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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주인의식 없는 주주에 관한 이야기 (한국 버전)

지난 4월 말, 40조 원 규모의 ‘위기극복과 고용을 위한 기간산업안정기금’을 설치하는 내용의 산업은행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중략] 코로나19 극복과 국민경제의 안정을 위해 혈세를 투입하는 만큼 기간산업기금 지원을 받는 기업에 대한 대주주의 책임 분담과 고용안정보장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번 산업은행법 개정안의 내용을 뜯어보면 지원대상 기업의 경영을 정부가 감독하거나 참여할 수 있는 권리는 전무하고, 고용유지 대책은 기업의 자율에 맡기고 있습니다. 일례로, 개정안은 기간산업기금이 출자 등 자금지원으로 보유하게 된 기업 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는다고 못 박고 있습니다.[코로나19 시대, 기업 공적자금 지원에 대한 단상, 이지우 경제금융센터 간사, 참여사회 통권 276호, 참여연대, p54]

지난번 ‘재난 자본주의’에 대한 글을 쓴 바 있는데, 위 글쓴이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번 구제 금융이 ‘재난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국가와 자본가와의 결탁의 한 사례일지도 모르겠다. 알다시피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기업은 노동자를 고용하여 산업을 영위하며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존재다. 기업의 규모가 커져온 와중에 이런저런 사유로 기업이 위기에 몰리면 실업이 증가하는 등 전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 그 악영향이 대공황이나 팬데믹 상황에서처럼 시스템을 통째로 흔들 경우 국가는 기업에 구제 금융을 실시하곤 한다. 문제는 국가가 자본가에게 통제권 및 재산권 제한 등 위기의 책임을 확실히 묻지 않을 경우, 자본가는 위기로부터 이득을 얻는 ‘재난 자본주의’ 혹은 “부자를 위한 사회주의”의 수혜자가 된다는 점이다.

제29조의4(기간산업안정기금의 관리ㆍ운용 및 회계 등) ⑤ 한국산업은행과 회사등은 제2항제1호에 따른 자금지원으로 인하여 보유하는 기간산업기업의 의결권 있는 주식(출자지분을 포함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에 대해서는 의결권을 행사하지 아니한다. 다만, 제29조의5제2항에 따른 자금지원의 조건을 현저하게 위반하여 자금회수에 중대한 지장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제42조(자금지원 등에 관한 특례) ① 제3장의2에 따른 자금지원으로 기간산업기업에 출자하는 경우 해당 기업은 「상법」 제344조의3제2항 및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제165조의15제2항에 따른 한도를 초과하여 의결권이 없거나 제한되는 주식을 발행할 수 있다.[개정 한국산업은행법]

위 조항을 근거로 산업은행은 보유주식의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게 된다. 즉, 「한국산업은행법」 개정안에서는 상법자본시장법에서 의결권이 없거나 제한되는 주식을 발행하는 경우 이 총수가 발행주식 총수의 일정비율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는 조항 등을 무력화시켜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는다. 금융위의 보도 자료를 봐도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으려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참여연대의 비판처럼 “고용”을 위해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으려는 이유를 굳이 추측해보자면 여전히 산은의 골칫덩이인 대우조선해양, 대우건설 등과 같은 “자회사”를 더는 늘리지 않겠다는 의중이 아닌가 한다. 관치 논란도 싫고, 혹여 골칫덩이 자회사가 되면 처치도 곤란하니 의결권 없는 주식이나 보유하겠다는 심산이 아닐까?

이렇게 관(官)이 굳이 사기업을 통제하지 않으려는 의지의 이유는 개정안 제41조의 “한국산업은행 및 그 임직원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 없이 업무를 처리한 경우 그 결과에 대하여 책임을 면제한다.”는 조항에서도 엿볼 수 있는 데, 그 유명한 ‘변양균 신드롬’이 생각나는 조항이다. 그간의 부실기업에 구제 금융을 실시하는 목표가 기업의 재무적 위기의 해소에 주로 초점이 맞추어져있었다면 이번 구제 금융의 목표에는 팬데믹으로 인하여 악화될 수 있는 고용상황의 안정이라는, 어찌 보면 재무상태 개선과 양립하지 않는 경우가 왕왕 있는 목표가 또 하나 있다는 점에서 많은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관(官)이 의결권도 갖고 싶지 않고 “중과실이 없으면” 책임도 면제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이런 관치에 대한 두려움은 비단 우리나라 정부만의 두려움이 아니기는 하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의 미행정부의 행태가 대표적인 사례인데, 당시 그들은 씨티그룹에 보통주가 아닌 우선주를 투입한달지, 말 그대로 “국유화”한 패니메와 프레디맥에 대해 실은 정부가 “후견체제(conservatorship)”의 역할만 할 뿐이라는 되도 않는 변명을 늘어놓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대(對)기업 통제기피증은 “국유화”라는 개념에 대한 공포감도 한몫했겠지만, 결국 관료 엘리트와 자본가들의 공동운명체적 행보를 통해 “재난 자본주의” 혹은 “부자를 위한 사회주의”가 구현된 전형적 사례인 것이다. 그 결과 위기는 현재까지 이연되었고 지난번 글에서 말한 것처럼 Fed는 또다시 엄청난 부실채권을 사들여 자신의 자산 건전성을 망가뜨리고 있다.

