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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엔화 하락으로 돈 번 사람들, 그리고 그 원인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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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Y Banknotes” by TokyoshipOwn work.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조지 소로스 하면 1992년 파운드를 방어하려는 영국중앙은행과 맞장을 뜬 “환투기꾼”이자,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의 위기를 사유하는 “철학자”라는 독특한 삶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인물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이 억만장자 철학자가 일본 엔의 하락세에 베팅하여 파운드 전쟁에서의 노획물에 버금가는 10억 달러의 이익을 거둔 사실을 – 물론 물가가치를 고려하면 그때의 혁혁한 전과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 보도했다.

엔화의 하락에 베팅하는 것은 소심한 이가 할 짓이 못된다. 일본은 몇 년간 자신의 화폐를 절하하여 경제와 주식시장을 재점화하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해 왔다. 그 기간 동안 엔화와 일본 국채에 대해 숏포지션을 취한 많은 이들이, 화폐와 채권이 오히려 상승함에 따라 두들겨 맞았다. 일본은 월스트리트에서는 “과부 제조기”로 알려지게 됐다.[중략]

소로스의 예전의 영국 파운드 하락에 대한 매도와 달리, 소로스와 다른 헤지펀드들의 최근의 움직임들은 일본이나 엔화를 불안정하게 만든 것 같지는 않은데, 이는 부분적으로 일본 엔화의 거래가 투자자들이 좌지우지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광범위한 시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일본의 부채는 국내 투자자들이 가지고 있고, 비관적인 투자자들의 그 나라에 대한 숏포지션이 그리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 또 다른 이유다.

동시에, 소로스의 파운드에 대한 술수는 영국중앙은행의 정책들에 반하는 것이었던 반면, 지금의 헤지펀드들은 디플레이션을 극복하려는 일본중앙은행의 정책이 성공하길 기원하면서 거래를 했다.[U.S. Funds Score Big by Betting Against Yen]

그러니까 소로스를 비롯하여 이번에 큰돈을 번 투자자들은, 1992년의 전투에서와 같이 정부의 의지에 반하는 묘수를 부릴 필요도 없고, 그렇기 때문에 일본정부로부터 욕을 먹을 일도 없었다. 그들은 떨어지는 엔화의 급류에 몸을 맡기고 돈을 벌어들이는 재미를 만끽하기만 하면 됐다. 문제는 WSJ기사에서도 말하듯 내리막이 생기는 시점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엉뚱한 때에 몸을 던졌다가는 과부만 제조되기 때문이다.

엔화 약세의 원인은 무엇일까? 그 원인을 아베 정권 등장과 “무제한적 양적완화레토릭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하지만 WSJ도 지적하듯 이전 정권도 그런 시도를 했지만 지금처럼 성공적이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일본 시티은행의 다카시마 수석 애널리스트는 IMF의 새로운 환평가 모델에 근거해 적정 환율이 1달러당 95엔이고 지금 그 시점으로 복귀하는 것이라 분석하고 있다. 아베는 한 계기일 뿐이란 것이다.

다카시마는 그 예로 2001년에서 2006년에도 일본은행이 양적완화를 실시했지만 외환 시장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 사례를 들고 있다. 당시 일본의 양적완화를 무력화시킨 것은 Fed의 금리인하와 이에 수반된 달러 약세였다. 흥미롭게도 지금의 Fed 수장인 벤 버냉키는 당시 일본이 과감한 통화정책을 통해 불황에서 탈출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논문을 썼다는 점이다. 따라서 미국은 현재 호의적인 침묵을 지키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환율에 관해서 할 말이 많을 폴 크루그먼은 한발 더 앞서가 “환율전쟁”이라는 표현은 “순전히 오해(it’s all a misconception)”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또 다른 저명한 경제학자 베리 아이켄그린의 주장을 빌어 1930년대의 상황조차 최악의 경우에라도 경쟁적인 환율 약세를 통해 “최초의 지점(where they started)”으로 회귀한 것이며, 이번의 “환율전쟁”이라 불리는 것도 결국에는 “순이익(a net plus)”으로 남을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벤 버냉키나 폴 크루그먼이나 “환율전쟁은 근린궁핍화 정책이다”라는 전통적인 주장에서 동떨어져 있는데, 과연 그들의 예언이 어느 정도나 현실에서 실현될지는 아직은 미지수다. 폴 크루그먼은 1930년대 당시 상황 악화의 원인을 금본위제 탈피에서 들고 있지만 어쨌든 당시의 상황을 “전쟁”으로 표현하는데 무리는 없고, 플라자합의도 넓게 봐서는 “환율전쟁”의 파편이 심각한 외상을 입힌 사례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p.s. 현재의 “환율전쟁”이 서로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코노미스트의 긴 글이 있으니 흥미있으신 분은 읽어보시도록…(난 안 읽었다능)

