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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련이 어려운 자영업자들을 위한 보고서를 하나 썼는데

자영업자, 수익성은 낮은데 자영업자 종사자가 많아, 장기적으로 자영업자 비율이 현재의 27.4%(‘13)에서 선진국 수준으로 낮아질 필요. [중략] 연간 사업소득 2,000만원 이하인 4대 저수익 업종에 종사하는 자영업 종사자 223만명 중 절만 정도는 장기적으로 신사업 발전을 통한 임금 근로자 일자리 신규 창출을 통해 임금근로자로 전환할 필요.[가계소득 현주소 및 향후 과제, 전국경제인연합회, 2015.12, 8p]

알다시피 우리나라의 자영업자 비율은 2013년 현재 약 27.4%로 4만불 소득 국가(11.6%)나 OECD국가(15.8%)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높다. 전경련의 보고서는 그 와중에도 최근 10년간의 자영업자의 소득 증가율이 임금근로자의 소득증가율보다 낮다는 것을 배경으로 한계에 내몰린 자영업자가 임금근로자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제언하고 있다. 그 취지에서는 공감이 가는 바가 없지 않으나 다만 그 자영업자의 생성배경이나 인력구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자영업자가 늘어난 원인으로 자주 지적되는 것은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중략] 하지만 고령자의 재취업 여건이 여의치 못해 임금근로로 흡수되지 못한 인력들이 자영업으로 진출하고 있다. [중략] 2012년 1~5월 50대 이상 자영업자수는 17만 5천명 증가하여 3~40대 자영업자수가 3만 명이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자영업자수의 증가를 이끌었다.[저부가가치에 몰리는 창업 자영업 경기 더 악화시킨다, LG경제연구원, 2012.7]

즉, 다른 나라와 두드러지게 다른 우리나라 자영업의 특징은 짧은 시간의 빠른 경제성장 시기에 임금근로자로 활동했던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거나 해고된 와중에 자영업 시장에 생계형 창업으로 진행한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LG연구원의 지적처럼 이들의 재취업 여건은 연령이나 전문성 부족 등의 제약조건으로 인해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그런데 전경련의 보고서가 이들의 재취업 경로로 제안한 업종은 의료, 금융, 통신·사업서비스 등 지식집약적 사업이다.

고용률을 고소득국가처럼 향상시키려면 의료, 금융, 통신·사업서비스 등 고임금인 지식집약 서비스업종의 고용 및 부가가치 정체 등 성장정체를 해소할 필요. [중략] GDP 대비 부가가치 비중은 보건·의료 4.1%로 선진국의 절반수준(48%), 금융·보험 5.6%, 정보통신업 3.9%, 전문과학기술 5.1%로 선진국의 70~80% 수준에 불과.[가계소득 현주소 및 향후 과제, 전국경제인연합회, 2015.12, 10p]

보고서는 고용창출을 위한 산업으로 제시한 분야가 선진국에 비교할 때에 부가가치가 낮음을 지적하며 이 산업을 성장시켜 자영업자들을 흡수하는 프로세스를 암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분야 중 몇몇은 그동안 업계가 계속 정부의 규제완화 내지는 지원을 요구하던 분야다. 특히 의료 및 보험 분야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법안 중에서 논쟁이 되고 있는 이슈다. 이쯤에서 과연 보고서가 과연 진정 저수익의 자영업자들을 위해 쓰인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실손형 보험에 관하여

의료비 실비를 보상해주는 실손보험은 가입자가 3150만 명(2015년 상반기 기준)을 넘어서 ‘제2의 국민건강보험’이라는 평가를 받은 인기 상품이다. 중복 가입이 제한되기 이전에 보험을 2개 이상 든 가입자(23만 명)를 제외해도 전체 국민의 62%가 넘는다. 그러나 보험사의 손해율이 치솟자 금융당국이 보험료 인상 규제를 완화했다. 이후 흥국화재가 44.8%,현대해상이 27.3%, 삼성화재가 22.6% 인상하는 등 실손보험을 다루는 25개 보험사 중 22곳이 잇따라 보험료를 인상한 것.[실손보험료 폭탄 ‘의료기관-보험사-정부 합작품’]

