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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자산가 의식을 가지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미국에는 ‘대중’이라는 것이 아예 존재한 적이 없다. 가장 가난한 미국인도 하나의 개인이고, 잠재의식적으로도 역시 한 개인주의자다. [중략] 미국인 노동자들은 그 자신들을 ‘프롤레타리아’로 보지 않는다. 그들은 가장 큰 자긍심을 지닌 자산가들에 속한다.[철학 누가 그것을 필요로 하는가, 아인 랜드 저, 이종욱/유주현 역, 자유기업센터, 1998년, pp345~346]

사회주의는 미국에서 뿌리내린 적이 전혀 없는데, 이는 가난한 이가 그들 스스로를 착취받는 프롤레타리아로 여기는 대신 일시적으로 가난한 백만장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Socialism never took root in America because the poor see themselves not as an exploited proletariat but as temporarily embarrassed millionaires. [John Steinbeck]

두 인물이 미국의 빈곤계층 혹은 노동자의 계급의식에 대해 같은 의견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아인 랜드는 소비에트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넘어와 철저한 자본주의자로 살았던 소설가인 반면, 존 스타인벡은 ‘분노의 포도’ 등 미국의 노동계급에 대한 애정을 담은 소설로 유명한 소설가다. 이처럼 경제체제에 입장을 보면 좌우의 대척점에 서있는 소설가가 미국의 노동자에 대해서는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미국인을 만난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그들은 개인주의적 사고나 자기책임 의식이 강한 편이다. 아마도 건국초기 드넓은 땅을 개척해야 하는 성향이 몸에 배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되는데, 어쨌든 두 작가가 보기에 노동자의 그런 성향이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접어든 시기에도 여전히 타국의 노동자에 비해 더 강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성향을 아인 랜드는 긍정적으로 스타인벡은 부정적으로 느끼는 것 같다.

노동자가 개척정신을 가지고 현실에 안주하기 보다는 창업 등의 방법으로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려 한다면 그것은 분명 긍정적인 삶이다. 실제로 자본주의 초기 적잖은 노동계급 출신의 가난뱅이가 사업을 벌여 성공적인 자본가로서의 삶으로 안착한 사례도 많다. 문제는 그런 성공사례가 본인의 의지로만 성취될 수 없을 때조차, 여전히 노동자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근거 없는 긍정주의나 당의정과 같은 허위의식일 것이다.

그의 논문에 따르면, 한국은 2012년 현재 소득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45%를 차지한다. 이는 전 세계에서 소득불균형이 가장 심한 미국(소득 상위 10%가 48.16% 점유)에 육박하는 수치[중략]다. 1979~1995년 30%에 머무르던 상위 10%의 소득 비중은 2000년 35%를 넘었고, 2006년 42%로 치솟았다.[“OECD도 몰랐던 사실…. 한국은 심각한 소득불균형 국가”]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의 열풍 등 세계적으로 소득불균형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가운데 우리나라도 미국 못지않게 소득불균형이 심하다고 주장하는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에 관한 소개기사다. 우선 미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소득불균형이 심하다는 사실은 미국인의 낙관적인 개척정신에 다소 배반되는 현실이다. 또한 김 교수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우리 역시 그네들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사실 창업정신으로 말할 것 같으면 우리나라 사람을 따라갈 이들이 없다. 터키나 멕시코 등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 우리나라의 자영업자 비율은 세계최고다. 그들 모두가 스스로를 “일시적으로 가난한 백만장자”라고 여기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자긍심을 지닌 자산가”로 사업을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부지런히 창업하고 부지런히 망하고 있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라기보다 노동자의 삶이 고달파서 창업하는 경우도 많아 안타깝다.

신세계그룹이 공격적인 편의점 진출 계획을 공개했다. [중략] 신세계는 편의점의 로열티을 없애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했다. [중략] 편의점 업계의 고질적 병폐인 24시간 영업 강요도 없앴다. [중략] 위드미는 또 편의점 경영주와 가맹본부간의 단골 분쟁 사항인 위약금도 받지 않기로 했다.[신세계 편의점 ‘위드미’ 선전포고..”매장 1000개 늘린다”]

한때 트위터에서 다른 사용자에게 ‘계급적으로 소비를 하냐’고 비아냥거려 구설수에 올랐던 정용진 씨가 이끄는 신세계의 파격적인 사업계획이다. 그간 편의점 사장을 사실상의 노예로 만들었던 병폐를 모두 없애겠다고 나선 것이다. 기존 업계에겐 ‘대기업의 횡포’지만 창업주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염려스러운 점은 또 하나의 이런 시스템이 창업주의 창업정신을 올곧이 지켜줄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또 하나의 당의정은 아닌지?