미국 대선은 케인스와 하이에크의 이념전쟁터가 되어버린 것일까?

부진한 경제성장과 우리의 치명적인 부채부담은 망가진 연방정부의 결과다. 워싱턴은 우리의 천부적인 권리를 보호하고, 미국을 안전하게 지키고, 모든 이 – 특별히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계층에게 – 기회를 증진시키는 것 등의 중요한 역할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양 당은 수 년 동안 지탱할 수 없는 수준까지 지출을 늘림으로써 정부를 그 핵심적인 기능이상으로 밀어붙였다. 연속되는 불완전한 미봉책은 미국이 잃어버린 10년 또는 잃어버린 세대로 접어드는 상황으로 몰고갈 뿐이다. 확실하게 부채를 줄이고 성장을 촉진할 수 있는 구조적 개혁이 이러한 결과를 방지하기 위해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들이다.[Republicans must return to free-market principles]

밋 롬니가 부통령 후보로 지명하면서 일약 공화당의 새로운 젊은 피로 떠오른 폴 라이언이 부통령으로 지명받기 전인 7월에 파이낸셜타임스에 기고한 글의 일부다. 인용문도 그렇지만 글 전체의 논지가 깔끔하고 선명한 색깔을 띠고 있어 4년 전의 부통령 후보 사라 페일린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공화당이 바라던 지식인상에 가깝지 않은가 생각될 정도다.

이러한 이미지에 부합하기라도 하듯 폴 라이언은 부통령으로 지명되자마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아인 랜드 등 대표적인 보수주의 사상가들의 이름을 거명하며 미국 대선을 난데없는 이념투쟁의 장으로 만들어버렸다. 베인 캐피탈의 은행가로서의 길을 걸었던 롬니와 보수주의의 십자군과 같은 캐릭터 폴 라이언이라는 재밌는(?) 조합이 탄생한 것이다.

폴 라이언은 지난 기간 양당 모두가 정부지출을 과도하게 늘렸다고 비난하고 있다. 이런 시각은 오바마의 과도한 정부지출이 부시의 해법의 연장선에 있다는 현실인식에 기인하는 것이다. 또한 그 비판은 그의 정신적 지주 면면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가 정부의 존재에 대해 가장 호전적인 우익이라 할 수 있는 리버타리안적 성향이기에 가진 시각일 것이다.

그의 이러한 호전적이고 학구적인 정책 드라이브가 채택된 것인지, 아니면 밋 롬니가 진작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얼마 전 롬니 캠프는 폴 라이언이 “구조적 개혁”이라 부를만한 놀랄만한 공약을 발표했다. 바로 ‘금본위제로의 복귀’와 ‘연방준비제도의 회계감사’다. 가장 강한 수준의 재정적 견실주의적(fiscal prudence) 조치라 할 것이다.

재정적 견실주의는 굳이 하이에크까지 바다 건너가지 않더라도 공화당이 전통적으로 지니고 있던 경제적 신조다. 물론 이러한 신조는 거의 정치적 레토릭에 가까웠고 실제로는 오히려 공화당 치하에서 군비지출 등 재정지출이 더 증가한 정황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가장 최근 금본위제 복귀를 검토한 것도 레이건 정부였고, 이번이 그 리바이벌이다.