아침에 트위터에 올려서 수십 회 리트윗된 기사의 일부다. 실손형 보험의 보험료가 폭등하고 있어 가입자의 부담이 늘고 있다는 기사다. 실손형 보험은 보장성 보험의 한 종류로 손해보험사나 생명보험사 도무 팔고 있다. ‘제 2의 국민건강보험’이라 불릴 만큼 상품성이 있다고 판단하였기에 모든 보험사들이 경쟁적으로 뛰어든 것이리라. 여하튼 이 기사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우선 실손형 보험이 어떤 보험인지 알 필요가 있다.

보장성 보험은 보험금 지급 방식에 따라서 크게 실손형 實損形 보험과 정액형 定額形 보험으로 나뉩니다. 실손형 보험(정식 명칭은 ‘실손 의료비 보험’)은 개인이 병원이나 약국 등에서 실제로 쓴 돈(환자 부담 총액)의 80~90퍼센트를5000만 원 한도 내에서 보상해주는 보험입니다. [당신이 믿고 가입한 보험을 의심하라, 구본기 지음, 생각비행, 2015년, 49p]

즉, 실손형 보험은 “암에 걸릴 경우 1억 원”이라고 로또 식의 정액형 보험과 달리 환자 부담 총액의 일정비율(80~90%)을 보상해주는 보험이다. 환자 부담 총액을 이해하기 위해 총 진료비의 구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총 진료비는 ‘건강보험급여(요양급여)’ 부분과 ‘비급여’ 부분으로 나뉜다. 이중 요양급여 중 ‘본인 부담금’과 ‘건강보험 부담금’으로 나눈다. 결국 환자 부담 총액은 요양급여 중 ‘본인 부담금’과 ‘비급여’의 합계액이다.

결국 90% 보상의 실손형 보험에 가입한 환자가 병원에서 20만 원 짜리 치료를 받았는데, 건강보험에서 10만원을 내고 나머지 10만 원이 환자 부담이라면 환자는 9만 원을 보험사로부터 받게 된다는 이치다. 결국 환자의 실제 부담은 – 건강보험료와 실손형 보험료를 제외하고 – 단돈 1만원이다. 실손형 보험은 이렇듯 보장성이 뛰어나 보이는 상품인 덕택에 향후 기대수명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 소비자들로부터 인기상품이 된 것이다.

인용기사로 돌아가 보자. 왜 보험료가 폭등하는 것일까? 저물가의 시대에 물가는 이유가 아닐 것이다. 보험사가 내세우는 이유는 병원의 과잉진료다. 병원에서 본인 부담이 적다는 이유로 실손형 보험 가입자에게 더 많은 진료를 권할 수도 있고, 환자 스스로가 만족할만한 치료를 위해 비싼 서비스를 선택할 수도 있다. 사실 이런 소위 “도덕적 해이” 혹은 “역선택”1상품 도입 초기부터 예상된 상황인데 이게 현실이 된 것으로 보인다.

저 기사를 트윗하는 과정에서 보험업계에서 일하고 계신 한 분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 분이 지적하는 보험료 인상의 원인은 소비자의 역선택과 기술 발전으로 인한 소액 보험료 청구 증가였다. 이게 진정한 원인이라면 결국 보험사도 애초 우려되었던 상황을 낙관하고 보험료를 책정했다가 뒤늦게 대폭 인상시켰다는 혐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당초 낮은 보험료를 일종의 마케팅 포인트였을 것이기에 더욱 책임이 중하다.2

결국 병원의 과잉진료라는 “도덕적 해이”, 소비자의 역선택 등을 방지하여 보험료를 적정수준으로 유지하고 선의의 피해자를 막는 방법은 – 상품을 이대로 유지하는 한 – 자기 부담을 늘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대안일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되면 본래 실손형 보험의 본질이 희석화된다는 점이다. 결국 그나마 보험료 청구를 환자 본인이 아닌 병원에서 청구하게 하는 방식이 과잉진료 등을 막는 하나의 작은 대안 일 것으로 여겨진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확대하는 대안이 있을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의 보장성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긴 하지만, 신약이나 고비용의 서비스에 대해 본인 부담분을 늘려온 것도 실손형 보험의 인기의 한 이유일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실손형 보험 가입자가 증가한 와중에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는 보험사 이익 증대로 이어질 뿐이란 점이다. 이에 대한 정부와 보험사 간의 보험료 조정 등의 협의가 없는 한 말이다.

