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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본위제, 그리고 외상장부의 처리

금본위제 문제와 케인지언의 재정정책 부문은 참으로 어렵군요. 만일 금본위제로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글로벌 불균형은 없었겠지요. 그치만 케인지언 주장대로 라면 금본위제는 경제 성장이나 경기 침체시 정부 정책에 제약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요. 제 생각엔 너무 지나친 성장 일변도로 나갈 생각이 없었다면 금본위제를 유지하는 것도 좋지 않았을까 생각이 드네요. 우리는 빨리 돈을 벌고 잘 살려는 욕구가 너무 강한 것 같습니다. 금본위제 폐지가 미국의 패권 전략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나 기본적으로는 성장을 앞당기기 위한 저의도 있다고 봅니다. 이제 다시 금본위제로 가기는 힘든 상황이지요.[포카라님]

중상주의라고 통칭되어지는 초기의 경제사조는 사실 다양한 주장과 다듬어지지 않은 이론이 난무하였기 때문에 ‘무슨 주의’라고 한데 엮기는 조금 곤란하다고 여겨지는, 일종의 시대적 흐름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이 공유하는 공통점은 분명히 존재했다.

“많이 팔고 조금 사자.” “금이 짱이다.”

“중상주의(重商主義, mercantilism)”라는 단어에서 분명히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상업, 즉 무역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들은 부의 창출이 무역을 통해 실현된다고 보았다. 후에 아담 스미스가 지적하고 칼 마르크스가 발전시킨 노동가치론을 통해 노동이 진정한 부의 창출수단이라고 보기 전까지 사람들은 이를 당연시했다.(주1) 더불어 그들은 그 부의 최종결과물을 금으로 보았다. 왜냐면 금은 곧 돈이기 때문이다. 즉 중금주의(重金主義)로 이어지는 논리다. 아주 단순하다.

그 당시 사람들은 지폐는 돈으로 보지 않았다. 그것은 일종의 차용증서일 뿐이다. 지금도 통용되는 지폐를 보면 그것이 돈이라는 말은 없다. 그것은 ‘은행권’일뿐이다. 은행이 돈을 – 다시 말해 금을 – 맡겨놓은 이들에게 금을 맡았다고 확인해주는 ‘은행권’이다. 이것이 오늘날 부분지급준비제도의 시초라 할 수 있다. 결국 이것이 금본위제의 초기형태가 된다. 부는 무역을 통해 창출되고, 금으로 표시되며, 은행권은 그것의 차용증서다.

그런 의미에서 금본위제로의 복귀는 중상주의로의 복귀 정도의 의미 이상을 부여하기는 어렵다. 전 세계가 달러본위제를 포기하고 – 포기하게 미국이 양허한다면 – 금본위제로 돌아간다면 다시금 금이 국력이 되는 시절이 돌아온 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우리는 자국 화폐의 힘을 키우기 위해 반도체나 배를 생산하기보다는 금을 캐러 산으로 들로 쏘다녀야 할 것이다. 이것은 농담이다. 🙂

포카라님 말씀대로 금본위제로 다시 복귀하는 것은 힘들뿐 더러 불필요하다. 21세기의 금본위제는 그 나라의 경제력에 부합하는 통제된 발권력의 형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문제는 과연 개별 국가들이 이성적으로 자신의 경제력에 – 즉 예전에는 금보유고로 측정되었던 – 대해 진솔할 수 있고, 그에 대해 화폐주권을 올바로 행사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지금은 달러라는 오직 한명의 깡패가 지 마음대로 화폐주조권을 행사했고 나머지 국가는 울며 겨자 먹기로 달러에 페그했던 시스템이라면, 달러본위제의 폐지는 깡패가 대략 100개 나라가 넘게 되는 사태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달러패권을 필요악이라 볼 수밖에 없다. 아주 더러운 경우지만 이러한 특수한 변수가 전후 자본주의를 이끌어온 것이 사실이다. 달러는 단순히 경제력만이 아닌 군사력과 결합하여 통화질서를 이끌어왔다. 그렇지만 결국 기축통화의 자격에 어울리는 강한 달러를 유지하는 동시에 유동성 공급을 위해 약세로 전환될 수밖에 없는 모순에 처해지면서 – 이것이 바로 ‘트리핀의 딜레마’ – 전 세계는 금융위기로 빠져들고 있다.

