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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만브러더스 해프닝, 그리고 외환보유고

처음 산업은행이 리만브러더스를 인수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들었던 느낌은 그저 1) “세상 많이 좋아졌구나.” 2) “민유성이 리만 출신이라더니 그래서 리만 애들이 거기 쫓아갔구나.” 3) “그거 인수한다고 하루아침에 세계가 인정하는 투자은행이 되겠냐?” 하는 정도의 생각이었다. 솔직히 그냥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미국 애들은 적잖이 흥분했다. 처음 파이낸셜타임스의 보도를 연합뉴스가 받아 베끼면서 시작된 소문은 조선일보가 이를 취재보도하고 블름버그나 AFP등이 또 조선일보를 받아 베끼는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이 소식을 접한 미국인들은 꽤 인상적인 반응을 보였다. 리만의 주가는 폭등하는 와중에 해당 기사에는 ‘미국인들의 정신은 어디 있는가?’라는 댓글이 달렸고 ‘정신이랄 만한 게 있었나?’라는 냉소적인 댓글도 잊지 않고 달렸었다. 십년 전에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했었는데 원인이야 어찌 되었든 상전벽해다.

뭐 이에 대해서 딱히 나 같은 변방의 하찮은 블로거가 코멘트할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던 차에 이에 대해 글을 써야할(!?) 이유가 생겼다. 내가 출근하는 두 블로그의 구루께서 이 문제에 대해 상반된 의견을 보여주셨기에 이를 널리 알리기 위해서다.

우선 포카라님의 견해다.

오늘은 산업은행이 리먼 브러더스를 인수 검토중이라고 나왔다. 말도 안되는 짓거리다. 부도 일보 직전인 부실 금융회사를 왜 우리가 인수해야 하나?  지금 우리 나라는 달러가 태부족이어서 환율이 급등하고 있다. 하루에 1원만 움직여도 엄청난 변동인데 오늘만 17원 가까이 올랐다. 호기롭게 환율을 방어하던 강만수는 시장에 없었다. 방어할 달러가 없는 것이다. 무역적자는 8월말까지 100억 달러가 예상된다. 올해만 외국인 주식 순매도 규모가 26.7 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달러 환산하면 280 억 달러가 넘는 규모. 무역 적자와 외국인 매도만 합해도 무려 380억 달러가 언제든지 시장에서 빠져 나갈 수 있는 돈이다. 강만수가 환율 방어한답시고 200억달러를 허공중에 날려 버렸다. 금년 들어서만 이 세 부문에서 달러증발 요인이 무려 600억 달러에 육박한다. 이러니 환율이 급등하지 않을 수 없다. [리먼브러더스 — 부실덩어리를 산업은행에서 인수?, 포카라]

다음은 알파헌터님의 견해다.

멋진 신세계라 생각합니다. 인수가 이루어질지 이루어지고 나서 손익이 어떻게 될지는 소생으로서는 알길이 없으나… 일단 한국토종자본이 미국의 머니센터뱅크까지는 아니라 해도 일류 IB를 인수하는 국면이 오리라고는 별로 생각해 본 일이 없기에… 만일 실패해서 자본금을 말아먹는다 해도 장기적인 안목으로 보면 그렇게 대단한 손실일까요? 인수해서 그들과 뒤섞이면서 제대로 배운다면 얻는게 더 많을 것입니다. 외환보유고는 쌓아두면 좋은 줄만 아는 분들도 있으나… 외환보유고는 매우 비용이 많이 든다는 사실도  아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또한 외환보유고는 결국 그 나라의 실력을 말하는 것도 아무것도 아닌 자본의 흐름을 반영할 뿐입니다. 80년대에 외환보유고를 무지막지하게 쌓아온 일본의 몰락에서 배워야 합니다.[KDB의 리먼브라더스 인수가능성에 대해서, 알파헌터]

알파헌터님의 글에는 포카라님에 대한 언급이 없으나 리만브러더스에 대한 견해뿐만이 아니라 외환보유고에 대한 언급이 있다는 점, 그리고 시간상으로 포카라님의 글 뒤에 올린 글이라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알파헌터님의 포카라님의 글을 읽고 올린 글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여하튼 그러건 아니건 간에 내가 좋아하는 두 분이 꽤나 중대한 문제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나의 구미를 당겼다. 포카라님은 외환보유고, 넓게 봐서는 국내 달러여유분의 증발에 대해 염려하고 있고 알파헌터님은 그게 그렇게 금과옥조는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다.(사실 리만의 문제보다도 이에 대한 관심 때문에 인용한 것이다)

Lehman Brothers Times Square by David Shankbone.jpg
Lehman Brothers Times Square by David Shankbone” by David ShankboneDavid Shankbone.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둘 중 어느 것이 답이라고 할 수 없을 듯하다. 이성적으로야 요즘과 같이 하루에도 천문학적인 자금이 전 세계적으로 왔다 갔다 하는 시대에 적정외환보유고라는 것이 있을 수 있는 것인가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면 알파헌터님의 의견이 더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경제라는 것이 또 심리인지라 하루가 다르게 달러가 영토 밖으로 술술 빠져나가는 상황을 마냥 ‘아 괜찮아 적정외환보유고란 환상일 뿐이야’라고만 이야기하며 모른 체할 수도 없는 노릇인 것 같다. 시장참여자들이 모두 알파헌터님처럼 – 고전경제학의 이상론처럼 – 지극히 합리적인 참여자들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리만브러더스 이야기하다 외환보유고로 우회전해버렸는데 애초에 그러려고 쓴 글이니 뭐… 두 문제 모두 어찌되었든 이제 우리나라 경제가 외부경제와 떼려야 뗄 수 없을 정도로 얽혀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그동안 수출로 쌓아놓은 외환을 비용을 들여가며 관리했었고 금융의 세계화(또는 미국화)가 진행되면서 외부금융시장에도 돈을 묻고 자본시장통합법으로 투자은행도 본격화될 것이고 뭐 그런 일련의 과정이 한밤중의 은밀한 안개처럼 국내시장을 가늠하는 판단근거들이 된 것이다. 문제는 그것을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관계당국, 전문가, 학자들이 있어야 할 것인데 그것이 걱정이다. 금융은 인재가 중요하다는 말을 어디서 들은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