“모든 보험은 로또다”라던 어느 선배의 말이 생각난다.

정부만이 할 수 있는 기획

미국은 현재 의료비가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중반 정도이지만, 이대로 의료비가 늘어나면 2020년에는 20%중반까지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 이루어지고 있는 움직임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예방에 대한 관심이다. 이미 암이라는 질병에서 잘 드러났지만, 전체 치료비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미 악화된 다음보다는 초기에 검진해서 찾아내는 것이 싸게 들고, 그보다 이전에 흡연이나 음주와 같이 암을 유발하는 원인을 제거함으로써 발생률을 낮추는 것이 싸게 든다.[컨트라리언 전략, 이지효 지음, 처음북스, 2014년, p155]

GDP에 관한 역설을 잘 설명해주는 대목 같아서 인용했다. 사람들이 술과 담배를 즐긴다. 그리고 평소에 검진을 게을리 한다. 그러다 암에 걸려 치료를 받는다. 이 과정에서 GDP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검진을 게을리 하는 것뿐이다. 나머지는 향락 산업과 의료 산업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사후치료보다는 예방을 위해 힘써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개별산업이나 개별가계 차원이 아닌 사회 전체적 관점에서 기획을 할 수 있는 주체는 주로 정부다. 사실상 유일하게 정부만이 개별산업의 불이익을 감수하고라도 이른바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이런 계획을 입안하고 비용을 지출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지출에 대해서 아마도 아인 랜드라면 “아무것도 생산할 수 없고 아무 것도 내줄 것이 없는 사람”에게 왜 돈을 지출하느냐 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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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el Dieu in Paris about 1500” by Unknown – http://www.mja.com.au/public/issues/177_11_021202/dec10354_fm.html#i1067496.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한편 그렇다면 정부는 이와 같은 기획을 추진할 재원을 무엇을 통해서 조달할 수 있을까? 대표적인 사례가 비만 등의 원인인 탄산음료에 매기는 “죄악세”가 있을 것이다. 오바마는 자신의 건강보험 계획의 재원으로 이 세금을 매기려 했었다.1 암 예방을 위한 의료센터의 설립 역시 담배나 술을 파는 회사로부터의 세금으로 충당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정부는 일종의 도관체인 셈이다.

요컨대 정부는, 예를 들어 건강이라는 이슈에 대해서 개별산업의 경제적 이익의 관점으로만 본다면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다(또는 볼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이는 또한 사회 전체적으로는 GDP에 악영향을 미칠지라도 정부 개별의 대차대조표 상으로는 유익한 행동이기 때문에도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것이 또 다른 경제적 관점에서는 어떠할까? 적어도 이 사례는 장기적인 생산력 관점에서도 이익일 것이다.

밑줄 그어가면서 읽어야할 기사 하나

동아일보가 오늘자 신문에 매우 흥미로운 기사를 내보냈다. “한국으로 의료관광 오세요”라는 이 기사는 한국의 의료현실이 국제의료시장(?)에서도 이미 충분히 경쟁력 있음을 강변하고 있는 기사다. 이 기사를 한국의 의료시장은 사회주의적 의료정책으로 인해 경쟁력을 잃었고 이를 극복하려면 영리의료법인의 설립을 허용하고 의료보험을 민영화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던 이들이 읽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무척 궁금하다. 이런 용기 있는 기사를 내보낸 동아일보에 박수를…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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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의료관광 오세요”

美 의료비 비싸 연 50만명 태국-싱가포르로
“한국 의료수준 높아 여행상품 성공 가능성 커”

3일 미국 뉴욕 플러싱 대동연회장.

