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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 Max : Fury Road 感想文

WARNING 스포일러 만땅

Theatrical release poster
Max Mad Fury Road Newest Poster” by Source. Licensed under Wikipedia.

2015년 여름 영화팬들에게는 뜻밖의 선물이 안겨졌다. 1970~80년대를 풍미했던 Mad Max 시리즈의 4편이 나타난 것이다. 게다가 전편보다 더 강력한 하드코어 액션과 탄탄한 시나리오, 그리고 시대선도적인 페미니즘 세계관까지 얹어져서 그야말로 ‘정치적으로 올바른 말초신경 자극 헤비메탈 무비’가 탄생하여 최고의 수작으로 남을 가능성이 커졌다. 올해 일흔이 되신 조지 밀러 님께서 이 정도의 박력과 진보적인 세계관으로 무장하고 계신 것을 보니 나이 탓만 하고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는 내 자신이 부끄러워질 따름이다.

지금 온라인에서는 “이 영화는 페미니즘 영화다”, “아니다. 너희들의 오버이고 페미니즘 영화가 아니다”, “국내의 얼치기 꼴페미와는 다른 진짜 페미니즘 영화다” 등 페미니즘 함유량을 두고 말이 많지만 이 글에서 그 논쟁에 숟가락을 얹을 생각은 없다. 다만 예술이란 사회적 맥락과 수용자의 시각에 상호 조응하여 메시지가 전파되거나 발전하기 때문에 기계적 규정화는 큰 의미가 없다는 의견을 말해두고 싶다. 발표 당시에는 여성 해방적 메시지를 담고 있던 ‘오만과 편견’이 오늘 날에는 로맨틱 코미디가 된 것이 그 좋은 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페미니즘 영화’의 테두리에 두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그 장르를 뛰어넘는 ‘로드 무비’로서의 미덕을 살펴보고 싶다. “분노의 도로”라는 부제가 붙은 만큼 이 영화는 길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 여정 상에서 캐릭터들이 정신적으로 성장하게 된다는 로드 무비 고유의 본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희한하게 뭉친 구성원들은 서로 반목하고 조력하다가 어느덧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스스로의 정신적 굴레로부터도 치유된다. 그러한 면에서 영화는 ‘스탠바이미’나 ‘델마와 루이스’와 닮아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임모탄 조의 씨받이” 중 막내인 치도를 들 수 있다. “The Fragile”이라는 예명이 붙을 만큼 연약해서 탈출을 포기했다고 했던 그녀는 급기야 사령관 퓨리오사가 임모탄 조를 처치하는데 도움을 줄만큼 성장하게 된다. 맥스 역시 여정을 통해 마음의 치유를 받는다. 환상으로 나타나던 딸의 모습은 그를 옳은 길로 인도하고 최후에 미소 짓게 만든다. 이미 없어져 버린 “녹색의 땅”을 찾아 헤매고 소금사막을 건너려던 퓨리오사는 결국 시타델로 돌아가자는 맥스의 조언을 수용하며 고통을 우회하지 않고 직시하게 된다.

시타델을 탈출했다가 결국 무수한 희생을 치르면서 다시 원점인 시타델로 돌아온 꼴이 되고 말았지만 – 게다가 그들의 접수한 권력을 어떻게 써먹을 것인지에 대한 궁리도 없지만 – 정신적으로는 모두들 성장하고 치유를 받게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여정이었다. 그리고 시타델로의 회군은 개개인의 성장이 일반대중으로까지 전파될 수 있는 가능성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발전적이다. 또한 부발리니 여전사 할머니가 보관하고 있던 씨앗이 시타델에 온전히 옮겨졌다는 점에서, 그들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미덕을 갖추고 있는 영화지만 또한 영화의 액션에 대한 상찬을 빼놓을 수는 없다. 우리는 이 영화가 지니고 있는 ‘정치적 올바름’이 영화가 고유하게 지니고 있는 풍성한 액션으로 멋지게 포장되어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무성 영화가 우리가 현재 쓰는 영상언어 문법을 만들어냈다고 믿는다”고 감독이 이야기했듯이 이 영화는 자질구레한 배경 설명을 과감히 생략하고 그 시간을 액션으로 채워 넣었다는 점에서 무성영화의 미덕을 성실하게 재현하고 있다. 특히 감독이 언급한 버스터 키튼의 작품 중에서 ‘The General’과 닮았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텔마와 루이스’와 ‘The General’을 오버랩시킨 영화다.

