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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덕의 이미지 어떻게 전재할 것인가?

이야기의 줄거리와 이것을 전달하기 위해 이용되는 삽화들 – 키만투가 디즈니 사의 허가 없이 실은 삽화들이기도 하다 –을 보면, 디즈니가 이들 나라 사람들이 한편으로는 순진무구하고 고귀한 야만인들과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 혁명 분자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략] 따라서 이 책을 미국 내에서도 손쉽게 구입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으나, 여기에 저작권 문제가 끼어들었다. [중략] 컨즐에 의하면 두 출판사 모두 종국에는 디즈니 사의 소송 제기가 두려워 이를(출판 : 인용자 주) 단념하고 말았다. 디즈니 만화책의 삽화는 주요 주제와 전형을 다룬 두 사람의 주장에 대한 시각적 증거를 제공해준다. 디즈니 측은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결코 자사의 만화 삽화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이용되는 일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만약 누군가 삽화들을 허가 없이 출판한다면 값비싼 소송 비용을 물게 될 것이었다. [도널드 덕 어떻게 읽을 것인가, 아리엘 도르프만/아르망 마텔라르 지음, 김성오 옮김, 새물결, 2006년, pp246~249]

무인도에 낙오되었을 때 쉽게 구출되는 방법이 ‘미키마우스를 해변에 그려놓는 것’이라는 농담이 있다. 그러면 유난히 저작권에 민감한 디즈니에서 즉시 헬기라도 띄워 바로 찾아와 해변의 그림을 지울 것이라고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바로 그림을 지워야 할 것이라는 개연성에 대해서는 고개가 끄덕거려지지만 화가 나서 찾아온 디즈니 측 직원들이 과연 조난자를 다시 문명세계로 데려갈지는 미지수지만, 여하튼 디즈니의 강력한 저작권 대책에 대한 재밌는 농담이긴 하다.

인용한 부분은 칠레에 사회주의 성향의 아옌데 정부가 들어선 이후 들불처럼 일었던 사회 각 분야의 개혁적 행동 중 하나로써의 문화적 각성의 산출물인 ‘도널드 덕 어떻게 읽을 것인가’의 영어권 출판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일화를 소개한 글이다. 책의 관계자들은 디즈니의 저작권에 대한 – 보다 근본적으로는 그들에게 적대적인 책의 발간을 막고자 하는 것이겠지만 – 시비를 두려워했고, 이는 앞서의 농담이나 다른 여러 일화에서 알 수 있는바 단순한 기우는 아니었을 것이다.

인용문의 뒤를 읽어보면 결국 맑스 관련 출판물을 전문으로 내는 뉴욕 소재의 제너럴 에디션스 사가 출판을 결정했고 1975년 6월 영국에서 찍은 책이 뉴욕에 도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디즈니는 이 책과 총력전을 펼친다. 디즈니는 책이 자사의 캐릭터를 이용해서 “순진한 부모들로 하여금 디즈니 만화 가운데 하나를 산다고 믿게 하려는” 상술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 이 책의 옹호자 측은 캐릭터의 사용이 ‘공정 사용’과 미 헌법 수정 제1조항1에 근거하여 책의 발간을 옹호하였다.

총 68개의 도판은 모두 112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의 상당 부분을 구성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3달러 25센트로 가격이 책정되었으며 압도적일 정도로 장황한 본문으로 이루어진 문제의 책이 디즈니 만화책과 혼동될 수 있으리라고는 믿지 않는다. …. 내용 대부분이 구체적이거나 일반적인 맥락에서 이 저서의 정치학적/경제학적인 메시지와 관련되어 있다. 우리는 이 경우에 아래의 인용문이 매우 합당하다고 믿는 바이다. [다음은 인용문] 헌법 수정 제1조항의 정신은 저작권법에도 적용된다. 그런데 어떤 자가 전혀 다른 성격의 이해를 보호할 의도로 제정된 저작권법을 이용하고자 할 때, 법원은 적어도 일반 대중이 공익과 관련된 모든 사안을 알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어떤 시도도 용인해서는 안 된다. 로즈먼트 엔터프라이즈 사 대 랜덤 하우스 사 소송 사건.[도널드 덕 어떻게 읽을 것인가, 아리엘 도르프만/아르망 마텔라르 지음, 김성오 옮김, 새물결, 2006년, p259]