재무부는 250억 달러 규모의 정부 보유 우선주뿐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민간 주주의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하는 데 동의했다. [중략] 놀랍게도 재무부는 씨티에 자구책을 모색하라는 요구를 거의 하지 않았다. 보통주 전환을 통해 정부가 확보한 씨티 지분은 전체 주식의 3분의 1이 넘었다. 그뿐 아니라 연방예금보험공사에는 씨티그룹의 자회사이며 부보은행인 씨티은행의 영업을 정지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있었다.[정면돌파, 실라 베어 지음, 서정아/예금보험공사 옮김, 곽범국 감수, 알에이치코리아, 2016년, p302]

그런 “재난 자본주의”의 악몽이 산업은행에서 재연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산업은행과 리먼과의 협상자리에서의 딕 펄드의 행동

민유성은 리먼 주식의 과반수를 살 의향이 있었다. 단, 조건은 리먼의 상업용 및 주거용 부동산 자산을 따로 떼어 배드뱅크를 만듦으로써 리먼 본체, 즉 굿뱅크에 행하는 한국산업은행의 투자가 침해받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중략] 이때 펄드가 나서서 말머리를 잘랐다. “내가 볼 때 그쪽이 큰 실수를 하는 거예요.” 펄드가 민유성에게 말했다. “커다란 기회를 놓치는 거라고. 리먼의 부동산 자산에는 큰 가치가 있습니다.” [대마불사, 앤드루 로스 지음, 노 다니엘 옮김, 한울, 2010년, p363~364]

어쨌든 불발한 거래고 민유성이라는 개인 자체에 그리 신뢰가 가지 않지만, 인용한 이 부분을 보고 있자니 그래도 민유성을 포함한 산업은행 측이 나름 성의 있는 협상을 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자의식 과잉의 딕 펄드는 이전 협약당사자였던 워런 버핏, 모건스탠리, 뱅크오브아메리카 등에 그랬듯이 주제 넘는 고압적인 자세로 리먼의 자산에 대해 착각에 가까운 자부심을 가지고 산업은행에게 무리한 조건을 요구했다. 이러한 태도는 시장의 관점과도 거리가 멀었을 뿐 아니라 다른 경영진 등 내부자의 관점과도 다른 것이었다.

가격협상이라는 것이 매도희망가와 매수희망가의 간극을 좁혀나가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관점이 다른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또한 당시 리먼을 포함하여 많은 투자은행들이 가지고 있던 부동산 자산이라는 것이 여러 희한한 프로세스를 거친 증권화 상품이었다는 점에서 정확한 시장가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점도 충분히 감안할 수 있는 정황이다. 하지만 산업은행과 협상을 할 즈음은 이미 그 복잡한 증권화 상품의 민낯이 드러난 시기였다. 그럼에도 펄드는 저런 허풍을 떨었던 것이다.

Richard S. Fuld, Jr. at World Resources Institute forum.jpg
By World Resources Institute Staff – http://flickr.com/photos/wricontest/369118382/, CC BY 2.0, Link

매서운 외모만큼이나 투박한 성격으로 유명한 딕 펄드는 자신이 쌓아올린 제국인 리먼브라더스가 무너져 내릴 즈음에는 거의 인지부조화에 가까울 정도의 심적 상태를 보이고 있었다. 인용한 책에 보면 그가 이사회에게 당시 금융시장의 심각성을 설명하기 위해 초청한 라사드의 한 전문가가 부정적인 이야기를 이어가자 이 발언을 제지하고 나중에 “넌 해고야!”라고 했다고 한다. 산업은행과의 이 협상자리도 애초 리먼 측이 배드뱅크 설립을 전제로 협상하던 자리에 갑자기 나타나 저런 발언을 했다고 한다. 황당한 노릇이다.