출처 : whittier.edu
 

우선 금본위제는 여러모로 한심한 공약이다. 닉슨이 금본위제를 유지할 수 없었던 근본적인 한계에 대한 역사적 성찰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은 둘째 치고, 스스로 가장 강력한 화폐인 美달러의 통화량을 제어할 수단을 포기하겠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유럽의 위기가 근본적으로 각국이 통화주권을 포기한데서 비롯되었다는 최근의 경험도 무시한 발상이다.

Fed를 회계감사 하겠다는 것도 비슷한 발상이다. 여태 Fed가 저지른 짓을 보면 사실 정치적 성향을 떠나 그들의 재무제표를 뒤집어 까고 싶을 것이다. 거기에다 정부의 경제적 개입을 체질적으로 싫어하는 리버타리언적 입장에서는 Fed는 “또 다른 재무부”이기에 감사를 통해 금융견실주의를 관철시키겠다는 것이다. 시장근본주의적 원리를 관철시키겠다는 발상이다.

사실 이런 시장근본주의적 조치는 시장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이 오바마가 포드와 같은 자동차업체를 구제한 것을 비난하지만 시장은 좋아했다. 자본가는 사실 자본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Fed가 돈을 풀지 않으면 자본가들의 먹거리도 줄어든다. 그래서 전 세계의 경영자들 사이에서 오바마의 지지율은 롬니의 지지율보다 22% 더 높다.

이데올로기로써의 재정적 견실주의는 그러한 견실주의가 경제를 망친다는 케인즈의 발상에 확실한 대척점을 긋고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정부의 역할을 극단적인 야경국가로 한정하고 있는 티파티와 같은 극우주의 정치집단의 목소리가 높아진 상황을 반영한 공화당 경제노선의 선명성은 십자군적 캐릭터 폴 라이언이 나섬으로써 그 어느 때보다 두드러져 보인다.

하지만 유명한 경제평론가 배리 리트홀츠는 누가 대선에서 이기든지 경제 로드맵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각 시기의 대통령은 대개 경제순환주기의 큰 흐름에 발을 걸쳤을 뿐이라는, 이번에는 증세와 같은 재정확대밖에는 해답이 없다는 냉소적 진단이다. 어떠한 “혁명적” 조치가 없을 것이라는 전제 하에서는 난 그의 입장에 공감한다.

은(銀)이 사람들의 노동성과를 기반으로 한 ‘성실한’ 화폐?

이 계획이 성공하면 미국 정부는 과거 연방준비은행에서 ‘돈을 빌리고’ 고금리의 이자를 내야 하는 황당한 처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은본위제의 화폐는 미래의 돈을 미리 당겨쓰는 ‘채무’화폐가 아니라 사람들의 노동성과를 기반으로 한 ‘성실한’ 화폐였다.[화폐전쟁, 쑹홍빙 지음, 차혜정 옮김, 박한진 감수, 랜덤하우스, 2008년, p266]

저자인 쑹홍빙 씨가 존 F 케네디가 암살당한 이유로 그가 은본위제를 추진하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대목에서 나오는 문장이다. 음모론 책은 그러려니 하고 읽으면 그만이겠지만 – 물론 그 안에 팩트가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고 – 이 부분은 좀 황당하다.

역사적으로 보면 미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이 금본위제, 은본위제, 그리고 금과 은 둘 다를 기반으로 하는 복분위제 등을 시행해왔다. 금과 은이 모든 금속 중에서도 노동이 많이 투입되고 기타 다양한 이유가 있기에 화폐로써의 우위를 점하여 온 것이다.

현대에 들어 금본위제로 단일화된 데에는 여러 사정이 있을 것이나 美동부의 금융가에 금이 많이 쌓여 있기에 그러했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된다. 다만 문제는 쑹홍빙 씨가 주장하는 바 금본위제 화폐는 채무화폐고 은본위제 화폐는 노동화폐인가 하는 점이다.