최근 본 영화들 단평

A Charlie Brown Christmas(1965)

Charles M. Schulz가 그린 유명한 만화 Peanuts의 캐릭터를 바탕으로 만들어져 1965년 CBS 채널을 통해 방영된 TV단편 애니메이션이다.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가 상업주의에 의해 오염되었다고 생각하는 – 그런데 이 작품의 스폰서는 코카콜라였다 – 찰리 브라운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우울하게 지냈다가 그 의미를 찾아내고 친구들과 함께 기뻐한다는 단순한 내용이다. 하지만 이 만화 특유의 따뜻한 분위기와 정감 있는 캐릭터, 그리고 무엇보다도 째즈 피아니스트의 Vince Guaraldi이 주도한 뛰어난 사운드트랙이 백미다.

Apocalypse Now(1979)

Joseph Conrad의 소설 “어둠의 심연(Heart Of Darkness)”를 각색하여 Francis Ford Coppola가 만든 작품. 흔히 反戰을 주제로 한 영화로 간주되고 있으나 단순히 그러한 정치적 틀로 묶어둘 수 없는, 인간의 존재의의와 광기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베트남전의 영웅 Walter E. Kurtz 대령이 “건강하지 않은(unsound)”방법으로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판단을 한 군 수뇌부가 Willard 대위를 암살자로 파견하지만, 그 여정 도중에 대위 자신과 관객은 대체 누가 건강하지 않고 누가 미쳤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가지게 된다.

Hearts of Darkness : A Filmmaker’s Apocalypse(1991)

위에 소개한 Apocalypse Now 제작과정의 뒷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Coppola 감독의 아내 Eleanor Coppola가 공동감독으로 참여한 이 다큐를 보면 영화라는 하나의 예술작품을 완성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에 대해 알 수 있다. 감독과 배우의 인터뷰 등을 담은 이 작품은 예산, 날씨, 소품, 배우, 언론 – 언론은 제작기간이 길어지자 “Apocalypse When?”등의 헤드라인으로 감독을 조롱한다 – 등 어느 것 하나 감독에게 적대적이지 않은 것이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걸작이 탄생했는지를 입체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La Dolce Vita(1960)

Federico Fellini의 영화는 흔히 “아트 필름”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지만 드라마적 요소가 강해 감상하기에 그리 낯설지 않다. 감독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Marcello Mastroianni가 주연한 이 영화는 삼류연예잡지사의 기자로 일하는 주인공이 겪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당시 이탈리아 사회가 겪고 있던 변화의 흐름과 이에 따른 주인공의 심리적 갈등을 영상에 담고 있다. 영화 첫머리에 예수 상을 헬리콥터로 나르는 장면은 – 독일 영화 “굿바이 레닌”이 오마쥬한 –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Taxi Driver(1976)

뉴욕에서 택시 운전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소모하는 택시 기사 Travis에 관한 이야기. 해병대 출신의 노동계급인 Travis는 선거 캠프에서 활동하는 인텔리 Betsy와 사귀는 과정에서 계급적 문화적 괴리감 탓에 헤어지고 난 후 내면으로 침잠하게 되고 스스로를 兵器化하여 도시의 오물들을 청소하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언뜻 이후 1980년대 일본에서 제작된 “鉄男”을 연상시킨다. 어쨌든 10대 창녀를 구원하겠다는 그의 정의감은 새로운 폭력을 불러온다. 사운드트랙의 째즈 연주와 뉴욕 거리, 그리고 배우들이 잘 어우러진 영화.