위 인용문은 ‘공정 사용’과 헌법 수정 제1조항이라는 논거를 받아들인 美재무성의 진술이다. 디즈니는 결국 이 문제에 대해서 더 이상 항의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이로 인해 이 사건은 거대 기업 소유의 상당량의 이미지가 정치적 논증을 위해 전재되었고 이런 행위가 공적인 의사 결정 기관에 의해 옹호된 희귀한 사례가 되었다. 더불어 이 사건은 오리지널 저작물을 사용하는 데 있어 그 양(量)이나 구성, 그리고 사용의 의도 등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다양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세 얼굴의 미키마우스

1998년 미국의 저작권 보호 기간 연장법은 ‘저자 생존 시와 사망 후 50년, 법인에 의한 저작물인 경우 75년’이던 저작권 보호 기간을 ‘저자 생존 시와 사망 후 70년, 법인에 의한 저작물인 경우에는 95년’으로 늘렸다. [중략] 하지만 1998년의 법은 불명예스럽게도 미키마우스 보호법(미국식 표현으로 ‘미키마우스’는 ‘수준 이하’ 혹은 ‘엉터리’라는 의미가 있다. – 옮긴이)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별명이 붙은 것은 디즈니가 (만화영화 <스팀보트 윌리>를 통해) 1928년에 최초로 만든 미키마우스 탄생 75주년을 내다보고 저작권 연장 로비를 주도했기 때문이다.[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나쁜 사마리아인, 2007, 부키, p207]

위에 잘 설명되어 있다시피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캐릭터인 미키마우스는 아이들의 절친한 친구인 동시에 자동 소멸될 저작권을 억지로 늘인 하나의 모범적인(?) 사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이중적인 모습의 미키마우스 (two faces?) 에게 또 하나의 비밀이 있을지도 모른다. (three faces?)

LA타임스는 최근 Disney’s rights to young Mickey Mouse may be wrong 이라는 기사를 통해 디즈니가 저리도 필사적으로 지키려는 미키마우스의 저작권이 사실은 원인무효일지도 모른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 의혹이 사실이라면 디즈니는 브랜드 전문가들이 30억 달러가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는 미키마우스의 브랜드 가치를 무단으로 점유하고 있는 셈이다.

기자가 첫 번째로 제기하는 의문은 저작권을 얻었던 예전의 캐릭터와 지금의 캐릭터의 묘사의 차이에 관한 것이다.

저작권 문제는 예전의 묘사에 관한 것이다. 미키의 연출은 여전히 알아볼 만 한 것이지만 약간은 다르다. 첫 동시녹음 만화인 “스팀보트 윌리”와 다른 초기 고전들의 스타였던 오리지널 미키는 더 긴 팔, 더 작은 귀, 그리고 보다 뾰족한 코를 가지고 있었다.
Copyright questions apply to an older incarnation, a rendition of Mickey still recognizable but slightly different. Original Mickey, the star of the first synchronized sound cartoon, “Steamboat Willie,” and other early classics, had longer arms, smaller ears and a more pointy nose.

Mickey Mouse concept art.jpg
Mickey Mouse concept art” by San Francisco Sentinel; from the collection of The Walt Disney Family Museum. Licensed under Wikipedia.

미키마우스의 초기 컨셉 스케치

Mickey - Fantasia.jpg
Mickey – Fantasia” by desktopnexus, originally from Fantasia. Licensed under Wikipedia.

판타지아에서의 미키마우스

몇몇 전문가들은 이 문제가 충분히 의문을 제기할만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동의하고 있다. 문제는 이를 학문적 호기심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과 법정에서 유효성을 다투는 것과는 별개의 사안이라는 점이다. 연구 차원에서야 그런 문제에 대해 고민해보는 것이 의의가 있을지 몰라도 이를 정색하고 법정에서 다룬다면 그것은 만화왕국이자 엄청난 재력을 자랑하는 디즈니와의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각오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저작권에 관한 또 하나의 미스터리는 전직 디즈니 직원이었던 Gregory S. Brown에 의해 제기되었다. Brown은 디즈니를 퇴사한 뒤 디즈니가 잊고 있었던 저작권 갱신을 이용하여 돈을 벌어보려 했다. 하지만 거대기업은 물러서지 않고 그에게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그에게 50만 달러의 벌금을 선고했다. 열받은 Brown은 1928년 Walt Disney Co. 가 창조하여 저작권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진 미키마우스의 정체성을 파헤쳐보기로 마음먹었다. 결국 그는 “스팀보트 윌리” 만화에서 다음과 같은 타이틀카드(필름이나 슬라이드로 처리되는 것과는 달리 카메라에 잡히도록 만든 그래픽 카드 캡션 caption 이라고 한다)를 발견한다.