앞서 말한바와 같이 금과 은, 둘 다 투입된 노동을 기반으로 화폐의 위치를 점해온 금속이다. 한편으로 어느 것이든 채무화폐가 될 수도 있다. 연방준비제도가 금을 쌓아놓고 이를 기반으로 화폐를 발행하여 정부를 채무자로 만들었다면 은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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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 20kr gold coins” by AnonimskiOwn work. Licensed under CC0 via Wikimedia Commons.

금(金)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특권은 매우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했을 때에 타락한 민중들이 만들어서 숭배한 것은 바로 금송아지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야훼보다 번쩍번쩍 황홀한 색채의 금송아지가 더욱 현실적인(?)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금은 인류가 미(美)와 풍요를 추구하기 시작한 이래, 수많은 장식품의 원재료가 되었으며 가장 뛰어난 품질의 화폐로 자리 잡게 되었다.

시각적 쾌감도 있지만 금이 화폐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또 하나의 금의 매력은 객관적으로 검증 가능한 가치를 온전히 보존하면서도 분할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조개나 쌀, 소금, 소, 심지어 담배 등이 교환의 매개체인 화폐의 기능을 다양한 사회에서 수행하였지만 품질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고 교환되는 가치에 따라 분할이 가능한 금과 같은 것은 거의 없었다. 유일한 경쟁상대는 은(銀)이었으나 복본위제가 금본위제로 바뀌며 금이 유일강자가 되었다.

금의 위치가 현대에 들어 크게 흔들릴 뻔한 일이 있었다. 금본위제의 변태적인 모습인 금환본위제, 즉 달러본위제를 실시하고 있던 미국이 자국통화인 달러의 구매력이 한계에 달하자 금환본위제를 일방적으로 포기한 사건이 그것이다. 금은 화폐 그 자체였고, 화폐의 가치를 보증해주는 담보였는데 이제 그 연결고리가 끊긴 것이다. 엄밀하게 그것은 달러의 위기이기도 했지만 금이 화폐의 – 또는 담보자산으로서의 – 역사에서 퇴장할지도 모르는 사건이기도 했다. 유사 이래 처음 있었던 금의 퇴출이기에 미래를 자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도식적인 예상은 빗나갔다. 금과의 연결고리가 끊어진 美달러는 등락은 있었지만 여전히 기축통화로서 기능하고 있다. 금은 美달러와의 바스킷이 풀리자 이후 지속적으로 가격이 상승하였다. 전 세계 종이화폐의 담보 역할을 미국이 발행한 종이화폐가 하고 있다는 사실, 미국의 종이화폐의 담보 역할을 美재무부의 채권이 대신하고 있다는 사실이 불만인 – 또는 불안한 – 이들은 여전히 금이 최후의 보루라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금가격은 그 수급현황과 무관하게 평균적인 인플레이션을 상회하며 상승하였다.

소비자물가지수 차트(1800 ~ 2005)
금가격 차트(1971 ~ 2007)

금융위기로 말미암아 美달러에 대한 신뢰감이 급격히 저하되며 금을 일종의 대체재로 바라보는 시각이 점점 우세해지고 있다. 단순히 금은방을 드나드는 개인 차원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의 금괴매입이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관련기사) 천문학적인 쌍둥이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근본모순을 지닌 美달러의 미래가 암울하기만 한데다, 유로나 엔, 심지어 위안이나 SDR조차도 그것을 대체할만한 통화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이들이 금을 선택하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은 ‘지불가능성에 대한 믿음’이라는 상수가 자의든 타의든 작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다시 말해 美달러는 그 든든한 경제력/구매력과 함께 패권주의에 의한 강한 군사력이 美달러를 나머지 화폐에 대한 담보로 인정해주는 든든한 믿음을 제공하고 있었다.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하지 않았다는 바람직하지 못한 특징을 제외하고는 이상적인 심리기제였다. 나머지 통화들은 아직 이러한 배경을 제공하지 못한다. 그래서 금을 쫓는다. 하지만  문제는 금 역시 그러한 배경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금은 그저 반짝이는 돌일 뿐이다. 유일한 믿음은 내가 좋아하는 그 금의 매력을 다른 이들도 동일하게 느낄 것이라는 믿음뿐이다. 그 심리는 사용가치를 지닌 다른 상품과는 또 다른 근거 부족한(?) 믿음이다.

