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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은 케인스와 하이에크의 이념전쟁터가 되어버린 것일까?

부진한 경제성장과 우리의 치명적인 부채부담은 망가진 연방정부의 결과다. 워싱턴은 우리의 천부적인 권리를 보호하고, 미국을 안전하게 지키고, 모든 이 – 특별히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계층에게 – 기회를 증진시키는 것 등의 중요한 역할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양 당은 수 년 동안 지탱할 수 없는 수준까지 지출을 늘림으로써 정부를 그 핵심적인 기능이상으로 밀어붙였다. 연속되는 불완전한 미봉책은 미국이 잃어버린 10년 또는 잃어버린 세대로 접어드는 상황으로 몰고갈 뿐이다. 확실하게 부채를 줄이고 성장을 촉진할 수 있는 구조적 개혁이 이러한 결과를 방지하기 위해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들이다.[Republicans must return to free-market principles]

밋 롬니가 부통령 후보로 지명하면서 일약 공화당의 새로운 젊은 피로 떠오른 폴 라이언이 부통령으로 지명받기 전인 7월에 파이낸셜타임스에 기고한 글의 일부다. 인용문도 그렇지만 글 전체의 논지가 깔끔하고 선명한 색깔을 띠고 있어 4년 전의 부통령 후보 사라 페일린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공화당이 바라던 지식인상에 가깝지 않은가 생각될 정도다.

이러한 이미지에 부합하기라도 하듯 폴 라이언은 부통령으로 지명되자마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아인 랜드 등 대표적인 보수주의 사상가들의 이름을 거명하며 미국 대선을 난데없는 이념투쟁의 장으로 만들어버렸다. 베인 캐피탈의 은행가로서의 길을 걸었던 롬니와 보수주의의 십자군과 같은 캐릭터 폴 라이언이라는 재밌는(?) 조합이 탄생한 것이다.

폴 라이언은 지난 기간 양당 모두가 정부지출을 과도하게 늘렸다고 비난하고 있다. 이런 시각은 오바마의 과도한 정부지출이 부시의 해법의 연장선에 있다는 현실인식에 기인하는 것이다. 또한 그 비판은 그의 정신적 지주 면면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가 정부의 존재에 대해 가장 호전적인 우익이라 할 수 있는 리버타리안적 성향이기에 가진 시각일 것이다.

그의 이러한 호전적이고 학구적인 정책 드라이브가 채택된 것인지, 아니면 밋 롬니가 진작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얼마 전 롬니 캠프는 폴 라이언이 “구조적 개혁”이라 부를만한 놀랄만한 공약을 발표했다. 바로 ‘금본위제로의 복귀’와 ‘연방준비제도의 회계감사’다. 가장 강한 수준의 재정적 견실주의적(fiscal prudence) 조치라 할 것이다.

재정적 견실주의는 굳이 하이에크까지 바다 건너가지 않더라도 공화당이 전통적으로 지니고 있던 경제적 신조다. 물론 이러한 신조는 거의 정치적 레토릭에 가까웠고 실제로는 오히려 공화당 치하에서 군비지출 등 재정지출이 더 증가한 정황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가장 최근 금본위제 복귀를 검토한 것도 레이건 정부였고, 이번이 그 리바이벌이다.


출처 : whittier.edu
 

우선 금본위제는 여러모로 한심한 공약이다. 닉슨이 금본위제를 유지할 수 없었던 근본적인 한계에 대한 역사적 성찰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은 둘째 치고, 스스로 가장 강력한 화폐인 美달러의 통화량을 제어할 수단을 포기하겠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유럽의 위기가 근본적으로 각국이 통화주권을 포기한데서 비롯되었다는 최근의 경험도 무시한 발상이다.

Fed를 회계감사 하겠다는 것도 비슷한 발상이다. 여태 Fed가 저지른 짓을 보면 사실 정치적 성향을 떠나 그들의 재무제표를 뒤집어 까고 싶을 것이다. 거기에다 정부의 경제적 개입을 체질적으로 싫어하는 리버타리언적 입장에서는 Fed는 “또 다른 재무부”이기에 감사를 통해 금융견실주의를 관철시키겠다는 것이다. 시장근본주의적 원리를 관철시키겠다는 발상이다.

