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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서사가 압도하는 사회에 대한 단상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의 문화와 정체성은 네 가지 주요 측면의 상호작용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 정치, 종교, 경제, 예술 말이다. 그중에서 정치와 종교가 권력을 두고 다툼을 벌였다. 하지만 이제 정치가들은 개그맨의 먹잇감에 불과하고 종교는 자살폭탄 테러범이나 성추행이나 떠올리게 만든다. 예술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전부 예술가이다. 경제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 신자유주의 서사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 파울 페르하에허 지음, 장혜경 옮김, 반비, 2015년, p128]

이 구절을 읽고 불현듯 생각난 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물체를 구성하는 4대 요소’였다. 과문하여 그 깊은 뜻까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 요소는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이다. 불교의 교리에 따르면 우주 삼라만상의 물체는 인연에 따라 만나는 이 네 가지가 뭉쳐 이루어졌다가 인연이 다 되면 본래의 요소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한 사회도 인용문의 네 가지 요소가 뭉쳐져 그 사회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이 어딘가 비슷한 구석이 있지 않은가?

여하튼 좀 거칠게 표현하였다는 느낌이 들지만 인용문의 저자의 말대로 오늘 날의 사회는 경제가 나머지 세 요소를 압도하며 문화와 정체성을 이끌고 있다는 데에 대해 공감하는 바이다. 특히 신자유주의적 서사가 – 특히 서구에서 – 종교적 서사를 대체하며 우리의 정서를 지배하고 있다는 저자의 주장 역시 공감이 간다. 이러다보니 정치는 증시(證市)에 목을 매고, 종교는 성탄절 정도에나 의미가 있으며 – 그나마도 상업화된 – 예술은 경제에 종속 된지 오래다.

어쨌든 그 경제적 서사가 신자유주의 서사든 아니면 다른 경제 이념의 서사든 중요한 것은 그 서사가 다른 요소들을 지나치게 압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할 것이다. 지수화풍은 각각 단단한 것, 물기, 열, 움직임을 뜻한다고 한다. 우리 몸의 골격, 피, 체온, 생장(生長)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이 요소들이 적절히 조화가 되지 않는 몸은 병든 몸이지 않을까? 사회도 마찬가지다. 모든 시각을 경제적 관점에서만 사고하는 사회, 병든 사회일 것이다.

이스탄불 紀行文 – 블루모스크와 아야소피아를 보다

오늘 아침 IS로 추정되는 테러 집단이 거침없는 풍자만화로 유명한 파리의 언론사 샤를리 엡도(Charlie Hebdo)를 공격하여 많은 사상자를 냈다는 소식을 접했다. 현재까지 언론이 추정하는 이유는 샤를리 엡도가 이슬람 교도에게 있어 불경한 그림들을 그려 온 것에 대한 복수라는 것이다. 이슬람이 거의 국교나 다름없는 나라의 기행문을 쓰고 있는 와중에 접한 소식이라 한층 마음이 착잡했다. 종교와 인간 사이에 어떠한 것이 작용하기에 아야소피아와 같은 웅장한 건축물을 만들며 사람들을 무차별로 죽이는 것일까 하는 물음이 뇌리 속에 맴돈다. 돌아가신 이들의 영면과 부상당한 이들의 쾌유를 기원한다.

12월 23일 오전 블루모스크와 아야소피아를 보다

실질적인 이스탄불에서의 첫날, 시차 때문인지 새벽에 잠이 깼다. 다시 잠들 것 같지 않아 산책을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잘 알려진 관광지는 “작은 아야소피아”로 알려진 모스크였다. 아야소피아와 비슷하지만 한층 작은 모습의 정교회 성당이었지만 오늘날엔 모스크로 쓰이고 있다. 아야소피아에 도착하여 안에 들어갔지만 아직은 문이 열리지 않았고 창에 앉아 있던 고양이만이 눈에 띄었다. 숙소 쪽으로 발길을 돌려 숙소 맞은편에 있는 공원을 산책했다. 그런데 거기 한 노숙자가 담요를 뒤집어쓰고 잠을 청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놀랍게도 그의 옆엔 고양이 한 마리가 같이 잠들어 있었다.


새벽에 찾은 리틀아야소피아

잠을 깬 아내에게 이 이야기를 하니 안타까워했다. 어쨌든 이스탄불은 길고양이의 도시인 동시에 많은 가난한 이들이 거리에 있는 도시였다. 노숙자가 많다는 점에서는 서울 역시 그런 곳이지만 그 결이 또 다르다는 것을 나중에 깨닫게 되었다. 어쨌든 서둘러 첫날 투어에 나선 우리는 공원에서 길냥이에게 사료를 나눠주고 또 다른 일행과 합류하기 위해 히포드롬 광장으로 향했다. 히포드롬 광장에는 두 개의 모스크와 정자 등 유적이 있는 광장으로 바로 옆에 그 유명한 아야소피아, 블루모스크라 불리는 술탄아흐멧자미, 바실리카 저수지, 토카피 궁전 등 주요 유적이 죄다 모여 있는 이스탄불 관광의 중심지였다.