개별 국가가 독립적인 화폐주권을 보유하면서 그것이 통일성을 가지게 하는 방법이 달러본위제나 금본위제 말고 무엇이 있을까? 현재로서는 유일한 대안은 세계화폐일 것이다. IMF가 시도한 것이 특별인출권(SDR, Special Drawing Rights )이다. 하지만 이것은 달러의 위력에 눌려 천대받고 있다. 결국 실질적으로 패권국가가 사라진 호혜 평등한 세계에서의 세계정부가 권위를 가지고 있는 진정한 세계화폐가 나오기 전까지는 우리는 그저 다음 패권통화는 어떤 것이 될 것인지 지켜볼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유로 아니면 위안?

지금 규제 없이 무차별 달러 살포가 과연 작금의 위기를 진정시킬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달러를 정도껏 풀어야 분석을 하든지 하지 무제한 방출이라니 생각이 막막합니다. 어쩌자는 짓인지 FOOG 님 고견 좀 듣고 싶네요.[포카라님]

결국 이에 대한 제 생각을 말씀드리고자 위에서 주절댔습니다만… 🙂 깡패가 배때기 긋고 행패 부리는데 말릴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더 이상 외상은 안 된다고 아무리 외쳐봐야 그래도 외상을 먹겠다고 하는 놈을 누가 주저앉히고 차분히 설명해줄 수 있을지 저도 잘 감이 안 오네요. 결국 어느 순간 외상장부를 태워버리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있을까 싶습니다.

추 1. 다들 잘 아시겠지만 참고로 본원통화가 얼마만큼 통화량을 늘리는지는 다음 그림을 참고하실 것.
추 2. 금본위제가 통화안정을 가져올 것이라는 가정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금본위제 하에서도 역시 통화증발의 가능성은 상존할 뿐 더러 현대 금융시스템의 가공할 신용창출력은 각국의 금보유고를 충분하고도 효과적으로 무색하게 만들 수 있다.

(주1) 물론 아직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거나 이제는 정보(informantion)가 부를 창출한다는 변종도 등장했다

off-balance sheet

현재 진행되고 있는 월스트리트의 위기에 대해 차베스나 그린스펀만큼이나 할말이 많으실 것 같은 – 또는 논평을 집요하게 강요당하실 것 같은 – 장하준 교수께서도 한겨레21에서 평소 그의 지론에 입각하여 현 사태를 비판하셨다. 역시 평소의 그답게 깔끔하고 명쾌한 해석이 돋보이므로 일독을 권한다.(포카라님의 글까지 함께 읽을 수 있는 이곳으로 가실 것)

인터뷰 중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관련해서는 파생상품·복합상품이 너무 많고 손실 보고가 안 되는 ‘오프 밸런스 시트’ 같은 것도 있어서 금융사 자신도 정확한 피해규모를 모른다.

파생상품이니 복합상품이니 하는 단어는 여기저기서 조금씩 들어보셨을 것으로 판단되어 “오프 밸런스 시트”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겠다. 이 단어는 off-balance sheet,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부외금융(簿外金融)이다. 우리말이 더 어렵다.

예를 들어 설명하겠다. A기업이 돈 100억 원을 빌려 부동산 개발 사업을 하고 싶다. 한데 부채비율이 300%여서 돈을 빌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면 이 회사는 자본금을 5천만 원의 B라는 부동산 개발 전용 회사를 설립한다. 그리고 C은행에 가서 부동산 사업의 사업성을 담보로 돈을 빌린다. 이른바 ‘프로젝트파이낸싱(project financing)’인 셈이다. 물론 은행이 사업성만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진 않는다. A의 지급보증 등이 채권보전책으로 강화된다.