어쨌든 모든 노동자가 백만장자가 될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동정심도 쓸모가 있다

인플레이션 대 ‘동정’이라는 싸구려 희극을 보라. 복지국가 정책이 이 나라(와 전全문명세계)를 거의 경제적 파탄(그 전조는 바로 인플레이션이다)에까지 몰아넣었지만, 압력을 행사하는 집단들은 비생산적인 사람들에게 점점 더 많이 기부하라고 요구하면서 반대자들에게는 ‘동정심’이 없다고 소리 지른다. 동정 그 자체는 밀은 고사하고 풀 한 포기 자라게 할 수 없다. 이미 망한(즉 자신의 자원은 다 소모해버린 채 아무것도 생산할 수 없고 아무것도 내줄 것이 없는) 사람(혹은 나라)의 ‘동정심’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철학 누가 그것을 필요로 하는가 中 말의 입으로부터(1975년), 아인 랜드 저, 이종욱/유주현 역, 자유기업선테, 1998년, pp 144~145]

복지국가 정책이 어떻게 인플레이션을 촉발하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글 나머지에서 찾아 볼 수 없다. 다만 그의 다른 에세이 ‘평등주의와 인플레이션’을 보면 그는 불가항력 등으로 인해 어그러지는 생산 체계로 말미암아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고 여기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서 비추어보면 그는 아마도 생산 없이 소비만 하는 “아무것도 내줄 것이 없는” 사람이 생산 체계를 왜곡시켜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고 여기는 것 같다.

하지만 작가는 “이미 망한” 사람이나 나라에서 새로운 활력이 솟아나 그들의 동정심이 다시 생산자에게 도움을 줬던 역사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할 것인지 궁금하다. 실업급여, 건강보험, 대외원조와 같은 복지는 어쨌든 장기실업, 건강악화, 정정혼란과 같은 더 큰 비용을 발생시킬 사태악화를 막는데 일조하였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벗어난 노동자나 貧國은 생산자의 일원으로 복귀해 경기선순환에 참여하며 ‘동정심’ 클럽의 일원이 되었다.

아인 랜드의 정부에 관한 생각에 관한 생각

사태가 악화되어감에 따라 정부는 이러한 과정을 축소하기는커녕 더 확대시킴으로써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한다. 그 과정은 세계적 규모로 진행되게 되는데, 외국에 대한 원조, 외국정부에 대한 부실(지불이 되지 않은) 여신, 다른 복지국가(복지수혜국) 들에 대한 보조, 국제연합에 대한 보조, 세계은행에 대한 보조, 외국생산자들에 대한 보조, 그리고 외국소비자들이 우리의 재화를 소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신용 등을 위해 모든 자금을 소요하는 반면, 그 모든 것에 대해 돈을 지불하고 있는 미국인 생산자들은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버려지고, 그들의 자산은 이 지상의 전염병 발원지에 사는 족장이 다 차지해버리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철학 누가 그것을 필요로 하는가 中 평등주의와 인플레이션(1974년), 아인 랜드 저, 이종욱/유주현 역, 자유기업선테, 1998년, pp 228~229]

1905년에 러시아에서 태어나 1926년 미국으로 이주하여 미국시민으로 살아간 소설가이자 사상가 아인 랜드(Ayn Rand)의 에세이 중 일부다. 소비에트 치하에서 잠시나마 사회주의 지옥을 맛본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이 사상가의 집단주의에 대한 혐오와 자본주의에 대한 신념은 그 어떤 사상가보다도 굳건하여 오늘날 리버타리안(Libertarian)이라 불리는 극단적인 경제적 보수주의 사상의 공헌자로 간주되기도 한다.

인용문을 보면 그의 정부에 대한 혐오는 명백하다. 정부는 정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쓸데없는 곳에 정부가 걷은 세금을 낭비해버리고 이로 말미암아 “미국인 생산자”가 아닌 “전염병 발원지에 사는 족장”이 자산을 차지해버렸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정부는 당장 해체되어야 할 것이고 실제 리버타리안의 생각은 그러하다. 이런 취지에서 같은 에세이에서 작가는 정부의 역할을 경찰, 군대, 법원으로 한정한다.

그렇다면 정부의 위와 같은 행위의 열매를 실제로 “전염병 발원지에 사는 족장”이 차지해버렸나? 역사적으로 볼 때 그랬을 확률은 낮다. 나열한 여러 정부지출은 마샬플랜과 같은 원조, 국제기구 설립, 대외여신, 기축통화로서의 달러 공급 등의 행위로 여겨지는데 이는 대개 미국의 전후패권 유지와 자본주의의 새로운 소비시장 개척에 기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 열매는 상당부분 “미국인 생산자”가 차지했다.

