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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영화

스탠리큐브릭의 작품들

올해 초, CGV가 기획한 스탠리큐브릭 시리즈展에서 본 영화들이다. 이때 2001: A Space Odyssey, A Clockwork Orange, The Shining, Dr. Strangelove를 일주일에 걸쳐 감상하였다. 작은 모니터로 봤던 영화를 스크린에서 접하면 이제까지 못 봤던 새로운 디테일을 보게 되는 법이고 큐브릭의 영화들이 바로 그러했다. 특히 스페이스오디세이에서의 우주의 광활함을 작은 모니터에서 본다는 것은 엄밀히 말해서는 부조리한 상황이었다. CGV가 내년에는 남은 큐브릭의 작품도 상영해주길 빌어본다.

사티야지트 레이(সত্যজিৎ রায়,)의 ‘대지의 노래’ 3부작

남들이 그렇듯 인도영화 하면 무조건 군무와 어설픈 스토리가 결합된 우스꽝스러운 영화라고 알고 있던 나의 편견을 깨부순 영화들이다. 장 르느와르에게 사사한 감독이 1955년 거의 혼자의 힘으로 만들다시피 한 ‘대지의 노래’는 가난한 아푸의 가족이 어떻게 그들의 삶을 개척해나가는가에 대해 그린 리얼리즘 영화다. 감독은 이어지는 ‘대하의 노래’, ‘아푸의 세계’를 통해 아푸의 삶을 계속 조명하며 인도 근현대사에서의 한 개인의 삶을 입체적으로 조명하여 인도영화계에 흔들리지 않는 기둥을 구축하였다.

I, Daniel Blake

“흔들리지 않는”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또 하나의 감독이 있다면 바로 켄로치일 것이다. 영국 노동계급의 삶에 대한 애정을 흔들림 없이 지니고 있는 감독의 최신작으로 영국 복지제도의 부조리함과 이에 맞서는 다니엘 블레이크의 삶을 희비극의 기법으로 조명하였다. 지난 번 글에 썼듯이 선진국의 고령화 현상은 특히 노동계급의 빈곤과 맞물려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영화가 바로 그러한 상황에 놓인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의 처지를 조명하고 있다. 너무 리얼하다는 점에서 장르는 공포영화다.

Love Is Strange

중산층의 삶을 살아가고 있던 뉴욕의 게이 부부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차별받으며 피치 않게 별거를 하게 되며 겪게 되는 어려움을 소재로 한 영화다. 모두들 친한 친구고 친척이지만, 그들의 삶의 공간과 시간이 조금씩 겹치면서 서로가 어떻게 부대낌을 겪게 되는 지가 세심하게 묘사되어 있어 보는 내내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영화 내내 흐르는 쇼팽의 음악과 뉴욕의 풍경이 그럴싸하게 어울려 더욱 영화 보는 맛을 느끼게 한다. 뉴욕에 갔을 때는 주인공들이 마지막으로 헤어지는 레스토랑에 직접 방문해 덕질을 하기도 했다.

The Wire

미드 역사상 최고의 작품을 꼽으라면 빠지지 않고 탑3에 들어가곤 하는 HBO(2002~2008년 방영)의 드라마. 전직 볼티모어의 경찰이었던 에디 번즈(Ed Burns)의 각본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볼티모어라는 도시를 둘러싼 이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는데, 작품은 시즌마다 마약, 정치, 노조, 교육, 언론 등 주요 이슈를 건드리며 하나의 거대한 콘텍스트를 완성해나간다. 이 작품을 보고나서 볼티모어 출신 흑인 작가 타네히시 코츠(Ta-Nehisi Coates)의 ‘세상과 나 사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The Wire가 현실로 와 닿는 책이었다.