사이코패스는 다른 이들보다 보상의 규칙은 재빨리 알아채고 이를 활용하는 반면, 처벌의 규칙에는 둔감하거나 그리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다. 또 다른 연구기관은 이런 상황이 실제 뇌활동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연구하였는데, 사이코패스 성향이 강한 집단은 쾌락과 행복감에 관련된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을 사이코패스 성향이 약한 집단에 비해 4배 이상 배출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연구팀은 “사이코패스는 타인이나 자기 자신이 생명을 위협하는 결과가 오더라도 끝까지 보상을 추구하도록 뇌의 회로가 프로그램돼있다”고 분석했다.[당신 회사의 CEO는 사이코패스일까?]

해당 전문가가 아닌지라 사이코패스가 명확하게 병적 징후로 규정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유난히 그러한 성향이 강한 이들을 집단화할 수 있다면 딕 풀드는 당연히 사이코패스 성향의 집단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처벌의 규칙에 신경 쓰지 않고 끝까지 보상을 추구했다가 망한 인물이 바로 그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뿐만 아니라 당시 많은 투자은행의 임직원들은 이런 사이코패스적 인지부조화에 전염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유명한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란 문구가 회자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금융자본주의 혹은 신자유주의적 가치관에는 어느 정도 이런 사이코패스적인 매몰참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다른 직종에 비해 보수가 많지 않았던 금융시장이 세계화/증권화되기 시작하면서 엄청난 보수를 받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자 금융업자들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보상에 따른 쾌락을 더 중요시하기 시작했고, 그 대표적인 사례로는 LTCM 사태랄지 엔론 사태1, 그리고 결정적으로 지난 금융위기가 있다. 한 사회의 뇌 회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국에 전화해달라는 펄드의 부탁을 거절한 폴슨

오후 12시 35분, 뱅크오브아메리카와의 협상이 실패했다는 것을 폴슨에게 전화로 알리며 펄드는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남은 대안이라고는 한국인들뿐이었다. 펄드는 폴슨에게 리먼을 위해 한국에 전화를 좀 해달라고 했다. 펄드를 위해 워런 버핏에 이어 뱅크오브아메리카에도 전화했던 폴슨은 이번에는 그 부탁을 거절했다.[대마불사, 앤드루 로스 지음, 노 다니엘 옮김, 한울, 2010년, p352]

리만브라더스가 쓰레기가 된 자산을 끌어안고 살아남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경주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리만의 오만한 독재자 딕 펄드는 침몰하는 함선 안에서도 여전히 자신의 배는 튼튼하다는 착각을 하며 구매의향자들에게 배 값을 비싸게 불렀다. 2008년 7월 21일 구매협상을 했던 뱅크오브아메리카에게 리먼이 제안한 주당 가격은 최소 25달러였는데 그날 종가는 18.32달러였다고 한다.

이런 핵노답 상황에서 펄드가 미국의 재무부 장관이었던 행크 폴슨에게 산업은행에 전화를 해달라고 요청했다는 사실이 언급되어 있어 인용해보았다. 만약 당시 폴슨이 이 부탁을 수락하고 산업은행에 – 또는 청와대에? – 전화를 했더라면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 시장상황으로 봐서는 도저히 성사가 어려운 딜이었지만, MB치하의 부조리한 상황을 감안하면 결과는 모를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라 전체가 우리가 신정(神政)국가였음을 확인하고는 멘붕 상태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공통분모로 수렴된 현대국가의 합리성이라는 요소가 송두리째 부정당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단 이러한 극단적으로 “혼이 비정상”인 상태가 아니더라도 현대국가 역시 언제든 합리성이란 이름으로 부조리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 사례가, 개인적으로는 지난 금융위기라고 생각한다.

인용한 책의 등장인물들은 가장 뛰어난 금융전문가와 정치가들이 맨해튼 등의 미국 동부에 모여 세계 최고의 자본주의 국가를 이끌어가고 있었다. 그야말로 현대를 배경으로 한 영웅전이라 할만하다. 하지만 이야기는 이미 수많은 영웅들이 합작으로 자본주의를 망쳐놓은 시점부터 시작한다. 그러니 때로는 과연 대의민주제나 市場이 神政보다 무엇이 어떻게 우월한가 하는 망상마저 생기는 것이다.

KDB의 리만 인수, 여전히 진행중?

산업은행의 리만브러더스 인수 논의가 꽤 진행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해럴드트리뷴이 오늘자 웹사이트 기사에서 또 다시 관련기사를 개재했다. 이번에는 국내 다른 은행, 그 중에서도 우리은행의 연합 가능성까지 제기되었다.