현실세계의 자본가가 아인 랜드의 주장을 접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 질색을 하며 반대할 것이다. 정부가 정말 작가가 주창한대로 일체의 행위를 중단한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오늘날 유럽은 “유로 소비에트”가 되었을 수도 있고, 멕시코의 외채 위기 당시 미국의 투자은행은 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을 수도 있고, 오늘날의 기축통화는 위안화로 바뀌었을 수도 있다. 물론 가정법이니까 아인 랜드가 책임질 일은 없다.

“이 지상의 전염병 발원지에 사는 족장”이라니 대체.

미국 대선은 케인스와 하이에크의 이념전쟁터가 되어버린 것일까?

부진한 경제성장과 우리의 치명적인 부채부담은 망가진 연방정부의 결과다. 워싱턴은 우리의 천부적인 권리를 보호하고, 미국을 안전하게 지키고, 모든 이 – 특별히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계층에게 – 기회를 증진시키는 것 등의 중요한 역할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양 당은 수 년 동안 지탱할 수 없는 수준까지 지출을 늘림으로써 정부를 그 핵심적인 기능이상으로 밀어붙였다. 연속되는 불완전한 미봉책은 미국이 잃어버린 10년 또는 잃어버린 세대로 접어드는 상황으로 몰고갈 뿐이다. 확실하게 부채를 줄이고 성장을 촉진할 수 있는 구조적 개혁이 이러한 결과를 방지하기 위해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들이다.[Republicans must return to free-market principles]

밋 롬니가 부통령 후보로 지명하면서 일약 공화당의 새로운 젊은 피로 떠오른 폴 라이언이 부통령으로 지명받기 전인 7월에 파이낸셜타임스에 기고한 글의 일부다. 인용문도 그렇지만 글 전체의 논지가 깔끔하고 선명한 색깔을 띠고 있어 4년 전의 부통령 후보 사라 페일린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공화당이 바라던 지식인상에 가깝지 않은가 생각될 정도다.

이러한 이미지에 부합하기라도 하듯 폴 라이언은 부통령으로 지명되자마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아인 랜드 등 대표적인 보수주의 사상가들의 이름을 거명하며 미국 대선을 난데없는 이념투쟁의 장으로 만들어버렸다. 베인 캐피탈의 은행가로서의 길을 걸었던 롬니와 보수주의의 십자군과 같은 캐릭터 폴 라이언이라는 재밌는(?) 조합이 탄생한 것이다.

폴 라이언은 지난 기간 양당 모두가 정부지출을 과도하게 늘렸다고 비난하고 있다. 이런 시각은 오바마의 과도한 정부지출이 부시의 해법의 연장선에 있다는 현실인식에 기인하는 것이다. 또한 그 비판은 그의 정신적 지주 면면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가 정부의 존재에 대해 가장 호전적인 우익이라 할 수 있는 리버타리안적 성향이기에 가진 시각일 것이다.

그의 이러한 호전적이고 학구적인 정책 드라이브가 채택된 것인지, 아니면 밋 롬니가 진작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얼마 전 롬니 캠프는 폴 라이언이 “구조적 개혁”이라 부를만한 놀랄만한 공약을 발표했다. 바로 ‘금본위제로의 복귀’와 ‘연방준비제도의 회계감사’다. 가장 강한 수준의 재정적 견실주의적(fiscal prudence) 조치라 할 것이다.

재정적 견실주의는 굳이 하이에크까지 바다 건너가지 않더라도 공화당이 전통적으로 지니고 있던 경제적 신조다. 물론 이러한 신조는 거의 정치적 레토릭에 가까웠고 실제로는 오히려 공화당 치하에서 군비지출 등 재정지출이 더 증가한 정황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가장 최근 금본위제 복귀를 검토한 것도 레이건 정부였고, 이번이 그 리바이벌이다.


출처 : whittier.edu
 

우선 금본위제는 여러모로 한심한 공약이다. 닉슨이 금본위제를 유지할 수 없었던 근본적인 한계에 대한 역사적 성찰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은 둘째 치고, 스스로 가장 강력한 화폐인 美달러의 통화량을 제어할 수단을 포기하겠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유럽의 위기가 근본적으로 각국이 통화주권을 포기한데서 비롯되었다는 최근의 경험도 무시한 발상이다.