한양대병원, 가톨릭대 성모병원, 아주대병원, 국립암센터 등 한국 주요 병원이 참석한 가운데 의료관광 설명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장에는 한인 여행사 관계자와 함께 중국계 미국 여행사, 일반 미국 여행사 관계자들도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 ‘80달러 대(對) 1700달러’

이날 의료관광 설명회에서 참석자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온 것은 한국과 미국의 의료비 격차였다.

박수헌 가톨릭대 성모병원 건강증진센터 소장은 “미국에서 대장 조영술 검사를 받으려면 1700달러가 들지만 한국에선 80달러면 가능하다. 그리고 검사에서 대장 용종이 발견돼 제거하려면 미국에선 5000달러가 들지만 한국에선 300달러면 된다”고 말했다. 박 소장이 “혹시 검사에서 대장 용종이 발견되면 한국으로 오라”고 말하자 폭소가 터졌다.

한 참석자는 한국에서 위장내시경 검사 비용이 182달러라는 설명을 듣자 “미국에선 보험 없이 검사를 받으려면 최소한 3000달러가 든다”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중국계 미국인들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한국의 성형수술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이상준 ‘아름다운나라 피부과 성형외과’ 원장은 “한국은 매우 저렴한 비용으로 높은 수준의 성형수술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예를 들어 쌍꺼풀 수술을 하는 데 1000∼1700달러 정도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그랜드홍콩 트래블’ 여행사의 마틴 조 국장은 “중국계 미국인들을 중국 등 아시아에 보내는 여행상품을 많이 취급하고 있다”며 “여행객들이 중국에 갔을 때 한국에 들러서 성형수술을 받는 여행상품은 시장성이 있다”고 말했다.

○ 교포사회 중심으로 관심 확대

한국 내 35개 병원이 가입한 한국국제의료서비스협의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을 찾은 의료관광객은 1만6000여 명. 아직까지는 일본과 중국인이 대부분이다.

이날 행사를 주관한 한국관광공사 뉴욕지사에 따르면 의료관광을 떠나는 미국인은 매년 50만 명에 이른다.(주1)

조성욱 한국관광공사 뉴욕지사장은 “미국인들이 의료관광으로 주로 찾는 지역은 태국 싱가포르 인도 등이다. 한국은 의료수준이 높은 반면 의료비가 미국에 비해 훨씬 저렴하기 때문에(주2) 홍보만 잘되면 많은 미국인 의료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의료보험료가 4인 가족 기준으로 월 1000달러에 이를 정도로 비싸 무보험자가 4000만 명이 넘는다. 치과보험은 무보험자가 1억 명 이상이다. 한국에서 대중화된 위장내시경 검사도 미국의 무보험자들에겐 큰마음 먹지 않고는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주3)

김대희 한양대 국제협력병원 외국인 전담 코디네이터는 “아직까지 의료관광을 위해 한국을 찾는 미국인은 많지 않지만 미국과 한국의 의료비 격차가 매우 크기 때문에 일단 교포들을 중심으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주1) 어찌 보면 매우 슬픈 현실이다. 마이클 무어의 Sicko를 보면 심지어 쿠바로까지 의료관광을 떠나는 장면이 나오는 것이야 영화를 본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하지만 우리도 언젠가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

(주2) 이 멘트는 요즘 분위기에서는 거의 좌파적인 발언이 아닐까 싶다

(주3) 이 멘트 역시 미국의 의료현실을 고발하는 매우 ‘좌파’적인 멘트다

다국적 제약회사와 맞선 태국정부의 값진 승리

지난 번에 이 블로그에서 태국 정부가 다국적 제약회사의 의약품에 대해 강제실시권(주1)을 발동하기로 하였고 이에 대해 해당 기업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 바 있는데(원문보기) 최근 소식에 따르면 결국 태국정부의 승리로 끝났다고 한다.