사실 이런 시장근본주의적 조치는 시장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이 오바마가 포드와 같은 자동차업체를 구제한 것을 비난하지만 시장은 좋아했다. 자본가는 사실 자본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Fed가 돈을 풀지 않으면 자본가들의 먹거리도 줄어든다. 그래서 전 세계의 경영자들 사이에서 오바마의 지지율은 롬니의 지지율보다 22% 더 높다.

이데올로기로써의 재정적 견실주의는 그러한 견실주의가 경제를 망친다는 케인즈의 발상에 확실한 대척점을 긋고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정부의 역할을 극단적인 야경국가로 한정하고 있는 티파티와 같은 극우주의 정치집단의 목소리가 높아진 상황을 반영한 공화당 경제노선의 선명성은 십자군적 캐릭터 폴 라이언이 나섬으로써 그 어느 때보다 두드러져 보인다.

하지만 유명한 경제평론가 배리 리트홀츠는 누가 대선에서 이기든지 경제 로드맵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각 시기의 대통령은 대개 경제순환주기의 큰 흐름에 발을 걸쳤을 뿐이라는, 이번에는 증세와 같은 재정확대밖에는 해답이 없다는 냉소적 진단이다. 어떠한 “혁명적” 조치가 없을 것이라는 전제 하에서는 난 그의 입장에 공감한다.

음모론, 프리드먼, 그리고 자유

케인즈의 일반이론에서의 주요주제 하나는 공황조짐이 있는 상황에서의 통화정책이었다. 그러나 밀턴 프리드먼과 안나 슈워츠는 그들의 “미국에서의 화폐의 역사” 에서 Fed는 대공황을 막을 수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 나중에 이 주장은 프리드먼 그 자신의 것들을 포함한 인기 있는 저작들에서 Fed 가 공황을 초래했다는 주장으로 변신했다.
A central theme of Keynes’s General Theory was the impotence of monetary policy in depression-type conditions. But Milton Friedman and Anna Schwartz, in their magisterial monetary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claimed that the Fed could have prevented the Great Depression ? a claim that in later, popular writings, including those of Friedman himself, was transmuted into the claim that the Fed caused the Depression.[Was the Great Depression a monetary phenomenon?, Paul Krugman, 2008.11.28]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주장을 세상의 모든 일을 유태자본의 음모로 환원시키는 음모론자들이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당시 연준은 무엇을 했는가? 그들은 이자율을 낮추어 경제활동에 활력을 불어넣기보다는 무자비하게 통화량을 수축시켰다. 그리하여 1929년 457억 달러에 달하던 통화량이 4년 후인 1933년에는 3백억 달러에 불과해서 극심한 디플레가 조장되었다. 비록 대부분의 사람들은 1929년 대공황의 주범이 연준은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겠지만 유수의 경제학자들간에는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노벨상 수상자이자 경제학자인 스탠퍼드 대학의 프리드먼(Milton Friedman) 교수도 1996년 1월 방송국 대담에서 그러한 사실을 인정했다.[세계 경제를 조종하는 그림자 정부(경제편), 이리유카바 최, 2002년, 해냄출판사, p154]