“Disney Cartoons
Present
A Mickey Mouse
Sound Cartoon
Steamboat Willie
A Walt Disney Comic
By Ub Iwerks
Recorded by Cinephone Powers System
Copyright MCMXXIX.”

이 타이틀카드가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요는 “월트 디즈니”라는 이름과 관계된 “저작권”이라는 단어의 위치다. 시네폰과 디즈니의 수석 스튜디오 아티스트 Ub Iwerks라는 이름도 있었던 것이다. 논쟁의 여지가 있는 것이 이 셋 중 어느 하나라도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고, 이를 통해 1909년의 저작권법의 난해한 규정에 따라 어느 특정인의 권리주장을 무효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The key was location of the word “copyright” in relation to the name “Walt Disney.” There were two other names listed in between — Cinephone and Disney’s top studio artist, Ub Iwerks. Arguably, any one of the three could have claimed ownership, thereby nullifying anyone’s claim under arcane rules of the Copyright Act of 1909.

LA타임스는 이 기사의 나머지에서 이러한 Brown의 항변에 대한 법원의 무시, 한 법대에서의 이 케이스에 대한 연구, 그리고 그러한 시도에 대한 디즈니의 대응 등을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결론은 디즈니의 작품이 늘 그렇듯이 (적어도 현재까지는) 해피엔딩이다. 물론 디즈니에게 말이다. 정의로 – 저작권의 횡포에 저항하는 이들이 생각하는 정의 – 가는 길은 아직도 멀고 험한가 보다.

기자는 한편으로 다음과 같이 디즈니의 모순된 행보를 고발하고 있다.

모순된 것이 이 회사가 비록 그들의 미키마우스는 방어하려 하지만 공공 영역에서 몇몇 캐릭터들에 대한 — 밤비나 피터팬 같은 — 권리를 주장하기 위한 국제적인 노력을 경주해왔다. 디즈니의 가장 유명한 등장인물 중 많은 것들은 다른 이들의 창작품인데 이 중에는 신데렐라, 피노키오, 푸, 그리고 백설공주 등이 포함된다. 비록 회사는 그들의 묘사를 강력히 보호하고 있지만 말이다.
Ironically, the company has mounted international efforts to claim some characters for the public domain — such as Bambi and Peter Pan — even as it defends Mickey Mouse. Many of Disney’s most famous figures were the creations of others, including Cinderella, Pinocchio, Pooh and Snow White, though it has vigorously protected its depictions of them.

이는 타당한 주장이다. 자신이 창조한 – 또는 창조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 쥐 한 마리를 지키기 위해서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면서도 다른 이들이 창조한 캐릭터들은 정당한 대가 지불없이 십분 활용하고 있는 것이 디즈니의 현재의 모습이다. 그리고 이는 실제로 저작권, 지적소유권, 그리고 특허권에 대한 배타적인(exclusive)한 권리보호를 주장하는 거대기업들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행태다. 하지만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는 법이다.

여하튼 Boing Boing 의 한 독자는 이런 모순된 위치에 놓여 있는 미키마우스의 모습에 측은지심을 느꼈는지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니모를 찾아서, 그리고 자유를 찾아서

‘니모를 찾아서(Finding Nemo)’는 디즈니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잘 표현한 전형적인 사례다. 무엇에도 우선하는 가족의 가치, 그럼에도 세상 밖으로 나아가려는 후손들에 대한 너그러운 배려가 이 영화의 핵심적인 주제다. 등장인물(?)들은 이미 알고 있다시피 말린(Marlin)과 니모(Nemo) 부자로 ‘흰동가리(clownfish)’ 종으로 알려진 (의인화된) 물고기들이고 나머지 조연들 역시 바다 속에 서식하는 (역시 의인화된) 상어, 문어, 해마, 거북이 등이다.

사건은 홀아비 말린의 과보호 속에서 자란 니모가 학교에 입학하면서 발생한다. 입학 첫날 아버지에게 반항하던 니모는 잠수부에게 잡혀 시드니의 한 치과 수족관에 갇히게 되고, 말린은 기억력이 낙제점인 도리(Dory)라는 수다스러운 물고기와 함께 니모를 찾아 나선다. 니모는 수족관에서 좋은 친구들을 만나지만 아버지와 바다에 대한 그리움으로 함께 탈출을 꿈꾼다. 말린은 죽을 고비를 몇 번 당하는 등 힘든 여정을 이어가지만 거북이, 펠리칸 등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아들을 만나는 데 성공한다.

