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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손형 보험에 관하여

의료비 실비를 보상해주는 실손보험은 가입자가 3150만 명(2015년 상반기 기준)을 넘어서 ‘제2의 국민건강보험’이라는 평가를 받은 인기 상품이다. 중복 가입이 제한되기 이전에 보험을 2개 이상 든 가입자(23만 명)를 제외해도 전체 국민의 62%가 넘는다. 그러나 보험사의 손해율이 치솟자 금융당국이 보험료 인상 규제를 완화했다. 이후 흥국화재가 44.8%,현대해상이 27.3%, 삼성화재가 22.6% 인상하는 등 실손보험을 다루는 25개 보험사 중 22곳이 잇따라 보험료를 인상한 것.[실손보험료 폭탄 ‘의료기관-보험사-정부 합작품’]

아침에 트위터에 올려서 수십 회 리트윗된 기사의 일부다. 실손형 보험의 보험료가 폭등하고 있어 가입자의 부담이 늘고 있다는 기사다. 실손형 보험은 보장성 보험의 한 종류로 손해보험사나 생명보험사 도무 팔고 있다. ‘제 2의 국민건강보험’이라 불릴 만큼 상품성이 있다고 판단하였기에 모든 보험사들이 경쟁적으로 뛰어든 것이리라. 여하튼 이 기사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우선 실손형 보험이 어떤 보험인지 알 필요가 있다.

보장성 보험은 보험금 지급 방식에 따라서 크게 실손형 實損形 보험과 정액형 定額形 보험으로 나뉩니다. 실손형 보험(정식 명칭은 ‘실손 의료비 보험’)은 개인이 병원이나 약국 등에서 실제로 쓴 돈(환자 부담 총액)의 80~90퍼센트를5000만 원 한도 내에서 보상해주는 보험입니다. [당신이 믿고 가입한 보험을 의심하라, 구본기 지음, 생각비행, 2015년, 49p]

즉, 실손형 보험은 “암에 걸릴 경우 1억 원”이라고 로또 식의 정액형 보험과 달리 환자 부담 총액의 일정비율(80~90%)을 보상해주는 보험이다. 환자 부담 총액을 이해하기 위해 총 진료비의 구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총 진료비는 ‘건강보험급여(요양급여)’ 부분과 ‘비급여’ 부분으로 나뉜다. 이중 요양급여 중 ‘본인 부담금’과 ‘건강보험 부담금’으로 나눈다. 결국 환자 부담 총액은 요양급여 중 ‘본인 부담금’과 ‘비급여’의 합계액이다.

결국 90% 보상의 실손형 보험에 가입한 환자가 병원에서 20만 원 짜리 치료를 받았는데, 건강보험에서 10만원을 내고 나머지 10만 원이 환자 부담이라면 환자는 9만 원을 보험사로부터 받게 된다는 이치다. 결국 환자의 실제 부담은 – 건강보험료와 실손형 보험료를 제외하고 – 단돈 1만원이다. 실손형 보험은 이렇듯 보장성이 뛰어나 보이는 상품인 덕택에 향후 기대수명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 소비자들로부터 인기상품이 된 것이다.

인용기사로 돌아가 보자. 왜 보험료가 폭등하는 것일까? 저물가의 시대에 물가는 이유가 아닐 것이다. 보험사가 내세우는 이유는 병원의 과잉진료다. 병원에서 본인 부담이 적다는 이유로 실손형 보험 가입자에게 더 많은 진료를 권할 수도 있고, 환자 스스로가 만족할만한 치료를 위해 비싼 서비스를 선택할 수도 있다. 사실 이런 소위 “도덕적 해이” 혹은 “역선택”1상품 도입 초기부터 예상된 상황인데 이게 현실이 된 것으로 보인다.

저 기사를 트윗하는 과정에서 보험업계에서 일하고 계신 한 분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 분이 지적하는 보험료 인상의 원인은 소비자의 역선택과 기술 발전으로 인한 소액 보험료 청구 증가였다. 이게 진정한 원인이라면 결국 보험사도 애초 우려되었던 상황을 낙관하고 보험료를 책정했다가 뒤늦게 대폭 인상시켰다는 혐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당초 낮은 보험료를 일종의 마케팅 포인트였을 것이기에 더욱 책임이 중하다.2

결국 병원의 과잉진료라는 “도덕적 해이”, 소비자의 역선택 등을 방지하여 보험료를 적정수준으로 유지하고 선의의 피해자를 막는 방법은 – 상품을 이대로 유지하는 한 – 자기 부담을 늘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대안일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되면 본래 실손형 보험의 본질이 희석화된다는 점이다. 결국 그나마 보험료 청구를 환자 본인이 아닌 병원에서 청구하게 하는 방식이 과잉진료 등을 막는 하나의 작은 대안 일 것으로 여겨진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확대하는 대안이 있을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의 보장성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긴 하지만, 신약이나 고비용의 서비스에 대해 본인 부담분을 늘려온 것도 실손형 보험의 인기의 한 이유일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실손형 보험 가입자가 증가한 와중에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는 보험사 이익 증대로 이어질 뿐이란 점이다. 이에 대한 정부와 보험사 간의 보험료 조정 등의 협의가 없는 한 말이다.

“모든 보험은 로또다”라던 어느 선배의 말이 생각난다.

연방준비제도의 역할, 그리고 음모론

지난 번 “美모기지 시장의 두 거인, 법정관리 임박?” 이라는 글에서 Inigo님께서 아주 좋은 말씀을 남겨주셨다. 특히 연방준비제도의 정체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CNBC의 뉴스(동영상 보기) 를 추천해주셨는데 관심 있는 분들은 꼭 보시기를 권한다. 다만 내용이 영어인지라 – 나 역시 마찬가지이지만 – 보시는 분들 힘들어하실까 봐 인터넷 검색으로 찾은 – 가장 재미있는 부분의 – 스크립트를 번역해둔다. 인용문구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에 오랜 동안 몸담고 있는 Harvey Rosenblum씨가 한말이다.