이성적인 문명은 [ ]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또 다른 긍정적인 점은 특정한 기술적 발전 단계에 도달한 지능을 가진 모든 생명체는 반드시 핵에너지를 발견했을 거라는 확신입니다. [중략] 그 문명은 파괴적인 결과를 낳는 일 없이 핵에너지를 평화적인 목적으로 활용할 방법을 찾아냈나, 아니면 그 문명은 스스로 절멸됐나? 핵에너지를 발견한 후로 1000년을 존재해온 문명이라는 어느 문명이건 핵폭탄을 통제할 수단을 고안해냈을 거라고 짐작해요. 이 사실은 우리 인류의 생존을 위한 특정 가이드라인을 우리에게 제공하는 것과 더불어 엄청나게 큰 안도감을 줄 수 있습니다.[스탠리 큐브릭 장르의 재발명, 진 D. 필립스 엮음, 윤철희 옮김, 마음산책, 2014년, p101]

스탠리 큐브릭이 ‘2001 스페이스오디세이’에 관한 인터뷰에서 외계문명의 존재에 대한 긍정적인 의견을 피력하면서 그 근거로 든 사례다. 문명의 발전단계에서 필연적으로 발견될 핵에너지를 평화적으로 이용할 방법을 찾아냈는지 아닌지가 그 문명이 이성적인 존재인지 아닌지의 기준점이 된다는 의견으로 여겨진다. 스스로 냉전 당시 시스템과 그 시스템을 구성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핵전쟁이 발발하게 되는 부조리한 상황을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로 만들기도 했던 이인지라, 외계문명의 지적 수준에 대해서 이런 잣대를 갖는 것이 그답다는1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과연 2016년 현재의 지구 문명은 큐브릭의 기준에서 볼 때 스스로 안도감을 가질만한 문명일까? “냉전(冷戰)”이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로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했던 미-쏘 열강의 전선이 사라질 즈음, 인류는 다행히도 큰 격변 없이 핵무기에 대한 통제권이 어느 정도 유지한 것 같다. 하지만 지구적 관점에서, 특히 동북아 관점에서 핵에 대한 신경쇠약증은 여전히 우리 삶을 짓누르고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시도와 일본의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사고 등이 그 예다. 전자는 국지적 냉전의 결과고, 후자는 “평화적” 핵이용에 대한 기술과 제도가 실패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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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rles Levy from one of the B-29 Superfortresses used in the attack. – http://www.archives.gov/research/military/ww2/photos/images/ww2-163.jpg National Archives image (208-N-43888),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56719

경수로 지원 사업에 관한 북미 간의 갈등에서 본격화된 북한의 핵무기 개발 시도는 형식적으로는 국지적인 규모에서의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 양상을 띠고 있다.(또는 적어도 각 이해당사자가 그런 식으로 상황을 이용하고 있다.) 이에 따른 동북아의 정치상황은 적어도 큐브릭이 생각하는 이성적인 상태는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야무진 핵의 평화적 용례라고 여겨졌던 일본의 원자력발전소는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와 이후 – 원인이 소유형태든 일본식 문화든 간에 – 부조리한 사태처리로 말미암아 핵의 평화적 이용의 가능성에 대한 회의감을 일게 만들고 있다.

결국 큐브릭이 상정한 이상적인 핵개발의 상황은 핵을 전쟁수단으로 삼는 상황을 통제내지는 절멸시키고 평화적으로 안전하게 이용하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 그런 기준에서 볼 때 현재의 상황은 그런 희망사항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여전히 서구열강은 비대칭적인 핵무기 보유상황을 상수로 인정하라 강요하고 이에 몇몇 “불량”국가는 사실상의 재래식 전력인 핵을 공포의 균형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미개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후쿠시마 사태로 핵의 평화적 이용의 기술적 발전이 미흡함을 깨달았지만 신재생 에너지 등 대체수단의 정착은 아직 요원한 상황이다.

큐브릭은 같은 인터뷰에서 ‘닥터 스트레인지러브’가 부조리한 상황에 대한 냉소적인 영화가 결코 아니라면서 “미친 짓을 알아본다는 게 그걸 찬양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걸 치유할 가능성에 대해 절망감을 느끼거나 무익하다고 느끼는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2016년 핵을 둘러싼 동북아의 상황도 –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처럼 완전 미쳐 돌아가는 상황은 아닐지라도 –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 대립구도를 어느 한쪽이 완전히 미쳐 돌아가고 나머지는 지극히 이성적인 상황이라고 보는 것도 유익하지 않다. 미친 짓 속에서도 일정 정도의 합리적 맥락을 알아본다는 게 그걸 찬양한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사태가 해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영화감독의 돈이 필요했던 이유