앞서도 이야기하였다시피 이 영화가 시종일관 전달하는 메시지는 가족의 중요성이다. 그리고 또한 개인의 발전은 가족 안에서의 사랑과 배려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도 강조하고 있다.(주1) 그러나 개인적으로 보다 흥미로운 점은 다른 곳에 있었다. 바로 수족관에 갇힌 니모를 비롯한 물고기들의 탈출기에서 볼 수 있는 ‘자유에의 대한 갈망’이다.

영화에서는 물고기들이 탈출하고자 하는 욕망, 즉 자유에 대한 갈망을 당연히 추구하여야 할 가치로 받아들이고 있다. 니모로서는, 그리고 또 한 마리의 바다 출신(?)의 물고기 길(Gil)에게는 당연하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니모는 아버지와 생이별을 하였고 길은 바다의 존재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머지 물고기들은 과연 무엇을 위해 바다로 탈출하여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져볼 수도 있을 텐데 영화는 이에 대해 설명하지 않고 있다.

누군가가 태어나기를 감옥에서 태어났다면 그를 감옥 바깥으로 보내는 것은 그에게 자유를 주는 것인가 아니면 살벌한 바깥세계로 내모는 것인가. 과연 니모나 길을 제외한 다른 물고기들은 ‘자유’라는 피상적인 – 또한 실체에 접근하였는지도 모르는 – 가치를 위해 안정적으로 제공되는 먹이와 먹이사슬로부터의 안전함을 희생할 필요가 있는가.

우리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또 다른 수족관, 또는 감옥이 아니라는 사실을 무엇을 통해 확신할 수 있는가. 내 자신이 감옥에서 태어난 사람일 수도 있다. 사실은 이 세계도 또 하나의 감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 당신을 갑갑하게 하는가. 당신의 자유는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면서 속박 당하게 되는가.

이러한 ‘자유와 세계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주제로 한 영화가 꽤 있다. 대표적인 영화로 ‘The Matrix’, ‘The Truman Show’ 등을 들 수 있다. 두 영화 모두 주인공들은 그들 자신이 갇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 자신들은 사실 갇혀있다는 진실에 접근하게 되고 갈등은 증폭된다. 하지만 그게 어때서. 감옥 속에서 행복(?)했다면, 진실을 조금만 외면하면 계속 행복할 것인데(주2) 꼭 쇼생크 탈출의 앤디처럼 필사적으로 탈출할 이유가 있는가. 그럴 정도로 ‘자유에의 갈망’은 절대 물러설 수 없는 지고지순한 가치인가.

물론 이 영화는 지금 이렇게 딴죽을 걸고 있는 그러한 주제에 대하여 어떠한 문제제기도 하지 않는다. 자유의지는 당연한 것이고 수족관은 파괴되어야 한다. 수족관은 그렇듯 자유를 속박하는 설정으로만 작용할 뿐이다. 수족관에서 태어난 물고기가 바다를 만났을 경우 혼란스러워질 세계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삐딱한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수족관과 바다의 상징성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탈출을 꿈꾸는 길에게 바다가 또 하나의 수족관이면 어쩔 테냐고 묻고 싶었다.

어쨌든 니모는 탈출에 성공하고 아버지 말린을 만났고 아버지의 격려 속에 좀더 성숙한 물고기로 성장하였다. 하지만 수족관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될 것이고 먹이를 찾기 위해 더 필사적인 노력을 하여야 할 것이다.(주3) 그래서 나는 니모에게 묻고 싶다.

“수족관에 살 때보다 더 행복하니?”

p.s. 주연을 맡은 흰동가리는 성전환이 자연스럽게 되는 생물로 유명하다고 한다. 헉~ 더 자세한 정보는 여기를….

(주1) 잘 알고 있다시피 이러한 메시지는 디즈니 영화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메인스트림 헐리웃 영화가 공통적으로 전하는 메시지다

(주2) 사실 The Matrix 2편, 3편에 나오는 실제 세계를 보면 왜 그리 악착같이 가상의 세계를 탈출하려 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주3) 아 물론 영화는 “그 뒤로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