The Avengers(2012)

마블의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함께 위기를 돌파하고 악인을 물리친다는 설정으로 만들어진 영화. 어릴 적 즐겨봤던 “슈퍼특공대”가 생각나는 작품이다. 언뜻 화학적으로 융합될 것 같지 않은 여러 캐릭터들이 나름의 에피소드로 무난하게 섞이게 만든 연출역량을 높이 살만하다. 특히 미국의 50년대 애국주의 캐릭터인 캡틴 아메리카의 설정은 나름 흥미로웠다. 다만 헐크의 설정은 미숙한 면이 있는데 – 처음엔 이성을 잃어 아군을 공격하다 나중엔 이성도 잃지 않으며 헐크로 분하는 – 영화 흐름상 불가피한 면도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Kingsman: The Secret Service(2015)

모두들 열광하면서 볼 적에 안 보고 조그만 재상영관에서 끝물에 본 작품. 많은 여인들이 Colin Firth의 “수트빨”에 환호하였는데 과연 그의 캐릭터는 여러모로 간지 나는 캐릭터였다. 이런 캐릭터는 특히 영국 스파이물에서 전형적이긴 하지만 특히 이 영화에서는 전형적인 ‘Chav’식 옷차림의 Eggsy와 대비되면서 관객들에게 더 선명하게 부각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코믹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인지라 스토리 자체는 이해가 그리 어렵지 않고 역시 눈요깃거리는 양복 수트빨, 화려한 액션씬, 80년대 팝 위주의 사운드트랙이다.

“빤하지만 멋진” 노래 All Out Of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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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erks of Being a Wallflower Poster” by May be found at the following website: IMP Awards. Licensed under Wikipedia.

‘The Perks of Being a Wallflower(의역 : 존재감 없는 이의 행복)’1는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2012년 작품이다. 좋아하던 이모와의 말못할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Charlie(Logan Lerman)와 자신을 존중해주지 않는 남자만 사귀는 Sam(Emma Watson), 동성애자로서 학교의 인기 스포츠 선수를 사랑하며 괴로워하는 Sam의 이복 오빠 Patrick(Ezra Miller)를 중심으로 한 에피소드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성장영화다. 1990년대 초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Charlie와 Sam 둘 다 The Smiths를 좋아하는 팬으로 설정되어 있는지라 80년대 인디 음악들이 많이 등장한다. 특히 The Smiths의 자살을 암시하는 내용의 Asleep은 Charlie의 주제곡처럼 쓰여 그의 불안한 정서를 대변하고 있다.

80년대 인디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귀가 호사할 만한 영화인데, 한편 의외의 80년대 곡이 등장하기도 한다. 바로 인디와는 거리가 먼 전형적인 팝발라드 그룹 Air Supply의 All Out Of Love. 카셋테잎에 노래를 녹음해줘서 본인의 취향을 상대방에게 과시하던 80~90년대인지라 Sam은 Charlie에게 이 노래를 추천해준 것이다. Sam은 Charlie에게 “빤하지만 멋진(kitsch and brilliant)” 곡이라고 했고 Charlie는 헤드폰으로 노래를 들으며 감정을 넣어 따라 부르면서 Sam의 의견에 동의한다. The Smiths, David Bowie, Nick Drake를 즐겨듣는 주인공들에게는 Air Supply는 그런 존재였을 것이다. 나 역시도 이들의 의견에 동의한다. 빤한 멜로디에 빤한 가사, 그렇지만 그런 빤한 것이 또 우리 인생이다.