나는 돈의 요점은 그걸 쓰는 데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돈의 요점은 내가 정말로 만들고 싶지 않은 영화를 만들지 않아도 되게끔 그걸 보유하는 데 있어요. 생활수준을 높였는데 갑자기 무일푼이 돼버리고 스튜디오 몇 군데에서 원하지 않는 영화를 찍으라고 강요한다면. [중략] 나는 마음에 드는 책의 영화화 권리를 사들이는 데 돈을 써요. 마음에 드는 다른 책을 찾아냈을 때 그 책의 권리도 사들이려고 돈을 저축하고요.[진 D. 필립스 엮음, 윤철희 옮김, 마음산책, 2014년, pp39~40]

역사상 어느 영화감독보다도 탄탄한 필르모그래피를 구축한 것으로 인정받는 스탠리큐브릭의 돈에 대한 생각이다. 평소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해오던 차에, 그 맥락이 수긍이 가는 유명인(!)이 이런 말을 하니 반가운 맘에 옮겨 적어봤다. 즉, 그의 독보적인 필르모그래피는 그가 찍고 싶지 않은 영화를 찍지 않을 수 있을 정도의 물질적 자유를 확보한 상태에서 가능한 일이었던 셈이다. 돈벌이로서의 일이 아닌 창작과 그에 따른 기쁨으로서의 일이 현실적으로는 물질이 어느 정도 받쳐줘야 하는 현실에서 큐브릭도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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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nley Kubrick ; cropped by Off-shell

File:KubrickForLook.jpg
Original image: LOOK Magazine Collection, Library of Congress, Prints & Photographs Division, [Reproduction number e.g., LC-L9-60-8812, frame 8],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35534727

물론 돈이 아주 많지 않아도 어느 정도 희생만 각오한다면 하고 싶지 않은 노동에서부터 자유로울 수도 있다. 소위 “자발적 가난”이라는 표현이 요즘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데, 지방으로 이사를 가서 소비를 줄이고 덜 노동하는 삶을 선택한 이들이 택한 삶을 그렇게 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큐브릭에게는 당연하게도 돈이 필요했다. 영화창작이란 굉장히 돈이 많이 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그는 로리타의 판권을 구입하기 위해 몇 십만 달러에 달하는 돈을 직접 투자해야 했고, 이를 통해 그는 창작의 자유를 확보할 수 있었다.

사실 돈이 없이도 나름의 창작세계를 구축한 사례가 있기는 하다. 에드 우드는 ‘글렌 혹은 글렌다’와 같은 초저예산 영화를 만들며 버텼고 사후에 어느 정도 그만의 독특함을 인정받았다. 더 독특한 예로는 “핑크 영화”라 불리는 1960~70년대의 일본 성인영화계에서 벌어진 일인데, 감독은 일정수의 섹스신만 넣기만 하면 상당한 정도의 연출의 자유가 주어진 덕에 때로 정치적으로 아주 급진적인 “핑크 영화”가 탄생하기도 했다 한다. 하지만 그래도 큐브릭이 돈이 있어서 더 좋은 작품을 찍은 것은 사실이고, 그저 그 사실에 감사할 따름이다.

고독한 미식가(孤獨のグルメ) 트윗 단상

# ‘고독한 미식가’ 시리즈를 즐겨 보는 이유로는 단연 주인공의 먹방이겠지만, 그가 즐겨 찾는 골목길 풍경도 한몫한다. 적어도 카메라에 잡히는 일본 도시의 골목길은 프랜차이즈에 포획되지 않은 순수 자영업자의 그물망으로 이루어진 골목이기 때문이다.

# 한국판 ‘고독한 미식가’를 찍을 때쯤이면 골목길이 젠트리피케이션 때문에 프랜차이즈에 점령당한 시점이라 이렇게 찍게 될지도 모르겠다. 주인공은 ‘혜리 도시락’을 먹으며 “오~ 이거 의왼데?? 마구마구 먹게 돼!”하고 ‘빽다방’의 커피로 입가심할지도??

