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준비제도의 역할, 그리고 음모론

지난 번 “美모기지 시장의 두 거인, 법정관리 임박?” 이라는 글에서 Inigo님께서 아주 좋은 말씀을 남겨주셨다. 특히 연방준비제도의 정체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CNBC의 뉴스(동영상 보기) 를 추천해주셨는데 관심 있는 분들은 꼭 보시기를 권한다. 다만 내용이 영어인지라 – 나 역시 마찬가지이지만 – 보시는 분들 힘들어하실까 봐 인터넷 검색으로 찾은 – 가장 재미있는 부분의 – 스크립트를 번역해둔다. 인용문구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에 오랜 동안 몸담고 있는 Harvey Rosenblum씨가 한말이다.

경제에서 연방준비제도는 도덕적 해이를 유발한다. 중앙은행이 된다는 단순한 역할은 당신의 일이 도덕적 해이의 유발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개 중앙은행은 “최종대부자”다. 사람들이 유사시에 의지할 수 있다고 믿어지는 최종대부자를 가지는 것보다 더 도덕적으로 해이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연방준비제도의 직무는 저 바깥(세상)을 강타하고 있는 모든 경제적 공포에 빠진 3억 명의 미국시민에 대한 충격을 완화하는 것이다. 나를 미치게 하는 것은 사람들이 “도덕적 해이, 도덕적 해이”를 외칠 때이다. 그게 내가 하는 일이다.

The Federal Reserve is in business to create moral hazard. The mere act of being a central banker means that your job description involves creating moral hazard. A central bank is a “lender of last resort,” what more moral hazard can you have than having a lender of last resort that people know, when push can to shove, can be relied upon? The Federal Reserve’s job is to cushion the blow to 300 million American citizens of all the economic shocks that hit out there. What drives me crazy is when I hear people shouting “Moral hazard, moral hazard”… that’s what my job is to do…

도덕적해이의 유발이 연방준비제도의 일이라는 주장이 사뭇 도발적이다. 이는 사실 최종대부자로서의 연방준비제도의 역할을 다소 자극적으로 강조하려는 의도에서 한 말이다. 자립심을 갖고 살아가야 할 한 젊은 대학생이 학교를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하기 벅차서 결국 아버지에게 용돈을 요구하는 것이 바로 Harvey가 말하는 “도덕적 해이”다. 즉 그의 진정한 의도는 시장에 그런 신뢰감(많은 시장참여자들이 도덕적 해이라고 비난하는)을 부여하는 것이 연방준비제도의 역할이니 너무 욕하지 말라는 것이다.

미국이란 나라의 경제사를 살펴보면 이 나라는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최종대부자가 없었다는 사실 때문에 여러 번 심각한 금융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결국 여러 번의 우여곡절을 겪은 후에야 오늘 날과 같은 연방준비제도가 성립되었다. 그리고 오늘 날 미국의 비롯한 대다수의 국가들이 그 형태가 어찌되었든 간에 ‘최종대부자’의 존재의의를 부정하는 사례는 없고, 그것이 지금 미국에서 연방준비제도가 하고 있는 일이다.