태국 정부는 그동안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이 에이즈치료제, 심장약, 암 치료제 등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약품에 대하여 특허를 파기하고 강제실시권을 발동하겠다는 카드를 내놓았다. 결국 제약회사들은 이에 굴복하여 스위스 로슈사는 폐암 및 췌장암 치료제인 엘로티닙(상품명: 타세바)의 가격을 30%, 프랑스 사노피-아벤티스사는 폐암 치료제인 도세탁셀(상품명: 탁소티어)의 가격을 60% 내리는데 합의하였다. 또한 스위스 제약사인 노바티스는 작년말 자사 암 치료제인 이마니팁(상품명: 글리벡)에 대해 태국 정부가 특허파기를 철회할 경우 빈곤층에 한해 이 약품을 무료로 제공하겠다고 제안했다.

한편 태국정부가 그동안 자국의 조치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었던 WTO의 TRIPs 협정의 근거항목은 다음과 같다.

DECLARATION ON THE TRIPS AGREEMENT AND PUBLIC HEALTH
TRIPS 협정과 공중 보건에 관한 선언

(b) Each Member has the right to grant compulsory licences and the freedom to determine the grounds upon which such licences are granted.
각 회원국은 강제실시권을 허가할 권리가 있으며 이러한 실시권이 허가될 수 있는 영역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
(c) Each Member has the right to determine what constitutes a national emergency or other circumstances of extreme urgency, it being understood that public health crises, including those relating to HIV/AIDS, tuberculosis, malaria and other epidemics, can represent a national emergency or other circumstances of extreme urgency.

각 회원국은 국가적 응급상황 또는 극도의 비상상태의 상황 구성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이것은 HIV/AIDS, 결핵, 말라리아와 다른 유행병과 관련되는 공중 보건 위기가 국가 응급상황 또는 극도의 비상상태상황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협정은 지적재산권의 강국인 선진국과 상대적 약자인 제3세계 국가들의 첨예한 이해관계의 충돌과 타협에 의해 탄생한 협정이니 만큼 승인 요건의 내용이 애매하고 추상적이어서 달리 해석될 여지가 많다. 예를 들자면 특정국가가 강제실시권을 발동함에 있어 그 범위와 기간을 한정시켜야 하고 사유가 종료되는 즉시 강제실시권을 종료하여야 하는 제약이 있다. 또한 해당 조항이 자유시장 원칙과 지적재산권 보호를 침해한다는 명분으로 미국 정부가 압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아 의약품에 대한 강제실시의 승인은 용이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이번 태국정부의 승리는 어쩌면 단순한 법리논쟁이나 공공성과 수익성 간의 갈등이라는 차원을 떠나 한 힘없는 주체인 태국정부가 국가 단위 이상의 권력을 키워가고 있는 주체인 다국적 제약회사와 그들이 배경으로 삼고 있는 강대국을 상대로 용기 있는 도발을 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을 것이다. 많은 빈국들이 2001년 신설된 이 강제실시권 규정을 알고는 있었으나 감히 실시하지 못하고 제풀에 포기한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태국의 경우를 보고 다른 나라들도 ‘하면 된다’ 는 자신감을 갖게 되지 않을까 싶다.

참고글들
http://www.e-healthnews.com/article/view.jsp?art_id=27470&cd=60
http://cafe.naver.com/ripc.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9
http://kin.naver.com/detail/detail.php?d1id=4&dir_id=41401&eid=lOGVb7Lt0L2A3iszF1zPtFpTmPBozvEg&qb=d3RvILCtwaa9x73Dscc=

(주1) WTO는 지난 2001년 에이즈, 말라리아, 결핵과 같은 질병이 만연한 국가는 지적재산권 보호에 관한 국제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합의, 특허 보유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 의약품을 생산 또는 판매할 수 있도록 강제실시권 발급 규정을 신설했다.

신약 개발에서의 오픈소스 운동 사례

예전에 어느 사이트에 올린 번역글인데 우연히 찾아서 자료축적 차원에서 여기 다시 올립니다. 해당 글은 의약개발 분야에서 과학자들이 상업적 이득보다는 약을 필요로 하는 이들 – 대부분 지불능력이 없는 가난한 이들 – 을 위해 공동 작업을 하고 있는 현황에 대한 기사로 이중 일부를 번역해서 올립니다.