영화에서 The Smiths의 Asleep이 자신의 새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Charlie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고, David Bowie의 Heroes가 그 새장을 벗어나서 느끼는 자유를 대변하는 것이라면, All Out Of Love는 Sam을 그리워하면서도 데이트 신청도 못하고 쭈뼛대는 Charlie의 우유부단함을 대변하는 노래일 것이다. 비록 앞서의 두 개의 곡의 비해 비중은 작고 작가의 의도가 그것이 아니었다 할지라도 영화 속에서 볼 수 있는 빤하지만 공감이 가는 애정관계의 복선은 – Sam과 Charlie 사이를 부단히 끼어드는 노이즈들 – ‘인생은 원래 삼류’라고 말하고 있고 당연히 그 배경음악은 All Out Of Love가 제격이다.

이 노래는 미국에서는 1980년 발표되어 당시 빌보드 핫100 차트 2위까지 올랐다. 이 곡은 Air Supply의 다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 Lost In Love에 수록되어 타이틀곡과 함께 큰 인기를 얻었는데 앨범 수록곡 중에서 가장 높은 차트 순위에 오르기도 한 곡이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VH1은 2003년 이 곡을 ‘100곡의 가장 위대한 러브송’ 리스트에서 92위에 선정하기도 했다. 리듬 기타와 백킹 보컬을 맡았던 Graham Russell이 전반부를 부르고 메인 보컬을 맡았던 Russell Hitchcock이 후렴구를 부르는 형식으로 이루어진 이 곡은 홍콩의 Alan Tom이 리메이크 하는 등 많은 이들이 다시 부르기도 했다.

Air Supply의 노래 듣기
영화의 주요장면 보기
Alan Tom 버전으로 듣기

도널드 덕의 이미지 어떻게 전재할 것인가?

이야기의 줄거리와 이것을 전달하기 위해 이용되는 삽화들 – 키만투가 디즈니 사의 허가 없이 실은 삽화들이기도 하다 –을 보면, 디즈니가 이들 나라 사람들이 한편으로는 순진무구하고 고귀한 야만인들과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 혁명 분자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략] 따라서 이 책을 미국 내에서도 손쉽게 구입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으나, 여기에 저작권 문제가 끼어들었다. [중략] 컨즐에 의하면 두 출판사 모두 종국에는 디즈니 사의 소송 제기가 두려워 이를(출판 : 인용자 주) 단념하고 말았다. 디즈니 만화책의 삽화는 주요 주제와 전형을 다룬 두 사람의 주장에 대한 시각적 증거를 제공해준다. 디즈니 측은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결코 자사의 만화 삽화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이용되는 일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만약 누군가 삽화들을 허가 없이 출판한다면 값비싼 소송 비용을 물게 될 것이었다. [도널드 덕 어떻게 읽을 것인가, 아리엘 도르프만/아르망 마텔라르 지음, 김성오 옮김, 새물결, 2006년, pp246~249]

무인도에 낙오되었을 때 쉽게 구출되는 방법이 ‘미키마우스를 해변에 그려놓는 것’이라는 농담이 있다. 그러면 유난히 저작권에 민감한 디즈니에서 즉시 헬기라도 띄워 바로 찾아와 해변의 그림을 지울 것이라고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바로 그림을 지워야 할 것이라는 개연성에 대해서는 고개가 끄덕거려지지만 화가 나서 찾아온 디즈니 측 직원들이 과연 조난자를 다시 문명세계로 데려갈지는 미지수지만, 여하튼 디즈니의 강력한 저작권 대책에 대한 재밌는 농담이긴 하다.

인용한 부분은 칠레에 사회주의 성향의 아옌데 정부가 들어선 이후 들불처럼 일었던 사회 각 분야의 개혁적 행동 중 하나로써의 문화적 각성의 산출물인 ‘도널드 덕 어떻게 읽을 것인가’의 영어권 출판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일화를 소개한 글이다. 책의 관계자들은 디즈니의 저작권에 대한 – 보다 근본적으로는 그들에게 적대적인 책의 발간을 막고자 하는 것이겠지만 – 시비를 두려워했고, 이는 앞서의 농담이나 다른 여러 일화에서 알 수 있는바 단순한 기우는 아니었을 것이다.