아내 주위를 맴도는 길냥이들. 금세 친구가 될 수 있다.

합류하기로 한 다른 친구와 합류하여 처음 찾은 곳은 술탄아흐멧자미. 술탄아흐멧 1세가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패한 후 정치적 위기를 종교적으로 돌파하기 위하여 만들었다는 거대한 규모의 모스크다. 의도적이었던 것 같지만 당시까지 가장 큰 규모의 모스크로 쓰고 있던 아야소피아 앞에 지어져서 그 압도적인 규모의 쌍벽을 이룬다. 규모는 크지만 오히려 적막하고 푸르스름한 분위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사람을 압도한다기보다는 안도감을 주는 장소였다. 보는 시점에 따라서는 구조물의 모양이 마치 부엉이가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는 듯한 모습이 보인다는 아내에 말에 재밌게 그 모습을 바라본 기억이 난다.


관광객의 가장 큰 즐거움은 기념촬영

12월이었음에도 날씨가 쾌청한 탓인지 아야소피아 앞에는 표를 사기 위한 관광객들의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운 좋게도 광장 한 구석에 당초에 사려다 관둔 박물관 패스(Museum Pass)를 파는 트럭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곳엔 줄이 훨씬 짧았다(다른 관광객들은 그 용도를 잘 모르기 때문이었을 듯). 만약 당신이 단 하루라도 이스탄불의 주요 유적을 돌아볼 요량이라면 뮤지엄패스가 훨씬 이익이다. 3일 권과 5일 권으로 웬만한 유적은 다 볼 수 있고 두세군데만 돌면 이미 본전을 뽑고도 남는다. 긴 줄을 기다리지 않고도 들어갈 수 있으니 성수기라면 더욱 필요한 입장권이다. 그야말로 머스트해브아이템.


블루모스크에서 볼 수 있는 부엉이눈

아야소피아의 역사나 이 유적이 품고 있는 아이템들에 대해서는 새삼스럽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하지만 꼼꼼한 관광을 위해서는 봐야할 장소들을 미리미리 확인해두는 것이 필수적이다). 나는 그저 그 웅장함과 켜켜이 쌓여있는 역사의 무게감 때문에 멍하니 천장을 응시할 뿐이었다. 비잔틴 제국 기독교의 총본산으로, 이후의 정복자인 무슬림의 모스크로, 그리고 지금은 터키 공화국의 박물관으로 쓰이면서 지나온 세월의 두터운 공기와 경건한 분위기의 햇빛이 실내에 머물러 있었다. 관광 비수기인지라 건물 내부의 거의 반쪽이 공사 중이어서 구조물로 가려져 있었지만 감동이 반감되는 것은 아니었다.


비잔틴과 오스만의 복합체, 아야소피아

블루모스크와 아야소피아를 보고 난 후, ‘인간에게 종교란 무엇인가’라는 경외감 섞인 질문을 마음속으로 던져보게 되었다. 이 천년왕국의 수도에 살아왔던 이들은 기독교 혹은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위해 이 거대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을 지었고 그 안에서 신성(神聖)을 영접하는 것을 최고의 존재가치 중 하나로 여겼다. 그것이 또 문명발전의 밑거름이었다고 생각한다. 한편 오늘 다시 같은 질문을 보다 참담한 심정으로 떠올린다. 무엇이 종교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게끔 하는 것인가? 그런 살인자도 블루모스크와 같은 경건한 장소에서 기도를 올리며 피의 복수를 꿈꾸었을까? 그 모순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새로운 셀던 위기에는 무엇이 해법이 될 것인가?

“그러면 이게 내 조건일세. 자네는 경제적 매수 행위나 가전제품 무역 같은 서투른 정책을 버리고 우리 선조가 시험을 끝낸 외교 정책으로 되돌아가야 해.”
“선교사를 보내서 이웃 나라를 정복하는 정책 말인가?”
“맞아.”
[중략]
“셀던 위기란 개개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역사적 힘에 의해서 해결되는 거야. 해리 셀던이 옛날 우리 미래를 계획했을 때 그가 믿은 건 훌륭한 영웅이 아니라 경제와 사회의 거대한 흐름이었어. 그러므로 여러 가지 위기는 그때마다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힘으로 해결해야만 했어. 이번 경우, 그 힘은 바로 무역이야!”
[파운데이션,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김옥수 옮김, 황금가지, 2013년, pp309~311]