기사 제목 : An open-source shot in the arm?
http://www.economist.com/displaystory.cfm?story_id=2724420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BIO2004 – 생명공학 산업기관연례회의 -에서 이번 주에 제출된 한 보고서에서 Stephen Maurer, Arti Rai, Andrej Sali—두 변호사와 계량 생물학자 -는 열대 질병의 약을 개발하기 위해 오픈소스 운동을 펼칠 것을 제안했다. 이는 다음과 같이 진행될 것이다: 그들이 The Tropical Disease Initiative 라 부르는 웹사이트에서 생물학자들과 화학자들이 특정 질병에 대한 특정 영역 중 자신들의 전문분야에 자원한다. 분배된 데이터베이스를 조사하고 주석을 단다. 그리고 실험을 진행한다. 결과는 투명하게 공개되고 대화방에서 토론을 거친다. 보고서 작성자들은 이 연구가 최소한 처음에는 ‘습기 찬’ 실험실에서 행해지기 보다는 주로 계량적인 것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이러한 제안이 생물 의학 연구의 초기 오픈소스 운동과 다른 점은 과학자들이 소프트웨어를 교환하기 전에 데이터에 대해 공동 작업을 한다는 것이다. 인간 지놈의 매핑과 같은 프로젝트(지놈 프로젝트도 일종의 오픈소스 운동이었다고 보는 것이 필자의 시각임 : 역자 주)는 상의하달 방식의 정부 개입이 광범위하게 있었지만 이 제안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프로젝트처럼 연구자들 자신들이 아래로부터의 자발적으로 조직한 결과라는 점이다. 즉 작성자들은 어떤 국가나 자선단체에서 초기 자금을 기부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더 나아가 연구 결과는 스프트웨어 프로젝트에 지배적인 어떤 종류의 오픈소스 라이센스에 의해 상업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대신에 약품 후보군의 최종개발은 경쟁 입찰을 통해 선정된 연구소에 맡겨질 것이다. 약 자체는 모든 제조업자가 생산할 수 있도록 공공의 영역에 속해진다. 작성자들은 이는 약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가능한 한 가장 낮은 가격으로 살 수 있는 약을 개발한다는 목표를 달성하게 만들 것 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특허에 너무 익숙해서 공공의 영역에서 약을 개발하는 방법 들을 잊어버렸어요. 그리고 우리는 그 방법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버클리의 캘리포니아 대학에 있는 공공정책 골드만스쿨의 Maurer 씨의 이야기다.

이 사례는 신약 개발에 오픈소스 개발모델을 적용하고자 하는 수많은 시도 중 하나이다.

공공의료 시스템 파괴의 주범은 이명박이 아닌 노무현

‘의료보험의 민영화와 당연지정제 폐지’에 관한 블로고스피어의 논쟁을 보면서 한 가지 어이없는 일은 위의 두 급진적 조치가 ‘인간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되었기 때문에 촉발된 것이라고 보는 관점이다. 어떤 이는 – 아마 현 정부 지지자일 것으로 생각되는데 – 이명박 지지자들에게 ‘너희들이 어떤 사람을 뽑았는지 앞으로 똑바로 지켜보라’는 훈계까지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의료보험의 민영화와 당연지정제 폐지’는 현 정부가 초석을 이미 다 다져놓은 상태다. 당연지정제의 경우 이미 2005년 민주화의 산 증인 김근태씨가 복지부 장관으로 있던 시절 폐지를 검토했다가 참여연대가 항의성명을 내는 등 저항이 일자 서둘러 봉합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현 정부가 슬그머니 저질러놓은 사건이 있다. 바로 자유경제구역과 한미FTA다. 이 두 가지 수단만 있으면 의료자본은 한국의 의료보험 체계를 언제든지 깨부술 수 있다.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는 ‘국민건강보험법’ 제40조(요양기관)에 규정하고 있다.