인용문의 뒤를 읽어보면 결국 맑스 관련 출판물을 전문으로 내는 뉴욕 소재의 제너럴 에디션스 사가 출판을 결정했고 1975년 6월 영국에서 찍은 책이 뉴욕에 도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디즈니는 이 책과 총력전을 펼친다. 디즈니는 책이 자사의 캐릭터를 이용해서 “순진한 부모들로 하여금 디즈니 만화 가운데 하나를 산다고 믿게 하려는” 상술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 이 책의 옹호자 측은 캐릭터의 사용이 ‘공정 사용’과 미 헌법 수정 제1조항1에 근거하여 책의 발간을 옹호하였다.

총 68개의 도판은 모두 112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의 상당 부분을 구성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3달러 25센트로 가격이 책정되었으며 압도적일 정도로 장황한 본문으로 이루어진 문제의 책이 디즈니 만화책과 혼동될 수 있으리라고는 믿지 않는다. …. 내용 대부분이 구체적이거나 일반적인 맥락에서 이 저서의 정치학적/경제학적인 메시지와 관련되어 있다. 우리는 이 경우에 아래의 인용문이 매우 합당하다고 믿는 바이다. [다음은 인용문] 헌법 수정 제1조항의 정신은 저작권법에도 적용된다. 그런데 어떤 자가 전혀 다른 성격의 이해를 보호할 의도로 제정된 저작권법을 이용하고자 할 때, 법원은 적어도 일반 대중이 공익과 관련된 모든 사안을 알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어떤 시도도 용인해서는 안 된다. 로즈먼트 엔터프라이즈 사 대 랜덤 하우스 사 소송 사건.[도널드 덕 어떻게 읽을 것인가, 아리엘 도르프만/아르망 마텔라르 지음, 김성오 옮김, 새물결, 2006년, p259]

위 인용문은 ‘공정 사용’과 헌법 수정 제1조항이라는 논거를 받아들인 美재무성의 진술이다. 디즈니는 결국 이 문제에 대해서 더 이상 항의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이로 인해 이 사건은 거대 기업 소유의 상당량의 이미지가 정치적 논증을 위해 전재되었고 이런 행위가 공적인 의사 결정 기관에 의해 옹호된 희귀한 사례가 되었다. 더불어 이 사건은 오리지널 저작물을 사용하는 데 있어 그 양(量)이나 구성, 그리고 사용의 의도 등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다양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새로운 셀던 위기에는 무엇이 해법이 될 것인가?

“그러면 이게 내 조건일세. 자네는 경제적 매수 행위나 가전제품 무역 같은 서투른 정책을 버리고 우리 선조가 시험을 끝낸 외교 정책으로 되돌아가야 해.”
“선교사를 보내서 이웃 나라를 정복하는 정책 말인가?”
“맞아.”
[중략]
“셀던 위기란 개개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역사적 힘에 의해서 해결되는 거야. 해리 셀던이 옛날 우리 미래를 계획했을 때 그가 믿은 건 훌륭한 영웅이 아니라 경제와 사회의 거대한 흐름이었어. 그러므로 여러 가지 위기는 그때마다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힘으로 해결해야만 했어. 이번 경우, 그 힘은 바로 무역이야!”
[파운데이션,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김옥수 옮김, 황금가지, 2013년, pp309~311]

아이작 아시모프의 SF 걸작 ‘파운데이션’의 일부로 무역상이었다가 시장이 된 호버 말로가 그의 政敵 조레인 서트와 나누는 대화다. 파운데이션의 창조자라 할 수 있는 해리 셀던이 예언한 셀던 위기가 도래했음을 동감하는 두 사람이지만 그 해법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는 두 사람의 상반된 관점을 이 대화에서 엿볼 수 있다. 전통주의자인 서트는 이전의 셀던 위기 때 前 시장이 시도했던 종교라는 수단을 옹호하고 있다. 이에 現 시장인 말로는 자신의 특기인 무역이라는 수단을 옹호하고 있다.