# 시장자유주의의 주창자 아인란드는 소비에트가 유일한 주인인채로 모든 인민을 노예상태에 놓이게 만들기 때문에 절대악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그는 대자본이 골목 안까지 들어와 모든 소매점을 서열화하고 근로대중을 노예화하는 현 상황을 뭐라 할 수 있을까?

# 오늘 들른 편의점은 전에 중규모의 동네 슈퍼였다. 이제 그 공간은 대자본 프랜차이즈의 유통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시스템에 편입됐다. 난 사실 이런 대자본을 효율성 측면을 본다면 무조건 반대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 소유가 사유화되는 것이 우려될 뿐.

# 요컨데 우리는 점점 더 많은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 유통, 소비가 사회화되고 있는 와중에 다만 그 소유권은 소수의 사적자본에 의해 독점되는 것이 신성화된 사회에 살고 있다. 이는 사실 시장경제와 그다지 관계도 없는 경제적 독점에 대한 신앙적 태도다.

# 그나저나 <고독한 미식가> 주인공은 원래 소식하는데 드라마를 위해 하루 전에 단식하고 촬영일 몰아서 마구 먹는다고 한다. 극을 보면 먹방을 위해 흰 쌀밥을 마구 먹는데, 그렇게 몰아서 마구 먹으면 배우의 위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The Big Short 感想文

전에 읽었던 마이클 루이스의 책을 스크린에 옮긴 동명의 작품 The Big Short를 어제 감상했다. 원작자가 같이 근무한 적이 있는 “금융폭탄” 중 하나인 MBS의 발명가 루이스 라니에리를 언급하며 시작하는 이 영화는 자칫 영화감상의 맥락을 끊을 수 있을 정도로 난해한 CDS니 CDO니 하는 복잡한 금융공학 발명품의 개념을 모델, 요리사 등 비전문가의 입을 통해 유머러스하게 설명한달지 극중 배우들이 카메라를 보며 이야기한달지 하는, 굳이 구분하자면 스탠드업 코미디의 스타일을 빌려 매끄럽게 극을 진행시켜 나간다.

2005년 5월 19일 마이크 버리(Mike Burry)는 그의 첫 서브프라임 모기지 계약들을 성사시킨다. 그는 도이치뱅크로부터 6천만 달러의 신용부도스왑(이하 CDS)를 구입했는데, 여섯 개의 서로 다른 채권에 각각 1천만 달러를 지불했다. [중략] 그는 모기지 풀 중 가장 부실한 것을 찾아다니며 수십 권의 투자설명서를 읽고 수백 권의 투자설명서를 샅샅이 뒤졌다. 그리고는 여전히 그때까지도 매우 확신하고 있었던 것은 그가 그것들을 작성한 변호사들을 제외하고는 그것들을 읽은 유일한 인간이었다는 것이다. [The Big Short, Michael Lewis, Norton, 2010, pp49~50]

크리스찬 베일이 연기한 마이크 버리는 영화에서 주택시장의 붕괴에 베팅한 소수 중에서 가장 처음 등장하는 인물이다. 버리는 “음악이 흐르는 동안은 춤을 춰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외골수적인 기질을 타고난 펀드매니저였다. 그래서 그는 – 당연히 해야 할 일인 – 모기지 채권의 투자설명서를 샅샅이 읽고 시장이 붕괴될 것임을 직감한다. 스티브 카렐이 연기한 마크 바움을 비롯한 다른 이들도 역시 면밀한 점검을 통해 춤을 추는 대신 음악이 꺼질 것이라는 것에 돈을 걸고, 시장의 붕괴를 기다린다.

영화는 이들이 어떻게 그렇게 뛰어난 안목으로 시장의 붕괴를 예측했는가 보다는 – 그런 부분을 다 설명하다보면 영화가 코미디가 아니라 지루한 다큐멘터리가 될 터이니 – 이들의 선지자적 태도와 이후의 시장의 어리석음이 어떻게 서로 긴장감을 유지해가며 갈등하게 되는지를 주로 조명한다. 부실이 증가함에도 그 자산과 연계된 CDO 채권의 값은 상승한달지, 신용평가사가 투자은행을 상대로 채권등급 장사를 한달지, 기자는 시장상황을 정확히 알리는 기사쓰기를 거부한달지 하는 등의 부조리가 선지자들을 괴롭히는 상황 말이다.