한편 이 책에서는 말미에 지급준비금 보유율을 1백 퍼센트까지 증가시켜야 한다거나 월별 인구 증가 예상에 준해 월별 화폐 공급량을 산출한다는 등의 COMER(통화경제개혁위원회 : committee on monetary economic reform)라는 단체의 주장을 싣고 있는데 그다지 맘에 와 닿는 주장은 없다. 잘은 몰라도 통화주의 이론을 조악하게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다(주1). 한편 이들이 이론적 지주로 여기는 프리드먼은 어떠한 세계를 꿈꾸고 있을까? 그의 글을 많이 접해보지 못한 터라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아래 글에서 단초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페비언 사회주의와 뉴딜 자유주의(주2)로 향한 여론의 흐름은 이제 약화되었지만, 앞으로 나타날 여론의 물결이 아담 스미드나 토마스 제퍼슨의 정신에 입각한 자유의 확대와 정부의 축소로 향할 것인지, 아니면 마르크스나 모택동의 정신에 입각한 일당독재정부로 향할 것인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선택의 자유, 밀턴 프리드먼, 박우희譯, 1980년, 주식회사 중앙일보, p190]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프리드먼은 “마르크스나 모택동의 정신에 입각한 일당독재정부”는 거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 글에서 그가 지향하고 있는 것은 “아담 스미드나 토마스 제퍼슨의 정신에 입각한 자유의 확대와 정부의 축소”일 것이다. 아담 스미스라면 이미 국부론을 통해 경제학의 기반을 다진 이고 그 다음으로 토마스 제퍼슨은 미국의 제3대 대통령으로 알려져 있다. 내 관심을 끄는 이는 토마스 제퍼슨이다. 왜 프리드먼은 토마스 제퍼슨을 끄집어냈을까? 그것은 그가 바로 알렉산더 해밀턴이라는 인물과 대척점에 섰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알렉산더 해밀턴은 누구인가? 그는 미국의 초대 재무장관이다. 그는 미국의 건국 이후 영국의 영란은행을 흉내 낸 중앙은행을 설립하였고, 미국의 경쟁력 약한 제조업을 육성하기 위해 자유무역을 반대하였고, 당시 13개로 뿔뿔이 흩어져 있던 주정부를 아우르는 강력한 중앙정부를 수립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기에 많은 이들의 많은 반발을 샀다. 그를 반대한 부류는 월스트리트와 금융을 금권주의의 탐욕이라고 주장하는 이들, 남부의 부유한 농산물의 자유무역을 통해 이익을 얻는 이들, 그리고 신생미국이 영국과 같은 강력한 정부보다는 보다 자유로운 자치가 허용되어야 한다고 여기는 이들이었다. 그 중심에는 토마스 제퍼슨이 있었다.

자본주의 캠프 선봉에는 해밀턴이 있었고, 민주주의 캠프 선봉에는 제퍼슨이 있었다. 해밀턴이 이끄는 연방주의자 Federalist 들은 강력한 중앙정부를 지지했으며, 특히 금융과 상업활동에서 정부의 개입을 강조했다. 지역적으로는 동북부 뉴잉글랜드 지방을 기반으로 했다. 반면 제퍼슨이 이끄는 공화주의자 Republican(놀랍게도, 오늘날 민주당의 원조인 이들을 당시에는 ‘공화당’이라고 불렀다)들은 연방정부의 권한을 제한하는 것을 지지했고 이들의 지역기반은 남부였다. 농민들과 대지주들이 공화당의 지지 세력이었다. [머니맨, 헨리 브랜즈, 차현진 해설.옮김, 청림출판, 2008년, p92]

자 이제 편이 갈라졌다. 프리드먼이 아담 스미스와 함께 제퍼슨을 언급한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그것은 그가 절대적인 가치인 자유를 – 특히 경제활동의 자유를 – 마르크스나 모택동이나, 그리고 결정적으로 해밀턴과 같은 강력한 중앙정부 주창자들로부터 수호하기 위해서이다. 이것은 자본주의 이전의 봉건제나 절대군주제에서 정당성을 획득한 주장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절대군주 하에서의 경제에 대한 독재로 인한 폐해는 실제로도 심하였다고 한다.

특히 프리드먼의 주특기(?)인 통화문제에 있어 군주의 횡포가 심했는데 그것은 바로 무절제한 화폐 초과공급을 말하는 것이다. 즉 화폐주조권을 가지고 있던 절대군주는 금함량을 속이는 방법 등으로 화폐를 유통시켜 자신의 사금고를 채우곤 했다. 발권기관의 수익을 뜻하는 시뇨리지의 어원도 불어의 ‘군주 seigneur’에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 이러니 나라의 경제는 피폐해져 인민들의 생활은 비참하게 찌들어가게 되었고 결국 절대군주제는 무너지게 된다. 그리고 잘 알다시피 거기에서부터 자유주의는 싹트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역사적 타당성을 획득한다.