경제에서 연방준비제도는 도덕적 해이를 유발한다. 중앙은행이 된다는 단순한 역할은 당신의 일이 도덕적 해이의 유발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개 중앙은행은 “최종대부자”다. 사람들이 유사시에 의지할 수 있다고 믿어지는 최종대부자를 가지는 것보다 더 도덕적으로 해이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연방준비제도의 직무는 저 바깥(세상)을 강타하고 있는 모든 경제적 공포에 빠진 3억 명의 미국시민에 대한 충격을 완화하는 것이다. 나를 미치게 하는 것은 사람들이 “도덕적 해이, 도덕적 해이”를 외칠 때이다. 그게 내가 하는 일이다.

The Federal Reserve is in business to create moral hazard. The mere act of being a central banker means that your job description involves creating moral hazard. A central bank is a “lender of last resort,” what more moral hazard can you have than having a lender of last resort that people know, when push can to shove, can be relied upon? The Federal Reserve’s job is to cushion the blow to 300 million American citizens of all the economic shocks that hit out there. What drives me crazy is when I hear people shouting “Moral hazard, moral hazard”… that’s what my job is to do…

도덕적해이의 유발이 연방준비제도의 일이라는 주장이 사뭇 도발적이다. 이는 사실 최종대부자로서의 연방준비제도의 역할을 다소 자극적으로 강조하려는 의도에서 한 말이다. 자립심을 갖고 살아가야 할 한 젊은 대학생이 학교를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하기 벅차서 결국 아버지에게 용돈을 요구하는 것이 바로 Harvey가 말하는 “도덕적 해이”다. 즉 그의 진정한 의도는 시장에 그런 신뢰감(많은 시장참여자들이 도덕적 해이라고 비난하는)을 부여하는 것이 연방준비제도의 역할이니 너무 욕하지 말라는 것이다.

미국이란 나라의 경제사를 살펴보면 이 나라는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최종대부자가 없었다는 사실 때문에 여러 번 심각한 금융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결국 여러 번의 우여곡절을 겪은 후에야 오늘 날과 같은 연방준비제도가 성립되었다. 그리고 오늘 날 미국의 비롯한 대다수의 국가들이 그 형태가 어찌되었든 간에 ‘최종대부자’의 존재의의를 부정하는 사례는 없고, 그것이 지금 미국에서 연방준비제도가 하고 있는 일이다.

다만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지적하면 미국의 연방준비제도는 엄밀히 말해 국가기관이 아니라는 점이다. 프레디맥, 패미메도 그 야릇한 지위 때문에 사람들의 혼동을 야기하고 있지만 연방준비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 제도가 구성하고 있는 각종 기관들은 국가의 소유가 아닌 민간은행들의 소유다.(물론 당사자는 이를 부인하고 있다 한편 음모론자들의 주장은?) 대통령의 승인을 얻기는 하지만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이사들은 거의 민간은행에 의해 낙점되다시피 한다. 그러면서도 미국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결정적으로 미국의 화폐, 즉 US달러의 통화발행권은 미국 정부가 아닌 이들이 쥐고 있다. 미국 정부는 채권을 발행하여 이들에게 US달러를 사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복잡한 상호관계로 말미암아 연방준비제도는 음모론자들을 비롯한 여러 반정부/반금융 세력들의 끊임없는 비판의 표적이 되고 있다. 위의 스크립트를 퍼온 Lawson for Congress 라는 블로그 역시 이러한 음모론의 입장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즉 블로그는 “민간 독점기업이 공짜로 돈을 찍어내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We cannot allow a private monopoly to create money out of nothing to loan to us at interest)”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으로 음모론자들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면서도, 이에 한발 더 나아가 ‘최종대부자’로서의 중앙은행의 존재의의 자체를 거부하는 주장까지 접어들면 대략 난감해진다. 즉 중앙은행은 시장의 교란을 완화(cushion)하는 주체가 아니라 시장의 교란, 그 자체라는 것이다. 이들은 이러한 주장을 이론적으로 강화하기 위해 보통 밀턴 프리드먼의 통화주의적 입장을 끌어오곤 한다. 결론적으로 그들은 자유로운 발권력을 가진 ‘자주적인’ 정부를 꿈꾼다.

이런 음모론을 읽으면 무척이나 재밌다. 프리메이슨, 우드로 윌슨, 그린백, 히틀러와 레닌을 지원한 금융투기세력, 케네디의 암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유태인 등 세상이 온통 하나의 꽉 짜여진 시나리오대로 착착 움직여가고 있음에 전율을 느낀다. 책 한권을 끝날 때쯤이면 거대한 악의 세력의 존재감에 몸서리가 처진다. 그렇지만 거기까지다. 너무 빠지다간 염세론자가 되고 만다. 🙂

음모론의 황당함은 기회가 되면 또 이야기하기로 하고 말하고자 하는 바로 돌아가자. 결국 특히나 오늘 날과 같이 한층 경제활동이 복잡해지고 규모화되어 있는 시장에서는 ‘최종대부자’로서의 중앙은행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더불어 더욱 그 활동범위가 강화되고 세분화되어야 한다. 규제는 잘못 수립되었기에 나쁜 것이지 많아서 나쁜 것이 아니다. 규제가 없으면 지원도 없다. 시장근본주의자는 때로 고의적으로 이러한 사실을 외면한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는 내가 보기에도 이상한 제도지만 그 제도가 없었다면 이번 서브프라임 사태시에 분명히 미국의 경제는 회복이 어려울 정도로 붕괴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