아이작 아시모프의 SF 걸작 ‘파운데이션’의 일부로 무역상이었다가 시장이 된 호버 말로가 그의 政敵 조레인 서트와 나누는 대화다. 파운데이션의 창조자라 할 수 있는 해리 셀던이 예언한 셀던 위기가 도래했음을 동감하는 두 사람이지만 그 해법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는 두 사람의 상반된 관점을 이 대화에서 엿볼 수 있다. 전통주의자인 서트는 이전의 셀던 위기 때 前 시장이 시도했던 종교라는 수단을 옹호하고 있다. 이에 現 시장인 말로는 자신의 특기인 무역이라는 수단을 옹호하고 있다.

사이언스픽션이라고는 하지만 아시모프의 이 작품은 작가가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읽고 감화를 받아 쓴 작품이라는 탄생의 배경에서 알 수 있듯이 인류가 지나온 과거 역사의 교훈에 소재를 기대고 있다. 작품의 배경인 은하제국이 – 작품을 쓸 당시 각광받는 새로운 에너지인 – 원자력에 기대어 살고 있고 광속을 뛰어넘는 우주선이 등장하는 미래의 제국이지만, 그것이 묘사하는 정치체제나 인간군상은 명백히 로마 시대 또는 그 이후의 서구가 걸어왔던 모습이 미래에 투영되어 있다.

종교가 꽤 오랫동안 한 문명의 다른 문명에 대한 지배수단이 되었다가 그 지위를 무역이 대체한다는 설정 역시 현실의 역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종교도 그것을 통해 경제적 이득을 취해온 권력자의 이해관계의 감추는 외피로 기능하기도 했지만 대다수 인민은 꽤 오랫동안 종교가 던지는 메시지 자체를 삶의 교본으로 삼고 살아왔다. 그러다 자본주의 체제가 주요 경제체제로 자리 잡고 이자를 받는 것이 더 이상 죄악이 아닌 시대에 접어들자 이제 무역이 종교가 해오던 기능을 대체하고 있다.

바티칸이나 메카가 구체제의 상징이라면 신체제의 상징은 WTO, FTA, 바젤III와 같은 것들이다. 이들 상징은 자유무역, 자금의 이동, 차별 없는 서비스 조달과 같은 교리의 구체성을 부여하고 이의 이행을 감시한다. 이렇게 세계화된 무역은 세계를 종교가 수행했던 하나의 공동체로 유지시킬 것이며 때로 그 공동체를 파괴하려는 불량국가를 응징하는 수단이 된다. 무역제재, 투자자금 인출 등이 그런 용도로 쓰인다. 쿠바, 북한과 같은 조무래기나 우크라이나를 노리는 러시아도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바티칸에 등장한 구체제의 – 그러나 신선한 – 전도사낙수효과 같은 경제법칙은 엉터리라고 이야기하자 신체제의 순기능에 회의적인 이들은 환호하는 반면, 맨큐와 같은 신체제의 전도사는 원색적으로 그를 비난했다. 구체제 역시 합리성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낡은 시스템이 온존함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합리성과 진보를 요구하는 이가 등장해서 반성을 요구하고 있는데 신체제의 전도사는 이를 받아들일 여유가 없는가 보다. 새로운 셀던 위기에는 이런 친구가 서트와 같은 운명에 처할지도 모른다.

말로는 서트를 감옥에 처넣고 그만의 해법으로 셀던 위기를 극복한다.

‘고리대금업자와 그의 아내’ 感想文

요즘 아이패드로 이런저런 명화 컬렉션 앱으로 명화를 감상하는 것이 소소한 즐거움이다. 그런 앱들 중 하나가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의 소장품을 담은 Louvre HD다. 그림들은 당연하게도 성화(聖畵)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그림들보다는 화가가 살던 당시의 모습을 담은 풍속화(風俗畵)가 더 마음에 든다. 그런 풍속화도 당시 화가들의 주요고객이었던 귀족이나 부자들의 초상화가 많지만 때로는 거지나 저자거리의 상인 등 삶이 고달픈 보통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기도 하다.


고리대금업자와 그의 아내(출처)
 

그런 그림들 중 유난히 내 눈을 잡아끈 그림이 있어 소개한다. 캥탱 마시(Quentin Matsys 1466~1529)라는, 지금의 벨기에인 플랑드르의 화가의 대표작 중 하나인 ‘고리대금업자와 그의 아내’(1514년作)가 그 작품이다. 이 작품이 흥미로웠던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귀족이 아닌 고리대금업자라는 상인이라는 점이다. 당시 플랑드르는 유럽의 상업 중심지였고 고리대금업자라고 해서 꼭 부정적인 뉘앙스만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귀족이 아닌 부르주아를, 그것도 그가 일하는 모습을 담은 것이 이채로웠다.