이제 한번 살펴보자. A는 C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렸을까? 아니다. B가 차주이고 A는 지급보증만 선 것이다. 그러므로 A의 대차대조표(balance sheet)에는 100억 원이 부채로 잡히지 않는다. 다만 지급보증을 주석에 기록하면 된다. 이것이 바로 off-balance sheet 효과다. 그리고 B라는 부동산 개발 전용 회사는 일종의 도관체(conduit)다. 정작 A가 사업을 한 것인데 B라는 도관을 이용한 것이다.

결국은 ‘뒷구멍으로 호박씨 깐 거네!’라고 비난할 일은 아니다. 신용도가 낮은 회사가 유망한 사업을 시행할 수 있는 좋은 구조이기도 하다. 은행입장으로서는 대출금이 엉뚱한 곳에 쓰이지 않고 – 회장님의 술값 등 – 자신들이 경제성이 있다고 생각되는 사업에 올바르게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장치이기도 하다. B라는 회사의 재무제표만 감시하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게 부실한 업체나 투자은행 등에서 남발되면 금번과 같은 대형사고의 진원지가 된다는 것이다. 부실한 업체 D의 부실한 회계감사에서 드러나지 않는 온갖 파생상품과 부실사업들은 곪아 썩어문드러질 때까지 투자자의 시야에 잡히지 않는다. 2000년대 초반에 엔론이 이런 식으로 사세를 고질라처럼 불려나가다가 빵하고 터져버렸다. 물론 이번 월스트리트가 사고 친 걸 보고 있자니 그때의 사건은 자그마한 해프닝처럼 느껴진다.

어쨌든 사후약방문이긴 하지만 회계규칙은 이러한 off-balance sheet를 차단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투자은행들의 경우 바젤2 등을 통해 위험가중치를 차별적으로 적용하는 방식으로 규제가 강화되는 추세다. 언제나 하는 말이지만 규제 없는 시장은 없다. 규제가 나쁜 것이 아니라 시대를 못 따라잡거나 비합리적인 규제가 나쁜 것이다.

리만브러더스 해프닝, 그리고 외환보유고

처음 산업은행이 리만브러더스를 인수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들었던 느낌은 그저 1) “세상 많이 좋아졌구나.” 2) “민유성이 리만 출신이라더니 그래서 리만 애들이 거기 쫓아갔구나.” 3) “그거 인수한다고 하루아침에 세계가 인정하는 투자은행이 되겠냐?” 하는 정도의 생각이었다. 솔직히 그냥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미국 애들은 적잖이 흥분했다. 처음 파이낸셜타임스의 보도를 연합뉴스가 받아 베끼면서 시작된 소문은 조선일보가 이를 취재보도하고 블름버그나 AFP등이 또 조선일보를 받아 베끼는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이 소식을 접한 미국인들은 꽤 인상적인 반응을 보였다. 리만의 주가는 폭등하는 와중에 해당 기사에는 ‘미국인들의 정신은 어디 있는가?’라는 댓글이 달렸고 ‘정신이랄 만한 게 있었나?’라는 냉소적인 댓글도 잊지 않고 달렸었다. 십년 전에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했었는데 원인이야 어찌 되었든 상전벽해다.

뭐 이에 대해서 딱히 나 같은 변방의 하찮은 블로거가 코멘트할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던 차에 이에 대해 글을 써야할(!?) 이유가 생겼다. 내가 출근하는 두 블로그의 구루께서 이 문제에 대해 상반된 의견을 보여주셨기에 이를 널리 알리기 위해서다.

우선 포카라님의 견해다.

오늘은 산업은행이 리먼 브러더스를 인수 검토중이라고 나왔다. 말도 안되는 짓거리다. 부도 일보 직전인 부실 금융회사를 왜 우리가 인수해야 하나?  지금 우리 나라는 달러가 태부족이어서 환율이 급등하고 있다. 하루에 1원만 움직여도 엄청난 변동인데 오늘만 17원 가까이 올랐다. 호기롭게 환율을 방어하던 강만수는 시장에 없었다. 방어할 달러가 없는 것이다. 무역적자는 8월말까지 100억 달러가 예상된다. 올해만 외국인 주식 순매도 규모가 26.7 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달러 환산하면 280 억 달러가 넘는 규모. 무역 적자와 외국인 매도만 합해도 무려 380억 달러가 언제든지 시장에서 빠져 나갈 수 있는 돈이다. 강만수가 환율 방어한답시고 200억달러를 허공중에 날려 버렸다. 금년 들어서만 이 세 부문에서 달러증발 요인이 무려 600억 달러에 육박한다. 이러니 환율이 급등하지 않을 수 없다. [리먼브러더스 — 부실덩어리를 산업은행에서 인수?, 포카라]

다음은 알파헌터님의 견해다.