사이언스픽션이라고는 하지만 아시모프의 이 작품은 작가가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읽고 감화를 받아 쓴 작품이라는 탄생의 배경에서 알 수 있듯이 인류가 지나온 과거 역사의 교훈에 소재를 기대고 있다. 작품의 배경인 은하제국이 – 작품을 쓸 당시 각광받는 새로운 에너지인 – 원자력에 기대어 살고 있고 광속을 뛰어넘는 우주선이 등장하는 미래의 제국이지만, 그것이 묘사하는 정치체제나 인간군상은 명백히 로마 시대 또는 그 이후의 서구가 걸어왔던 모습이 미래에 투영되어 있다.

종교가 꽤 오랫동안 한 문명의 다른 문명에 대한 지배수단이 되었다가 그 지위를 무역이 대체한다는 설정 역시 현실의 역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종교도 그것을 통해 경제적 이득을 취해온 권력자의 이해관계의 감추는 외피로 기능하기도 했지만 대다수 인민은 꽤 오랫동안 종교가 던지는 메시지 자체를 삶의 교본으로 삼고 살아왔다. 그러다 자본주의 체제가 주요 경제체제로 자리 잡고 이자를 받는 것이 더 이상 죄악이 아닌 시대에 접어들자 이제 무역이 종교가 해오던 기능을 대체하고 있다.

바티칸이나 메카가 구체제의 상징이라면 신체제의 상징은 WTO, FTA, 바젤III와 같은 것들이다. 이들 상징은 자유무역, 자금의 이동, 차별 없는 서비스 조달과 같은 교리의 구체성을 부여하고 이의 이행을 감시한다. 이렇게 세계화된 무역은 세계를 종교가 수행했던 하나의 공동체로 유지시킬 것이며 때로 그 공동체를 파괴하려는 불량국가를 응징하는 수단이 된다. 무역제재, 투자자금 인출 등이 그런 용도로 쓰인다. 쿠바, 북한과 같은 조무래기나 우크라이나를 노리는 러시아도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바티칸에 등장한 구체제의 – 그러나 신선한 – 전도사낙수효과 같은 경제법칙은 엉터리라고 이야기하자 신체제의 순기능에 회의적인 이들은 환호하는 반면, 맨큐와 같은 신체제의 전도사는 원색적으로 그를 비난했다. 구체제 역시 합리성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낡은 시스템이 온존함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합리성과 진보를 요구하는 이가 등장해서 반성을 요구하고 있는데 신체제의 전도사는 이를 받아들일 여유가 없는가 보다. 새로운 셀던 위기에는 이런 친구가 서트와 같은 운명에 처할지도 모른다.

말로는 서트를 감옥에 처넣고 그만의 해법으로 셀던 위기를 극복한다.

The Wolf of Wall Street 오피셜 트레일러

마틴 스콜세지가 월스트리트에 관한 영화를 만들었다. 주연은 레오나도 디카프리오. 트레일러만 봐도 어떤 식으로 이 거리를 묘사하려는 것인지 대충 감은 잡힌다. 미국에선 11월 쯤 개봉한다니 우리나라도 그쯤이 될 듯. 올리버 스톤의 월스트리트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보는 것도 재밌을 듯. 아~ 개인적으로는 좋아하는 배우인 조나 힐이 출연해서 더 반갑다.

오피셜트레일러

Joe Strummer: The Future Is Unwritten

Punk를 정확히 언제 누가 발명(!)하였는지는 갑론을박이 있을 수 있겠지만 The Clash가 그 많고 많은 펑크밴드들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밴드들 중 하나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 위대한 펑크밴드의 중심에는 Joe Strummer가 있었다. 영국 외교관의 아들로 태어나 터키, 멕시코 등을 돌아다며 컸던 Joe는 영국으로 돌아와 부모와 떨어져 그의 형과 함께 기숙학교에 다니며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워야 했다.