프리드먼이 대표하는 시장자유주의는 마르크스, 모택동, 해밀턴이 지향하는 강력한 중앙정부가 이토록 피를 흘려가며 지켜온 자유를 빼앗아가는 행위라고 간주하고 있는 듯하다. 여기에서 마르크스와 모택동은 좌익을 대표하고 오히려 해밀턴은 금권주의를 대표하는 바, 상반된 이들 같지만 둘 다 시장의 자유를 유린한다는 점에서는 공범인 셈이다. 더 나아가 ‘그림자 정부’의 저자 이리유카바 최는 현대의 자본주의는 사실 사회주의라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시장의 지배자인 자본가가 경제사에 등장한 이래 권력층은 – 심지어 절대군주조차도 – 자본가의 자유는 유린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그들은 공생관계를 변함없이 맺어왔다. 프리드먼이 싫어하는 해밀턴은 유치산업(幼稚産業) 보호론을 통해 미국에서의 자본가의 육성을 도모했었다. 독재자 박정희는 재벌의 독점권을 옹호하였다. 오늘날 미국정치의 경우에는 부시 행정부처럼 정부 자체가 자본가로 메워지기도 했었다. 그들에게 있어 주요한 패퇴는 기껏해야 아직 대지주가 힘을 발휘하던 시절의 영국에서 ‘곡물법(corn law)’을 폐지할 힘이 없었던 시기나, 대공황으로 인한 금융억압으로 인해 행동에 제약이 가해지던 정도였다.

해군이 면직산업 발전에 결정적인 전환점을 마련해 준 것은 1753-63년의 7년 전쟁에서 프랑스에게 승리한 것이었다. 이 전쟁에서 프랑스 함대에게 심대한 타격을 가함으로써 영국이 인도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영국이 패배했다면 인도나 아메리카, 아프리카의 식민지를 내놓도록 요구 당했을 것이므로 면직산업에게도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나폴레옹과의 전쟁도 마찬가지이다. 넬슨 제독이 해상권을 장악한 덕분에 랭카셔의 수출은 1793-1815년 사이에도 급속하게 증가했다. 반대 상황이었다면 면직산업의 미래도 장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렇게 식민제국과 해군력이 원료 공급지와 시장을 하나로 묶는 것을 도와줌으로써만 영국 면직산업은 유지될 수 있었다.[면직산업과 의료,시장, 통상로 보호의 문제, 강철구, 2008.8.11]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의 글이다. 이 당시 영국과 프랑스 양국의 정치체제는 말할 것도 없이 군주제였다. 그들은 비록 독재자이긴 하였지만 자신들의 권한을 자국 산업의 성장을 위해 사용했다. 그러한 면에서 어쩌면 시장참여자 중에서 자본가에는 애초에 강력한 국가로부터 찾아올 자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번 월街의 사태를 보더라도 그들은 든든한 조력자가 아닌가 말이다.

한편 앞서 살펴본 화폐주조권이 독점되어 있기에, 연준이 – 현대판 군주(?) – 그것을 잘 못 사용하였기에 그들 자체가 대공황의 주범이라는 주장은 어떻게 볼 수 있을까? 프리드먼과 슈워츠는 앞서 언급한 “미국에서의 화폐의 역사”에서 연준이 최종대부자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하지 못하여 은행 공황이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어느 정도 사실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정책적 실수도 있었지만 금본위 제도를 유지하기 위한 고육지책인 측면도 있다. 더 나아가 이번 금융위기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원인이 결합되어 폭발한 당시의 대공황을 단순히 통화의 수축만을 원인으로, 그것도 음모론적으로 파악한다는 것은 너무 순진한 발상일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정책의 실패를 바탕으로 최종대부자의 기능을 없애버리자는 – 또는 통화량 조절이외에는 다른 짓은 하지 말라는 – 발상은 허리띠를 안 매고 다니면 살이 빠질 것이라는 착각에 불과할 뿐이다.

이쯤에서 프리드먼이 보호하고자 하는 자유가 도대체 어떠한 자유인지 궁금해진다. 어쩌면 이것이 아닐까?


“나에게 구제금융을 제공한 것은 고맙다. 그러나 내가 보너스를 받을 자유는 빼앗지 말라.”

최상위 임원들의 임금과 보너스를 강력히 제한하겠다는 발표 하루 뒤 AIG는 이들 임원 중 몇몇은 내년에 “유지 보너스”로 수백만 달러를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One day after announcing strict limits on salaries and bonuses for its top tier of executives, AIG revealed that some of those executives will receive millions in “retention bonuses” next year.[AIG to pay retention bonuses to executives, Financial Times, 2008.11.26]

(주1) 원래 통화주의 자체가 조악한 것일지도…

(주2) 여기에서의 자유주의는 우리가 오늘 날 신자유주의라고 부르는 것의 사상적 뿌리와는 다르다. 이는 미국에서는 자유주의, 즉 liberalism을 1차 세계대전 당시 지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진보당의 작가들이 진보주의 progressivism의 대체물로써 선점하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