우리금융지주회사의 계열사인 우리은행의 대변인은 월스트리트 은행의 지분에 참여하거나 아니면 인수하기 위해 산업은행과 공조할지 결정하기 전에 기다려봐야 한다고 말했다.

A spokesman for Woori Bank, a unit of Woori Finance Holdings, also said it needed to wait before it decided whether to team up with Korea Development Bank to buy a stake in or acquire the Wall Street bank.

영국의 선데이텔레그래프는 리만이 산업은행과 이번 주에 결론내릴 지분매각에서 60억 달러를 조달하는 것에 관련해 심도 깊은 대화중이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보도원은 밝히지 않았다.

The Sunday Telegraph in Britain reported that Lehman had intensified talks with Korea Development Bank to raise as much as $6 billion in a share sale that could be concluded this week. The newspaper did not name its sources.

Korean bank in talks with Lehman Brothers

알파헌터님은 어쨌든 우리나라가 세계금융의 심장부의 투자은행을 한번 가져보는 것도 나쁠 것 없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리만을 대우조선해양과 비슷한 가격에 산다는 것도 손해보지 않는 장사 같아 보이기도 한다. IMF 외환위기 당시 헐값에 팔았다가 비싼 값에 되산 수많은 빌딩과 기업들이 눈앞에 어른거리기도 한다. 위험부담자가 돈을 버는 법이라는 격언(?)도 생각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불안감을 감출 수 없다. 미국의 자산이라서 미국의 기업이라서 괜찮지 않겠는가라는 생각도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미국이 망하면 세계가 망하지 뭐~”, 미국이 망하면? 뭥미.. 그런다고 세계가 망하지는 않을 것 같다. 남겨진 낙전들 주워가며 살아야지~! 🙂 “미국의 유수 금융기관인데 설마~” 그 설마가 CDO를 잡아먹었다. 도대체! 미국의 보증업체가 AAA 등급을 매긴 채권을 안 살 이유가 없었다. 그 설마가..

한편으로 영화 Gung Ho 도 생각난다. 일본의 기업이 미국의 자동차기업을 인수하였는데 문화적 차이로 인해 갈등을 겪다 마침내 합심하여 좋은 회사를 만든다는 80년대 영화다. 기업문화에 있어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는 텍스트로 사용되기도 하고 웃고 즐기는 영화로도 볼 수 있다. 각설하고.. 나는 과연 산업은행이 리만과의 문화적, 제도적, 인종적, 기술적 차이를 극복하며 그들의 노하우를 전수받을 수 있을지 의아하다. 국내패션회사가 프라다를 매수한다고 우리나라가 하루 아침에 패션 일번지가 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리만브러더스 해프닝, 그리고 외환보유고

처음 산업은행이 리만브러더스를 인수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들었던 느낌은 그저 1) “세상 많이 좋아졌구나.” 2) “민유성이 리만 출신이라더니 그래서 리만 애들이 거기 쫓아갔구나.” 3) “그거 인수한다고 하루아침에 세계가 인정하는 투자은행이 되겠냐?” 하는 정도의 생각이었다. 솔직히 그냥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미국 애들은 적잖이 흥분했다. 처음 파이낸셜타임스의 보도를 연합뉴스가 받아 베끼면서 시작된 소문은 조선일보가 이를 취재보도하고 블름버그나 AFP등이 또 조선일보를 받아 베끼는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이 소식을 접한 미국인들은 꽤 인상적인 반응을 보였다. 리만의 주가는 폭등하는 와중에 해당 기사에는 ‘미국인들의 정신은 어디 있는가?’라는 댓글이 달렸고 ‘정신이랄 만한 게 있었나?’라는 냉소적인 댓글도 잊지 않고 달렸었다. 십년 전에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했었는데 원인이야 어찌 되었든 상전벽해다.

뭐 이에 대해서 딱히 나 같은 변방의 하찮은 블로거가 코멘트할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던 차에 이에 대해 글을 써야할(!?) 이유가 생겼다. 내가 출근하는 두 블로그의 구루께서 이 문제에 대해 상반된 의견을 보여주셨기에 이를 널리 알리기 위해서다.

우선 포카라님의 견해다.

