 점이다. 이러한 정책수단의 한계를 깨달은 현 상황을 우리는 “새로운 정상” 심지어 “새로운 비정상”이라 이름붙여 정당화하게 되었다.

세 번째, 두 번째의 배경과 겹치는 것이라 할 수 있는 정책집행자들의 믿음 혹은 그들의 계급적 성향이었다. 버냉키 전의 그린스펀은 아인랜드에 열광했던 시장근본주의자였고 시장 불개입주의자였다(다만 거품 붕괴로 인한 채권자의 채권회수에 문제가 있을 시에는 예외였다). 경제학자 제럴드 앱스테인(Gerald Epstein)은 금리조정 등을 – 주로 단기금리 – 통해서 인플레이션 목표를 달성하기만 하면 경제가 자연스럽게 굴러갈 것이라 여기는 이러한 발상을 신자유주의 적이고 금융엘리트를 위한 발상이라고 비판하였다.

금융위기 도래 이후, Fed를 비롯한 각국의 중앙은행은 “양적완화”, “마이너스 금리” 등을 비롯한 여러 비정상적인 조치로 경제 시스템의 붕괴를 지연시켰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정책집행자들의 – 행정부나 의회로부터 독립되어 중립을 지키고 있다고 여겨지는 고매한 금융 엘리트 – 손에 흙을 – 또는 피 – 묻히는 행위는 이미 한국이나 중국과 같은 개발도상국에서는 좀더 일상적으로 취해지던 조치와 유사할 수도 있다. 한국 정부가 “한국판 양적완화”라고 하지만 Fed의 조치가 “미국판 관치주의”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한국판 양적완화”든 “미국판 관치주의”든 간에 경제의 순환은 금융시스템에서의 유동성을 통해 가속화되고 이것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한에는 사회 대다수 구성원에 영향을 미치며 사회적 기능을 수행한다. 하지만 시장의 본질이든 오작동이든 간에 거품이 터지고 나면, 그 치유는 주로 – 여태 시장과 함께 사태를 마냥 낙관했던 – 중앙은행을 포함한 금융 시스템에 의해 이루어진다. 여태의 행위가 주로 자산가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1

늘 그렇듯 중앙은행은 “중립성”과 “독립성”을 주장하며 시장의 완벽한 작동에 미세조정만을 가하는 금융엘리트 집단으로 남기를 꿈꾸지만, 시장은 늘 미세조정 이상을 요구하며 요동쳤고 결국 중립성과 독립성은 허울 좋은 명분으로만 남게 되었다. 오늘날의 중앙은행 재무제표는 국가재정의 부외금융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의회의 통제를 벗어나기 위한 또 하나의 주머니일 뿐이란 사실은2 현재 한국정부의 한국은행 흔들기에서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경제 위기로 인해 우리는 다시 한 번 중앙은행의 존재이유를 생각해보게 된다.

어쩌면 그들은 1. 너무 순진하거나 2. 너무 무력하거나 3. 너무 고매한 것일지도?

싸움에서 선빵이 중요하듯이, 정책실행에선 용어가 중요하다

어느 정부나 자신이 추진하는 정책은 일단 멋진 용어로 포장해야 한다. 여론이 정책실행 동력의 주요한 변수가 되어버린 현대의 정치지형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박근혜 정부는 특히 – 의외로(!) – 경제정책의 용어 선점에 익숙했다. 멀리는 지난 대선 국면에서의 “경제민주화” 용어 선점이 있었다. 이후 그 용어는 집권 성공과 김종인의 퇴장과 함께 짧은 생을 마치고 장렬히 산화하였다.

그 다음에 등장한 주요한 경제용어(?)는 “창조경제”다. 이 표현이 쓰일 즈음 당시 유행하던 농담이 ‘도대체 정체를 모를 것이 ㅇㅊㅅ의 “새정치”와 ㅂㄱㅎ의 “창조경제”’라고 할 정도로 오리무중인 이 용어는 그래도 “경제민주화”보다는 오랜 생명력을 가지며 버텼다. 주로 서구의 각종 성공사례가 “창조경제”의 성공사례라고 주장하는 식이 아전인수적인 해석을 통해 그 생명력을 연장한 것이다.