영화의 결말은 – 스포일러라 할 것도 없이 –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바 주인공들의 승리로 결말이 난다. 마이크 버리는 400%가 넘는 수익률을 시현하였고, 마크 바움은 개인적으로도 1억 달러를 번다. 하지만 마지막에 웃는 이들은 이들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비극적인 코미디다. 우리가 알다시피 월가나 금융당국 그 어느 곳에서도 시장의 붕괴에 대해 책임진 이는 (거의) 없다. 오히려 영화는 후일담으로 버리만 네 차례의 회계조사를 받는 등 당국의 괴롭힘을 당했다는 사실을 전한다. 승리자는 결국 부조리한 세상이었다.

여하튼 우리는 이제 어느 정도 평온해진 상황에 놓여있는 것 같다. 시장도 안정을 찾은 듯 하고 Fed도 금리를 인상했다. 그렇다면 이제 경기는 늘 그랬듯이 경기변동설에 따라 다시 상승기로 접어드는 것일까? 하지만 최근 전 세계 주식시장은 동반 폭락하였고, 유가는 30달러 바닥을 뚫고 내려갔고, 중국시장에 대한 경고신호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금은 마치 투자은행이 증권화와 부외금융을 통해 버블 붕괴를 이연시켰던 것처럼, Fed 등 중앙은행이 양적완화와 긴축재정을 통해 더 큰 버블의 붕괴를 이연시키고 있는 상황이 아닐까?

올해의 즐거움 : 映畵편

Vertigo [1958]
오랫동안 최고의 걸작으로 군림하던 ‘시민 케인’을 최근 이 영화가 앞서고 있는 형국이다. 그런 면에서 B급 추리 영화나 만들던 감독으로 여겨지던 알프레드 히치콕이 재평가되고 그의 작품이 최고의 걸작 자리에 오르는 과정 또한 그의 영화만큼이나 극적이다. 이 영화 또한 창조자의 권위회복 과정처럼 평범한(?) 스릴러에서 복잡한 알레고리가 담겨져 있는 걸작으로 재평가되기에 이르렀다.

Les yeux sans visage [1960]
제목은 ‘얼굴 없는 눈’이라는 의미다. 사고로 얼굴이 심하게 손상된 딸을 위해 한 외과의사가 젊은 여성을 납치하여 그의 얼굴을 딸에게 이식하려 한다는 끔찍한 설정의 공포물이다. 설정에서부터 그 진행과정, 그리고 결말이 빤하게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 사이사이에 배치되어 있는 정밀하고도 스산한 연출이 매력적이기에 지루하지 않다. 여배우의 얼굴마저도 극의 설정과 잘 어울린다.

Saturday Night & Sunday Morning [1960]
프랑스 영화에 ‘누벨바그’가 있었다면 영국 영화에도 ‘뉴웨이브’가 있었다. 이 시기 영화는 주로 영국 노동계급의 날것의 삶이, 그 단조로운 일상에 어울리는 흑백 톤에 담겨져 전해졌는데 이 영화가 바로 그런 전형적 패턴을 담고 있다. 제조업 공장 노동자로 일하는 주인공은 얼굴이 잘 생긴 덕에 동료 아내와 바람도 피우고 예쁜 아가씨도 사귄다. 뻔한 결말이지만 그게 또 우리네 진솔한 삶이기도 하다.

Lawrence Of Arabia [1962]
영화 초반, 우물의 주인인 오마샤리프가 저 멀리서 낙타를 몰아 우물을 맘대로 사용하는 피터오툴 일행을 해치는 롱테이크가 이 영화가 무척 지루할 것이며 그만큼 뛰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잘 말해준다. 신격화가 지나치다는 평가가 있기도 하지만 T. E. 로렌스만큼 현대의 모험성애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인물이 또 있을까 싶다. 이 영화를 70mm로 극장에서 관람한 사람이 부럽다.

