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적인 문명은 [ ]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또 다른 긍정적인 점은 특정한 기술적 발전 단계에 도달한 지능을 가진 모든 생명체는 반드시 핵에너지를 발견했을 거라는 확신입니다. [중략] 그 문명은 파괴적인 결과를 낳는 일 없이 핵에너지를 평화적인 목적으로 활용할 방법을 찾아냈나, 아니면 그 문명은 스스로 절멸됐나? 핵에너지를 발견한 후로 1000년을 존재해온 문명이라는 어느 문명이건 핵폭탄을 통제할 수단을 고안해냈을 거라고 짐작해요. 이 사실은 우리 인류의 생존을 위한 특정 가이드라인을 우리에게 제공하는 것과 더불어 엄청나게 큰 안도감을 줄 수 있습니다.[스탠리 큐브릭 장르의 재발명, 진 D. 필립스 엮음, 윤철희 옮김, 마음산책, 2014년, p101]

스탠리 큐브릭이 ‘2001 스페이스오디세이’에 관한 인터뷰에서 외계문명의 존재에 대한 긍정적인 의견을 피력하면서 그 근거로 든 사례다. 문명의 발전단계에서 필연적으로 발견될 핵에너지를 평화적으로 이용할 방법을 찾아냈는지 아닌지가 그 문명이 이성적인 존재인지 아닌지의 기준점이 된다는 의견으로 여겨진다. 스스로 냉전 당시 시스템과 그 시스템을 구성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핵전쟁이 발발하게 되는 부조리한 상황을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로 만들기도 했던 이인지라, 외계문명의 지적 수준에 대해서 이런 잣대를 갖는 것이 그답다는1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과연 2016년 현재의 지구 문명은 큐브릭의 기준에서 볼 때 스스로 안도감을 가질만한 문명일까? “냉전(冷戰)”이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로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했던 미-쏘 열강의 전선이 사라질 즈음, 인류는 다행히도 큰 격변 없이 핵무기에 대한 통제권이 어느 정도 유지한 것 같다. 하지만 지구적 관점에서, 특히 동북아 관점에서 핵에 대한 신경쇠약증은 여전히 우리 삶을 짓누르고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시도와 일본의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사고 등이 그 예다. 전자는 국지적 냉전의 결과고, 후자는 “평화적” 핵이용에 대한 기술과 제도가 실패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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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rles Levy from one of the B-29 Superfortresses used in the attack. – http://www.archives.gov/research/military/ww2/photos/images/ww2-163.jpg National Archives image (208-N-43888),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56719

경수로 지원 사업에 관한 북미 간의 갈등에서 본격화된 북한의 핵무기 개발 시도는 형식적으로는 국지적인 규모에서의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 양상을 띠고 있다.(또는 적어도 각 이해당사자가 그런 식으로 상황을 이용하고 있다.) 이에 따른 동북아의 정치상황은 적어도 큐브릭이 생각하는 이성적인 상태는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야무진 핵의 평화적 용례라고 여겨졌던 일본의 원자력발전소는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와 이후 – 원인이 소유형태든 일본식 문화든 간에 – 부조리한 사태처리로 말미암아 핵의 평화적 이용의 가능성에 대한 회의감을 일게 만들고 있다.

결국 큐브릭이 상정한 이상적인 핵개발의 상황은 핵을 전쟁수단으로 삼는 상황을 통제내지는 절멸시키고 평화적으로 안전하게 이용하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 그런 기준에서 볼 때 현재의 상황은 그런 희망사항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여전히 서구열강은 비대칭적인 핵무기 보유상황을 상수로 인정하라 강요하고 이에 몇몇 “불량”국가는 사실상의 재래식 전력인 핵을 공포의 균형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미개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후쿠시마 사태로 핵의 평화적 이용의 기술적 발전이 미흡함을 깨달았지만 신재생 에너지 등 대체수단의 정착은 아직 요원한 상황이다.

큐브릭은 같은 인터뷰에서 ‘닥터 스트레인지러브’가 부조리한 상황에 대한 냉소적인 영화가 결코 아니라면서 “미친 짓을 알아본다는 게 그걸 찬양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걸 치유할 가능성에 대해 절망감을 느끼거나 무익하다고 느끼는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2016년 핵을 둘러싼 동북아의 상황도 –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처럼 완전 미쳐 돌아가는 상황은 아닐지라도 –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 대립구도를 어느 한쪽이 완전히 미쳐 돌아가고 나머지는 지극히 이성적인 상황이라고 보는 것도 유익하지 않다. 미친 짓 속에서도 일정 정도의 합리적 맥락을 알아본다는 게 그걸 찬양한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사태가 해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1. 또는 그 시대의 지식인답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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