그림을 상세히 들여다보기 전에 전체적인 그림을 보자. 신중하게 금화의 무게를 재고 있는 업자의 표정에는 장인정신을 느낄 정도의 숙연함이 있다. 옆의 부인도 무심한 듯 호기심 가득한 표정이 생생하다. 힘줄까지 느껴지는 손들의 묘사력도 뛰어나다. 당시의 복식문화를 알 수 있는 의상, 여러 정물들의 터치도 마음에 든다. 전체적으로는 처음 봤을 때 연상되는 그림이 있었는데, 비슷한 지역에서 활동했던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 1395년경 ~ 1441)의 ‘아르놀피니의 결혼식’(1434년作)이었다.


미술 역사상 가장 유명한 2인 초상화 (출처)
 

그림의 의미를 살펴보자. 후대의 ‘미술 역사가’들의 평은 이 그림이 풍자적이고 도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중론인 것 같다. 꼭 부정적인 의미는 아니라고는 했지만 중세엔 아직 고리대금업자는 도덕적으로 떳떳한 직업은 아니었다. 당시교회는 이자수취를 금지하고 있었고, 주로 차별받는 유대인이 이런 일에 종사하고 있었다. 고리대금업자의 아내가 성가족(聖家族)의 그림이 담긴 종교서적은 건성으로 넘기고 남편의 일에 신경을 쓰는 듯한 자세를 취하는 것도 그런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모양새다.

한편, 이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은 전부 몇 명일까? 책 속의 마리아와 예수를 뺀다면 다섯 명이다. 그림의 오른쪽에 아내의 옆을 보면 창밖으로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또 한 명의 사람이 있는데, 그의 모습이 부부 앞에 놓인 볼록 거울 – 이 정물이 또한 ‘아르놀피니의 결혼식’을 연상시킨다 – 에 비춰지고 있다. 화가가 왜 이런 사람들을 슬쩍슬쩍 배치해두었는지, 그 상징적 의미가 무척 흥미롭다. 집밖의 두 사람은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으며, 거울에 비친 터번을 두른 이는 왜 거기에 있는 것일까?

일단 집밖의 두 사람에 대해서는 업자의 작업실이 저자거리에 있었으니 집밖에 사람들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는 해석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문제는 거울에 비친 사람이다. 어떤 역사가는 이 사람을 창문 밑에 숨은 도둑이라고 했다는데, 역사가고 뭐를 떠나 어떻게 이런 해석이 가능한지 모르겠다. 누가 봐도 방의 창가에서 책을 읽고 있는 터번을 두른 사람이다. 가장 적극적으로 해석한다 해도 이 사람은 고리대금업자의 동업자이거나 그에게 돈을 빌리러 온 사람일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산토스 마누엘 레돈도(Manuel Santos Redondo)라는 한 교수는 이 그림에 도덕적 의미를 과도하게 부여하는 것보다는, 마시가 당시 플랑드르에서 일상적으로 행해지던 경제행위에 대한 묘사를 한 것일 뿐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제안하고 있다. 아내가 종교서적을 펴들고 있는 것도 그들의 상행위가 종교적으로 옳은 것인지를 참고하고 있는 장면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이 그림에 과도한 풍자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현대사가의 편견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가 이렇게 주장하는 하나의 근거로 이 그림이 그려진 25년 뒤, 마리우스 반 레이메르발(Marinus Van Reymerswaele)이라는 화가가 똑같은 이름과 비슷한 구도로 또 하나의 그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들고 있다. 가장 중요한 차이라면 아내가 보고 있는 책이 종교서적이 아니라 회계장부란 점이다. 레돈도 교수는 이런 패턴의 그림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그저 막 루터 종교개혁이 막을 열던 시대상황의 경제행위에 대한 묘사일 뿐 다른 풍자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은 무리라고 말하고 있다.


개인적인 기준으로는 미학적으로 마시의 그림에 한참 떨어진다 (출처)
 

어쨌든 레돈도 교수의 해석도 또 하나의 의견이다. 개인적으로는 호사가적 취미 때문에 풍자적 알레고리가 어느 정도 숨어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작품 그 자체만으로도 심미적 쾌감을 충분히 주는 걸작이라는 점에서 불만을 가질 수가 없다. 요컨대 마시의 그림에서 요모조모 뜯어보며 의미를 부여할만한 재밌는 소재는 많지만, 꼭 특정 역사가의 해석대로만 생각하지 말고 자유롭게 상상력을 발휘하여, 당시의 시대상을 들여다보는 계기 정도로 삼는 것도 유익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