제40조 (요양기관) ①요양급여(간호 및 이송을 제외한다)는 다음 각호의 요양기관에서 행한다. <중략>

1. 「의료법」에 의하여 개설된 의료기관
2. 「약사법」에 의하여 등록된 약국
<중략>
④제1항 및 제2항의 규정에 의한 요양기관은 정당한 이유 없이 요양급여를 거부하지 못한다.

이로써 국내에 각각 의료법과 약사법에 의해 개설된 병원, 약국은 요양급여, 즉 치료를 거부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 원칙에 균열을 낸 것이 바로 ‘경제자유구역’이다.

노무현 정부가 경제자유구역의 설치 및 활성화를 위해 2005년 제정한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23조에는 다음과 같은 조항이 있다.

제23조 (외국의료기관 또는 외국인전용 약국의 개설 <개정 2005.1.27, 2007.12.7>) ① 외국인 또는 외국인이 의료업을 목적으로 설립한 「상법」상 법인으로서 다음 각 호의 요건을 모두 갖춘 법인은 「의료법」 제33조제2항에 불구하고 보건복지부장관의 허가를 받아 경제자유구역에 외국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다. <중략>
⑤제1항 및 제2항에 따라 개설된 외국의료기관 또는 외국인전용 약국은 「국민건강보험법」 제40조제1항의 규정에 불구하고 동법에 의한 요양기관으로 보지 아니한다.

요약하자면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국내 요양기관은 요양급여를 거부하지 못하지만 ‘경제자유구역법’에 따른 요양기관은 요양급여를 거부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즉 당연지정제에서 면제된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당연지정제의 정신은 누가 깼을까.

경제자유구역은 일종의 특정구역이고 특별법 지정을 통해 예외를 둔 것이니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을 통한 전 요양기관으로의 확대와는 다른 문제 아니냐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순진한 생각을 깨부수는 것이 바로 한미FTA다.

즉 경제자유구역에서의 예외조항은 의료기관 영리법인화,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도 폐지, 민간의료보험의 도입 등 의료체제의 신자유주의화를 가속화시킬 것이고 이를 지지하는 튼튼한 지지대가 바로 한미FTA 일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한미FTA에는 ‘투자자-국가 분쟁 절차(Investor-State Dispute : ISD)’ 또는 ‘투자자 국가 제소권’이라 불리는 투자자의 무기가 있기 때문이다.

한미FTA가 발효되면 외국기업 또는 외국인투자기업은 허다한 공공서비스를 역차별이라 규정하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의료시스템에서의 그들의 공격대상은 보나마나 당연지정제와 강제가입제다. 이 소송은 국내에서 진행되는 것도 아니고 헌법의 규정을 받지도 않는다. 이에 대해 시사인의 장영희 기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AIG 같은 미국계 보험회사들이 한국의 강제가입제가 부유층의 민간 보험 가입을 막아 자신들의 잠재 이익을 침해했다며 투자자 국가 제소권(ISD)을 동원한다면 건강보험의 무력화는 시간문제다.”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FTA?”, 시사인, 장영희 전문기자)

이외에도 한미FTA 조약에는 ‘역진 금지 기제(래칫)’ 등 다양한 투자자 보호 제도가 완비되어 있으니 그것만 있으면 대통령이 이명박 씨가 앉아 있든, 정동영 씨가 앉아 있든, 심지어 권영길 씨가 앉아 있든 상관없이 자본은 공공서비스를 맘대로 난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조약은 누가 만들었는가? 바로 노무현 현 대통령이다.

이 당선자는 먼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얘기를 꺼냈다.
▽이=한미 FTA 체결은 정말 잘한 일이다. 사실 대통령이 한미 FTA를 할 줄은 몰랐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낀 대한민국이 미국 시장을 먼저 겨냥한 것은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 노 대통령 임기 중에 한미 FTA 비준안이 (국회에서) 통과됐으면 좋겠다. 나도 한나라당 의원들을 설득하겠다.
▽노=FTA 비준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盧대통령-李당선자 만찬 회동”, 동아일보, 조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