Joe가 불의의 심장마비 사고로 운명을 달리 한 2002년으로부터 4년이 지난 2006년에 제작된 다큐멘터리 The Future is Unwritten은 이 독재적이고, 한편으로 인간적이고, 한편으로 급진적이었던, 그리고 스스로는 뮤직씬에서 한 번도 섹시심볼이었던 적이 없다고 주장하던 이 잘 생기고 매력적인 인간의 다양한 인간적 모습, 그의 음악, 그리고 그가 꿈꾸던 세상을 그 주변인들과 팬들의 인터뷰를 통해 재생시켰다.

인터뷰에 참여한 이들은 매우 다양하다. 그가 The Clash로 옮겨가기 전에 만들었던 The 101’ers에서 함께 음악을 한 이들, 이 시절 버려진 주택을 점거하여 같이 살던 이들, Mick Jones를 포함한 The Clash의 멤버들, 그를 영화에 출연시킨 Jim Jarmusch, 함께 영화에 출연한 Steve Buscemi, 그의 팬이었던 John Cusack, Matt Dillon, Bono 등등. 이들은 The Clash의 노래를 함께 부르며 그를 추억하기도 한다.

The Clash는 “무정부주의적”이라 불리던 – 사실은 무정부주의적이라기보다는 “주의”에 얽매이지조차 않은 철저한 체제부정에 가까웠지만 – Sex Pistols에 비해 확실한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행동을 요구했고 가사는 직선적이었다. 이러한 분명한 정치적 태도는 후에 밴드가 상업적으로 성공하게 됨에 따라 그들을 옥죄는 모순의 씨앗이 되었고, Joe는 그런 이유 등을 포함한 다양한 이유로 방황하게 된다.

Joe의 이런 모습에서 전에 다른 다큐멘터리를 통해 보았던 또 하나의 위대한 아티스트 George Harrison의 방황이 겹쳐 보이기도 했다. 비록 정치적 입장은 다소 차이가 있었고, 그 방황의 대안 역시 달랐지만 무절제한 쇼비즈니스에서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황폐하기 만들기보다는 보다 진실한 삶을 추구하려 하였다는 점에서 둘의 태도는 유사한 점이 있었다. 그리고 또한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 죽었단 사실도 닮았다.

둘의 유사점이 또 있다면 바로 음악적인 면에서 서구에 그리 알려지지 않은 음악을 들여와 밴드의 음악적 지향에 큰 족적을 남겼다는 점이다. Joe는 자메이카에서 레게를, George는 인도의 전통음악을 도입하여 각각의 음악세계와 접목하였고 이는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매우 성공적이었다. 특히 Joe의 레게와 펑크의 결합은 反인종주의를 지향하는 밴드의 정치적 태도가 음악적 형식으로도 성공적으로 구현됐다는 특징이 있다.

다큐멘터리에서 아쉬운 점은 이 점이다. 어떻게 The Clash가 다른 펑크밴드와 달리 정치적 지향과 음악적 형식을 유기적으로 통합시키는 계기인 레게를 접했고, 그것을 그들의 음악에 도입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많지 않다.1960~70년대 영국이라는 나라가 차지하고 있는 독특한 정치적, 지리적, 인종적 위치와 그런 격변이 The Clash의 음악과 어떻게 상호작용하였는지를 좀 더 조명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

DVD는 다큐멘터리 본 작품이외에 별도로 다큐멘터리에 싣지 않은 인터뷰들을 담고 있다. 이 인터뷰의 내용이 또 상당해서 별도의 콘텐츠로 여겨질 만하다. 내용도 별도로 챙겨볼 필요가 있을 정도로 재미있는데 가장 인상적인 에피소드는 Martin Scorsese가 우연히 The Clash의 음악을 듣고 푹 빠졌고, 이들의 음악에서 그의 걸작 Raging Bull을 만드는데 많은 영감을 받았다는 에피소드였다. The Clash와 Raging Bull 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