오늘은 산업은행이 리먼 브러더스를 인수 검토중이라고 나왔다. 말도 안되는 짓거리다. 부도 일보 직전인 부실 금융회사를 왜 우리가 인수해야 하나?  지금 우리 나라는 달러가 태부족이어서 환율이 급등하고 있다. 하루에 1원만 움직여도 엄청난 변동인데 오늘만 17원 가까이 올랐다. 호기롭게 환율을 방어하던 강만수는 시장에 없었다. 방어할 달러가 없는 것이다. 무역적자는 8월말까지 100억 달러가 예상된다. 올해만 외국인 주식 순매도 규모가 26.7 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달러 환산하면 280 억 달러가 넘는 규모. 무역 적자와 외국인 매도만 합해도 무려 380억 달러가 언제든지 시장에서 빠져 나갈 수 있는 돈이다. 강만수가 환율 방어한답시고 200억달러를 허공중에 날려 버렸다. 금년 들어서만 이 세 부문에서 달러증발 요인이 무려 600억 달러에 육박한다. 이러니 환율이 급등하지 않을 수 없다. [리먼브러더스 — 부실덩어리를 산업은행에서 인수?, 포카라]

다음은 알파헌터님의 견해다.

멋진 신세계라 생각합니다. 인수가 이루어질지 이루어지고 나서 손익이 어떻게 될지는 소생으로서는 알길이 없으나… 일단 한국토종자본이 미국의 머니센터뱅크까지는 아니라 해도 일류 IB를 인수하는 국면이 오리라고는 별로 생각해 본 일이 없기에… 만일 실패해서 자본금을 말아먹는다 해도 장기적인 안목으로 보면 그렇게 대단한 손실일까요? 인수해서 그들과 뒤섞이면서 제대로 배운다면 얻는게 더 많을 것입니다. 외환보유고는 쌓아두면 좋은 줄만 아는 분들도 있으나… 외환보유고는 매우 비용이 많이 든다는 사실도  아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또한 외환보유고는 결국 그 나라의 실력을 말하는 것도 아무것도 아닌 자본의 흐름을 반영할 뿐입니다. 80년대에 외환보유고를 무지막지하게 쌓아온 일본의 몰락에서 배워야 합니다.[KDB의 리먼브라더스 인수가능성에 대해서, 알파헌터]

알파헌터님의 글에는 포카라님에 대한 언급이 없으나 리만브러더스에 대한 견해뿐만이 아니라 외환보유고에 대한 언급이 있다는 점, 그리고 시간상으로 포카라님의 글 뒤에 올린 글이라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알파헌터님의 포카라님의 글을 읽고 올린 글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여하튼 그러건 아니건 간에 내가 좋아하는 두 분이 꽤나 중대한 문제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나의 구미를 당겼다. 포카라님은 외환보유고, 넓게 봐서는 국내 달러여유분의 증발에 대해 염려하고 있고 알파헌터님은 그게 그렇게 금과옥조는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다.(사실 리만의 문제보다도 이에 대한 관심 때문에 인용한 것이다)

Lehman Brothers Times Square by David Shankbone.jpg
Lehman Brothers Times Square by David Shankbone” by David ShankboneDavid Shankbone.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둘 중 어느 것이 답이라고 할 수 없을 듯하다. 이성적으로야 요즘과 같이 하루에도 천문학적인 자금이 전 세계적으로 왔다 갔다 하는 시대에 적정외환보유고라는 것이 있을 수 있는 것인가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면 알파헌터님의 의견이 더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경제라는 것이 또 심리인지라 하루가 다르게 달러가 영토 밖으로 술술 빠져나가는 상황을 마냥 ‘아 괜찮아 적정외환보유고란 환상일 뿐이야’라고만 이야기하며 모른 체할 수도 없는 노릇인 것 같다. 시장참여자들이 모두 알파헌터님처럼 – 고전경제학의 이상론처럼 – 지극히 합리적인 참여자들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리만브러더스 이야기하다 외환보유고로 우회전해버렸는데 애초에 그러려고 쓴 글이니 뭐… 두 문제 모두 어찌되었든 이제 우리나라 경제가 외부경제와 떼려야 뗄 수 없을 정도로 얽혀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그동안 수출로 쌓아놓은 외환을 비용을 들여가며 관리했었고 금융의 세계화(또는 미국화)가 진행되면서 외부금융시장에도 돈을 묻고 자본시장통합법으로 투자은행도 본격화될 것이고 뭐 그런 일련의 과정이 한밤중의 은밀한 안개처럼 국내시장을 가늠하는 판단근거들이 된 것이다. 문제는 그것을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관계당국, 전문가, 학자들이 있어야 할 것인데 그것이 걱정이다. 금융은 인재가 중요하다는 말을 어디서 들은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