결국 美달러와 다른 화폐들이 과학적으로(?), 또는 타협에 의해 정교화 시킨 화폐이론, 또는 합의는 금에 이르러 ‘반짝이는 것에 대한 숭배’라는 하나의 종교적 심리상태만 남는다. 소금에 대해 다양한 특성을 묘사할 수 있지만 ‘소금은 짜다’는 엑기스만 남는 것처럼 말이다. 생각해보면 우스운 일이다. 각국의 합의 하에 – 적어도 상호신뢰라는 이름으로 – 만들어낸 IMF의 SDR은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반면, 오래전 화폐의 수단에서 제외된 금은 여전히 인기를 끄니 말이다.

현대에 접어들어 공급위주경제학자들이 금본위제로의 복귀를 주장하기도 했다지만 금괴를 매입하고 있는 국가들이 또 쉽사리 금본위제로의 복귀를 고려하지는 못할 것이다. 금본위가 자국통화를 안정적인 통화로 만들 것이라는 믿음은 금의 수급상황, 신용창조의 승수효과, 국제경제에서의 공조 여부 등 다양한 변수를 무시한 조악한 이론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금에 대한 애정은 어느 정도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헬리콥터로 뿌려지고 있는 넘쳐나는 돈으로 달리 살 것도 마땅치 않으니 말이다.

금본위제, 그리고 외상장부의 처리

금본위제 문제와 케인지언의 재정정책 부문은 참으로 어렵군요. 만일 금본위제로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글로벌 불균형은 없었겠지요. 그치만 케인지언 주장대로 라면 금본위제는 경제 성장이나 경기 침체시 정부 정책에 제약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요. 제 생각엔 너무 지나친 성장 일변도로 나갈 생각이 없었다면 금본위제를 유지하는 것도 좋지 않았을까 생각이 드네요. 우리는 빨리 돈을 벌고 잘 살려는 욕구가 너무 강한 것 같습니다. 금본위제 폐지가 미국의 패권 전략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나 기본적으로는 성장을 앞당기기 위한 저의도 있다고 봅니다. 이제 다시 금본위제로 가기는 힘든 상황이지요.[포카라님]

중상주의라고 통칭되어지는 초기의 경제사조는 사실 다양한 주장과 다듬어지지 않은 이론이 난무하였기 때문에 ‘무슨 주의’라고 한데 엮기는 조금 곤란하다고 여겨지는, 일종의 시대적 흐름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이 공유하는 공통점은 분명히 존재했다.

“많이 팔고 조금 사자.” “금이 짱이다.”

“중상주의(重商主義, mercantilism)”라는 단어에서 분명히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상업, 즉 무역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들은 부의 창출이 무역을 통해 실현된다고 보았다. 후에 아담 스미스가 지적하고 칼 마르크스가 발전시킨 노동가치론을 통해 노동이 진정한 부의 창출수단이라고 보기 전까지 사람들은 이를 당연시했다.(주1) 더불어 그들은 그 부의 최종결과물을 금으로 보았다. 왜냐면 금은 곧 돈이기 때문이다. 즉 중금주의(重金主義)로 이어지는 논리다. 아주 단순하다.

그 당시 사람들은 지폐는 돈으로 보지 않았다. 그것은 일종의 차용증서일 뿐이다. 지금도 통용되는 지폐를 보면 그것이 돈이라는 말은 없다. 그것은 ‘은행권’일뿐이다. 은행이 돈을 – 다시 말해 금을 – 맡겨놓은 이들에게 금을 맡았다고 확인해주는 ‘은행권’이다. 이것이 오늘날 부분지급준비제도의 시초라 할 수 있다. 결국 이것이 금본위제의 초기형태가 된다. 부는 무역을 통해 창출되고, 금으로 표시되며, 은행권은 그것의 차용증서다.