멋진 신세계라 생각합니다. 인수가 이루어질지 이루어지고 나서 손익이 어떻게 될지는 소생으로서는 알길이 없으나… 일단 한국토종자본이 미국의 머니센터뱅크까지는 아니라 해도 일류 IB를 인수하는 국면이 오리라고는 별로 생각해 본 일이 없기에… 만일 실패해서 자본금을 말아먹는다 해도 장기적인 안목으로 보면 그렇게 대단한 손실일까요? 인수해서 그들과 뒤섞이면서 제대로 배운다면 얻는게 더 많을 것입니다. 외환보유고는 쌓아두면 좋은 줄만 아는 분들도 있으나… 외환보유고는 매우 비용이 많이 든다는 사실도  아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또한 외환보유고는 결국 그 나라의 실력을 말하는 것도 아무것도 아닌 자본의 흐름을 반영할 뿐입니다. 80년대에 외환보유고를 무지막지하게 쌓아온 일본의 몰락에서 배워야 합니다.[KDB의 리먼브라더스 인수가능성에 대해서, 알파헌터]

알파헌터님의 글에는 포카라님에 대한 언급이 없으나 리만브러더스에 대한 견해뿐만이 아니라 외환보유고에 대한 언급이 있다는 점, 그리고 시간상으로 포카라님의 글 뒤에 올린 글이라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알파헌터님의 포카라님의 글을 읽고 올린 글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여하튼 그러건 아니건 간에 내가 좋아하는 두 분이 꽤나 중대한 문제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나의 구미를 당겼다. 포카라님은 외환보유고, 넓게 봐서는 국내 달러여유분의 증발에 대해 염려하고 있고 알파헌터님은 그게 그렇게 금과옥조는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다.(사실 리만의 문제보다도 이에 대한 관심 때문에 인용한 것이다)

Lehman Brothers Times Square by David Shankbone.jpg
Lehman Brothers Times Square by David Shankbone” by David ShankboneDavid Shankbone.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둘 중 어느 것이 답이라고 할 수 없을 듯하다. 이성적으로야 요즘과 같이 하루에도 천문학적인 자금이 전 세계적으로 왔다 갔다 하는 시대에 적정외환보유고라는 것이 있을 수 있는 것인가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면 알파헌터님의 의견이 더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경제라는 것이 또 심리인지라 하루가 다르게 달러가 영토 밖으로 술술 빠져나가는 상황을 마냥 ‘아 괜찮아 적정외환보유고란 환상일 뿐이야’라고만 이야기하며 모른 체할 수도 없는 노릇인 것 같다. 시장참여자들이 모두 알파헌터님처럼 – 고전경제학의 이상론처럼 – 지극히 합리적인 참여자들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리만브러더스 이야기하다 외환보유고로 우회전해버렸는데 애초에 그러려고 쓴 글이니 뭐… 두 문제 모두 어찌되었든 이제 우리나라 경제가 외부경제와 떼려야 뗄 수 없을 정도로 얽혀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그동안 수출로 쌓아놓은 외환을 비용을 들여가며 관리했었고 금융의 세계화(또는 미국화)가 진행되면서 외부금융시장에도 돈을 묻고 자본시장통합법으로 투자은행도 본격화될 것이고 뭐 그런 일련의 과정이 한밤중의 은밀한 안개처럼 국내시장을 가늠하는 판단근거들이 된 것이다. 문제는 그것을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관계당국, 전문가, 학자들이 있어야 할 것인데 그것이 걱정이다. 금융은 인재가 중요하다는 말을 어디서 들은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