Fed를 회계감사 하겠다는 것도 비슷한 발상이다. 여태 Fed가 저지른 짓을 보면 사실 정치적 성향을 떠나 그들의 재무제표를 뒤집어 까고 싶을 것이다. 거기에다 정부의 경제적 개입을 체질적으로 싫어하는 리버타리언적 입장에서는 Fed는 “또 다른 재무부”이기에 감사를 통해 금융견실주의를 관철시키겠다는 것이다. 시장근본주의적 원리를 관철시키겠다는 발상이다.

사실 이런 시장근본주의적 조치는 시장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이 오바마가 포드와 같은 자동차업체를 구제한 것을 비난하지만 시장은 좋아했다. 자본가는 사실 자본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Fed가 돈을 풀지 않으면 자본가들의 먹거리도 줄어든다. 그래서 전 세계의 경영자들 사이에서 오바마의 지지율은 롬니의 지지율보다 22% 더 높다.

이데올로기로써의 재정적 견실주의는 그러한 견실주의가 경제를 망친다는 케인즈의 발상에 확실한 대척점을 긋고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정부의 역할을 극단적인 야경국가로 한정하고 있는 티파티와 같은 극우주의 정치집단의 목소리가 높아진 상황을 반영한 공화당 경제노선의 선명성은 십자군적 캐릭터 폴 라이언이 나섬으로써 그 어느 때보다 두드러져 보인다.

하지만 유명한 경제평론가 배리 리트홀츠는 누가 대선에서 이기든지 경제 로드맵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각 시기의 대통령은 대개 경제순환주기의 큰 흐름에 발을 걸쳤을 뿐이라는, 이번에는 증세와 같은 재정확대밖에는 해답이 없다는 냉소적 진단이다. 어떠한 “혁명적” 조치가 없을 것이라는 전제 하에서는 난 그의 입장에 공감한다.

아인 랜드(Ayn Rand)

그린스펀은 독특한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이번엔 러시아에서 추방당한 소설가이자 사회철학가이며 사이비종교의 교주와도 같은 아이 랜드라는 사람과의 만남이 그 계기였다. 그린스펀은 1952년 첫 만남 이후, 매주 토요일 그녀의 집에서 열리는 모임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그 모임에서 랜드는 극단적인 개인주의 철학으로 추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린스펀은 훗날 자신의 사상에 랜드가 미친 영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랜드를 만났을 때, 나는 아담 스미스식의 자유기업인으로서 그녀의 이론적 구조와 효율적인 시장론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자본주의가 능률적이고 실용적일 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이유를 생각해보게 만들었습니다.”[그린스펀 효과, 데이비드 시실리아/제프리 크뢱쉔크 지음, 정순원 옮김, 21세기 북스, 2000년, p23]

두어 권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쓰기도 했던 아인 랜드(Ayn Rand)는 이른바 객관주의(Objectivism)라는 철학이론을 주장한 철학자이기도 하였다 한다. 기본적으로 그는 기본적으로 재산권을 포함한 개인의 권리, 자유방임 자본주의의 주창자였다. 소비에트 혁명 후 미국으로 피난 오면서 자연적으로 생성된 반(反)집단주의, 그리고 반(反)스탈린주의의 역반응으로 짐작되는 그의 이러한 입장은 ‘이타주의 윤리’를 거부하는 ‘이기주의 윤리’로까지 발전한다. 

“난 원래 자본주의의 지지자가 아니라 이기주의의 지지자다. 그리고 원래 이기주의의 지지자가 아니라 이성의 지지자다. 만약 누군가 이성의 우월함을 인지하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적용한다면, 모든 나머지 것들이 따라올 것이다.”
“I am not primarily an advocate of capitalism, but of egoism; and I am not primarily an advocate of egoism, but of reason. If one recognizes the supremacy of reason and applies it consistently, all the rest follows.”

여기에서 말하는 “이성(reason)”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는 그의 사고를 좀 더 들여다봐야 알 것이나, 통상적인 그러한 계통의 철학자들이 일반적으로 주장하는 바에 비추어 판단하자면, 뭔가 초월적이고 우생학적인 무엇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철학에 젬병인 나는) 무슨 초인적 의지 .. 뭐 이런 거 말이다.

여하튼 그의 이러한 사고체계가 한때 “경제 대통령”이라고까지 불린 알란 그린스펀에 꽤 오랫동안 영향을 미쳤고, 그린스펀의 자유방임적인 경제운용이 현재의 경제위기를 불러온 한 원인이라는 지적도 꽤 설득력을 얻고 있는 형편이니, 어쩌면 그는 – 그리고 그가 혐오하던 공산주의는 – 오늘날 자본주의 위기의 ‘맹아’가 아니었을까 하는 잡념이 들기도 한다.

아인랜드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