그런 의미에서 금본위제로의 복귀는 중상주의로의 복귀 정도의 의미 이상을 부여하기는 어렵다. 전 세계가 달러본위제를 포기하고 – 포기하게 미국이 양허한다면 – 금본위제로 돌아간다면 다시금 금이 국력이 되는 시절이 돌아온 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우리는 자국 화폐의 힘을 키우기 위해 반도체나 배를 생산하기보다는 금을 캐러 산으로 들로 쏘다녀야 할 것이다. 이것은 농담이다. 🙂

포카라님 말씀대로 금본위제로 다시 복귀하는 것은 힘들뿐 더러 불필요하다. 21세기의 금본위제는 그 나라의 경제력에 부합하는 통제된 발권력의 형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문제는 과연 개별 국가들이 이성적으로 자신의 경제력에 – 즉 예전에는 금보유고로 측정되었던 – 대해 진솔할 수 있고, 그에 대해 화폐주권을 올바로 행사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지금은 달러라는 오직 한명의 깡패가 지 마음대로 화폐주조권을 행사했고 나머지 국가는 울며 겨자 먹기로 달러에 페그했던 시스템이라면, 달러본위제의 폐지는 깡패가 대략 100개 나라가 넘게 되는 사태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달러패권을 필요악이라 볼 수밖에 없다. 아주 더러운 경우지만 이러한 특수한 변수가 전후 자본주의를 이끌어온 것이 사실이다. 달러는 단순히 경제력만이 아닌 군사력과 결합하여 통화질서를 이끌어왔다. 그렇지만 결국 기축통화의 자격에 어울리는 강한 달러를 유지하는 동시에 유동성 공급을 위해 약세로 전환될 수밖에 없는 모순에 처해지면서 – 이것이 바로 ‘트리핀의 딜레마’ – 전 세계는 금융위기로 빠져들고 있다.

개별 국가가 독립적인 화폐주권을 보유하면서 그것이 통일성을 가지게 하는 방법이 달러본위제나 금본위제 말고 무엇이 있을까? 현재로서는 유일한 대안은 세계화폐일 것이다. IMF가 시도한 것이 특별인출권(SDR, Special Drawing Rights )이다. 하지만 이것은 달러의 위력에 눌려 천대받고 있다. 결국 실질적으로 패권국가가 사라진 호혜 평등한 세계에서의 세계정부가 권위를 가지고 있는 진정한 세계화폐가 나오기 전까지는 우리는 그저 다음 패권통화는 어떤 것이 될 것인지 지켜볼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유로 아니면 위안?

지금 규제 없이 무차별 달러 살포가 과연 작금의 위기를 진정시킬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달러를 정도껏 풀어야 분석을 하든지 하지 무제한 방출이라니 생각이 막막합니다. 어쩌자는 짓인지 FOOG 님 고견 좀 듣고 싶네요.[포카라님]

결국 이에 대한 제 생각을 말씀드리고자 위에서 주절댔습니다만… 🙂 깡패가 배때기 긋고 행패 부리는데 말릴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더 이상 외상은 안 된다고 아무리 외쳐봐야 그래도 외상을 먹겠다고 하는 놈을 누가 주저앉히고 차분히 설명해줄 수 있을지 저도 잘 감이 안 오네요. 결국 어느 순간 외상장부를 태워버리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있을까 싶습니다.

추 1. 다들 잘 아시겠지만 참고로 본원통화가 얼마만큼 통화량을 늘리는지는 다음 그림을 참고하실 것.
추 2. 금본위제가 통화안정을 가져올 것이라는 가정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금본위제 하에서도 역시 통화증발의 가능성은 상존할 뿐 더러 현대 금융시스템의 가공할 신용창출력은 각국의 금보유고를 충분하고도 효과적으로 무색하게 만들 수 있다.

(주1) 물론 아직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거나 이제는 정보(informantion)가 부를 창출한다는 변종도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