다만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지적하면 미국의 연방준비제도는 엄밀히 말해 국가기관이 아니라는 점이다. 프레디맥, 패미메도 그 야릇한 지위 때문에 사람들의 혼동을 야기하고 있지만 연방준비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 제도가 구성하고 있는 각종 기관들은 국가의 소유가 아닌 민간은행들의 소유다.(물론 당사자는 이를 부인하고 있다 한편 음모론자들의 주장은?) 대통령의 승인을 얻기는 하지만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이사들은 거의 민간은행에 의해 낙점되다시피 한다. 그러면서도 미국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결정적으로 미국의 화폐, 즉 US달러의 통화발행권은 미국 정부가 아닌 이들이 쥐고 있다. 미국 정부는 채권을 발행하여 이들에게 US달러를 사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복잡한 상호관계로 말미암아 연방준비제도는 음모론자들을 비롯한 여러 반정부/반금융 세력들의 끊임없는 비판의 표적이 되고 있다. 위의 스크립트를 퍼온 Lawson for Congress 라는 블로그 역시 이러한 음모론의 입장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즉 블로그는 “민간 독점기업이 공짜로 돈을 찍어내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We cannot allow a private monopoly to create money out of nothing to loan to us at interest)”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으로 음모론자들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면서도, 이에 한발 더 나아가 ‘최종대부자’로서의 중앙은행의 존재의의 자체를 거부하는 주장까지 접어들면 대략 난감해진다. 즉 중앙은행은 시장의 교란을 완화(cushion)하는 주체가 아니라 시장의 교란, 그 자체라는 것이다. 이들은 이러한 주장을 이론적으로 강화하기 위해 보통 밀턴 프리드먼의 통화주의적 입장을 끌어오곤 한다. 결론적으로 그들은 자유로운 발권력을 가진 ‘자주적인’ 정부를 꿈꾼다.

이런 음모론을 읽으면 무척이나 재밌다. 프리메이슨, 우드로 윌슨, 그린백, 히틀러와 레닌을 지원한 금융투기세력, 케네디의 암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유태인 등 세상이 온통 하나의 꽉 짜여진 시나리오대로 착착 움직여가고 있음에 전율을 느낀다. 책 한권을 끝날 때쯤이면 거대한 악의 세력의 존재감에 몸서리가 처진다. 그렇지만 거기까지다. 너무 빠지다간 염세론자가 되고 만다. 🙂

음모론의 황당함은 기회가 되면 또 이야기하기로 하고 말하고자 하는 바로 돌아가자. 결국 특히나 오늘 날과 같이 한층 경제활동이 복잡해지고 규모화되어 있는 시장에서는 ‘최종대부자’로서의 중앙은행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더불어 더욱 그 활동범위가 강화되고 세분화되어야 한다. 규제는 잘못 수립되었기에 나쁜 것이지 많아서 나쁜 것이 아니다. 규제가 없으면 지원도 없다. 시장근본주의자는 때로 고의적으로 이러한 사실을 외면한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는 내가 보기에도 이상한 제도지만 그 제도가 없었다면 이번 서브프라임 사태시에 분명히 미국의 경제는 회복이 어려울 정도로 붕괴되었을 것이다.

4 thoughts on “연방준비제도의 역할, 그리고 음모론

  1. 자유로운 발권력을 지닌 정부라..
    역사적으로 없지 않았지요..
    초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져서..
    나치즘이라든지.. 체제 전복의 운명을 맞는 경우가 허다했지요..
    사실 짐바브웨도 뭐..
    그런 수준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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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발권의 자유가 없어도 갖가지 꼼수를 통한 통화증발로 나라를 말아먹는 판에 자유로운 발권력을 가지면 그야말로 악몽이죠. 물론 우리나라와 같은 제3세계는 어떻게 보아도 그 자유는 없다고 여겨지지만 말이죠. 🙂 아~ 짐바브웨처럼 없는 자유를 누리다가 망할 자유는 있겠죠.. T_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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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미리내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중앙은행은 확실히 국가가 설립한 특수법인이라는 게 음모론에서 자유로운 명실상부한 최종 대부자라는 점에서 모럴 해저드론을 차단할 수 있습니다.

    연방준비제도가 민간금융의 소유이고 법적으로 연방기구가 아니라는 것은 미국의 판례로 확립되어 있기에 적어도 세계의 금융시스템은 미국의 금융자본의 음모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판례 Lewis v. United States. 680 F. 2d 1239(1982) [http://www.globalresearch.ca/index.php?cotext=va&aid=8518]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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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우리나라는 정부 자체가 국립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을 직접 지도해가며 대한민국 주식회사로 운영해왔으니 모럴해저드는 온전히 정부의 몫이겠죠. 음모론자들은 박정희가 프리메이슨이라고 주장할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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