Apocalypse Now [1979]
미국인이 베트남전을 회고하는 방식은 기본적으로 애국주의적이거나 냉소적이거나 할 수밖에 없는데, 어떤 식이든 가해자로서 취할 적당한 태도는 아니다. 그렇다면 가장 근사하게 취해야할 태도는 진지하게 그 전쟁이 부조리했음을 말하는 것인데, 그러자면 당사국으로서는 이 영화처럼 반쯤 미친 상태에서 회고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다큐를 보면 제작진이나 출연진 모두 다들 그런 상태였다.

Don Giovanni [2014]
작년에 잘츠부르크 페스티발에서 가진 공연 비디오를 올여름 메가박스에서 가져와 상영하였다. 상영하는 날 객석에 나를 포함, 총 세 명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모든 음악적 유산 중에 가장 뛰어난 걸작 중 하나로 평가받는 작품이지만 그래도 흐린 토요일에 극장에 앉아 돈지오반니를 본다는 것은 조금은 이상한 행동이 아니었나 생각되기도 한다. 언젠가는 실황을 직접 볼 수 있기를.

Martian [2015]
어딘가에서 낙오될 수 있는 경우로는 가장 먼 곳에서 낙오된 인간이 바로 이 화성인 멧데이몬일 것이다.(그래비티의 산드라블록의 기록을 깸)1 그럼에도 불구하고 맷은 산드라보다 더 유쾌한 마음으로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작정하고 화성의 주인이 된다. 영화는 그 긍정의 힘을 발랄한 70년대 디스코와 믹스하여 연출했다. 안전한 영화문법이기는 하지만 그런 면에서는 그래비티보다 중량감은 덜했다.

Star Wars : The Force Awakens [2015]
‘20세기 최고의 대중문화 아이콘이 21세기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하는 문제는 유색인종 히어로 핀과 여자 제다이 레이를 시장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데 달려 있다 할 것이다. 특히 레이는 레아 공주의 전통적으로 “여성적”이라 받아들여지는 이미지를 바꿔야 할 임무가 있다. 일단은 그 과제는 다음 시리즈의 과제로 남겨놓은 것 같고 이번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BB8이었다.

Sicario [2015]
강간, 매춘, 마약, 납치, 살인이 일상인 미국 국경과 인접해 있는 멕시코의 도시 시우다드 후아레즈, 그 곳에서의 범죄소탕을 위해 세 명이 의기투합하는데 이들이 꾸는 꿈은 서로 다르다. 규정에 매달리는 바른생활 FBI 케이트, 목표를 위해 惡의 힘의 균형을 허용하는 CIA 책임자 맷, 정체불명의 남자 알레한드로. 이 삼각구도의 긴장감이 매우 탄탄하다. 시카리오는 멕시코에서 ‘암살자’란 의미로 쓰인다고.

Mad Max: Fury Road [2015]
스타워즈의 레이가 새로운 여전사로 등극하는 과제를 다음 에피소드로 미뤘다면 퓨리오사는 이번 에피소드에 그 임무를 110% 수행했다. 멜깁슨 없이는 ‘앙꼬 없는 찐빵’같았을 영화가 새로운 매드맥스 톰하디에 의해 세대교체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새 영웅 퓨리오사가 그 왕좌를 완벽하게 넘겨받아 영화 그 자체가 환골탈태를 거쳤기에 나는 이 영화를 단연 올해 최고의 작품으로 선정하는데 주저함이 없다.(감상문 읽기)

The Big Short 영화화 소식

소설가가 아닌 넌픽션 작가 – 또는 경제평론가? – 중에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사랑받는 이는 마이클 루이스(Michael Lewis)가 아닌가 싶다. 할리우드는 이미 그의 저서 중에서 The Blind Side와 Moneyball을 영화화했다. 물론 두 작품은 드라마적 요소가 풍부한 작품이기는 했다. 이번에는 The Big Short가 영화화됐다. 원저는 금융위기 이전 모두가 롱포지션에 미쳐가고 있을 때에 몰락을 예상한 소수가 숏포지션을 취했던 에피소드를 모아놓은 책이다.(관련 글 읽기) 영화 배역이 초호화판이다. 크리스찬 베일, 스티브 카렐, 브래드 피트, 마리사 토메이 등등. 기타 금융위기를 소재로 한 영화 리스트는 여기를 참고하시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