그 다음에 등장한 주요한 표현이 “노동개혁”으로 대표되는 “4대개혁”이다. 행정부는 자신의 개혁의지가 담긴 노동개혁 법안을 국회가 통과시켜주지 않는다며 “국회심판론”을 내세웠고,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국회가 심판당한 것’이라며 – 우리는 평행우주를 살고 있는가? – 노동개혁을 중단 없이 밀고 가겠다고 할 만큼 집권 후반기인 현재까지 행정부가 집요하게 추진하고 있는 국정과제다.

“경제민주화”와 “창조경제”가 콘텐츠 없는 레토릭에 가까웠다면 “노동개혁”은 개혁과 거리가 먼 노동개악의 모습을 지닌 존재이자 노동자의 삶에 영향력을 지닐 수 있는 – 또는 이미 영향을 미치고 있는 – 존재다. 여론이 이 “개혁” 레토릭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있지만, 적어도 이번 선거결과를 놓고 보자면 유권자를 박근혜 식 “개혁”을 승인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이제 현 정부가 꺼내든 또 하나의 신박한 용어가 있는데, 바로 “한국형 양적완화”다. 총선 국면에서 여당의 강봉균 선대위원장(뭐 그런 비스무리한 직함)은 난데없이 “양적완화” 정책을 내놓았다. 각국이 제로금리를 넘어 더 이상의 금리정책을 내놓을 수 없는 상황에서, 주로 장기 금리를 낮추기 위해 내놓은 이 정책을 우리나라에서 시도하겠다고 해서 어이가 없던 와중에 다행히 선거에서 패배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카드를 청와대가 꺼내들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일본의 양적완화는 “묻지마 양적완화”인 반면에 우리의 양적완화는 “특수 목적을 갖는 양적완화”라고 주장하는 등 일본에 의문의 1패를 안기는 자화자찬까지 곁들였다. 정책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서 선거에서 패한 정책을 다시 꺼내든 것부터가 유권자를 무시하는 것이다. 게다가 전문가들은 이 정책이 양적완화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부가 이 용어를 선점한 의도는 무엇일까? 전에 담뱃값 인상 등 사실상의 증세를 실행하면서도 “증세는 없다”고 강변했고 이 입장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비슷한 논리로 특정산업의 구조조정을 수행할 국책은행에 중앙은행이 자본을 확충하는 행위는 “양적완화”가 아닌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그렇게 명명한 것이 중요한 것이다. 남들 다하던 바로 그 한국형 “양적완화”.

미국가계의 종류별 자산 패턴이 부의 집중에 미친 영향에 대하여

재밌는 그래프가 있어 소개한다. 1913년부터 2013년까지 100년 동안의 미국의 가계가 보유한 종류별 자산을 국가소득에 대한 배수로 표현한 그래프다. 이 그래프를 보면 가계자산이 국가소득대비 어느 정도 일정한 배수를 유지하다 큰 두 번의 위기에 급격히 축소되었음을 볼 수 있다. 종류별 자산에서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연금자산의 비중이 1980년대 이후 급격히 커졌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추세는 연기금의 발달 및 인구의 노령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상대적으로 부동산의 비중이 크지 않은 것도 눈에 띈다. 우리나라는 이 비중이 더 크지 않을까 짐작된다.

그래프의 출처가 되는 논문에는 또 다른 두 개의 흥미로운 그래프가 있다. 바로 상위 0.01%의 부자와 하위 90% 계층의 종류별 자산과, 이 자산이 전체 가계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표시한 그래프다. 그래프를 보면 들고 있는 자산의 종류 차이가 완연하다. 상위 0.01%는 주식과 고정자산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하위 90%는 연금과 부동산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연금의 비중은 일정한 패턴을 유지하는 반면 주식, 고정자산, 부동산의 변화는 극적이다. 부동산은 당연히 금융위기에 폭락했고 주식과 고정자산은 폭등했다. 폭등의 원인은 Fed 등의 양적완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자본가들과 평생 저축하는 이들의 자산 보유의 구성은 다르다. 그래서 자본가들이 들고 있는 자산들에게 차별적으로 혜택이 되는 여하한의 정책은 보다 심각한 불평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양적 완화가 그러했다. [중략] 노동자들과 자본가들은 둘 다 자본의 소유자다. 그러나 다른 종류의 자본이다.“ 저소득과 중소득의 미국인들은 주로 확정소득(fixed-income)의 자산에 의존하는 반면 고소득의 개인들은 더 높은 수익을 제시하는 주식이나 보다 위험한 자산에 투자하는 경향이 있다.[Stiglitz: Fed’s Zero-Rate Policy Boosts Inequality]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런 물고기 모양의 그래프도 그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